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3-
-9장. 혼원 길드#2-
“지금 자유로를 달리고 있습니다. 아, 이찬바라기 님, 후원 감사합니다!”
고급스럽게 꾸민 대형 밴 차량 동승석에서 한 남자가 쉴 새 없이 입을 놀리고 있었다.
“이찬시엄마 님, 꼴초 님, 어서 오세요. 지금 들어오신 분들을 위해 설명을 한 번 하고 진행해야 할 거 같습니다. 아이고, 꼴초 님, 오시자마자 후원!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형님! 충성, 충성, 충성!”
밴 안에는 곳곳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자동차 앞 유리 너머로 향한 것과 동승석을 향한 것, 운전석 방향에서 옆으로 향한 것 등등.
그 한가운데서 떠드는 남자의 이름은 강이찬으로, 아주 유명한 인터넷 방송 스트리머였다.
그리고 혼원 길드 창설 기자회견에 초대받았던 그 스트리머이기도 했다.
“우선 오늘 갓민섭 헌터님의 새로운 길드 창설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신인 헌터 한 분이 실검 1위를 차지하셨죠. 지금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김지후 헌터라고, 세계 최초의 소환사 클래스 각성자였습니다. 소환수로 데리고 나온 댕댕이가 대박… 아, 댕댕이 아니라고요?”
강이찬의 입에서 쉴 새 없이 말이 쏟아져 나왔다.
“네, 정정하겠습니다. 댕댕이 아니고 늑대입니다. 푸른 늑대. 이름도 청랑이라고 합니다. 아무튼… 아, 잠시 자료 화면 보시죠.”
강이찬이 멘트를 하며 뒤쪽을 향해 빠르게 손짓했다.
밴의 2열에 앉은 2명의 남자가 빠르게 기기와 노트북을 조작했고, 방송 화면에는 청랑이 방패를 종잇장처럼 찢어발기는 장면이 재생되었다.
2명의 남자는 강이찬의 매니저와 영상편집 기술자였다.
“지금 보시는 저 방패가 무려 희귀 등급입니다. 그런 방패를 이빨로 찢는다면… 저 댕댕이, 아니 저 늑대는 A급 상위 딜러급 스펙을 갖추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김지후 헌터의 소환수는 저 늑대 말고도 3마리나 더 있다고 하죠.”
그리고 다시 화면이 바뀌었다. 화면은 2분할 되어 왼쪽에는 밴이 달리는 길의 정면을 보여 주고, 오른쪽은 강이찬의 얼굴을 보여 주었다.
“그런데 기자회견 하다가 갑자기 왜 자동차로 이동하고 있느냐? 어? 이찬시엄마 님, 후원 감사합니다. 누님, 사랑해요~”
강이찬은 두 손을 이용해 열심히 리액션을 하는 중에도 입은 쉴 새 없이 말을 쏟아 냈다.
“유민섭, 아니 갓민섭 헌터가 혼원 길드 창설한 이유를 알려 주겠다면서 갑자기 기자들을 모두 버스에 태웠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서울을 빠져나와 자유로를 타고 계속 서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방금 파주 지났는데……. 어? 잠깐, 설마? 어우, 나 지금 소름 돋으려고 해요.”
강이찬이 갑자기 뭔가 썰을 풀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자 방송 채팅창에 난리가 났다.
<뭔데?>
<아, 혼자만 알지 말고.>
“근데 나도 이거 확신은 없어요. 그냥 갑자기 번쩍 떠오르는 게 있는 거지. 그러니까 그게 뭐냐면…….”
<뜸 들이지 말고, 쫌!>
<저번처럼 아재 개그 하면…….>
<빨리 말해 줘요.>
<‘엄마풍선사줘’ 님이 풍선 1개를 선물하셨습니다.>
<‘dbswlruaqkqh’ 님이 풍선 100개를 선물하셨습니다.>
“어허! 엄마풍선사줘 님, 디비에스 님, 후원 감사합니다. 에헤이, 나 지금 썰 풀려고 했어요.”
<빨리 풀어 보라고!>
“파주 지나면 문산이죠? 그럼 문산에 뭐가 있을까요?”
<아, 뭔데?>
<아 씨, 빨리 말하라고!>
<****!>
“자자, 욕은 자제해 주세요. 미성년자들의 정서를 위해 조심해야죠. 다행히 필터링이 있네요. 사실 우리 모두 알고 있어요. 예상 못하고 있을 뿐이죠. 문산에 그게 있잖습니까? 아… 나 좀 더 뜸 들이고 싶은데……. 또 그건 내 스타일 아니잖아요? 그러니 바로 말합니다.”
<와, 한참 뜸 들여 놓고 한다는 소리가 덜덜…….>
<풍선 유도 오지구요.>
<지리구요.>
“다들 아시죠? ‘게이트 돔’ 혹은 ‘마나 돔’이라고 부르는 그것! 그러니까 게이트 다운 지역 말이죠. 제가 볼 때 지금 갓민섭은 거기 가는 것 같습니다.”
‘게이트 돔’은 다름 아닌 게이트 다운에 의해 생성되는 특수 위험 지역의 이름이었다.
게이트 다운이 발생하고 일정 시간 내에 그것을 막지 못하면, 던전에 축적되어 있던 에너지가 외부로 방출된다.
이 에너지는 변질된 마나인데, 이것이 돔 형태로 그 일대를 감싸기 때문에 ‘게이트 돔’이나 ‘마나 돔’이라고 불렀다.
<왜 때문?>
<게이트 돔으로 가는 이유 무엇?>
“개인적인 바람과 평소 갓민섭의 행동을 바탕으로 추측건대… 혼원 길드는 게이트 돔 진압 전문 길드일지도 모릅니다. 어우, 나 소름 돋은 거 봐.”
<진짜?>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게이트 돔을 겨우 2명이 어떻게 진압해?>
<뭔데? 지금 반응 왜 이러는데?>
“제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게이트 다운이 일어나는 건 던전 에너지가 게이트 외부로 방출되면서 생기는 건 아시죠? 그러면 돔 안은 완전 개판 되는 거야. 일단 식생부터 던전 내부의 식생으로 바뀝니다. 땅이나 나무는 물론 물까지 죄다 그냥 바뀐다고요. 거기에 괴물이 득시글거리고, 던전 안에 있던 보스 몬스터가 최소 3마리 이상 동시에 활보합니다.”
<그래서?>
“이걸 없애려면 안에 있는 몬스터 전부 때려잡고, 게이트를 물리적으로 부숴야 합니다. 이렇게만 생각하면 왜 아직까지 게이트 돔이 그대로 남아 있는지 이상하죠? 그죠?”
순간적으로 방송 화면에 세계 각지에 있는 게이트 돔의 사진과 영상이 나타났다.
강이찬과 매니저, 영상편집 기술자 세 사람의 기가 막히는 호흡의 결과였다.
“게이트 돔은 안에 들어가는 순간 각성자의 스탯이 전부 절반으로 떨어집니다. 쉽게 말해서 A급이 들어가면 스탯이 D급이 된단 말이죠. 일반인? 뻔한 걸 물어보시네? 일반인이 들어가면 딱 2시간 후에 마나 오염으로 좀비처럼 변해 버려요. 그러면 답도 없습니다. 그대로 사망각.”
강이찬이 제 손으로 제 목을 그으며 과장된 표정으로 죽는 시늉을 했다.
<그러면 유민섭도 들어가면 답 안 나오는 거 아니냐?>
<그러니까 내 말이.>
<그러니까 내 말이2.>
<도대체 무슨 근거로 혼원이 게이트 돔 진압을 한다고 말하는 거야?>
“근거? 당연히 없죠. 그냥 감이 그렇다는 겁니다.”
<이찬 형 말이 맞으면 내가 풍선 1천 개 쏜다.>
“어? 다들 보셨죠? 던전문가 님, 1천 개. 제가 딱 기억합니다.”
<대신 아니면 어쩔 거야?>
“하하! 이런 식으로 도발을 하시네요. 어그로 관리 좀 하시는데요? 그런데… 도발에 안 넘어가면 제가 또 강이찬이 아니죠. 좋습니다. 제가 틀리면 100만 원 기부합니다. 이 정도면 콜?”
화면 상단에는 어느새 내기의 내용이 텍스트로 고정되었다.
그리고 달리는 고급 세단 뒷좌석에 유민섭과 나란히 앉은 준혁이 방송을 보며 피식 미소를 지었다.
“이 친구 방송 잘하네요?”
“그 친구 별명이 자낳킹입니다.”
“자낳킹?”
준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 ‘자낳괴’는 들어봤어도 자낳킹은 처음 들었다.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의 왕.”
“큭! 대단한 모양이네요? 그나저나 이렇게 미리 알려져도 괜찮아요?”
강이찬이 방송에서 한 말은 사실이었다.
실제로 지금 두 사람은 던전 입장용 복장으로 바꿔 입은 채였다.
특히 준혁의 복장이 평소와 달랐는데, 묵색의 풀 플레이트 아머를 입고 있었다. 부분 방어구인 묵린갑을 변형시켜 전신갑주로 보이게 만든 것이었다.
유민섭이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그러라고 부른 건데 뭐 어때요?”
“그래요?”
“아마 지금쯤 엄청 이슈 됐을 거 같은데?”
“크큭! 확실히 수완이 좋아요.”
“대한민국 1위 길드 타이틀을 고스톱 쳐서 딴 건 아니거든요.”
“그러고 보니 나, 각성자 등록도 그렇게 빨리 될 줄은 몰랐네요.”
각성 검사도 거치지 않고 각성자 등록을 하는 데 걸린 시간이 겨우 30여 분이었다.
행정이나 제도적인 방면으로는 약한 편인 준혁으로서는 가장 놀랄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각성자 등록이 무조건 각성 검사를 통과해야 하는 걸로 아는데… 사실 조항이 하나 더 있어요.”
“그게 뭔데요?”
“통합안전보장부 장관이 각성자로 인정한 자.”
통합안전보장부는 각성자와 던전, 던전 부산물 등을 관리하는 대한민국 중앙행정기관이었다.
줄여서 ‘통안부’라고 부르는데, 각성자 관리청과 던전 관리청이 이 통안부 산하기관이었다.
“그래도 어지간해서는 안 해 줄 텐데?”
준혁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무리 법적으로 가능하다 해도 어지간하면 책임질 일을 하지 않으려 하는 게 공무원의 습성이다. 특히 행정 부처의 장관 정도 되는 자리면 그 정도는 더욱 심할 터였다.
유민섭이 어깨를 한 번 으쓱거리며 짐짓 거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저의 힘이죠. 그렇다고 불법적인 건 안 했습니다. 특별히 방법을 가르쳐 드리자면…….”
유민섭이 슬쩍 말꼬리를 흐리며 뜸을 들였다. 그리고 드물게도 준혁이 관심을 보였다.
그 모습에 이유도 없이 의기양양해진 유민섭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미남계. 제가 얼굴이 좀 되잖……. 쩝. 그냥 내가 책임진다고 했어요. 거참, 진짜 농담 안 통하는 사람이네.”
“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다 봤습니다. 얼굴로 말했잖아요.”
조금은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두 사람이 탄 세단이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정면에는 바리케이드로 길을 막고 있는 군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 내립시다.”
두 사람이 차에서 내리고, 버스에서는 기자들이 우르르 쏟아지듯 나왔다.
제일 뒤에 있는 밴에서는 강이찬이 액션 캠과 노트북을 들고 뛰어내렸다.
“어떻습니까? 제 말 맞죠? 역시 거기 맞아요. 문산 게이트 다운 피해 지역, 문산 게이트 돔이 여기거든요. 네? 아직 확실한 거 아니라고요? 그렇죠. 지켜보도록 하죠.”
강이찬이 쉬지 않고 떠들어 대며 기자들의 대열에 합류했다.
가장 선두에는 준혁과 유민섭, 그리고 청랑이 나란히 걷고 있었다.
바리케이드를 지나 도착한 곳은 검정에 가까운 회색 돔의 외벽 바로 앞이었다.
“이게 그 게이트 돔이군요.”
“처음 봅니까?”
“실물은 처음 봅니다. 그러고 보니 게이트 돔 관련해서 음모론을 하나 봤었는데…….”
준혁의 말에 유민섭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던전 관련한 음모론은 엄청 많은데, 어떤 걸 본 겁니까?”
“던전 발생을 누군가 인위적으로 조절한다는 얘기였습니다.”
“아, 그거요? 잘 알죠.”
한 달에 발생하는 게이트 숫자, 그리고 각 국가에 존재하는 게이트 돔의 개수가 각 국가의 인구수와 비율적으로 맞는다는 주장이었다.
실제로 인구가 적은 국가는 그만큼 게이트가 적게 발생하고, 게이트 돔의 수도 적었다.
유민섭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이내 피식 웃으며 그 말을 부정했다.
“그럴싸하긴 해요. 그런데 그저 음모론일 뿐이죠. 게이트가 처음 발생한 지 벌써 10년이에요.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이미 무슨 짓을 하고도 남았을 걸요?”
“뭐, 그건 그렇죠.”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마친 유민섭이 기자들을 향해 말했다.
“여기까지 따라오면서 궁금하셨죠?”
다들 고개를 끄덕이는데, 성급한 기자 1명이 큰 소리로 외쳤다.
“지금 인터넷 여론으로는 혼원 길드가 게이트 돔 진압 전문 길드일 거라고 말하는데, 사실입니까?”
“하하! 어떡하죠?”
“네?”
“좀 더 궁금해하셔야겠는데.”
유민섭이 그렇게 말하는 찰나, 갑자기 기자들의 표정이 돌변했다.
“저, 저 사람!”
“뭐야? 왜 저래!”
여기저기서 기겁한 외침들도 들렸다.
유민섭과 나란히 있던 준혁이 갑자기 뒤로 돌아 게이트 돔 안으로 들어가 버린 탓이었다.
마치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져 버린 준혁의 모습에 기자들이 패닉 상태에 빠졌을 때, 가장 뒤쪽에서 강이찬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보, 보셨죠? 지금 김지후 헌터가 게이트 돔으로 들어갔어요!”
“강이찬 씨!”
갑자기 유민섭이 강이찬을 불렀다.
“네?”
강이찬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기자들 틈을 헤치고 유민섭 앞으로 나섰다.
“저도 이제 들어갈 건데… 같이 들어가실래요?”
“저, 저요?”
“네, 이찬 씨요.”
강이찬의 얼굴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