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솔플의 제왕-154화 (154/192)

< 53화. 유적을 찾아라 (1). >

1.

부두쿠 터널의 초입에는 긴장감과 공포, 불안함 따위가 자욱한 운무와 뒤섞여 있지만, 부두쿠 터널을 빠져나오는 순간 그러한 것들은 느슨하게 풀어져 버린다. 이런 이유로 부두쿠 터널을 나오는 유저들은 대개 나사 두어 개

가 풀린 듯한 표정을 짓고는 했다.

하지만 지금 부두쿠 터널을 나오는 여섯 명의 유저들은 달랐다. 그들의 표정 어디에도, 분위기 어디에도 느슨하게 풀어진 듯한 조짐은 조금도, 눈곱만큼도 없었다.

오히려 표정만 보더라도 강렬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역력한 긴장감이 느슨함을 대신하고 있었다.

부두쿠 터널의 출구 근처에서 각자의 사정 때문에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던 유저들은 그 여섯 명의 유저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의구심을 품었다.

‘쟤들은 얼굴이 왜 저래?’

‘여섯 명? 파티원 한 명이 죽어서 그런가?’

‘일곱 명 들어와서 여섯 명 살아남은 거면 평균 이상이지. 여기서 두세 명은 그냥 죽는데.’

‘가만? 딱히 전투의 흔적도 없는데?’

워로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눈치가 빨라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두개골 수집가를 잡고, 부두쿠 터널을 나올 정도라면, 워로드 속에서 나름 생존의 귀재라도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

그런 그들이 의구심을 품는 건 당연했고, 몇몇 행동력 좋은 이들은 그 의구심을 해결하기 위해 움직이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그 긴장된 분위기를 가진 여섯 명의 뒤에서 등장한 마지막 인물을 보는 순간, 그대로 사그라졌다.

‘하회탈이다!’

하회탈이 우르갈 대산맥 등정을 시도한다는 소문은, 전 세계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재 우르갈 대산맥에서 활동하는 이들이라면 대부분이 알고 있을 만큼 퍼져 있었다.

또한 정보도 자세했다. 하회탈이 몇 시에 부두쿠 터널에 들어갔는지 알아내는 건 일도 아니다.

때문에 부두쿠 터널의 출구에서 머무는 유저들은 빠르게 계산을 마칠 수 있었다.

‘부두쿠 터널을 통과하는데 채 30분이 안 걸렸군.’

‘맙소사, 아무리 실력 좋은 파티도 보통은 1시간은 넘게 걸리는데, 그걸 반으로 줄이다니······.’

‘괴물은 괴물이야.’

30분, 실력 좋은 파티도 1시간 남짓한 시간이 필요한 부두쿠 터널은 그 반에 해당하는 시간 만에 주파한 하회탈을 향해, 유저들은 경외심과 부러움, 질투심 같은 각자의 감정을 눈길에 담아 화살처럼 날렸다.

당연히 하회탈과 함께 한 여섯 명에 대한 관심은 더 이상 없었다.

그렇게 좌중이 하회탈을 주시하고 있을 때, 하회탈의 시선은 이제야 희미하게나마 보이기 시작한 우르갈 대산맥 정상을 향하고 있었다. 쉽사리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지그시 정상을 바라보는 그 시선을 몇몇 이들이 따라갔

다.

‘우르갈 대산맥의 주인을 잡을 생각인가?’

‘정말 혼자 놈을 잡으려고?’

그 순간 유저들 사이에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우르갈 대산맥의 주인, 블레이즈 슬라임 드래곤을 말함이다.

블레이즈 슬라임 드래곤에 붙은 별명은 그 외에도 적지 않다. 개중에서 가장 유저들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기억되는 별명은, 바로 현존하는 최강의 보스 몬스터란 별명이었다.

논란이 있었다.

과연 하회탈이 잡은 프로스트 나이트가 더 잡기 어려운가, 아니면 우레사냥꾼 길드가 잡은 블레이즈 슬라임 드래곤이 더 잡기 어려운가? 그 둘을 잡은 당사자들은 배제된 채 시작된 논의는 생각보다 격렬했다. 공학자들도 눈

이 어질어질할 정도의 숫자들이 오고 갔고, 그런 논쟁 끝에 결국 블레이즈 슬라임 드래곤이 현존하는 최강의 보스 몬스터가 됐다.

당연히 블레이즈 슬라임 드래곤 사냥에 성공한 우레사냥꾼 길드의 전력이 일단은 하회탈보다 우세하다는 평가가 나왔으며, 하회탈과 우레사냥꾼 길드 이후 프로스트 나이트나, 블레이즈 슬라임 드래곤 사냥에 성공한 레이

드 팀은 없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만약 하회탈이 블레이즈 슬라임을 잡는다면, 어떻게 될까?

하회탈, 그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현존하는 워로드 최강의 존재가 된다.

30대 길드에 준하는 무력이 아닌, 30대 길드를 뛰어넘는 전력을 가진 존재로 인정받을 수 있다.

‘정말 도전하는 건가?’

‘하회탈이라면······ 할 수 있지.’

결정적으로 이 무모하기 그지없는 짓을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할 수 있는 자는 워로드에 오직 한 명, 하회탈 밖에 없다.

물론 히르칸은 그들의 기대에 부응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히르칸이 우르갈 대산맥의 정상을 바라보는 이유는 그런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내가 그 새끼를 안 잡게 되어서 다행이야.’

안도.

지금 히르칸은 자신이 블레이즈 슬라임 드래곤을 굳이 잡지 않고도 우르갈 대산맥을 넘어갈 수 있는 사실에 감사했다.

만약 놈을 잡아야만 하는 상황이었다면, 우르갈 대산맥을 넘기 위해 꼭 놈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잡으려고 했을 것이다. 녀석을 잡기 전까지는 우르갈 대산맥을 넘어갈 수 없으니까.

하지만 우레사냥꾼 길드가 녀석을 잡고, 길을 개척해줬다.

동시에 우레사냥꾼 길드가 이미 최초로 블레이즈 슬라임 드래곤을 잡을 경우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얻어갔다.

물론 히르칸이 지금 블레이즈 슬라임 드래곤을 잡아도 여러 부분에서 큰돈을 벌 수 있다. 최초로 잡아야 얻을 수 있는 타이틀들······ 드래곤 슬레이어 같은 타이틀은 얻지 못하겠지만, 레이드 영상은 엄청나게 큰돈이 될 것

이다.

동시에 블레이즈 슬라임 드래곤을 잡아서 나오는 재료들은 200레벨짜리 유니크 아이템의 재료이기도 하다. 잡아서 얻을 수 있는 아이템 수입도 엄청나다.

‘잡아서 나쁠 건 없지만, 급할 것도 없지.’

하지만 반대로 그만큼 리스크를 짊어져야 한다.

보통 리스크가 아니다. 그 증거로 우레사냥꾼 길드가 블레이즈 슬라임 드래곤을 잡은 이후, 10일이 지났을 때 블레이즈 슬라임 드래곤이 새롭게 리젠됐지만, 현재까지 14개 레이드 팀이 도전해서 단 한 번도 레이드에 성공

하지 못했다.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 두개골 수집가 정도는 가뿐하게 처리할 실력자들조차 고배를 마셨다는 의미다.

지금 히르칸도 마찬가지다. 아니, 어떻게 보면 히르칸과 블레이즈 슬라임 드래곤은 궁합이 안 좋다. 프로스트 나이트 같은 타입이 히르칸에게는 상대하기 쉽다.

무엇보다 히르칸은 알고 있다.

‘문 앞에서 얼쩡거려봐야 의미도 없고.’

우르갈 대산맥은 문이다.

문은 넘어야 의미가 있다. 금고 자체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 그 금고문 너머에 있는 게 의미가 있는 거지.

때문에 히르칸은 걸음을 내디뎠다.

물론 그 모습을 본 유저들은 그 자리에서 곧바로 손가락을 놀리며 글을 올렸다.

[하회탈이 블레이즈 슬라임 드래곤에 도전한다!]

히르칸에 대한 새로운 루머가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2.

우레사냥꾼 길드가 블레이즈 슬라임 드래곤을 처치하는 순간, 이제 유저들은 부두쿠 터널만 통과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우르갈 대산맥을 넘을 수 있게 됐다.

유저들은 이제는 닿을 수 있게 된 우르갈 대산맥 너머를 암흑대륙이라 부르며, 그곳의 개척자가 되기 위한 도전을 시작했다. 암흑대륙에서 200레벨 이상의 아이템을 얻고자 했고, 새로운 몬스터를 발견하고자 했고, 세 번째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의 단서를 구하고자 했으며, 젖과 꿀이 흐르는 사냥터를 발견하기를 원했다.

그런 그들이 말했다.

“젠장!”

“투정부릴 시간 있으면, 튀어!”

“진짜 여기서 암흑대륙만 아니었으면 그냥 붙어보는 건데!”

“튀라고!”

암흑대륙은 지옥이라고.

최소 몬스터 레벨은 200레벨. 그런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땅은 이제 막 200레벨이 된 유저들에게는 분명 벅찬 상대였다.

동시에 암흑대륙은 이제까지 유저들이 감수했던 죽음에 따른 페널티를 크게 높였다.

워로드에서 죽음에 따른 페널티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건 역시 48시간 동안 게임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 자체가 달라진 건 아니었다.

문제는 암흑대륙 그 어디에도 재시작을 위한 땅이, 리스타팅 포인트가 없다는 점이었다.

죽으면, 곧바로 우르갈 대산맥 너머로 돌아간다는 것!

그게 도전에 실패한 대가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휴식을 위한 공간도 없었고, 아이템을 거래할 수 있는 시장은 더더욱 없었다. 하다못해 몬스터를 사냥해 얻는 재료로 소모 아이템을 제작하고자 해도, 어떤 몬스터가 체력 회복 아이템 재료를 주는지, 마

력 회복 아이템 재료를 주는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무의미한 시도였다.

그야말로 지옥!

당연히 그 지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악마가 되어야 하는 법.

그 악마가 되는 방법을 가장 먼저 실행한 건, 암흑대륙으로 가는 문을 열어젖힌 우레사냥꾼 길드였다.

“현재 암흑대륙으로 넘어온 인원은 총 157명이고, 플레이 시간대를 고려해서 4개 팀으로 나뉘었습니다. 4개 팀 명단은 어제 보내드린 메일에 첨부되어 있습니다.”

시르는 하회탈의 얼어붙은 왕국 영상을 보는 순간, 그 자리에서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2차 승급을 마친 우레사냥꾼 길드 소속 157명을 암흑대륙으로 데려온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200레벨 이상의 유저들이 해야 할 일은 굉장히 많았으니까. 우레사냥꾼이 소유한 라이브 채널 내 방송 프로그램은 한두 개가 아니었으니까. 다양한 프로그램을 방송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실력자가, 다

양한 일을 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 그들 중 대부분의 이들을 데려왔다는 건, 당분간 제대로 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없다는 의미. 우레사냥꾼이 이 과정에서 입는 손해는 결코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레사냥꾼이 이런 결정을 내린 건, 암흑대륙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정도 규모의 전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제 던전만 찾으면 됩니다.”

이제 남은 건, 이 전력이 상주할 수 있는 자리다.

워로드에서는 목책을 세우고, 벽을 쌓는다고 해서 그곳이 안전한 곳이 되진 않는다. 목책이나 벽보다 중요한 건 몬스터가 리젠되지 않는 지역을 확보하는 거다. 그래서 마을이나, 성이 유저들의 거점으로 이용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암흑대륙에서 그런 지역은 발견된 적이 없다. 성과 마을, 그 무엇도 없다.

그래서 나온 차선이 바로 해치가 말한 던전이었다.

의의로 인스턴스 던전은 앞서 말한 조건에 부합된다. 인스턴스 던전은 독립된 공간을 위해 그 주변을 몬스터 리젠 불가 지역으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다.

맹점이라면 맹점이다.

보이지 않는 벽을 두고, 바로 코앞은 결코 도망칠 수 없는 맹수 우리이지만, 그 맹수 우리 주변은 그 어느 곳보다 안전한 셈이니까.

“그리고 기왕 발견하는 거, 진짜 던전이라도 나오면 최고겠죠.”

물론 베스트는 인스턴스 던전이 아닌 진짜 던전, 일회용 던전을 찾는 것이다.

일회용 던전을 찾으면, 이야기는 끝이다. 말 그대로 일회용, 한 번 사용된 던전은 그 어떤 몬스터도 등장하지 않으니까. 최고의 피신처다.

더욱이 이런 일회용 던전은 지도가 있어도 쉽사리 찾을 수 없는 곳에 위치해 있다. 몬스터들 역시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면 우연히 찾아 들어가기 힘든 곳, 그야말로 천혜의 요새인 셈.

우레사냥꾼 길드는 암흑대륙을 정복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들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부분을 놓치지 않는 건 물론,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이 있었다.

3.

‘어디 있어? 어디 있지?’

두리번두리번, 열심히 고개를 움직이며 주변을 살피던 유저, 히르칸은 황금빛 무언가가 시선에 잡히는 순간, 소리쳤다.

“저기! 잡아!”

그 말에 반응하듯 주변에 있던 해골 전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히르칸 본인도 금빛 물체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이 새끼, 이번에는 무조건 잡는다!’

우르갈 대산맥 정상을 넘은 지 이틀째.

세상은 히르칸이 언제 블레이즈 슬라임 드래곤을 잡을지 고대하고 있었지만, 막상 당사자인 히르칸은 이틀이란 시간을 황금 고블린을 쫓는데 쓰고 있었다.

‘이번에도 못 잡으면 진짜 골치 아파져.’

히르칸이 기억하기로는 로스트 월드······ 지금은 누가 붙였는지 모르지만 암흑대륙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히르칸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당연히 지금 히르칸이 쫓고 있는 황금 고블린이 그 방법 중 하나였다.

황금 고블린.

200레벨의 몬스터인 녀석은 사냥감으로서는 그 어떤 가치도 없다. 경험치는 있으나 마나 한 수준이고, 좋은 아이템 재료를 주는 것도 아니다. 굉장히 약하다. 100레벨 유저도 잡을 수 있을 정도다.

그런 나약한 녀석이기에, 녀석은 몬스터들이나 유저들이 쉽사리 올 수 없는 곳에 피신처를 마련한다.

그 피신처가 바로 던전이다. 그리고 암흑대륙에서 그 던전은 십중팔구는 유적이다.

폐허 왕국의 흔적!

거기서부터 세 번째 시나리오는 시작된다.

폐허 왕국의 유적을 찾아 들어간 후에 그곳에서 단서를 찾고, 퀘스트를 습득한 후에 그 흔적을 더듬으면서 나아가는 것이다.

폐허 왕국이 무슨 힘을 가졌으며, 무엇과 싸웠으며, 무엇으로부터 멸망하여 폐허가 됐는지!

그 진실을 알아내는 순간, 폐허 왕국의 편은 끝이 난다.

그렇기에 지금 히르칸이 쫓는 황금 고블린의 존재는 매우 중요했다. 녀석이 폐허 왕국 편의 시발점이다.

‘젠장, 왜 이렇게 빨라?’

물론 그만큼 녀석은 쉽게 잡혀주지 않았다. 황금 고블린은 놀라울 정도로 날랬다. 그 대단한 히르칸조차 때때로 녀석을 시야에서 놓칠 정도이니, 다른 유저라면 진작에 놓쳤을 것이다.

더군다나 녀석을 무작정 잡는 건 의미가 없다.

몰이를 해야 한다. 그래야 녀석이 자기 굴로 숨어들어 갈 것 아닌가? 그래서 더더욱 히르칸은 미칠 지경이었다.

“어? 어!”

이 몰이를 위해서 소환한 해골들, 그 어떤 몬스터와도 맞서 싸울 전투 인공지능을 가진 그들이지만, 그들이 오히려 때때로 문제를 일으켰으니까.

“머, 멈······.”

‘잡지 마!’

해골 전사들에게 황금 고블린을 쫓아가 잡을 재주는 있어도 몰이할 재주는 없다.

‘제발!’

히르칸이 손가락을 튕기기도 전에, 방어모드로 전환하기도 전에, 해골 전사 한 마리가 황금 고블린을 가로막은 후에, 곧바로 단칼에 황금 고블린을 반으로 갈랐다.

“으아아아!”

히르칸이 그렇게 네 번째 실패를 했다.

4.

싱글레는 고개를 들었다. 자욱한 운무를 가득 품은 우르갈 대산맥이 눈에 들어왔다.

싱글레가 고개를 돌렸다. 자신을 따라온 천 명의 유저들이, 빅스마일 길드의 길드원이 보였다.

싱글레가 미소를 지었다.

‘이런 느낌도 나름 괜찮군.’

싱글레의 머릿속으로 최근 겪은 나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소행크와의 일전이었다. 노스랜드에서 그를 잡는 순간, 싱글레는 빅스마일의 최고 전력이 되었고, 최고 대우를 받았다. 물론 하회탈에게 당하긴 했지만, 그걸 싱글레의 패배라고 치부하면서 그를 폄하하

는 경우는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최고 대우는 달콤했다. 빅스마일 길드의 모든 주요 보스 몬스터 레이드를 비롯해 전력 운영이 싱글레의 손에 들어왔다. 국가로 따지면 군대의 통솔권을 손에 쥔 격이었다.

명성도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팬을 뒤에 둔 빅스마일 길드에게 싱글레의 등장은 오히려 기다리던 일이었다. 싱글레를 영웅으로 만들기 바빴다. 싱글레가 출연하는 방송이나 영상은 언제나 최고 수준의 조

회수와 관심을 받았다.

싱글레의 권력과 입김은 더욱 세졌고, 그런 싱글레의 지원에 힘입어 부르크가 빅스마일 길드 최초의 길드 마스터가 됐다. 부길마 자리 중 한 곳에는 약속대로 아폴로가 앉았다.

그 권력의 결과가 지금 싱글레의 뒤에 보이는 광경이었다.

천 명이 우르갈 대산맥 등정에 시도할 것이다. 절반 정도가 두개골 수집가를 통과하면 다행이겠지만, 싱글레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이제 그런 걸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위치에 올랐으니까.

그뿐만이 아니다.

비앤비 길드를 비롯해 빅스마일 길드와 손을 잡은 다섯 개의 길드가 같은 시도를 할 것이다.

목표는 1만 명!

그 엄청난 숫자의 인원을 암흑대륙으로 보낼 것이고, 그 1만 명이 하나의 왕국을 세우는 순간.

‘하회탈, 네놈이 제아무리 날뛰어도, 그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는 무대에서 왕국을 혼자서 상대할 순 없을 것이다.’

난잡해진 워로드의 질서가 하나로 통일될 것이다.

싱글레는 그날을 떠올리며 재차 미소를 깊게 지었다.

< 53화. 유적을 찾아라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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