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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은퇴 선언#3-
‘뭐, 뭐야?’
빗장뼈가 부러지는 고통마저 잠시 잊을 정도로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도플갱어?’
장민호의 머릿속에 그 단어가 떠올랐다. 그렇지 않다면 이 정도로 똑같은 얼굴과 목소리가 가능하겠는가?
하지만 실제로 본 적이 없고, 자료를 통해 접한 것이기에 그조차도 확신할 수가 없었다.
잠시 잊었던 통증이 뇌리를 거세게 울렸다.
“끄으으으읍!”
길게 이어지는 고통에, 장민호의 얼굴을 한 침입자가 말했다.
“아픈 모양이네? 얼른 치료해. 스킬은 뒀다 어디에 쓰려고?”
커진 눈 속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구르며 침입자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다 슬그머니 손을 움직여 부러진 빗장뼈에 ‘힐’을 펼쳤다.
장민호는 능력만큼은 확실했다. 금세 뼈가 붙고, 고통이 줄어들었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아직 빗장뼈 위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던 엄지에 또 한 번 압력이 들어갔다.
“끄으으으으읍!”
빡!
빗장뼈가 또 부러졌다.
“뭐 하니? 치료해야지.”
그제야 장민호는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침입자는 지금 자신을 고문하는 것이었다.
“읍, 읍읍읍!”
장민호가 뭐라고 소리를 질렀고, 그제야 침입자가 손을 풀어 주었다.
“끄윽! 워, 원하는 게 뭡니까?”
장민호와 똑같은 얼굴을 한 침입자의 눈이 호선을 그리며 휘었다. 그렇게 웃는 눈으로 말한다.
“일단 치료부터 해.”
1시간이 지났다.
헤, 벌어진 장민호의 입술 사이로 침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초점을 잃은 장민호의 두 눈은 그런 자신의 상태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야.”
그런데 침입자의 목소리, 그러니까 매구탈을 이용해 얼굴은 물론 목소리마저 장민호와 똑같이 바꾼 준혁의 목소리에 장민호가 반응했다.
풀어져 있던 눈동자에 순식간에 초점이 잡혔다.
“츄르릅!”
옷소매로 황급히 흐르는 침을 닦았다. 무릎을 꿇고, 두 손은 그 무릎 위에 가지런히 놓고서 허리를 꼿꼿하게 편 채 준혁을 보았다.
“말씀하십시오!”
고문이라고는 하지만, 그 방법 자체는 대단할 것이 없었다.
뼈를 부러트리고, 스스로 치료하게 하고, 다시 뼈를 부러트리는 행동의 반복일 뿐이었다.
하지만 A급 사제 클래스의 장민호에게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공포였다.
사제로서 뛰어난 치유 능력을 갖고 있었지만, 아무리 치료를 해도 같은 뼈가 계속 부러지는 것은 생각보다 멘탈을 뒤흔드는 일이었다.
그것도 무려 1시간 동안 이어진 반복. 정신이 피폐해지기 딱 좋았다.
“내가 널 어떻게 처리할까?”
준혁의 물음에 장민호가 빠릿빠릿하게 대답했다.
“저의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알려 주시면, 즉시 시정하겠습니다!”
“그래?”
“옙!”
항거 불가.
장민호가 본 침입자, 준혁은 그런 대상이었다.
아무리 서포터로 분류되는 사제 클래스라 해도 신체 능력은 일반인의 범주를 초월한다.
A급 서포터라면 피지컬만으로도 C급은 능가한다는 것이 헌터계의 정설이었다.
거기에 사제 클래스니 여러 가지 다양한 버프를 가지고 있었다. 그 정도면 B급 근접 딜러 계열이 와도 스킬을 총동원하면 어떻게든 버티는 것은 가능했다.
그런데 지금 상대는 아무런 스킬도 없이 그저 손짓만으로 장민호를 찍어 눌렀다.
‘S급이다.’
S급이 아니면 이런 위용을 보일 수 없었다. 하지만 국내에 이런 S급 헌터가 있었던가?
적어도 장민호의 기억 속에는 없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였다.
‘빌런(Villain)인가?’
각성자 등록을 하지 않고 범죄를 저지르고 다니는 뒷세계의 각성자들, 그중에서도 특히 A급 이상인 각성자들을 통칭 빌런이라고 불렀다.
애초에 빌런이라는 단어 자체가 범죄자 혹은 악당이라는 뜻이지만, 히어로 영화의 영향으로 강력한 미등록 각성자들을 그렇게 부르는 편이었다.
‘이런 놈이 있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 봤는데?’
정체는 몰라도 알음알음 소문으로 퍼진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조차 눈앞에 있는 침입자와는 달랐다.
“정말 시정할 수 있겠냐?”
“물론입니다!”
“너.”
“네?”
“네 존재 차제가 마음에 안 들어.”
“그, 그게 무슨…….”
“그러니까 나도 그게 궁금하네? 너는 네 존재 자체를 어떻게 시정할 거야?”
“그, 그보다는… 혹시 원하는 게 있다면 뭐든 하겠습니다. 돈도 좋고, 뭐 시키실 일이라도 말씀을 해 주십시오!”
장민호는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존재 자체가 마음에 안 든다는데, 그렇다고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없는데?”
“네?”
“딱히 너한테 원하는 거 없다고.”
사실이었다. 이제는 돈도 필요하지 않았다. 당장 무훈 길드에 맡긴 마나석 판 돈만 정산을 받아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래서 고민이었다.
일단 마음에 안 들어서 무작정 찾아와 괴롭히기는 했는데, 어떻게 처리할지 정해 놓은 게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준혁이 갑자기 성큼성큼 장민호에게 다가갔다.
“어, 어어!”
장민호가 황급히 무릎걸음으로 물러났지만, 이내 준혁의 손에 잡히고 말았다.
처음 등장했을 때처럼 장민호의 하관을 움켜쥔 준혁은 그대로 놈을 들어 올렸다.
“읍! 아으으읍!”
입이 막힌 상태로 뭐라고 외쳤지만, 준혁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장민호는 두 발이 허공에 뜰 정도로 들어 올려졌지만, 반항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나마 목을 잡혀 들린 게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
그때였다.
준혁의 온몸에서 묵색의 안개가 풀썩 피어오르더니 그대로 장민호를 휘어 감았다.
혼원급에 오른 준혁은 영력만으로도 충분히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준. 발출한 영력을 이용해 장민호를 허공에 띄웠다.
“반성해라.”
“예!”
“지켜볼 거다!”
“예!”
“행동으로 보이는 게 좋을 거야.”
“예!”
공포에 질린 장민호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예!’를 연발했다.
“안 그러면…….”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장민호를 휘어 감은 영력에서 무시무시한 압력이 가해졌다.
“끅, 끄으으으윽!”
제대로 비명도 지르지 못할 정도의 고통에, 악문 장민호의 잇새로 짓이겨진 비명이 새어 나왔다.
그와 동시에,
우드드드드드드드득!
“끄아아아악!”
장민호의 온몸에 있는 뼈들이 쉴 새 없이 부러져 나갔다. 이루 말할 수조차 없는 고통.
장민호는 허공에 둥둥 뜬 채 눈물, 콧물은 물론 오줌까지 지리며 바르르 떨었다.
“기억해라.”
“끄으으윽!”
무시무시한 고통에 제대로 된 대답도 못한 채 고개를 주억거렸다.
“도망치고 싶으면 도망쳐.”
그 와중에도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었는지 장민호는 거세게 도리질 쳤다.
“나중에 또 온다.”
그 말을 끝으로 장민호를 옭아매던 영력이 연기처럼 꺼졌다. 동시에 준혁의 모습 또한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힐…….”
힘없이 새어 나온 목소리에 반응하듯 빛이 새어 나와 처량하게 장민호의 온몸을 감쌌다.
***
“크허억, 헉헉!”
김준석은 실내 체육관 바닥에 드러누워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뭐 해? 안 일어나?”
엄격하고 근엄한 목소리에 두 손으로 바닥을 밀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사지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쿵!
김준석은 결국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허억, 헉!”
아직도 숨이 차서 죽을 지경이었다. 숨만 몰아쉬며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고 있는데, 그 시야 안에 준혁이 불쑥 들어왔다.
“와, 겨우 이거 움직이고 쉬냐?”
“못… 헉헉, 모, 못해.”
누운 채로 거세게 도리질하는 김준석의 모습에 준혁이 팍 인상을 썼다.
두 사람이 있는 실내 체육관은, 준혁이 야구 선수로서 개인 훈련을 위해 마련한 곳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두 형제의 훈련장으로 그 용도가 변경되었다.
원래 F급이었던 김준석은 엘릭서를 복용한 후 D급으로 등급이 껑충 뛰었다.
특별히 확인할 필요도 없는 것이, 상태창에 그렇게 나오기 때문이었다.
[상태창]
김준석
클래스:마법사
근력:[23] 순발력:[27]
지구력:[21] 감각:[35]
마나:[124]
스킬:
[바인딩], [그리스], [노이즈], [미개방], [미개방], [미개방]
보통 등급을 나눌 때는 스테이터스의 총합을 기준으로 하는 편인데, 200 이상 300 미만이면 D급으로 책정한다.
그리고 김준석의 스테이터스 총합은 F급일 당시 87에서 230으로 훌쩍 뛰어 확실한 D급이었다.
마법도 과거에는 3개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6개였다. 아직 미개방이라 확인이 안 되지만, 어쨌든 스킬 혹은 마법이 늘어난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미개방 스킬은 어떤 조건을 충족했을 때 개방되기 때문에, 꾸준히 던전에 들어가 경험을 쌓으면 될 일이었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룬석을 얻어 마법을 추가하는 것도 가능했다.
‘엘릭서의 아이템창에 육체를 완벽하게 재구성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그 영향인 거 같다.’
D급이 되었다고 말한 김준석은 그렇게 설명했었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한 후, 준혁은 지독할 정도로 김준석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훈련도 없이 D급 떴으면, 어쩌면 훈련하면 C급까지는 가능할지도 몰라.’
각성자들이 훈련과 던전 클리어를 반복하면서 등급이 오른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상식이었다.
F급이 S급에 오를 수 있을 정도의 성장은 불가능하지만, 보통 처음 각성 등급보다 한두 단계는 더 올릴 수 있었다.
실제로 무훈 길드의 강태웅은 A급에서 시작해 S급까지 성장한 사례였다.
김준석의 클래스는 마법사, 그중에서도 서포터로 분류되는 마법사였다.
피지컬이 좋아지면 그에 따라 유의미한 지표 상승이 생기고, 결국 전체적인 역랑이 올라간다는 것 또한 헌터계의 정설.
김준석이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말했다.
“차라리 이 형을 죽여라.”
“허! 동생을 패륜아로 만드는 클라스!”
“이걸 사람이 어떻게 하냐?”
“나 영력 봉인 풀리기 전에도 이 정도는 충분히 뛰었다.”
“그건 니 피지컬이 괴물인 거고!”
“허허, 이 형님 보게? 각성자가 비각성자한테 괴물이라고? 안 부끄러워?”
“동생아.”
“왜, 형?”
“우리 샤워 좀 하고 한숨 자고 다시 하면 안 될까? 이 형님이 정말 힘들다.”
“헐! 그 등급에 잠이 오냐?”
“안 돼. 못해.”
엄살을 부리는 김준석의 뒷덜미를 억센 손이 그러쥐었다.
“뭐 하냐, 이놈아!”
“훈련.”
“아이고, 아부지! 작은아들이 큰아들 잡아요!”
“응, 안 잡아.”
“형 죽겠다!”
“응, 안 죽어.”
“오늘만 쉬면 안 될까?”
“기각!”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준혁의 움직임에는 거침이 없었다.
결국 김준석은 준혁이 계획한 모든 훈련을 소화한 후에야 제대로 쓰러질 수 있었다.
녹초가 되어 누워 있는 김준석을 향해 준혁이 물었다.
“형.”
“왜?”
“엘릭서 1병 더 먹어 볼래?”
무훈 길드의 제안을 받아들인 덕분에, 못해도 3병의 엘릭서를 더 구할 수 있게 되었다.
1병 더 먹으면 또다시 등급 상승의 효과가 일어날 수도 있기에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김준석은 고개를 저었다.
“너나 먹어.”
“나는… 음, 부상 같은 건 치료가 될 수도 있는데, 등급이 더 올라가지는 않을 거 같아서.”
“나도 마찬가지 아니겠냐? 완벽하게 재구성한다잖아. 지금 상태가 완벽하게 재구성된 거면, 지금이 한계라는 뜻이지.”
그 말에 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쉽게 구할 수 있다고는 해도 그런 귀한 물건을 아무렇게나 쓰는 건 좀 애매했다.
‘일단 킵 해 두자. 나중에 형수나 지유한테 쓸 일이 생길지도 모르고, 내가 쓸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생각을 마친 준혁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일부터는 훈련 강도를 좀 높이자.”
준혁의 말에 김준석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이 악마 같은 놈!”
거센 거부 의사를 표시했으나 김준석은 준혁을 이길 수 없었다. 그렇게 보름에 거친 단내 나는 훈련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