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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은퇴 선언#2-
<한국시리즈 7차전 김준혁 끝내기 홈런 타구 봤냐? 솔직히 그게 말이 됨?>
└말이 안 되지. 분명 각성임.
└안 지겹냐? 김준혁이 각성 검사를 몇 번이나 받았는데 또 그 소리냐?
└네. 다음 웰빠.
└백퍼 각성. 김준혁 각성한 거 숨기고 야구 하는 쓰레기.
└각성자 김준혁 쓰레기.
└각김쓰2.
└인정. 도핑해도 그런 타구는 못 만들지.
└ㅅㅂ 좆문가들 납셨네.
└네. 다음 웰빠2.
└당장 각성 검사시켜라.
└각김쓰3.
└진짜 각성한 거면 어떻게 됨? 코시 우승 취소각?
└취소가 당연한 거 아니냐?
└웨일즈를 리그에서 퇴출시켜야지.
└부러우면 부럽다고 해.
└네. 다음 웰빠3.
└솔직히 고2 때 야구 시작했는데 프로 데뷔 1년 차부터 그 실력이 말이 됨? 각성 아니면 말이 안 되지.
└그때는 던전도 등장 안 했다, ㅂㅅ아. 그리고 우리 야김잘은 네가 말한 고2 때 이미 고교 야구 씹어 먹었다.
└네. 다음 웰빠4.
인터넷으로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읽는 준혁의 얼굴이 심각했다.
확실히 난리가 날 만하긴 했다. 인간적으로 그 타구는 좀 심하긴 했으니까.
그때였다.
“김준혁 선수! 이틀 동안 어디 계셨던 겁니까?”
“이번에는 진짜 각성이라고 말들이 많은데, 한 말씀 해 주시죠!”
정장을 차려입고 걷는 준혁의 주위로 기자들이 몰려왔다.
하지만 준혁은 차분한, 어쩌면 조금은 침울한 표정으로 말을 아꼈다.
“검사 결과 확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준혁이 향하는 곳은 각성자 관리청이었다. 당연히 각성 검사를 받으러 가는 길.
프로 스포츠 선수의 각성 이슈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갑작스레 기량이 오른 선수들은 툭하면 각성 의혹을 받았고, 그럴 때마다 해당 선수들은 협회나 위원회의 지시에 따라 각성 검사를 받아야 했다.
그리고 준혁은 오늘 자청해서 각성 검사를 받으러 왔다.
많은 기자가 몰려온 이유도 준혁이 미리 연락을 돌렸기 때문이었다.
의혹을 차단하기 위해 몇몇 기자들의 각성 검사 과정의 촬영까지 허락한 상태였다.
각성자가 그렇게 흔하지는 않기에, 각성자 관리청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관리청에는 미리 양해를 구했다. 이미 몇 차례나 각성 검사를 받으러 오고 이슈가 된 전적이 있기에, 관리청에서도 기자들의 동행을 허가한 상태였다.
절차에 따라 준혁이 각성 검사를 받는 과정이 그대로 생중계되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유명한 야구 관련 스트리머도 불렀기에 인터넷에서도 꽤 이목이 집중되고 있었다.
스트리머의 방송 채팅창도 쉴 새 없이 글이 올라오고 있었다.
<우리 야김잘 표정이 안 좋다. 내가 다 맘이 아프네.>
<각성한 거 까발려질 거니까 그렇지.>
<야김잘이 뭐냐?>
<야구는 김준혁이 잘해.>
<지랄을 한다.>
<백퍼다. 각김쓰 각성 아니면 내가 광화문 한복판에서 스트립 댄스를 춘다.>
<너 누구냐? 내가 지금 캡처했다.>
<각김쓰 드디어 크보판을 뜨네. 속이 시원하다.>
<각김쓰 이제 안 봐도 되는 거냐? 그동안 저 새끼 때문에 야구 보는 재미가 없었음.>
그렇게 채팅창에 렉이 걸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기세로 채팅이 올라오는 와중에도 준혁의 각성 검사 장면은 계속 중계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김준혁 씨는 각성자가 아닙니다.”
잔뜩 얼어붙은 각성자 관리청 직원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채팅창이 폭발했다.
<역시 우리 야김잘!>
<역시 우리 야김잘2!>
<각김쓰 외치던 새끼들 전부 고소각. 내가 다 캡처 떠 놨다.>
<아까 스트리퍼 새끼 어디 갔냐?>
<스트립 댄스 가즈아~>
<빤스런 중.>
<빤스까지 벗고 튄 거 아니고?>
<진정한 스트리퍼네.>
<풉! 나 지금 현웃 터짐. ㅋㅋㅋㅋ>
<정의 구현 가즈아~>
<이 소식을 널리 알려르아~>
<저거 짜고 치는 거 아님?>
<짜고 쳐? 어느 시대에서 온 놈이냐?>
<ㅂㅅ. 작년에 최재환 각성한 거 뽀록나서 퇴출당한 거 까먹었냐?>
<이분 최소 장기 기억상실증.>
<장기 기억… ㅋㅋㅋㅋㅋ>
<장기 기억ㅋㅋ. 어떤 장기의 기억을 잊어버리셨어요? 위장? 췌장?>
<미친놈.>
<난 여기서 나가야겠어!>
난리가 난 건 인터넷 채팅창만이 아니었다.
각성자 관청 앞에 모여 있던 기자들 사이에서도 난리가 났다. 그만큼 7차전의 끝내기 홈런 타구가 비상했던 탓이다.
“각성자가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하는데 김준혁 선수, 한마디 해 주시죠.”
“각성자가 아닌데도 이틀 동안 잠적한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준혁이 손을 들어 기자들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차분하게 말했다.
“오늘 발표할 것이 있어 이렇게 기자분들을 모셨습니다.”
이런 상황에, 이런 자리에서 무슨 발표를 한다는 말일까?
기자들의 얼굴에 의구심이 떠오르는 찰나, 준혁이 품에서 종이 1장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창원 웨일즈의 유격수 김준혁입니다. 우선 방금 검사 결과를 실시간으로 지켜보신 야구팬분들께서도 보셨듯이 저는 각성자가 아닙니다. 이 점은 분명 많은 분이 실시간으로 지켜보신 바, 더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준혁은 잠시 말을 끊은 후 기자들을 둘러보았다. 한쪽에 서 있는 스트리머의 카메라도 지긋이 응시했다.
그런 준혁의 얼굴에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여 준 적 없는 침울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야, 뭐냐?>
<우리 야김잘 표정이 왜 저래?>
<ㅅㅂ, 그렇게 악플이 난무하는데 표정이 좋으면 그게 이상하지.>
<ㅅㅂ 악플러 새끼들.>
<코시 우승으로 기분 좋아야 하는 이때, 이게 무슨 꼴이냐?>
<아까 그 스트리퍼 새끼 잡아서 내가 우리 야김잘 앞에서 스트립 댄스를 추게 할 거다.>
<그건 우리 야김잘한테 너무 못할 짓 아님?>
<스트리퍼 레이드 공격대 모집 중. 2/10>
그러는 동안 준혁이 다시 이야기를 이었다.
“저는 1군 데뷔한 이후 지금까지 줄곧 각성 의혹에 시달려 왔습니다. 틈틈이 각성 검사를 받았지만, 오히려 악의적으로 공격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을 뿐입니다. 그리고 오늘 또 각성 검사를 받았고, 결과는 당연히 각성자가 아니라고 나왔습니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의심과 논란이 없어질 거라는 희망을 품을 수가 없습니다.”
<왜 이래?>
<진짜 분위기 이상한데?>
<야, 불안하게 뭐야?>
“그동안 저를 향한 근거 없는 비난과 악의적인 날조로 인해 심적으로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래도 프로 선수로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하고 혼자 감내해 왔습니다. 하지만 저도 한 인간으로서 더 이상 이를 감내하기 힘든 순간이 되었습니다.”
<오오, 고소각.>
<고소미 먹일 생각인가 보다.>
<그래, 잘했다. 이참에 청소 한번 깨끗하게 하자.>
<야김잘 인터넷 클리닝 오지구요.>
“하여 긴 고민 끝에 은퇴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준혁의 말이 끝나는 순간 주변이 일시에 조용해졌다. 인터넷 채팅창도 거짓말처럼 멈췄다.
다들 자신들이 잘못 들은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었다.
준혁은 프로야구 최고의 선수, 메이저리그의 수많은 팀이 노리고 있는 최고 기량의 유격수였다.
타 팀 야구팬들이 진심을 가득 담아 메이저에 가서 국위 선양하라는 말을 듣는 선수이기도 했다.
그런 준혁의 입에서 은퇴 선언이 나왔으니 현실감이 느껴질 리가 없었다.
퍼뜩 정신을 차린 기자 하나가 황급히 물었다.
“김준혁 선수! 지, 지금 은퇴 발표를 하신 겁니까?”
그제야 다른 이들도 현실로 돌아왔다.
<이거 뭔 소리냐?>
<은퇴?>
<야김잘이 은퇴한다고?>
여전히 믿기 어려운지 채팅창에 올라오는 글도 드문드문했다. 그만큼 믿기 싫은 발표였다.
하지만 준혁은 또렷한 눈빛으로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다.
“은퇴 발표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야구와 관계된 일은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기자 하나가 간신히 질문을 던졌다.
“햐,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됩니까?”
“형과 함께 작은 사업을 해 볼까 합니다. 지금까지 야구 선수 김준혁을 사랑해 주신 야구팬들게 감사 인사와 함께 죄송하다는 사과 인사를 올립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는 준혁의 태도는 경건하기까지 했다.
그 직후 침울한 표정으로 자리를 벗어나는 준혁을 잡아 세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스트리머의 방송에, 멀어져 가는 준혁의 뒷모습이 서서히 작아졌다.
***
『충격적인 소식입니다. KBO 프로야구 최고의 선수라는 평가를 받는 창원 웨일즈의 유격수 김준혁 선수가 돌연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인터넷 악플로 인한 심적 고통이 이유라고 하는데요. 기량은 물론 스포츠맨십, 팬 서비스 등에서도 극찬을 받던 선수의 갑작스러운 은퇴에 많은 야구팬들이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김준혁 선수가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TV에서 두 앵커가 뉴스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 뉴스를 보는 이의 얼굴에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아니, 그보다는 같잖다는 표정에 가까웠다.
“쯧! 그거 얼마나 번다고 저렇게 난리들인지…….”
그때 화면이 바뀌면서 준혁의 은퇴 발표 장면이 나왔고, 뉴스를 보던 남자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저놈은…….”
남자의 기억 속에 있는 얼굴이었다. 이틀 전에 버릇없게 자신의 멱살을 잡았던 놈이다.
남자는 장민호였다.
“결국은 뒈졌나 보네?”
저 선수의 형이 저주에 걸려서 사경을 헤매고 있었던 것도 기억이 났다. 그리고 피식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나도 못 푸는 저주를 풀 수 있을 리가 없지.”
사제 클래스인 장민호의 각성 등급은 A급이었다. 헌터로서 꽤 성장했기에 실력도 최고 등급이었고, 가끔은 S급 공략 팀에서도 모셔 가려고 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세계 톱급의 실력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국내에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수준이었다.
“내 은총이라도 받았으니 죽어도 여한은 없을, 읍!”
장민호의 두 눈이 급격하게 커졌다. 갑자기 불쑥 튀어나온 손이 장민호의 하관을 움켜쥔 탓이었다.
“읍, 읍읍!”
으드드득!
관절이 어긋나는 소리가 고막을 두드렸다.
발버둥을 쳐 보았지만 손발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는 중에도 턱과 입을 통째로 움켜잡은 손아귀에는 서서히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턱뼈가 그대로 으스러질 지경.
손아귀의 힘은 그 직전에 멈췄다.
장민호가 사지를 부들부들 떨며 커다래진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도대체 왜!’
장민호의 집은 보안이 최고 수준인 고급 주상복합 오피스텔이었다. 그런 곳에 침입했을 정도면 각성자들 중에서도 최소 A급은 된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장민호는 그런 수준의 각성자에게 원한 살 만한 짓을 한 적이 없었다.
장민호가 쉼 없이 눈동자를 굴리고 있을 때, 또 다른 손 하나가 장민호의 목 오른쪽 승모근을 덮었다. 그리고 천천히 엄지가 내려와 오른쪽 빗장뼈를 은근히 압박하기 시작했다.
“읍, 끄으으읍!”
입이 짓눌린 탓에 비명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는 중에도 빗장뼈를 누르는 엄지손가락의 압력은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발버둥 쳐 보지만 좀처럼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그러던 중 이질적인 소음이 터져 나왔다.
뚜욱!
“끄아아아압!”
하관을 완전히 덮은 손바닥 틈으로 자지러지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엄지손가락이 장민호의 빗장뼈를 그대로 부러트린 것이었다.
“으으으읍!”
부릅뜬 장민호의 두 눈에서 고통에 찬 눈물이 비 오듯 쏟아져 내렸다.
그때 손의 주인이 장민호 앞에 얼굴을 드러냈다.
그렇잖아도 커져 있던 장민호의 두 눈이, 이제는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벌어졌다.
장민호 앞에 나타난 건 장민호 자신의 얼굴이었다.
“반갑지?”
장민호의 얼굴이, 장민호의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