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적색 사막 (3). >
7.
돌과 나무와 흙 따위로 이루어진 우드데빌의 몸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장 무거운 돌덩이들이 바닥에 떨어졌고, 돌덩이가 떨어진 곳에서는 흙더미가 핏물처럼 흘러나왔다.
그런 우드데빌의 몸뚱이 위로 갑옷으로 무장한 해골 전사들이 달라붙어 있었다.
우드데빌의 몸에서 나온 굵직한 나뭇가지를 왼손으로 잡아 버티면서, 오른손에 쥔 창칼 따위로 쉴 새 없이 우드데빌의 몸을 찌르는 해골 전사들의 작업 앞에서 우드데빌의 몸은 더 빠르게 넝마가 되어, 엉망이 되었다.
가장 큰 공세는 우드데빌을 정면에서 맞상대하고 있는 데스나이트의 몫이었다.
쿵, 쿵, 쿵!
해골마의 박치기에 우드데빌이 비틀거릴 때마다 그 비틀거리는 우드데빌의 몸뚱이에 데스나이트의 서슬 퍼런 칼날이 꽂혔다. 데스나이트의 공격은 생각보다 정밀했다. 데스나이트는 우드데빌의 온몸, 목덜미를 내리치고, 가슴을 찌르고, 허리를 일도양단할 기세로 검
을 휘두르는 등 다양한 공세를 퍼부었지만, 다양한 공세가 만드는 상처는 거의 똑같았다. 찌른 곳을 또 찌르고, 내리친 곳을 또 내리쳤다. 마치 아름드리나무를 도끼로 찍는 유능한 벌목꾼의 솜씨를 보는 듯했다.
쿵!
그 거듭된 공세 앞에 우드데빌의 거대한 몸이 기어코 바닥에 엎어졌다. 넘어진 우드데빌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악마 같았던 몰골도 사라지고 없었다. 그런 우드데빌의 시체는 마치 태풍이 몰아치고 지나간 흔적과 비슷했다. 돌과 나무와 흙, 풍파를 겪은 자연들이 너
부러진 흔적만이 남았다.
그 광경을 얼빠진 표정으로, 넋이 빠지고 영혼이 나간 표정으로 바라보던 이들 중 두 명이 동시에 소리쳤다.
“레벨 올랐다!”
“나도 올랐어.”
칼소리, 울음소리, 해골이 내는 특유의 뼛소리, 그러한 격한 소리가 가득하던 전장이 사람 목소리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장난 아니네.”
“우드데빌 경험치가 짭짤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크기는 중대형인데, 경험치는 대형급이네.”
“이틀에 1레벨이 오르다니, 이 속도면 퍼스트원을 우리도 따라잡을 수 있겠는데?”
“우드데빌이 이렇게 잡기 쉬운 몬스터는 아니었지?”
“보면 몰라? 해골 몇 마리가 달라붙어서 그렇게 칼질을 했는데도 10분 넘게 버티는 거? 하회탈 님이니까 이 정도였지, 일반 유저들은 열댓 명이 달라붙었어야 해!”
“그럼 그런 거지, 왜 화를 내고 그래?”
“화 안 냈는데?”
“그럼 조금 전 그건 지랄이니? 아니면 히스테리야?”
“야!”
“왜?”
그 잡음은 꽤 시끄러웠고, 그 잡음을 바라보는 히르칸은 이 순간 우습게도 한 여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해치와 하희를 앞에 둔 채설연, 그년 심정이 무슨 심정인지 조금은 이해가 가네.’
요조리와 조바는 우레사냥꾼 길드를 대표하는 두 실력자, 하희와 해치와 비슷했다. 티격태격, 쉴 새 없이 말다툼을 하면서도 전투가 시작되면 그 누구보다 좋은 콜라보를 보여줬다. 그저 단순히 실력만 좋은 게 아니었다. 그 둘은 오랜 세월 같이 싸워본 경험이 있었다.
‘이 바닥에 참 재미있는 인간들이 많단 말이야.’
그게 그들이 크루세이더라는 스트라이커 타입의 사제 직업과 마검사 타입의 마법사란 직업을 가지고 200레벨이 넘는 레벨을 달성할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했다.
그리고 히르칸에게도 한때는 그런 상대가 있었다.
‘빌어먹을 인간도 많고.’
정말 등을 맡길 수 있으리라 믿었던 동료가 있었었다.
“고생하는군.”
그런 그 둘을 지그시 바라보는 히르칸에게 전투 시작 이후 단 한 차례도 검을 뽑지 않는 신비로운 경험을 이틀 내내 경험하는 씽이 수고한다는 말을 건넸다. 그 말을 건네는 씽의 표정은 묘했다.
미안한 감정, 놀란 감정, 새삼스럽다는 감정, 여러 복잡한 감정이 섞여 있었다.
과거 엘프의 숲을 찾으러 갈 때, 히르칸은 씽에게 도움을 받으며 빠른 레벨업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역으로 씽이 히르칸에게 이런 식으로 도움을 받으니, 그걸 바라보는 감정을 쉽게 레벨을 올리니 그저 좋다······ 그런 짤막한 문장 하나로 정리될 리가 없었다.
히르칸이 어깨를 으쓱했다.
“수고는 내가 아니라 해골들이 했지.”
말과 함께 히르칸은 사탕 하나를 입에 넣었다. 히르칸의 말대로 전투는 해골들이 전부 이루었다. 우드데빌을 상대로는 골렘을 꺼낼 필요도 없었다. 데스나이트와 해골 기사 둘 그리고 해골 스무 마리와 해골 마법사 셋, 히르칸은 이 정확한 수치를 유지했다.
히르칸이 예전에 열흘 넘게 하이우드 숲에서 사냥을 하면서 얻은 수치이기도 했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히르칸은 전투를 하면서 거듭 값비싼 마력 회복 아이템을 먹었다. 빠삭빠삭, 아삭아삭, 정말 잘게잘게, 조금이라도 빨리 아이템 효과를 누리기 위해 소모 아이템을 씹는 히르칸의 모습은 비장했고, 그래서 어느 때보다 전투적으로 보였다.
“정말 거침없이 먹는군.”
“내 전투는 언제나 적자야. 영상 수입으로 이득을 내지 못하면 손해 보는 장사라고. 물론 레벨은 오르니까, 이리저리 계산하면 마냥 손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그놈의 레벨이 뭔지.”
히르칸의 말에 씽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무언가 말을 뱉으려는 모양. 하지만 이내 그는 벌어진 입을 다물었다. 하려는 말도 같이 삼켰다.
“······고생하는군.”
“난 고생할 거 없어. 아까도 말했지만, 고생은 전부 해골들이 하는 거지.”
히르칸이 해골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씽이 그 모습을 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이제 우드데빌 해체하자고.”
히르칸의 말에 요조리와 조바의 말다툼이 마법처럼 끝났다. 그 둘이 동시에 입을 모아 히르칸을 향해 외쳤다.
“제가 하겠습니다!”
“제가 할게요!”
정말 뭐를 하든 호흡은 귀신같이 맞는 둘이다. 그래서 더더욱 싸우는 듯하지만.
어쨌거나 어떻게든 하회탈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노력하려는 그들의 모습에 히르칸이 어깨를 으쓱했고, 씽이 입을 열었다.
“내가 하지.”
히르칸이 고개를 돌려 씽을 바라봤고, 씽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렇게 쾌적한 버스를 공짜로 타는데, 버스에 돌아다니는 쓰레기 정도는 주워야지.”
8.
“하회탈이 또 들어왔어?”
현재 하이우드 숲을 주력 사냥터로 삼은 채 사냥 중인 유저들은 당연히 같은 소속일 수밖에 없었다.
빅스마일 길드.
그런 빅스마일 길드원들은 하이우드 숲에 다시 하회탈이 등장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혀를 차고, 내둘렀다.
“빌어먹을 새끼, 완전 자기집 앞마당이구먼.”
“자기집 앞마당이면 차라리 낫지. 여긴 우리집 앞마당이고 하회탈은 도둑놈이라고.”
“우린 그 도둑놈을 보고 오히려 도둑질하기 편하게 길을 마련해주는 병신이고.”
평균 레벨 228레벨. 결코 낮은 레벨이 아니다. 워로드를 통틀어도 최상위권에 해당하는 레벨을 이룩한 그들은 당연히 빅스마일 길드의 주력이자, 핵심이었다.
길드 차원의 전폭적인 레벨업 지원을 받으며, 전담 레벨업 지원팀까지 두는 건 물론, 레벨업에 가장 큰 적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강 관리를 위해 억지로라도 현실에서 러닝머신을 뛰고, 체력 훈련을 하는 자들.
그야말로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업으로 사는 자들.
그런 그들 입장에서 지금 자신들이 전력을 다해 달리는 레일 위에 등장한 괴물, 킹콩과 공룡같이 예상도 안 했고, 상상도 못했던 괴물의 등장은 결코 반가울 수 없었다.
“역시 헤비빈 부길마 말이 맞아. 이건 말도 안 되는 거야. 우리가 당장 하회탈 잡으려고 나서면 못 잡을 게 뭐야? 근데 왜 우리가 그놈을 그냥 놔둬야 해?”
언제나 반감은 쓴소리를 내지르게 만드는 법.
“그래도 괜히 하회탈을 건드려서 피 볼 건 없잖아? 파이브 스타가 합의한 결정이라며? 하회탈을 그냥 놔두기로.”
“파이브 스타가 아니라 비앤비 길드 결정이겠지. 말이 파이브 스타지, 결국 비앤비 길드 시종이나 다름없잖아?”
“말이 좀······.”
그리고 쓴소리란 쉽사리 동조를 이끌 수 있는 법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 솔직히 우리랑 하회탈은 결판을 봐야 해. 하회탈 새끼 때문에 내가 어디 가서 빅스마일 길드 소속이라고 말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라고. 다들 똑같잖아? 빅스마일 길드 소속이라고 하면 비웃음부터 당한다고.”
“지금 부르크 길마는 싱글레 하수인이나 다름없고, 싱글레는 비앤비 길드 쪽이나 다름없지. 애초에 비앤비 길드에서 용병으로 뛰었었잖아? 헤비빈 부길마 말이 맞아. 이대로 가다가는 그냥 이용당할 뿐이야.”
“야, 말이 뭐 그래? 그래도 싱글레 님 합류가 없었으면 상황은 지금보다 더 안 좋았을 거야.”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그보다 솔직히 하회탈, 잡아볼 만 하지 않아? 당장 하회탈을 잡으면 영상 판매에 기타 수입은 무시할 수 없잖아? 그리고 우리가 떼로 달려들어 잡아도 욕먹을 이유는 없잖아? 잘못은 우리가 아니라 하회탈이 먼저 했잖아?”
“명분은 우리 편이지. 명명백백하게.”
그런 이야기 속에서 누군가 말했다.
“이런 상황일수록 킬러가 나서서 하회탈하고 승부를 봐야 하는 거 아니야? 킬러의 활약 덕분에 요즘 잘나가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 우리가 싸우기도 전에 패배한 개가 되어야 하는 거야?”
“진짜 말이 다들 좀 심하네.”
“심한 말이라도 틀린 말은 아니지.”
“틀린 말이지! 킬러가 당하면? 그땐 끝장이라고!”
“하회탈에게 진 게 큰 흠이 되나? 그런 식이면 소행크는 예전에 병신 됐게?”
“차라리 하회탈하고 PVP로 져서 이 꼴이라면 난 납득하겠어. 하지만 그게 아니잖아? 패배자랑 겁쟁이는 다른 거야.”
“아니, 그래도 상황이란 게······.”
그 논쟁은 쉽게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에서 이야기를 꺼낸 유저는 더 이상 대화에 참여하지 않은 채 입을 다물고 대화를 지켜봤다.
- 우드데빌 유인 중입니다. 전투 준비해주세요.
그런 그들의 대화는 레벨업 지원팀의 알림과 함께 일단은 잠시 멈추었다. 일단은.
9.
하이우드 숲을 지나 적색 사막이 등장했을 때, 히르칸은 더 이상 사냥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달렸다.
열심히 달렸다.
그들도 달렸다.
쉬이! 쉬익!
달리는 네 명의 유저 뒤를 샌드네이크 한 마리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따라붙었다.
그때 히르칸이 해골 조각 두 개를 던졌다. 워낙 달리는 속도가 빨라서 던진 조각은 이미 샌드네이크가 지나간 후에 해골 전사가 되었지만, 곧바로 해골 전사가 샌드네이크를 따라잡은 후에 녀석의 단단한 몸을 향해 칼질을 시작했다.
캬아!
샌드네이크가 추적을 멈추고 멈춘 후에 그 자리에서 해골 전사 한 마리를 입에 물고 모래 안으로 파고 들어갔다.
동료와 적이 사라지자 남은 해골 전사 한 마리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사이.
‘진짜 못 해먹겠네.’
해골 전사들을 미끼 삼은 덕분에 히르칸과 세 명은 샌드네이크와 거리를 꽤 벌릴 수 있었다.
벌린 후에도 그들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달리는 게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그들은 달리면서 대화도 나눴다.
“확실히 적색 사막은 하회탈 님도 버스 운전이 힘드신 모양이네.”
“야, 그런 건 속으로 말해. 왜 그런 소리를 입 밖으로 뱉어?”
“아, 죄송합니다. 제가 입이 방정이라서······.”
그들의 말에 히르칸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지금 상황은 이미 예정된 상황이었다. 적색 사막에 들어오면 몬스터 사냥을 포기하고, 보석소라가 말해주는 방향을 향해서 전력으로 이동하는 데에 집중하자고.
샌드네이크를 상대하는 게 히르칸에게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문제는 샌드네이크가 갑자기 셋 중 한 명을 물고 모래 안으로 들어갔을 때 구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샌드네이크는 우드데빌에 비해 히르칸 본인도 쉽사리 잡을 수 없는 것 역시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샌드네이크란 몬스터가 원래 몬스터가 아니었다는 거?”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히르칸의 심기를 건드리는 말을 뱉은 조바는 화두를 돌렸다.
“이야기가 있나?”
히르칸이 슬쩍 관심을 보였다. 어차피 워로드에서는 아무리 달려도 숨이 차거나, 헐떡이는 일이 없다.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건 지루한 마라톤을 달래줄 훌륭한 방법이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요조리와 조바가 해주는 워로드의 이야기는 꽤 재미있었고, 들을 가치도 있었다. 그들은 워로드에 대해서 어떤 의미에서는 히르칸보다 더 많이, 자세히 알고 있었으니까.
“샌드네이크는 원래 사막에서 살아가는 엘프와 드워프가 쓰는 이동수단이었어요. 샌드네이크를 이용해 사막 땅굴 아래에서 움직이는 식이죠.”
“괴상망측한 이동수단이군.”
“그리고 바리 왕국이 용의 저주에 멸망하기 전에 후세에 남긴 글귀가 있었어요. 그게 정확히······.”
“용의 저주를 피해 땅뱀이 만든 지저 세상 속에서 그에 맞서 싸울 힘과 의지와 미래를 키웠다.”
“아, 맞아. 이 말이요.”
“좀 외워라.”
“여기서 재미난 점은 그에 맞서 싸울 힘, 이 표현이에요. 그들이 아니라 그. 그건 곧 맞상대해야 하는 상대가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하나라고?”
히르칸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 의문에 곧장 해석이 붙었다.
“물론 현재까지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와 관련되어서 등장한 용은 네 마리였죠. 북쪽에는 서리용의 저주가 내렸고, 동쪽 우르갈 대산맥에는 불길용의 저주가 남아 산을 넘는 자들을 가로막았고, 남쪽으로는 광휘의 저주가 보는 이의 눈을 멀게 해, 하나의 섬을 세상의 시
선에서 잊히게 했죠. 마지막으로 서쪽으로는 까마득한 칠흑의 저주가 지옥의 동굴을 만들었고요.”
“자신의 위엄에 도전하는 자에게는 우레와 같은 신벌을 내렸다! 이런 문구도 있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보면 다섯입니다만, 분명 바리 왕국이 기록나무에 남긴 기록에는 복수보다는 단수로 용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이야기를 듣던 히르칸은 실소를 지었다.
‘진짜 나보다 게임을 더 잘 아는군.’
그들이 말한 것이 신화급 고대의 힘 다섯과 연관이 있다는 걸 히르칸이 모를 리 없다.
더군다나 히르칸은 그걸 과거에서 돌아왔기에 아는 것인데, 그들은 이 게임을 진행하면서 알아냈다. 과연 그만큼의 지식을 알기 위해 그들은 워로드란 게임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노력을 했을까? 분명한 건 그들의 방식이 보잘것없거나, 그들의 노력이 초라한 게 결
코 아니라는 점이다.
“잘 아는군. 대단해.”
그걸 아는 히르칸이기에, 지금 그가 한 이 말은 진심 어린 칭찬이자 감탄이었다.
하회탈에게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요조리와 조바가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그들은 비주류다. 그들이 추구하는 바는 노력에 비해 인정받기 힘든 일들이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 워로드에서 가장 주류라고 할 수 있는 하회탈의 인정을 받는다는 건, 그저 단순한 칭찬으로
치부할 수는 없을 일일 터.
“이건 비밀인데, 히드라 길드 말고도 나름 의견을 교환하는 친구들이 있거든요.”
“특히 퀘스트맨의 도움이 컸죠.”
그들이 아무에게나 밝히지 않는 사정을 이야기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들뜬 것이다.
“퀘스트맨?”
“지트라고 레벨은 별로 안 높은데, 아주 본격적으로 워로드 퀘스트를 파고드는 유저에요.”
히르칸이 고개를 갸웃했다.
‘지트? 설마 나랑 같이······ 아니겠지.’
알고 있는 이름이 나온 탓. 그러나 히르칸은 부정했다. 적어도 그가 아는 지트와 지금 촉새처럼 자신의 주변에서 쉴 새 없이 입을 떠드는 둘과의 접점은 존재할 수가 없었으니까.
“퀘스트맨은 정말 대단해요. 아마 지금 시점에서는 일반 유저 중에는 워로드 설정과 세계관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 걸요? 아, 이거 히드라 길드에 말해주면 안 돼요. 우리들 사이의 비밀이라서······.”
자기가 속한 거대 길드에도 속인 채 자신들만의 목적과 낭만을 추구한다는 것.
과거로 돌아오기 전의 히르칸은 물론 지금의 히르칸은 시도는커녕 상상조차 못할 일이다.
그래서 히르칸은 저도 모르게 툭, 말을, 진심을 뱉었다.
“게임을 재미있게 하는군.”
“예?”
그 툭 던진 말에 그 둘이 잠시 멍한 반응을 보였다.
“원래 그러려고 게임 하는 거잖아요? 게임이 재미없는데, 그럼 뭐하러 게임을 해요?”
“웃기네. 넌 엘프보고 헤헤거리려고 하잖아?”
“그러는 너는?”
“난 엘프만 보고 헤헤거리진 않거든.”
“아이고, 그러시겠죠. 잘생긴 남자 NPC만 보면 헤헤거리시겠죠.”
히르칸은 그들의 시작된 말다툼에 끼어들지 않았다. 사실 이건 말다툼이 아니었다. 히르칸도 이쯤 되면 눈치를 챈다. 이 둘이 서로를 향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런 식으로 티격태격하는지. 이 둘에게는 이게 일상이다. 연인 사이의 일상 같은 거다.
그런 그 둘의 대화를 멈추게 한 건 씽이었다.
“동쪽! 동쪽으로 바뀌었어!”
씽이 귀에 가져다 댄 보석소라가 드디어 북쪽이 아닌 다른 방향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히르칸의 표정도 달라졌다.
이제는 다시 목표를 위해 전력으로 질주하며 거슬리는 모든 걸 제거하는 하회탈로 돌아올 때였으니까.
< 60화. 적색 사막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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