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받고 각성 더!-22화 (2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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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혼원 길드#1-

“혼원 길드… 혼원이 도대체 뭔 뜻입니까?”

“인마, 기자라는 놈이 그걸 물어보면 어떡하냐? 모르면 국어사전이라도 찾아봐야지.”

“그래서 무슨 뜻인데요?”

“천지, 혹은 우주라는 뜻이래.”

“이름 한번 거창하네. 그나저나 유민섭은 또 무슨 길드를 만든다는 걸까요?”

“그거야 오늘 들어 보면 알겠지. 그래도 유민섭이 한다고 하니 평범한 건 아닐 거 같단 말이야.”

“유민섭이야 워낙 대단한 사람이니까 그렇겠죠.”

MH타워 최상층 연회장을 기자들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름은 연회장이지만 길드 행사나 특별 강연, 기자회견에도 쓰이는 곳이었다.

연회장 맨 앞의 단상 위에는 ‘혼원 길드 창설 기자회견’이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기자들은 저마다 이야기를 나누며 여러 가지 추측을 남발하는 중이었다.

기자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여러 방송국의 카메라도 와 있었고, 인터넷 방송 스트리머도 와서 노트북과 촬영 장비를 들고 실시간으로 개인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단상 옆의 문이 열리며 강태웅이 모습을 드러냈다.

강태웅 뒤로 유민섭과 1명의 남자, 마지막으로 강아지 1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암청색 털에 붉은 눈동자를 가진 묘한 생김새의 강아지에 모두의 시선이 잠시 쏠렸다.

스트리머의 방송 채팅창에도 강아지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저 댕댕이 뭐냐?>

<색깔이 되게 독특한데?>

<졸귀임.>

<무슨 종임?>

<강아지가 귀여우면 됐지, 종은 왜 따짐?>

<근데 저거 댕댕이 아닌 거 같은데? 생긴 게 늑대 같음.>

<좆문가 납셨네.>

<진짜다. 저거 개 아니고 늑대다.>

<늑대를 기자회견장에 왜 데리고 오냐?>

<그럼 개를 데리고 오는 건 정상이고?>

채팅창의 소란스러움은 강태웅이 마이크를 잡으면서 잠시 사그라들었다.

“안녕하십니까? 무훈 길드의 2대 길드장, 강태웅입니다. 오늘 제가 존경하는 유민섭 전 길드장님이 새로운 길드를 창설하는 날이라, 제가 조금이나마 도와 드리고자 이렇게 나왔습니다.”

연회장 안에는 카메라 셔터 소리만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묘하게 긴장감이 맴도는 것 같은 분위기에 강태웅이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뭐 그래 봐야 장소를 빌려 주는 정도……. 어? 생각해 보니 이 건물은 길드 소유가 아니라 유민섭 길드장님 개인 소유네요? 그럼 빌려 주는 게 아닌가?”

가벼운 농담에 장내 분위기가 살짝 편안하게 바뀌었다.

강태웅이 약간은 의도적으로 타이밍을 끊으며 말했다.

“혼원 길드의 유민섭 길드장님 모시겠습니다.”

단상 옆 의자에 앉아 있던 유민섭이 단상의 연설대 앞에 섰다.

“안녕하십니까. 건물주 유민섭입니다.”

농담 섞인 인사에 회견장 안에 잠깐 가벼운 웃음이 퍼졌다.

<부럽다, 갓물주.>

<ㅅㅂ, 건물 있다고 자랑하냐?>

<뭐라는 거야? 유민섭은 그래도 된다.>

<아직도 유민섭이 종신 까방권 있는 거 모르는 놈이 있네?>

<외국에서 살다 왔냐?>

<애초에 저 정도 위트도 이해 못하는 놈인데, 뭘 상대를 해 주고 그래?>

<프로 불편러, 아니면 관종이지.>

<뭐야, 분위기 왜 이래?>

<진짜 모르는 거 같으니 요약해서 알려 준다. 유민섭은 3년 전 대구 게이트 다운 참사 때 민간인 2천 명 구해 낸 영웅이다. 끝.>

<야, 기자회견 시작한다. 저거나 집중해.>

“보잘것없는 길드의 기자회견에 이렇게 많이들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혼원 길드 길드장, 유민섭입니다.”

그때 눈치 없는 기자 하나가 불쑥 소리를 질렀다.

“갑자기 무훈 길드를 그만두고 새로운 길드를 만든 이유가 있습니까?”

장내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날카로운 시선이 문제의 기자에게 날아가 꽂혔다.

“하하! 사실은 저도 빨리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립니다. 그런데 아시잖아요? 원래 메인이벤트는 가장 마지막이라는 거.”

하지만 유민섭은 여유로운 목소리로 분위기를 진정시켰다.

기자도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얼른 자리에 앉았다.

“우선은 소개할 분이 한 분 있습니다. 길드에 관한 이야기는 그 후에 하겠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유민섭과 함께 등장했던 남자에게로 향했다.

유민섭이 연설대의 마이크 중 하나를 뽑아 옆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혼원 길드에서 1순위로 영입한 김지후 헌터입니다.”

뒤이어 남자가 연설대 앞에 섰다. 그리고 실시간 인터넷 방송의 채팅창에 폭풍이 몰아쳤다.

<아까부터 느꼈는데 저 얼굴 실화냐?>

<나도 아까부터 화면 옆에 저 얼굴만 보고 있었다.>

<김지후? 오늘부터 팬 하면 되나?>

<나 남잔데 지금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중이다.>

<얼굴 곱상한 거에 비해서 몸이 좀 큰 거 아님?>

<얼굴이 작아서 그런 거. 비율이 천상계라 낯설어 보이는 거야.>

<어깡인데 근육이 적당히 슬림해 보이잖아. 비율이야, 비율.>

<그게 입덕 포인트.>

<무슨 얼굴 나온 지 30초 만에 덕질을 논해?>

<덕질에 시간을 왜 따져? 넌 첫눈에 반할 때 계획 잡고 반하냐?>

<ㅇㅈ. 덕질에 법칙 따윈 없는 거.>

김지후는, 매구탈로 얼굴을 바꾼 준혁이었다.

유민섭이 만들어 온 신분은 단순한 위조 신분이 아니었다.

실존하는 누군가의 신분이었다.

브라질 이민 3세대로, 던전 게이트 다운으로 실종 처리된 사람의 것이었다. 가족들 역시 같은 일로 실종이라 문제없는 사람이었다.

본명은 ‘안토니오 지후 킴’이었고, 당연하지만 한국 이름으로 김지후를 썼다.

준혁이 뭔가를 할 필요도 없이 행정적인 업무는 이미 처리가 끝나 있었고, 지금 자연스럽게 기자회견장에 나선 것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김지후입니다.”

목소리마저 미성이었다.

당연히 매구탈을 이용한 음성 변조였고, 유민섭의 요구에 맞춰 만든 이미지였다.

그리고 실시간 방송의 채팅창은, 채팅 내용을 읽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밀려 올라가고 있었다.

약간의 렉까지 겹쳐 그대로 터져 나갈 분위기였다.

마이크를 든 유민섭이 소개를 이어 갔다.

“김지후 헌터가 특별한 이유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등장한 적 없는 클래스이기 때문입니다.”

장내가 조용하게 가라앉았다.

각성자들의 클래스는 전사, 패스파인더, 마법사, 사제의 4가지였다.

그런데 등장한 적 없는 클래스가 나타났다고 한다. 더군다나 그 말을 꺼낸 사람이 대한민국 내 인지도 톱인 유민섭이었다.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난리가 났던 채팅창 역시 갑작스러운 정전 사태를 맞이했다.

그리고 준혁의 입이 열렸다.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소환사 김지후입니다.”

카메라 기자들의 손가락이 본능적으로 셔터를 눌렀다.

플래시 빛 때문에 눈이 부실 정도로 열광적인 촬영이 조금씩 잦아들었을 때 첫 번째 질문이 나왔다.

“소환사라면… 어떤 것을 소환하시는 겁니까?”

“대답하기에 앞서 소란스러움을 막기 위해 한 가지 규칙을 정하겠습니다.”

유민섭 못지않게 준혁 역시 수없이 매스컴을 상대했었다. 기자회견 경험치는 만 렙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유민섭이 재치 있는 입담으로 가벼운 분위기로 기자회견을 이끄는 스타일이라면, 준혁은 절제된 분위기로 모든 것을 통제하는 스타일이었다.

“지금부터 모든 질문은 손을 들고 지목을 받은 후에 해 주십시오. 그리고 질문은 무조건 한 사람당 한 번만 받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란스러워서 기자회견을 진행할 수가 없습니다.”

단호한 목소리에, 기자들의 얼굴에 불만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하지만 반항하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 질문 하나라도 건지고 좋은 인상을 심어 줘야 나중에 인터뷰 딸 기회라도 오기 때문이었다.

최초로 등장한 소환사 클래스는 그만큼 매력적인 기삿감이었다.

“일단 질문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총 4종류의 소환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제가 부족해서, 지금은 소환 가능한 소환수는 1마리밖에 없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어색해진 분위기 속에서 말을 꺼냈던 기자가 반사적으로 손을 올리려는 찰나 준혁이 입을 열었다.

“사실 아까부터 이상하게 생각하셨을 겁니다. 제 귀여운 소환수를 소개하죠. 청랑, 이리 와.”

왕!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청랑이 7미터 정도의 공간을 훌쩍 뛰어넘어 연설대 위에 정확하게 착지했다.

차차차착!

기자들의 손이 경쟁적으로 올라갔다. 준혁이 그중 1명을 지목했고, 기자가 마이크를 받아 질문했다.

“청랑이라고 하셨는데, 늑대인가요?”

“네, 늑대입니다.”

“털 색깔이 특이한데…….”

“질문은 한 번만 받습니다. 다른 분께 기회를 주시죠?”

“아…….”

뒤늦게 준혁의 말을 떠올린 기자가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소중한 기회를 허접한 질문으로 허무하게 날려 버린 탓이었다.

다른 기자들의 손이 올라갔고, 준혁이 1명씩 지목하며 기자회견이 이어졌다.

“크기가 강아지 수준밖에 안 되는 것 같은데, 능력치가 어떻게 됩니까?”

“A급 전사 클래스 수준입니다. 다음 기자분.”

“크기를 보면 A급 전사라는 말을 믿기가 어려운데, 혹시 이 자리에서 확인이 가능한가요?”

“물론입니다. 따로 준비를 해 놓았으니 나중에 천천히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네, 거기 남색 셔츠 입은 기자님.”

“늑대 외에 어떤 소환수가 있습니까?”

“호랑이, 뱀, 수리부엉이가 있습니다. 다음은 거기 안경 쓴 기자님.”

“소환수마다 특징이 따로 있습니까?”

“청랑은 근접 딜러의 포지션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육탄전이 특기입니다. 다른 소환수는 아직 소환하지 못해서 확인이 어렵습니다.”

“소환수도 스킬을 갖고 있습니까?”

“네, 있습니다. 이 역시 나중에 하나 보여 드리겠습니다.”

조용한 기자회견장에서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이 조금의 빈틈도 착착 진행되었다. 지휘관의 말을 듣는 훈련된 군인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기자가 질문을 꺼냈다.

“소환수라면 단순한 동물이 아닐 텐데, 지금까지 말씀하셨던 것 외에 특징이 또 있습니까?”

“술을 좋아합니다.”

채팅창은 또 한 번 난리가 났다.

<와, 기레기들을 이렇게 다루는구나.>

<지후 님, 카리스마까지 있다. 진짜 입덕 포인트가 너무 많은 거 아니냐?>

<난 청랑한테 빠졌다. 오늘부터 청랑 덕후 할 거다.>

<술이라니! 개가 술이라니!>

<댕댕이 아니고 늑대.>

<청랑 아니고, 술랑.>

<저렇게 귀여운데 A급 딜러? 못 믿겠다.>

<오늘부터 김지후 별명은 랑이 아빠.>

<그거 좋다. 랑이 아빠.>

<뭐 하냐? 당장 팬클럽 카페 만들어라. 누가 만들래?>

그리고 청랑의 능력을 보여 주는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무훈 길드 소속 A급 헌터가 들고 나온 것은 하나의 커다란 방패였다.

지금까지 잠자코 있던 유민섭이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저 방패는 던전에서 드롭으로 얻은 방패로, 등급은 ‘희귀’급입니다. 일단 던전 관리청에서 발급한 보증서 먼저 확인하시죠.”

보증서를 보여 주는 작업을 마친 후, 또다시 문이 열리며 거대한 기계 장치들이 들어왔다.

“단순히 보증서만으로는 애매하니, 실제 아이템 스펙 측량 장비들로 시연을 하겠습니다.”

몇 개의 기계 장치에 들어간 방패가 갖은 수난을 당하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창으로 찌르고, 프레스 같은 것으로 누르고, 전기 충격을 이용한 에너지 계측까지 했다.

이 계측기 역시도 BR 코퍼레이션의 제품이었다.

“이 방패가 희귀 등급의 아주 좋은 물건이라는 건 이제 직접 확인하셨을 겁니다. 그럼 다음은 김지후 헌터에게 맡겨 보겠습니다.”

유민섭의 말이 끝나고, 준혁이 마이크를 잡았다.

“청랑, 물어!”

왕-!

준혁의 말과 동시에 청랑이 귀여운 외침을 터트리며 방패를 향해 달려들었다.

와그작!

앙증맞은 주둥이가 한 번 다물어지자 방패에 선명한 이빨 자국의 구멍이 뚫렸다.

찌이익!

고개를 젖히자 종잇장처럼 방패의 철판이 찢어졌다.

아작, 아작!

희귀 등급 판정을 받은 방패가 개 껌처럼 청랑의 주둥이 안에서 구겨지고 있었다.

잠깐의 시간차를 두고 기자들이 앉은 자세 그대로 주춤거리며 의자를 뒤로 밀었다.

그들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확연한 공포.

저 귀여운 새끼 늑대의 치악력이 어느 수준인지 뒤늦게 실감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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