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본 드래곤 (2). >
5.
[본 드래곤]
- 스킬 숙련도 : F랭크
- 스킬 사용 방법 : 드래곤 타입의 몬스터를 제물로 삼아 본 드래곤을 소환할 수 있습니다.
- 기타 : 자세한 스킬 설정을 알기 위해서는 이 항목을 활성화하십시오.
간략한 설명이 전부였지만, 히르칸을 놀라게 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이 스킬이 진짜 있었네?’
본 드래곤.
데스나이트 소환이 네크로맨서 유저들에게 있어서 꽃이자, 열매 같은 스킬이라면, 본 드래곤은 꿈과 같은 스킬이다.
꿈이라 표현하는 건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본 드래곤 스킬의 존재 유무를 몰랐으니까. 과거로 돌아오기 전 리치리치라 불렸던 그도 몰랐다.
물론 히르칸이 다시 게임에 복귀하기 위해 로또 복권을 구매할 정도로 쪼들릴 당시에는 300레벨이 넘는 유저들이 등장하고, 3차 승급도 등장했다. 그때 본 드래곤 스킬이 등장했는데 히르칸이 여유와 관심이 없어 모르고 있었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히르칸의 기억 속
에 본 드래곤 스킬은 없는 스킬이다.
그런데 지금 등장했다.
‘스킬 레벨이 230레벨? 왜 이렇게 낮아?’
더욱이 본 드래곤 스킬은 3차 승급, 300레벨 이상의 스킬이 아니라 230레벨의 스킬이었다. 2차 승급 스킬이라는 의미.
‘원래 이 레벨에 있던 건가?’
워로드에서는 유저들이 모르고 지나가는 스킬이 제법 된다. 인기 없는 직업일수록 당연히 그 정도는 더 심하다.
230레벨에 본 드래곤 스킬이 있고, 아무도 그 스킬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더욱이 지금이야 히르칸 덕분에 네크로맨서란 직업이 워로드를 시작하는 유저 10명 중 2명은 선택할 만큼 유명 그리고 유망한 직종이 됐지만, 과거로 돌아오기 전
에는 전혀 아니었다. 네크로맨서는 10명 중 1명이 선택하고, 그조차 대개 실수로 선택하거나 호기심에 선택했다 접는 직업이었다.
‘뭐, 주면 고맙지.’
물론 그런 세세한 사정 따위는 히르칸이 깊게 신경 쓸 이유는 없다.
중요한 건 어마어마한 스킬이 나왔다는 거다.
히르칸은 곧바로 스킬의 세부 항목을 살폈다. 본 드래곤은 여타 스킬과 다르게 세부 항목이 많았다.
개중에서 몇 가지 특징이 히르칸의 눈에 띄었다.
‘본 드래곤의 레벨은 제물이 된 몬스터의 레벨에 따른다.’
본 드래곤은 드래곤 타입의 몬스터 뼈를 재료 삼아 소환할 수 있고, 소환할 경우 능력치는 제물이 된 몬스터의 능력치를 따른다. 물론 본래 몬스터가 가지고 있던 특수능력은 사용할 수 없다. 스킬 랭크가 낮으면 당연히 페널티가 붙는다. 반대로 스킬 랭크가 올라가면
능력치는 더 오른다.
‘보스 몬스터를 재료로 삼으면 어마어마하겠네.’
당연히 드래곤 타입의 보스 몬스터를 재료로 삼으면 아무리 기본 능력치가 깎여도 어마어마한 능력치를 가진 본 드래곤을 소환할 수 있다. 보스 몬스터를 소환하는 격이다.
‘블레이즈 슬라임 드래곤 같은 건······ 걘 뼈가 없지.’
여기에 본 드래곤은 제물이 되는 기존 몬스터의 특수능력은 가지지 못해도 자기 나름의 특수스킬이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라이딩 스킬이었다.
‘드디어 좀 제대로 된 놈을 타보겠네.’
사실 라이딩 기능은 골렘에도 있었다. 히르칸의 경우에는 찰흙놀이 스킬 랭크가 A랭크이기 때문에 와이번 같은 비행 타입의 몬스터를 재료 삼으면 하늘을 날 수 있었다.
‘그건 비행이 아니라 그냥 이동이었지.’
문제는 고도!
와이번 골렘은 높게 날지 못했다. 동시에 비행 방향이나 과정이 굉장히 일방적이었다. 지상에서 100미터 정도 되는 고도에서 그냥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처럼 날아 움직인다.
그리고 비행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경우, 예를 들어 공격을 당할 경우에는 바로 급추락이다. 몸이 돌로 된 탓인지 균형을 잃을 경우 복구하는 능력이 최악이었다.
쓰려면 쓸 수는 있다. 그러나 사냥터에서 이 기능을 쓰는 건 생각보다 위험했다. 몬스터의 공격도 공격이지만, 낮은 고도에서 와이번 골렘이 날아가는 걸 본 유저들 중 십중팔구는 일단 공격하고 본다. 그렇게 공격당하면 히르칸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이다.
차라리 네발짐승을 재료 삼아 이동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고, 안전했다. 실제로도 목적지에 닿는 시간은 와이번 골렘을 쓰나, 그냥 늑대 골렘을 쓰나 큰 차이가 없었다.
‘설마 얘도 고도 제한에 멍청한 건 아니겠지?’
물론 본 드래곤의 라이딩 스킬 역시 골렘과 비슷할 수도 있다. 어쩌면 워로드 시스템 자체가 날 수 있는 탈 것에 대해 많은 제약을 걸어뒀을 수 가능성도 충분히 높다.
‘에시드 브레스는······ B랭크부터 쓸 수 있네.’
라이딩 스킬 외에도 본 드래곤은 스킬 랭크가 오르면, 몇 가지 스킬을 쓸 수 있었다. C랭크부터 능력치 페널티가 사라지고, B랭크 때 에시드 브레스를, A랭크 때 드래곤 피어를 사용할 수 있었다.
‘두 가지 스킬이 따로 있을 수도 있겠어.’
이 두 가지 특수스킬은 해골 기사의 기사도나, 지휘관처럼 따로 스킬북을 통해 습득해서, 스킬 능력을 높일 수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돈 들어갈 곳투성이네.’
지휘관과 기사도 스킬을 얻기 위해 투자한 금액을 떠올린 히르칸이 혀를 내둘렀다.
“응?”
하지만 그런 히르칸의 돈 걱정은 다음 네 번째 설정을 보는 순간 깔끔하게 날아갔다.
‘잠깐, 이거 뭐야?’
- 본 드래곤을 소환하기 위해서는 한 마리 분량의 뼈 재료가 필요합니다.
‘뭐라고?’
워로드에서 가장 비싼 스킬의 등장이었다.
6.
끄오오!
뼈밖에 남지 않은 본 와이번이 울부짖으며, 빌딩을 연상케 하는 높고, 두꺼운 나무들이 빼곡한 숲을 향해 낙하를 시작했다.
쉬이이이!
정점에 다다른 화살이 바닥을 향해 내리꽂히듯, 뼈밖에 없어 더더욱 뾰족해진 부리를 앞세운 채 추락하는 와이번의 기세는 무시무시했다.
푸홧!
이윽고 와이번이 지붕처럼 대지를 가리고 있는 거대 나무들의 나뭇잎 사이를 대기권 뚫듯 뚫고 들어왔다. 그런 와이번의 부리 끝에 있는 건 데스나이트를 비롯해 해골 기사, 전사들과 치열한 전투 중인 우드데빌이란 몬스터였다.
7미터의 거대한 신장, 염소의 다리와 오우거의 몸과 오크의 머리를 가진 흙과 돌, 나무로 만들어진 우드데빌의 위용은 대단했다. 중대형 몬스터이지만, 사냥 난이도가 대형 몬스터에 비해 부족함이 없는 괴물 중의 괴물, 그만큼 경험치는 대형 몬스터과 비교해도 부족
하지 않을 정도로 짭짤하게 주는 놈의 머리를 향해 본 와이번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제 부리를 꽂았다.
퍼억!
그 충돌은 찌른 것과 찔린 것, 둘 모두에게 자비 없는 대가를 안겼다.
우드데빌의 머리통이 수박이 터지듯 터졌다. 본 와이번은 머리가 깨진 우드데빌의 어깨 위에 그대로 꽂혔다. 그렇게 꽂힌 본 와이번의 꼴 역시 처참했다. 마치 단단한 벽돌에 삶은 달걀을 던진 꼴이었다.
더욱 괴기스러운 건 둘 모두 이토록 큰 부상에도 죽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우드데빌은 이제 머리라고 할 수 없는 것, 제 몸통 위에 꽂힌 본 와이번의 몸뚱이를 왼손으로 뽑아낸 후에 콰직! 어마어마한 악력으로 본 와이번을 부쉈고, 쓰레기 버리듯 바닥을 향해 내던졌다.
푸홧!
가뜩이나 망가진 본 와이번은 이제 본래의 형태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바닥에 너부러졌다. 그러는 와중에 스멀스멀, 본 와이번이 제 형태를 갖추기 위해 열심히 뼈 하나하나가 노력을 했고, 동료의 죽음에 복수를 하려는 듯, 데스나이트의 해골마가 우드데빌을 향해 박치
기를 날리고, 데스나이트가 머리 잃은 우드데빌의 몸뚱이를 강력한 장작 쪼개듯 내리쳤다.
“아, 진짜 쫌!”
그리고 우드데빌의 등에 달라붙어, 녀석의 몸에 열심히 뼈폭탄을 쑤셔 넣는 작업을 하던 히르칸은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저게 얼마짜린데!’
암흑대륙 북부에 위치한 하이우드 숲.
적색 사막을 앞에 두고 펼쳐진 이 숲은 현재 암흑대륙에서 발견된 사냥터 중에서 고레벨, 230레벨 이상의 유저들에게 굉장히 효율적인 레벨업 장소로 평가받는 사냥터였다. 우드데빌은 사냥 난이도가 높지만, 경험치는 사냥 난이도 이상으로 짭짤했으니까.
히르칸이 이런 하이우드 숲에 방문한 이유는 퀘스트 때문이었다.
‘젠장, 뼈폭탄에 본 드래곤 제물에······ 미치겠네.’
고대 왕의 무덤에서 대마법사 보칸의 흔적을 발견한 히르칸은 곧바로 ‘고대 왕의 유물’ 퀘스트를 받았다. 그 퀘스트 수행을 위해서는 대장장이 올프를 만나야 했다.
당연히 히르칸은 대장장이 올프가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애초에 한곳에 머무는 NPC가 아니니까. 당연히 토벌협회에 질문을 했고, 토벌협회는 대장장이 올프가 암흑대륙으로 넘어와, 적색 사막으로 향했다는 단서를 알려줬다.
자연스럽게 히르칸의 목적지는 적색 사막이 됐고, 적색 사막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하이우드 숲에서 열심히 사냥을 하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 됐다.
사냥은 아주 좋았다. 우드데빌은 정말 짭짤한 경험치를 보장해주는 몬스터였고, 우드데빌이 드롭하는 재료 중에는 유니크 아이템 제작도 가능한 재료가 있었다. 경험치도 좋고, 돈도 되고, 잡는 족족 매상이 올라가는 몬스터.
그런데 그 매상을 지금 본 드래곤이 박살 내고 있었다.
‘빌어먹을!’
본 드래곤.
좋은 스킬이었다. 본 드래곤으로 소환 가능한 본 와이번이나, 기타 드래곤 몬스터의 전투 능력은 나름 훌륭했다.
문제는 너무 저돌적이란 점 그리고 아직 스킬 랭크가 낮고, 소환을 위해 제물로 쓰는 재료의 몬스터 레벨과 히르칸이 사냥하는 몬스터 사이의 레벨 차이가 너무 크다는 점이었다.
‘고작 우드데빌 잡는데 200레벨짜리 보스 몬스터 뼈재료를 제물로 쓸 수도 없고······.’
지금 히르칸이 소환한 본 와이번의 재료는 그레이 와이번이란 몬스터로 170레벨의 몬스터였다. 낮은 레벨은 아니다. 워로드에서 그레이 와이번은 여전히 잡기 힘든 몬스터다. 그러나 지금 히르칸이 사냥하는 몬스터인 우드데빌의 레벨은 240레벨이었다.
70레벨의 차이, 엄청난 차이다. 여기에 F랭크의 스킬 랭크 때문에 페널티도 받는다.
그 결과가 조금 전 그 장면이었다.
본 와이번은 나름 열심히 했고, 때때로 큰 활약을 보였지만 그에 따른 마땅한 대가를 치렀다.
여기까지는 당연히 이해하고, 납득한다. 170레벨짜리 몬스터를 재료 삼아 240레벨 몬스터를 잡는 게 이상한 일이다.
문제는 값.
‘그래도 본 와이번 하나 소환하는데 드는 값이 1천 골드나 되는데 이건 너무 하네.’
본 와이번 소환에 드는 비용.
그레이 와이번의 경우에는 한 마리를 잡을 경우 대개 8개 안팎의 아이템을 제작할 수 있는 재료가 나온다. 여기서 나오는 뼈 재료의 값을 다 합치면 천 골드쯤 된다. 비싼 건 아니다. 8개 분량으로 나누면, 아이템 하나 제작하는데 드는 뼈 재료값이 120골드 정도 하는 거
니까. 170레벨 대 유저들의 아이템 재료값으로 이 정도면 저렴한 수준이다.
그러나 그 재료를 통째로 사다가, 일회용품으로 쓴다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저놈 하나에 뼈폭탄 100개 분량이······.’
뼈폭탄 100개 분량.
심지어 본 드래곤은 데스나이트의 특수스킬인 불멸의 영향력도 잘 받지 못했다.
못 받는 건 아니다. 불멸 스킬의 특성 때문이었다. 불멸 스킬은 데스나이트의 주변에서만 유효하다. 그러나 본 와이번의 활동 범위는 그런 불멸 스킬의 유효 범위를 한참 벗어나고는 했다.
지금 상황도 그랬다. 우드데빌이 제 몸에 박힌 본 와이번을 뽑아 내던진 곳은 데스나이트의 불멸 스킬 범위 밖이었다.
[본 와이번이 흙으로 돌아갑니다.]
결국 복구, 재생에 실패한 본 와이번이 흙으로 돌아갔다.
“진짜 씨발······.”
1천 골드가 흙으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더 속이 쓰리는 건, 본 드래곤의 스킬 랭크를 올리기 위해서는 결국 이 말도 안 되는 투자를 거듭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런 식으로 적자가 나올 줄이야.’
반대로 그게 의지가 됐다.
‘이 새끼라도 빨리 잡아서 적자를 메워야 해.’
히르칸, 그가 우드데빌 사냥 의지를 활활 불태웠다. 마치 처음 이 게임을 했을 때처럼.
7.
파이브 스타에 소속된 5개 길드, 비앤비, 빅스마일, 블로썸, 스위퍼즈, 월광 길드는 다른 길드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머릿수를 이용해 암흑대륙의 남과 북쪽으로 영향력 확장을 꾀했다.
영향력 확장이란 우레사냥꾼 길드처럼 단순히 무대를 만드는 게 아니라, 새롭게 확보한 좋은 사냥터 지역을 관리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고레벨 유저들, 230레벨 이상, 레벨 랭커들에 근접하는 유저들에게도 굉장히 매력적인 사냥터로 각광 받는 하이
우드 숲은 중점적으로 관리를 해야 마땅한 사냥터였다.
그런 하이우드 숲은 빅스마일 길드의 관리 영역이기도 했다.
물론 이 정도 고레벨 사냥터를 그저 힘으로 관리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230레벨이 넘는 몬스터를 잡으려면 길드 내 최고 레벨 유저들, 전력이 나서야 하는데, 그보다 약한 유저들이 하이우드 숲에 상주하면서 오는 유저를 감시하고, 관리한다? 감시나 관리는커녕
지나가던 우드데빌에게 잡혀 하르드 요새 유적 마을로 특급배송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사실 관리를 할 만한 장소는 아니었다. 레벨 낮은 유저들을 위한 무대가 아니니까. 이곳을 사냥터로 삼을 만한 유저들은 어느 정도 명성과 인지도와 실력을 갖춘 만큼, 대화가 통하거나 합의가 이루어지거나, 큰 의미의 응징이 가능할 테니까.
- 언제까지 하회탈이 하이우드 숲에서 활개 치게 놔둘 생각이지?
그러나 그 모든 요소에 포함되지 않는 유저가 있었다.
레벨도 높은데, 대화는 통하지 않고, 합의는 가당치도 않으며, 큰 의미의 응징, 길드 차원에서의 압박이나, 압력 같은 건 먹히지도 않는 유저가.
“하회탈은 건드리지 않기로 이미 내부적으로 결론이······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헤비빈 당신도 동의했잖습니까?”
- 아무리 그래도 정도가 있지. 하이우드 숲은 우리의 주요 관리 지점이라고!‘
하회탈.
그는 이 모든 요소를 무시한 채 하이우드 숲에서 사냥을 하고 있었다. 그냥 하는 것도 아니었다.
- 더군다나 지금 하회탈은 하이우드 숲에서 사냥을 보란 듯이 과시하고 있잖아!
대놓고!
마치 광고를 하듯!
- 지금 녀석이 올린 하이우드 숲 조회수가 하루 만에 천만을 넘겼어!
심지어 하회탈은 하이우드에서의 사냥 영상을 간략한 편집만 한 채 곧바로 다음날 유튜브 페이지에 올리고 있었다. 하회탈은 이제 그저 단순히 게임 속에서 해골 댄스만 추는 영상도 천만 조회수를 넘길 만큼의 유튜브 대스타이자, 워로드 대스타였다.
그런 그의 우드데빌 사냥 영상의 조회수가 저렴할 리 없다. 하루에 기본 천만을 찍을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그런 하회탈의 승승장구가 이어질수록, 하이우드 숲의 엄격한 관리를 주장한 빅스마일 길드의 꼴은 우스꽝스럽게 변할 수밖에 없었다.
- 당장 하회탈이 올린 하이우드 숲 사냥 영상 아래에 달린 리플 중 절반이 빅스마일을 우습게 보는 리플들이야.
빅스마일의 부길드 마스터인 헤비빈이 지금 분노하는 이유였다.
사실 헤비빈도 하회탈에 대해서 더 이상 신경 쓰기 싫었다. 하회탈을 건드릴 때마다 손해를 보지 않았는가? 그래서 길드 내부 방침으로 하회탈에 대한 특별한 간섭을 하지 않기로 하자는 말이 나왔을 때 그는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그때와는 전혀 달랐다.
- 우린 30대 길드, 중국 최대 길드라고. 이런 식으로 하회탈에게 당하는 꼴을 보여주면 이건 계산이 안 될 정도의 손해라고.
미친개가 들판에서 컹컹 짓는 건 아무래도 좋다. 무시해도 좋다. 하지만 그 미친개가 집안에 들어와서 개판을 만드는 건 전혀 다른 종류의 이야기였다.
헤비빈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고, 그 말을 듣는 싱글레 역시 헤비빈의 말에 동감했다.
“이해합니다. 하지만 리스크가 너무 큽니다. 지금 당장 하회탈을 잡으려면 암흑대륙에 있는 우리 길드 전력 상당수를 그를 잡기 위해 대기시켜야 합니다.”
하회탈을 잡을 수 없는 건 아니다. 그는 대단하지만, 결국 혼자이니까. 잡고자 하면 잡을 수 있다.
그만한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됐다면 말이다.
- 싱글레 당신이······.
“내가 나서서 하회탈과 싸워라, 이겁니까?”
결국 그게 걸리는 거다. 하회탈을 잡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 저 무시무시한 솔플의 귀재를 잡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 대가를 치른 후에도 문제다. 대가를 치르면, 누군가는 계산서에 사인을 해야 한다. 그 계산서에 손해가 나오면, 사인을 한 자는 그 손해를 짊어져야 한
다.
“방침은 방침입니다. 하회탈은 건드리지 않습니다.”
- 킬러, 당신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군.
“파이브 스타가 동의했고, 히드라 길드도 동의한 내용입니다. 하회탈은 건드리지 않습니다.”
- 싱글레, 핸즈 길드 소속일 당시에 당신은 마타도르 체브나, 우레여왕 시르에 비해서도 조금도 꿇리지 않는 유저였지. 난관이 있으면 돌파했지. 그때 그 실력은 그림자 속에서 지내는 게 아쉬울 정도였고 많은 길드가 러브콜을 보낸 이유였지.
싱글레는 손해볼 게 명백한 그 계산서에 사인을 하고 싶진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는 할 수가 없었다. 그를 고용한 고용주가 허락치 않으니까.
- 그래서 궁금하군. 지금 마타도르나 우레여왕이라면 무슨 결정을 내렸을지.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그 대화를 마지막으로 싱글레는 헤비빈과의 통화를 종료했다.
‘헤비빈이 진짜로 원하는 건 내가 하회탈에게 당하고, 내 입지가 작아지는 거겠지.’
통화를 마친 싱글레는 쓴웃음을 지었다.
헤비빈이 왜 자신을 자극했는지, 싱글레는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다. 그 이유가 그저 하회탈을 응징하기 위함이 아니라, 싱글레를 중심으로 개편된 빅스마일 길드에서 외톨이가 되어버린 헤비빈 본인의 입지를 반전시킬 구실이 필요하기 위함이란 것, 알고 있었다.
‘젠장.’
그래서 거절했다.
“젠장.”
싱글레는 지금 당장은 그렇게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 59화. 본 드래곤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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