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프로스트 나이트 (1). >
1.
히드라, 빅스마일 그리고 하회탈.
그 셋이 만든, 이제껏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노스랜드 쟁탈전이 남긴 잔향은 하루아침에 사라지기에는 너무 강렬했다.
- 그럼 이제 노스랜드 가려면 하회탈 허락을 받아야 하는 건가?
- 하회탈은 개인 사이트 없잖아? 유튜브 페이지 가서 허락해달라고 댓글 달아야 하는 건가?
- 아니, 그보다 길드들이 사냥터에 대해서 일정 시간 동안 소유권을 주장하는 건 이해하겠는데, 이번 경우는 조금 다르지 않아? 개인이 이런 권리를 주장하는 건 예가 없잖아?
- ㄴ 하회탈이 정정당당하게 싸워서 이겼는데? 뭐가 문제임?
- ㄴ 싱글레랑 소행크가 싸운 후에 뒤통수 쳤다면서? 정정당당한 건 아니지.
- ㄴ 아 넴, 서른 명 가까운 유저랑 30대1로 싸운 건 참으로 정정당당하네염.
- ㄴ 그런데 솔직히 빅스마일하고 하회탈하고 30대1이라고 하니까, 왠지 빅스마일 애들이 불쌍해진다.
- 그보다 하회탈 영상은 언제 올라옴?
개중에서도 하회탈이란 이름의 존재감은 모든 것을 압도했다.
그런 하회탈이 남긴 존재감 앞에서 레드불스 길드를 비롯한 30대 길드에 속한 7대 길드가 우르갈 대산맥 등정을 잠정 포기한 이야기나, 그들의 포기로 유일한 도전자가 된 우레사냥꾼 길드가 엄청난 피해를 입은 채 우르갈 대산맥을 도망치듯 떠났다는 이야기, 그
외에 언더풋 길드를 대표하는 실력자들이 어마어마한 대우를 받고 30대 길드로 이적한 소식들과 비앤비 길드가 연신 보스 몬스터 레이드 기록을 경신한 이야기들은 그저 그런 이야기가 되어 유저들의 기억 속에 잠시 스치듯 지나갈 뿐이었다.
- 누가 보면 하회탈이 워로드인 줄 알겠네.
- 그러고 보니 워로드에서 가장 센 놈이 워로드 아니었음? 그럼 하회탈이 워로드 아님?
- 워로드 나오면 워로드는 끝인가?
- ㄴ 그럼 하회탈이 게임종결자네. 토봇 소프트가 하회탈 계정 삭제할 듯?
- ㄴ 하회탈 이야기 좀 그만하자.
일각에서는 하회탈에 대한 이 과도한 관심이 불편할 지경이었다.
때문에 그런 하회탈에 대한 관심 밖에서 불기 시작한 무시무시한 태풍의 존재를 눈치채는 건 소수에 불과했다.
“미치겠군.”
참다못해 머릿속에서 삼켜야 할 푸념을 혼잣말로 내뱉는 유저, 스트러스란 캐릭터 네임보다는 퍼스트 헤드라는 직급이자, 별명으로 더 자주 불리는 유저, 지금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쉴 새 없이 쓰다듬는 유저, 그는 지금 남들은 쉽사리 눈치채지 못한 태풍의
존재를 눈치챈 소수 중 한 명이었다.
‘지금 하회탈이 중요한 게 아니야.’
퍼스트 헤드 스트러스, 그는 소행크의 실패와 나탈의 보고를 듣는 순간 그 누구보다 빠르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했다.
‘소행크가 싱글레에게, 그것도 빅스마일의 심볼을 가슴에 단 싱글레에게 패배한 게 그 무엇보다 위험해.’
퍼스트 헤드는 당연히 싱글레를 잘 알고 있었다. 더 나아가 핸즈 길드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고, 핸즈 길드가 비앤비 길드를 통해 본격적인 그리고 적극적인 활동을 시작했을 때, 놀라기보다는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핸즈 길드를 대표하는 실력자가 비앤비 길드가 아닌 빅스마일 길드의 일원으로 소행크란 히드라 길드의 최강의 창을 꺾는 순간, 퍼스트 헤드는 염두에 두지조차 않은 악몽 같은 시나리오를 떠올렸다.
‘30대 길드를 전부 먹어치우려는 속셈인가?’
비앤비 길드는 이미 핸즈 길드의 손아귀에 들어왔다.
빅스마일 길드 역시 조만간 핸즈 길드의 손아귀에 들어올 것이다. 소행크를 꺾은 싱글레는 빅스마일의 영웅 대접을 받을 것이고, 당연히 빅스마일의 모든 것이 싱글레를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다.
그리고 그 비슷한 경우가 다른 길드에서도 일어날 것이다.
그다음은?
‘젠장.’
그렇게 얻은 권력과 무력을 이용해 자기들의 말을 안 듣는 놈들을 때려 부술 것이다.
개중에서도 빅쓰리를 향한 공격은 무척이나 노골적일 것이다. 이미 히드라 길드는 빅스마일 길드에게 한 방 먹었다. 이게 끝이라는 보장도 없다.
‘배덕의 왕자를 잡을 때 우레사냥꾼을 미끼로 쓰지 말고, 차라리 좀 더 긴밀한 관계를 맺었으면…… 아니야. 레드불스나, 우레사냥꾼이나 결국 손을 잡아봤자 우릴 이용해먹으려고 할 뿐이지.’
결정적으로 히드라 길드에는 막강한 창의 숫자가 너무 적다. 소행크는 정말 강하다. 그러나 소행크를 빼면 누가 있을까? 레드불스 길드는 체브를 제외해도 내로라하는 실력자가 적지 않고, 우레사냥꾼 역시 우레여왕에 버금가는 우레공주와 발리스타 해치를 비롯
해 무수히 많은 레이드로 단련된 역전의 용사들이 가득하다.
그래서 그들과 손을 잡으려고 했지만, 그 계획은 우레사냥꾼 길드의 갑작스러운 배덕의 왕자 기습 레이드 시도 그리고 하회탈의 개입으로 엉망이 됐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퍼스트 헤드는 다시 한 번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쉴 새 없이 쓰다듬었다.
쓰다듬으면서, 그는 생각을 정리했다.
‘어차피 지나간 일을 후회해봤자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얼굴을 쓰다듬던 손이 멈추고, 퍼스트 헤드는 지금 당장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를 고려했다.
‘핏불 씽 영입에 좀 더 크게 베팅을 해야겠어. 출혈이 크더라도 지금은 다른 길드가 섣불리 우릴 먹잇감으로 삼을 수 없는 창이 필요해. 그리고…… 도전자 키요테였나? 최근 기세가 좋은데, 이번 기회에 나름 최고 대우를 해줘서 잡아둬야지.’
영입.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지만, 반대로 그것을 위해 히드라 길드가 치러야 할 대가를 떠올린 퍼스트 헤드의 입에서는 긴 한숨이 나왔다.
‘월스트리트에서 지내던 때가 그리워질 줄이야.’
이런 계산이 싫어서 하던 일을 접고 게임을 시작했는데, 게임에서 이런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될 줄이야?
그 순간 퍼스트 헤드는 갑자기 저도 모르게 실소를 머금었다.
‘하회탈이 핸즈 길드 소속이 아니라는 게 그나마 다행이군.’
우습게도 이 순간 퍼스트 헤드의 심정을 위로해주는 건, 하회탈이 핸즈 길드의 일원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동안 하회탈이 핸즈 길드 소속일 가능성을 꽤 높게 점친 상황이었기에, 하회탈과 핸즈 길드가 한통속이 아니라는 건 정말 큰 위안이 됐다.
만약 하회탈이 핸즈 길드 소속이었다면, 핸즈 길드를 적대시하는 선택지 자체를 고려할 이유가 없었을 테니까.
‘하회탈을 잡을 수 있으면, 이런 고민은 필요도 없는데…….’
달리 말하면 하회탈이 가장 큰 변수였다. 핸즈 길드의 계획을 뒤죽박죽 만들 수 있는 변수.
‘……최근 행보를 보면 하회탈이 30대 길드 중 한 곳에 들어갈 가능성은 극히 낮아.’
더욱이 하회탈이 얼어붙은 땅에서 빅스마일 길드를 향해 길드전을 선포한 건, 고작 그 서른 명 안팎의 인원을 향한 선포가 아니라, 30대 길드를 향한 경고이자, 도전이었다.
그래서일까?
고민으로 가득 찼던 퍼스트 헤드는 이 순간 하회탈을 향해 순수한 호기심을 품었다.
‘그런데 대체 하회탈의 목적은 뭐지? 단순히 돈과 명성이 전부라면 이런 방법보다 더 편한 방법이 있을 텐데?’
하회탈, 그가 워로드를 통해 이루고 싶은 바는 대체 무엇일까?
‘웃기지도 않는 인간이야.’
그 머리 좋은 퍼스트 헤드조차 그 부분에 대해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2.
한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화려함을 자랑했을 것이 분명한 성이었다. 그것도 보통의 성이 품은 화려함이 아닌, 크나큰 성세를 누렸던 왕국의 수도, 필시 왕도라 불리며 가장 큰 화려함을 누렸을 성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 화려한 무대는 폐허가 되어 있었다. 성벽은 처참하게 무너져 있었고, 그 성벽 너머의 건물들은 구차한 꼴을 하고 있었으며, 그 건물들을 지나 다시 보이는 내성의 성벽은 존재의 흔적만이 어렴풋이 남아있었으며, 그 내성 성벽이 지켰어야 할 내성
의 건축물들은 가장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내성 안 곳곳을 채운 정체 모를 거대한 무언가의 발자국은 처참함의 절정, 화룡점정과도 같았다.
심지어 이 모든 것은 얼음으로 코팅이 된 채, 수북한 눈으로 덮여 있었다. 처참한 광경이 처절함마저 품자, 이루 말할 수 없는 초라함을 풍겼다.
지금 그 무대를 두 무리가 전장으로 삼고 있었다.
한 무리는 창백하게 변해버린 가죽을 가진 오크들이었다. 무기 대신 얼어붙어 날카롭게 변해버린 자신의 팔을 무기 삼는 오크들에게 살아있는 생명체가 가져야 할 온기나, 눈동자, 활기나, 감정 따윈 보이지 않았다.
그에 맞서는 무리 역시 저주받은 오크 무리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누가 보더라도 멋진 갑옷을 입고, 잘 벼려진 명검을 들었지만, 그 속을 채우고 있는 건 그 무엇보다 확실한 죽음의 증거를 가진 해골 전사들이었다.
죽을 수 없는 자들의 싸움.
목소리조차 내지르지 못한 그들의 싸움은 언뜻 상상하면 조용하리라 생각될 수도 있지만.
카앙, 카앙!
그들이 토해내는 쇳소리는 어설픈 함성이나 고함보다 훨씬 더 강렬했다.
심지어 그들이 내는 소리는 다양하기까지 했다.
콰앙, 콰앙!
해골 전사들이 휘두른 검이 오크들의 얼어붙는 피부를 부수는 소리는 경쾌하면서도 묵직했고.
끼이이이!
저주받은 오크들이 꽁꽁 얼어붙은 채 어지간한 도검보다 굳건하고, 날카로운 팔을 휘둘러 해골 전사의 갑옷에 상처를 만드는 소리는 소름 끼치면서도 날렵했다.
그렇게 그 두 무리가 쉴 새 없는 격전을 통해 내뿜는 소리는 악기 합주를 떠올릴 만큼 다채로웠다.
심지어 그들은 언제까지 그 다채로움을 연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부서진 오크들의 몸뚱이는 놀랍게도 몰아치는 눈보라에 치료됐다. 움푹, 패인 상처도 그 위로 눈이 덮이면 그대로 메워졌다.
해골 전사들이야 두말할 것도 없이, 그들이 얻은 상처에 대한 책임은 그들의 몫이 아니었다. 그들의 주인의 몫이었다.
‘바쁘다, 바빠.’
그런 해골 전사들의 주인, 히르칸만이 이 임전무퇴, 물러서지 않는 불사자들의 격전에서 우스운 짓을 하고 있었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채 산산조각이 난 채 복구를 시도하는 오크의 몸뚱이를, 마치 고양이가 쓰레기통을 뒤지듯 뒤진 후에, 무언가를 발견하자마자 검 대신 손에 쥐고 있던 병에 담긴 성수를 뿌리는 모습은, 적어도 공포를 모르는 해골 전사들보다 더 앞장서서 전
투를 치르던 역전의 용사가 보일 만한 모습은 아니었다.
[저주받은 오크의 저주가 풀립니다.]
하지만 이 순간 히르칸은 자신의 처지에 대한 실망감이나 자조적인 미소 대신 감탄을 하고 있었다.
‘내내 느끼는 거지만…… 우레사냥꾼 애들, 처음 여기서 사냥했을 때 피똥 좀 쌌겠네.’
20일.
히르칸이 얼어붙은 땅을 지나 얼어붙은 왕국의 영역에 들어온 지 무려 20일이란 긴 시간이 지났다.
결코 짧지 않은 이 시간 동안 히르칸이 상대한 건, 죽었으나 죽지 못한 채 꽁꽁 언 채로 움직이는 몬스터들이었다.
물론 그저 단순히 얼어붙은 것이 가진 능력의 전부인 괴물들은 결코 아니었다.
‘진짜 게임 난이도가 지랄 같다니까.’
공식 설정은 서리용의 저주를 받은 괴물들이다.
결코 본인 스스로 죽을 수 없으며, 심지어 깊은 상처마저 몰아치는 눈보라와 혹한 속에 재생되어, 풍화되어 사그라지는 것조차 꿈꿀 수 없는 무시무시한 저주를 받은 갸륵하기 그지없는 운명을 가지게 된 괴물들.
물론 유저들의 관점에서 말하면, 신체가 얼어붙으면서 방어력은 대폭 상승했으며, 쉽게 죽지 않는 불사의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치명적인 상처를 만들어도 하염없이 부는 눈보라 앞에서 금세 치료가 되는…… 속된 말도 유저보고 잡으라고 만든 몬스터가 아니라,
유저보고 이 몬스터를 디자인한 기획자를 잡으라고 만든 몬스터다.
그럼 당연히 의문이 나온다.
과연 히르칸은 대체 무슨 수작을 부렸기에 이 말도 안 되는 몬스터를 레벨업을 위한 사냥감으로,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닌 장장 20일이란 어마어마한 시간 동안 그들을 사냥감으로 삼을 수 있었을까?
‘진짜 우레사냥꾼 애들은 성수의 도움 없이 이 새끼들을 어떻게 잡았을까?’
결론은 우레사냥꾼 덕분이다.
서리용의 저주를 받은 몬스터를 상대하는 방법을, 놈들의 몸에는 저주의 근원이 되는 문양이 있으며, 그 문양에 성수를 뿌리면 저주가 사라진다는 사실을,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찾아낸 우레사냥꾼 길드였으니까.
[레벨이 올랐습니다.]
당연히 히르칸의 198번째 레벨업, 199레벨 달성 역시 우레사냥꾼 덕분이었다.
‘오케이.’
기다리던 소식을 들은 히르칸은 기다렸다는 듯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오빠 마력 찼다, 다 뒈질 준비 해라!’
화르르!
히르칸의 움켜쥔 주먹 사이로 불길이 뛰쳐나왔고, 히르칸이 그 주먹을 활짝 펴는 순간 히르칸의 손아귀에서 불길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
솟구친 불길은 크게 입을 벌리며, 그렇게 벌린 입을 시작으로 점차 자신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파이어 골렘의 열기에 저주받은 오크의 방어력이 감소합니다.]
활활! 눈보라마저 삽시간에 증기로 만들 만큼 강렬한 화력을 자랑하는 불의 거인이 등장했다.
파이어 골렘의 존재감은 등장부터 달랐다. 파이어 골렘이 내뿜는 열기는 얼어붙은 오크의 몸뚱이를 차츰 녹게 만들 정도였다.
물론 그와 동시에 히르칸의 마력 역시 녹아내리듯 소모되기 시작했다.
‘여기서 더 이상 소모 아이템은 쓸 수 없어. 지금 상태에서 단숨에 끝내고 물러난다!’
이 순간 히르칸은 이번 전투를 최대한 빨리 끝낼 생각이었다.
딱딱!
그 의지를 담은 채 손가락을 두 번 튕겼다. 이미 공격적이었던 해골 전사들에게 보다 강한 공격성을 주문했다.
떨그럭떨그럭!
해골 전사들이 주인의 주문에 반응하듯, 보다 적극적으로 저주받은 오크들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콰직!
정확히는 녹아내리면서 방어력은 물론 운동 능력도 저하된 저주받은 오크들을 해골 전사들이 압도하기 시작했다.
히르칸은 다시 한 번 바쁘게, 그 우스꽝스럽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작업을 시작했다. 츠릉츠릉, 울음을 터뜨리는 크라잉 소드 대신 성수가 담긴 병을 든 채, 저주받은 오크들의 문양을 찾아, 성수를 뿌리기 시작했다.
하나, 둘…… 히르칸의 우스꽝스러운 짓이 거듭되는 순간 오십에 다다랐던 저주받은 오크의 숫자는 한 자릿수가 됐다.
당연히 히르칸의 그 우스꽝스러운 전투는 한 자릿수가 된 저주받은 오크가 영영 사라지기까지 끝나지 않을 듯했다.
‘아!’
하지만 그 우스꽝스러운 작업에 갑작스레 마침표가 찍혔다. 성수가 담긴 병이 바닥을 드러낸 것이다.
아직 남은 저주받은 오크의 숫자는 일곱! 그런 상황에서 성수의 부재는 당혹할 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히르칸은 당혹감에 찬 표정 대신 단호함을 머금듯 입을 다물었다.
‘왔군.’
바닥난 성수, 이건 신호였다.
‘용케 여기까지 왔어.’
이제 모든 일을 뒤로한 채, 최종결전에 임해야 한다는 신호.
그런 히르칸의 심중을 읽기라고 한 것일까?
갑자기 강력하기 그지없는 한기가 폐허가 되어버린 이름 모를 왕성을 스치고 지나갔다.
쩌저정!
한기가 스치는 순간, 강철로 된 갑옷 위로 서리가 새싹처럼 피어오를 정도로 강력하기 그지없는 한기였다.
[서리의 기사가 분노합니다.]
[서리의 기사의 분노에 저주받은 자들이 깨어납니다.]
‘프로스트 나이트.’
그 한기 앞에서 일순간 히르칸은 회상했다.
‘이 녀석이…… 그년의 화룡점정이었지.’
우레여왕 시르, 그녀를 잠시 동안 워로드 최강의 유저…… 워로드에 가장 가까운 존재로 만들어주었던 그 영상을.
그녀를 그토록 증오하는 히르칸조차 그녀의 실력과 재능과 능력과 의지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그 영상을.
히르칸은 지금 그 영상을 회상했다.
< 50화. 프로스트 나이트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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