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솔플의 제왕-149화 (149/192)

< 51화. 고대의 힘 (2). >

3.

번쩍!

사실상 제 기능을 상실해버린 매트리스 위에 시체처럼 누워있던 안재현은 두 눈을 뜨는 순간, 낡아빠진 매트리스를 더 초라하게 만드는 썩어 문드러지기 직전의 이불을 있는 힘껏 발로 뻥! 찼다.

“으럇차!”

기합 넘치는 외침과 함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안재현은 조금 전 시체처럼 누워있던 인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수준의 활기를 보여주는 걸음으로 화장실로 향했다.

곧바로 치약을 듬뿍 바른 칫솔을 머금은 안재현이 자그마한 화장실 거울 속 자신을 바라봤다. 비쩍 골아 한 달 내내 고기만 먹어도 안쓰러울 것 같은 몰골이 보였지만, 안재현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 멋지게 보였다.

좀 과장하면, 안재현은 지금 자신의 모습이 최근 두 번째 오스카상 수상에 실패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전성기 시절만큼 멋지다고 생각했다.

‘이제 다 끝났어!’

그 정도로 안재현은 정신이 아주 단단히 나가 있었다.

‘기다려라. 내 앞을 막는 새끼들 다 뒈졌어. 누구든 하회탈을 건드리면 좃된다는 걸 보여주마.’

그리고 정신이 나갈 만했다.

“으버버버!”

양치를 하면서도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해 내지를 정도로, 안재현은 정신이 나갈 정도로 기뻤다.

기쁨의 이유, 당연히 게임이다.

‘서리라니! 아니, 내가 서리라니! 으하하하!’

프로스트 나이트를 잡은 게 8시간 전이다.

안재현은 프로스트 나이트 레이드를 마치는 순간 바로 로그아웃을 했고, 현실에 돌아오는 순간 바로 잠들었다.

해야 할 일이 없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할 일은 너무나도 많았다. 그동안 촬영한 영상 파일을 정리해야 했고, 워로드가 돌아가는 상황도 한 번 체크해야 했고, 그동안의 수입도 정산해야 했다.

하지만 그냥 잠들었다. 프로스트 나이트 레이드에서 지친 것도 이유였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다른 이유였다. 너무 머릿속이 복잡하다는 것.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 것들을 지친 상태에서는 도무지 제대로 정리할 수가 없다는 것. 그게 이유였다.

그리고 지금, 8시간 동안…… 최근 1년 내에 가장 긴 수면시간을 통해 어느 때보다 맑아진 머리는 안재현이 느끼는 온갖 종류의 기쁨을 거뜬하게 견뎌냈다.

덕분에 안재현은 이 넘치는 기쁨을 하나하나 음미할 수 있었다.

‘자, 일단 서리의 효과는…… 어지간한 건 죄다 적용되는군.’

가장 기쁜 건 역시 신화급 고대의 힘 서리를 손에 넣은 것이다.

고대의 힘은 기본적으로 A랭크의 스킬에만 적용이 된다. 최근 얻은 스킬들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반대로 히르칸이 주력으로 쓰는 스킬 대부분은 적용을 받는다.

‘일단 해골들부터 때깔이 달라지겠네. 그보다 효과가 어떻게 적용되려나?’

그 효과가 어떨지는 모른다. 하지만 강력할 것은 분명하다. 그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벅찰 정도.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번 얼어붙은 왕국 편은 잘하면, 유료 동영상 구매자수가 3백만을 넘길지도 몰라.’

사실 이번 얼어붙은 왕국 편에서 안재현이 가장 큰 기대를 했던 건, 유료 영상 판매 수입이었다.

안재현이 과거로 돌아오기 전 우레사냥꾼 길드는 얼어붙은 왕국 편의 진행을 생중계하는 대신에, 이미 전부 촬영한 영상을 다시 편집한 후에 본인들 채널을 통해 라이브 방송을 했었다.

무조건 생중계를 하는 게 최고라고 여겨지던 그 무렵에는 신선하고, 신선하기에 위험한 시도였지만, 우레사냥꾼 길드는 그 시도를 통해 대박을 칠 수 있었다.

물론 그저 시도를 했기에 대박을 친 건 아니었다. 보름 넘게 이루어진 얼어붙은 왕국 편의 플레이 내용을 3시간 안팎으로 편집하고, 그 영상 속 과정을 마치 게임 플레이 영상이 아니라, 미리 시나리오와 각본을 짜놓고 만든 영화처럼 제작했다. 그 과정에서 우레

사냥꾼 길드는 할리우드의 유명 연출가, 감독들을 고용했다. 워로드란 무대를 이용해 영화를 제작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때 유료 방송 티켓이 390만 장이 팔렸지.’

결과는 어마어마한 대성공!

심지어 그때 우레사냥꾼 길드가 내놓은 얼어붙은 왕국 편 영상은 아카데미 시상식이나 칸 영화제까지는 아니지만, 꽤 이름 있는 영화제에 출품되어 호평을 받기도 했다. 그저 보고 즐기고 넘어가는 게 아니라, 하나의 작품으로 인정을 받았다.

물론 지금은 아무도 그런 시도를 하지 못했다. 이런 시도는 메인 시나리오 급에 버금가는 퀘스트를 소재로 삼아야 하는데, 타락 백작 편이나 배덕의 왕자 편은 퀘스트를 제대로 독점한 길드가 없었으니까. 타락 백작 때는 히드라 길드가 이런 시도를 했으나, 가장

중요한 타락 백작을 잡지 못해 무위로 돌아갔고, 배덕의 왕자 편은 제작은 가능하겠지만 하기 위해서는 하회탈과의 거래가 무조건 필요하다.

그렇기에 안재현의 이번 시도는 멋진 시도 그리고 신선한 시도가 될 것이다.

기대를 하는 건 당연했다.

‘로매니 필름이 소화를 해주냐, 그게 문제이긴 하지만.’

반대로 장편 영상이고, 영화처럼 보다 많은, 전문가적인 편집이 요구되는 만큼 아직 규모가 크지 않은 로매니 필름에게는 버거운 작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당연히 제작비도 훨씬 더 많이 들 것이다. 중형차 한두 대 값은 각오해야 한다.

‘까짓것.’

하지만 안재현은 그 정도 돈은 이제 충분히 일시불로 지불할 자금력을 가지고 있다.

‘광고도 제대로 됐겠다, 이번 건 통장을 털어서라도 해야지.’

더욱이 갑자기 메인 시나리오 내용이 달라지긴 했지만, 반대로 이번 영상을 앞두고 워로드 전체에 어마어마한 공짜 광고를 했다. 모두가 하회탈의 새로운 영상을 기대할 것이다. 하회탈이 무슨 방법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었는지, 궁금해할 것이다.

그리고 이 부분만 넘어가면, 남은 부분에서 돈을 쓸 필요는 없다.

‘200레벨 아이템은 별로 없으니, 당장 아이템 구매에 돈 쓸 필요도 없으니까, 문제없어.’

예전이라면 레벨을 올릴 때마다 아이템 세팅을 했다. 더욱이 하회탈 하나만이 아니라, 해골들까지 일일이 챙겨주기 위해서 등골을 뽑아 팔아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폐허 왕국은 이제 막 시작됐고, 이제야 본격적으로 200레벨 이상, 2차 승급 유저들을 위한 아이템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달리 말하면 당장 안재현이 새로운 아이템을 구매할 필요는 없다.

굳이 큰돈 쓸 곳을 찾으라면, 리치로 2차 승급을 한 후에 소환 가능한 데스나이트의 무장 비용 정도. 하지만 이 역시 무조건 큰돈을 쓸 필요는 없었다.

‘크라잉 소드랑 폐왕검, 둘 중 하나는 데스나이트 줘야지.’

데스나이트는 리치의 분신, 즉 소환사에게 영구 귀속된 아이템을 착용할 수 있다. 여차하면 하회탈이 쓰던 걸 줘도 된다는 의미다. 데스나이트가 왜 쓰던 걸 주느냐고 볼멘소리를 내뱉을 리도 없다.

그리고 이렇게 얻은 모든 것이 결과적으로 하회탈의 독주체제를 가능케 해줄 것이다.

결국 그게 가장 기쁜 일이다. 이제부터 폐허 왕국 편에서 하회탈은 누구보다 빠른 게임 진행을 보일 것이고, 하회탈과 30대 길드 간의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다.

양치를 하던 안재현의 눈앞에 장밋빛 미래가 그려졌다.

‘이번 기회에 이사나 갈까?’

어마어마하게 펜트하우스, 한강이 보이는 전망을 가진 고층 아파트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서, 한강을 가장 높은 곳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을 앞에 두고 V기어를 뒤집어쓴 채 게임을 하는 모습.

‘……아니지, 게임은 여기서 하는 것도 문제가 아니구나. 여기도 인터넷은 꽤 빠르지. 아! 차를 살까?’

값비싼 스포츠카를 주차장에 잔뜩 세워둔 채, 매일매일 다른 차를 끌고 나가도 일주일 내내 같은 차를 타지 않아도 될 정도로 멋진 차고를 가진 집에서 열심히 게임을 하는 모습.

‘……그런데 지금 비싼 차 사봤자 할 게 없네. 끌고 갈 곳도 없고, 그럴 시간도 없지. 보험금만 잔뜩 깨지잖아? 차는 사면 거기서부터 반값인데. 그럼 뭘 할까? 뭔가 당장 할 수 있는 호사가 있을 텐데? 내가 무슨 호사를 누리려고 했지?’

사실 그런 어마어마한 장밋빛 미래는 쉽사리 상상이 되지 않았다. 안재현은 결국 당장 누릴 수 있는 호사를 떠올렸다.

‘그래, 이번 기회에 V기어 6레벨을 사자! 피치스토어에서 V기어 6레벨을 일시불로 사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네.’

안재현이 그제야 제대로 상상할 수 있는 장밋빛 미래를 떠올리며 지은 미소 사이로 양칫물을 토해냈다.

이후 세수까지 마친 안재현이 안경을 쓰며, 기분 좋게 태블릿PC를 작동시켰다.

‘내 이야기로 도배가 됐겠네.’

그리고 봤다.

“응? 뭐야? 우레사냥꾼?”

자신이 잠든 8시간 동안 일어난 어마어마한 사건의 현장을.

4.

붉은빛이 감도는 반투명한 몸을 가진 놈은 괴물이었다.

녀석이 쉴 새 없이 뿜어대는 불길은 그 무엇도 녹일 수 있을 정도로 뜨거웠다. 또한 녀석은 불리한 상황 속에서 우르갈 대산맥의 메마른 정상, 그 정상의 호수가 되어 불리함을 피할 줄 알았고, 제아무리 큰 상처를 입어도 언제든 가장 온전한 형태로 되돌아가는 불

합리함도 가지고 있었다.

체력은 이제껏 등장한 그 어떤 보스 몬스터보다 많았으며, 바짝 독이 오른 녀석의 공격은 그 누구도 세 번 이상 받아낼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블레이즈 슬라임 드래곤!

우르갈 대산맥의 정상을 지키며, 온갖 불합리한 설정을 가득 가지고 있는 괴물 중의 괴물.

그 괴물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합리적인 부분은, 탱커와 스트라이커가 어그로를 끌고, 그 사이 마법사가 데미지 딜링을 하면 된다…… 라는 단순한 공략법밖에 없었다. 그 단순한 공략법만이 녀석을 상대하는 이들이 위안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요소였다.

물론 마라톤도 42.195킬로미터를 달리면 되는, 그렇게 보면 무척 단순하기 그지없는 운동이듯, 녀석은 분명 답이 나오지 않는 괴물이었다.

때문에 이미 수년 동안 워로드를 플레이하며, 최강이라 불리던 무수히 많은 몬스터들을 무찔렀던 최고의 실력자들도 녀석을 상대하자마자 입에서 포기라는 말이 당당하게 나왔다.

그런 괴물이 그녀 앞에서 무너졌다.

[타이틀 ‘우르갈 대산맥을 정복한 자’를 습득하셨습니다.]

[타이틀 ‘드래곤 슬레이어’를 습득하셨습니다.]

[타이틀 ‘우르갈 대산맥의 주인’을 습득하셨습니다.]

우레여왕 시르.

슬라임 드래곤의 슬라임 브레스의 영향으로 입고 있는 은빛 갑옷은 대부분이 녹아내리고, 그 갑옷이 가리고 있던 피부 역시 녹아버려 시커멓게 변해버린 몸뚱이, 머리카락은 물론 얼굴마저 타버려서, 몰골을 알아볼 수 없는 흉측한 모습을 한 채였지만, 그녀는 분

명하게 살아 있었다.

살아있는 채로 블레이즈 슬라임 드래곤의 최후를 바라봤다.

“우와! 우와!”

해치, 그와 단 둘이서만.

“진짜 잡았어! 우와!”

달리 말하면 생존자는 그 둘이 전부였다.

서른 명이 이번 블레이즈 드래곤 레이드에 참가했지만, 그들은 시간이 지날 때마다 빠르게 줄어들었다. 재도전의 기회 같은 건 없었다. 슬라임 드래곤의 브레스는 사제들이 손쓸 틈도 없이 표적을 녹였다. 탱커들조차 제대로 버티지 못할 정도였다.

“여왕님! 해냈습니다!”

물론 죽은 이들은 그냥 죽지 않았다.

- 야! 해치! 해치! 어떻게 됐어?

- 끝났습니까?

- 진짜 다 잡았어요?

죽은 이들은 여전히 보이스톡을 통해, 현실에서 게임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해치는 그들에게 대답했다.

“잡았어!”

그 말에 환호성과 침묵이 혼재되기 시작했다. 보이스톡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됐고, 그 소리를 온전히 들어야 하는 입장에서는 지옥 같은 상황이 펼쳐졌다.

하지만 해치는 이 상황을 즐겼다.

‘미친, 이걸 해내다니!’

한 차례 레이드 실패를 경험하면서, 그리고 이미 다른 30대 길드의 레이드 팀의 레이드 영상을 통해 어느 정도 정보와 공략법은 마련된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니, 이제까지 우레사냥꾼 길드가 맞이한 그 어떤 보스 몬스터보다 사냥 난이도가 높았다.

특히 최악의 상황은 블레이즈 슬라임 드래곤이 그전에는 그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새로운 페이즈에 다다르는 순간 보여준 자폭 공격, 슬라임 버스터가 발동하는 순간이었다.

자폭과 함께 녀석의 몸뚱이가 큼지막한 폭탄이 된 채 사방에 흩뿌려졌다.

예상치 못한 그 공격은 데미지도 엄청났다. 그 한 번의 공격에 무려 열한 명이 즉사, 게임오버를 당했을 때, 해치는 생각했다. 여기서 저놈을 어떻게 잡을지 고민하는 것보단 앞으로 48시간 동안 무슨 드라마를 봐야 할지 고민하는 게 보다 생산적인 일이 될 것이

라고.

하지만 그 상황 속에서 시르는 포기하지 않았다. 두 번째가 없는 상황에서 그녀는 거듭 슬라임 드래곤의 어그로를 끌었고, 해치는 그녀의 활약상에 맞추어 마법을 사용했다.

바위를 향해 계란을 던지는 심정으로, 그야말로 죽지 못해 싸우는 격이었다.

그런데 계란이 바위를 부순 것이다.

“여왕님!”

몰골이 비참해진 꼴이었지만, 해치는 이 순간 시르가 정말 여왕처럼 보였다.

그런 해치의 모습에 시르는 대답했다.

“해치!”

시르의 부름에 해치는 깊은 미소를 지으며 두 팔을 벌렸다. 이런 장면에서는 원래 살아남은 둘이 얼싸안는 법 아닌가?

하지만 그런 해치를 향해 날아온 건, 시르의 포옹이 아니었다

“고대의 힘이란 것, 알고 있어?”

“예? 고대…… 뭐라고 하셨죠?”

“고대의 힘 불길…… 이상한 게 보상으로 추가됐는데, 아는 거 없어?”

“예?”

“알아 몰라?”

시르의 물음에 해치는 무언가라도 대답해야 할 것 같은 느낌에 일단 대답했다.

“그러니까…… 제가 아는 고대는 안암역 근처에 있는 그 대학밖에 없는데요?”

그 말에 시르는 해치를 짧게 노려본 후에 보이스톡을 통해 다른 이와 대화를 시작했다.

5.

[우레사냥꾼, 우르갈 대산맥 등정에 성공하다!]

[우레여왕, 배덕의 왕자 때의 굴욕을 말끔히 씻어내다!]

[고대의 힘! 워로드 스킬 강화 콘텐츠 등장!]

반나절 전까지만 하더라도 하회탈과 세 번째 메인 시나리오 개막으로 들썩였던 워로드는 어느 순간 우레사냥꾼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리고 히르칸의 머릿속도 우레사냥꾼 길드에 대한 이야기로 뒤덮여 있었다.

‘불길이라니.’

게임에 접속했음에도 히르칸은 그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한 채 홀로그램창으로 온라인 기사들을 보고, 고뇌하고 있었다.

‘이건 말이 안 돼. 분명 블레이즈 슬라임 드래곤은 전설급을 주던 놈이었어. 그런데 불길이라니?’

우레사냥꾼 길드가 우르갈 대산맥 등정에 성공했다.

그 자체로도 놀랍다. 히르칸은 알고 있으니까. 블레이즈 슬라임 드래곤은 잡기 매우 힘들다. 힘든 정도가 아니다. 일단 달라붙어서 무언가 작업을 하는 게 불가능하고, 신체 절단이란 개념이 없으며, 여차하면 호수처럼 변해서 모든 공격을 무위로 돌려버리는 컨셉

을,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는 컨셉을 가지고 있다.

결정적으로 3페이즈에 도달하는 순간 나오는 슬라임 버스터는 모르는 사람은 무조건 당한다. 광범위 공격에 위력도 엄청나다. 히르칸이 프로스트 나이트를 상대할 때 경험한 서리 안개나 마지막에 나온 서리용의 저주와 동급의 범위 공격이다. 피하라고 만든 게

아니라, 그냥 버티는 게 유일한 답인 범위 공격.

그나마 히르칸은 이런 정보가 있으니까 한 번 싸움을 설계라도 할 수 있는데, 우레사냥꾼 길드는 그냥 부딪쳐서 해냈다.

물론 처음 시도가 아니긴 하고, 초중반 공략법은 충분히 완성되어 있었겠지만, 그래도 대단한 일이었다.

‘대체 어떻게?’

그러나 그보다 더 놀라운 건, 블레이즈 슬라임 드래곤과의 전투에서 가장 큰 활약을 보인 우레여왕이 신화급 고대의 힘, 불길을 손에 넣었다는 점이었다.

‘뭐가 바뀐 거지?’

히르칸의 기억에 따르면 우르갈 대산맥 등정과 함께 폐허 왕국 편이 시작됐고, 그 이후 고대의 힘 콘텐츠가 등장했다. 그런 상황에서 신화급 고대의 힘이 등장한 건, 블레이즈 슬라임 드래곤이 잡히고 두 달이란 시간이 흐른 다음이었다.

그런데 지금 프로스트 나이트, 블레이즈 슬라임 드래곤을 잡은 보상으로 신화급 고대의 힘이 나왔다.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다.

‘퀘스트 난이도가 바뀐 건가?’

토봇 소프트의 말에 따르면, 워로드를 관리하는 인공지능 시스템은 유저들의 게임 진행 속도에 맞추어서 모든 난이도를 설정한다고 했다. 더불어 그 과정이 워낙 복잡하기 때문에 외부에서 멋대로 그 난이도나, 변수를 바꾸면 시스템이 오류를 일으킬 정도라는 말

도 덧붙였다.

즉, 이번 일은 결과물이다. 유저들이 보여준 게임 진행 속도에 맞춰서 워로드가 내놓은 답이다.

달리 말하면 히르칸이 알고 있는 내용은 이제 답이 아닌, 그저 참고 자료가 되었다는 의미다.

히르칸이 두 눈을 감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너무 기뻐서, 온갖 종류의 기쁨이 가득 차서 복잡했던 머릿속이 지금은 놀라우리만큼 차가웠다.

‘200레벨까지 남은 경험치는 43퍼센트. 이프리트의 눈물은 없지만, 테르베 성벽으로 이동하면서 사냥을 하면…… 이틀, 아니 하루 안에 200레벨을 달성할 수 있어.’

차가워진 머릿속이 현실을 직시했다.

뒤처진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압도적으로 앞선 것 역시 아니다.

독주는 없다.

그럼 결국 해야 하는 건 하나다.

‘그래, 어디 한 번 해보자고. 누가 밟히나.’

경쟁자를 뿌리치기 위해 다시 전력으로 달리는 것. 지금 그게 히르칸이 해야 할 일이다.

< 51화. 고대의 힘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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