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솔플의 제왕-167화 (167/192)

< 57화. 보칸의 흔적 (3). >

8.

하르드 요새 유적 마을은 하루가 다르게 번화하고 있었다. 이미 그럴싸한 성벽이 마치 대나무 자라듯 높아졌고, 그 성벽 너머에는 통나무를 이용해 만든 집은 물론, 벽돌집들이

우후죽순 돋아났다.

개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축물은 벽돌을 쌓아 이미 그럴싸하게 완성된 토벌협회 하르드 요새 유적 지부였다. 높이는 5층으로 가장 높았고, 넓이도 가장 넓었다.

그리고 모여든 유저 수도 가장 많았다.

“좀 비켜! 퀘스트 좀 받자!”

“같이 사냥하실 분? 스트라이커 한 명 받습니다!”

“야! 여기! 여기라고! 여기!”

암흑대륙의 유일한 거점 지역이니, 사람이 많은 건 당연했고, 사람이 모이면 시장통이 되는 것 역시 당연했다. 2차 승급, 다른 곳에 가면 유저들의 우러러보는 시선을 누릴 수

있는 레벨과 아이템을 가진 자들이었지만, 지금 이곳에서는 통용되는 이야기가 아니었으니까. 자기 레벨, 아이템 자랑을 하기에는 괴물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지금 진짜 괴물 한 명이 그곳에 등장했다.

‘하회탈이다.’

‘하회탈, 정말 왔구나.’

‘여기 온 걸 보면 퀘스트 때문이겠지? 이야기를 듣자니 우르갈 대산맥을 다시 넘어왔다던데?’

‘게임오버를 당했으면 여기서 부활하지, 우르갈 대산맥을 넘을 이유는 없지.’

‘배덕의 왕자 편도 그렇고, 얼어붙은 왕국 편도 그렇고, 무조건 하회탈을 따라가야해.’

하회탈.

이미 그가 하르드 요새 유적 마을에 왔다는 소문은 하르드 요새 유적 마을에 있는 유저들만이 아니라, 워로드를 하지 않는 사람들조차 알고 있을 정도로 퍼졌다.

하지만 하회탈이 토벌협회 지부 앞에 등장한다는 건, 그가 그저 이곳에 온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이야기였다.

하회탈, 그는 그저 실력 좋은 유저가 아니다. 워로드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자다.

그런 그가 퀘스트를 받을 수 있는 토벌협회에 등장했다는 건, 퀘스트를 진행 중이란 의미다. 당연히 보통 퀘스트일 리 없고, 하회탈이 토벌협회 지부에 들어가는 순간, 일반 유

저들처럼 1층에서 일반 퀘스트 처리가 아니라 경비원의 안내를 받고 계단을 밟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퍼지는 순간 토벌협회 지부에 모였던 유저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9.

NPC 디웅은 온몸 그리고 얼굴에 상처가 가득한 젊은 청년이었다. 젊음과 상처,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를 함께 가진 NPC 디웅의 손에는 헝겊으로 만들어진 주머니 하나가 들려

있었다.

“이게 이번에 발견된 물건입니다.”

NPC 디웅은 그 주머니를 하회탈을 뒤집어쓴 유저에게 건네줬다.

주머니를 받은 히르칸은 곧바로 주머니를 열고 안에 있는 것을 곧바로 꺼냈다.

‘역시 소라네.’

들어 있는 건 노란빛이 감도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소라였다. 그 크기는 얼마 전 히르칸이 유적에서 발견한 목각소라와 비슷했고, 형태 역시 그와 비슷했다. 그러니 금각소라의

사용법이 다를 리 만무. 히르칸은 곧장 금각소라를 귀에 가져다 댔다.

청아한 파도 소리 대신 목소리가 들렸다.

- 내 이름은 보칸. 나는 지금 무덤에 있다. 누군가의 무덤이다. 이곳에서 타락의 힘을 보았다. 때문에 이렇게 기록을 남긴다.

그 목소리는 칼칼했다.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저 잡음, 소음 따위로 치부할 수 있을 정도로.

동시에 짧았다.

히르칸은 혹시 있을지 모르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좀 더 기다렸지만 새로운 이야기는 없었다.

‘진짜 게임 너무 하네.’

즉, 그게 전부였다.

내 이름은 보칸, 자기 소개를 했고, 나는 무덤에 있다, 자기 위치를 말했으며, 타락의 힘을 보았다, 자기 성과를 말했다.

‘이걸 가지고 찾으라고?’

이제부터 히르칸은 이 단서만을 가지고 보칸의 흔적을 찾아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정해진 포인트에 가면, 금각소라가 새로운 단서를 줄 것이다. 그게 폐허 왕국

편에서 유저들이 퀘스트를 진행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다.

‘짜다, 짜. 좀 쉽게 퍼주면 안 되나?’

히르칸이 짧게 불만을 품었지만, 거기서 끝이었다. 이 불만을 토로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건, 히르칸 본인이 잘 알고 있으니까.

“어디서 발견됐습니까?”

어쨌거나 시작점은 이 물건이 발견된 장소다. 거기서부터 하나하나 돌다리를 찾아가면 된다.

“발견된 지역은 발로스 유적입니다.”

발로스 유적, 우레사냥꾼 길드가 발견한 곳이다.

‘결국 동쪽인가?’

히르칸과 우레사냥꾼 길드와의 인연은 뗄 수가 없는 운명인 모양이다.

‘무덤이라······.’

히르칸이 폐허 왕국과 무덤이란 단어를 엮었다. 폐허 왕국 편에서 무덤이란 이름이 붙은 장소는 꽤 많았다. 폐허 왕국, 말 그대로 왕국이다. 왕국이 성세를 이룰 당시 왕이나 높

으신 분의 무덤도 성세를 이뤘을 것이고, 당연히 그 무덤 안에는 아이템이 가득할 터.

그리고 그 무덤 역시 크게 보면 유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동쪽이라······ 왕의 무덤이라도 나오면 대박인데.’

당연히 왕의 무덤이 나오면, 대박이다. 못해도 전설급 고대의 힘 두루마리를 얻을 수 있고, 잘하면 어마어마한 아이템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무덤이라서 아이템도 한두 개가

아니다.

물론 그만큼 힘들다. 제법 이름이 남을 만한 왕의 무덤을 최초로 발견한 자에게는 우르갈 대산맥의 정상을 지킨 괴물과 비교해도 꿇리지 않는 무덤 수호자들과의 신나는 몸싸

움이 기다리니까.

‘좋게 보자고.’

히르칸이 그렇게 나름 긍정적인 요소들을 떠올렸다. 동쪽이란 무대 역시 남쪽과 북쪽보다는 나았다. 우레사냥꾼 길드와 히르칸은 빌미만 있다면 언제든 얼굴을 붉힐 만큼 싸

울 수 있겠지만, 파이브 스타 소속 길드와는 굳이 빌미가 없어도 보는 순간 싸울 수밖에 없는 사이 아닌가?

“그 외에 혹시 다른 단서는 없었습니까?”

“없었습니다. 그저 이것 하나만이 덩그러니 발견되었을 뿐입니다.”

“예, 수고하셨습니다.”

히르칸이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굳이 얻어먹을 것 없는 자리에 붙어 있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아, 그리고.”

그런 히르칸의 발걸음을 NPC 디웅이 잡았다.

“조만간 히반 왕국에서 이곳으로 기사단을 파견할 예정입니다. 히르칸 님에게는 말씀드려도 좋을 듯해서 알려드립니다. 비밀리에 진행될 예정이니, 다른 누군가에게는 말하지

마십시오.”

“예?”

히르칸이 고개를 갸웃했다.

기사단이란 단어 자체가 어색한 건 없었다.

문제는 히르칸의 기억 속에서 기사단과 폐허 왕국, 두 가지 요소를 조합했을 경우 나오는 결과물들.

“기사단이라고 하면······.”

“그것까지는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히반 왕국에서도 폐허가 되어버린 이곳의 왕국에 대한 보다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른 조치입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무운을 빕니다. 꼭 대마법사 님의 흔적을 찾아주십시오.”

히르칸이 고개를 끄덕인 후 방에서 나왔다. 그런 히르칸의 머릿속에 당장 대마법사 보칸에 대한 건 없었다.

‘설마 철사자 기사단이 넘어오는 건가? 야만왕 이벤트가 벌써 발동하는 건 아니겠지?’

암흑대륙······ 히르칸이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는 로스트 월드라고 불렸던 폐허 왕국의 땅에 기사단이 등장한 적은 몇 번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퀘스트 그리고 이벤트를 위

한 등장이었다. 그냥 갑자기 툭 튀어나와서 몬스터를 잡고 사라지는 경우는 없다.

그리고 철사자 기사단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야만왕 이벤트는 폐허 왕국 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벤트였다.

대격전과 같았다. 철사자 기사단이 기세 좋게 활동하다가 야만왕을 깨우게 되었고, 그때부터 야만왕과 유저들의 전투가 시작됐다. 이런 야만왕의 특징은 모든 몬스터를 수족

으로 부린다는 것. 타락의 힘과 비슷한 힘을 이용한다는 설정 때문이었다.

여기까지는 문제 될 게 없다. 문제는 야만왕의 등장과 함께 야만왕이 활동하는 지역, 그 지역의 주변 지역의 몬스터 리젠 숫자와 리젠 타임이 변화한다는 점이었다.

설정상 야만왕은 모든 몬스터를 자기 부하로 다룬다. 그런 설정에 따라 야만왕이 등장하면 그 주변 지역 몬스터들은 죄다 야만왕 밑에 모이고, 사냥터는 텅텅 비게 되는 것이

다.

암흑대륙에서 잘 사냥하던 유저들 입장에서는 야만왕을 잡을 수밖에 없게 된다.

욕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무슨 게임을 이따위로 만드냐고, 당시 워로드 개발사인 토봇 소프트는 엄청나게 욕을 먹었다. 그리고 욕을 먹을 때마다 워로드는 개발사 임의로

게임 시스템을 설정하는 게 아니라, 인공지능이 내놓은 설정이며 개발사 차원의 시스템 개입은 없다는 말로 변명을 대신했다.

‘아니겠지. 야만왕 나오는 건 폐허 왕국 편 후반부인데?’

그리고 야만왕이 잡히는 순간 유저들은 폐허 왕국이 멸망한 이유를 알게 되고, 폐허 왕국이 자신들을 멸망시킨 자들을 무찌르기 위해 만들어놓은 힘을 손에 쥐게 되면서, 폐허

왕국을 폐허로 만든 존재들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

그게 용의 군대 편의 시작점이다.

‘아닐 거야.’

폐허 왕국 편이 이제 막 시작을 했는데, 벌써 용의 군대 편의 조짐이 나올 리 없다.

히르칸은 쓴웃음과 함께 고개를 가볍게 흔들었다.

‘그 잘나신 인공지능이 이런 실수를 할 리 없지.’

그러는 사이 계단을 전부 내려온 히르칸이 이내 토벌협회를 박차고 나갔다.

10.

사람은 달라지지 않는다. 1레벨이나, 100레벨이나, 200레벨이나 결국 유저는 사람이다. 나쁜 놈은 계속 나쁘고, 야비한 놈은 계속 야비한 짓을 하기 마련이다. 수작을 부리던

놈은 당연히 계속 수작을 부린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수작을 부리다 보면 언젠가는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된다.

“자!”

지금 다섯 명의 유저들은 수작을 부린 대가를 치러야 할 상황에 직면했다.

“내가 일부러 빙빙 돌면서 움직였고, 지금 여기는 아까 우리가 한 번 지나갔던 장소지. 자, 여기. 내가 지나가면서 나무에 낸 상처가 선명하지?”

강제로 그들이 대가를 치르게 할 유저를 바라봤다.

“우린······.”

“그러니까 우연히 가는 길이 겹쳤다고 혓바닥 놀리지 말라고.”

그 유저의 이름은 히르칸, 별명은 하회탈.

워로드에서 가장 유명하며, 워로드에서 가장 적으로 만들어서는 안 되는 유저.

“어디 소속이지? 비앤비? 빅스마일?”

그런 하회탈을 상대로 다섯 유저가 부린 수작은 꼬리 물기였다.

흔한 일이다. 토벌협회에서 중요한 퀘스트를 받고 나온 유저의 뒤를 밟아서, 그 퀘스트에 숟가락을 올리는 경우. 숟가락만 올리면 양반이다. 여차하면 본래 퀘스트 주인을 제거

하고, 그 사이 퀘스트 보상을 본인들이 차지하는 경우도 있다.

그게 아니라, 그냥 상대방의 퀘스트 진행을 방해하기 위해 달려드는 경우도 있다.

당연히 이런 수작을 부리는 놈들에 대한 응징은 당하는 입장에서 가질 수 있는 마땅한 권리다.

하회탈, 그에게 지금 자신의 뒤를 밟은 다섯 명을 처참하게 뭉갤 자격은 충분했다.

“튀어!”

여기서 다섯은 나름 현명한 판단을 했다. 상대가 히르칸이 아니었으면 충분히 통했을 판단이었다.

철컥, 철컥!

반대로 상대가 하회탈이었기에, 이제는 육십이 넘는 숫자의 해골을 부리는 하회탈이었기에, 산개하며 도망친다는 선택지는 결코 현명한 판단이 될 수 없었다.

스멀스멀, 어느새 포위망을 갖춘 채 등장한 해골 전사들이 도망을 시도하는 것조차 막아냈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리려던 다섯 명이 시도를 멈췄다. 그들 다섯이 다시 히르칸을 바라봤다.

히르칸이 그들을 보며 말했다.

“다섯 명이 서로 싸워서 한 명 살아남으면 그 한 명은 살려주지.”

그 말에 다섯 명 중 두 명은 비웃음을, 남은 세 명은 가운데 손가락을 히르칸을 향해 보여줬다.

그들을 향해 히르칸은 미소와 함께 손가락을 튕겼다.

11.

[히드라 길드, 파이터즈 길드 인수합병!]

[히드라 길드 “언더풋 길드 중 가장 뛰어난 전투능력을 갖춘 파이터즈 길드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존재. 그들의 힘은 히드라 길드의 가장 부족했던 부분을 채워줄 수 있을 것.”]

[파이터즈 길드 “히드라 길드의 제안을 받는 순간 그 자리에서 제안을 수락했다. 최고의 시너지 효과를 보여주겠다.”]

[30대 길드의 첫 언더풋 길드 인수합병, 새로운 권력개편의 시작인가?]

히드라 길드의 파이터즈 길드 인수 소식은 속보라는 타이틀을 건 채 각종 언어로 된 기세로 빠르게 퍼지기 시작했다.

그 사이 에릭 곰스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비롯해 모든 연락을 꺼둔 상태로 음악을 감상하고 있었다. 오래전 월가에서 일했을 당시의 습관이었다. 성공하면 대박, 실패하면 쪽박

이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내릴 때면 에릭 곰스는 모든 걸 차단했다.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은 결국 뭘 해도 돌이킬 수 없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달리 말하면 이번 결정도 그런 결정이었다.

파이터즈 길드 인수는 예전부터 염두에 두었다. 사실 인수해서 나쁠 건 없었다. 파이터즈 길드가 가진 유저들의 전투 능력은 매우 유용하다. 히드라 길드의 가장 부족했던 부분

을 단숨에 채워줄 수 있었다.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 돈이었다. 파이터즈 길드를 탐내는 건 히드라 길드만이 아니었고, 그런 상황에서 파이터즈 길드가 자신들의 가치를 굳이 저렴하게 할 이유는 없지 않은

가?

즉, 이번 인수의 배경에는 분명한 무리한 베팅이 있었다. 비싼 값을 지불했다.

‘인생 참 우습군. 헝그리맨 때문에 이런 식으로 결정을 내리게 될 줄이야.’

이런 과감한 베팅의 배경에는 헝그리맨, 토비 그윈이 있었다.

그가 갑자기 에릭 곰스에게 연락을 하더니, 이제껏 세상에 밝히지 않은 정보를 줬다.

그 정보를 듣는 순간, 에릭 곰스는 그동안 토봇 소프트가 보여준 행보를 이해할 수 있었다.

‘언제나 그렇지. 성공은 준비된 자가 누리고, 대성공은 운이 따른 자가 누리는 법이지.’

동시에 에릭 곰스는 자신이 토비 그윈의 편에 설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토비 그윈이 원하는 이익과 에릭 곰스가 원하는 이익은 같은 방향으로 향했으니까.

토비 그윈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파이터즈 길드를 인수한 건, 주도권을 잡아야 할 필요성을 느낀 탓이었다.

‘이럴 때일수록 그림을 크게 봐야지.’

에릭 곰스가 월가에서 10년 넘게 일하면서 깨달은 건, 어디든 돈이 오고 가는 판에서 멀어질수록 돈을 벌 기회는 사라진다는 사실이었다. 웃긴 건, 돈이 오고 가는 판에서 멀어

진다고 해서 돈을 잃을 기회가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문제가 되는 건 하회탈인가?’

그리고 토비 그윈이 말해준 정보에 대입하면, 현재 가장 큰 문제점은 하회탈이었다.

규격 외 존재는 결국 규격을 무너뜨리기 마련이니까.

‘그 귀한 정보를 말해준 건, 당연히 내가 하회탈이나 우레사냥꾼 길드 같이 좌충우돌 상정 불가한 자들을 막아주길 바라서겠지.’

토비 그윈이 히드라 길드에게 정보를 말해준 역시 히드라 길드가 이익을 위해서 하회탈을 견제해주리란 생각 때문일 것이다.

정말 힘든 일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에릭 곰스는 간단하게 생각했다.

‘최근 상황을 보면······ 하회탈에게는 배후 세력이 없을 가능이 커. 있다고 해도 내가 생각하는 크기는 아니겠지.’

예전에는 하회탈의 배후에 당연히 30대 길드 정도 되는 세력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에 에릭 곰스는 그 생각을 의심했다. 지금 하회탈에게 배후 세력이 있다면, 그 배후 세력이 바보가 아닌 이상 이제 활동을 해야 하는 게 맞다. 혹여 이제까지 정체를

감춘 것이라면, 앞으로도 정체를 드러낼 생각이 없을 것이다.

즉, 하회탈은 혼자다. 솔로 플레잉, 그는 혼자서 게임을 하고 있다.

에릭 곰스는 그 점에 초점을 맞췄다.

‘워로드는 혼자 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니야. 지금까지 하회탈이 이룩한 성과도 결국은 차려진 밥상을 먹은 거지.’

당장 배덕의 왕자 편에서도 하회탈이 모든 걸 혼자 한 것처럼 보이지만 무수히 많은 이들이 시체가 되어 만든 길 위를 밟고, 정상에 깃발을 꽂았을 뿐이다.

대격전을 하회탈 혼자 막을 수 있었을까?

아가르도 레이드를 하회탈이 처음부터 끝까지, 레드불스 길드 도움 없이 할 수 있었을까?

배덕의 왕자를 상대로 과연 솔로 플레이가 먹혔을까?

이번 아누가스 레이드도 마찬가지다. 우레사냥꾼 길드의 도움이 없었다면,그 레이드는 파이브 스타의 방해에 완벽한 실패로 끝났을 것이다.

그게 핵심이다.

‘하회탈을 이용하려니까 오히려 이용당하는 거지. 하회탈을 이용해먹을 생각을 버리면 돼. 그럼 남은 건 하회탈을 방해하는 방해꾼들만 남을 테고, 그러다가는 결국 하회탈 스

스로 벽에 가로막힐 테니까.’

독보는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회탈이 혼자 다 해먹는다면······.’

혹여 그게 가능하다면.

‘그건 그냥 신이 정한 운명인 거지.’

그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 57화. 보칸의 흔적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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