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8-
-7장. 무언가 있다#2-
“네?”
최유나는 아주 오랜만에 낯선 감정을 마주해야 했다.
당연했다.
세계 최정상급 근접 딜러라 평가받는 S급 헌터가 이런 경멸 어린 시선을 받을 일이 있었겠는가.
저벅!
준혁이 한 걸음 다가섰고, 최유나가 반사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가르침이라……. 큭! 가르침을 받을 자격조차 없는 주제에.”
그때였다.
-아이, 거참, 너무하시네?
유민섭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생각만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지휘권 스킬의 부가 기능을 이용해 유민섭이 말을 걸어온 것이었다.
-뭐가 너무합니까?
-이왕 하는 거 예쁘게 좀 봐 줘요.
-예쁜 소리를 해야 예쁘게 봐 주지.
-얼굴이 예쁘잖습니까?
-얼굴로 싸웁니까?
-저 정도 미모면 몬스터한테도 미인계가 통하지 않을까요?
-하아, 내가 말을 말아야지.
유민섭의 훼방에 살짝 인상을 찌푸린 준혁이 최유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열이 끓어올랐던 머릿속이 유민섭의 방해로 그새 식어 버렸다.
“하나 물어보자.”
“무얼…….”
“네가 강한 거냐, 네 스탯이 강한 거냐?”
“네? 그게 무슨…….”
이해할 수 없는 물음에 최유나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준혁이 대답을 바라고 던진 질문도 아니었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깨닫지 못하면, 넌 절대 강해질 수 없다.”
준혁은 거기까지만 말한 후, 최유나 앞에 무언가를 던지듯 내려놓았다.
“이번 공략의 결과물은 무훈 길드 몫이었지? 마나석은 다 챙겼을 거고. 여기 엘릭서, 드래곤 하트, 그리고 저기 싸 놓은 드래곤 부산물들까지. 챙겨서 가라.”
그렇게 말한 준혁은 성큼성큼 먼저 산길을 따라 걸었다.
그리고 여지없이 유민섭의 목소리가 들렸다.
-와, 진짜 이럴 겁니까?
-알려 줄 거 다 알려 준 겁니다.
-뭐가요? 네가 강하냐, 스탯이 강하냐? 이게 알려 준 거예요?
-사실을 말한 겁니다. 내가 한 말이 뭔지 스스로 못 깨달으면 방법이 없어요.
-진짭니까?
-내가 왜 거짓말을 합니까?
-거짓말 잘하잖아요. 한국시리즈 끝내기 홈런만 봐도…….
-와, 진짜 뒤끝 쩐다.
-그럼 나한테라도 알려 줘 봐요, 그게 무슨 뜻인지.
-기본이 없다는 말입니다.
-기본?
-야구를 예로 들어 보죠. 완전히 똑같은 피지컬을 가진 두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그중 하나는 일반인, 또 하나는 야구선수.
-그런데요?
-그 두 사람이 투수가 던진 공을 타격한다고 할 때, 누가 더 잘 칠 거 같습니까?
-그야 당연히 야구선수……. 아, 그런 겁니까?
-네, 그런 겁니다.
-그럼 야구선수인데 각성까지 했다면?
-와, 진짜!
준혁은 황급히 자신에게 적용되어 있는 ‘지휘권’ 스킬을 해제해 버렸다. 서울 팬서스 광팬의 집착은 정말 무서웠다.
‘이제 그만해야 하나?’
‘지휘권’ 스킬이 해제된 것을 확인한 유민섭은 팔짱을 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 이쯤 했으면 이제 그만할 때도 됐지.’
유민섭은 앞으로는 한국시리즈 이야기를 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후, 준혁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일반인과 야구선수의 차이라…….’
대강 이해는 갔다. 아마 수많은 반복으로 만든 타격 메커니즘과 타격 폼을 말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렇게 생각을 해도 완벽하게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일반인이 아닌 각성자의 수준으로 들어가면, 감각만으로도 프로 선수의 연습을 무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없는 말을 한 건 아닐 것이고… 나중에 한번 물어봐야겠다. 어쩌면 S급 각성자의 성장에 중요한 단서가 될지도 모르겠어.’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유민섭은 시선을 옮겨 최유나를 쳐다보았다.
‘쯧. 딱하긴 한데… 내가 나서면 안 된다고 했으니 일단은 지켜보는 수밖에.’
최유나의 얼굴에는 혼란스러운 표정이 가득했다.
머릿속에도 이해할 수 없는 의문만이 가득 들어차 끊임없이 부유하고 있었다.
‘내가 강한 것인가, 내 스탯이 강한 것인가? 이게 도대체…….’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에 멍한 표정을 짓던 최유나가 문득 자신의 상태창을 확인해 보았다.
[상태창]
최유나
클래스:전사
근력:[323] 순발력:[151]
지구력:[137] 감각:[156]
마나:[103]
스킬:
[근력 증폭], [와일드 대시], [마이티 세버], [브로큰 스매쉬], [스피어 스트라이크], [디비젼 블래이드], [소드 래피츠], [마운틴 스탠스], [미개방], [미개방], [미개방], [미개방], [미개방], [미개방], [미개방], [미개방], [미개방]
스탯의 총합이 무려 830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스탯이었다. 아직 개방되지 않은 것까지 포함하면 스킬의 개수가 무려 17개였다.
최초 각성 등급이 S급인 헌터의 스킬 개수가 대부분 15개인 것을 생각하면 무시무시한 잠재력이라고 볼 수 있었다.
‘내 스탯이 강한 건, 결국 내가 강하다는 의미가 아닌가?’
도통 준혁이 말한 그 차이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아!”
결국 최유나의 입에서 고뇌에 찬 탄식이 새어 나왔다.
그런 최유나에게 유민섭이 다가와 말했다.
“최유나 헌터, 고민은 나중에 하고 일단 던전부터 나가자. 리젠 생각하면 빨리 움직여야지.”
“알겠습니다.”
다시 무뚝뚝한 표정으로 돌아온 최유나가 싸 놓은 드래곤 부산물 중 하나를 들고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
‘내도 이제 갈 때가 됐는갑다. 씨부럴, 핏덩이 혼자 두고 우째 죽으란 말이고?’
‘아저씨, 정신 차려요!’
‘내 멀쩡하다. 너무 멀쩡해서 인자 죽을 것도 안다 아이가?’
‘아저씨!’
‘마, 귀청 나가긋다! 살살 좀 말해라. 그라고 인자 내가 하는 말 단디 들어라.’
‘예.’
‘니는 절대 죽지 마라. 알았나?’
‘예.’
‘꼭 살아서 우리 세상으로 돌아가라. 알았나?’
배면계에서의 기억 중 하나, 황창훈과 나눈 대화가 준혁의 머릿속을 떠다니고 있었다.
배면계로 끌려갔을 당시, 준혁과 같은 시기에 끌려온 사람은 모두 100명이었다.
서로 집단을 이루는 사람도 있었고, 혼자 다니는 사람들도 있었다. 여러 집단과 여러 사람이 서로 반목하기도 했고, 협력하기도 했다.
황창훈은 준혁이 속한 집단의 리더였다.
그리고 준혁의 스승 중 1명이었으며, 준혁과 함께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생존자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무협 소설에나 나오는 대단한 무공 같은 것을 배운 것도 아니었다.
검도나 태권도, 택견 같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무술들이었다.
황창훈 본인도 본격적으로 수련한 사람은 아니었다.
직업도 치킨집 사장이었다. 그저 관심이 많다 보니 건강도 챙길 겸 해서 수련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꾸준히 수련했기에, 준혁은 배면계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귀환할 수가 있었다.
최유나에게 기본기의 중요성을 말하려다 보니 괜히 그때 그 일이 생각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집단 내에서 늘 하던 맹세가 하나 있었다.
‘살아서 귀환하거든 그냥 혼자 잘 살자.’
먼저 죽은 이의 가족을 찾아가 소식을 전하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살아남은 이의 죄책감과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시작한 것이었다.
배면계의 이야기를 해 봐야 믿지도 못할 것이고, 살아남은 가족들의 가슴에 오히려 대못이 박히게 할 수도 있다는 취지이기도 했다.
그래서 집단 내에서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하게 내뱉은 말도 있었다.
‘시스템, 이 개새끼!’
멀쩡하게 잘 사는 사람들을 갑자기 사지(死地)로 끌고 와서 괴물을 잡으라고 시켰으니, 그 원한이 얼마나 사무쳤겠는가.
‘개새끼, 진짜 개새끼!’
벌써 8년 전의 일인데도 여전히 그 사무치는 원한이 잊히지 않았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 죽을 고비를 넘기고 고생을 했으면서도, 다시 괴물들과 싸울 수 있다는 데서 설렘을 느끼는 자신의 모습에서 준혁은 아이러니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미쳐 가는 건 아니겠…….’
그러다 갑자기 무언가 하나가 머릿속에서 번뜩였다.
“어? 그러고 보니?”
처음 이 던전에 들어와서 카이르무스를 사냥했을 때, 그때 분명 시스템 메시지가 떴었다.
[시스템… 인하여… 오류…….]
[통제…….]
그런 메시지와 함께 귓전에 지직거리는 시스템 사운드도 들렸었다.
그런데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인 지금은 그 메시지가 뜨지 않았다.
“상태창.”
소리까지 내서 불러 보았지만 상태창도 나타나지 않았다.
‘영력은 사용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오늘 카이르무스를 사냥하지 못했을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거야?’
준혁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문득 두 번째 공략 당시 카이르무스의 행동이 조금 달랐던 부분이 떠올랐다.
첫 번째 공략 때와 달리 ‘폴리모프’를 푸는 동시에 어마어마한 파상공세를 퍼부었었다.
오늘도 그러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뭐가 달라진 거지?’
분명 무언가 또 다른 변화가 생긴 건 맞는데, 그게 무엇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거기 서서 뭐 합니까?”
뒤를 돌아보니 거대한 짐을 어깨에 진 유민섭이 걸어오고 있었다.
“잠깐 얘기 좀 합시다.”
준혁의 말에, 유민섭이 지고 있던 짐을 내려놓으며 최유나에게 말했다.
“최유나 헌터는 먼저 나가 있어. 잠깐 얘기 좀 하고 갈 테니.”
“네.”
대답과 함께 최유나가 던전 밖으로 나가고, 던전 안에는 준혁과 유민섭 둘만 남게 되었다.
준혁이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지난번에 던전에 들어왔을 때, 시스템음을 들었다고 했었죠?”
“그랬죠. 인가되지 않은 접속 시도를 발견……. 어? 잠깐만!”
“왜요?”
“그러고 보니 오늘은 그 소리 안 들렸어요.”
“음, 역시.”
“역시? 뭐 짚이는 게 있습니까?”
예상했다는 듯한 준혁의 태도에 유민섭이 급히 물었다. 하지만 준혁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나도 아는 건 없습니다. 그냥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것뿐입니다.”
“확실히 이상하죠.”
유민섭도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각자의 생각에 잠겨 한동안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준혁이었다.
“정리를 해 보죠. 제가 겪었던 배면계의 시스템과 지금 던전에 관계된 시스템은 서로 다른 시스템입니다.”
“그렇겠죠. 접근 불가니 침입이니 떠들고, 방어 시퀀스 어쩌고 하는 걸 보면 그건 확실합니다.”
“배면계의… 편하게 배면계 시스템, 던전 시스템이라고 부르죠. 배면계 시스템과 던전 시스템은 체계가 다른 2개의 시스템입니다.”
“윈도우와 유닉스처럼 운영 체계가 다른 걸로 보면 될 거 같습니다.”
“아예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는 분위기였고……. 그렇다면 카이르무스의 공격 방식이 바뀐 것도 이에 대한 영향이라고 봐야겠죠? 혹시 두 시스템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거나?”
“가능성이 있을 거 같습니다. 카이르무스의 경우도 던전 시스템이 개입해서 엽사 씨 제거를 최우선으로 생각한 거죠. 그리고 지금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양쪽 시스템에 절반씩 걸쳐 있고, 버프는 엽사 씨한테만 줄 수 있죠.”
하지만 현재로서는 그 이상 알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한참 동안 서로 의견을 나눈 두 사람은 결국 별다를 것 없는 한 가지 결론을 내놓았다.
“일단 데이터가 너무 적어요.”
유민섭의 말에 준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그게 가장 큰 문제죠. 일단 여기 던전 끝까지 정리한 다음에 다른 던전을 돌면서 데이터를 수집합시다.”
“그 수밖에 없죠. 그럼 일단 나갈까요?”
“그럽시다.”
나란히 던전 게이트를 통과하는 두 사람의 얼굴이 사뭇 진지하게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