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솔플의 제왕-168화 (168/192)

< 58화. 왕의 무덤 (1). >

1.

히드라 길드의 파이터즈 길드 인수 소식이 퍼지는 순간, 워로드란 판이 크게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 왜 갑자기 히드라 길드가 파이터즈 길드를 인수한 거지?

- ㄴ 파이터즈 길드의 전력이 필요했으니, 인수했겠지.

- 그럼 왜 갑자기 히드라 길드가 파이터즈 길드 정도 되는 전력이 필요한 거지? 뭘 하려고?

술렁거림 속에서 사람들은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히드라 길드가 파이터즈 길드를 조금 무리할 정도의 대가를 지불하면서까지 인수를 결정한 이유를 말이다.

- 암흑대륙으로 진출하겠다, 이거겠지.

- ㄴ 기존 히드라 길드 전력만으로도 암흑대륙 진출은 못할 거 없잖아?

- ㄴ 암흑대륙에서 몬스터만 상대할 건 아니잖아?

그 이유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이들이 금방 의견을 모았다.

- 이미 암흑대륙에서 자리 잡고 있는 파이브 스타 소속 길드나, 우레사냥꾼 길드랑 충돌도 피하지 않겠다, 이거지.

- ㄴ 길드전을 건다고?

- ㄴ 이미 얼어붙은 땅에서 빅스마일 길드하고 한판 붙었잖아? 한판 붙었는데, 두판을 못할 이유는 없지.

- ㄴ 지금 빅스마일은 파이브 스타 소속인데, 히드라 길드가 빅스마일에게 시비를 건다고?

- ㄴ 그래서 파이터즈 길드를 인수한 거잖아!

- ㄴ 아무리 그래도 파이터즈 길드 영입했다고 될까? 내가 보기엔 다른 길드와 손을 잡지 않았을까?

- ㄴ 레드불스랑 히드라 관계가 괜찮으니까, 둘이 손을 잡고 여기에 파이터즈 전력이 더해지면······ 안될 건 없지.

길드전.

단순히 길드에 소속한 유저 대 유저의 충돌이 아니라, 길드의 이익을 건 사생결단의 전투. 당연히 히드라 길드의 암흑대륙 진출은 곧 30대 길드 간의 운명을 건 길드전의 신호

탄이 되리라고 많은 이들이 예상했다. 길드의 운명을 건 만큼, 이제까지 30대 길드를 대표하는 실력자들 간의 전투가 있으리라 예상했다. 얼어붙은 땅에서 소행크와 싱글레가 붙

었던 것처럼, 진짜배기들의 명성을 건 전쟁이 있으리라 예상했다.

예상했고, 동시에 기대했다.

그러나 그런 세간의 기대와는 달리, 그들이 기다리는 본격적인 충돌은 없었다.

사람들은 이렇다 할 충돌이 없다는 사실에 실망했다. 안재현 역시 개중 한 명이었다.

‘오늘도 특별한 소식은 없고.’

태블릿PC를 열심히 터치하던 안재현은 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결국 손에 손잡고 모드로 가는 건가? 내가 보기에 히드라 길드와 파스타 놈들의 활동 영역은 예전에 겹쳤는데······ 파스타랑 히드라 길드가 합의를 내린 거겠지?’

처음 히드라 길드가 파이터즈 길드를 인수했을 때, 안재현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안재현 입장에서도 암흑대륙을 파이브 스타와 우레사냥꾼 길드만이 나눠먹는 건 좋을 게 하나도 없었으니까.

반대로 판이 어지러워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30대 길드 사이의 경쟁이 심해질수록 하회탈의 활동 범위와 영역은 넓어지는 셈이다.

‘언제 이 새끼들이 나 엿 먹이려고 덤벼들지도 모르고······ 느낌이 싸하단 말이야.’

그게 아니더라도 30대 길드가 손을 잡아서 하회탈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건 하나도 없다. 그들에게 하회탈이란 존재는 친절한 옆집 잘생긴 오빠 같은 존재는 결코 아닐 테니

까. 30대 길드 입장에서 하회탈은 제거할 수만 있다면 당장 제거하고 싶은 존재다.

‘그래도 아이템 물량이 풀리는 건 좋네.’

그나마 안재현에게 긍정적인 점은 30대 길드의 암흑대륙 내 활동이 활발해지고, 서로 간의 견제가 적어지면서 암흑대륙이란 무대가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는 점, 그로 인해

유니크 아이템과 스킬북이 시장에 공급된다는 점이었다.

워로드의 아이템 제작 시스템의 특성상 일반 아이템도 제작하다보면 유니크 등급의 아이템이 운좋게 나올 때도 있다.

동시에 암흑대륙은 스킬북을 구할 장소가 제법 많았다. 유적이란 이름하에 많은 던전이 있었고, 던전 보상으로는 노네임 스킬북이 나오는 경우가 꽤 많았으니까.

실제로 190레벨 이하 노네임 스킬북이 간간이 경매장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태블릿PC를 터치한 안재현이 워로드 경매장에 들어갔다. 190레벨짜리 노네임 스킬북 세 개가 경매장에 올라와 있었다. 현재 판매가는 100만 골드. 3개 전부 똑같이 100만 골

드였다.

‘미친 새끼들.’

당연히 골드에 판매하려고 올려놓은 가격이 아니었다. 정말 100만 골드에 팔 생각이 있다면, 최소한 경매장을 통해 골드 거래를 하기보다는 비슷한 값의 아이템과 거래를 하는

게 낫다.

그냥 무작정 올려본 거다. 혹여 팔리면 대박이니까. 그리고 약간의 기대심은 있을 것이다.

‘10만 골드라면 모를까······.’

워로드에는 돈이 너무 넘쳐나서 주체할 수 없는 부자들이 제법 있으니까.

‘10만 골드라니.’

그 순간 안재현은 조금 전 자신의 생각에 혀를 찼다.

‘나도 갈 데까지 갔구나. 스킬북 하나에 10만 골드를 주고 살 생각을 하다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안재현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매트리스 위에 올려진 V기어를 향했다. 현재 일반인이 구매할 수 있는 가장 비싼 모델의 V기어를 바라보는 안재현의 가

슴 언저리가 간질거렸다.

2.

정상을 보는 것조차 쉽게 허락해주지 않은 두 개의 산은 새빨간 색의 숲을 두르고 있었다. 때문에 그 두 개의 산은 멀리서 보면 마치 활활, 타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붉은 숲.

현재 암흑대륙에서 발견된 사냥터 중에서 사냥 난이도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만큼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사냥터 레벨은 무려 240레벨!

이곳을 최초로 발견한 우레사냥꾼 길드조차도 붉은 숲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할 정도로, 아직 사냥터로 삼기에는 여러모로 힘들기 그지없는 곳이었다. 유저들에게는 그야말

로 지옥 같은 곳인 셈.

그곳을 지옥으로 만드는 건, 워베어란 이름을 가진 무시무시한 몬스터였다.

크어어엉!

3미터 신장, 늑대인간처럼 사람과 비슷하게 팔다리가 있지만, 결코 사람하고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공격력과 방어력, 전투 능력을 가진 녀석은, 워베어 최초의 발견자인 우레

공주 하희를 한방에 날려 보내면서 유명세를 떨쳤다.

그때 사건을 좀 더 자세히 말하면, 하희는 워베어를 보는 순간 귀엽다는 말과 함께 워베어를 한 번 안아보려고 다가갔고, 이후 하희가 워베어의 공격을 피하지 못한 채 맞아 공

중에 붕 떠서 날아가는 장면을 해치가 찍어서 개인 유튜브 페이지에 올렸다. 영상 공개 닷새 만에 3천만이란 조회수를 찍을 정도로 대인기였다.

지금 그 워베어가 거친 울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크어어엉!

정확히는 비명이었다.

해골 기사 둘이 워베어가 휘두르는 팔공격을 가뿐하게 막아내는 사이, 자그마한 미니 오우거 해골 전사들이 워베어의 다리를 쉴 새 없이 찔러댔으니까. 미니 오우거 해골 전사

를 잡으려고 움직이는 순간, 곧바로 해골 기사들의 검이 워베어의 두꺼운 가죽에 깊은 상처를 만들어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워베어가 내지르는 울음은 당연히 비명일 수밖에 없을 터.

“아, 시끄러워.”

그 소리에 히르칸이 짜증을 부렸다. 다른 유저들에게는 기겁할 광경이지만, 지금 히르칸에게는 일상이나 다름없는 광경이니까. 무엇보다 지금 히르칸은 금각소라를 귀에 가져

다대고 있었다.

- 동쪽으로······.

금각소라는 나지막이 말했다. 정말 작은 목소리라,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을 수 없을 정도. 조금 전 히르칸이 워베어의 울음에 짜증을 부린 이유였다.

‘젠장.’

물론 정말 짜증나는 건 그게 아니었다.

‘또 동쪽으로 가라고?’

20일째였다.

히르칸이 하르드 요새 유적 마을에서 퀘스트를 받은 지 20일째, 그동안 히르칸은 금각소라가 내뱉는 나지막한 소리에만 의존한 채 계속 동쪽으로 이동했고, 지금도 현재 진행

중이었다.

‘대체 어디까지 가라는 거야? 버그 아니야?’

20일 동안 짧은 거리를 이동한 것도 아니었다. 정말 먼 거리를 이동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시적인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대마법사 보칸의 흔적은커녕 대마법사 보칸의 단

서가 남았을 만한 유적 하나 나오지 않았다.

‘보칸 이 새끼 아힘브리보다 더 한 새끼이네. 무슨 퀘스트를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줘?’

사실 그게 가장 큰 불만이었다.

“후우.”

‘하르드 요새 유적 이후 고대의 힘을 하나도 못 얻었어.’

고대의 힘을 얻기 위해서는 유적을 발견하는 게 가장 빠르다. 그게 아니더라도 방법은 있지만, 그 방법이란 대개 퀘스트 보상으로 받는 것밖에 없고, 초월급 고대의 힘을 얻기

위해서는 퀘스트 진행에만 열흘 넘게 쓰는 건 기본이었다.

솔직히 이번 퀘스트를 하면서, 당연히 유적 한두 개 정도는 마주하리라 생각했다.

그게 기본이니까. 폐허 왕국 편에서 유적은 징검다리 같은 역할이다. 대마법사 보칸을 찾는 정도의 퀘스트라면 그 징검다리가 보통 징검다리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20일 동안 히르칸이 한 건 그저 몬스터와 열심히 싸우는 것밖에 없었다.

‘퀘스트 보상이 스킬북만 아니었으면 진작에 때려 쳤다.’

히르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금 전장을 바라봤다. 해골 기사와 해골 전사를 합쳐 일곱 마리의 해골을 상대하는 워베어의 온몸은 상처투성이였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워베어만 상처를 입은 건 아니었다. 워베어의 반격 앞에서 해골 기사와 해골 전사도 적잖게 데미지를 입었고, 심지어 해골 전사 세 마리는 조각 상태로 돌아

갔다. 워베어 혼자서 1대10으로 싸워, 셋을 잡아낸 것이다.

‘우레공주, 그년이 맞고 날아갈 만하네.’

워베어는 정말 강했다.

히르칸이 보기에도 이제까지 만난 중소형 일반 몬스터 중에서 손에 꼽을 정도였다.

더욱이 워베어는 히르칸의 기억 속에도 없는 몬스터였다.

“쯧!”

히르칸이 짧게 혀를 찼다. 그 순간 워베어가 갑자기 히르칸을 바라봤다. 히르칸을 바라보는 순간, 워베어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제까지 검게 빛나던 녀석의 눈동자가 붉게 빛나

기 시작했다.

히르칸은 당황하지 않았다. 처음 보는 놈이지만, 몬스터가 저런 눈깔로 자신을 바라보는 순간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이미 히르칸은 달리고 있

었다.

그렇게 달리는 히르칸을 향해 워베어가 몸을 날렸다. 해골 기사들이 방패를 앞세우며 워베어를 막으려고 했지만, 조금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진 워베어의 몸통박치

기에 해골 기사들의 몸뚱이가 힘없이 날아가 바닥을 굴렀다.

크어엉!

워베어가 큼지막한 울음을 내뱉으며 처음으로 네발을 이용해 히르칸의 뒤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바닥을 구르던 해골 기사들이 곧바로 자세를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워베어의 꽁무니를 바라보는 해골 기사들의 눈빛이 서슬 퍼렇게 빛나기 시작했다.

떨그럭떨그럭!

그러는 사이 추격의 귀재, 미니 오우거 해골 전사들은 잽싸게 워베어의 꽁무니 근처에 달라붙었고, 미니 오우거 해골 전사 한 마리는 단숨에 워베어의 등 위에 올라타며, 등에

탄 채로 워베어의 몸을 제 단검으로 쉴 새 없이 찌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달리던 히르칸은 어느 순간 방향을 틀면서, 소용돌이를 그리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히르칸은 자리에서 멈췄다. 히르칸이 자리에서 멈추는 순간 워베

어가 히르칸을 향해 크게 도약했다.

크엉!

자신을 덮치려는 거대한 워베어의 모습 앞에서 히르칸은 몸을 낮췄고, 워베어의 몸뚱이가 장애물 넘기를 하듯 히르칸을 넘어갔다. 그 후 바닥에 착지한 워베어가 잽싸게 몸을

돌렸을 때.

철컥, 철컥, 철컥!

어느새 해골 기사들과 해골 전사들이 워베어를 포위하듯 포위망을 갖춘 워베어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소용돌이 도주법이다. 소용돌이 모양으로 도주를 하면, 어느 순간 미끼는 포위를 당할 수밖에 없으니까.

히르칸은 그 광경을 담담하게 바라보며, 금각소라를 꺼내 다시 한 번 귀에 가져갔다.

- 북쪽으로······.

‘어?’

그 순간 처음으로 새로운 단어가 나왔다.

히르칸이 북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3.

히르칸이 고개를 들었다.

거대한 산, 모든 것이 장엄하기 그지없는 그 산 속의 동굴은 대자연이 주는 장엄함과는 조금 다른 장엄함이 깃들어 있었다. 동굴 주벽의 벽을 깎아 만든 거대한 기사의 모습은

당장에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았다. 그러나 히르칸의 시선을 훔치는 건 그 기사 조각상이 아니었다.

‘설마?’

10미터에 다다르는 거대한 기사 조각상 사이에 위치한 동굴 입구, 그 동굴 입구 위에는 왕관의 조각이 새겨져 있었다.

‘설마?’

왕관에는 보석이 박혀 있었으며, 그 보석은 무척 컸다. 왕관 하나하나를 꾸미는 보석의 크기가 성인 남자 주먹 크기는 가뿐하게 넘을 정도였다.

히르칸은 그 동굴 입구를 바라보며, 자신이 그 무엇보다 소중히 품고 다니던 금각소라를 귀에 가져갔다.

- 안으로······.

금각소라의 말에 히르칸은 동굴 입구 안쪽, 시커먼 어둠 가득한 그곳을 바라봤다.

누가 보더라도 그 어둠을 보고 기분 좋은 미소를 지을 순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세상 모든 불길함을 잔뜩 모은 듯한 어둠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금 그 어둠을 바라보는 히르칸의 입가에는 미소가 크게 그어져 있었다.

‘사부의 사부님, 감사합니다.’

히르칸, 그가 드디어 20일째에 첫 번째 징검다리를 밟았다.

< 58화. 왕의 무덤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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