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솔플의 제왕-190화 (190/192)

< 64화. 솔플의 제왕. >

1.

역사적 사건들 속에는 때때로 영문을 알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하고는 한다.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지만,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것, 어디에도 기록 되지 않고, 그 무언가를 행한 이들은 그 누구에게 도 말하지 않은 재 속으로 품은 채 무덤으로 가지 고 가는 것.

지금 시작되는 대화는 그 간극 속의 대화였다.

"이야기 파트너가 미인에서 갑자기 사내로 바뀌게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우리 여왕님이 당신을 너무 좋아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거래를 할 때면 우리가 손해보는 거래를 하죠. 그래서 부득이하게 제가 나왔습니다."

해치는 말과 함께 는앞의 상대를 봤다.

하회탈을 뒤집어쓴 재, 번개빚을 떠올리게 하는 노란빚 천옷을 입고 있은 히르칸을 바라봤다.

괴물을 바라보듯이 바라봤다.

'설마 정말 여기까지 올 줄이야.'

그리고 실제로도 괴물이었다. 흔자 힘으로 기어코 야만왕을 잠들게 만들었다. 말도 안 되는 방법 을 실천에 옮겼다.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짓을 해냈다.

'손에 죌 수 없으면 부수는 수밖에 없어. 그게 아니면 하회탈은…… 어찌할 수 없으니까.'

그런 괴물 앞에서 해치는 감정을 가라앉히고, 억지로라도 미소를 지은 재 말했다.

"같은 스승을 모시는 처지에 분위기는 좀 풉시다. 그쪽도 아힘브리의 제자잖아요? 그리고 순서 로 따지면 내가 당신 사형입니다. 물론 사형 대접을 해달라는 건 아니지만……"

나름 분위기를 풀기 위한 말이었지만, 효과는 없었다. 히르칸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사실 대화를 위한 자리도 아니었다. 이 자리는 설명을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죄송합니다. 바로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우리 여왕님이 당신께 한 제안이 무슨 의미인지."

후우우.

해치는 숨을 길게 내쉬면서 머릿속의 이야기를 정리했다.

"대개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은 게임을 하는 걸 좋아합니다. 이 이야기는 조금 긴 이야기가 되겠지만…… 그래도 참고 들어주십시오. 아직 시간은 남아있으니까."

말을 뱉는 해치의 분위기가 내쉰 숨소리처럼 가 라앉았다.

"어쨌거나 게임을 만드는 이들은 막상 자기가 만든 게임을 즐기기는 힘듭니다. 그렇잖아요? 자기가 만든 걸 해보면, 안 좋은 점만 눈에 들어오고, 어디가 재미있는 포인트고, 공략법이 어떤지도 알고 있고…… 그리고 여차하면 그냥 자기 편하게 치트를 쓰기도 하죠. 그러다 보면 이런 생각을 합니다. 진짜 미지로 가득 찬 게임을 하고 싶다. 뻔하더라도, 뭐가 있는지 모르는 게임이 하고 싶다."

해치가 잠시 과거를 회상하고, 추억에 잠기고, 이 내 그 추억에서 바로 빠져나왔다.

"워로드는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물론 인공지능 을 이용해 만드는 게 인건비 절약을 위해 필수적 이었고 그래서 투자자들이 투자를 했지만…… 그래도 만들고자 하는 이들은 그런 마음으로 만들었습 니다. 그리고 그게 워로드가 비슷한 수준의 여러 게임들과 다르게 스페셜원, 특별한 것으로 남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

히르칸은 여전히 반응하지 않았다.

"부연 설명을 하면, 오래전 세계최고의 바둑기사 와 인공지능이 바둑을 두었습니다. 그 경기에 바둑을 모르는 사람들마저 열광했습니다. 그런 겁니다. 인공지능이 만든 건 미지입니다. 때문에 그런 인공 지능과의 대결, 승부를 누군가는 인류 가치의 증명이라고도 생각하죠. 워로드가 그랬습니다. 인공지능이 하나부터 열까지 만들고, 관리를 한다! 때문 에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워로드에 관심을 가 지고, 그 관심을 가지는데 요구되는 돈을 망설임 없이 지불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그것이 끝나는 순간 워로드는 그 가치를 잃습니다. 그리고 아직 세상의 인공지능은 워로드와 같은 게임을 영원토록 관리 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해치도 그런 히르칸의 반응을 더 이 상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워로드가 만든 세상의 끝에 왔습니다. 이번 메인 시나리오가 마지막입 니다. 야만왕 을 잡고, 전쟁왕의 유물을 확보한 후, 용과의 전투 를 치르면 이 게임은 평범한 게임이 됩니다."

"그래서?"

그리고 이 순간 처음으로 히르칸이 반응을 했다. 해치가 그 반응에 후후, 실소를 홀렸다.

"평범한 게임이 된 워로드에 지금 하회탈, 당신 이 누리는 것과 같은 부와 명예는 없습니다. 그저 사냥을 하는 영상 하나를 찍은 것만으로도 수억 원 이 넘는 수입을 거두는 일도, 당신에게 세계 굴지 의 업체들이 어마어마한 액수의 스폰서 비용을 지불하는 일은 없습니다. 물론 돈은 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만큼은 못 법니다. 달리 말하면, 당신이 몇 가지 장난을 치면, 당신은 이 말도 안되는 부와 명예를 좀 더 벌 수 있습니다. 아마 당신이 이 게임을 이대로 1년 동안 한다면, 당신은 수백억 짜리 빌딩 주인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이런 질문을 하는 겁니다. 당신은 이 게임을 당장 끝낼 수 있습니까? 그 모든 걸 포기하고?"

그 말에 히르칸은 기억을 조금 전으로 되돌렸다.

시르는 말했다.

"마지막 제안이야."

마지막 제안이 라고.

"이 게임을 같이 끝낼 것인지, 아니면 나와 전쟁 을 할 것인지."

자신과 같이 워로드란 게임의 영광에 종지부를 찍을 것인지, 아니면 워로드의 수명연장을 위해 자 신과 맞서 싸을 것인지.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그녀가 그 짤막한 제안을 내밸었을 때 해치가 나서서 시르를 가로막았다. 갑작스러운 시르의 제안을, 해치가 지금 이 순간 제대로 설명을, 해석을 해줬다.

덕분에 히르칸은 모든 걸 이해했다.

자신의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워로드란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더 나아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흑시 당신 프로그래머였나?"

히르칸의 질문에 해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전직이지만."

"워로드 제작에 참가했고?"

"본격적으로 참가한 건 아니고, 워로드가 사람이라면 새끼발가락 정도는 제가 만들었습니다."

"나도 대답에 앞서서 몇 가지 이야기를 하지."

예, 라는 짧은 대답과 함께 해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이 게임은 끝낼 거다. 네놈들이 방해를 하더라도, 30대 길드 전부가 날 방해하려고 해도 난 이 게임을 끝장을 낼 거야."

해치는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우레사냥꾼과의 전쟁은 조금도 두렵지 않아.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진심으로. 이기든 지든, 우레사냥꾼 길드가 나한테 전쟁을 걸면, 피할 생각은 추호도 없어. 달리 말하면 내가 무슨 선 택을 해도 우레사냥꾼이 무서워서 결정을 하는 건 결단코 아니야."

"하하……

해치가 짧게 웃었다. 그 웃음에 히르칸도 웃었다. 여러 감정이 섞인 웃음이었다.

"마지막으로 이 게임에서 난 절대 그걸 달지 않아."

"예?"

해치가 웃음을 멈추고, 놀라며, 히르칸의 손가락 이 가리키는 자신의 가슴팍을 바라봤다.

우레사냥꾼 길드의 상징.

해치는 이 순간 정말 궁금해서 질문을 던졌다.

"아니, 대체 왜 우리 길드 가입을 거부하는 겁니 까? 솔직히 나쁜 대우를 제시한 것도 아니고, 당신 한테 한 대우는 내 기준에서는……"

해치의 반발에 히르칸은 해치의 가슴팍을 가리 켰던 검지로 제 입술을 가로 막았다.

해치가 입을 다물었다.

그제야 조용해진 상황에서 히르칸이 입을 열었 다.

"그러니까 제안은 거절이다. 대신 거래를 하지."

2.

간극이 끝나고, 다시 한 번 역사가 진행되기 시 작했다.

[야만왕 네샤가 봉인되었습니다.]

"어?"

"진짜?"

비즈마 평야를 가득 재운 유저들은 물론 워로드 에 현재 접속한 모든 유저들의 귀에 워로드는 알려줬다.

그리고 그 소식은 곧바로 게임 밖에 있는 유저들에게도 찰나의 간극만을 둔 채 전달됐다. 워로드 란 것을 크든 작든, 삶의 일부분으로 채워넣고 있 던 모든 이들이 알게 됐다.

-맙소사.

-우와.

-하회탈이….

기어코 그가 해냈다는 것을.

하회탈.

그가 불가능을 가능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악몽 을 길몽으로, 자신을 전설로 바꾸었다는 것을.

3.

"히르칸!"

씽은 히르칸을 향해 달려왔다. 당장에라도 히르칸을 껴안아 죽일 기세로.

그런 씽을 향해 히르칸은 단호하게 말했다.

"만약 다가와서 포옹을 한다든가, 뽀뽀라도 시도 하면 넌 그 시간부로 죽는다."

덥썩!

씽은 그런 히르칸의 말을 무시하며 그를 껴안았 다. 히르칸이 소리를 내질렀다.

"야!"

"고맙다."

말과 함께 씽은 더 힘차게 히르칸을 안았다. 만 약 이것이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었다면, 씽의 는물 이 히르칸의 어깨를 적셨을 것이다. 씽은 그만큼 고마워하고 있었다.

히르칸은 그런 씽을 억지로 때어냈다. 근력 스탯 이 히르칸이 훨씬 높은 탓에 히르칸은 쉽게 씽의 품을 나왔다.

"됐고, 마무리 준비해야지. 그리고 나 흔자 잡았 으니까 당연히 내가 다 먹는 거다."

이 순간에도 계산을 하는 히르칸의 모습에 씽은 실소를 지었다. 씽은 이런 히르칸이 자신을 위로하 기 우I해, 그리고 이 축제를 축제로 남기기 위해 그 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이상 괜한 말을, 고맙다는 말도, 미안 하다는 말도, 수고했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 너 흔자 다 해먹어라. 다 해먹어!"

맞장구를 쳐췄다.

하지만 이 순간 히르칸은 진심이었다. 히르칸의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다.

'퍼스트원이 프로그램일 줄이야……'

우레사냥꾼 길드와 거래를 했다.

그 거래에 따라 우레사냥꾼 길드는 히르칸이 이 게임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말해췄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히르칸의 레벨이 퍼스트원 설 우의 레벨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해치가 설명을 해췄다.

"퍼스트원 설우는 프로그램입 니다. 애초에 사람 이 그렇게 게임을 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런 퍼 스트원의 역할은 워로드를 관리하고, 설계하는 M.I 의 가늠자입니다. 유저들이 퍼스트원과의 레벨 격 차가 어느 정도 인지, 게임 진행 상황이 어느 정도 인지, 후발주자들이 퍼스트원과의 격차를 얼마만 큼 줄였는지, 그러한 요소들을 계산해서 게임의 진 행 속도를 컨트를하는 겁 니다."

그 설명을 들었을 때 히르칸은 어처구니가 없었고, 한편으로는 퍼스트원 설우가 그 명성과 인지도 에 비해 외부적인 활동이 극히 드물었던 이유오K 제작한 영상 역시 대부분 자신이 사냥하는 영상을 일기 형식으로 내놓았다는 것, 본격적인 레이드 영 상이 없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레벨 랭킹 2위만 병신이 됐군. 내가 레벨 랭킹 2위였다면 토봇 소프트를 고소하겠어."

동시에 퍼스트원을 잡기 위해 레벨업에 목숨을 바친 유저들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어쩌겠습니까? 애초에 워로드란 게임은 테스트로 만든 게임입니다. 그런 걸 신경 쓸 여유는 없었 죠. 고소 당해도 싸죠. 본론으로 돌아오면, 하회탈 당신이 퍼스트원을 넘는다는 건, 워로드를 관리하 는 M.I에 더 이상 문제를 풀 수 있는 연필과 지우 개를 빼앗는 것과 같습니다. 당연히 M.I는 마무리 작업에 들어갑니다. 진정한 의미의 최종 보스를 세 상에 내놓을 겁 니다."

퍼스트원을 따라잡는 것.

그게 이번 에필로그에 다다르는 방법이었다. 그 리고 히르칸은 당연히 그럴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야만왕을 처치하고 얻 을 수 있는 크로니클 유니크 아이템이 필요했다.

'바로 따라잡아주마.'

히르칸, 그는 최후에 힘을 잃을 생각이 없었다.

그는 마지 막까지 불타을라, 최후를 장식하는 횃불이자, 상징이 될 생각이었다.

더 나아가 진정한 의미의 제왕이 될 생각이었다.

'솔플의 제왕. 끝내주는군.'

이건 아무리 봐도 손해입니다."

비즈마 평야를 떠나 하르드 유적 요새로 향하던 해치는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여왕님, 진짜 이건 말도 안 되는 거래입니다. 우리가 왜 레드불스를 영입하고, 히드라 길드와 손을 잡았습니까? 워로드의 종지부를 우리 이름으로, 우레사냥꾼 이름으로 찍으려고 한 거 아닙 니까?"

그 말에 시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입 꼬리 한쪽을 실쭉거렸다.

"그런데 하회탈이 혼자서 용을 잡게 놔둔다? 그 걸 우리가 전폭적으로 지원해준다? 솔직히 이게 무슨 병신 짓입니까? 완전 전부 죽써서 하회탈 주는 골이잖습니까! 그렇다고 하회탈이 우레사냥꾼 길 드 소속으로 싸우는 것도 아닌데!"

해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시르에게 말 이 통하지 않다는 걸 직시했고, 그는 곧바로 분노 의 대상을 바꾸었다.

"아니, 그보다 하회탈은 무슨 자신감으로 어떤 놈이 나올지도 모르는 최종보스를 상대로 혼자 하겠다고 나서는 겁 니까? 용이 어떤 놈인지 알고? 그 새끼도 이상한 새끼라니까. 분명 머리에서 나사가 대여섯 개는 빠져있는 놈일 겁니다."

"하회탈이 실패를 하면 우리 차례. 나뿔 건 없는 것 같은데."

잠자코 이야기를 듣던 체브가 한 마디 던졌다.

그 말에 해치는 실소를 지었다.

"아, 그래요? 그래서 아가르도를 하회탈에게 그냥 주셨죠?"

"그건…"

"그게 하회탈 방법입니다. 내가실패하면 너희들이 대신 잡아! 하지 만 그 인간은 실패를 하지 않죠. 아누가스 때도 그랬습니다. 하회탈이 아누가스 레이드에 실패하면 그다음은 우리 차례. 하지만 결국 하회탈은 아누가스를 잡아냈죠."

체브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때 시르가 씰룩거리던 입을 열었다.

"만약 하회탈이 실패하면 용은 우리 것이 되는거지"

"그야....."

"반대로 하회탈이 성공하면 그가 우리 것이 되고."

해치는 무어라 말하려고 하다가 이내 포기했다.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젠장, 여왕님이 완전히 하회탈에게 빠졌군.'

하회탈과 제안했다.

자신이 흔자 용을 잡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도와준다면, 워로드가 아닌 다른 게임에서 우레사냥꾼의 이름을 달아주겠다.

'어휴, 이 길드는 제대로 된 인간이 하나도 없어. 죄다 또라이 새끼들 밖에 없는데, 개중에서도 가장 말이 안 통하는 또라이가 왔군.'

해치가 워로드의 끝과 함께 자신의 동료가 될 하회탈을 떠을리며 한숨을 내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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