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솔플의 제왕-177화 (177/192)

< 60화. 적색 사막 (4). >

10.

거대한 구멍이었다. 지름이 무려 20미터는 될 법한 거대한 구멍. 구멍이란 조촐한 단어보다는 무저갱으로 향하는 입구라는 표현 정도는 붙여줘야 할 법한 크기였다.

그 입구를 바라보는 네 명은 말이 없었다.

“어······.”

그나마 산전수전 다 겪은 히르칸이 먼저 입을 열고 정신을 차렸다.

“그러니까 이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퀘스트 내용이나, 보석소라의 알림을 들으면 이 안이 맞다.”

씽이 대답했다. 이때까지도 요조리와 조바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멍하니 구멍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촉새 같은 그와 그녀의 입을 다물게 만들 정도, 구멍의 위엄은 그 정도였다.

물론 구멍이 커서 그 위엄에 압도당한 건 아니었다.

“미친, 아까 너도 그거 봤잖아!”

히르칸 일행을 압도한 건, 이 구멍이 아닌 이 구멍을 만든 존재였다.

“음.”

히르칸의 말에 넷은 조금 전······ 약 3분 전 광경을 떠올렸다. 그 광경을 떠올린 모두가 혀를 차는 사이, 히르칸이 그때의 기억을 말을 통해 짤막하게 정리했다.

“아까 그 뱀이······ 뱀이라고 하기도 뭐하네. 여하튼 10층 아파트만 한 놈이 튀어나온 거 다 봤잖아?”

보석소라의 말을 따라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히르칸 일행을 기다리고 있던 건 비석이었다. 풍화에 의해 모든 게 지워진 채 그저 비석으로 남아있을 뿐이었고, 그게 전부였다. 당연히 그 비석 앞에서 네 명은 멍한 표정을 지었고, 보석소라를 귀에 가져다 댄 씽은 이 아래

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었다.

아래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에 모두가 한마디씩 했다. 그럼 땅을 파야 하는 건가? 그런데 적색 사막 땅은 파낼 수가 없잖아? 우린 안 될 거야······ 내뱉는 말은 그런 푸념이었다.

쿠쿠쿠!

그때 굉음과 함께 지진이 일어났고, 지진과 함께 바닥에 균열이 일어났다. 마치 땅이 꺼질 듯한 그 균열에 모두가 일단 도망쳤다. 그들이 비석이 있던 자리를 벗어나는 순간, 적색 사막 아래에서 거대한 뱀이 솟구쳤다. 너무나도 거대한 위용에 산전수전 다 겪은 히르칸

마저 놈을 그저 멍하니 바라볼 정도였다.

그렇게 등장함 뱀은 곧바로 땅 안으로 꺼졌다.

그 이후 상황이 지금 상황이었다.

“분명해. 보석소라는 이 안으로 들어가라고 말하고 있어.”

다시 한 번 보석소라를 귓가에 가져다 댄 씽이 강조했다. 참고로 일곱 번째 강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씽은 자신이 몇 번째 강조를 하는지 알지 못했고,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씽 역시 정신머리가 없기는 매한가지였으니까.

“어휴.”

히르칸이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미치겠네.’

이 모든 상황이 믿기지 않는 건 아니다. 게임이니까. 거대한 뱀이 등장하는 것도, 그 뱀이 구멍을 만드는 것도, 그 구멍이 어디론가 향하는 길이 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라 게임이니까 마주할 수 있는 멋진 설정이다.

‘그 뱀이 보스 몬스터라면······ 잡을 수 있을까?’

문제는 조금 전 본 그 거대뱀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 올 경우. 이 구멍을 만든 뱀과 마주치고, 그 뱀과 싸워야 하는 것 역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설정이니까. 그 경우에는 멋진 설정이 아니라 지랄 맞은 설정이 된다. 히르칸조차 그 뱀과의 전투는 견적조차 내기 힘들었다.

다들 얼빠진 표정을 짓는 건 그 때문이었다.

“나 혼자 먼저 들어가지.”

그 상황에서 제법 정신을 차린 씽이 희생양을 자처했다. 히르칸이 씽을 바라봤다.

“이 구멍이 인스턴스 던전은 아니니까, 한 명이 들어가서 상황을 보고 돌아오면 되겠지. 문제가 생기면 도망치면 될 일이고.”

“아, 그럼 제가 먼저 들어가죠.”

“아니지. 생존율 높은 크루세이더가 들어가는 게 낫지.”

그러자 이제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요조리와 조바가 당연하다는 듯이 희생을 자처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행동에 망설임 같은 건 없었다. 마치 이게 당연하다는 듯이.

반면 하회탈은 그들과 달랐다. 그들의 말을 듣고 놀랐고 동시에 고민에 빠졌다.

두려웠으니까. 히르칸은 자신이 게임오버를 당함으로써 치러야 하는 대가를 계산했다. 가장 간단한 수치로, 돈이라는 수치로 계산을 했고, 수치가 얼추 가늠되는 순간 히르칸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 수치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 수치 앞에서 주판알을 튕기는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어쩌다가······.’

영웅도살자는 이런 계산을 하지 않았다. 할 줄도 몰랐다. 영웅도살자가 하는 계산이란, 죽여야 할 놈이 있으면 목숨 같은 건 버리고 죽이기 위한 방법을 계산하는 것, 그것밖에 없었다.

“후우.”

히르칸이 긴 한숨을 내뱉었다.

“그런 개념이면 내가 들어가야지.”

그의 말에 셋이 반응했고, 그들이 말을 뱉기 전에 히르칸이 먼저 설명을 했다.

“이 안에서 잡몹이라도 등장하면 혼자 처치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으니까.”

히르칸의 말이 맞았다. 그가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다. 그리고 적색 사막은 히르칸조차 버거운 무대다. 남은 세 명에게는 여기서 등장하는 고블린 한 마리도 버거울 수 있다. 그게 게임이란 놈이니까.

그 말에 나머지 셋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 같이 들어가면 되겠네요.”

“그러면 되겠네요.”

씽은 대답 대신 히르칸을 바라봤다. 히르칸은 여전히 고민 중이었다.

‘인스턴스 던전이 아니니까······ 여차하면 도망칠 수 있어. 그래, 그러면 돼. 골렘을 이용해 시간을 벌면 돼.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어.’

그런 히르칸을 바라보며 씽의 두 눈이 게슴츠레 변했다.

11.

[반격자들의 소굴에 입장하셨습니다.]

[타이틀 ‘반격자들의 소굴 방문자’를 획득하셨습니다.]

[타이틀 ‘폐허 왕국의 의지를 계승하는 자’를 획득하셨습니다.]

[타이틀 ‘신기루 뱀을 본 자’를 획득하셨습니다.]

신기루 뱀이라는 이름을 가진 거대 뱀이 만들어낸 거대한 구멍을 워터슬라이드타듯 내려온 네 명에게 곧바로 세 개의 선물이 들어왔다. 선물을 받은 네 명 중 세 명은 곧바로 선물 포장을 열었다.

“방문자라······ 느낌이 좋네.”

“반격자의 소굴이라면 역시 퀘스트맨이 예상했던 내용대로 시나리오가 잡혔을 것 같네요.”

“그런 것보단 그냥 엘프 같은 거 나와서 반겨주면 좋을 텐데.”

“미친놈.”

“조금 전 한 말은 내가 생각해도 미친놈 같긴 했어. 그보다 신기루 뱀이라······ 진짜 끝내줬지?”

“그건 인정. 거대 뱀이 터널을 만들다니, 멋지다.”

반면 한 명은 선물 포장을 여는 대신 시계를 풀었다.

[아이템 슬롯 체인지 모드가 비활성화됩니다.]

풀어헤친 손목시계를 움켜쥐었고, 움켜쥔 손목시계는 어둠을 흘리며 문을 만들었다.

[데스나이트를 소환했습니다.]

어두컴컴한 터널 속에서 데스나이트가 등장했다.

[특수스킬 ‘통솔자’가 발동합니다.]

데스나이트의 등장과 함께 곧바로 아홉 마리의 해골 전사와 두 마리의 해골 마법사, 한 마리의 해골 기사 역시 등장했다.

[본 아머를 소환하셨습니다.]

[매드니스 헬름이 발동합니다.]

그것만으로도 만족하지 못한 듯, 온갖 종류의 스킬들이 등장한 해골 군단을 다시 한 번 더 무장시켰다. 본 아머를 두르고, 뿔이 돋아나고, 그들이 가진 무기에 온갖 종류의 저주가 깃들었다.

[라이프 베슬이 활성화됩니다.]

마지막으로 히르칸은 라이프 베슬 스킬을 활성화했다.

생존을 위한 만반의 준비 그리고 언제든 전투를 할 수 있는 각오는 이 모든 작업이 이루어진 후에야 마칠 수 있었다.

“후우.”

그 각오를 담은 듯한 한숨이 나왔다.

“좋아, 움직이자.”

12.

데스나이트가 처벅처벅, 해골마를 이끌며 가장 선두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뒤로 해골 기사와 전사들, 마법사들이 따랐고 히르칸 일행은 가장 후미에 있었다. 후미라는 표현조차도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히르칸 일행을 데스나이트 무리와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 거리

가 상당했다.

하지만 히르칸은 그 거리에도 만족하지 못한 듯 주변을 거듭해서 계속 견제했다.

그 경계심이 너무 컸다.

“그러지 말고 저희가 앞장설게요.”

보다 못한 조바 그리고 요조리가 나설 정도.

“위험해.”

“까짓것 죽기밖에 더하겠어요?”

솔직히 그들 입장에서 히르칸의 경계심은 분명 과했다. 게임오버를 즐기는 건 아니지만, 그들 입장에서 게임오버는 필요할 때는 과감하게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였다.

그에 비해 히르칸은 다른 것보다 오직 살아남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는 듯했다.

그리고 그런 히르칸의 경계심이 시간을 갉아먹었다. 작심하고 전투를 시작하면 놀라운 속도의 질주력을 보여주는 히르칸의 해골 군단들은 자신이 이동할 수 있는 가장 느린 속도로 이동했다.

3킬로미터 남짓한 거리를 이동하는데 한 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이 소모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그러나 그런 경계심이 무색할 정도로, 터널을 건너 반격자들의 소굴이란 이름을 가진 채 폐허가 되어버린 지저 도시를 발견하는 순간까지 히르칸 일행을 위협하는 요소

는 하나도 없었다. 단 한 번의 전투도 없었다.

“우와!”

“진짜 끝내주네.”

“뭐지? 어디서 빛이 내려오는 거지?”

“저기, 저기 뭔가 있어. 천장 엄청 높구나. 거의 돔구장 수준의 크기인 것 같은데?”

“의외로 폐허라고 부르기에는 깨끗한 걸 보면, 여기는 공격 당한 것 같지 않은데? 그냥 버리고 간 것 같아.”

그 지저 도시의 발견에 요조리와 조바는 참지 않고 자신들의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날뛰기 시작했다.

반면 이 순간에도 히르칸은 긴장했다.

‘어디 있지?’

자신이 보았던 그 뱀의 흔적을 쫓았다. 언제 있을지 모르는 뱀과의 전투에 대비했다.

‘어디로 사라진 거야?’

그런 히르칸의 긴장감에 씽이 들어왔다.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게임 참 재미없게 하는 것 같군.”

“뭐?”

히르칸이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되묻는 히르칸의 말투는 날카로웠다. 하지만 씽은 그 날카로움에 제 할 말을 못 하는 이가 결코 아니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는 투덜투덜거리면서도 나름 재미있게 게임을 했던 것 같은데.”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씽은 즉답 대신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었다. 이번 퀘스트 진행을 위해 히르칸을 만난 이후 자신이 느낀 히르칸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정리했다. 대답은 그 이후 나왔다.

“게임을 하는 이유야 자기 정하기 나름이니까 아무래도 좋지. 하지만 이유가 있으면 그에 맞게 행동해야지.”

씽, 그가 본 하회탈은 좀 과장하면 신이 보낸 듯한 게이머였다. 신이 워로드란 게임의 끝을 보고 싶어서 보낸 전사, 그야말로 신의 전사 같은 존재!

실제로 히르칸은 자신이 가진 능력을 초월하는 결과를 거뜬히 만들어냈다. 그 어떤 난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고, 길이 없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길을 만들었으며,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전투에서 자기 목숨을 던져서라도 그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하회탈은 그런 유저였다. 이미 유튜브를 뜨겁게 만드는 그의 전투 영상이 하회탈을 말해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그는 강력한 해골 부하들을 다룰 수 있음에도, 필요할 때면 언제든 자기 목숨을 던져서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하회탈이라고 해서 게임오버에 대한 거부감, 게임오버에 따른 리스크에 대한 두려움이 없을 리 없다. 단지 하회탈의 전투를 보면, 그는 언제나 그 리스크를 감수할 각오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일이 그 리스크를 감수할 만큼 가치가 있으리란 확신이 보였다.

하지만 지금 하회탈은 그때와 전혀 달랐다.

그 차이······ 남들은 모른다. 히르칸의 전과 후, 그 모든 것을 가까이에서 봤던 씽이기에, 그래도 히르칸을 본인 스스로는 친구라고 생각하는 씽이기에 알 수 있는 차이다.

“돈을 버는 게 목적이면, 철저하게 상업적으로 행동해. 네게 돈을 줄 고객을 위한 게임을 하라고.”

친구라고 생각하기에, 이런 말 역시 꺼냈다.

“그게 아니라 최고 레벨을 찍는 게 목적이라면, 효율적으로 게임을 해. 여기서 이러지 말고, 우드데빌을 잡든, 다른 몬스터를 잡든 레벨업에 모든 걸 투자해. 그저 유명해지는 게 목적이라면 사건을 만들어. 30대 길드에게 도전이라도 하면 좋겠지.”

씽은 히르칸을 친구라고 생각했다. 게임이란 멋진 세상에서 만난 멋진 친구!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를 수행하는 게 목적이라면, 그에 맞는 자세를 갖춰.”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말수가 많지 않은 씽이 이런 말을 할 일은 결코 없을 테니까.

그런 씽의 말에 히르칸은 한숨조차 내뱉지 않았다. 고민했다. 고민하는 히르칸에게 씽 역시 더 이상 고민거리를 뱉지 않았다. 그렇게 히르칸의 고민이 깊어졌다.

13.

전투는 없었다.

반격자들의 소굴에 적은 없었다. 아군도 없었다. 그저 무언가가 지냈었던 흔적만이 남아 있었고, 히르칸 일행은 보석소라를 이용해 반격자들의 소굴의 주인들이 남긴 유물이 잠든 장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상자 발견, 세 개입니다.”

지저 도시에 마련된 돌무덤, 그 아래에서 세 개의 상자가 발견됐다. 붉은 상자와 검은 상자 그리고 초록빛 상자였다. 붉은 상자 안에는 두루마리 하나가, 검은 상자 안에는 두루마리 세 개가 있었다. 그리고 초록색 상자는 열리지 않았다.

“이거 그거지?”

“맞아. 거기서 봤던 거.”

하지만 씽 일행은 그 초록색 상자 안에 든 게 뭔지 금방 유추할 수 있었다.

“기록 나무 씨앗이 들었을 거예요. 기록 나무 근처에서 이것과 비슷한 상자를 본 적이 있거든요.”

“정말 멋진 유물이군.”

그리고 그 초록 상자를 손에 쥐는 순간 씽 일행이 가지고 있던 퀘스트 알림이 들렸다. 그들이 가진 퀘스트 내용도 바뀌었다. 초록 상자를 그들에게 퀘스트를 준 엘프 부족으로 가져다주라는 내용으로.

반면 히르칸의 퀘스트 알림에는 특별한 변화가 없었다. 새로운 시스템 알림은 없었다. 아무래도 기대와 다르게 히르칸이 찾던 엘프 왕국의 유물은 다른 곳에 있는 모양.

그러나 히르칸은 낙담하지 않았다. 신경질을 부리지도 않았다. 그저 바라봤다.

‘깨끗하군.’

너무나도 깨끗하기 그지없는 본 아머를 두르고 있는 해골들을 바라봤다. 그것을 바라보자, 피를 말릴 기세로 품었던 긴장과 염려와 우려와 경계심이 우스꽝스러운 짓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아니, 실제로도 우스꽝스러운 짓이었다.

‘쫄보 새끼.’

겁먹은 겁쟁이의 몸부림이었으니까.

씽의 말이 맞았다.

과거에는 과거로 돌아오기 전의 지식이 있으니까, 정보가 있으니까, 얻을 수 있는 보상에 대한 확신이 있으니까, 그리고 잃을 게 없으니까 모든 일에 덤벼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마주하는 모든 게 미지의 것이었고, 무엇보다 잃을 게 많아졌다.

예전에는 아슬아슬한 게임오버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걸 게임의 재미로 추구했었는데, 지금은 그런 상황을 피하기 위한 경계심만 하고 있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게 개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이거 참······.’

그건 자기부정이기도 했다.

히르칸이 왜 네크로맨서를 했는가? 그저 편하게 해골들에게 모든 걸 맡기기 위해서?

아니다. 영웅도살자가 활약할 수 있는 무대를 자력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해골들이 몬스터의 시선과 어그로를 끄는 사이, 히르칸이 가장 위험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기 위해서였지, 결코 해골과 골렘만으로 이용해 게임을 그냥 쉽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

다.

‘내가 하고 싶은 건······ 적어도 이런 건 아니었지.’

히르칸이 이를 꽉 물었다. 입꼬리 역시 축 늘어졌다.

“퀘스트 상황은?”

그런 그에게 씽이 질문을 던졌다.

“내 퀘스트는 미동조차 안 하네.”

“혹시 모르니까 기록 나무의 씨앗을 가지고 레드 엘프 부족 마을을 방문해보지?”

“아니, 그것보다는 그쪽 퀘스트부터 수행해. 하나밖에 없는데 괜히 잃어버리거나 문제가 생기면 너희들 퀘스트는 수행 불가 상태나 다름없는 꼴이 될 테니까.”

“그래도······.”

“어차피 연계 퀘스트일 게 분명해. 너희들이 지금 진행하는 다음 퀘스트에 내 퀘스트의 단서가 있을 수도 있지. 그쪽이 먼저 일을 보라고. 확실한 것부터 해야지.”

히르칸이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난 볼일도 있어서 우르갈 산맥도 한 번 넘었다 와야 해. 급할 이유는 없어. 그러니까 먼저 처리하라고.”

깔끔하게 포기하는 히르칸을 요조리와 조바가 초조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진심 어린 걱정이었다. 자기들을 위해 히르칸이 얼마나 열심히 게임을 해줬는데, 막상 히르칸 본인은 깡통을 차고 있는 상황 아닌가?

씽은 그런 히르칸에게 괜한 말 대신 근처에 있던 붉은 상자를 가볍게 발로 찼다.

툭!

붉은 상자가 히르칸 발치에 부딪히며 멈췄다.

“빈손으로 돌려보낼 순 없지. 전설급 고대의 힘은 네가 가져라.”

그 말에 히르칸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머릿수대로 딱 나뉘는군. 초월급이 세 개이니까 셋이 알아서 나누라고. 아니면 나한테 팔래?”

“얼마를 줄 생각인데?”

“개당 10만 골드 어때?”

10만 골드라는 말에 요조리와 조바는 놀랐고, 씽은 표정을 굳혔다.

“거저먹으려는군.”

“대신에 돌아가는 길에 샌드네이크 잡아서 아이스크림 먹게 해줄게. 레벨업도 도와주고, 걔들 잡아서 나온 재료 코인도 기념품으로 챙겨줄 테니까. 친구끼리인데 좀 싸게 해줘라.”

그제야 씽이 표정을 풀었다.

“친구끼리이니까 계산은 철저히 해야지. 20만 골드.”

반대로 히르칸의 표정이 굳었다.

“야, 20만 골드가 누구집 개 이름······.”

“정화의 서클렛 말이야.”

“······개 이름일 수도 있겠네. 남은 둘은? 어떻게 할래?”

< 60화. 적색 사막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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