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받고 각성 더!-3화 (3/240)

-003-

-2장. 드래곤을 사냥하는 법#1-

“지금 이게 뭡니까?”

무훈 길드 회의실에 기겁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회의실 정면의 화면에 CCTV로 촬영된 동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골드 드래곤의 레어 던전 게이트 앞을 촬영한 CCTV였다.

경비를 서는 헌터들이 잠깐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었고, 그 직후에 게이트가 닫히는 짧은 동영상이었다.

당연히 소란이 일었다.

“던전 게이트에 이상 현상이 나타난 겁니까?”

“게이트가 저 혼자 닫히는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여기저기서 한 마디씩 던지는 헌터들로 인해 회의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입을 닫은 채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길드장 유민섭을 포함한 3명의 S급 헌터들이었다.

유민섭이 그들 중 1명에게 물었다.

“뭐가 보이나?”

그제야 회의실이 다시 조용해졌다.

유민섭의 질문을 받은 S급 헌터 강태웅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희끗할 뿐, 제대로 안 보입니다. 프레임 단위로 봐야겠는데요?”

유민섭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쪽에 있는 직원을 향해 손짓했다.

영상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고, 아주 느리게 한 프레임씩 끊어서 재생되기 시작했다.

회의실 공기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몇 프레임씩 건너뛰면서 등장하는 한 남자의 모습을 목격한 탓이었다.

“프레임을 건너뛸 정도면 도대체 얼마나 빠른 거야?”

“근데 도대체 저건 누구야?”

“저 정도면 S급 확정인데, 국내에 저런 헌터가 있었어?”

“그런데 무슨 정신으로 골드 드레곤의 레어에 혼자 들어간 거야?”

“자살하는 방법도 참 가지가지다.”

길드 관리하에 있는 던전에 외부인이 침입했는데도 걱정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만큼 골드 드래곤의 레어가 무서운 곳이라는 방증이었다.

하지만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표정을 굳히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3명의 S급 헌터들이었다.

그중 하나인 유민섭이 나머지 2명의 S급을 향해 물었다.

“갈 거지?”

그리고 2명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

후우웅-!

준혁의 손이 횡으로 커다란 궤적을 그렸다. 황금색의 둥근 무언가가 그 궤적을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콰앙!

굉음과 함께 또 다른 황금색의 둥근 무언가가 격하게 옆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준혁의 손에 들린 것은 황금색의 투구, 그리고 준혁에게 맞아 땅에 처박힌 것 역시 황금색 투구였다.

다만 준혁의 손에 들린 것이 빈 투구였다면, 처박힌 것은 누군가가 머리에 쓰고 있던 것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황금색 투구와 깔 맞춤 한, 온몸을 뒤덮고 있는 황금색 풀 플레이트 메일을 입은 누군가는 더 이상 미동도 하지 않았다.

목이 뒤로 꺾인 생명체는 살아 있을 수 없는 탓이었다.

준혁이 다가가 죽은 자가 쓰고 있던 투구를 벗겨냈다.

“엘프네?”

그런 준혁의 뒤로 지금 쓰러진 엘프와 똑같은 무장을 한 29구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하나같이 둔기에 두들겨 맞은 듯 갑옷이 움푹 찌그러지거나 목이 부러지거나, 아예 투구째로 머리가 함몰된 시체들이었다.

드래곤 나이츠.

30명의 드래곤 나이트로 구성된 기사단. 드래곤이 가진 최후의 방어선이었다.

“이놈들도 마나석이 있나?”

궁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린 준혁이 비수를 꺼내 바로 앞에 있는 엘프의 가슴팍을 갈랐다.

엘프들은 인간을 초월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종족이었다. 특유의 기다란 귀가 있어도 생김새 자체는 인간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그런 엘프의 가슴팍을 갈라 마나석을 뽑는 준혁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 있지 않았다. 오히려 능숙함까지 엿보였다.

“있네? 생긴 건 엘프라도 결국은 몬스터라는 뜻이겠지?”

빠르게 드래곤 나이트들의 마나석을 캐낸 준혁은 허리춤에 걸린 작은 주머니를 꺼내 주둥이를 열고 마나석들을 집어넣었다.

도깨비 보따리.

각성자들의 인벤토리와 같은 역할을 하는 준혁의 아공간 주머니였다.

각성과 동시에 인벤토리를 갖게 되는 각성자들과 달리, 준혁은 이것조차 직접 만들었다는 차이가 있기는 했다.

‘하아, 이것도 만드느라 엄청 고생했었는데.’

도깨비 보따리나 매구탈만이 아니었다. 입고 있는 방어구나 무기 등 모든 것이 준혁이 직접 제작한 것들이었다.

“가만 보면 되게 곱게 크는 거 같단 말이지. 좋겠다. 제기랄!”

괜히 부아가 치밀어 혼잣말로 불퉁하게 내뱉는다.

마나석을 뽑고 나니 드래곤 나이트들의 시체가 바스러지듯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준혁은 잠시 그 모습을 본 후, 다시 성큼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지금 준혁이 걷고 있는 길은 어느 이름 모를 산 중턱이었다.

육모방망이를 불끈 쥔 채 빠르게 산을 올랐다.

‘이제 최종 보스만 남은 거지?’

게이트 통과 후 괴물이 쏟아져 나오던 공동을 지나, 다시 동굴을 따라 움직인 끝에 준혁은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빠져나온 동굴은 깎아지른 절벽 아래에 커다랗게 뚫려 있는 동굴이었다. 그리고 맞은편에 녹음이 우거진 높은 산 하나가 보였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드래곤이 사는 산일 터.

하지만 산세를 살펴보기도 전에 준혁에게 공격이 날아들었었다.

공동에서 생각한 것처럼 말 그대로 몬스터 대백과급의 무수한 괴물들이었다.

와이번을 필두로 날짐승과 산짐승의 형태를 가진 각종 괴물이 준혁에게 덤벼들었다.

모두 공평하게 죽었고, 준혁에게 마나석을 제공했다.

마지막으로 만난 것이 조금 전 몰살시킨 드래곤 나이츠였다.

게이트 통과 후부터 지금까지의 과정이었다. 그 모든 과정을 거치는 데 걸린 시간은 꼬박 하루였다.

이제 남은 것은 드래곤밖에 없었다.

헌터들이 들었다면 절대 믿지 않을 이야기였지만, 준혁에게는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산길을 오른 지 20분쯤 지났을 때 준혁이 걸음을 멈췄다.

그런 준혁의 시선에 산 중턱에 뚫린 꽤 커다란 동굴 하나가 들어왔다. 그 동굴 앞에 웬 남자가 선 채로 준혁을 쳐다보고 있었다.

황금을 녹여 만든 듯한 찬란한 금발과 황금색 눈동자를 지닌 건장한 체격의 남자였다.

‘드래곤이네?’

피부를 자극하는 무시무시한 존재감이 그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단신으로 이곳까지 오다니, 대단한 인간이군. 나는 골드 드래곤 ‘카이르무스’. 이곳까지 온 그대의 강함을 인정하여…….”

하지만 카이르무스의 말은 제대로 매듭지어지지 못했다.

“인간 코스프레냐?”

“무슨……?”

“그러니까 지금 네 상태가 생김새만이 아니라 몸뚱이도 인간과 같으냐고.”

“폴리모프는 모든 구성 요소를 그대로 재현해 내는 마법이지.”

“그럼 지금은 인간이라는 뜻이네?”

“하하! 그렇다고 해서 너 같은 인간이 맞설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이냐?”

“짐승이면 짐승답게 놀아. 되지도 않는 인간 코스프레하지 말고.”

“이놈이 감히 위대한 드래곤을 능멸…….”

이번에도 카이르무스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준혁의 육모방망이가 머리를 향해 날아오고 있는 탓이었다.

까아아앙!

어디서 뽑아 들었는지 1자루의 검이 육모방망이의 궤적을 가로막았다.

“후, 제법인데?”

짧게 숨을 들이켠 준혁의 온몸에서 묵색의 안개가 풀썩 피어올랐다가 다시 흡수되었다.

동시에 준혁에게서 강렬한 기세가 뻗어 나왔다.

“그거 아냐?”

질문과 동시에 육모방망이가 다시 허공을 갈랐다.

부아앙-!

거센 바람 소리를 끌어안은 육모방망이는 다시 한 번 카이르무스의 검에 가로막혔다.

아니, 애초에 준혁의 목표가 이 검이었다.

콰지지직!

검날이 짓이겨지며 이가 나가기 시작했다.

카이르무스가 두 눈을 부릅뜨고 제 검을 쳐다보았다.

가장 위대한 드워프 장인의 손을 거쳐 탄생한, 신검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검이었다. 그런데 투박한 방망이에 이가 나가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깡, 까앙!

준혁이 쉴 새 없이 휘두르는 방망이질에, 신검의 검날이 순식간에 톱날로 변했다.

카이르무스가 황급히 몸을 움직이며 반격을 시도해 보았지만, 준혁은 미리 알고 있기라도 한 듯 모든 공격을 막아 냈다.

그리고 준혁이 순간적으로 영력을 폭발시키며 휘두른 일격.

째애앵!

마침내 신검이 부러졌다.

재빨리 준혁과 거리를 벌린 카이르무스가 손에 들린 반쪽짜리 검을 바닥에 내던지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딴 무기가 없어도…….”

이번에는 카이르무스가 자의로 말끝을 흐렸다.

동시에 앞으로 쇄도해 들어가며 준혁을 향해 두 주먹을 폭풍처럼 내질렀다.

파파파팡!

공기 터지는 소음과 함께 수십 개의 주먹이 거의 동시에 준혁의 온몸을 난타했다.

아니, 난타한 것처럼 보였다.

“흡!”

당황한 기색이 가득한 카이르무스의 얼굴. 그가 후려친 것은 준혁이 남긴 잔상이었다.

“그거 아냐?”

목소리는 카이르무스의 뒤에서 들렸다.

무얼 아냐고 묻는 걸까?

잠시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그보다는 당혹감이 더 컸다.

‘어느 틈에!’

아무리 인간으로 ‘폴리모프’했다고 해도 인간의 수준을 까마득히 초월한 능력이 담긴 육체였다.

카이르무스는 검술을 비롯한 모든 무기술과 격투 등에도 능했다. 그런 그가 뒤를 잡힌 것이었다.

“무슨?”

황급히 방향을 틀며 뒤쪽으로 몸을 날리는 카이르무스.

하지만 준혁은 그보다 훨씬 더 빠르게 카이르무스의 품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가볍게 내지른 주먹이 카이르무스의 턱을 올려 쳤다.

빠아아악!

하지만 거기에서 울린 소음은 조금도 가볍지 않았다. 하늘을 향해 턱이 꺾여 올라간 카이르무스가 당황할 틈도 없이 육모방망이가 날아들었다.

쩌어억!

찰진 소음과 함께 목을 얻어맞은 카이르무스가 그대로 땅에 처박히더니 몇 번을 튕기며 바닥을 굴렀다.

하지만 목이 부러지기는커녕 찰과상조차 입히지 못했다. 아무리 인간의 모습이라 해도 단단하기 짝이 없는 몸뚱이였다.

‘이 인간은 뭐지?’

멀찍이 거리를 벌린 카이르무스의 머릿속에 생각들이 엉망으로 엉켰다.

아무리 인간의 모습이라고는 해도 이렇게까지 몰린 적은 없었다.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그런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고통을 느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내몰렸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치욕이었다.

그때 준혁이 아까 던진 질문을 또다시 던졌다.

“그거 아냐고!”

그러니까 도대체 무얼?

궁금증이 치밀었지만, 드래곤으로서 인간에게 구타당한 사실 때문에 물어볼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시금 준혁이 달려들었다.

‘오른쪽?’

준혁의 움직임을 쫓는 카이르무스의 눈동자에서 순간적으로 황금빛이 발산되었다.

파아아앙!

거대한 빛의 장막이 펼쳐졌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하늘에서 빛의 화살이 쏟아졌으며, 좌우에서는 갑자기 등장한 수십 개의 창날이 한 지점을 향해 쏘아졌다.

바닥에서 솟구친 원형의 톱날은, 그 위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 단번에 갈아 버릴 듯한 기세였다.

콰콰콰쾅!

마법들이 교차하며 굉음이 사방으로 폭사되었다.

마법의 주인이라 불리는 드래곤다운 캐스팅.

생각과 발현에 찰나의 틈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곳에 준혁이 없다는 사실.

“인간의 전투법은 말이지!”

빠아악!

카이르무스의 머리가 몸뚱이에서 떨어져 나갈 정도로 격하게 옆으로 튕겼다.

“인간을 상대로 가장 효율적이라는 거!”

카이르무스가 두 발에 잔뜩 힘을 주며 가까스로 밀려나는 몸뚱이를 멈추는 순간, 주먹이 날아들었다.

뻐어억!

등판을 꿰뚫을 듯 복부에 틀어박히는 주먹.

버티지 못한 카이르무스의 몸뚱이가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카이르무스의 머릿속에 블링크가 떠올랐다. 하지만 이번에도 준혁이 더 빨랐다.

짧은 육모방망이를 두 손으로 잡고 어깨를 깊숙이 장전한 후, 땅을 딛고 허리를 돌리며 두 팔을 움직였다.

호쾌한 스윙 궤적.

꽈아아앙-!

카이르무스의 몸뚱이가 또 한 번 바닥에 처박혔다.

“건방 떨지 말고 짐승이면 짐승답게 싸워, 이 도마뱀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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