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솔플의 제왕-165화 (165/192)

< 57화. 보칸의 흔적 (1). >

1.

쿠웅!

몸길이 8미터, 거대한 몸길이를 자랑하는 서리 골렘 뱀이 등장하는 순간, 뒷걸음질 치던 몬스터들이 기겁하며 휙! 고개를 돌렸다.

2미터, 결코 작지 않은 덩치를 가지고 있는 털북숭이 성성이들은 모두가 투박한 무기를 들고, 조잡하기 그지없는 나무 가면을 쓰고 있었다. 때문에 표정을 볼 순 없었지만, 그

들의 몸짓이 그들의 심정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당혹감.

우끼끼! 끼끼!

그 당혹감을 몸짓으로 표현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한 듯 열한 마리의 가면 괴물 성성이들이 앙칼진 울음을 토해냈다. 저마다 내뱉은 울음이 뒤섞이며 듣기 싫은 소음을

만들어냈다.

그 소음에 분노한 듯, 그 소음의 원흉들을 향해 서리 골렘 뱀이 입을 크게 벌렸다. 서리 골렘 뱀의 입에서 하얀 서리가 흘러나왔고, 자신들의 몸뚱이를 스쳐 가는 그 차가운 공

포에 가면 괴물 성성이들이 몸서리를 쳤다.

하지만 그 소음의 원흉을 처치한 건, 서리 골렘 뱀이 아니라 해골 기사와 해골 전사들이었다. 서리 골렘 뱀에 막혀버린 그들은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쥐, 해골 기사와 해골 전사

는 서릿발을 휘날리며 가차 없이 그들을 응징했다.

카앙!

처음은 쇳소리가 났지만.

푹!

쇳소리는 어느새 도검이 피륙을 뚫는 소리로 바뀌었다. 녹음 가득하던 성성이의 숲에 때아닌 겨울이 찾아왔다.

그러는 와중에 다른 한구석에서는 때아닌 폭염이 찾아왔다.

화르르!

사자의 몸, 독수리의 머리와 날개를 가진 그리폰, 그 그리폰으로 모습을 바꾼 파이어 골렘이 날갯짓과 함께 하늘을 날아다니고, 거대한 불을 토해내며 숲을 불바다로 만들고 있

었다.

끼이! 끼이이!

타오르는 숲 속에서 가면 괴물 성성이들은 자신들의 머리 위에 날아다니는 그리폰 파이어 골렘을 향해 손에 들고 있는 창을 던지고, 활시위를 당겼다. 화살과 투창은 그리폰 파

이어 골렘의 몸뚱이에 뚜렷한 상처를 남겼으나, 그 상처는 곧바로 불길로 채워졌다.

허무하기 그지없는 분노의 표출.

그렇게 그리폰 파이어 골렘에 눈길이 팔린 사이, 자그마한 미니 오우거 해골 전사들이 불타오르는 숲을 잽싸게 누비기 시작했다. 자그맣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해골 기사만큼

이나 무시무시한 미니 오우거들은 타오르는 숲 속에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완벽하게 지웠다.

암살자처럼 가면 괴물 성성이에게 다가간 미니 오우거 해골 전사들은 가장 먼저 표적의 하체를 공략했다. 허벅지를 찌르고, 무릎을 베고, 종아리를 잘라냈다.

다리를 공격당한 가면 괴물 성성이들이 자리에 넘어지는 순간, 미니 오우거 해골 전사들 두세 마리가 달라붙어 넘어진 괴물 성성이의 몸뚱이를 190레벨의 유니크 무기, 일반

유저들은 물론 돈 좀 있는 유저들조차 비싸서 쉽사리 쓰지 못하는 무기로 난도질을 시작했다.

끼이! 끼이!

숲을 채우던 괴물 성성이들의 날카로운 울음이 하나씩,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가장 큰 전주는 겨울도, 폭염도 아닌 검은 안개가 자욱한 무대에서 이루어졌다.

[대왕 성성이가 무기력에 빠집니다.]

가면 괴물 성성이들의 대왕, 240레벨의 미들 보스 몬스터 대왕 성성이.

사실 이 녀석이 어떤 놈인지,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유저는 없다. 대왕 성성이가 등장하는 무대, 성성이의 숲은 최초의 발견자가 발견을 한 지 기껏해야 나흘째에 접어드는 곳이

었으니까.

그렇기에 저주에 걸리는 순간, 녀석이 고릴라처럼 자신의 두 손으로 가슴을 두드리는 순간.

[대왕 성성이의 외침이 저주를 쫓아냅니다.]

자신에게 걸린 모든 디버프 계열의 스킬을 무효로 만든다는 설정 역시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기세등등해진 녀석이 웅크렸던 몸을 크게 펴며, 6미터에 다다르는 거대한 몸뚱이를 크게 세우는 것 역시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오케이.’

그러나 이 모든 광경, 처음 보는 광경 앞에서 히르칸은 당황하지 않았다.

‘대충 알겠네.’

무언가를 알아낸 듯, 히르칸은 곧바로 공격 명령만을 기다리던 데스나이트에게 그토록 기다리던 공격 명령을 내려줬다. 해골마가 기쁨을 버티지 못한 듯, 대왕 성성이를 향해

돌진을 시작했다.

그 모습을 300미터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던 히르칸은 본 스피어 하나를 잡았다. 잡으면서 히르칸은 곧바로 회복 아이템 하나를 꺼내 입에 넣었다. 아주 신 맛이, 벌칙 게임에서

나 먹을 법한 신 맛에 히르칸의 혀를 아릿하게 만들었다. 히르칸이 눈살을 찌푸렸다.

맛은 셨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빠르게 차오르는 마력, 히르칸은 그 마력의 힘을 이용해 자신이 집어 든 본 스피어에 저주를 부여했다.

더불어 지금 히르칸이 쥔 본 스피어는 일반 뼈재료로 만든 녀석이 아니라, 190레벨의 보스 몬스터를 재료 삼아 만든 본 스피어였다. 위력도 대단하고, 값도 대단하다.

돈지랄.

그리 표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히르칸은 더 이상 금전적인 부분은 고민하지 않았다. 머릿속에 두지도 않았다.

오직 전투만을 고려했다.

‘디스펠 스킬은 쿨타임 없이 무제한으로 쓸 수 있겠지만, 대신 조건은 가슴을 두드리는 제스처.’

대왕 성성이.

앞서 말했듯,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조차 않은 몬스터였고, 히르칸이 최초로 발견한 몬스터였으며, 히르칸의 과거와 현재를 합친 게임 인생 속에서도 처음 보는 몬스터였다.

이제는 당연한 상황이었다. 이제부터 히르칸이 마주하는 건, 그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뿐이니까.

하지만 히르칸은 당황하지 않았다. 당황할 이유도 없었다.

‘그럼 가슴만 못 두드리게 하면 이야기는 끝.’

히르칸에게는 이미 쌓일 만큼 쌓인 경험이 있는데, 당황할 이유가 있을 리 없다.

그 의지가 허세가 아니라는 증거는 데스나이트와 대왕 성성이의 전투가 이루어지는 순간, 히르칸이 직접 보여줬다.

난잡한 전장, 유독 시끄러운 락그룹의 콘서트장에서 통화를 하는 것만큼 짜증 나는 상황 속에서 히르칸의 집중력은 표적에 정확히 꽂혔다. 300미터라는 짧지 않은 거리가 무색

할 정도로, 히르칸의 창이 곧게 날아가 대왕 성성이에 꽂혔다.

[대왕 성성이가 나태 저주에 걸립니다.]

[대왕 성성이가 저주 전염체가 됩니다. 주변으로 저주가 전염됩니다.]

히르칸의 예상대로 격전 중인 대왕 성성이는 저주를 풀지 못했다. 데스나이트를 상대로 가슴을 두드릴 여유 따위가 있을 리 없다.

그 순간.

[레벨이 올랐습니다.]

히르칸의 220레벨 달성을 알리는 레벨업 알림이 떴다.

2.

[히르칸]

- 레벨 : 220레벨

- 직업 : 리치

- 타이틀 : 227개.

- 능력치 : 근력(2855)/체력(1855)/지력(1952)/마력(2222)

- 고대의 힘 ‘서리’ 보유 중

“아.”

220레벨.

본인 스스로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레벨업 페이스의 결과물을 바라보는 히르칸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그의 하회탈 너머의 표정에는 고민이 가득했다. 레벨, 능력치, 아이템

세팅, 현재 사냥 속도에 대한 고민은 아니었다. 그런 건 지금 고민의 대상이 결코 되지 못했다. 오히려 그 부분은 너무 좋아 죽을 지경이다.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 꿈꾸던 방식의

사냥을 지금 하고 있으니까.

‘이대로 정말 돌아가야 하나?’

어떻게 보면 오히려 그게 고민의 시발점이었다.

‘아, 미치겠네.’

너무 좋다는 것.

히르칸은 지금 자신의 레벨업 페이스를 유지하고 싶었다. 모든 유저가 꿈꾸는 사냥을 하고 있다. 최고의 아이템 세팅을 했고, 회복 아이템을 아낌없이 쓰고 있고, 굳이 잡템에

신경을 쓰지 않을 정도로 여유가 넘치며, 사냥터 하나를 독점하다시피 쓰고 있다. 레벨업 페이스는 마치 두 자릿수 레벨 때로 돌아간 듯하다.

이게 싫으면, 그건 게임을 할 팔자가 아니라는 의미다.

하지만 이제 한 번쯤 정리를 할 때가 왔다. 200레벨 달성한 이후 220레벨을 찍을 때까지 클래스 타워를 방문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퀘스트도 받아야 하고, 스킬도 새로 배워야 하고······ 최소한 한 번은 클래스 타워에 다녀오긴 해야 하는데······.’

문제는 그 정리를 하기 위해서는 우르갈 대산맥을 다시 넘었다 와야 한다는 점.

현재 암흑대륙의 거점 지역은 하르드 요새 유적 마을밖에 없다. 하르드 요새 유적 마을은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지만, 클래스 타워가 생기려면 아직 먼 상황.

이런 상황을 이미 예상하긴 했다.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도 암흑대륙에서 활동하는 유저들에게는 돌아가는 게 가장 짜증 나는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210레벨 때는 참았다. 참으면서 220레벨에는 꼭 클래스 타워를 갔다 오겠다고 자기 자신과 약속을 했다.

‘그래도 [강철 골렘]은 확실히 도움이 될 거야. [저주 소나기]는 이제야 습득 가능한 스킬 랭크를 채웠고.’

이제는 그 약속을 지킬 때다. 약속을 미루다가 나중에 이게 부족해서 죽은 후에 후회하는 것보단 낫다.

그리고 실제로 지금 히르칸이 클래스 타워를 갔다 오는 게 손해라고 볼 수는 없었다. 오히려 얻을 게 훨씬 더 많다.

일단 [강철 골렘] 스킬은 지금 히르칸에게 날개를 달아주면 달아줬지, 손해를 볼 게 없는 스킬이다.

아이언 골렘을 소환하게 해주는 이 스킬의 효용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당장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장점은 방어력이다. 흙골렘과 서리 골렘과는 방어력에서 비교가 안 된다. 여

기에 찰흙놀이 스킬을 이용해 방어력이 우수한 몬스터의 스펙을 빌리고, 단단해지기 스킬을 쓰면 최강의 방패가, 그것도 거대한 방패가 완성된다.

로망도 있다.

‘리치리치처럼 아이언 골렘에 해골 마법사를 태워서······.’

리치리치는 이런 아이언 골렘을 해골 마법사와 섞어 사용했다. 아이언 골렘이 이동하는 성벽이 되어 해골 마법사를 지켰고, 해골 마법사들이 아낌없는 공격을 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골렘이 세 마리가 된다는 사실 자체가 엄청난 일이다.

삼면을 막을 수 있다.

지금 히르칸이 골렘을 써먹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흙골렘을 이용해서는 길을 막고, 파이어 골렘을 이용해서는 몬스터 몰이를 한다.

어지간한 일반 몬스터를 상대로 이제는 수적 우위에서 밀릴 이유가 없는 히르칸이기에 쓸 수 있는 방법이다. 보스 몬스터를 상대로도 이 수법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언 골렘의 등장으로 삼면을 막을 수 있게 되면?

스테이지다. 데스나이트가 완벽하게 활개를 치며, 미쳐 날뛸 수 있는 스테이지!

[저주 소나기] 역시 매우 좋은 스킬이다. 저주 효과를 가진 저주 소나기를 내리게 하는 스킬로, 광범위 저주를 걸 수 있다. 최근 히르칸의 저주 스킬 숙련도도 높아지면서, 습득

가능해졌다.

얻으면 충분히 가시적인 스펙업을 이룩하는 셈이다.

그리고 히르칸이 싸워야 하는 적은 몬스터만이 아니다.

‘파스타 새끼나, 우레사냥꾼 애들도 요즘 스펙업이 장난 아니야.’

암흑대륙에서 활동 중인 파이브 스타와 우레사냥꾼 역시 히르칸만큼은 아니지만 빠르게 스펙업을 하는 중이다. 200레벨짜리 유니크 및 레어 아이템이 빠르게 보급되고 있다.

반면 히르칸은 아이템 세팅에서는 스펙업이 거의 없었다. 있을 수가 없었다. 지금 히르칸이 착용한 아이템보다 좋은 아이템이 있을 리 없다. 선발주자가 치러야 하는 대가고,

그런 상황에서 클래스 타워에서 공짜로 스킬을 배우는 것보다 확실한 스펙업은 없다.

‘부두쿠 터널이 요즘은 숨통이 좀 트이긴 했지······ 여차하면 꼽사리 껴도 좋고.’

그런 히르칸의 고민에 최근 부두쿠 터널의 상황이 무게추가 되었다.

‘어쩔 수 없네.’

3.

‘차라리 그냥 뒈져서 올 걸 그랬나? 오는데 이틀, 가는데 이틀······ 젠장, 우르갈 대산맥 정상을 와이번 골렘을 타고 날아갈 수 있으면 하루면 왕복할 수 있었을 텐데. 탈 게 있

으면 뭐해, 탈 수가 없는데, 빌어먹을 게임.’

클래스 타워에서 스킬 습득을 마치고, 스킬을 바라보는 히르칸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1분 1초가 아쉬운 상황, 히르칸은 굳이 정체를 감추지도 않은 채 클래스 타워의 계단을 내려갔다. 나가는 순간 적지 않은 관심이 그를 향하겠지만, 개의치 않을 생각이었다. 혹

여 유저가 인증샷이라도 한 번 찍어달라고 접근하면 다리를 걸고 넘어뜨린 후에 도망칠 생각이었다.

그런 그의 거칠 것 없는 발걸음을 잡은 건 다름 아니라 NPC였다.

“아힘브리 님의 제자 히르칸 님에게 편지가 왔습니다.”

편지 도착.

사실 이 단어만이라면 히르칸의 발걸음을 단번에 늦추진 못했을 것이다. 문제는 수식어였다.

‘아힘브리?’

히르칸에게는 유저들이 붙여주는 리치리치 같은 별명 말고, 게임 내에서 붙는 수식어가 꽤 많다. 타락 심판자, 히반 왕국의 영웅 등······ 만약 이곳이 판타지 세계였다면 히르

칸 앞에 그를 꾸미는 온갖 칭호들 때문에 그의 이름을 듣는 것조차 힘들 정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타이틀 중에서 NPC는 굳이 아힘브리의 제자라는 히르칸의 기억 속에서도 희미해진 타이틀을 언급했다. 히르칸는 살짝 고개를 갸웃했고, 곧바로 반색했다.

‘확실히 아힘브리가 200레벨 이후 스킬북 퀘스트를 주긴 했지. 설마?’

히르칸의 발걸음이 멈추기에는 부족하지 않은 떡밥.

“누가 제게 편지를 보냈습니까?”

히르칸이 곧바로 예의를 갖추고 NPC를 공손히 대접하듯 대답했다.

“아힘브리 님입니다. 자신의 제자가 오면 꼭 보여드리라고, 직접 남기셨습니다.”

히르칸이 미소를 지었다.

‘역시 되는 놈은 된다니까.’

4.

“이야기 들으셨어요?”

나탈의 물음에 소행크는 어깨를 으쓱했다. 무슨 이야기를 말하는 건가? 하는 의미의 제스처였다.

“이번 인수요.”

“아, 파이터즈랑?”

소행크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잘 됐지. 거긴 잘 싸우는 애들이 많으니까. 아, 그렇다고 우리 애들이 못 싸운다는 건 아니지만······.”

“파이터즈 길드 인수는 이해합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렇게 급하게 진행했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퍼스트 헤드는 이렇게 예고 없이 급하게 일 처리를 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

데······.”

나탈의 걱정에 소행크는 그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적어도 일을 망치려고 한 건 아니겠지. 너무 걱정하지 말자고. 무엇보다 퍼스트 헤드 덕분에 우리에게도 다시 기회가 생겼으니까. 그의 말 그대로 서쪽에 모든 걸 걸지 않았다

면 이런 기회도 오지 않았겠지.”

기회라는 말에 나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표정은 그다지 풀리지 않았다.

“그리고 솔직히 저기서 뭔가 하려면 무슨 수라도 써야지.”

저기서, 소행크의 그 말에 그 둘이 고개를 돌리고, 고개를 들어서 운무 가득한 거대한 산맥을 바라봤다.

그때였다.

“소행크 님! 한 판 더 붙어봅시다!”

어디선가 시원시원한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가 나오는 곳에는 이미 검을 뽑은 채, 당장에라도 싸울 준비를 마치고 있는 유저 한 명이 있었다. 대산맥을 바라보던 두 유저가

그 유저를 바라봤고, 서로 극명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나탈은 그 유저를 굉장히 짜증난다는 얼굴로 바라봤다.

“키요테!”

“아, 나탈 님도 계셨네. 안녕하십니까?”

“왜 자꾸 일을 만드는 겁니까?”

키요테.

최근 PVP부분에서는 엄청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유저다. 그런 그를 향한 30대 길드의 러브콜은 예전부터 제법 있었다. PVP콘텐츠는 워로드 콘텐츠 중에 대박을 노리기는 힘

들지만, 최소 기본은 해주는 콘텐츠였으니까.

하지만 그런 그가 히드라 길드에 들어갔다는 소식은 모두가 놀랄 만한 소식이었다.

일단 키요테는 꽤 대단한 계약금도 무시했을 정도로 돈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고, 히드라 길드는 PVP콘텐츠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으니까. 둘의 접점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모두가 궁금해했다. 대체 왜 키요테가 히드라 길드에 들어갔는지, 히드라 길드가 그를 무엇으로 영입했는지.

“분명 내가 히드라 길드에 들어왔을 때, 부득이한 상황만 아니면 누구와도 PVP를 할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았습니다.”

이게 그 이유다.

히드라 길드는 키요테에게 히드라 길드의 그 어떤 유저와도 서로를 죽이지 않는 선에서, 무모하지 않은 선에서의 PVP를 할 수 있는 권리를 줬다. 제아무리 강력한 유저가 없다

고 해도 30대 길드는 30대 길드다. 실력 좋은 유저들이 득실거린다.

무엇보다 킬러 싱글레에게 당하면서 체면을 구기긴 했지만, 그래도 워로드를 대표하는 스트라이커 중 한 명인 소행크가 있다. 키요테 입장에서는 이게 가장 끌렸을 것이다. 30

대 길드를 대표하는 실력자와 PVP를 치를 기회는 거의 없으니까.

사실 이 부분에서 가장 격렬한 반대를 표했던 게 나탈이었다. 나탈은 아홉 명의 머리가 모인 자리에서 이 조건으로 키요테를 영입하는 건 있을 수 없다고 반대를 했다.

언제나 중요한 전력인 소행크가 같은 길드원의 도전을 받아주느라 심력과 집중력을 소모해야 한다는 사실을 나탈은 납득할 수 없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히드라 길드는 키요테를 받았다. 다수결에서 8명이 찬성을 했고, 그 정도 다수결이면 나탈이 아닌 그 누구도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

“조건은 조건이지.”

그러나 반대로 소행크는 키요테의 등장을 반겼다. 나탈의 어깨에서 손을 떼며 키요테에게 다가갔다.

“조건은?”

“스킬 없이 가야죠. 칠흑을 보유한 상대하고 스킬 대결을 하면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아이템은?”

“이대로 갑시다. 그 정도 핸디캡은 있어야 싸울 맛이 나니까요.”

소행크는 미소를 지었다. 그는 누가 보더라도 키요테의 도전을 반기고, 그의 존재에 만족하고 있었다.

나탈은 그런 소행크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키요테의 영입을 가장 반긴 건, 사실 그 누구도 아닌 소행크였다. 소행크, 그는 어떻게 보면 아홉 개의 머리 중에

최고 전력이란 이름 아래에서 혼자만 싸우는 게 힘들었을 테니까. 그런 그에게 기대감을 가지기에 부족함이 없는 전력의 영입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을 터.

그런 나탈의 머릿속에 다른 유저 한 명의 얼굴이 떠올랐다.

‘여기에 파이터즈 길드를 인수하면······ 핏불 씽이 추가되는 건가?’

파이터즈 길드 내에서도 가장 다루기 힘들다는 말이 나오는 핏불 씽을 관리해야 한다는 상상에 나탈은 혀를 내둘렀다.

< 57화. 보칸의 흔적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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