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솔플의 제왕-156화 (156/192)

< 54화. 하르드 요새 (1). >

1.

보물찾기.

히르칸이 기억하는 폐허 왕국 편을 가장 짤막하게 설명할 수 있는 표현을 찾으라면, 히르칸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보물찾기라는 표현을 선택할 것이다.

보물찾기라는 행위 안에 폐허 왕국 편에서 유저가 해야 하는 모든 행위가 함축되어 있다.

보물이 숨겨져 있다. 유저는 그 보물을 찾기 위해 단서를 먼저 찾아야 하고, 찾은 단서를 기반으로 보물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예의 보물이 있는 장소로 향하는 길목에는 보물찾기를 방해하는 괴물들이 우글거리

고 있다.

대신 워로드는 이 과정에서 게임다운 특이점을, 좀 더 게임다운 설정을 추가했다.

폐허 왕국이 위치한 암흑대륙에서는 누군가가 퀘스트를 습득하고, 그 퀘스트 수행을 위해 목적지로 향하는 순간 그 길목에 있는 몬스터의 개체 수가 증가한다는 내용의 설정을! 개체 수만 증가하는 게 아니라 몬스터 리젠 속

도, 리젠 숫자 역시 증가한다.

‘이런 설정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군.’

그 사실을 히르칸이 확신한 건,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세 마리의 리자드맨 부두술사와 그들이 소환한 서른 마리의 몬스터 좀비를 바라보는 순간이었다.

‘딱 1.5배네.’

암흑대륙에 진입한 이후 히르칸은 리자드맨 부두술사를 여러 차례 상대해봤다. 그리고 그동안 히르칸이 마주한 리자드맨 부두술사는 대개 혼자서 활동하거나, 많아야 2마리만이 같이 움직였다. 그리고 한 마리가 소환 가능

한 좀비의 숫자도 보통 7마리 안팎이었다.

그런데 지금 리자드맨 부두술사 세 마리가 동시에 등장했고, 각자 10마리나 되는 좀비를 소환했다.

‘진짜 빌어먹을 게임이란 말이야.’

과거로 돌아오기 전과는 전혀 다른 폐허 왕국 편, 하지만 이런 설정만큼은 과거로 돌아오기 전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에 히르칸은 쓴웃음을 지었고, 그 쓴웃음 사이로 이가는 소리를 냈다.

그와는 별개로 히르칸은 너무나도 능숙하게, 당연하게, 담담하게, 망설임 없이 전투를 시작했다.

딱딱!

히르칸은 이미 소환해둔 해골 기사 두 마리에게 전투 명령을 내렸다. 해골 기사들이 압도적인 수적 열세 앞에서 조금의 주저함 없이 서른 마리의 좀비들을 향해 몸을 던졌다.

쉬익!

해골 기사들이 휘두르는 검이 날카로운 소리를 뱉었고, 좀비들의 몸이 잘려나갔다.

철퍼덕!

잘려나간 신체 부분은 진흙처럼 바닥에 떨어졌고, 절단면에서는 스멀스멀 다시금 팔다리가 자라났다.

으어어!

좀비들이 흐느적거리는 울음을 토해냈다. 비명인지, 울음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소리였다.

리자드맨 부두술사들은 그런 좀비들을 응원하듯, 그들 뒤에서 들고 있는 지팡이를 쉴 새 없이 흔들며 춤을 추듯 몸을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때때로 끼이! 끼이! 묘한 울음을 하늘을 바라보며 내뱉기도 했다.

그들을 향해 히르칸이 해골 조각을 던졌다.

투툭!

리자드맨 부두술사의 발치에 떨어진 해골 조각들은 빠르게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모습을 갖춘 해골 전사들은 히르칸이 의도한 바가 아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리자드맨의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180레벨 몬스터, 날카로운 송곳니가 매력 포인트로 유명한 송곳니 리자드맨의 뼈를 재료 삼아 만든 해골 전

사들이었다.

날카로운 송곳니 외에도 물어뜯기라는 리자드맨 치고는 독특한 전투법을 가진 녀석들은 모습을 갖추는 순간 바로 앞에 있는 리자드맨 부두술사의 몸을 물어뜯었다.

키엑!

리자드맨 부두술사들이 기겁하며 비명을 토해냈고, 좀비들이 동시에 주인을 향해 몸을 돌렸다.

히르칸 그리고 해골 기사들의 시선에는 자연스럽게 좀비들의 뒤통수만이 보였다.

‘이것들 봐라?’

히르칸과 해골 기사는 자신들을 무시하는 좀비들에게 가차 없는 응징을, 그들의 목덜미를 칼로 내리치기 시작했다.

퍼억!

그야말로 살아 움직이는 단두대였고, 그야말로 거칠 것 없는 파죽지세였다.

특히 히르칸의 칼질은 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않았다.

푸홧!

해골 기사들의 칼질이 명백한 칼소리였다면.

해골 기사들의 칼질이 명백한 칼소리였다면.

스윽!

히르칸의 검이 내는 소리는 면도칼이 수염을 자르는 듯한 소리였다.

그리고 울음도 없었다. 크라잉 소드가 아니라는 의미. 그렇다면 히르칸이 지금 든 검의 정체는?

폐위된 왕자의 검!

히르칸이 데스나이트에게 쥐여줬던 검을 지금 제 손으로 들고 써먹고 있었다.

그 위력은 명불허전, 그 자체였다.

히르칸은 좀비의 목을 쳐내면서, 전진했다. 떨어진 좀비의 머리통이 바닥에 떨어지며 썩은 토마토처럼 뭉개졌다.

물론 좀비는 그것만으로 죽진 않았다. 죽지 않으니까 좀비 아닌가?

히르칸이 하는 건 시간벌이였다.

해골 전사들이 리자드맨 부두술사들을 방해 없이 처치할 수 있는 시간벌이!

끼에! 끼에에!

주인과 해골 기사의 활약 앞에서 해골 전사들 역시 제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다. 거듭 울리는 리자드맨 부두술사의 울음과 비명이 해골 전사들의 활약을 실시간으로 말해줬다.

그렇게 해골 전사들은 3분 남짓한 교전 끝에, 주인의 믿음에 큰 선물로 보답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업!

이제는 207레벨이 된 히르칸, 그러나 그는 당장의 레벨업에 대한 기쁨보다는 진작에 남은 마력을 탈탈 털어서 해골 전사나 골렘을 두어 마리 더 소환해둘 걸, 하는 아쉬움을 먼저 느꼈다.

‘돈이 넘쳐도 지금 당장 쓸 곳이 없다니, 세상에나.’

더 나아가 지금 통장에 넘치는 돈을 가지고 있음에도, 당장 수중에 있는 소모 아이템이 아까워서 낭비나, 사치를 부리지 못한 채 긴축 활동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짜증이 났다.

‘예전에 리치리치가 인터뷰에서 돈이 있어도 막상 쓸 게 없다는 소리를 지껄였을 때 한 대 치고 싶었는데, 이런 일이 내게 생길 줄이야.’

히르칸, 그 역시 암흑대륙에 발을 디딘 무수히 많은 유저들이 느끼는 압박감을 분명하게 받고 있었다.

지금 암흑대륙에서 유저들을 가장 크게 괴롭히는 건, 소모 아이템을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점이었다.

‘여하튼 30대 길드 새끼들이 언제나 문제라니까. 특히 빅스마일하고 비앤비 길드는······ 걸리기만 해봐. 걸리기만.’

그나마 예전에는 높은 시세 차익을 노리고 몇몇 유저들이 부두쿠 터널을 이용한 운반 사업을 벌였고, 덕분에 우르갈 대산맥 정상 부근에서 아이템 거래가 비싸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이루어졌었다.

하지만 지금 5개 길드가 부두쿠 터널에 상상을 초월하는 교통 체증을 일으키면서, 그 거래는 사실상 사라졌다.

나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왔지만, 이런 상황마저 예상하지 못한 히르칸 입장에서는 부두쿠 터널 체증의 원흉인 다섯 길드에 대한 증오심이 불타오를 수밖에 없는 노릇.

그에 따른 손해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히르칸이 한숨을 내쉬며 해골 전사가 해치운 리자드맨 부두술사들의 시체를 해체했다.

비늘로 된 놈들의 몸을 해체하고, 몸이 녹아내리자 개중 한 마리의 몸에서 보석 재료가 나왔다. 히르칸이 그 보석 재료를 조심스럽게 회복 아이템을 넣어두는 전용 주머니에 넣었다.

리자드맨 부두술사를 잡아서 나오는 재료 보석은 아이템 제작 재료로 사용된다. 여기서 말하는 아이템에는 장비는 물론 회복류 아이템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회복류 아이템 재료로 쓰이는 보석의 경우에는 날 것 그대로

씹어도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다.

물론 그렇게 해서 효과를 누리는 유저는 없다. 그건 산에서 트뤼플을 발견했는데 배고프다는 이유로 먹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짓이니까.

‘이걸 먹어야 한다니.’

심지어 리자드맨 부두술사는 200레벨의 레어 아이템 방어구 재료다. 지금 200레벨의 레어 아이템은 아이템 옵션만 괜찮으면 기본 천 골드 단위에서 거래가 된다.

그런 아이템 재료를 마력에 기별이 갈 정도의 마력 회복을 위해서 먹는다는 것.

‘······빨리 하르드 요새를 찾아서 퀘스트를 진행하고, 하르드 요새를 거점 지역으로 바꿔야 해.’

히르칸에게는 몬스터에게 당하는 것만큼이나 속 쓰리고 배가 아픈 일이었다.

‘안 그러면 배 아파 뒈질지도 몰라. 아무리 돈이 썩어 넘쳐도 이 지랄을 언제까지 맨정신에는 못해.’

물론 언제까지 이런 고생을 할 필요는 없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히르칸의 기억에 비추어 본다면 하르드 요새에서 어떠한 퀘스트를 완료하는 순간, 하르드 요새가 거점지역으로 바뀔 것이다. 거점지역이 되는 순간 NPC들이 올 것이고, 그곳에 아이템 제작이 가능한 큐

브 등이 마련될 것이다.

과거 히르칸이 저주받은 성을 수복한 것처럼!

이게 이번 폐허 왕국 편의 핵심이기도 했다.

결국 처음 길을 뚫는 게 힘들지만, 그렇기에 폐허 왕국 편은 최초로 길을 개척한 자에게 그만한 대가를 준다.

반대로 말하면, 2등만큼은 피해야 한다. 2등은 그 무엇도 누릴 수 없으니까. 2등이 누릴 수 있는 건 속쓰림 뿐이다.

히르칸이 고개를 들었고, 유적에서 발견한 목각소라를 귀에 가져다 댔다.

- 동쪽으로, 동쪽으로······.

목각소라의 알림에 히르칸이 동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크어어어!

그런 히르칸의 시선 너머에서, 정체 모를 몬스터의 울음이 히르칸을 불렀다.

‘조만간 아이템 쏟아지면, 돈지랄이 뭔지 보여주마.’

2.

그 충돌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다.

“하회탈이다!”

빅스마일 길드는 하르드 요새 퀘스트를 받는 순간, 안정적인 퀘스트 진행을 위해 탐사대를 구성했고, 아폴로를 탐사대장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당연히 아폴로는 자기 안전을 위해서 탐사대 내에서 다시 선발대를 뽑아 그들을 먼저 보냈다.

그렇게 뽑힌 선발대, 일곱 명, 스트라이커 네 명과 사제 두 명, 마법사 한 명으로 구성된 그들은 유적에서 확보한 목각소라를 들고, 목각소라가 가리키는 방향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이 몬스터와 유저의 전투 소리를 듣는 순간, 그곳으로 향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몬스터와 유저, 둘 모두 그들의 조사 대상이었으니까.

더불어 현재 하르드 요새를 향하는 무리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그 선발대가 히르칸과 조우한 건, 신이 의도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일.

“튀어!”

그렇게 하회탈의 정체를 발견한 선발대는 곧바로 도망칠 준비를 마치고, 도망자가 됐다.

동시에 히르칸은 자신을 보자마자 도망치던 자들을 보는 순간, 아니 누군가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는 순간 잡던 몬스터를 그 자리에서 바로 포기한 채, 곧바로 추적자가 됐다.

‘어디지?’

도망치는 자들의 정체를 히르칸이 당장 알 리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정체를 보고 도망치는 놈들이 자신에게 호의적인 인간일 리가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여기까지 온 자들이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들을 놓아주면, 다음에는 적이 되어 자신을 향

해 칼끝을 겨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 새끼들을 잡아야 내가 산다.’

결정적으로 히르칸은 자신이 이 순간 얼마나 필사적으로 행동해야 하는지, 그것도 알고 있었다.

지금 비앤비와 빅스마일 길드를 비롯해 5대 길드가 부두쿠 터널을 소란스럽게 만들고, 어마어마한 유저들을 우르갈 대산맥 너머로 보내고 있다는 건 히르칸도 잘 안다. 이미 그 이야기는 워로드와 관련된 온라인 사이트의 주

요 논쟁거리다.

그 다섯 길드의 목적이 무엇인지도, 나름 충분히 예상하고 있다. 적어도 그들의 목적이 ‘아낌없는 희생을 통해, 후발주자들을 위해 암흑대륙을 살기 좋은 무대로 만들기’ 따위일 리는 없다.

당연히 그들은 거대 길드의 횡포를 아낌없이 보여줄 것이다. 보통 유저는 짐작하기도 힘든 수준의 횡포!

그러나 히르칸은 그 거대 길드의 횡포를 단신으로 마주했었다. 그 횡포에 가차 없는 응징을 당했던 경험을, 그때 얻은 절망감과 비루함을 잘 알고 있다.

심지어 이런 날을 위해서 준비해두었다.

‘비싼 돈 들이길 잘했어.’

자신을 보고 도망치는 자들을 쫓기 위해서, 하나라도 더 많은 적을 미리미리 해치우기 위해서, 비밀병기를 준비했다.

히르칸이 허리춤에 있는 해골 조각 주머니에서 해골 조각들을 꺼내 던졌다.

모습을 드러낸 네 마리의 해골 전사들, 자그마한 체격을 가진 녀석들은 미니 오우거 해골 전사들이었다.

보통 녀석들이 아니다. 특히 이 네 녀석이 입고 있는 방어구는 170레벨의 유니크 세트 아이템, 숲의 추적자 세트였다.

엘프 부족과 관련된 퀘스트 진행으로만 만날 수 있는 카멜레온 자칼을 잡아야 얻을 수 있는 세트 아이템이다. 현재 풀린 물량은 극히 적었으며, 이동속도 능력치 옵션이 이제까지 등장한 그 어떤 유니크 세트 아이템보다 높

았다.

그래서 한때는 한 세트가 최고 30만 골드에 거래가 된 적도 있었고, 최근에도 풀세트를 급하게 구하려면 10만 골드는 줘야 하는 놈이었다.

여기에 미니 오우거는 추격전의 귀재다. 작은 몸에서 나오는 폭발적인 힘과 그 힘을 통해 보여주는 날렵한 몸놀림은, 단련된 스트라이커들조차 쉽사리 추격을 뿌리치지 못할 정도다. 미니 오우거를 상대로는 추격전을 시도

하는 유저는 없다.

여기에 화룡점정으로 매드니스 헬름을 시전했다.

오로지 대상을 추적하기 위해 마련된 값비싼 추적자들, 뿔 달린 미니 오우거 해골 전사들이 도망자들과 제법 벌어진 거리는 단숨에 좁혔다.

결국 발이 느릴 수밖에 없는 사제 한 명이 가장 먼저 희생양이 됐다. 더욱이 미니 오우거 해골 전사의 공격은 가슴 쪽이 아니라 허벅지와 무릎 부근을 향할 수밖에 없었고, 단 한 번의 공격에 사제 한 명이 그대로 바닥에 넘어

져 굴렀다.

“으아아!”

빙글빙글, 세상이 돌아가는 광경 속에서 반사적으로 나오는 비명.

그 비명은 사제가 바닥에 엎어진 후에야 멈췄다. 사제가 바닥에 박힌 얼굴을 고개를 들었다.

‘아이고, 머리야.’

굴러가는 와중에 미니 오우거 해골 전사는 다른 곳으로 굴러간 듯, 사제의 주변에 미니 오우거 해골 전사는 없었다.

‘그 이상한 난쟁이 새낀 안 보이네? 다른 곳에 갔나?’

사제가 주변을 두리번거린 후에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고자 했다.

푸욱!

그렇게 일어나려는 순간 사제의 등을 파고든 검이 사제의 가슴을 뚫고 나왔다. 굳이 고개를 내리지 않고도 볼 수 있는 검 끝을 보는 순간 사제는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젠장!”

사제의 그 외침은 오래 가지 않았다. 검의 주인, 히르칸이 곧장 사제에게 다리를 걸었고, 사제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바닥에 파묻혔다. 그 상태로 히르칸은 사제의 등을 밟고, 검을 뽑았다.

그리고 다시 검을 찔렀다.

“헉!”

사제의 입에서 놀람 가득한 말이 나왔다.

고통 때문에 나오는 소리는 당연히 아니었다. 고통은 없다. 굳이 말하면 누가 등을 콕콕 찌르는 수준, 결코 기겁할 만한 수준의 통증은 아니다. 그리고 만약 놀란다면, 이미 앞서서 놀랐어야 했다.

그럼 왜 놀라는 걸까?

그 이유.

“데미지 끝내주지?”

사제의 입이 아닌 히르칸의 입에서 나왔고, 사제는 대답 대신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저 가볍게 찔렸을 뿐인데, HP의 감소량이 상상을 초월한 것, 그게 사제를 기겁하게 만든 이유였다.

폐위된 왕자의 검, 현존하는 최강 무기에 어울리는 반응이었다.

푹푹!

그 무기로 사제를 거듭 찌르면서, 히르칸은 질문을 던졌다.

“소속 길드는?”

사제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에 우물우물, 나지막하게 혼잣말을 지껄이고 있었다.

“하회탈과 조우했는데, 지금 잡혔습······.”

히르칸은 그런 사제의 머리를 밟았다. 입을 놀릴 수 없도록, 주둥이를 땅에 묻었다.

히르칸은 더 이상 볼 것 없다는 듯이 그 자리에서 사제의 몸뚱이를 연거푸 검으로 찔렀다. 멀찌감치 떨어진 곳으로 굴러갔던 미니 오우거 해골 전사가 다가와 히르칸을 도와 사제의 몸을 열심히 찔렀다.

그러는 사이 히르칸의 마력이 소모되기 시작했다.

‘역시 비싼 건 값을 한다니까. 벌써 쫓았군.’

미니 오우거 해골 전사들이 교전을 시작했다는 증거.

사제를 확실하게 처치한 히르칸은 사제의 몸뚱이를 뒤집었고, 사제가 입은 새하얀 사제복, 이제는 흙으로 더럽혀진 그 사제복의 왼쪽 가슴팍에 새겨진 심볼을 봤다.

동그란 원, 그 안에 있는 두 개의 점과 하나의 선.

싱그러운 미소를 의미하는 스마일 심볼!

‘빅스마일.’

히르칸은 그들의 소속을 확인하는 순간 사제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시계를 챙길 생각도 없었다.

히르칸, 그의 머릿속에는 이제 적이 되어버린 자들을 제거할 생각만이 가득했으니까.

3.

- 하회탈과 조우했는데, 지금 잡혔습······.

- 하회탈하고 싸우는 중인데 죽을 것 같······.

- 죄송합니다. 하회탈에게 당했습니다.

선발대로부터 보고를 받는 순간 아폴로는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하회탈이 또?”

주변 이들이 아폴로가 저도 모르게 내뱉은 그 말에 놀라며, 동시에 아폴로를 바라봤다. 아폴로는 그런 그들의 시선에 표정을 구겼다. 여러모로 당사자는 유쾌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새끼는 대체 왜 자꾸 내 앞길을 막는 거야?’

입을 꽉 다문 아폴로는 짜증이 났다.

그 덕분이었다. 아폴로는 짜증만 냈다. 그때처럼······ 얼어붙은 땅에서처럼 분노에 취하지 않았다.

‘젠장.’

멋대로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그때 일로 아폴로의 성정이 변할 리는 없지만, 아폴로에게 최소한 그때 일을 반복하지 않을 만한 지적 수준은 있었다.

“빌어먹을 새끼.”

“어떻게 할까요? 하회탈을 잡으러······.”

“잡아? 잡으라고 하면 잡을 수 있어?”

부하의 말에 윽박을 크게 지른 아폴로는 곧바로 부르크에게 연락을 하려고 했다. 여기서는 당연히 최고 권력자의 판단과 허락과 명령이 필요하다. 제 깜냥으로 일을 처리할 순 없다.

그 순간.

‘아니지.’

아폴로는 떠올렸다.

지금 빅스마일 길드의 진정한 의미의 유일무이한 최고권력자가 누구였는지.

그걸 떠올린 아폴로가 연락 대상을 바꿨다.

‘싱글레에게 연락을 하는 게 빠르겠어.’

< 54화. 하르드 요새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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