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지르면 복이 와요 (3). >
8.
블랙 코볼트 좀비 워리어.
160레벨의 몬스터인 블랙 코볼트 워리어의 시체를 제물 삼아 만들어진 몬스터다. 레벨은 170레벨, 블랙 코볼트 워리어보다 훨씬 강하며, 10마리 안팎의 소규모 무리를 움직이는 블랙 코볼트 워리어와는 다르게 적게는 서른에서, 많게는 백에 가까운 숫자가 무리
를 지어 움직인다.
때문에 소규모 파티가 아닌 대규모 파티 혹은 길드의 사냥팀 정도 되는 전력을 갖춘 이들의 사냥감이었다.
그 무리에 단 한 명이 도전장을 냈다.
하지만 그 한 명은 단신으로 블랙 코볼트 워리어 좀비 무리를 상대하진 않았다.
떨그럭떨그럭!
어느 누구도 쉽사리 덤벼들 수 없는 그야말로 공포의 좀비 군단 앞에 선 것은 그들과 같은 공포를 잊은 무리, 해골 무리들이었다.
3열 횡대.
열씩, 세 줄로 전열을 구축한 서른 마리의 해골 전사들은 착용한 무구를 통해 자신의 소속을 드러내고 있었다.
일선, 가장 최전선에 선 해골 전사들은 해골 전사임을 알기 힘들 정도로 제법 두꺼운 철갑을 두르고 있었다. 풀 플레이트 아머, 무게감 넘치는 갑옷과 함께 그들이 손에 쥐고 있는 갑옷의 무게감조차 비할 바 못할 정도로 묵직한 철구, 모닝스타란 무기였다. 두꺼운
가시가 유난히 인상적이었다.
이선에 선 해골 전사들은 용의 비늘을 떠올리게 만드는 붉은 비늘 갑옷을 두르고 있었으며, 왼손에는 동그란 나무 방패를, 오른손에는 야성이 넘치는 시미터를 쥐고 있었다.
삼선의 해골 전사들은 가죽으로 된 갑옷을 입고 있었다. 무두질을 잘한 듯, 매끈하기 그지없는 가죽은 녹색이었다. 신비하기 그지없는 그 녹색은 주변의 수풀이 품은 녹음과 순간순간 어우러지며 해골 전사의 존재감을 희미하게 만들었다. 그 녹색의 가죽 갑옷을
입은 해골 전사들은 방패를 들지 않았다. 대신 양손에 가지각색의 칼을 두르고 있었다.
그 무리의 화룡점정, 화룡이 가진 두 개의 눈 역할은 본 아머를 두른 해골 기사들이었다.
들, 하나가 아닌 둘.
두 마리의 해골 기사가 각자 존재감 넘치는 검을 앞세웠다. 검은 똑같은 모양을 한 채 색만 달랐다. 하나는 검었고, 다른 하나는 빛났다. 그것만이 두 해골 기사의 유일한 차이점이었지만, 그 둘이 하고자 하는 바는 다르지 않았다.
그 둘은 입을 벌렸고, 세상에서 가장 고요한 함성을 내질렀다.
떨그럭떨그럭!
그 함성과 함께 일선에 있는 해골 기사들을 시작으로, 이선과 삼선이 순차적으로 움직였다.
으어어! 으어어!
좀비들은 그 해골 군단의 등장에 물러나지 않았다. 좀비가 되어버리는 순간 이성은 사라지고, 공포도 사라진다. 그들이 물러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떨그럭떨그럭!
해골 역시 공포를 모르는 존재들, 공포에 대한 무지한 두 무리는 가진 바의 공격성만을 마음껏 드러냈다.
패퇴를 모르고, 허락되지도 않는 그 두 무리가 충돌했다.
처음은 선 대 선의 접촉이었다. 일선과 일선이 부딪쳤다. 방어는 없었다. 부딪치는 두 선은 서로를 향해 무조건적인 공격을 시도했다.
블랙 코볼트 좀비가 휘두른 무기와 해골 전사들이 휘두른 모닝 스타가 어우러졌다.
똑같은 목적, 그러나 결과는 극명했다.
후웅!
블랙 코볼트 좀비들은 저마다가 무기를 크게 휘둘렀지만, 그들의 무기는 허공만 갈랐다. 두꺼운 플레이트 아머를 입은 해골 전사들은 그 공격을 가뿐히 피해냈다.
뻐억!
공격을 피해내며, 일선에 선 해골 전사들은 모닝스타로 코볼트 좀비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열 마리의 해골 전사들이 전부 공격을 피해내며 일격을 날리고, 그와 동시에 좀비 무리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들은 그야말로 돌격대였다. 가까이에 있는 좀비들의 머리통을 모닝 스타로 가차 없이 파괴했다.
그 뒤를 이선의 해골 전사들이 이어갔다. 용비늘 갑옷을 입은 해골 전사들이 시미터를 휘두르며 머리를 잃은 채 난동을 부리는 코볼트 좀비들의 몸뚱이를 난도질했다. 난동을 부리는 코볼트 좀비들의 공격은 허공만 가르거나 때때로 방패만 두드릴 뿐이었다. 머리
를 잃은 코볼트 좀비들은 날렵한 호선을 그리는 시미터 앞에서 팔다리도 잃었다.
그렇게 난도질당한 코볼트 좀비들의 마지막은 삼선에 있는 해골 전사들의 몫이었다. 양손에 쥔 무기로 한 손보다 더더욱 빨리, 그들은 코볼트 좀비들이 감히 재생을 꿈꾸지 못할 정도로 그들을 잘게 다졌다. 머리에 팔다리를 잃은 코볼트 좀비들에게 양손에 무기
를 쥔 해골 전사들을 제대로 맞상대할 방법은 없었다.
일방적인 전투!
그 전투 속에서 블랙 코볼트 좀비들이 내세운 건 돌연변이였다.
끄어어!
일반 블랙 코볼트보다 덩치가 두 배는 더 큰 거대 코볼트 좀비들이 앞으로 나왔다. 3미터를 훌쩍 넘어, 4미터에 다다르는 거대 코볼트 좀비들의 손에 쥔 칼은 장난감처럼 보일 정도였다. 또한 녀석이 내지르는 음성은 썩어 빠진 성대에서 내뱉는 소리임에도 강한
무게감과 강렬한 존재감 그리고 섬뜩한 공포감을 지니고 있었다.
해골 전사들로 맞상대할 수 있는 존재감은 결코 아니었다.
철컹, 철컹!
당연히 그들 앞에 2미터의 체격, 갑옷 덕분에 그보다 더 큰 덩치를 자랑하는 해골 기사들이 해골 전사들과 다르게 묵직한 소리를 내며 등장했다.
해골 기사들의 차이점은 그저 소리와 덩치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전투 자체도 앞선 해골 전사들과 달랐다. 해골 기사들은 자신보다 거대한 적 앞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후웅!
공격을 피할지언정.
카앙!
막을지언정, 뒷걸음을 치는 일은 결단코 없었다.
쉬익!
휘두르는 검의 궤적 역시 곧기 그지없었다. 날렵하게 겉만 베어내는 것이 아니라, 피륙을 넘어 뼈를 부수려는 일도양단의 기세가 담겨 있었다.
콰직!
검을 휘두르는 숫자는 적었지만,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만드는 결과는 무시무시했다. 거대한 돌연변이 코볼트 좀비의 몸뚱이가 해골 기사의 검 앞에서 썩은 무처럼 잘려나갔다.
끄어어어!
돌연변이 코볼트 좀비들은 오히려 일반 코볼트 좀비들만큼도 버티지 못했다.
기대한 카드가 제구실을 못한다는 것, 전투로 따지면 이미 패배한 전투다.
하지만 블랙 코볼트 좀비들에게 패퇴는 없었다. 오히려 녀석들은 적을 향해 돌진했다. 최전선에서 싸우는 코볼트 좀비들이 가차 없이 당하는 와중에도, 후방에 있는 코볼트 좀비들은 앞에 있는 적을 향해 나아갔다.
블랙 코볼트 좀비들이 자연스럽게 뭉치고, 뒤엉키기 시작했다.
뒤엉킨 그들 뒤에서 등장한 건, 활활! 무자비하게 타오르는 거대한 불꽃을 빚어 만든 거인이었다.
파이어 골렘!
불타오르는 거인에게는 공격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파이어 골렘은 그대로 뒤엉킨 코볼트 좀비 무리들 위로 자신의 몸을 던졌다. 활활! 파이어 골렘의 몸이 코볼트 좀비들을 불태웠다.
화르르!
불타오르는 상황 속에서도 코볼트 좀비들은 파이어 골렘을 향해 칼부림에 펼쳤다. 고통을 모르는 의지의 결과물이었다. 몸뚱이가 타올랐지만, 그것이 좀비들의 칼부림을 멈추진 못했다. 위력도 여전했다.
쉬익, 쉬익!
그 칼부림이 파이어 골렘의 몸뚱이를 하나둘 잘라냈다. 잘린 파이어 골렘의 몸뚱이는 바닥에 너부러졌다.
콰앙!
너부러진 파이어 골렘의 신체들이 폭발을 일으키며 더더욱 크나큰 불길을 만들어냈다.
블랙 코볼트 좀비들이 불바다에 갇힌 채 해골 전사들에게 도륙 당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전투를 펼치던 세상이 어둡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세상은 시커멓게 변했고, 그 검은 세상 위로 하얀 글자들이 번지기 시작했다.
[To be continued]
영상은 그렇게 종료됐다.
‘멋지군.’
태블릿 PC의 화면을 전부 차지하고 있던 영상은 자그맣게 변했다. 그제야 여러 가지 것들…… 영상에 대한 정보들 그리고 영상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이 보였다.
- 해골 기사 두 마리? 어떻게?
- 해골 기사 한 마리만 소환 가능한 거 아니었어?
- 버그임?
그 평가들을 보던 안재현은 씨익 웃었다.
‘버그가 아니고 스킬이다, 스킬.’
안재현이 새로운 영상을 무료로 공개했다.
영상 제목은 더블 나이츠, 워로드 최초로 해골 기사 두 마리가 활약하는 영상이었다.
하회탈이란 명성 그리고 최초라는 자극적인 떡밥의 결과물은 조회수로 환산됐다.
공개 하루 만에 8백만 조회수 달성!
하지만 이 조회수보다 안재현을 기쁘게 만드는 건, 이 영상을 찍을 수 있게 해준 [기사도] 스킬이었다.
‘역시 게임은 막판에 질러야 제맛이지.’
해골 기사는 소환되는 순간 두 가지 특수 스킬을 발동한다.
소환된 해골 부하 숫자만큼 해골 기사의 능력치가 오르는 기사도 그리고 해골 기사 소환 시 소환된 해골 전사의 능력치를 올려주는 지휘자, 이렇게 두 가지다.
이 두 가지 스킬은 고정값이다. 해골 기사의 스킬 숙련도가 상승해도, 이 두 스킬의 옵션은 상승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 고정값을 변화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스킬을 따로 습득해야 한다.
안재현이 습득한 [기사도] 스킬은 쉽게 말해서 업그레이드된 소프트웨어인 셈이다.
새로 입수한 [기사도] 스킬의 효과는 다음과 같았다.
[기사도]
- 숙련도 : F랭크
- 해골 기사를 1마리 더 소환할 수 있습니다.
- 해골 부하를 추가로 (3)마리 더 소환할 수 있습니다.
- 소환된 해골 전사 1마리마다 해골 기사의 능력치가 (6)퍼센트 상승합니다. 최대 (30)퍼센트까지 상승합니다.
소환 가능 해골 기사의 숫자를 늘려주고, 기사도 특수 스킬의 효과를 올려주며, 추가로 해골 부하 추가 소환도 가능케 해준다.
‘[지휘자]도 얻어야 하지만, 지금 당장은 [지휘자]보단 [기사도]가 낫지.’
[지휘자] 스킬 역시 [기사도] 스킬과 비슷하다. 소환 가능한 해골 기사의 숫자는 물론 소환 가능한 해골 부하의 숫자도 늘려준다.
‘여기에 [기사단] 스킬까지 합치고…….’
더 나아가 데스나이트 스킬을 입수하고, 데스나이트를 업그레이드 해주는 스킬인 [기사단] 스킬에도 소환 가능한 해골 기사의 숫자를 늘려주는 효과가 있다.
‘리치리치는 해골 기사를 네 마리까지 소환했었는데.’
리치리치는 이 과정을 통해서 해골 기사를 네 마리까지 소환했다. 노네임 스킬북을 대량 구매해서 [기사도]와 [지휘자] 스킬을 확보했고, 데스나이트 스킬도 습득하면서 총 네 마리의 해골 기사를 소환했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고대의 힘을 이용해 스킬을 강화하면…… 해골 기사를 몇 마리까지 소환할 수 있으려나?’
폐허 왕국의 등장과 함께 개방되는 새로운 콘텐츠, 고대의 힘을 이용한 스킬 강화를 통해 A랭크의 스킬을 강화할 수 있다.
리치리치는 여기까지 도달하진 못했다. 진정한 미지의 세계인 셈이다.
“후우.”
이 대목에서 안재현은 긴 한숨을 내뱉었다.
하회탈은 여전히 더 강해질 수 있다. 그건 정말 기분 좋은 일이고, 설레는 일이며, 기대되는 일이다.
‘우르갈 대산맥…… 어떻게든 넘긴 넘어야 하는데 엄두가 안 나네.’
하지만 그것을 위해선 우르갈 대산맥을 넘고, 폐허 왕국을 등장시켜야 한다.
폐허 왕국이 등장해야 세 번째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가 시작되고, 2차 승급 콘텐츠가 활성화된다. 스킬 강화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 전까지는 200레벨이 아니라 300레벨이 되더라도 2차 승급은 못하고, 스킬 강화도 불가능하다. 당연히 데스나이트 스킬도 입수할
수 없다.
하지만 안재현은 지금 당장 우르갈 대산맥을 넘을 자신이 없었다.
‘결국 200레벨부터 찍어도 확신은 없다.’
심지어 200레벨을 달성하고, 타락 심판자의 반지와 폐위된 왕자의 검을 착용해도 우르갈 대산맥을 혼자 넘을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이들과 손을 잡는 것 역시 탐탁진 않다. 안재현은 이미 우호적인 레드불스 길드에게 주먹 한 방을 먹였다. 히드라 길드 역시 하회탈을 이제 좋게 보지 않는다. 굳이 꼽자면 우레사냥꾼 길드가 하회탈에게 호의를 가지겠지만, 우레사냥꾼은 선택지에
없다.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 순간.
‘잠깐만.’
안재현의 표정이 다시 한 번 더 바뀌었다. 한숨을 내뱉던 그의 표정이 잊었던 비상금을 떠올린 표정으로 바뀌었다.
‘얼어붙은 왕국!’
테르베 성벽 너머에 있는 이벤트 무대, 얼어붙은 왕국. 200레벨 유저들을 위해 마련된 이벤트 무대다.
‘내가 왜 얼어붙은 왕국을 잊고 있었지?’
정확히는 얼어붙은 왕국을 비롯해 몇 가지 이벤트 무대를 통해 유저들은 폐허 왕국의 존재를 파악하고, 거기서 얻은 단서를 통해 우르갈 대산맥 너머에 폐허 왕국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이미 정보를 가지고 있는 안재현 입장에서는 건너뛰어도 무방한 과정이다. 그래서 얼어붙은 왕국을 잊고 있었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 그리고 과거로 돌아오기 전 그곳이 누구를 위한 무대였었는지…… 잠시 잊고 있었다.
‘내가 아주 중요한 걸 잊고 있었네. 아무렴, 얼어붙은 왕국을 빼놓아서는 안 되지. 아무렴. 이건 무조건 내가 먹어야지. 무조건!’
그리고 이제 다시 떠올렸다.
안재현은 곧바로 태블릿PC로 시선을 돌렸다. 혹시 모르니 일단 얼어붙은 왕국에 대한 검색을 해볼 생각. 안재현이 태블릿PC를 밀자, 이전 페이지로 넘어갔다. 동영상 목록이 등장했다.
그 순간 안재현의 표정이 뚱하게 변했다. 워로드 영상 일간 조회수 순위에서 자신의 영상이 두 번째에 있다는 것, 그 사실이 원인이었다.
‘비앤비 길드…… 장난 아니군.’
비앤비 길드의 블러드 오우거 레이드 영상은 안재현의 영상과 비슷한 시기에 올라와 안재현의 영상보다 두 배나 더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영상은 그런 관심과 찬사를 받을 가치가 있었다.
‘확실히 새로 추가된 애들이 보통 애들이 아니란 말이야.’
팀 포커의 전력은 안재현이 봐도 대단했다. 특히 새로 추가된 멤버들의 실력은 우레여왕이나 마타도르에 근접했다. 워로드 최고 수준의 스트라이커들이란 의미다.
물론 단순히 그 사실만이 안재현의 심기를 건드리는 건 아니었다. 안재현의 심기를 건드린 건, 그 뉴페이스 중에 자신이 알 수도 있는 얼굴이 없다는 점.
‘그런데 왜 여기에 그때 날 죽이려고 덤빈 새끼는 없지? 비앤비 길드원이 아닌 건가? 하지만 그때는 비앤비 길드 마크를 달고 있었는데?’
그 사실이 안재현의 신경을 계속 건드리고 있었다.
9.
비앤비 길드의 변화는 파격적이었고, 그 결과물 역시 매우 파격적이었다. 그동안 30대 길드 중 중위권 정도로 평가받던 비앤비 길드의 이름값은 블러드 오우거 레이드 영상 한 편만으로 단숨에 빅쓰리에 근접한 길드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그 사실은 다른 30대 길드에도 영향을 미쳤다. 30대 길드들이 이제는 변화를 선택하는 수준을 넘어, 변화를 강요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과감하게 변화를 시도하는 길드는 적었다. 비앤비 길드 식의 변화는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하지만 그 고통이란 게 속을 들여다보면 결국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과 덜 고통스러운 사람이 나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누구도 가장 큰 고통을 감내하고 싶어 하진 않는다.
빅스마일 길드가 거듭된 간부회의 과정에서 제대로 된 길드 개혁안을 내놓지 못하는 이유 역시 이런 부분 때문이었다.
“젠장!”
‘나를 아주 호구로 보는군!’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가장 큰 압박감을 받는 건, 새롭게 간부가 된 아폴로였다. 든든한 배경을 빼면 보잘것없는 아폴로는 은연중에 희생을 강요받고 있었다.
‘감히 날 이런 식으로 취급하다니. 언젠가 내가 빅스마일 길드를 접수하면…….’
아폴로 입장에서 이런 작금의 상황은 그의 기분을 착잡할 수밖에 없을 터. 적어도 이런 대우를 받으려고 비싼 돈을 지불하고 빅스마일의 간부가 된 건 아니었으니까.
그 순간 아폴로에게 누군가 전화를 걸었다. 발신자를 확인한 아폴로는 곧장 전화를 받았다.
“형님.”
자기 귀한 줄만 아는 아폴로의 입에서 형님이라니? 의외의 인사말이 아폴로의 입에서 나왔다.
- 아폴로.
“예, 말씀하십시오.”
아폴로에게 형님 소리를 듣는 이의 정체는 다름 아닌 부르크였다. 빅스마일 길드의 간부이며, 아폴로가 빅스마일 길드의 간부가 되는데 가장 큰 도움을 줬고, 그 이후에도 빅스마일 길드 내에서 아폴로에게 가장 많은 도움을 준 자였다.
- 조금 전 간부회의 기분 더러웠지?
“아닙니다.”
더불어 아폴로의 기분을 유일하게 이해해주는 빅스마일 간부이기도 했다.
이 정도면 아폴로가 부르크를 형님으로 부를 이유는 충분했다.
- 너도 봐서 알겠지만 길드 내부가 크게 곪았다. 다들 총대를 멜 생각을 안 하고 있어.
물론 부르크가 순수한 호의로 아폴로를 도와줄 리는 없었다.
“예.”
- 그래서 말인데, 이번 기회에 내가 길드 마스터가 될 생각이다.
“예?”
부르크, 그가 야심을 드러냈다.
- 빅쓰리 애들 특징은 결국 길드 마스터가 강력한 권력을 쥐고 있다는 거다. 그런데 우리 길드 꼴을 봐. 간부랍시고 열 명 넘는 애들이 있고, 그 열 명이 돌아가듯 길드 마스터를 하는 바람에 길드 마스터란 자리는 유명무실하지. 이게 우리 길드의 문제야.
아폴로를 빅스마일 길드 간부로 데려온 이유, 강력한 권력을 쥔 길드 마스터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한 지지기반을 얻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아폴로도 나름 알고 있었다. 아폴로는 바보가 아니니까. 부르크가 자신에게 순수한 호의를 베푸는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다.
오히려 아폴로는 이 제안에 기분 좋은 듯한 미소를 지었다.
“형님, 제가 할 일이 뭡니까?”
- 길드전이다. 히드라 길드에 싸움을 걸 거야.
“예?”
하지만 그 기분 좋던 미소는 어느 순간 사라졌다.
“히드라 길드요?”
- 자세한 이야기는 네 결정을 들은 후에 말해주지. 하지만 일단 이것만큼 확실하게 말해주마. 나를 도와주면 내가 길드 마스터가 됐을 때, 부길드 마스터 자리 중 한 자리를 너한테 줄 수 있다.
히드라 길드와의 길드전이라니? 아폴로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하지만 반대로 부길마 자리를 준다는 건 매력적이었다. 그게 아폴로의 눈을 멀게 했다.
‘부르크 형님이 바보도 아니고, 밑도 끝도 없이 길드전을 준비했을 리는 없겠지.’
“형님을 따르겠습니다.”
- 좋아. 그전에 너한테 소개해줄 사람이 있어. 아마 너도 한 번 만나봐서 알고 있을 거야.
< 47화. 지르면 복이 와요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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