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야만왕 (5). >
14.
"뚫었다!"
- 길 뚫었어!
전투 개시와 함께 시작된 건 대치전이었다 마법사들은 마법을 포격했고, 탱커들이 선을 그어 마법사를 노리는 몬스터를 막아섰다. 그렇게 시작된 대 치국면 속에서 서로 머릿수를 줄이는 전투가 진행 되는 사이, 여덟 개의 팀이 그 대치국면에 구멍을 뚫었다.
"드루가! 드루가!"
"스트라이커들이 사제랑 마법사 업고 뛰어!"
"빨리 안으로 들어가!"
그리고 그렇게 뚫은 구멍 안으로 대규모 병력이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구멍 안으로 들어 간 유저들은 야만왕을 등졌다. 야만왕을 등진 재, 마치 야만왕을 지키려는 듯이 벽을 세우기 시작했 다.
"포지션 확보!"
-포지션 확보하면 힐러들 탱커 뒤에 바짝 붙어!
-별동대들 빠져나오는 놈들 상대하고! "위급하면 마법사들이 마법 던져서 야만왕 근처로 가는 몬스터 어그로 끄는 거 잊지 마!"
-마법사 팀에게 말한다. 범위 마법은 자제하라. 타깃 마법으로 전환하라. 다시 말한다. 범위 마법 은 자제하라. 링이 만들어졌다. 타깃 마법으로 전 환하라.
일명 도넛 작전.
야만왕을 지키기 위해 빠져나온 몬스터들이 야 만왕으로 돌아갈 수 없도록 오히 려 야만왕으로 향 하는 길목에 탱커들이 진을 치고, 벽을 만드는 것. 야만왕을 중심으로 유저와 몬스터들이 도넛 모양 형태를 갖추는 것.
그게 이번 작전의 핵심이었다.
- 하회탈이 준비 중이다.
그리고 그렇게 비어버린 도넛 속은 하회탈 그리고 야만왕을 위한 무대였다.
그 시작을 알리는 건 바로 본 드래곤이었다.
하늘 위를 날아간 본 드래곤이 가장 먼저 야만 왕을 향해 몸을 날렸다. 몸길이 20미터, 거대한 본 드래곤의 위용은 무시무시했다. 220레벨의 드래곤 타입 보스 몬스터의 뼈 재료를 재료 삼아 만든 값어치를, 수만 골드에 다다르는 값어치에 어울리는 위용이었다.
그렇게 야만왕 앞에 착지한 본 드래곤을 향해 아직 야만왕 근처에서 멤돌던 몬스터들이 쏜살같이 달려갔다. 거대한 본 드래곤의 몸에 거대한 몬스터 들이 달라붙었다.
그리고 몇 초 후…
콰과과광!
본 드래곤의 몸을 재우고 있던 일천 개의 뼈폭 탄이 동시에 폭발을 하며 본 드래곤을 노렸던 모든 몬스터를 삽시간에 폭파했다.
그게 신호였다.
- 하회탈이 움직인다!
그 신호를 시작으로 하회탈이 달렸다. 유저들이 목숨을 걸고 만들어준 벽을 향해 히르칸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 히르칸의 뒤로 해골 전사들이 따라 붙었다.
그 무리가 단숨에 유저들이 만든 벽 위를 뛰어 넘었다.
"오오오!"
"하회탈이다! 하회탈 님이 나를 보셨어!"
"널 본 게 아니라, 네 앞에 있는 몬스터를 보신 거야!"
"하회탈, 너만 믿는다! 야만왕 새끼를 끝장내버려!"
자기 머리 위로 제비처럼 날아가는 하회탈과 그 의 해골들을 향해 탱커와 사제, 스트라이커들과 마 법사들이 응원을 던졌다.
그 응원을 등진 재 하회탈이 야만왕을 향해 달 리기 시작했다. 그런 하회탈에게 다가오는 몬스터 의 숫자는 적었다. 본 드래곤이 미끼가 되고, 자폭을 하면서 그나마 남아있는 잔당들을 제거해준 덕 분이었다.
흑여 남은 잔당들은 해골 전사들의 몫이었다. 히르칸이 감속하는 사이, 해골 전사들이 히르칸을 앞 지르며 주인을 노리고 덤벼드는 몬스터들을 제거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몇은 주인의 가장 큰 적 야만왕을 향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돌진했다.
그 해골 전사의 겁없는 도전에 이제까지 묵묵부답, 자리만 지키고 있던 야만왕이 움직였다.
후우응!
야만왕은 축 늘어진 코를 채찍처럼 휘둘렀다. 그 한 번의 휘두름에 야만왕에게 접근하던 해골 전사 두 마리가 산산조각이 난 채 날아갔다. 하지만 개 중 한 마리는 그 공격을 피해낸 재 오히려 야만왕 의 발치에 접근했다. 그리고 손에 죈 검으로 야만 왕의 갑옷에 있는 보석을 찔렀다.
한 번이었다.
해골 전사는 한 번의 공격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야만왕의 손에 그대로 잡혀버렸다.
콰직, 콰직!
그리고 야만왕은 본 아머와 타투 스콜피언 세트로 무장한 해골 전사를 갑옷째로 손아귀 안에서 몽개버렸다. 다른 몬스터에게는 난공불락이나 다름 없었던 해골 전사들이지만, 야만왕의 손아귀 속에 서는 그저 부서지기 쉬운 장난감에 불과했다.
해골 전사가 터지면서 내뿜는 타투 스둘피언의 독 역시 야만왕에게는 아무런 효과도 주지 못했다.
하지만.
과앙!
야만왕의 손아귀에서 일어난 폭발은 야만왕에게 나름 효과가 있었다. 야만왕의 손아귀가 얼어붙었 다. 초월급 고대의 힘, 전설급 고대의 힘 그리고 신 화급 고대의 힘인 서리의 힘마저 깃든 뼈폭탄의 위 력은 야만왕의 손아귀를 잠시 동안, 3초 남짓 봉인
그 3초 남짓한 시간, 천금 같은 시간을 이용해 히르칸이 본 스피어를 던졌다.
내던진 본 스피어는 야만왕의 어깨에 달린 갑옷, 그 갑옷에 박힌 적색 보석에 그대로 꽂혔다.
놀라운 명중를!
그러나 히르칸은 그 명중률에 탄성이나 감탄사 따위는 티끌도 내밸지 않았다.
시간과의 승부이니까.
유저들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다. 더 나 아가 해골 전사들을 비롯해 이제부터 자신이 소환 할 자신의 부하들이 야만왕을 상대로 버틸 수 있 는 시간도 길지 않다.
그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야만왕의 몸을 두르고 있는 서른한 개의 수호의 보석을 파괴해야 한다.
수호의 보석은 최소 2번 이상의 공격을 당해야 파괴된다. 즉, 보석 파괴를 위해 62번의 공격이 필 요하다. 한 번 공격에 1분이 걸린다면 무려 한 시간 넘는 시간이 필요한 셈.
그만한 시간은 당연히 없다.
그래서 히르칸은 자리를 잡았다. 가늠하지 않기 위해서. 속전속결, 단숨에 본 스피어를 던져 보석 을 맞추기 위해서.
그게 히르칸이다.
그는 천재, 가상현실게임의 무대 속에서 그 누구 와도 재능도, 실력도 비교를 거부하는 불세출의 천재다.
만약 그가 마법사를 했다면, 발리스타는 자신의 별명을 히르칸에게 내줬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 히르칸의 창은 날렵한 호선을 그리며, 다시 한 번 야만왕의 갑옷 보석에 박혔다.
푸홧!
[첫 번째 수호의 보석이 파괴되었습니다.]
보석 하나가 파괴됐다. 뿌오오!
그 순간 야만왕 거대한 코를 가진 짐승만이 내 지를 수 있는 굉음을 토해냈다.
고동 소리처럼 길게 퍼지는 그 소리에 히르칸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내질렀다.
"그래 와라! 끝장을 보자!"
15.
-움직인다.
치열한 전장, 탱커가 몬스터를 막아내는 사이 스트라이커들이 몬스터에 달라붙어 아머 브레이킹을 시도하고, 아머 브레이킹 작업이 끝난 몬스터들을 향해 마법사들이 마법을 던지고, 이 난장 속에서 한 명이라도 더 전투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활 약할 수 있도록 사제들이 움직이는 전장
그 전장 속에서 담담히 몬스터를 사냥하던 핸즈 길드의 멤버, 음지에서 활동하던 아홉 명에 명령이 내려왔다.
그 명령이 내려오는 순간, 이제까지 적당한 활약 을 하던 자신들의 위치를 벗어났다. 걸음을 옮겼다.
유저들이 목숨을 바쳐 만든 링을 향해서.
"어이!"
누군가가 그들을 불렀지만, 그들은 마치 못 들은 척 연기를 하며, 무대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물론 그들을 그렇게 마냥 놔두는 이는 없었다. 그들과 같은 변수의 등장을 막는 역할을 가진 이 들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봐, 이 안은 출입금지라고."
"아, 그게......
핸즈 길드의 멤버들은 자신의 앞을 막은 유저를 바라보며 잠시 동안 고민했다.
그 고민이란 상대를 무시할까, 싸을까, 같은 고민이 아니었다.
어떤 식으로 제거를 해야 신속하게 제거를 할 수 있을까? 그런 종류의 고민이었다.
그 고민을 위해 그 아홉 명은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은 상대를 좀 더 유심히 관찰했다.
그제야 그들은 눈치챌 수 있었다.
"레드불스?"
"우레사냥꾼?"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은 게 누구인지.
17.
비즈마 평야가 어렴풋이 모이는 곳에 이백이 넘는 대규모 유저 무리가 숨을 죽인 재 비즈마 평야 의 전투를 바라보고 있었다. 붉은색 로브를 뒤집어 쓴 유저 역시 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그 순간 전장을 바라보던 그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해치!
전화를 받자마자 곧바로 호통이 터져 나왔다. 그 호통에 해치는 을상을 짓거나, 인상을 찌푸리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다. 오히 려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 누구세요?"
- 불가침 조약을 위반할 속셈이 냐!
발신자는 호루스.
당연한 말이지만 발신자의 정체를 해치가 모를 리 없다. 심지어 조금 전 발신자가 호루스라고 나 왔고, 그걸 알면서도 받았다.
"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요?"
-감히...... 감히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쳐?
"뒤통수요? 흑시 저 아세요?"
-해치!
"우리가 아는 사이였나요? 뭔가 계약이라도 했 나요?"
-이 빌어먹을 개새끼야! 이런 식으로 나오고도 무사할 것 같아?
"정말 몰라서 묻는 건데, 제가 무슨 잘못을 했나 요? 흑시 제가 잘못했다는 걸 증명할 만한 계약서 나, 법정에서 유효한 증거라도 있으신가요?"
-네놈
"아, 자세한 이야기는 우리 길드 변호사랑 하세 요. 비싼 변호사이 니까 섣불리 덤비지 마시고요. 아, 지금 통화 내용은 녹음할 겁니다. 나중에 법정에서 불리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시길."
말과 함께 통화를 종료한 해치에게 하희가 다가 왔다.
"누구 전화야?"
"아, 여자 친구."
해치가 툭, 대답했다.
"뭐?"
하희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겁한 표정 을 지은 재 해치를 바라봤다. 그런 그녀의 표정에 해치가 오히려 당황했다. 너무나도 당흑감 가득한 표정, 세상이 무너질 듯한 표정이었으니까.
"아니, 그냥 아는 사람. 장난이야, 장난."
보통 때라면 이 상황에서 그녀를 놀리고도 남을 해치가 저도 모르게 장난을 멈출 정도, 그 정도로 하희의 표정은 엄청났다.
"놀랐잖아!"
그런 해치의 설명에 하희의 표정이 삽시간에 바 뀌었다. 흥신악살의 표정을 지었다.
이제야 하희다운 표정에 해치가 제정시을 차린 듯, 평소다운 대응을 나섰다.
"아니, 내가 애인이 있는데 네가 왜 놀라? 이상 하네. 너 나한테 관심있냐? 나 좋아해?"
하희는 대답 대신 해치를 노려봤다. 그 기묘한 광경에 제약을 건 건 시르였다.
"핸즈 길드인가?"
"예."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그들에게 한 명이 다가왔다. 솟아오른 뿔이 인상적인 투구를 쓴 유저의 정체는 다름 아니라 레드불스 길드의 길드 마스터, 마타도르 체브였다.
"지금 핸즈 길드 헬퍼들과 교전을 시작했다더군."
시르가 곧장 질문을 던졌다.
"결과는?"
"교전 중인데...... 상대가 상대인 만큼 쉽지는 않겠지."
"실력을 보여줘. 그게 아니라면 비싼 돈을 들여 서 길드를 통째로 산 보람이 없으니까."
그 말에 체브는 대답 대신 어색한 미소를 지었 다. 이제는 절대복종을 해야 하는 상관이 되어버린 시르의 말을 홀려들을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으니까.
"열심히 하지."
체브의 대답에 시르는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렸다. 비즈마 평야, 유저들이 만들어낸 그 무대 위에서 춤을 추듯 야만왕과 전투를 치르는 하회탈을 바라 봤다.
그런 그녀의 시선에 해치가 조심스레 말했다.
"하회탈이 제안을 거절하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때 한 이야기대로 해야지."
"그럼…… 하회탈과 전쟁을…"
시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표정한 모습으로 전장을 바라봤다.
16.
히르칸은 모든 카드를 꺼내지 않았다. 위기 상황이 올 때마다 자신이 가진 카드를 하나씩 꺼냈다. 처음에 이끌고 온 해골 전사 오십 마리가 전부 뼛조각이 되었을 때, 그제야 히르칸은 해골 기사들 을 소환했다.
해골마를 타고 등장한 해골 기사들 역시 망설임 없이 야만왕을 상대로 활약을 보여줬다.
치고 빠지고!
해골마를 이용한 기동력을 해골 기사들은 십분 발휘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해골 기사들을 데 스나이트로 착각할 정도였다. 달리 말하면 그건 오 랜 세월 동안 히르칸이 해골 기사들을 데리고 정 말 제대로 된 그리고 수준 높은 전투를 치러왔다 는 증거 였다.
히르칸이 아니었다면 해골 전사든, 기사든 이토록 뛰어난 전투 인공지능을 가지는 일은 없었을 테니까.
감격.
자신이 키운 자식의 눈부신 활약을 바라보는 부모만이 느낄 수 있는 감격마저 느껴질 정도.
하지만 그 감격에도 한계는 있었다. 야만왕을 상대로 해골 기사들이 할 수 있는 건 결국 시간벌이에 불과했다.
결국 해골 기사들이 퇴장을 하고, 골렘들이 차례 차례 등장했다. 찰흙놀이 스킬을 통해 오우거의 모 습을 빌린 네 마리의 골렘들은 야만왕을 상대로 조금도 밀리지 않은 덩치를 자랑했다.
그러나 오히려 골렘들은 해골 기사들만큼 버티지 못했다. 야만왕의 코끼리 코는 흙골렘과 아이스 골렘을 단숨에 박살을 낼 만큼 위력적이었고, 야만 왕의 악령은 아이언 골렘마저 뜯어버리고 찌끄러 뜨릴 정도로 무시무시했다.파이어 골렘의 처지가 가장 불쌍했다. 파이어 골렘의 거듭된 공격을 야만 왕은 신경조차 쓰지 않고 무시했다. 파이어 골렘의 불길이 야만왕에게는 조출한 생일파티의 촛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골렘들이 번 시간은 그 무엇보다 귀중한 시간이었다. 그들의 희생 덕분에 히르칸은 데스나 이트 소환을 마칠 수 있었으니까.
등장한 데스나이트는 골렘들의 잔해 위에서 야만왕과 자응을 겨루기 시작했다.
데스나이트는 야만왕과 유일하게 뒷걸음치지 않은 채 제대로 맞서 싸웠다.
동시에 데스나이트의 등장과 함께 발동된 [불멸] 스킬이 아직 죽지 않은 해골 전사와 기사들을 깨 웠다. 다시 모습을 갖춘 해골 부하들이 야만왕을 향해 불사의 의지를 표현했다.
'고맙다.'
그들의 노력에 히르칸은 감탄했다.
'고마워.'
해골들의 활약에 히르칸은 감사했다.
[서른한 번째 수호 보석을 파괴했습니다.]
그리고 전투 시작 48분째, 히르칸이 서른한 번 째 수호의 보석을 파괴했다.
그 순간 히르칸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2페이즈 시작."
히르칸의 그 말은 나지 막했다. 옆에 있는 사람조차 귀를 기을여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 2페 이즈 시작!
하지만 그 말은 보이스톡 프로그램을 통해서.
"2페이즈 시작이다!"
"2페이즈 시작이래!
-2페이즈 시작합니다!
메아리처럼 삽시간에 전장을 가득 재웠다.
그 사이 히르칸이 시계를 조작했다. 2번 슬롯을 맞추고, 곧바로 소리를 내질렀다.
"슬롯온!"
꾸르릉!
동시에 하늘도 경고음을 내질렀다.
< 63화. 야만왕 (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