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솔플의 제왕-181화 (181/192)

< 61화. 영웅도살자 (4). >

13.

하이우드 숲 북쪽을 향해 전력으로 도망치는 히르칸의 시야에는 종종 그보다 빠

른 속도로 그를 지나쳐 가는 이들이 들어왔다.

‘세팅을 보면, 쾌속 세팅이네. 날 잡으려고 작심을 했군.’

모든 능력치를 근력에 투자하는 건 물론, 속도를 얻기 위한 아이템 세팅에 보다

빨라지기 위한 버프를 잔뜩 받고, 그런 효과가 있는 소모 아이템을 먹고, 숲이라는

달리기에 가장 불합리한 무대를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뛰어본 경험이 있는 이들이었

다.

‘숫자는······ 나랑 붙을 스트라이커랑 후방 지원팀을 합치면 백 명에서 이백 명

사이인가? 백오십쯤 되려나?’

그리고 조만간 히르칸의 앞을 가로 막을 이들이기도 했다. 그들의 낌새를 보는 히

르칸은 미소를 지었다.

‘최고군.’

절체절명.

누가 보더라도 하회탈은 꼬리가 잡혔다. 조만간 몸통이 잡힐 것이다. 하회탈의 몸

통을 잡을 빅스마일 길드가 무엇을 할지는 뻔했다.

그러나 히르칸은 당황하지 않았다. 이 과정은 당연하게도 그가 계획했고, 원했던

과정이었으니까.

모든 일이 그렇다.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단계적인 과정을 거쳐야 하는 법이

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다.

자이언트 킬링, 문자 그대로 거인이나 다름없는 30대 길드를 잡는 일이 그저 악과

깡으로 가능할 리 없다.

일단 체급부터 원하는 체급에서 붙어야 한다. 웃기지도 않는 복수극을 명분으로

삼은 이유다. 가장 가벼운 체급의 격투기 선수가 헤비급 선수를 상대로 헤비급 무대

에서 뛰는 건 자살행위다.

문제는 그다음, 히르칸이 30대 길드와 전쟁을 해본 이후 크게 깨달은 게 있다. 거

인은 잡는 것보다 잡고 난 이후 뒤처리가 더 힘들다는 것.

열한 명을 해치우고, 핏불 복수극이 끝났다고 치자. 그럼 거기서 끝이다. 히르칸

은 더 이상 복수를 운운하면서 빅스마일 길드를 공격할 수 없다. 그 이후 빅스마일

길드를 향한 공격은 그냥 적대의사의 표현이다. 빅스마일 길드 역시 마찬가지다. 복

수극이 끝났으니, 그 이후에는 다른 명분을 빌미로 하회탈을 잡으려고 할 것이다.

‘난 용서를 했어.’

그래서 용서를 했다.

깔끔하게.

하회탈이 직접 핏불 사냥꾼들 앞에 등장해서, 그들을 향해 명백하게 용서를 했다

는 말을 전달했다. 사과도 했다. 득템을 하라는 진심 어린 축복도 빌어줬다.

그런데 이후에 빅스마일 길드가 바로 하회탈을 죽이기 위해 달려든다면? 과연 그

전투는 누가 저지른 것일까?

그 순간부터 복수극은 사라진다.

‘약자는 언제나 응원 받는 법이지.’

그 순간부터 시작되는 건 거인이 자그마한 개인을 향해 보여주는 일방적이고, 무

차별적인 적의의 표현이고, 공격이다.

‘이제부터 내가 어떤 엿을 주더라도 네놈들은 군말없이 먹을 수밖에 없을 거다.’

그렇기에 당하는 자그마한 개인은 무슨 짓을 해도 좋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도

용서 받고, 더 나아가 응원 받는다.

이제부터 히르칸이 준비해둔 것들은 손가락질 대신 박수세례를 받을 것이다.

14.

“뭐?”

“그게······ 미끼팀에 하회탈이 손도 안 댔습니다.”

간부회의에서 하회탈 사냥 작전이 통과됐을 때, 그다음으로 논의된 건 하회탈 사

냥의 지휘봉을 누가 잡을 것인가? 하는 부분이었다. 그 지휘봉을 잡은 건 아폴로였

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게······ 미끼팀이 횡설수설해서 좀 더 들어봐야겠지만 정리하면 하회탈이 미

끼팀을 용서했다고 합니다. 아니, 미끼팀을 용서한 게 아니라 핏불 사냥을 한 자들

을 용서했다고 합니다.”

지휘봉을 잡는 과정에 잡음은 없었다.

일단 아폴로는 이번 일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하회탈을 잡는 순간, 아폴로의 빅스

마일 길드 내 입지는 매우 견고해질 게 분명했으니까. 그건 아폴로의 약점을 고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아폴로는 누가 뭐라고 해도 낙하산 인사다. 그가 부길드 마스터의 자리에 오른 것

역시 부르크 입장에서 다루기 쉬운 자기 편 사람이, 더 나아가 헤비빈처럼 언제 어

느 순간 길드 내 입지와 인지도를 등에 업고 자기 세력을 갖출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빅스마일 길드원들 중에서 아폴로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이들은 없다. 그

런 상황에서 지금 대부분의 빅스마일 길드원들이 원하는 하회탈 사냥을 성공시킨다

면, 아폴로도 헤비빈처럼 일반 길드원들을 등에 업을 수 있을 터. 이번 일은 그만한

상징성이 있었다.

그게 조건이기도 했다. 헤비빈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는 조건. 더 나아가 헤비빈은

앞으로도 아폴로를 지원해주기로 약속도 했다. 그런 조건이 아니었다면 자신을 빅

스마일 길드에 꽂아준 부르크의 뒤통수를 치는 위험을 감수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그에게 하회탈이 미끼팀을 건드리지 않았다는 사실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

다.

“그래서 뭐? 하회탈 사냥은?”

미끼팀의 처지는 알 거 없다. 아폴로에게 중요한 건 하회탈을 잡을 수 있는 기회

를 잡았고, 이제는 하회탈의 왼쪽 손모가지가 필요하다는 사실, 그뿐이었다.

“추격 중입니다. 간간이 교전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상황은?”

“몰아넣을 순 있습니다. 사냥팀이 하회탈보다 빠릅니다.”

많은 준비를 했다. 하이우드 숲이라는 결코 쉽지 않은 무대에서 하회탈을 잡기 위

해 최정예를 준비했다. 빅스마일 길드의 알짜배기 전력을 거의 다 모았다고 해도 과

언이 아니었다.

“그럼 잡아.”

“예.”

그런 아폴로의 말에 보고자는 굳이 첨언을 하지 않았다. 간언을 하지도 않았다.

비단 아폴로만이 하회탈을 잡고 싶은 건 아니니까. 하회탈에 좋은 감정을 가진 이

는 빅스마일 길드 내에는 단언컨대 단 한 명도 없었다. 더욱이 미끼팀의 역할은 말

그대로 미끼다. 물고기가 낚싯바늘을 물었는데, 미끼가 멀쩡한지, 엉망이 됐는지, 그

걸 신경 쓰고, 멀쩡하면 고민하는 낚시꾼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조만간 적색 사막과 하이우드 숲 경계에 다다른다고 합니다.”

“적색 사막?”

“그 근처에서 하회탈을 포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아.”

그렇게 모두가 히르칸이란 최고의 사냥감을 쫓아 북쪽으로 향했다.

적색 사막, 빅스마일 길드가 인정한 험지이자, 사냥불가 지역인 그곳으로.

15.

포위망이었다.

‘꽤 하는데?’

하이우드 숲을 채우고 있는 거대한 나무, 그 나무 위에 올라서서 북쪽을 바라보면

붉은 사막이 확연하게 눈에 들어오는 곳, 그곳에서 스트라이커들 삼십여 명이 하회

탈을 포위하고 있었다.

‘꽤 준비했어.’

포위망은 촘촘했다.

그리고 언제든 포위망은 창칼이 되어 히르칸을 향해 날아갈 준비를, 하회탈 사냥

에 제 한몸을 바칠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동시에 그들은 기다리고 있었다.

‘하회탈의 해골이 등장하지 않았어.’

‘하회탈이 꺼내들 변수는 전부 제거하고, 하회탈을 제거한다.’

‘장기전을 염두에 두어야 해.’

하회탈을 사냥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하회탈이 가진 카드 전부를 꺼내기 전에 하회탈을 제거하는 것.

다른 하나는 하회탈이 가진 카드 전부를 꺼내게 만든 후에 하회탈을 제거하는 것.

전자가 쉬워보이지만, 하회탈은 해골 부하와 골렘 없이도 무서운 전투력을 보여

준다. 아가르도 레이드, 배덕의 왕자 레이드, 아누가스 레이드 등 워로드를 대표하

는 최강의 스트라이커들조차 혀를 내두르는 스트라이커 능력을 보여줬다.

때문에 오히려 후자가 낫다. 하회탈이 가진 카드를 전부 꺼내게 만드는 것! 쉽진

않지만, 반대로 못할 것도 없다. 하회탈이 해골 부하와 골렘은 무한에 가깝게 소환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오십 명이 넘는 스트라이커와 그의 두 배에 다다른 마법사,

사제······ 백오십에 가까운 유저들, 그것도 그냥 유저가 아니라 빅스마일 길드라는

최고의 길드에서 최고라고 불리는 그들이라면 그 일을 결코 어렵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게 대치국면이 펼쳐진 이유였고,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 히르칸이 입을 열 수 있

는 이유이기도 했다.

“대체 왜 날 공격하는 거지?”

히르칸이 그 여유를 틈타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을 던지는 목소리는 꽤 컸다. 히

르칸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한 이들이라면 당연히 들을 수 있을 정도.

그 질문을 받은 이들은 당황했다.

‘뭐?’

차라리 욕이나, 비아냥거림이 나왔다면 기꺼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런데 왜 자신을 공격하냐니?

그 누구도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런 그들을 향해 히르칸은 재차 물었다.

“나는 핏불을 사냥한 이들을 용서했다.”

말을 하는 히르칸은 무기도 꺼내지 않은 채, 오히려 팔짱을 낀 채, 연설을 하듯 말

을 이어갔다.

“조금 전 분명하게 내 의사를 전달했다. 더 이상 복수는 없다. 남은 여덟 명을 공

격하는 일도, 그 과정에서 내가 빅스마일 길드원들의 하이우드 숲 사냥을 방해하는

일도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히르칸을 뒤쫓는 하회탈 사냥팀의 팀원들은 모르는 이야기다.

미끼팀 보고를 받은 아폴로가 그 사실을 하회탈 사냥팀에 말해줬을 리 없다.

“그런데 대체 왜 빅스마일 길드는 나를 계속 공격하는 거지? 단순히 길드 차원에

서의 응징인가?”

그렇게 거듭된 질문이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만들었다.

‘저게 무슨 소리야?’

‘용서라니? 그런 게 있었어?’

결국 누군가가 나서서 분위기를 끊을 필요가 있었고, 하회탈 사냥팀을 이끄는 이

들 중 레벨과 역량, 경력이 되는 이가 이 분위기를 눈치채고 잽싸게 나섰다.

“하회탈, 네 말대로 응징이다. 빅스마일 길드와 하회탈, 둘 사이가 굳이 서로를 해

치우는데 이유가 필요한 관계는 아닐 텐데?”

예전에 히르칸이 빅스마일 길드를 상대로 했던 말이었다.

때문에 히르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징이라. 그럼 여기서 내가 살아남기 위해 무슨 수단과 방법을 써도 괜찮다는

거군.”

“해봐라. 눈에 보이는 너를 못 잡을 정도로 약하지 않다.”

말과 함께 보이스톡을 통해 포위망을 구성하는 스트라이커들에게 명령이 왔다.

- 먼저 공격해서 하회탈의 카드를 꺼내게 만든다.

- 신호를 주면 1팀이 움직이고, 2팀이 변수에 대응하고, 3팀은 지원을 한다.

- 여차하면 뒤로 빠져서 사제의 치료를 받도록.

- 마법사들 포격 신호에 집중하라.

굳이 히르칸에게 시간을 줄 필요는 없다. 그가 카드를 꺼내지 않으면 꺼내게 만들

면 된다.

그렇게 모두가 긴장을 하고, 지휘팀이 신호를 주기 위한 시점을 고민하는 사이,

히르칸은 여전히 전투 의사를 보이지 않은 채 팔짱을 낀 채 대화를 이어갔다. 마치

시간을 벌고 싶다는 듯이.

“혹시 내 유튜브 페이지 구독하는 사람 있나? 손 들어봐.”

드는 이는 당연히 없었다. 당황하는 이도 없었다.

‘느낌을 보니 조만간 덤벼들겠군. 타이밍 한 번 기가 막히네.’

히르칸은 그 모습을 보며 입가에 걸리려는 미소를 억지로 참았다. 무뚝뚝한 입모

양을 고수한 채 말을 이어갔다.

“거기 보면 내가 가진 스킬들의 특징을 설명해주는 영상이 있지. 그리고 지금부

터 내가 사용할 스킬은, 조만간 거기 올라올 스킬이야.”

‘카운트다운 시작.’

동시에 히르칸이 속으로 숫자를 셌다. 처음에 센 숫자를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최근 얻은 고대의 힘을 통해서 강화한 스킬이야. 전설급으로 뼈폭탄 스킬을 강

화했지. 아마 빅스마일 길드에 고레벨 네크로맨서는 없을 테니, 무슨 효과가 생기는

지 모를 거야. 일단 뼈폭탄 스킬은 알지?”

그 순간 히르칸이 팔짱을 풀었다. 그리고는 허리춤에 대롱대롱 매달린 주머니에

서 자그마한 뼈폭탄 하나를 꺼냈다. 엄지손가락 크기의 두개골 모양의 뼈폭탄의 끝

에는 심지가 달려 있었다.

“이걸 터뜨리는 게 뼈폭탄 스킬인데, 스킬 강화를 하면 이 뼈폭탄은 시한폭탄 기

능이 생겨. 최대 여섯 시간까지 조절이 가능하지.”

그 순간 히르칸이 손바닥을 폈다. 다섯 손가락을 활짝 폈다.

“파이브, 포, 쓰리······.”

그리고 말과 함께 손가락을 접었다. 엄지부터 검지, 중지를 거쳐 이내 새끼손가락

마저 접히는 순간, 히르칸의 입에서 제로라는 단어가 흘러나오는 순간.

콰왕, 콰앙, 콰앙!

히르칸을 포위하고 있는 스트라이커의 발치를 시작으로, 사방 곳곳에서, 수십 곳

······ 아니, 이백 곳이 넘는 구역에서 연쇄적으로 폭음이 터지기 시작했다.

“뭐야?”

“공격이다!”

폭발은 도미노처럼 터졌다.

달리 말하면, 그건 꽤 볼 만한 광경이었다. 마치 불꽃놀이의 폭죽처럼, 보는 이의

시선과 집중력을 단숨에 훔칠 만한 매력과 강렬함과 독특함이 있었다. 적지 않은 이

들이 당연히 그 폭발에 시선이 끌렸다.

‘오케이.’

그 사이 히르칸이 북쪽을 향해 달렸다.

- 포위망 유지해!

한눈이 팔리면서 생긴 틈, 하회탈은 그 틈을 단숨에 헤집었다.

당장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유저 한 명과 마주했다. 폭발에 눈이 팔린 유저가 하

회탈을 인지했을 때 둘 사이의 거리는 서로의 무기가 닿기에 부족함이 없는 거리였

다.

‘공격!’

이 순간 유저는 반사적으로 행동했다. 하회탈을 상대로 이길 필요는 결코 없다.

필요한 건 다른 동료들이 도와주러 오는데 걸리는 시간, 3초 남짓한 시간 동안 하회

탈을 상대로 버티는 것뿐.

유저는 손에 쥔 검을 벼락처럼 휘둘렀다. 위에서 아래로, 내리찍었다.

쉬익!

그 칼은 곧바로 레슬링에서 태클을 하듯 다가온 히르칸의 등판을 내리찍었다.

카앙!

거친 쇳소리가 터졌다.

그뿐이었다. 히르칸이 입고 있는 다크 스폿 세트는 여전히 워로드에서 방어력으

로는 최고 수준으로 평가 받는 세트였으니까. 흉터는 남되, 데미지는 없었다.

휙!

그 사이 히르칸은 상대의 허리춤을 잡고 기둥을 뽑듯 그대로 유저를 뽑은 후에 뒤

로 던져버렸다.

단숨에 길이 생겼고, 히르칸이 그 길을 뚫고 전력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막아!”

교전 없이 상대를 그냥 던져버린다는 생각, 과연 누가 그런 생각을 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길까?

당연히 이에 대한 대처법은 없다. 막으라는 명령, 통할 리 없다.

“앞서서 이동해서 저지선 구축해!”

결국 다시 한 번 조금 전과 같은 짓을 반복하는 수밖에.

하회탈을 앞서 간 후에 다시 저지선을 만들고 그 저지선을 기점으로 포위망을 구

축하는 것, 다시 그 짓을 해야 했다.

그런 빅스마일 길드의 노력은 적색 사막의 모래알을 밟은 상황에서 결실을 맺었

다.

무대만 바뀌었을 뿐, 포위망이 다시 한 번 하회탈을 가두었다.

“지옥 끝까지 따라가주마.”

누군가 하회탈을 향해 으르렁거리듯 그 말을 던졌다. 그 말을 듣던 히르칸은 대답

대신 손가락을 두 번 튕겼다.

신호였다.

아누가스 레이드 때와 같다. 해골들을 미리 소환해두고, 방어모드로 대기시켜놓

았다. 그 해골들이 이제 하회탈을 향해 다가올 것이다. 그 과정에서 걸리적거리는

모든 것을 처치하면서.

- 해골이다!

- 젠장, 미리 소환해서 배치해뒀어!

- 지원! 지원! 마법사랑 사제만으로 하회탈의 해골은 막기 힘들다고!

그리고 그 해골들과 가장 먼저 조우하는 건 후방에 대기하고 있는 마법사와 사제

들이 될 것이다.

물론 이건 증거이기도 했다.

- 공격해!

- 하회탈은 지금 빈털털이야!

히르칸이 이미 진작에 꺼내들 대부분의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증거이자, 이제는

히르칸을 향해 거침없이 공격을 해도 무방하다는 증거.

동시에 신호였다. 하회탈을 향한 공격 신호.

“죽여!”

모두가 하회탈을 향해 달려들었다. 일부는 거리를 잡고, 초승달베기 스킬로 검기

부터 날렸다. 십여 개의 검기가 바람을 가르며 하회탈을 향해 날아갔다.

하회탈은 그 검기를 피하지 않았다.

‘맞아주고.’

피할 시간을 이용해 골렘을 소환했다. 최대한 빨리, 찰흙놀이 스킬 없이 순수한

형태의 골렘을, 소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골렘을 그대로 소환했다.

푹!

일단 히르칸은 아이언 골렘 소환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칼을 잽싸게 바닥에 꽂았

다. 모래바닥에 끄트머리만 살짝 꽂인 검이 쇳물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골렘을 소환했습니다.]

가장 먼저 모습을 갖춘 흙골렘이었다. 흙골렘이 적색 땅에서 솟아오르며 자신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파이어 골렘을 소환했습니다.]

화르르!

그다음은 파이어 골렘이었다. 히르칸의 오른손에서 뛰쳐나온 불길이 파이어 골렘

의 모습을 갖추었다.

[아이스 골렘을 소환했습니다.]

히르칸의 왼손에서 자라나기 시작한 얼음조각은 나무처럼, 순식간에 거대하게 자

라났다. 자라난 후에 팔과 다리가 생겨났다. 아이스 골렘이 워로드에 최초로 등장하

는 순간이었다.

시작은 가장 빨랐던 아이언 골렘의 등장은 가장 늦었다.

“골렘 처리팀 움직여!”

“원거리 공격!”

“달라붙어서 아머 브레이킹 시도해!”

“원거리 포격 요청해!”

세 마리의 골렘이 등장하고, 그렇게 등장한 골렘이 제 모습을 제대로 갖추기도 전

에 날아오는 검기와 여러 스킬을 중첩한 스트라이커의 검격에 깊은 상처를 입고 상

처투성이가 된 후에야 아이언 골렘이 강인한 모습을 갖추었다.

네 마리의 골렘이 모습을 갖추었다.

그 사이 히르칸도 이미 자신 근처로 다가오기 시작하는 네 명의 유저들과 전투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정면에서 자신을 향해 위에서 아래로, 검을 휘두르며 다가오는 유저를

상대했다.

카앙!

히르칸은 검을 뽑지 않은 채 왼팔을 들어 자신을 향해 내리 찍히는 검을 막아냈

다.

쉬익!

그 사이 히르칸의 양옆으로 두 유저가 검을 창처럼 앞세운 채 전력을 다해 돌진하

며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그들의 검이 히르칸의 몸에 닿기 전, 히르칸은 자신의 팔로 막고 있는 검의 주인

을 팔을 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엎어치기를 했다.

콰앙!

“어?”

갑자기 바닥에 넘어진 유저는 투구 속으로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워로드

에서 엎어치기를 당하는 경험이 있을 리 없고, 이렇게 쉽사리 당하는 경험은 더더욱

없을 테니까.

그 사이 히르칸은 양옆에서 다가오는 이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그대로 자리에

쭈구려 앉았다. 히르칸의 머리 위로 두 개의 검이 교차하듯 스쳐 지나갔다.

쿠웅!

그리고 그 둘이 부딪쳤다.

“으악!”

“아래, 아래!”

부딪친 둘이 잽싸게 자세를 잡고 하회탈을 노리려는 순간 하회탈은 잽싸게 다른

한 명의 등 뒤로 이동했다. 등 뒤로 이동한 후에 상대의 허리를 잡고 들었다.

쑥!

상대가 가볍게 들렸고, 히르칸은 그렇게 든 상대를 다른 한 명에게 던졌다. 날아

오는 동료를 앞에 두고 다른 한 명은 그대로 그 동료를 받기 위해 양팔을 들었다. 동

료를 받은 이는 그대로 뒤로 자빠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억!”

“뭐, 뭐야?”

단숨에 하회탈에게 당한 세 명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HP상으로는 데미지조차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런 경험이 그들의 육체가 아닌 정신적인 충격을 줬다.

그러는 사이 나머지 한 명은 하회탈을 공격하지 않고 오히려 소리를 쳤다.

“지원! 지원!”

하회탈의 수법을 보니, 혼자 덤벼봐야 씨알도 먹힐 리 없다는 걸 짐작한 모양.

하지만 지원을 요구하는 외침에 반응한 건 안타깝게도 동료도, 지원팀도 아니었

다.

푸홧!

곤충을 떠올리게 하는 단단한 비늘을 가진 거대뱀들.

“샌드네이크다!”

그들이, 히르칸이 배치해둔 살아있는 거대 지뢰들이 적색 사막 위에서 일어난 난

리법석에 반응했다.

16.

난장.

그리 표현할 수밖에 없는 무대였다.

쿵쿵!

적색 사막 위로 거대한 골렘 네 마리가 날뛰고 있었다.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골렘

들의 신체는 그 일부가 떨어질 때마다 굉음을 토해내며 가뜩이나 막장인 전장을 더

욱더 어수선하게 만들었다.

푸홧!

그 사이에서 사냥을 위해 모래 속과 모래 위를 넘나드는 여섯 마리의 샌드네이크

의 존재는 난장판 위에서 터지는 폭죽과도 같았다. 난장판을 더 소란스럽게 만들었

다.

그 무리 속에서 하회탈과 제대로 된 전투를 치르는 빅스마일 길드의 스트라이커

는 여섯, 일곱에 불과했다. 하회탈을 처치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숫자였다.

이런 난장판을 환기해줄 지원팀은 해골 무리를 상대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

당연히 이 난장판 속에서 죽음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해골 전사가 조각으로 돌아갑니다.]

[해골 기사가 조각으로 돌아갑니다.]

해골들이 무너졌다.

“젠장!”

“회복 아이템! 회복 아이템 좀!”

“나도 없어!”

“사제는?”

“해골하고 전투 중이잖아.”

유저들은 죽었다.

[골렘이 흙으로 돌아갑니다.]

[아이스 골렘이 녹아내리기 시작합니다.]

너무나도 많은 상처를 입은 골렘들은 붕괴를 시작했다.

“샌드네이크 처치했어!”

“샌드네이크 네 마리 남았으니까 조심해!”

샌드네이크들 역시 이 난리법석 속에서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하회탈의 꼴도 멀쩡하진 않았다.

거듭된 전투 속에 다크 스폿 세트는 엉망이 되어 있었다. 갑옷이 찌그러진 건 양

반이었고, 갑옷 자체가 부서진 채 그 너머 속살이 그대로 드러난 경우가 대부분이었

다.

특히 왼팔은 그 상태가 매우 심각했다. 장갑과 갑옷이 그냥 그대로 떨어져 나간

채 팔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왼손 손목시계도 그대로 드러나 있을 정도니, 이미

방어구는 없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

그게 히르칸과 마주하는 자들의 위안거리였다.

“봐봐, 저 손모가지만 자르면 돼.”

“다들 힘내! 하회탈도 이제 밑천이 없어!”

저 손목시계만 자르면, 하회탈을 잡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

다.

지금 눈앞에 워로드에서 가장 가치 있는 사냥감이 거의 죽음을 앞두고 있다.

도망칠 곳도 없다.

그 사실에 모두가 눈빛을 빛냈다.

그런 그들의 시선에 히르칸은 미소를 지었다.

“다들 열심히 수고했는데, 이런 말해서 미안하군. 지금 쿨타임이 막 차서 말이야.”

그 말과 함께 히르칸이 자신의 팔목을 열었다.

‘어?’

‘뭐야?’

히르칸의 왼팔 팔뚝이 상자처럼 열렸고, 히르칸은 그 안에서 해골 조각을 꺼냈다.

사실 추가로 해골을 소환할 여지는 얼마든지 있었다. 쿨타임이 끝났으니까.

그러나 그동안 그러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 자신과 상대하는 이들이 당혹감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그를 통해 몇 초 남짓한 시간이라도 벌기 위해서.

히르칸이 해골 기사 한 마리와 해골 전사 네 마리의 조각을 바닥에 흩뿌렸다.

“비, 빌어먹을!”

그걸 본 누군가는 절망감을 토해냈다.

설마 팔목에 해골 조각을 숨겨두고, 거기서 해골 조각을 꺼내 지금 소환할 줄이

야?

“버텨! 어차피 지원팀도 정리됐어. 아직 살아남은 숫자가 팔십 명이 넘어!”

“하회탈만 놓치지 않으면 돼.”

일부는 그 절망감 앞에서 현명한 판단을 내렸다.

“고작 해야 해골 기사와 해골 전사야. 저것만 잡으면 돼.”

“이제 마지막 카드인 셈이지.”

절망감은 짙지 않았다. 옅게 깔렸고, 이내 옅게 깔린 절망감이 사라지기 시작했

다.

해골 기사와 해골 전사를 바라보는 빅스마일 길드의 길드원들 표정에는 승리를

짐작한 승자의 기색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살아남은 채 승리를 맛

보려는 듯, 대치국면을 유지했다. 지원팀을 기다리고, 보다 확실하게 피날레를 장식

하고자 했다.

‘고맙군.’

히르칸은 그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해골 부하를 한 마리 더 소환했다.

[본 와이번을 소환했습니다.]

소환한 건 본 와이번.

히르칸은 자신을 바라보던 이들 앞에서, 해골 기사와 해골 전사가 만든 울타리 속

에서 단숨에 모습을 갖춘 본 와이번의 몸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말했다.

“라이딩 모드.”

[라이딩 스킬이 활성화됩니다.]

“목적지 하르드 요새 유적 마을.”

[목적지인 하르드 요새 유적 마을까지 비행을 시작합니다.]

그 순간 본 와이번이 의미 없을 날갯짓과 함께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 어?”

그 광경을 본 모든 이들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고, 그런 그들을 놀리듯 주인을 태

운 본 와이번이 전장을 가로질러 목적지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으하하하!”

그리고 그 와이번 위에서 히르칸은 양손을 번쩍 들었다.

‘이 날을······ 이런 날을 소망했다.’

승자가 결정됐다.

< 61화. 영웅도살자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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