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솔플의 제왕-157화 (157/192)

< 54화. 하르드 요새 (2). >

4.

- 어떻게 할까요?

아폴로가 되물었을 때 싱글레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답이 완성되어 있었다.

‘하회탈을 잡을 절호의 기회가 왔다.’

하회탈.

지금 워로드에서 유저가 잡을 수 있는 존재 중 가장 가치 있는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 무조건 잡아야 해.’

아니, 오히려 하회탈이 변수가 되기 전에, 억지를 부려서라도 하회탈을 잡을 필요가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하회탈을 잡을 기회가 생겼는데, 마다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문제는 오직 하나, 과연 하회탈을 빅스마일 길드가 잡을 수 있는가?

‘이제야 운이 따르는군.’

못 잡는다.

저주받은 성, 당시 그곳에서 싱글레가 하회탈을 상대하러 갔을 때와 지금은 전혀 상황이 다르다. 당시 하회탈은 싱글레에게 가소로운 상대였고, 해골 전사는 더더욱 가소로운 상대였다.

하지만 지금 하회탈은? 레벨은 이미 비교가 무의미한 수준이다. 무엇보다 아이템 세팅에서 차이가 크다. 하회탈의 아이템 세팅은 싱글레를 상회하는 수준이 아니라, 현재 워로드에서 하회탈보다 좋은 아이템 세팅을 한 유저

는 단언컨대 없다. 폐위된 왕자 검, 아가르도의 갑옷, 비밀결사대의 증표, 타락 심판자의 반지, 타락 파괴자의 목걸이······ 그야말로 끝판왕이다.

하회탈의 해골들은 어떠한가? 어느 하회탈의 팬이 하회탈이 공개한 전투 영상을 분석했는데, 하회탈이 해골 전사 무장에 쓴 비용이 평균 2.33만 골드라고 했다.

그렇게 나온 평균값도 프로스트 나이트를 상대할 때를 기준으로 나온 값이다. 하회탈이 아직 영상을 공개하진 않았지만, 하회탈이 두개골 수집가를 상대로 데스나이트를 소환했다는 이야기는 부두쿠 터널을 지나온 유저라

면 모를 수 없는 소문이다. 하회탈은 프로스트 나이트를 상대할 때보다 훨씬 더 강하다.

그런 그를 빅스마일 길드가 나서서 잡는다? 그냥 일반 사냥터라면 승산을 가늠해야 한다. 하지만 이곳, 암흑대륙에서 대규모 무리를 이끌고 다녀봐야 얻는 건 몬스터와의 소모전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싱글레는 운이 좋다고 생각했고,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

‘클로버 부대가 근처에 있어서 다행이야.’

비앤비 길드를 일약 최상위 길드로 올려준 포커 팀, 그 포커 팀 중 하나인 클로버 부대가 하르드 요새로 향하고 있다는 것.

‘아폴로가 소속된 탐사대의 멤버를 클로버 부대와 합치면, 숫자는 대략 사십 명. 미끼로 아폴로 부대를 써먹고, 클로버 부대가 나서면······.’

클로버 부대는 믿을 수 있다. 핸즈 길드가, 싱글레의 배후에 있는 자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이니까.

이 순간 싱글레는 마지막 고민을 했다.

‘우레사냥꾼 길드가 하회탈과 접촉해서, 둘이 손을 잡는 경우만 아니면 된다.’

최악의 변수를 고민했고, 그 가능성을 고민한 후에 싱글레가 기어코 입을 열었다.

“아폴로.”

- 예.

장고 끝에 나온 늦은 대답, 그러나 아폴로는 싱글레를 재촉하지 않았다.

“잡읍시다. 하회탈 놈을 이번 기회에 잡읍시다.”

- 하회탈을?

아폴로가 조금 놀란 듯 반응했고, 싱글레가 곧장 말을 해줬다.

“비앤비 길드의 포커 팀 휘하 클로버 부대랑 손을 잡으면 가능합니다. 클로버 부대가 근처에 있습니다.”

- 그렇게 하죠.

그 대답에 보일 리 없는, 싱글레는 지금 그 살집 가득한 얼굴을 미소로 가득 채운 채 대답을 하는 아폴로의 모습이 보였다.

5.

히르칸의 비밀병기, 미니 오우거 해골 전사들은 히르칸의 기대 이상으로 훌륭했다. 녀석들은 그 무엇보다 빠르게 도망자를 쫓았고, 잡은 도망자를 귀찮게 괴롭혔다.

그런 녀석들에게 발목이 잡힌 도망자들 앞에 하회탈이 등장하는 순간, 그들은 도주를 포기했다.

“덤벼! 씨팔, 어디 한 번 누가 이기나 해보자고!”

그래도 나름 수년 동안 워로드란 게임에서 볼꼴 못 볼 꼴을 본 유저들은 히르칸 앞에서 나름 악을 썼다. 근성을 불태웠다.

물론 그 근성은 히르칸이 소환한 해골 전사와 해골 기사 앞에서는 의미 없는 발악이 됐다.

섬뜩한 추적자.

히르칸의 가면 너머 새로운 가면이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이야.”

‘역시 30대 길드라서 그런지, 그래도 나름 비싼 거 쓰는구나.’

물론 섬뜩한 추적자 히르칸이 썩은 고기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로 얼굴을 바꾸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히르칸이 게임오버 된 유저들의 몸을 수색했다.

워로드에서 소모 아이템은 가지고 다녀야 한다. 당연히 게임오버가 되면, 그 유저가 몸이 지닌 소모 아이템은 그냥 바닥에 떨어진 아이템이 된다. 48시간 후 부활해도, 손목시계에 저장된 아이템은 멀쩡해도, 지니고 있던 소

모 아이템은 복구되지 않는다.

물론 보통 PK를 하면, 이런 소모 아이템은 잡템 취급을 받고, 모두가 시계에 집중한다. 히르칸도 보통은 그렇게 한다.

하지만 암흑대륙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잡는 맛이 다르네.’

손목시계보다 소모 아이템을 먼저 챙기는 자신의 모습에 히르칸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물론 히르칸은 당연히 손목시계도 챙겼다.

퍽, 퍽!

들고 있는 검으로 유저들의 손목을 내리쳐 자른 후에 손목시계를 챙겼다.

‘폐왕검이 확실히 끝내주네. 잘 썰려.’

폐왕검······ 대장장이 올프가 배덕의 왕자를 무찌른 영웅들에게 세상을 구하라는 의미에서 준 역작이, 손목 절단기로 칭찬받는 꼴을 만약 대장장이 올프가 봤다면, 그가 가진 ‘올프의 망치’가 히르칸의 배를 신나게 두드렸을

것이다.

물론 대장장이 올프는 이곳에 없고, 히르칸이 그런 우려를 할 이유도 없었다.

‘오케이.’

히르칸은 마치 먹이를 잔뜩 머금은 햄스터의 볼처럼 두둑해진 자신의 주머니를 바라보며 방긋, 미소를 지었다. 암흑대륙에 온 이후 지은 몇 안 되는 미소 중 가장 기분이 좋아 보이는 미소였다.

하지만 그 미소는 오래가지 않았다.

크어어!

유저가 사라지자, 이번에는 몬스터들이 히르칸을 괴롭히기 위해 등장했으니까.

도망자와 추적자가 쉴 새 없이 사냥터를 헤집었는데, 몬스터들이 그걸 보고 그러려니 넘어갈 리 없다. 들쑤셔진 몬스터들의 어그로가 이제는 살아남은 유일한 유저를 향하는 건 당연한 수순!

히르칸은 자신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오는 무언가의 징조를 보며 미소를 지웠다.

‘진짜 빌어먹을 게임이야.’

6.

누리끼리한 매트리스에서 눈을 뜬 안재현은 누리끼리한 천장의 벽지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아, 이사 가고 싶다.’

최근 들어 입에 달고 사는 푸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안재현이 싸구려 뿔테 안경을 썼고, 반사적으로 안경 옆에 놓인 태블릿PC를 작동했다. 태블릿PC는 평소보다 조금 느리게 작동하는 듯했다. 착각이었을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안재현의 표정은 뚱하게 변했다.

이윽고 안재현의 입에서 한숨이 나왔다.

‘이런 날이 올 줄이야.’

돈.

그토록 바라던 게 지금 안재현에게는 충분히 있었다. 충분하다 못해 넘칠 정도였다.

하지만 막상 그 돈을 쓸 여유가 없었다. 하루조차도 몇 시간으로 나누어 게임을 해야 하는 안재현에게는 외식은커녕 배달음식을 시키는 것조차 시간이 아까운 일이었으니까.

특히 최근처럼 바쁜 일정, 긴장감 가득한 나날들, 자칫 잘못하는 순간 이제까지 쌓아 올린 공든 탑이 피사의 사탑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는 모든 일정을 게임에 맞춰야 했다.

그래서일까?

안재현은 지금 막 새롭게 들어온 유료 영상 판매 수익과 후원금, 기타 수입이 자기 돈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하다못해 이 돈으로 게임 내 아이템이라도 실컷 지르면 모르겠는데, 그조차도 아니었으니까.

때문에 안재현은 자신을 그토록 설레게 하던 숫자들을 저도 모르게 외면했다. 태블릿PC의 화면을 바꾸었다. 통장 잔고 대신 워로드 관련 기사 및 정보들을 검색했다.

주요 검색 단어는 비앤비 길드와 빅스마일 길드를 포함한 5개 길드였다.

검색된 정보들은 매우 많았다.

최근 비앤비, 빅스마일, 스위퍼즈, 월광, 블로썸 다섯 길드가 암흑대륙 독점에 대한 노골적인 야욕을 드러냈고, 자연스럽게 그들은 이번 폐허 왕국 편의 무대인 암흑대륙의 핫이슈메이커가 되었다. 뜨거운 건 언제나 많은 걸

만들어내는 법이다.

그렇게 그들과 관련된 내용들을 살피던 안재현은 짧게 혀를 찼다.

‘확실히 뭐든 시도할 에이스카드가 여러 장 확보되니까, 결과물이 달라지네.’

특히 안재현의 입안을 가장 씁쓸하게 만드는 건, 비앤비 길드의 최고전력 포커 팀의 활약이었다.

포커 팀 관련 기사 내용과 그들이 암흑대륙에서 보여준 전투 영상을 본 안재현은 씁쓸한 가득한 비웃음을 머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레이드 타임어택 기록 전부 경신하겠다고 지랄을 하던 새끼들이······.’

우레사냥꾼 길드가 블레이즈 슬라임 드래곤을 잡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포커 팀은 기존의 30대 길드가 기록한 레이드 타임 어택 신기록을 경신을 핵심 콘텐츠로 선포했었다. 그랬던 그들이 어느 순간 암흑대륙으로 넘어와

서 활개 치고 있다.

사실 우습게 볼 문제는 아니었다.

‘대단하긴 대단하네.’

30대 길드는 라이브 채널을 통해 엄청난 돈을 움직인다. 그 돈이란, 그저 단순히 그들의 돈이 아니다. 투자자들, 후원자들을 비롯한 타인의 돈이다. 다른 사람 돈이 걸린 일을 멋대로 처리하는 게 쉬울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앤비 길드는 그 일을 너무나도 쉽게 처리했다. 그 부분은 분명 염두에 두어야 했다.

비앤비 길드 역시 결과적으로 안재현에게 방해가 되면 됐지, 도움이 될 리는 없을 테니까.

여기에 우레사냥꾼 길드도 최근 잠잠하지만, 그들은 그 누구보다 먼저 암흑대륙을 밟은 자들이다. 언제 어느 순간 변수가 되어 안재현을 괴롭힐지 모른다.

안재현이 안경을 벗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이 난제 속에서 안재현이 내놓을 수 있는 답은 하나다.

‘꼬리가 잡히면 끝이다.’

이 경쟁을 달리기로 바꿔야 한다.

먼저 앞서서 달리는 놈이 승리하는 게임으로 바꿔야 한다. 뒤에 수백, 수천 명이 있든 말든 1등 하나만이 승자가 되는 게임으로 바꿔야 한다.

얼굴에서 손을 뗀 안재현이 안경을 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안재현이 싱크대 근처에 갔을 때, 낡고 닳아버린 싱크대 풍경에 어울리지 않는 고풍스러운 느낌의 고급 커피 머신이 안재현을 반겼다.

최근 구매한 캡슐 커피 전용 머신이었다. 당연히 비싼 돈을 지불해서 구매한 녀석이었고, 최근 안재현이 그나마 돈을 벌었다는 사실을 실감케 해주는 녀석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비싼 값을 하는 녀석이었다. 고풍스러운 캡슐을 넣은 후 멋진 커피 전용 글라스를 채운 커피의 색은 영롱했고, 그 향은 이제껏 안재현이 마신 싸구려 커피의 탄내와 달리 고소함마저 풍겼다.

하지만 안재현은 그 커피에 곧장 자신이 애용하는 포도당 사탕을 풍덩풍덩 떨어뜨렸다.

그 후에 커피를 입가에 가져가는 안재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좋아.”

‘뉴요커가 된 기분이군. 잘 샀어.’

7.

협곡.

거대하기 그지없는 절벽과 절벽이, 서로를 바라보는 그 협곡을 앞에 두고 펼쳐진 숲, 그 숲 사이로 솟아오른 거대한 돌기둥을 비롯한 거대한 건축물의 잔해들은, 과거 이 협곡을 가로막고 있었던 요새의 존재를 희미하게 보

여주고 있었다.

그 흔적을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발견한 히르칸은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숨을 돌리는 히르칸의 뒤로는 열아홉 마리의 해골 전사와 두 마리의 해골 기사가 독이 바짝 오른 모습으로, 임전태세의 기세를 갖춘 채 서 있었다. 그 해골 부하들의 모습은 흔적이었다. 조금 전 치열한 전투를 치른 흔적이자,

앞으로도 치열한 전투를 치러야 한다는 의미의 흔적.

그렇기에 히르칸은 이 시간을, 한숨을 돌릴 수 있는 이 시간을 소중하게 썼다.

‘역시 내가 알던 것과는 달라.’

일단 히르칸은 기억을 더듬어, 암흑대륙의 최초 거점 지역이었던 무대를 떠올렸다.

과거로 돌아오기 전, 암흑대륙으로 넘어온 유저들이 발견한 최초의 거점지역은 협곡이 아니라 검게 물든 거대한 호수의 중심에 있었다.

즉, 이름이 아닌 무대 자체가 달라졌다.

혹시나 하는 기대, 이름만 달라진 게 아닐까, 하는 기대를 히르칸은 과감하게 접었다.

‘그런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하지만 이 순간 히르칸은 자신의 기억에 있는 것과 다른 무대로부터 느껴지는 기시감에 고개를 갸웃했다.

‘거대 협곡, 거대 협곡······ 협곡이 무대로 되는 장소가 어디 어디였었지?’

하지만 히르칸에게 깊은 고민을 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휴식도 마찬가지였다.

히르칸은 뒤를 한 번 돌아보았다.

크어어!

예의상 들려오는 몬스터의 울음이 히르칸을 부추기듯, 등을 떠밀었다.

‘2등은 피해야 해.’

다른 건 몰라도 2등만큼은 피해야 하는 상황, 숨을 돌린 히르칸이 다시 하르드 요새 유적을 향해 움직였다.

8.

[하르드 요새 유적에 입장하셨습니다.]

[타이틀 ‘하르드 요새 발굴자’를 획득하셨습니다.]

[타이틀 ‘폐허 왕국 탐색자’를 획득하셨습니다.]

[타이틀 ‘최초의 발견자’를 획득하셨습니다.]

처참하기 그지없는 몰골이 된 하르드 요새는, 그래도 자신을 처음으로 찾아온 방문자에게는 위풍당당하기 그지없는 선물을 줬다.

히르칸은 그 타이틀 앞에서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

‘2등은 피했군.’

혹시, 하는 우려. 자신보다 먼저 이곳에 온 유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눈 녹듯 사라졌다.

히르칸은 곧바로 자신이 얻은 성과를 확인했다.

[하르드 요새 발굴자]

타이틀 효과 : 모든 능력치 +15

[폐허 왕국 탐색자]

타이틀 효과 : 마력 +20

[최초의 발견자]

타이틀 효과 : 체력 +40, 마력 +40

타이틀 옵션은 훌륭했다. 히르칸은 타이틀 효과가 적용된 자신의 능력치창을 스쳐 지나가듯 살펴봤다.

그렇다고 감상에 빠지진 않았다. 대략적인 수치만 확인한 히르칸은 곧바로 목각소라를 귀에 가져다 댔다. 아직 끝이 아니니까. 진짜 보물, 1등에게 주는 1등상은 이게 아니었으니까.

- 깃발을 찾아라, 깃발을······.

목각소라가 다시 한 번 히르칸에게 길을 제시해줬고, 히르칸이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매의 눈이 되어 주변을 뒤졌다. 그런 히르칸의 눈이 갑자기 살짝 풀렸다. 열심히 두리번거리던 고개도 갸웃했다.

‘진짜 어디서 본 거 같은데.’

기시감, 이번에도 녀석이 히르칸을 자극했다.

‘분명 어디서 봤어. 여기랑 비슷한 장소를 내가 분명 폐허 왕국 편에서 영상으로 봤어.’

그런 히르칸의 의문은 돌을 쌓아 만든 전원주택 크기의 돌무덤을 보는 순간 사라졌다. 그 돌무덤의 끝에 달린 깃발······ 깃발 자체는 썩어 문드러진 채 깃대만이 남은 그것을 보는 순간 히르칸은 반색했다. 반색하는 히르칸

의 머릿속에 기시감 같은 건 없었다.

돌무덤 근처에서 히르칸은 목각소라에 다시 한 번 귀를 가져다 댔다. 하지만 이번에는 목각소라가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목각소라가 제 역할을 마쳤다는 의미. 히르칸은 목각소라를 휙! 뒤로 던졌다.

그 후 히르칸은 허리춤에 찬 검을 뽑은 후에 검을 이용해 돌무덤을 헤집기 시작했다. 워낙 근력 스탯이 높은 탓에 어지간한 돌덩이는 돌멩이처럼 취급됐고, 큼지막한 돌덩이는 츠릉츠릉! 크라잉 소드를 이용해 부순 후에 치

웠다.

누가 보더라도 무언가를 위한 무덤이었지만, 히르칸은 무덤 도굴꾼이 된다는 사실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렇게 거듭 돌무덤을 헤집던 히르칸은 기어코 돌무덤 아래 숨겨져 있던 검은 상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검은 보물 상자, 예상대로 초월급이네.’

히르칸이 검은 보물 상자를 열자, 세월의 흐름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말끔한 몰골을 한 두루마리 세 개가 보였다.

최초로 이곳에 도달한 자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보상.

히르칸이 개중 두루마리 하나를 집었고, 두루마리를 묶고 있는 붉은 줄에 손을 댔다.

[고대의 힘을 개방하시겠습니까?]

시스템 알림이 곧바로 히르칸에게 선택지를 제공했다. 히르칸은 고민하지 않았다.

‘그야 당연히······.’

그때였다.

[하르드 요새의 잠들었던 영혼들이 깨어납니다.]

새로운 시스템이 알림에 히르칸이 촉각을 곤두세웠다. 큰 혼란을 느끼진 않았다. 인디아나 존스만 보더라도 해리슨 포드가 그토록 찾던 보물을 발견하는 순간 위기가 오지 않는가?

얼마든지 예상했다.

아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제 히르칸은 하르드 요새를 암흑대륙의 거점지역으로 만들기 위해 무조건 해야 하는 일, 하르드 요새 유적을 지키고 있는 보스 몬스터를 상대해야 한다.

‘누구든 와라!’

그런 히르칸에게 시스템은 친절하게 히르칸이 무찔러야 하는 적의 정체를 알려줬다.

[하르드 요새의 잠든 영혼이 영혼을 먹는 거인, 아누가스를 깨웁니다.]

[퀘스트 ‘하르드 요새를 수복하라!’가 시작됩니다.]

“응?”

그리고 그 알림에 히르칸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고, 그런 히르칸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지진과 함께, 갈라진 땅 위로 네 개의 팔을 가진 외눈박이 거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씨팔!”

그제야 히르칸은 알 수 있었다.

‘빌지어트 협곡! 아누가스가 나오는 빌지어트 협곡!’

자신이 느낀 기시감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9.

‘하회탈, 빌어먹을 새끼이지만 정말 빠르군.’

하르드 요새 탐사에서 하회탈 제거로 임무가 바뀐 아폴로는 하회탈이 지나간 흔적을 보고받을 때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몬스터 넘치는 무대에서 하회탈이 보여주는 사냥 속도는 정말 가공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빠른 사냥 속도는 빠른 이동을 가능케 해줬다. 솔직히 이쯤 되면 아폴로의 가슴 한구석은 이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회탈을 쫓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그 무렵이었다.

그렇게 가슴 한구석이 인정하는 사실을 하회탈에 대한 분노와 짜증으로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있을 무렵.

- 하회탈 발견!

하회탈을 추적하던 추적대가 하회탈의 등장을 알렸다. 아폴로가 반색하게 되물었다.

“어디지?”

- 위치는······ 그보다 지금 하회탈이 가던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뭐?”

- 무언가를 피해 이동하는 것 같습니다.

“몬스터에게 쫓기는 건가?”

- 하회탈을 뒤쫓는 몬스터는 보이지 않습니다.

아폴로는 거기까지 듣는 순간, 명령을 내렸다.

“무조건 막아! 목숨을 걸고라도 놈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무조건 그 자리에서 놈을 막아!”

- 예.

곧장 대답이 나왔지만, 아폴로는 그 대답을 듣지 못했다. 듣기도 전에 보이스톡 채널을 바꿨으니까.

“클로버 부대, 클로버 부대. 여기는 빅스마일. 하회탈을 발견했다. 시간을 끌겠다. 위치는······.”

-  여기는 클로버 부대. 바로 알려준 위치로 이동하겠다.

짧은 대화가 끝났고, 끝나는 순간 아폴로는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하회탈, 드디어 네놈의 제삿날이다.’

< 54화. 하르드 요새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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