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황금 소라 (1). >
1.
그 어떤 것과도 비교를 거부하는 거대한 태풍이었다.
- 하회탈이 빅스마일 길드를 잡았다!
너무나도 거대했기에, 그 태풍은 등장했을 때 가장 먼저 나온 반응은 사실 여부를
검증받는 것이었다.
- 무슨 소리야? 하회탈이 빅스마일 길드를 잡았다니?
- 길드전 말하는 건가? 얼어붙은 땅에서처럼?
- ㄴ 그런데 최근 충돌한 건, 하이우드 숲에서 일어난 충돌이잖아? 하이우드 숲
이랑 얼어붙은 땅은 완전 상황이 다른데?
그저 사실 여부를 논하는 것이었음에도, 그 태풍 앞에 어지간한 사건들은 휩쓸려
날아갔다. 비앤비 길드의 포커 팀이 새로운 유적을 발견했고, 그곳을 지키던 케르베
로스를 잡은 사건도, 토봇 소프트가 비밀리에 진행 중이던 워로드 차기작 프로젝트
의 일부가 유출된 사건도, 레드불스 길드가 암흑대륙을 넘자마자 서쪽으로 향하기
시작한 것도, 퍼스트원이 1억 달러짜리 전속 스폰서 계약을 거절했다는 소문도, 하
회탈이 만들어낸 거대한 태풍 앞에서는 이미 과거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점차 밝혀지기 시작했다.
- 빅스마일 길드가 하회탈을 사냥하기 위해 220레벨이 넘는 유저들로 구성된 최
정예 사냥팀을 만들었다.
- 하회탈의 핏불 복수극을 역으로 이용해 핏불을 사냥한 이들을 미끼로 썼다.
- 하회탈이 그 미끼를 물었다.
태풍의 모습이, 태풍의 크기가, 태풍의 위력이!
- 하회탈이 승리했다.
그리고 태풍 발생 3일 후 영상 하나가 올라왔다. 영상이 올라온 곳은 하회탈의 유
튜브 페이지였으며, 올라온 영상은 무료였다.
그 영상의 첫 장면에서 하회탈은 인터뷰를 했다.
- 최근 저를 중심으로 일어난 사건에 대한 나름의 설명과 이야기에 앞서서, 일단
말하겠습니다. 빅스마일 길드를 용서합니다. 이번 일은 여기서 마칩니다. 이번 일을
빌미로 제가 빅스마일 길드를 핍박하거나 그들을 공격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 인터뷰를 마치고 시작된 하회탈의 ‘자이언트 킬링’은 공개 이틀 만에 조회수 1
억을 기록했다.
2.
“웃기지도 않는군.”
“또 그거 보고 있냐?”
“웃기지도 않으니까.”
씽의 말에 히르칸은 뚱한 표정을 지었다. 하회탈 때문에 보일 리 없는 표정이었
다.
“웃기지도 않는 걸 뭐하러 봐?”
결국 제 입으로 제 심정을 표현한 히르칸을 향해 씽은 흐뭇한 미소를 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저기다! 저기!”
“우와, 나 심장 떨려.”
“게임에서는 심박수 안 올라갈 텐데?”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런 그 둘을 향해, 두 남녀가 전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요조리와 조바, 당장 눈앞에 열차가 다가와도 피하지 않을 기세로 달리던 그 둘은
히르칸 앞에서 단숨에 멈췄다. 멈추는 순간 그들은 히르칸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여, 영상 봤습니다. 자이언트 킬링! 정말 대단했습니다!”
“어,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한 거죠? 전 영상 백 번도 넘게 봤는데 못 믿겠어요.”
“백 번? 뻥 치시네. 그럼 난 이백 번이다.”
“뭐? 네가 뻥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 정말 백 번 봤어!”
호들갑.
하지만 히르칸은 오히려 그 둘의 반응에 만족했다. 그 둘의 반응이 히르칸이 원하
던 반응이었으니까. 그런 그 둘의 반응 앞에서 히르칸은 고개를 돌려 씽을 바라봤
다.
콧방귀나 뀌지 말고 이런 반응을 좀 보여줘라!
그렇게 말하는 듯한 히르칸의 기색에 씽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후 히르칸으로
부터 시선을 뗐다.
‘엄청난 놈.’
씽은 시선을 돌리면서, 당장에라도 터져 나오려는 감탄사 꾹, 목구멍 안으로 넣었
다. 참았다.
‘정말 빅스마일 길드를 상대로 이길 줄이야······.’
하회탈과 빅스마일 길드의 충돌, 세간에서는 하회탈의 동영상 제목을 따서 자이
언트 킬링이라 붙은 이 사건이 일어난 지 벌써 일주일이 흘렀다. 일주일이 지났지
만, 여전히 워로드는 이 사건을 제대로 정리하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정
도로 이번 일은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동안 하회탈은 언제나 말도 안 되는 일을,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회탈에 열광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지금까지 하회탈이 해낸 일들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판이 바뀌었으니까. 지각변동이다. 30대 길드가 존재하던 판에 지각변동과 함께
서른한 번째 세력이 등장했다.
물론 과거에도 하회탈은 30대 길드······ 참으로 악연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빅스
마일 길드를 상대로 길드전을 선포했었고, 승리했었다. 그때의 승리로 히르칸은 테
르베 성벽 너머, 노스랜드 탐사 자격을 얻었고, 얼어붙은 왕국을 최초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의 승리는 어디까지나 갑작스러운 전투의 결과물이었다. 당시 빅스마
일 길드의 노스랜드 탐사대의 전력은 빅스마일의 순수한 전력이라고 보기 힘들었
다. 심지어 그 핵심 전력인 킬러 싱글레는 두 번째 머리 소행크와의 치열한 전투를
마치고 하회탈의 기습에 당했었다.
하지만 이번은?
작심을 했다. 빅스마일 길드가 나름의 최정예를 구축해서, 무대를 꾸며서, 미끼를
던져서, 전력을 다해서, 최선을 다해서 하회탈을 잡고자 했다.
그런데 잡기는커녕 오히려 하회탈 하나를 잡기 위해 절반이 넘는 손해를 입었다.
물론 일부는 말한다.
하회탈이 도망을 쳤는데, 그럼 승자는 빅스마일 아니냐고.
그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전쟁의 결과를 알고 싶으면 승자와 패자의 꼴을 보면
되니까.
승자는 환호하고, 패자는 유구무언.
하회탈이 내지른 환호는 자이언트 킬링이라는 제목으로 3억이 넘는 조회수를 기
록하고 있지만, 빅스마일 길드는 이번 사태에 대해서 그 어떤 공식적인 발표나 대응
을 하지 않은 채 입을 다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제삼자가 승자와 패자를 논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대단한 일.
과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지, 히르칸이 공개한 영상을 보고도 믿을 수 없
다.
그리고 이 사실을 받아들이면, 다음 질문에 다다르게 된다.
‘······그런데 대체 왜?’
지금 유저들이 슬슬 가지기 시작하는 의문이다.
대체 왜 하회탈은 빅스마일 길드를 상대로 이런 전쟁을 벌였을까?
히르칸이 만든 전쟁의 여파는 빅스마일 길드는 물론 30대 길드 전부를 흔들었다.
30대 길드 중 단 한 곳도 이번 일에 대한 공식적인 코멘트를 남기지 못할 정도다. 미
증유의 사태 앞에서 그 대단한 30대 길드가 당황하고 있다.
씽은 그 당혹감이 히르칸에게 좋은 징조로 작용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30
대 길드는 이제 히르칸을 경쟁자로 볼 테니까. 그저 툭 튀어나온 못이 아니라, 언제
든 그들을 후려칠 수 있는 모닝스타로 판단할 테니까. 협조 대신 견제가 이루어질
것이다.
물론 동시에 30대 길드는 결코 섣불리 하회탈을 건드릴 수 없을 테고, 동등한 위
치에 올라온 만큼 동등한 거래도 가능해질 것이다.
‘대체 무엇을 위해?’
하지만 히르칸 입장에서는 굳이 갈 필요가 없는 길이었다. 부와 명예가 보장된 길
과는 거리가 먼 길이다.
더욱이 씽은 안다. 그때 헤어질 때 하회탈에게는 고민이 없었다. 자기 길을 정해
두고 있었다. 그렇게 정해두고, 가고자 한 길이 지금 히르칸이 걸어온 길이라는 의
미. 그럼 대체 히르칸이 정한 길은 무엇일까?
이런 의문들을 씽은 그냥 삼켰다. 그게 히르칸을 향해 콧방귀를 뀌고, 감탄사를
억누르는 이유였다.
친구이니까.
언젠가는 왜 그랬냐, 라는 질문을 해도 되겠지만 그건 그야말로 나중에 술자리에
서나 할 법한 이야기이니까.
지금은 무엇을 하든 말없이 도와주면 된다. 그리고 도와주기 위해 이 자리를 마련
했다.
“그보다 엘프 왕국의 유물을 퀘스트 보상으로 얻었다면서?”
“반격자들의 소굴에서 얻은 기록 나무의 씨앗을 주니까, 바로 보상으로 줘서 잽
싸게 가져왔습니다.”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히르칸은 다시 적색 사막, 그곳의 레드 엘프 부족을 만나러 이동해야 하고, 그것
을 위해서는 엘프들의 고대 왕국, 바리 왕국의 유물이 필요하다.
다행히도 요조리와 조바가 퀘스트 수행 보상으로 바리 왕국의 유물을 습득했다.
그래서 이 자리가 마련됐다. 히르칸의 퀘스트 진행을 돕기 위해서.
“그럼 같이 이동하면 되는 건데······ 그래도 돼?”
여기서 히르칸은 의문을 포기했다. 히드라 길드가 바보가 아닌 이상, 씽이 왜 하
이우드 숲에서 빅스마일 길드에게 당했는지 모를 리 없다. 하회탈과의 접점을 파악
했을 것이다.
만약 히르칸이 히드라 길드 입장이라면 하회탈과 접촉 금지 명령을 내렸을 것이
다. 접촉하려면 길드를 탈퇴하고 하라는 말을 했을 것이다. 물론 씽과 요조리, 조바
의 성격을 생각하면 가뿐하게 탈퇴를 하겠지만 히르칸은 자신 때문에 셋이 그 정도
까지 손해를 보는 걸 원치 않았다.
“죄송하게도 길드 명령 때문에 같이는 못 움직여요.”
예상대로.
“죄송합니다.”
“죄송할 건 없지.”
히르칸은 오히려 잘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퀘스트 단서를 확보한 것만으로
도 큰 수익이다. 여차하면 지금 씽 패밀리가 진행했던 퀘스트를 뒤따라가면 된다.
그럼 자연스럽게 히르칸도 바리 왕국의 유물을 보상으로 받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럼 퀘스트 정보를······.”
히르칸은 그 거래도 퀘스트 정보를 골드로 구매하는 것으로, 깔끔하게 정리할 생
각이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인데, 이거 거래 가능하더라고요. 그러니까 그냥 드릴게요.”
‘응?’
히르칸이 하던 말을 멈추고 놀라기도 전에 조바가 기다렸다는 듯이 허리춤 주머
니에서 손바닥 크기의 금덩어리, 골드바 하나를 꺼냈다. 히르칸은 등장한 게 골드바
라는 사실에 놀랐고, 그걸 그냥 준다는 말에 더더욱 놀랐다.
“이게······.”
“일단은 유물입니다. 아이템 설명창 활성화해보시면 바리 왕국의 유물이라고 나
와요.”
“아니, 잠깐. 이걸 그냥 준다고?”
히르칸이 재차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이런 걸 그냥 줘도 돼? 다음 퀘스트는? 이 아이템이 필요할 수도 있을 텐
데?”
퀘스트 보상이다. 필시 다음 퀘스트 진행에도 필요할 것이다. 아니, 당장 레드 엘
프 부족을 만나기 위해서는 이게 필요하다. 그런데 그걸 지금 그냥 주겠다고?
“어차피 당장 우리끼리 자력으로 레드 엘프 족을 만나러 갈 수도 없는데요, 뭘.”
“그동안 다른 퀘스트하면 됩니다. 엘프는 그들 말고도 많거든요.”
그 둘의 모습에 히르칸은 다시 씽을 바라봤다. 씽은 그런 히르칸에게 말했다.
“복수를 해줘서 고맙다.”
씽의 짧은 그 말에 히르칸은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더니, 골드바를 손에 쥐었다.
“그래, 다음에도 건드리는 놈 있으면 나한테 말해. 그때 말한 것처럼, 내가 이런
건 아주 잘하니까.”
거래가 아닌 도움.
히르칸이 그것을 받았다.
3.
사건이 터진 이후 빅스마일 길드는 그 사건에 대해 어떤 말도 꺼내지 않았다. 빅
스마일 길드의 일반 길드원들조차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없었다. 단지 알음알음, 입
에서 입으로, 말에서 말로 그때의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패색도 같이
퍼지기 시작했다.
“진짜 진 거야?”
“말도 안 돼. 평균 레벨이 220레벨이 넘는 유저 백오십 명 넘게 투입되고, 미끼마
저 썼는데 지다니······.”
“다른 곳도 아니고 하이우드 숲은 우리 구역이라고! 아무리 적색 사막에서 당했
다고 해도 하회탈을 못 잡는다는 게 말이 돼? 당장 잡아도 손해나 다름없는 상황에
서?”
하지만 완연한 패색은 없었다. 패색 속에서도 나름 빅스마일 길드원들은 반발심
을 품었다.
“빌어먹을 하회탈 새끼.”
“그 새끼 때문에 대체 몇 번이나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 거야?”
“이번에도 뭔가 말도 안 되는 수작을 썼겠지. 비겁하고, 야비한 놈이니까.”
하회탈에 대한 증오심, 분노가 반발심의 근원이었다. 패배는 패배고, 그 패배를
밑거름 삼아 오히려 하회탈을 향해 더 거대한 복수를 다짐하는 자도 있었다.
“지면 뭐 어때? 차라리 이번 기회에 아예 하회탈을 적으로 선포하고 길드 전체가
달라붙어서 잡으면 돼.”
“그래, 한 번 해보자고. 누가 이기나. 빅스마일 길드가 덤벼드는데 놈이 얼마나 버
티겠어?”
“열 번 싸워서 한 번만 이기면 돼. 그때부터는 지옥이 시작될 테니까.”
승패병가지상사.
고금의 금언을 곱씹으며 복수를 다짐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의지는 그 영상 한 번에 곤두박질쳤다.
자이언트 킬링.
그 영상은 마침표였다. 하회탈에 대한 복수 의지도, 분노도, 그 영상을 보는 순간
마침표가 찍힐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가 끝났으니까. 하회탈은 승리했고, 승리에 대한 대가로 돈을 요구한 것도,
지역을 요구한 것도, 권한과 사과를 요구한 것도 아니고, 용서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빅스마일 길드가 과연 무슨 수로 하회탈을 향해 적의를 표현할까?
해도 좋다.
하지만 대중은, 심지어 빅스마일 길드의 팬들조차도 그 적의를 응원하지 않을 것
이다.
“끝이군.”
다시금 간부회의가 소집됐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싱글레는 비웃음조차 머금지
못한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번 간부회의에는 그도 참가해도 좋다는 말이
나왔지만, 싱글레는 거절했다.
‘완전 끝이야.’
필요할 때만 자신을 찾는 자들의 손뼉을 쳐줄 이유는 없으니까. 싱글레는 간부회
의의 내용을 기다리기만 했다. 기다리면서 싱글레는 하회탈의 영상을 다시 한 번 봤
다.
‘마치 이 전쟁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느낌이야.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깔끔한
뒤처리가 가능할 리가······.’
하회탈의 전투 방식도 놀라웠지만, 가장 놀라운 건 이 전투의 전후를 차지하고 있
는 시나리오였다.
소소한 복수극으로 시작된 전쟁은 승자의 대가 없는 용서로 끝이 났다. 사실 보통
게임에서의 전쟁이 이런식으로 깔끔하게, 두말할 것 없이 끝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복수는 복수를 부르고, 그 악순환이 끝없이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더욱이 하회탈처럼 30대 길드라는 막강한 권력을 상대로 싸우는 경우는 기타 게
임에서 일어난 적이 없다. 참고할 사례도 없다. 또한 이번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가 나왔다.
‘대체 정체가 뭔지 궁금하군.’
그런 싱글레에게 연락이 왔다.
- 싱글레.
“호루스.”
- 판이 개판이 됐네.
연락의 상대는 호루스. 핸즈 길드를 음지에서 양지로 꺼내는 기획안을 발표한 싱
글레의 동료였다. 그리고 현재는 핸즈 길드가 아니라 스위퍼즈 길드를 대표하는 실
력자 중 한 명으로 활약 중인 인물이기도 했다.
포커 팀만큼은 아니지만, 충분히 승승장구를 하는 그의 연락에 싱글레는 기분이
썩 좋지 못했다.
“놀리려고 전화한 건가?”
- 그럴 리가. 우리가 양지로 나오는 계획은 내가 기획한 거라고. 네가 실패하면,
나도 실패하는 셈인데 놀릴 이유는 없지. 우리는 운명공동체나 마찬가지인데.
“그럼 도와줄 생각인가?”
- 딱히 도와줄 방법이 없어서 미안하군. 그냥 똥 밟았다고 생각해. 이번 일은 답
이 없었어. 그나마 다행인 건 네가 나서지 않은 것 정도겠지. 최소한의 체면치레는
할 테니까.
체면치레.
그 말에 싱글레는 고개를 끄덕였다. 엉망이 된 빅스마일 길드 분위기 속에서 결국
그나마 가질 수 있는 긍정적인 요소는 싱글레가 하회탈 사냥에 참가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일각에서는 싱글레가 하회탈 사냥을 반대했다는 의견이 나오고, 누군가
는 그러한 이야기들을 조합해 싱글레가 하회탈과의 정정당당한 결투를 원한다는 소
문도 퍼지고 있었다.
‘괜히 발을 담그지 않은 게 답이긴 했지.’
그게 지금 빅스마일 길드가 품은 유일한 기대이기도 했다. 하회탈 대 킬러의 1대
1 대결, 만약 거기서 킬러가 승리를 한다면 이 모든 치욕과 치욕에 따라 치른 대가
를 청산할 수 있을 테니까.
그 기대감마저 없었다면, 빅스마일 길드는 지금 보고 있는 손해의 곱절이 넘는 손
해를 봤을 것이다.
- 우습게도 이번 일로 빅스마일 길드는 완벽하게 장악하겠군. 솔직히 위로가 필
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단 말이야. 결국 넌 득을 봤으니까.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기분은 나쁘지만.”
그리고 그 기대감이 싱글레의 위치를 보다 견고하게 만들어줬다. 결국 이번 일을
승인하고 기획한 길드 마스터와 부길드 마스터들은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할
테니까. 수뇌부 물갈이까지는 없더라도 앞으로 싱글레의 발언권은 길드 내 최고 수
준이 될 것이다.
“이빨, 손톱 다 빠진 호랑이의 주인이 되어봤자지.”
- 그래도 음지에서 그 호랑이 수발을 드는 것보단 낫지.
낫다?
그 말에 싱글레는 잠시 고민했다.
핸즈 길드에서 헬퍼로 활동하던 시절과 지금의 킬러로 활동하는 시절, 어느 시절
이 좋은가?
당연히 후자다. 수입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고 해도 인지도가 달라졌다. 헬퍼 시절
싱글레는 이름조차 모르는 이가 부지기수였지만 지금 싱글레는 워로드를 대표하는
실력자 중 한 명이다.
‘음.’
그런데 그 순간 싱글레는 분명 고민했었다. 당연한 질문을 놓고 고민을 했었다.
이제는 당연한 질문이 아니라는 의미.
“······그래, 지금이 낫지.”
-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사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하회탈 문제가 아니야.
호루스가 주제를 바꾸었다.
- 우레사냥꾼 길드의 게임 진행 속도가 너무 빨라. 하회탈보다 훨씬 더 빨라.
싱글레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회탈의 게임 진행 속도도 빠르지만, 사실 지금 정말
빠른 건 우레사냥꾼 길드였다. 모든 길드역량을 퀘스트 진행에 집중한 그들은 하회
탈이 빅스마일 길드와 전쟁을 위해 며칠을 소비하는 동안에도 게임의 끝을 향해 거
리를 좁히고 있었다.
- 그리고······ 소문이긴 한데 우레사냥꾼 길드와 레드불스 길드가 손을 잡는다는
이야기도 돌고 있어.
그런 상황에서 나온 호루스의 소문에 싱글레는 긴장했다. 자세도 바꾸었다.
“두 길드가?”
- 그 둘도 대충 워로드 시스템이 어떤지 알고 있으니까. 어차피 끝날 게임이라면,
최초이자 최후의 정복자가 되는 게 그들이 워로드 이후에 그린 청사진이겠지.
“상부는?”
- 파이브 스타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가동해야 할 거야.
파이브 스타 프로젝트.
그 말에 싱글레는 이를 꽉 물었다.
- 여차하면······ 전쟁이지. 유저 대 길드, 이런 작은 전쟁이 아니라 길드들 대 길
드들, 길드워를 말이야.
< 62화. 황금 소라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