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
-4장. 은퇴 선언#1-
‘뭐지?’
준혁은 속으로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먼저 냉큼 안내하겠다기에 뭐 할 말이라도 있나 했는데, 최유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접객실을 나서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를 걷는 지금까지 최유나는 단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집념 가득한 눈으로 준혁을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는 중에도 끊임없이 손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마침내 로비 현관문을 열었을 때, 최유나가 불쑥 말했다.
“칼은 어떻게 쥐어야 합니까?”
뜬금없는 질문에 준혁이 우뚝 걸음을 멈췄다가 한 박자 늦게 그 말을 이해했다.
‘아… 그때 했던 말…….’
그제야 오는 내내 손을 쥐었다 폈다 하던 최유나의 행동이 이해가 갔다.
하지만 대답하기 난감한 질문이었다.
‘그냥 한 말인데.’
아예 없는 말을 한 건 아니었다. 검을 쥔 손이 너무 어설프긴 했었다. 그렇다고 딱히 조언의 성격으로 한 말은 아니었다.
‘어떡할까?’
잠시 고민하던 준혁은 결국 자신이 사용했던 방법을 알려 주었다.
“알아서, 잘.”
“네?”
최유나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실성한 것처럼 말을 흘렸다.
“알아서 하고, 잘하라고요.”
그 말을 끝으로 준혁은 손을 흔들며 MH타워를 벗어났다.
***
“삼촌~”
문을 열자마자 어린 조카가 준혁에게 답삭 안겼다. 준혁은 그런 조카를 안아 들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리 지유, 삼촌 기다렸어?”
“응! 배고파!”
역시 어린아이들은 솔직했다. 준혁을 기다린 게 아니라, 준혁이 오면 같이 먹을 식사 시간을 기다렸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집 안에 맛있는 냄새가 가득했다.
“가자. 어서 밥 먹자!”
“응!”
식탁으로 가니 김준석이 말끔한 얼굴로 준혁을 맞이했다.
“볼일은 잘 봤냐?”
반가운 얼굴로 묻는 모습에 준혁이 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잘 봤지. 생각보다 너무 일이 잘 풀려서 의심스러울 정도?”
“잘됐네. 일단 밥부터 먹자.”
아침으로 먹기에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식탁에 음식이 가득했다. 이세연이 제대로 작정하고 음식을 한 모양이었다.
“창원에 다시 내려가야 하는 거 아냐?”
“괜찮아. 구단에 말해 뒀어.”
“한국시리즈 우승하는 걸 못 봐서 아쉽네.”
“작년에도 봤잖아.”
대수롭지 않은 대화들이 오갔다. 지유가 밤을 새운 탓에 숟가락을 입에 물고 꾸벅꾸벅 조는 바람에, 가족들 모두가 한바탕 즐겁게 웃기도 했다.
그렇게 밥을 먹은 후, 피곤한 이세연 대신 두 형제가 나란히 서서 설거지까지 마쳤다.
준혁이 손을 닦으며 물었다.
“시간이 좀 많이 이르긴 한데… 술 한잔할까?”
“좋지.”
“몸은 괜찮겠어?”
“크흐흐, 니가 준 엘릭서 때문에 힘이 넘친다. 둘째를 봐야 하나?”
“헐! 아저씨…….”
“그럼 내가 아저씨지, 총각이냐?”
“아무튼 나가자.”
아침이라 길가에는 출근하는 사람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당연히 문을 연 술집도 없었다.
준혁과 김준석은 출근 인파들 사이에서 트레이닝복을 걸친 모습으로 편의점에서 소주 2병을 사서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까드득!
공원 벤치에 나란히 앉아, 각자 소주 1병씩 쥐고 뚜껑을 열어 그대로 입으로 가져갔다.
꼴꼴꼴…….
“크으!”
그리고 두 사람은 그대로 정면을 바라본 채 가만히 시간을 보냈다.
김준석의 표정이 점점 복잡하게 변했다. 밥 먹는 내내 편안한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사실 마음이 복잡하기 짝이 없었다.
어디를 갔다 온 건지, 엘릭서는 어떻게 구했는지, 그거 때문에 동생이 위험해진 건 아닌지.
하지만 쉬이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김준석이 용기를 내 동생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고맙다.”
“새삼스레 그런 거 생각하지 마.”
준혁이 대수롭지 않은 척 말했지만, 김준석의 표정은 진지하기 짝이 없었다.
“고마워.”
“쯧, 그만하라…….”
“네 덕에 마누라도 웃고, 우리 지유 크는 것도 계속 볼 수 있게 됐다.”
“하아, 알았어.”
다시 짧은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두 번째 침묵을 깬 사람은 준혁이었다.
“은퇴할 거야.”
“응?”
“야구, 그만할 거라고.”
“뭐? 왜?”
김준석은 동생의 결정에 이래라저래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유까지 묻지 않을 수는 없었다.
“기억나?”
그런데 준혁이 뜬금없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뭐가?”
“나 실종됐을 때.”
“음?”
김준석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몸이 떨리고,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8년 전,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을 맞이했던 준혁이 갑자기 실종되었다.
어려서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서로만 의지하며 살아왔던 두 형제였다. 그런데 아르바이트하러 간다고 나간 준혁이 갑자기 실종된 것이었다.
그때부터 김준석은 직장도 때려치우고 동생을 찾아 전국을 헤맸다.
주변 사람들은 게이트에 휘말렸거나 괴물에게 죽었을 거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하지만 김준석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랬던 준혁이 다시 돌아온 것은 2개월 후였다.
당시 준혁은 실종 기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준석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지만, 굳이 캐묻지도 않았다.
뭔가 이유가 있으리라. 어쩌면 단순한 가출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지금 그 이야기가 준혁의 입에서 나왔다.
“현실에서는 두 달이었지만, 실제로는 10년을 보냈어.”
김준석이 조금도 생각지 못한 진실이 나오기 시작했다.
“배면계(背面界)라는 곳이 있어.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와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생각하면 돼. 단, 시간의 흐름이 좀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갑자기 거기로 끌려갔었어. 그리고 나처럼 끌려온 사람이 대충 한 100명쯤 됐을 거야.”
준혁은 손에 들고 있던 소주병을 다시 입으로 가져가 남아 있던 소주의 절반을 넘겼다.
“크흐! 아무튼… 거기로 갔더니 시스템이라는 게 말을 걸더라.”
“지금 각성자 같은 거?”
“비슷한 거야. 같은 건 아니지만. 아무튼 그 시스템이 그러더라고. 돌아가고 싶으면 주어진 임무를 모두 완수하라고.”
“무슨 그런…….”
“어차피 각성자들의 시스템도 제멋대로 굴잖아. 그놈이 그놈이지, 뭐.”
그렇게 준혁이 끌려간 배면계는 야생의 세계였다.
그것도 단순한 야생동물이 아닌 괴수와 영수, 신수가 세상을 뒤집어엎으며 패악질을 부리는 세계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해야 할 일은 괴수, 영수를 잡아 죽이고 신수들을 봉인시켜 배면계가 붕괴하는 걸 막는 일이었다.
“거기서는 늙지도 않아. 왠지 알아? 젊은 육체로 짐승들을 잡아야 하니까.”
끌려온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처절하게 발악해야 했다.
하지만 하나둘 죽어 나가기 시작했고, 결국 마지막에 남은 사람은 준혁 혼자였다.
그리고 준혁은 그곳에서 무려 10년을 버티며 배면계의 짐승들을 모조리 끝장냈다.
어떤 놈은 봉인하기도 했고, 어떤 놈은 죽여서 아이템 제작 재료로 쓰기도 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을 마쳤을 때, 시스템이 말했다.
[이제부터 영력을 봉인합니다.]
“복귀하면 나도 헌터 하면 되겠다고, 팔자 폈다고 생각했었다고. 그런데 영력이 사라지는 거야. 진짜 그렇게 빡칠 수가 없더라.”
10년의 세월을 모두 말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 간략하게 줄여서 이야기를 하던 준혁이,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는 진심으로 화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조금만 방심해도 목이 날아가는 그곳에서 무려 10년의 세월을 버텨 얻은 것이 그 영력이었다. 그런데 그걸 봉인하겠다니 화가 나는 게 당연한 일.
하지만 시스템이라는 놈은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놈들이 아니었다.
“내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난 이미 현실 세계로 되돌아와 있었어.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자다가도 벌떡벌떡 깰 정도라니까? 하도 열이 받아서.”
이야기를 듣고 있는 김준석의 표정은 매우 복잡했다.
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얼얼하기도 하고, 동생의 고난에 마음도 아팠고, 시스템의 짓거리에 화가 나기도 했다.
“그렇게 10년 세월과 맞바꿔서 손에 쥔 건, 영력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장비들이랑 죽도록 굴려서 튼튼해진 몸뚱이뿐이었어.”
튼튼하다고는 해도 영력이 사라진 이상, 일반인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육체였다.
김준석은 뒤늦게 또 하나를 이해했다.
실종됐다가 돌아온 후, 거의 석 달 동안 방 안에 혼자 처박혀 있던 준혁이 왜 그랬는지 알게 된 것이다.
얼마나 지독한 상실감이었겠는가.
“야구를 한 이유도 그거야. 어쨌든 피지컬은 무시무시한 상태니까, 프로 스포츠 선수가 되면 돈 많이 벌 수 있겠다고 생각한 거지.”
김준석은 그제야 뜬금없이 야구를 하겠다고 나섰던 과거 동생의 행동이 이해가 됐다.
“물론 던전이랑 각성자들 때문에 연봉이 곤두박질친 상태인 건 알았지만, 프로 선수로 잘하면 일반인이 만질 수 없는 액수를 손에 쥘 수 있으니까. 젠장. 생각해 보니 인생 진짜 맘대로 안 굴러갔네. 하아!”
그렇게 준혁의 이야기는 짧은 한숨과 함께 마무리되었다.
김준석은 그저 멍하니 하늘만 쳐다볼 뿐이었다.
가슴팍에 거대한 바윗덩이를 얹어 놓은 것처럼 답답하고 힘겨운 심정이었다.
하지만 뭐라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어릴 때야 자신이 동생을 돌봤지만, 프로 선수가 된 후에는 항상 받기만 했던 못난 형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몰려오는 자괴감과 죄책감에 몸이 쪼그라드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이럴 때 따뜻한 말을 건네줄 정도로 다정한 성격도 못 되었다. 그의 삶 역시 팍팍하기는 마찬가지였으니까.
답답함에 연거푸 한숨을 길게 내쉬던 김준석이 용기를 내 손을 들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동생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살아 돌아와 줘서 고맙다.”
어색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더듬거리지 않고 끝까지 그 말을 뱉는다.
평소에 볼 수 없던 형의 그 행동에 준혁도 머쓱한 표정으로 입을 닫았다.
준혁 역시 형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친척 집을 전전하면서도 끝까지 동생을 보호했다. 성인이 된 후, 공장에서 고된 노동을 하면서도 동생만큼은 끝까지 보살폈었다.
온몸이 부서질 듯 아파도 동생에게만큼은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다.
실종 후 돌아온 동생이 난데없이 야구를 하겠다고 했을 때도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야구는 돈이 많이 필요한 운동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뒷바라지를 했다.
그게 준혁의 형 김준석이었다.
김준석 스스로는 동생에게 받기만 하는 못난 형이었지만, 준혁에게는 가진 걸 다 줘도 갚을 수 없는 빚을 진 사람이었다.
동생을 위해 자신의 삶마저 희생한 사람에게 어떤 것으로 빚을 갚을 수 있겠는가.
아스라한 표정으로 과거를 회상하던 준혁이 남은 소주를 모두 배 속에 들이부었다.
“그런데 그 영력이 돌아왔어.”
“혹시 엘릭서를 구한 것도…….”
“맞아.”
“그런데 엘릭서는 거기에 있는 거 아니었어? 골드 드래곤의 레어?”
과거에도 몇 차례 엘릭서를 구할 수 있는 던전이 등장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에 있는 골드 드래곤의 레어밖에 없었다.
“어. 거기 가서 드래곤 때려잡고 가져온 거지.”
“뭘 때려잡아?”
조금 전 마음속을 가득 채우던 애잔한 감정이 한꺼번에 날아갔다.
“드래곤, 그 새끼 좀 질기긴 하더라.”
“드, 드래곤을 혼자 잡았다고?”
“아까 뭐 들었어? 배면계에서 영물이랑 신수 잡으러 다녔다니까?”
“설마 그 신수라는 게…….”
“어, 용가리나 알비노 호랑이 같은 것들.”
한층 격한 충격이 김준석의 뒤통수를 때렸다. 10년의 세월과 영물에 신수라는 이야기를 듣고 동생이 아주 강할 거라는 예상은 했었다.
하지만 그 신수라는 게 진짜 용이나 백호 같은 것들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현실성이 없는 탓이었다.
던전에서 드래곤이 나오는 게 현실이니, 용이나 백호가 현실성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1명의 인간이 그런 괴물들을 사냥한다는 사실이 현실성이 없다는 뜻이다.
현재 인류 최강자라 불리는 S급 헌터들조차 드래곤을 단신으로 잡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드래곤과 용을 동일 선상에 놓고 본다면, 김준석으로서는 충분히 상식적인 생각이었다.
물론 그 생각은 보기 좋게 틀렸지만.
“아무튼 난 이제 그쪽으로 갈 거야. 그리고 형도 용병 그만두고 나랑 움직여.”
준혁의 말에 김준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말할 타이밍을 놓쳤었는데…….”
“응?”
“나 D급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