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영웅도살자 (2). >
5.
진인사대천명.
'역시 무슨 일이든 하늘이 도와주는 것보다 확실 한 방법은 없군.'
헤비빈은 만고불변의 진리나 다름없는 그 사자 성어의 의미를 지금 이 순간 뼈저리게 느끼고 있 었다.
'이렇게 일이 잘 풀릴 줄이야.'
하이우드 숲에서 사냥을 하던 빅스마일 길드의 유저들이 핏불을 공격했고, 잡았다.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확실하게 핏불을 …로 처치 했다.
빅스마일 길드의 이익을 놓고 봤을 때 이번 사건이 빅스마일에게 이익이라고 보기 힘든 짓이다.
당장 히드라 길드와 어떤 식으로든 싸워야 한다. 말싸움에서 끝나면 다행이고, 문제가 심각해지면 진짜 전쟁을 할 수도 있다. 핏불 하나를 잡는 것에 대한 대가로 히드라 길드와 얼굴을 붉힌 재, 그렇 게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마주 보는 건 결코 남는 장사가 아니다.
그러나 현재 빅스마일 길드원들 중 상당수는 길드의 이익에 해를 끼친 그들을, 핏불 사냥에 나선 유저들의 결정과 행동 그리고 실천을 응원하고 있 었다.
핏불 사냥에 참가한 이들 역시 자신들의 행동을 숨기거나 반성하지 않았다.
"빅스마일 길드의 영역에서 빅스마일 길드의 허락 없이 활개 치는 건 도둑질이나 마찬가지야. 내 가 한 건 그 도둑놈을 내 집에서 쫒아냈던 것뿐이고."
"빅스마일 길드가 비웃음이나 받는 집단이 될 바에는 차라리 욕을 먹는 게 나아.'
"길드의 처 벌은 얼마든지 받겠다. 하지만 우리가 한 게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열한 명.
핏불 사냥에 나선 그 열한 명은 빅스마일 길드 의 일반 유저들 사이에서는 영웅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불만이 이 정도일 줄이야.'
달리 말하면 그 정도 불만이 쌓여 있었다.
싱글레의 활약 이후 빅스마일 길드의 행보는 거침 이 없었고, 암흑대륙 활동 초창기 에는 파이브 스타라는 이름이 탑쓰리를 위협하고 있었으며 빅스 마일 길드는 파이브 스타의 한 축이었다.
그 무렵 빅스마일이 운영하는 라이브 재널의 시청률과 스폰서 수입은 최고점을 찍은 게 성세의 증 거였다.
하지만 하회탈의 아누가스 레이드 이후, 빅스마 일 길드의 성세는 줄어들기 시작했고, 이제는 예전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처지가 됐다. 그런 상황에서 빅스마일 길드의 핵심 사냥터인 하이우드 숲이 하회탈의 놀이터가 된 건, 치명적인 결과였다.
여파도 있었다. 빅스마일 길드가 관리하는 사냥터 관리가 힘들어졌다. 다른 유저들이 하회탈처럼 행동했다. 빅스마일 길드를 두려워하지 않기 시작 한 것이다.
'남은 건 히드라 길드의 결정뿐.'
그렇게 쌓인 불만이 이제 터지기 직전에 다다랐 다.
이번 히드라 길드의 결정에 따라 당장 터질 수 도 있고, 좀 더 나중에 터질 수도 있을 터.
그렇게 터진 폭발은 결국 이런 식으로 길드를 운 영한 이들에게 가장 큰 데미지를 줄 것이다. 그리 고 헤비빈은 최근 동안 길드의 운영에 제대로 된 목소리로 내지 못했다.
당연히 헤비빈은 이 상황에 골치 아플 이유가 없었다.
'최고군.'
그가 하회탈이란 그 무엇으로도 가늠할 수 없는 존재를 망각하고 있는 이상은…….
6.
우드데빌 사냥에는 평균적으로 열 명 안팎의 유저들이 파티를 맺고 사냥을 한다. 특이한 점은 이 열 명 중 스트라이커와 탱커, 검사 클래스가 차지 하는 비율이 절반을 훌쩍 넘긴다는 점이다. 10인 파티를 기준으로 검사 클래스가 최소 다섯 명은 되고 많을 때는 검사 클래스 유저들이 7명 이상인 경 우도 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일단 탱커가 우드데빌을 막아서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
우드데빌의 공격방법은 단순하다. 제 팔을 재찍 처럼 휘두르거나, 망치처럼 내리친다. 공격 방법은 단순하지만, 섬득할 정도로 위력적이다. 최고 레벨 의 탱커가 나름 최고 수준의 장비를 갖추고, 모든 버프를 받은 상태라고 해도 우드데빌의 공격을 정 면에서 받아낼 수 없을 정도.
당연히 탱커들이 흔히 쓰는 일반적인 방식으로 공격을 막을 순 없다.
그렇다면? 두더지 잡기 게임의 두더지가 될 수 밖에. 우드데빌의 앞에서 얼쩡거리면서 녀석의 공격을 유도하고, 피하는 게 우드데빌을 상대로 탱커가 써먹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첸이 당했어!"
"젠장! 내가 어그로 끌게."
"그럼 내가 챈을 구하지."
하지만 언제나 불상사는 일어나기 마련이고, 그 때를 대비해서 대타가 되어줄 탱커가 필요하다. 그 게 첫 번째 이유다.
"공격 정지! 매미들 공격 정지!"
두 번째 이유는 우드데빌에게 데미지를 주는 방 식이다.
우드데 빌은 마법 방어력이 굉장히 높다. 그 방어력을 낮추기 위해서는 아머 브레이킹 작업을 해야 하는데, 우드데빌의 몸뚱이에 갑옷 같은 방어구는 커녕 가죽이나 껍질이라고 부를 만한 요소가 없다. 그저 돌과 흙과 나무 등이 섞인 거대한 몸뚱이가 있을 뿐이다.
때문에 스트라이커들은 우드데빌의 몸을 이루고 있는 요소들 중 큼지막한 돌덩이들을 뽑아내서 떨어뜨리는 작업을 아머 브레이킹 작업을 대신해서 한다. 아머 브레이킹 작업보다 많은 손이 필요하다. 자연스럽게 마법사의 비중은 떨어지고 스트라이커 의 비중이 높아지는 수밖에 없다. 더불어 이런 역 할을 하는 이들을 매미라고 한다.
지금 그 매미들이 을음을 멈했다. 어그로가 다시 탱커에게 집중되기 전까지는 결코 우드데빌을 자극해서는 안 되니까.
쿵!
그들이 다시 움직인 건, 우드데빌이 새로운 탱커 의 등장과 도발에 넘어가며, 그 탱커을 단숨에 뭉개기 위해 제 두 팔을 망치처럼 내리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좋아, 대타 성공."
"매미들 작업 시작!"
스트라이커들이 다시 우드데빌의 몸 곳곳에 달라붙은 채 녀석의 몸을 구성하는 거대한 돌덩이를 캐내기 위한 작업에 나섰고, 그러는 사이 사제들은 간신히 목숨을 구한 동료를 살리기 위해 힐링 스킬을 사용했다. 동시에 몇몇은 버프가 끝난 재 돌아온 이들에게 기름을 재워주듯, 버프를 채워주는 작업을 했다.
나름 짜임새 있게 돌아가는 그 과정에 정말 갑자기 불순물 하나가 끼어들었다.
"질문 좀 해도 될까?"
툭, 튀어나온 그는 상황을 지켜보며 버프 스킬 쿨타임을 계산하던 사제에게 말을 던졌다. 사제는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리는 사제의 머 릿속에는 조금의 의구심은 없었다.
"무슨 질문? 말해."
사제는 당연히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이가 자 신의 동료라고 생각했으니까. 지금 이 상황에서, 지 금 이 사냥터에서 동료가 아닌 다른 누군가라고 생 각하는 게 이상한 일이 었으니까.
"아, 어려운 질문은 아니야."
그러나 고개를 돌리는 순간 자신이 본 것에 사제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헉!'
너무 놀라서 제 놀란 소리가 목구멍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반대로 그에게 질문을 던진 유저, 하회탈이란 워로드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가면이자, 방어구를 쓰고 있는 유저는 친근하게 대답했다.
"내 친구가 여기서 빌어먹을 새끼들에게 PK를 당해서, 복수를 하려고 내가 그 새끼들을 찾는 중 이거든."
"하, 하, 하회……
당황해서 말조차 나오지 않는 사제를 보며 히르칸은 자기 말만 이어갔다.
"사냥 방해해서 미안한데, 내가 급해서 말이야. 일단 내 PK 당한 내 친구 생김새가 이렇거든."
말과 함께 히르칸이 주섬주섬 종이를 꺼내, 사제의 코앞까지 가져다 보여췄다. 사람 그림이 아니었 다. 핏불테리어, 투견으로 유명한 그 견종의 얼굴 이 그려져 있었다.
"어디 가서 맞고 다닐 애가아닌데, 재수 없게 맞 고 죽어버렸어. 열 명 정도가 떼로 몰려들어서 어 쩔 수 없다고 해서, 나도 떼로 달려들어서 잡으려 고 하거든?"
획, 히르칸이 고개를 뒤로 돌렸다. 히르칸의 뒤 편, 제법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해골 전사 서른 마리가 언제든 는앞의 적들을 향해 달려들 기세를 뿜고 있었다. 히르칸이 다시 고개를 돌려 사제를 바라봤다.
"어쨌거나 내가 지금 내 친구를 공격한 놈들을 찾고 있는데 사실 정체도 잘 모르겠고, 얼굴도 모르겠고, 친구 녀석은 골에 자존심이 있다고 말해주 지 않아서 말이야. 아!"
그 순간 히르칸이 무언가가 떠오른 듯, 사제의 가슴팍, 가슴 왼쪽 위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특특 찔렀다. 사제가 기겁하며 뒷걸음질 쳤고, 히르칸은 그런 사제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참고로 그 새끼들이 그거랑 똑같은 걸 가슴에 달고 있을 거야. 그 웃기지도 않는 스마일 로고 말 이야. 그래서 말인데 흑시 그 새끼들이 누군지 알 려줄 수 있을까? 아는 사람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하회탈이 다!"
그 순간 하회탈이란 단어가 전장을 휩쓸었다. 그 소리를 내밸은 건 히르칸을 앞에 둔 사제가 아니 라, 다른 사제였다. 그 한 마디에 모두가 하회탈을 바라봤다.
"하회탈?"
"미친……!"
하회탈을 향해 관심을 돌릴 수 있는 여유를 가 진 이들은 기겁했고.
"뭐야? 무슨 일이야?"
"하회탈이라고? 지금 공격당한 거야?"
하회탈을 볼 수 없는 여유가 없는 이들은 재차 의문과 불안감을 표현했다.
하회탈이란 단어에 반응한 건 그들이 전부가 아니었다.
- 하회탈? 거기 하회탈이 등장했어?
- 지원! 지원 보내!
- 어디야?
그들을 도와주던 레벨업 지원팀 역시 보이스톡 프로그램을 통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받았고, 받은 정보에 당황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히르칸은 자신을 보고 굳어버 린 는앞의 사제만을 바라보며 말했다.
"조용히 질문만 하고 가려고 했는데, 미안하게 사냥을 방해하게 됐네. 정말 미안해."
물론 말을 밸은 히르칸의 음색에 미안한 기색 같 은 건 조금도, 티끌만큼도 없었다. 히르칸은 이 장 난기 가득한 말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입꼬리를 한 쪽도 을리지 않았으니까.
"아무래도 사냥 중인 것 같아서 지금 대화는 힘 들겠네. 사냥 끝나면 찾아올게."
그때까지만 해도 남은 인원들은 감히 히르칸을 포위하지도, 그런 시도를 하지도 못했다.
히르칸은 고개를 돌려 전장을, 우드데빌이 난리 법석을 피우는 상황을, 그 상황을 외면한 채 자신을 바라보는 빅스마일 길드원들을 바라봤다. 모두 가 홈짓, 놀랐다.
히르칸은 놀란 그들을 향해 손에 든 종이를, 핏 불테리어의 얼굴이 그려진 종이를 보여주며 말했 다.
"내 친구인데, 흑시 얘를 PK로 죽인 놈들을 알고 있으면 나한테 알려주거나……"
쿠응, 쿠응!
"으악, 젠장!"
그 순간 우드데빌의 거침없이 내리치는 주먹질 에 탱커 한 명이 당하고 말았다. 망치에 맞은 못처 럼, 주먹에 맞아 땅에 박힌 유저는 비명이나 다름 없는 소리를 내질렀다.
하지만 그런 동료의 도움 요청에도 몇몇은 동료 를 바라보지 못한 재 히르칸만을 바라봤다.
히르칸이 그들에게 말했다.
"흑은 그 새끼들에게 알려줘. 이제부터 네놈들을 도살장에 데리고 가줄 거라고."
선전포고였다.
네 마리의 골렘들, 흙과 불, 얼음과 강철 골렘들 이 거대한 위용을 내세우며 열 명의 빅스마일 길 드 소속 유저들을 을아붙이고 있었다. 그것만으로 도 만족하지 못한 듯, 그 골렘들의 거대한 다리 사 이를 비집고 등장한 해골 전사들이 몰려 있는 유저들을 공격했다.
그 공세에 유저들은 당연히 반격했다.
"메가 플레어!"
마법사들은 강력한 마법으로 골렘을 공격했고.
"실드 크러쉬!"
과앙!
탱커들은 다가오는 해골 전사들을 방패로 그냥 날려버렸다.
카앙, 카앙!
스트라이커들은 해골 전사들과 자응을 겨루었 다. 서로 무기를 부딪치고, 방어구에 상처를 남겼
"버프! 버프!"
"기다려!"
사제들 역시 분주하게 그 사이에 기름칠을 했다.
그야말로 아수라장, 그런 아수라장 밖에서는 조 용한 독대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빅스마일 길드의 로고가 박힌 재 넝마가 되어버 린 갑옷을 입고 있는 사내에게는 투구가 없었다. 투구가 없어 얼굴이 그대로 드러 났다. 드러 난 얼굴, 개중 는이 있어야 할 부위는 칼로 만든 상처만이 가득했다.
몹쓸 꼴을 한 그 유저는 바닥에 대자로 누워 있 었고, 그런 유저의 가슴팍을 다리 하나가 기둥처 럼 놓인 재 유저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유저를 제압하 고 있었다.
"비열한 새끼, 1대1 대결 중에 모래를 뿌리다니!"
이제 입만 살아남은 유저가 입을 놀렸다.
"안 뿌린다고 내가 말했나? 난 스킬만 안 쓴다고 했지. 그보다 강제 로그아웃 안 해?"
그런 유저의 입놀림에 히르칸이 담담하게 반문
"개새끼, 네놈 같은 놈에게 질려서 피할 생각이었다면 핏불을 죽이지도 않았어."
히르칸은 그 말에 을상 대신 미소를 지었다.
"그럼 기왕 하는 거 나한테 덤비지 그랬어? 응? 난 무서워서 피하고, 핏불은 덜 무서워서 덤 볐나?" "먼저 시비를 건 건 네놈들이잖아!"
"누가 보면 우리 사이가 이제 막 나빠진 줄 알겠 네."
히르칸은 말과 함께 손에 죈 검으로 유저의 가 슴팍을 찔렀다. 검은 이미 곳곳이 부숴지고, 떨어 져 나간 갑옷의 름 사이를 비집고 깊게 들어갔다. 비명은 당연히 없었다. 고통이 없으니까.
"우리 사이는 우르갈 대산맥 넘기 전부터 안 좋 았잖아? 그러고 보니 아누가스 레이드 때도 날 엿 먹이려고 했었지. 흑시 그때 너도 참석했냐?"
"조만간 복수해주마. 너도 핏불하고 같은 골로 만들어주겠어."
히르칸은 그 말에 대답 대신 재차 검을 뽑았다,찔렀다. 그 작업을 반복하며 상대의 HP를 단숨에 제로로 만들었다. 그 작업을 마친 후에 히르칸인 고개를 돌려 자신의 골렘과 해골 부하들을 상대로 분전하는 빅스마일 길드원들을 바라봤다.
그때 히르칸이 명 령어를 내리자, 가차 없는 공세 를 퍼붓던 모든 골렘들과 해골 부하들이 멈췄다.
"뭐야?"
"무슨 일이야?"
박수도 손뼉이 마주쳐야 나듯, 갑자기 자기들을 공격하던 해골 전사와 골렘들이 멈추자, 그들을 공격하던 빅스마일 길드원들의 공격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찾아온 이 평화 속으로 발걸음을 옮긴 히 르칸이 말했다.
"사냥 중에 죄송합니다. 개인적 인 사정상 당신들 하고 같이 사냥 중이 던 유저는 제가 처치했습니 다. 남은 분들, 수고하시고, 즐겜하시고, 득템하세요"
말을 하던 히르칸이 자신이 지을 수 있는 가장 가증스럽고, 비열하고, 비아냥거림 가득한 비웃음 을 지었다.
히르칸, 그가 거대한 거인을 잡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 61하. 영웅도살자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