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필로그. >
1.
[하회탈, 워로드 레벨 랭킹 1위 달성!]
[토봇 소프트 공식 발표 ‘이번 폐허 왕국 편이 메인 시나리오의 마지막이 될 것.]
[토봇 소프트 주가 하락, 워로드 거품 붕괴의 신호인가?]
[빅스마일 길드 해체, 라이브 채널에 대한 소유권 포기. 30대 길드의 라이브 채널
운영 수익 급감의 증거.]
[하회탈 충격 선언, ‘용과의 전쟁을 마지막으로 은퇴할 것’]
[워로드, 지는 해가 되다.]
[워로드의 뒤를 이를 가상현실게임의 스페셜원은 누가 될 것인가?]
[히드라 길드, 게임 플레이 케어 시스템을 앞세운 ‘히드라 컴퍼니’ 창설.]
[히드라 컴퍼니 창업자 에릭 곰스 인터뷰 ‘이미 워로드를 통해 히드라 컴퍼니의
서포트 능력과 게임 진행 능력은 검증됐습니다. 이제 일반 유저들도 그러한 케어와
서포트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채설연 인터뷰, ‘가상현실게임을 전문적으로 하는 우레사냥꾼 팀을 창단, 워로
드만이 아닌 다양한 가상현실게임에서 우레사냥꾼 길드의 활약을 볼 수 있을 것.’]
[가상현실게임스포츠 시대, 태풍의 눈인 하회탈을 잡는자가 시대를 잡는다?]
[하회탈 최후의 용과의 전쟁 시작. 우레사냥꾼 라이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 사전
라이브 티켓 판매량은 2천만 장!]
2.
그 몸길이를 결코 눈대중으로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용이 어둠 가득한
하늘 위를 날고 있었다.
“어휴휴······.”
그 용을 지상에서 바라보던 하회탈을 쓴 유저는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을 내뱉었다.
‘진짜 이 게임은 빌어먹을 게임이야.’
한숨을 내뱉은 유저, 히르칸이 다시 고개를 들어 용을 바라봤다. 몸길이 1킬로미
터, 그야말로 세상에 재앙을 가져오기에 부족함이 없는 존재감을 가진 최종 보스.
정식 명칭은 용.
유저들은 그런 단출한 명칭에 ‘종말의’ 라는 타이틀을 붙여줬다.
‘저 몸뚱이를 꼬리부터 타고 올라가서, 목덜미에 있는 상처에 전쟁왕의 창을 박으
라니.’
그리고 잠시 후, 히르칸은 종말의 용이라고 불리는 저 말도 안 되는 괴물 사냥을
시작할 것이다.
사냥 방법은 간단했다.
저 몸길이 1킬로미터에 다다르는 용의 꼬리가 바닥에 닿는 순간, 땅을 긁어가는
그 꼬리에 달라붙은 후에 그것을 시작점으로 하늘 위로 승천하기 시작하는 용의 목
덜미 부근까지, 꼬리부터 머리까지 1킬로미터에 다다르는 거리를 기어서 올라간 후
에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목덜미의 상처에 지금 히르칸이 쥐고 있는 조잡스럽기 그
지없는 창을 꽂으면 된다.
조심할 건 오직 하나였다.
추락!
로데오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거친 용의 몸뚱이 위에서 떨어지는 것만 조
심하면 된다.
“이딴 게임을 만든 새끼 얼굴을 한번 보고 싶군.”
당연한 말이지만, 미친 짓이다. 그리고 그 미친 짓을 히르칸은 홀로 해내야 한다.
히르칸은 벌써부터 현기증이 났다. 없던 고소공포증이 오늘부로 생길 것 같은 느
낌도 받았다.
- 하회탈, 준비해.
그때 하회탈의 귓가에 청아하기 그지없는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렸다.
- 조만간 용의 꼬리가 땅에 닿아.
시르, 그녀의 듣기 좋은 목소리에 히르칸은 미소보다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알아.”
그리고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 명심해. 용의 꼬리에 올라타면······.
“그쪽보다 잘 아니까 설명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 그리고 이 게임이 끝나면······.
“그 이야기는 그때 가서 하자고. 그리고 자꾸 아랫사람 다루는데, 난 아직 무소속
이거든?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라고.”
- 미안.
그 순간 히르칸의 퉁명스러운 반응에 시르가 사과를 했다. 히르칸의 말문이 갑자
기 막혔다.
‘······미치겠네.’
너무나도 얌전한 시르의 대응을 히르칸은 도무지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 말라고 해도 할 거니까 걱정 마. 내가 이제까지 해내지 못한 건 없으니까.”
결국 히르칸이 시르를 향해 이빨 대신 상황을 어루만지는 듯한 말을 내뱉었다.
- 파이팅.
그런 히르칸에게 시르가 응원을 던졌고, 히르칸은 그 말에 길디긴 한숨을 내뱉었
다.
그렇게 통화가 종료됐고, 하늘을 맴돌던 용이 점차 땅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동
시에 용의 꼬리가 바닥을 향해 내려오기 시작했다. 내려온 꼬리는 몇 분 후에 히르
칸이 있는 곳까지 올 듯했다.
그 용을 바라보던 히르칸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마지막이다.’
이번 전투가 마지막이다. 성공하든, 패배하든 히르칸은 더 이상 워로드에 남지 않
는다. 이미 대놓고 세상에 말했으니까. 성공하면 그대로 은퇴, 패배해도 그냥 포기
하고 은퇴를 하겠다고.
‘쪽 팔려서라도 복귀는 못하지.’
돌이킬 수 없는 짓을 했다. 이렇게까지 발표했는데 다시 게임을 한다? 히르칸 말
대로 쪽 팔려서라도 그런 짓을 할 수 없다.
물론 후회는 없었다.
‘그래, 이 기나긴 인연에 종지부를 찍어야지. 언제까지 워로드에 내 인생을 바칠
수는 없잖아?’
오히려 이 순간 히르칸은 후련했다.
과거로 돌아오기 전부터 과거로 돌아온 후까지 워로드와 엮인 인생. 워로드 덕분
에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고, 반대로 지금은 워로드 덕분에 비참했던 인생에 꽃을
피웠다.
생사고락, 희로애락을 함께 했다. 그러니 이제는 보내줄 때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게임은 없으니까. 세상 모든 건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끝이 있어야 새로운 시작
이 있으니까.
히르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히르칸의 움직임에 맞추어 그를 보던 해골
들의 시선이 움직였다.
조금 전까지도 히르칸을 위해 용이 부리는 전사들, 최후의 전쟁을 위해 온 용의
군단을 상대한 해골 전사와 기사 그리고 데스나이트의 온몸에는 전투의 흔적이 가
득했다.
‘아.’
그 전투의 상처를 바라보던 히르칸 잠시 멈칫했다.
“아.”
그들을 바라보며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히르칸이 가까이 있던 해골 전
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스윽!
해골 전사가 잽싸게 그 손을 피했다.
히르칸이 그런 해골 전사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히르칸은 그런 해골 전사를 향
해 다시금 잽싸게 손을 뻗었다. 해골 전사가 열심히 그 손을 피해냈지만, 어느 순간
히르칸이 해골 전사의 머리를 잡았다.
그렇게 잡은 해골 전사의 머리에 히르칸이 자신의 머리를 가져다 댔다.
“그동안 고마웠다.”
툭······ 툭······.
“이상한 주인 만나서, 여러모로. 그래도 너희들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히르칸이 해골 전사의 머리를 노크하듯, 가볍게, 부드럽게 자신의 머리로 두드렸
다.
“이제 안녕이다.”
그 말과 함께 히르칸은 쓰고 있던 하회탈도 벗었다. 그의 얼굴이 세상에 드러났
다. 그리고 조만간 우레사냥꾼의 라이브 채널을 통해 그 얼굴이 세상에 드러날 것이
다.
‘해골들도, 하회탈도, 이제 안녕이다.’
그와 동시에 세상은 하회탈 히르칸이 아니라, 하회탈 히르칸이었던 안재현을 기
억할 것이다.
“자, 그럼 끝장을 보자고.”
히르칸, 그가 그토록 길었던 하회탈과의 인연에 종지부를 찍었다.
3.
“로또 자동으로 만 원어치.”
손님의 주문에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태블릿 페이퍼를 통해 보고 있던 영상을
일시정지한 후에 계산을 시작했다. 손님의 주문대로 로또를 자동으로 뽑고, 손님이
계산대 위에 올려놓은 상품의 바코드를 찍었다.
“소고기 김밥에 소고기 라면······ 다 합쳐서 만오천 원입니다.”
“여기.”
“예, 감사합······.”
눈에 보이는 5만 원짜리 지폐를 거슬러주기 위해 움직이던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손님을 향했다. 손님은 깡마른 체격에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
었다. 전체적인 인상은 정말 호구 같은 인상, 무슨 짓을 해도 속일 수 있을 것 같은
인상이었다.
‘응?’
그 순간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눈앞의 손님을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물었다.
“저기 혹시 어디서 뵌 적 없나요?”
손님은 대답 대신 미간을 찌푸렸고,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자신이 괜한 소리를
했다는 생각에 재빨리 로또 영수증과 거스름돈을 손님 손에 쥐여주었다. 손님이 그
대로 편의점을 나갔고,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곧바로 멈춰 있는 태블릿 페이퍼의
영상을 재생했다.
- 어? 하회탈이! 하회탈이 하회탈을 벗었습니다!
“아!”
그 순간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기겁하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조금 전 나간 손님, 창밖 너머 편의점 바로 앞에 주차된 잘빠진 람보르기니 신모델
차량에 탑승하는 손님을 보며 소리쳤다.
“맙소사, 하회탈 히르칸, 안재현이잖아! 미친! 사인받아야 하는데. 사인, 사인
······.”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이 말도 안 되는 기회 앞에서 허둥지둥하던 사이, 손님이
탄 차가 가게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아오!”
결국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사인받는 걸 포기했다.
“미친, 내가 왜 하회탈을 못 알아봤지?”
하회탈의 열렬한 팬이었음에도 하회탈을 알아보지 못한 아르바이트생은 자책을
시작했다.
그 자책 끝에 의문을 표했다.
‘그런데 왜 하회탈이 로또를 사지? 워로드를 접었다고 해도 워로드로 엄청나게 돈
벌지 않았나? 저번에 올린 얼어붙은 왕국 편은 이번에 천만 구매를 돌파했었잖아?’
4.
람보르기니의 잘빠진 핸들을 잡고 있는 손의 손목에는 파텍 필립 사의 시계가 자
신의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다. 타고, 걸치는 것만으로도 어지간한 집값은 뺨치고도
남을 부를 자랑하는 사내, 안재현은 자신이 조금 전 구매한 소고기 김밥의 표정을
뜯은 후에, 김밥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기 시작했다.
그런 안재현의 머리 위로 조금 전 자신이 찍은 로또 번호가 아른거렸다.
‘역시 로또 번호를 외웠어야 했어.’
“빌어먹을 국세청!”
그 순간 안재현이 저도 모르게 절규를 토해냈다. 그와 동시에 안재현의 머릿속에
며칠 전 국세청 직원들과 나누었던 대화가 선명하게 재생되기 시작했다.
“안재현 씨, 탈루하신 세금이 제법 되십니다.”
“아니, 그건 탈루가 아니라······.”
안재현은 워로드를 은퇴하는 순간, 그동안 워로드를 하느라 하지 못했던 사치를
부리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최고급 아파트의 펜트하우스를 사서 이사를 했고, 그다
음에는 일시불로 람보르기니를 구매했다. 그 후에 차근차근, 새로 구매한 아파트 안
을 명품으로 채워 넣기 시작했다.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너무 행복해서 밥 먹을 시간마저 잊어버릴 정도로!
하지만 그런 안재현의 행복에 먹구름이 꼈다.
안재현이 워로드를 통해 거둔 어마어마한 수익, 그 수익에 부과된 어마어마한 세
금을 조금이라도 덜 내기 위해 부린 수작이 국세청에 걸리고 만 것이다.
물론 안재현은 그걸 수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고용한 세무사는 다들 하
는 거라고, 안 하는 게 바보라고 말했으니까.
“안재현 씨의 사정이 어떻건 우리들 역할은 안재현 씨가 내셨어야 하는 정당한 세
금을 징수하는 겁니다.”
어쨌거나 문제가 터졌고, 평생 상대해본 적 없는 국세청 직원 앞에서 안재현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방법은 둘 중 하나입니다. 강제로 집행하거나, 아니면 서로 합의 하에 강제가 아
니라 협력적인 징수를 하거나.”
“혀, 협력하겠습니다.”
세금을 내기로 했다.
문제는 그 세금을 단숨에 낼 목돈이 안재현의 수중에 없다는 점이었다. 세금이 한
두 푼이 아니었으니까. 결국 안재현은 워로드 영상 판매 및 후원금, 스폰서를 통해
버는 수입을 차압 당했다.
그게 이유였다.
“빌어먹을.”
지금 안재현이 편의점에서 소고기 김밥과 소고기 라면 그리고 로또를 사서, 로또
당첨을 기도하는 이유.
‘채설연한테 가서 고기 사달라고 하면 사줄까? 젠장, 그래도 그동안 채설연 앞에
서 그렇게 당당하게 나왔는데 여기 와서 소고기 좀 사달라고 하면 내 체면이 어떻게
되겠어? 아, 미쳤지. 그냥 돈으로 가지고 있었으면 됐을 텐데, 왜 내가 거기서 하지
도 않던 사치를 부려서······.’
이런저런 고통과 고뇌를 씹던 안재현이 소고기 김밥 한 조각을 다시 한 번 잘근잘
근 씹었다.
그때 전화가 왔다.
“통화 수신!”
안재현이 소리치자, 안재현의 눈앞에 전화기 모양의 홀로그램이 생성됐다. 발신
자 이름도 표시됐다.
발신자는 채설연.
- 안재현, 토봇 소프트가 차기작을 공식 발표했어.
- 워로드의 차기작은 두 가지 버전이 존재합니다. 하나는 일반 유저들도 즐길 수
있는 라이트 버전,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 누구도 깰 수 없는 프로 버전입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토비 그윈, 그의 목소리가 안재현의 차 안을 가득 채
우기 시작했다.
- 프로 버전은 최근 급격하게 성장하는 가상현실게임스포츠 시장을 공략하기 위
해 만드신 버전인가요?
- 워로드 때도 그랬지만, 토봇 소프트는 언제나 특별한 하나를, 스페셜원을 만듭
니다. 결코 다른 것과 같은 걸 만들지 않습니다. 이번 차기작은 가상현실프로게이머
들을 향해 토봇 소프트가 내미는 도전장입니다. 장담컨대 그 어떤 게임보다 어려운
게임이 될 겁니다.
- 난이도가 어느 정도 되나요?
- 하회탈의 해골을 기억하십니까?
- 물론입니다. 여전히 전설로 남아있죠.
- 그 하회탈의 해골이 가진 전투 인공지능을 딥러닝 시스템을 통해 강화했습니
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전투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몬스터들의 전투 인공지능
을 설정했습니다. 장담할 수 있습니다. 이번 게임은 하회탈, 그에게도 버거운 게임
이 될 겁니다.
토비 그윈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었다.
- 안재현.
다시 채설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 우레사냥꾼의 다음 목표는 워로드의 차기작이야. 이미 멤버는 결정됐어. 당연
히 네가 우레사냥꾼의 일원으로 데뷔하는 데뷔무대가 될 거야.
그 말에 안재현은 대답에 앞서 미소를 지었다.
“하고 싶은 말은 그게 다인가?”
- 그래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전부. 대신 궁금한 게 있어.
“말해봐.”
- 네가 키우고, 훈련한 해골을 적으로 만나게 됐는데 심정이 어때? 넌 네 해골과
싸운 적이 단 한 번도 없잖아?
그 질문에 안재현의 미소가 입가에서 지워졌다.
‘가만.’
안재현은 그 질문을 받고 진지하게 고민했다. 고민할수록 안재현의 표정이 구겨
졌다.
“빌어먹을 게임일 거야. 아주 빌어먹을 게임······ 젠장, 그냥 다른 게임 하면 안
될까?”
- 계약서에 사인한 건 너야. 물론 위약금을 지불하면 되는데, 그럴 돈이 있어?
그 말에 안재현이 긴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그보다 우리 길드는 회식 안 해? 소고기 집 같은 곳에서 정모 같은 거 안 하나?”
대답은 없었다. 이미 통화는 종료된 상황이었으니까.
핸들을 잡던 안재현은 슬그머니 파텍 필립 시계를 바라봤다.
< 에필로그.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