소설리스트

각성받고 각성 더!-24화 (24/240)

-024-

-9장. 혼원 길드#3-

<오오, 이건 또 무슨 이벤트냐?>

<당장 들어가!>

<직접 보는 것도 좋지.>

<이찬이 왜 가만히 있냐? 벌써 지렸냐?>

채팅창은 난리가 났다. 그리고 실제로 강이찬은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제, 제가 왜요?”

“지금 이 자리에서 여기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강이찬 씨밖에 없잖아요.”

“그거야 그렇지만…….”

강이찬은 각성자였다. 그것도 A급 마법사 클래스의 각성자였다.

하지만 사정이 있어 헌터를 업으로 삼지 않고 인터넷 방송 스트리머를 선택한 사람이었다.

유민섭은 그런 강이찬에게 게이트 돔 입장을 권한 것이었다.

“너무 빼지 마시고, 저번에도 한 번 들어간 적 있잖아요?”

“그, 그때는 내 의도가 아니라…….”

강이찬의 낯빛이 질리다 못해 시체처럼 창백하게 탈색되었다.

초점을 잃은 눈동자가 갈 곳을 잃은 채 방황했다. 손끝이 떨리고, 새파랗게 질린 입술이 쉴 새 없이 달싹거렸다.

멀쩡히 살아 있던 사람이 갑자기 시체가 된 것 같았다.

강이찬에게는 헌터가 되지 못한 사정이 따로 있었다.

무던히 노력한 끝에 던전에 입장하는 것까지는 가능했지만, 괴물과 싸운다는 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강이찬이 게이트 돔 진입을 제안받은 것이다.

“으음…….”

강이찬의 입에서 쉴 새 없이 신음이 새어 나왔다.

한참을 그렇게 고민하던 강이찬이 힘겹게 미소를 지으며 액션 캠을 들었다.

“혀, 형님들! 지금부터 미션 하나 갑니다. 풍선 100만 개 채우면 당장 들어갑니다.”

<미친! 100만 개?>

<와~ 이찬 새끼 꼼수 좀 보게. 결국 안 들어가겠다는 거지?>

꼼수가 맞았다.

유민섭이 게이트 돔에 들어가는 것은 뭔가 할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시간제한이 있을 가능성이 컸다.

풍선 1개의 가격이 100원, 100만 개면 1억 원이다. 짧은 시간에 그게 가능할 리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그때였다.

<‘S급애주가’ 님이 풍선 1,000,000개를 선물하셨습니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무시무시한 이펙트와 함께 요란한 효과음이 펑펑 울려 퍼졌다.

“어?”

강이찬이 다급하게 뒤를 돌아보았다. 문제의 효과음이 바로 뒤에서도 들린 탓이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피식 웃고 있는 유민섭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유민섭이 휴대폰을 인벤토리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가시죠.”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유민섭이 ‘S급애주가’였다.

미션 달성.

그 순간 강이찬의 표정이 단단하게 변했다.

“흡!”

짧게 심호흡을 했다.

“형님들, 그리고 누님들, 미션 완료됐습니다. 미션이 있는데 빼면 강이찬이 아니죠! 저 지금 들어갑니다.”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들의 왕, 강이찬.

달성된 미션 앞에서 후퇴는 없었다.

“끙!”

유민섭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게이트 돔의 검은 외벽을 통과하자마자 온몸이 쇳덩이를 매단 듯 무거워졌다.

뒤따라 들어온 강이찬 역시 옅은 신음을 흘리며 비틀거렸다.

“내가 두 번 다시 게이트 돔에는 안 들어오려고 했는데…….”

강이찬은 두 손으로 무릎을 짚은 채 숨을 헐떡거렸다. 그만큼 게이트 돔 내부는 각성자와는 상극의 공간이었다.

강이찬이 힘겹게 고개를 들며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유민섭을 보았다.

“이러려고 기자회견장에 부른 거예요?”

“당연한 이야기를 대단한 발견처럼 하시네.”

“와아, 사람 진짜!”

“그래도 이찬 씨 보면 참 대단해요.”

“뭐가요?”

“그렇게 겁이 많은 사람이 게이트 돔에 들어와서도 태연한 거.”

“지금 무서워서 완전 쪼그라들었거든요! 근데… 어?”

뭔가 이상했다.

주변이 조용했다.

그 대신 조금 떨어진 곳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강이찬은 그제야 고개를 들고 소리가 난 방향을 제대로 살폈다.

“어?”

피가 튀었다. 굉음과 비명이 뒤섞였다. 솟구치는 핏줄기 사이로 잘려 나간 사지와 머리가 흩어졌다.

게이트 돔 안에서는 익숙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낯설었다.

죽어 나가는 것이 사람이 아닌 괴물인 탓이었다.

강이찬이 멍한 눈으로 시선을 돌려 유민섭을 향해 물었다.

“소환사?”

“네.”

“저, 저게 소환사라고요?”

“네.”

“저렇게 무식하게 괴물들을 썰어 대는데? 저게 소환사? 말이 되는 소리를 해요.”

분명 소환사라고 소개했던 김지후 헌터가 괴물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미친…….’

강이찬은 아득해지려는 정신을 부여잡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했다.

‘단순한 소환사일 리는 없고… 일종의 이레귤러? 그런데 저런 이레귤러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고? 이게 말이 돼?’

그러면서도 하나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대박이다!’

여전히 많은 고정 시청자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최근 들어 콘텐츠가 한계에 부딪히고 있었다. 그런 시기에 저 정도 헌터가 등장한 것이다.

게다가 강이찬은 그 대박 콘텐츠의 최초 목격자였다.

‘잘만 만들면… 크흐흐!’

강이찬의 두 눈에, 살기에 버금가는 안광이 번뜩였다. 자타공인 자낳킹이 먹이를 노려보는 눈빛이었다.

‘오늘 카메라 다 버려도 좋다!’

그사이 주변의 소란이 가라앉으며 김지후, 그러니까 얼굴을 바꾼 준혁이 두 사람 앞에 도착했다.

유민섭이 느긋한 표정으로 말했다.

“서로 인사하세요. 인터넷 방송 하는 강이찬 씨, 그리고 우리 혼원 길드의 얼굴인 김지후 헌터.”

준혁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방송 잘 봤습니다.”

“옙! 안녕하십니까? 방송을 보셨다고요? 아, 진짜 아쉽네요. 이 안에 방송 장비를 못 들고 들어오니까. 그래도 잘 부탁드립니다. 제가 앞으로 종종 찾아 봬도 되겠습니까?”

강이찬이 사랑과 존경, 온갖 긍정적인 감정이 뒤섞인 눈빛으로 준혁을 보았다.

“아, 뭐… 기회가 된다면…….”

“옙! 감사합니다! 갑작스러운 이야기지만 괴물 사냥하는 모습 사진으로 좀 남겨도 되겠습니까? 모델료는 정확하게 5 대 5 어떠신가요?”

“사진? 모델료?”

던전 안에서 무슨 사진을 찍는다는 말인지 이해가 안 갔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준혁의 반응에, 유민섭이 피식 웃으며 끼어들었다.

“그런 게 있어요. 그리고 가급적이면 허락해 주세요. 손해 볼 거 없으니까.”

그 말에 준혁도 별다른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하는지 모르지만 그럽시다.”

“하하! 감사합니다!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대충 이야기를 마무리한 후 준혁이 유민섭을 향해 말했다.

“그럼 본격적으로 움직여 보죠. 괜찮겠습니까?”

“뭐, 내가 하나요? 청랑이 하지.”

“그렇죠. 그럼… 계획했던 대로?”

“그래야죠. 저랑 청랑은 외곽을 돌면서 안쪽으로 이동합니다.”

“오케이. 나는 중앙으로 직진.”

두 사람의 대화에 강이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떨어져서? 김지후 혼자? 소환수인 청랑이 유민섭이랑 가고? 근데 유민섭은 지휘관인데 왜 청랑하고만 움직여? 이거 뭔 상황…….’

하지만 강이찬의 의문이 해소되기도 전에 두 사람이 다른 방향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어, 어어!”

강이찬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좌우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하지만 다리는 이미 김지후의 뒤를 쫓아 달리고 있었다. 자낳킹의 촉이 당장 뒤따라 달리라고 목 놓아 부르짖고 있었다.

지이잉-!

묘하게 울리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 떠오른 것은 준혁의 금문묵룡비였다.

허공에서 홀로 부르르 떨던 금문묵룡비가 갑자기 날카로운 쇳소리를 터트렸다.

동시에 하나였던 금문묵룡비가 갑자기 30개로 늘어나더니, 준혁의 머리 위에 부채꼴 형태로 펼쳐져 진열을 갖췄다.

묵색의 검날에 황금색 물결무늬가 촘촘히 새겨져 있는 30개의 비수가 펼쳐지는 모습은, 마치 공작새가 꼬리털을 펼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화려했다.

지이잉-!

30개의 비수가 또 한 번 잘게 떨리며 울리는 소음을 냈다. 그와 함께 모든 비수의 길이가 1미터로 늘어나더니 이내 비행을 시작했다.

무자비한 핏줄기를 자아내는 죽음의 비행이었다.

크아아악!

준혁은 그저 달리기만 하는데도 괴물들의 시체가 켜켜이 쌓여 갔다.

잠시 후, 준혁의 정면에도 거대한 괴물이 나타났다.

투 헤드 오우거, 일반 오우거보다 월등히 큰 7미터의 키에 2개의 머리가 달린 괴물이었다. 머리가 2개인 덕분인지 지능도 월등히 뛰어난 놈이었다.

팟!

준혁이 가볍게 땅을 박찼다.

콰쾅!

2개의 머리가 사이좋게 가로로 잘려 나가며 거대한 육체가 고목처럼 쓰러졌다.

쿠웅-!

쓰러진 투 헤드 오우거의 가슴팍을 밟은 채 착지한 준혁은 그대로 속도를 올렸다.

무상곤은 묵색 칼날을 지닌 1자루 롱 소드 형태로 고정해 둔 채였다.

준혁이 스스로 만든 김지후의 이미지였다. 중세 기사 같은 묵색의 전신 판금 갑옷과 묵색의 롱 소드.

다양한 모습보다는 강렬한 하나의 이미지가 사람들의 머릿속에 더 깊이 각인되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이 상황까지 온 이유도 스스로 드러내고 시스템 문제의 원흉을 끌어내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왕 하는 거 화려하게 데뷔하는 게 좋다.

롱 소드를 한 번 휘두를 때마다 10여 구의 괴수들이 시체가 되어 쓰러졌다.

그야말로 쾌속의 돌진.

‘대박, 대애박!’

강이찬이 숨이 턱까지 받친 채로 준혁을 뒤따라 달리며, 속으로 쉴 새 없이 ‘대박’을 부르짖었다.

그리고 준혁은 직경 4킬로미터인 게이트 돔의 중앙을 향해 쾌속으로 전진했다.

***

컹-!

청랑이 가볍게 짖으며 몸을 날렸다. 하지만 뒤이어 울린 소리는 울음소리만큼 가볍지 않았다.

으드득!

그 작은 주둥이가 두껍기 짝이 없는 사자형 괴물의 목덜미를 그대로 부러뜨렸다.

크아아-!

죽은 괴물과 한 무리를 이루는 다른 사자형 괴수들이 사방에서 청랑을 덮쳐들었다.

청랑이 바닥에 착지하는 동시에 앞발을 축으로 뒷발을 빙글 돌려 순식간에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다시 도약한 것 또한 거의 동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컹, 커컹!

청랑이 짖는 소리는 일견 천진난만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핏줄기가 솟구쳤고, 괴물들의 비명이 사방으로 메아리쳤다.

그리고 지휘권을 통해 연결된 유민섭의 머릿속으로는 쉴 새 없이 청랑의 감정이 넘어 들어왔다.

-신난다.

-재밌다.

-싸울 거야!

정확한 말은 아니었다.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환수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일종의 어렴풋한 이미지가 되어 유민섭의 머릿속에 그것을 투영했다.

‘주인이나 소환수나…….’

유민섭은 끼리끼리 잘도 만났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준혁을 보고 있노라면 전투광이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남은 사자 1마리가 청랑의 앞발에 머리가 터지며 비명횡사했다.

그와 동시에 유민섭의 눈에 들어오는 날렵한 그림자.

“프로텍션 돔!”

지휘관이 아니더라도 유민섭은 뛰어난 서포터였다.

스킬 이름을 외치는 동시에 반투명한 돔이 청랑을 뒤덮었다.

텅, 터터텅!

보호막에 부딪혀 사방으로 튕겨 나가는 것들은 다름 아닌 3개의 머리에 2개의 앞발까지 달려 있는 뱀 괴물 30마리였다.

키하아-!

30마리의 뱀들이 화가 난 듯 2개의 얼굴을 커다랗게 부풀리더니 쉴 새 없이 보호막을 향해 몸을 달렸다.

아예 빨판이 달린 두 앞발로 보호막에 달라붙더니 2개의 머리로 쉴 새 없이 박치기를 해 댔다.

그 광경에 유민섭이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래 봐야 삼두사 따위가…….’

하지만 미소는 떠올랐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사라졌다.

“이런 미친!”

보호막에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블리딩 아이비! 뱀피릭 리커버리!”

두 개의 스킬을 연달아 펼쳤다.

바닥을 뚫고 솟구친 넝쿨이 보호막을 타고 올라가 삼두사를 휘감는다. 넝쿨의 날카로운 가시가 삼두사의 몸뚱이에 상처를 만들었고, 그렇게 흘러내린 핏물이 희미한 빛이 되어 유민섭에게 날아들었다.

넝쿨로 출혈을 일으키고 핏물을 마나로 치환하는 스킬 2개의 재빠른 연계.

쩌저저정-!

하지만 유민섭이 묶은 삼두사는 겨우 절반이었고, 나머지 절반의 삼두사가 마침내 보호막을 깨트렸다.

강아지만 한 청랑의 작은 몸뚱이를 향해 길이 1미터의 삼두사 15마리가 동시에 달려들었다.

청랑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앞발을 휘두르고, 주둥이를 벌렸다.

달려들던 삼두사 5마리가 순식간에 죽었다. 하지만 남은 놈들이 청랑의 온몸에 이빨을 박았다.

크아아앙-!

거세게 울부짖은 청랑의 두 눈이 시뻘겋게 변하며 한층 사납게 포효를 터트렸다.

이빨을 박은 삼두사들이 청랑의 몸을 휘감고 옥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콰득, 콰드득!

청랑은 자신의 몸에 이빨을 박은 삼두사들을 하나하나 대가리를 터트려 죽였다.

그런 후에는 ‘블리딩 아이비’에 묶여 있던 삼두사들까지 차근차근 처리했다.

하지만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유민섭의 표정은 심상치가 않았다.

‘겨우 삼두사 따위가 청랑한테 이빨을 박았다고?’

말이 안 된다.

A급 전사와 비슷한 스탯을 갖고 있는 청랑이었다.

삼두사의 이빨은 A급 전사에게는 조금도 해가 되지 않는 몬스터였다.

그런데 이빨이 박혔다.

‘프로텍션 돔이 깨졌다고?’

그 역시 말이 안 된다.

스탯이 낮아졌다고 마법의 위력이 감소되는 것은 아니었다.

혹시나 하고 통찰을 펼쳤다.

[피지휘자 청랑의 상태창]

근력:[+19] 순발력:[+14]

지구력:[+15] 감각:[+20]

앞의 숫자가 보이지는 않지만, 지휘권과 버프를 통해 추가된 스탯이 변화가 없다.

청랑이 약해진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거기까지 확인한 유민섭의 머릿속에 말도 안 되는 가정 하나가 떠올랐다.

‘몬스터가 강해졌다?’

유민섭의 머릿속에 빠르게 계산이 이루어졌다.

‘2배!’

몬스터의 스탯이 2배 강해졌다는 결론이 나왔다.

유민섭이 기겁한 표정으로 게이트 돔의 중심을 쳐다보았다.

‘위험하다!’

약한 몬스터들 위주인 외곽은 크게 위험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심으로 갈수록 강한 몬스터들이 배치된다.

그리고 정중앙에는 보스 몬스터가 4마리나 있었다.

아무리 준혁이라도 이건 위험했다.

-준혁 씨, 멈춰요!

하지만 이미 거리가 한참 벌어진 탓에 생각을 전달할 수가 없었다.

“젠장!”

버럭 소리를 지른 유민섭이 게이트 돔의 중심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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