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
-3장. 어디서 많이 본 얼굴#2-
“누구세요~”
아파트 현관문 안쪽에서 앙증맞은 목소리가 들렸다.
“지유야, 삼촌~”
어린아이는 이미 잠들었을 시간인데 깨어 있는 걸 보면, 집 분위기가 많이 안 좋긴 한 모양이었다.
준혁의 말에 디지털 도어락 해제음과 함께 현관문이 열렸다. 그리고 초등학생 여자아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유 잘 있었…….”
하지만 준혁은 말을 채 끝맺지 못했다. 어린 조카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주춤거리고 있었다.
“누, 누구세요?”
“응?”
눈을 끔뻑이던 준혁이 뒤늦게 이해했다는 듯 피식 웃어 보였다. 그리고 한쪽 무릎을 굽혀 조카와 시선을 맞췄다.
“우리 지유, 삼촌이 오랜만에 왔다고 삐쳤…….”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뻗던 손과 달래듯 꺼낸 말이 동시에 멈췄다.
지유가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치더니, 방향을 틀어 후다닥 안으로 달려간 탓이었다.
“엄마, 엄마-!”
다급하게 제 엄마를 부르기까지.
“우리 지유, 왜 그래?”
“이상한 아저씨가 자꾸 자기가 삼촌이래!”
“응?”
안에서 들리는 대화에 준혁은 또 한 번 고개를 갸웃거렸다.
준혁이 들어가지도 못하고 물러서지도 못한 채 머뭇거리고 있을 때, 이세연이 후다닥 현관으로 나왔다.
“누, 누구세요!”
그리고 깜짝 놀란 목소리로 되묻는다.
“형수님, 저 준혁이에요.”
하지만 이세연은 오히려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뒷걸음질 쳤다.
눈으로 준혁의 발과 현관문 손잡이를 번갈아 보는 모습이 당장이라도 문을 닫아걸고 싶은 눈치였다.
“에이, 형수님까지 왜 그러세요?”
“다, 당신 누군데 우, 우리 도련님이라는 거예요?”
장난이 아닌 진심이었다.
‘무, 무슨 일이야? 나 던전 갔다 온 사이에 또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한 거야?’
그때 용기를 쥐어짠 이세연이 다급하게 달려 나와 준혁의 가슴팍을 밀었다.
하지만 준혁이 밀릴 리가 없다. 영력을 봉인당했을 때도 프로 스포츠 선수로서 뛰어난 피지컬을 가졌던 준혁을 평범한 여자가 밀어내는 건 불가능한 일.
“아악!”
충격을 이기지 못한 이세연이 뒤로 튕기며 비틀거렸다. 황급히 손을 뻗은 준혁이 이세연의 어깨를 붙잡았다.
“놔, 놔요!”
기겁한 목소리.
“여, 여보, 무슨… 쿨럭, 쿨럭! 무슨 일이야?”
안쪽에서 힘이 하나도 없는 김준석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준혁은 이유를 깨달았다.
현관 벽에 붙어 있는 작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본래의 얼굴이 아니었던 탓이다.
‘매구탈을 안 벗었네.’
착용감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아이템인 데다, 워낙 오랜만에 쓴 탓에 깜빡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 잠깐만요!”
준혁이 황급히 매구탈을 벗었고, 그제야 준혁의 얼굴이 드러났다.
“어? 삼촌이다!”
멀찍이 서 있던 지유가 그제야 준혁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이세연 역시 당황하기는 했지만, 아까보다는 덜한 표정으로 물었다
“준혁이?”
결혼 초기에는 ‘도련님’이라 불렀지만, 준혁이 도통 그 호칭에 적응이 안 돼서 이름으로 불러 달라고 요구했기에 이세연은 준혁을 이름으로 불렀다.
다시 말해 이세연 역시 이제야 준혁을 알아보았다는 뜻이다.
“어, 어떻게 된 거야? 손에 그건…….”
“나중에 설명해 드릴게요. 형은요?”
“안방에.”
“잠시만요.”
급히 집 안으로 들어선 준혁이 안방으로 들어갔다. 온몸이 시커멓게 변해 침대 위에 있는 김준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 돌팔이 새끼!’
상급 사제였던 장민호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일주일이라고 하더니 이틀 만에 저런 모습으로 변해 버렸다. 준혁이 조금만 여유를 부렸으면 큰일 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넌 딱 기다려라!’
어딘가에 있을 장민호에게 이를 간 후, 침대를 향해 다가갔다.
굳어 있는 준혁의 얼굴을 보며 김준석이 칙칙한 얼굴에 애써 미소를 그렸다.
“인마, 형한테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도 안 보여 주고 어디 갔던 거야?”
하지만 준혁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도깨비 보따리에서 엘릭서를 꺼내 형에게 내밀었다.
“마셔.”
“이게 뭔… 어?”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포션을 쥐던 김준석의 얼굴에 당황한 표정이 떠올랐다. 눈앞에 뜬 아이템창 때문이었다.
[엘릭서]
완전한 죽음에 이르지만 않았다면 모든 종류의 부상과 질병, 저주를 말끔히 치료한다.
육체를 완벽하게 재구성한다.
“이, 이게 어디서…….”
김준석도 이세연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자신의 상태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엘릭서가 필요하다는 사실, 그리고 준혁이 엘릭서를 구해 오겠다고 말하고는 사라졌다는 것까지.
그리고 지금 눈앞에 거짓말처럼 엘릭서가 나타났다.
어떻게 구한 건지 당장 물어보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슬며시 움직인 시야에 아내와 딸의 모습이 들어왔다.
짧은 시간이지만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기억과 감정이 머릿속을 스쳤다.
처음 고민은 그것이었다.
‘이걸 마셔도 될까?’
동생이 이걸 어떻게 구했는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무모한 일을 벌인 건 아닌지, 이거 때문에 동생이 크게 곤란해지는 건 아닌지.
하지만 가족의 얼굴을 보고, 마치 주마등이라도 되는 듯 머릿속을 스쳐 간 기억들이 고민을 지우고 결론을 향해 가고 있었다.
아내와 딸에게서 조용히 시선을 거두고 동생을 보았다. 준혁은 평소와 다르지 않은, 무심한 듯하면서도 묘한 미소를 머금은 얼굴이었다.
엘릭서 병을 쥔 김준석의 손에 불끈 힘이 들었다.
‘살아야 한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론만이 머릿속에 남았다.
김준석은 그런 생각을 하며 준혁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준혁 역시 좀 더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눈빛을 주고받은 직후, 김준석은 단숨에 엘릭서를 입으로 넘겼다.
여러 가지 빛을 내뿜던 액체는 단숨에 김준석의 식도를 타고 배 속으로 넘어갔다.
그 직후, 김준석이 갑자기 나른한 표정으로 말했다.
“갑자기… 졸리네?”
김준석의 몸이 은은한 빛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쓰러지듯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시커멓게 변해 있던 피부는 벌써 원래의 색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것을 본 준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방문 앞에서 차마 다가오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는 이세연을 향해 말했다.
“형은 이제 괜찮을 거예요.”
그제야 이세연의 두 눈에서 굵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지만 준혁은 이런 상황에서 위로하는 재주가 없었다.
“형 좀 돌보고 계세요. 저는 일이 있어서 잠시 나갔다 올게요.”
그 말에 이세연이 황급히 준혁을 붙잡았다.
“이 늦은 시간에 또 어딜……. 아니, 밥은? 굶고 다닌 거 아냐?”
“괜찮아요. 갔다 와서 형이랑 같이 아침 먹죠.”
“그래. 내가 준비해 놓을게.”
퉁퉁 부은 눈으로도 웃고 있는 얼굴을 보니 준혁도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맛있는 거 해 줘요.”
그 말을 남긴 채 준혁은 곧장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묵린갑 등 장비를 담아 놓은 도깨비 보따리는 다시 백팩 안에 넣었고, 매구탈만 손에 들고 집을 나섰다.
***
“그런데 이상하지 않아요?”
강태웅이 회의실의 초대형 화면을 보며 물었다.
지금 시간은 새벽 6시, 유민섭을 포함한 무훈 길드 3명의 S급 헌터는 곧장 본사 건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 준혁이 최유나를 잠깐 상대했을 때의 영상을 분석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강태웅이 갑자기 영상을 멈추고 대뜸 물어본 것이다.
“뭐가?”
“저 얼굴이요.”
화면에는 준혁의 얼굴이 떠올라 있었다. 던전 앞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 촬영해 놓은 화면이었다.
당연히 그 얼굴은 준혁이 매구탈로 변장한 얼굴이었다.
유민섭이 무슨 말인가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얼굴이 왜?”
“어디서 많이 본 거 같단 말이에요.”
“응?”
고개를 갸웃거리며 화면을 살피던 유민섭의 얼굴에도 아리송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러네? 그런데 어디서 봤지?”
“뭔가 되게 익숙한데… 도통 어디서 봤는지를 모르겠단 말이에요.”
“최유나 헌터, 혹시 알겠어?”
두 사람이 무슨 대화를 하든 혼자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최유나가 고개를 돌렸다.
“네?”
“저 얼굴, 혹시 어디서 본 거 같지 않냐고.”
“모르겠습니다.”
그러고는 이내 저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들었다.
간간이 보이는 움직임이라고는 제 손아귀를 내려다보고 쥐었다 폈다 반복하는 정도.
유민섭과 강태웅은 최유나에게서 시선을 돌려 다시 화면의 얼굴을 보았다.
뭔가 생각날 듯 말 듯 애매한 느낌 탓에 답답한 침묵이 회의실을 맴돌았다.
준혁은 인적이 드문 새벽 거리를 걷고 있었다. 얼굴에는 묘한 희열이 담긴 미소가 가득했다.
그런 그의 머릿속에는 골드 드래곤 카이르무스와 싸울 때의 기억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저절로 주먹에 불끈 힘이 들어갔다.
드래곤의 모습으로 돌아간 카이르무스의 기세를 받았을 때, 준혁은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의 긴장감을 느꼈었다.
그리고 긴장감에 이어 찾아온 것은 등골이 저릿할 정도의 흥분이었다.
즐거웠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때 깊은 곳에 몰아치고 있던 것은 즐거움이었다.
또한 가슴이 벅찰 정도로 짙은 흥분이었다.
엘릭서를 구해야 한다는 급한 마음에, 그때는 미처 자신의 그런 감정을 헤아릴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영력이 봉인당한 이후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흥분이 아드레날린을 과하게 퍼 올렸었다.
무려 10년의 세월이었다.
준혁이 영수(靈獸)나 신수(神獸)라는 이름을 뒤집어쓴 거대한 짐승들만 상대하며 보낸 세월이었다.
거기에 인이 박여 버린 준혁의 뇌와 감정은 평범한 일상에 흥미를 느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가진 모든 힘을 잃은 그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상실감은 던전과 각성자가 등장한 후 배가되었다.
그 누구보다 강한 헌터가 될 수 있는데, 봉인당한 영력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힘이 돌아왔고, 그 힘으로 무시무시한 짐승을 직접 사냥했다.
‘해야지.’
현실의 제도적인 문제가 발목을 잡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영력을 되찾은 준혁은 절대 그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걷던 준혁의 발걸음이 갑자기 우뚝 멈췄다.
준혁은 목적지인 무훈 길드의 본사, MH타워 앞에 도착해 있었다.
건물 정문 현관 앞에 선 준혁은 물끄러미 고개를 들어 빌딩 상층부를 쳐다보았다.
환하게 불이 들어와 있었다.
‘역시 있는 모양이군?’
한두 시간 전에 던전 앞에서 만났기 때문에, 길드 본사에 있을 거라 여겨서 찾아온 참이었다.
만에 하나 없더라도 불러내면 그만이라는 생각도 하기는 했었다.
유리문 너머로 보니 제복 차림의 젊은 남자 2명이 로비 안내 데스크 쪽에 앉아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현관문에 붙어 있는 준혁을 보고는 인상을 팍 구기며 다가왔다.
하지만 유리문에 딱 붙어 있는 준혁의 손바닥을 보고 표정이 급변했다.
황급히 허리춤의 전자키를 꺼내 보안장치를 해제하고는 문을 열었다.
“길드장님 손님이시군요. 일단 들어오시죠.”
남자의 급격한 태세 전환에, 준혁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어 보였다.
‘효과 좋네?’
거두어들이는 준혁의 손에는 유민섭이 준 명함이 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