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배덕의 왕자 (4). >
13.
유물 수호자가 한 마리씩 잡힐 때마다, 유물 수호자가 품고 있던 유물이 하나씩 파괴될 때마다, 배덕의 왕자는 자신이 가진 힘을 하나씩 잃어버렸다. 결국 배덕의 왕자는 마법을 초월하는 강력한 마법을 잃었고, 세상 그 무엇도 가를 수 있던 적월검기를 잃었으며,
종국에는 눈을 가득 채우고 있던 어둠마저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배덕의 왕자, 그가 기나긴 악몽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는 증거임과 동시에 이제 곧 자신이 만들어낸 악몽과 조우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제 얼마 안 남았어! 버텨!”
“게임오버를 두려워하지 마! 할 때는 해! 끝이 보인다고 목숨을 아끼지 마!”
물론 배덕의 왕자와 맞서 싸우고 있는 무리들에게는 전투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악몽이었다.
히르칸은 그러한 광경을, 여러 이들의 악몽이 어우러지는 듯한 광경을 바라보지 않았다.
전장으로부터 제법 떨어진 곳, 전장의 여파로 부러지고, 잘린 나무기둥들이 즐비한 곳에서 그나마 멀쩡한 나무의 기둥을 등받이 삼아, 땅바닥에 주저앉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감은 두 눈,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히르칸은 시체처럼 보였다.
그로부터 멀지 않은 곳, 십여 걸음 남짓 떨어진 곳에 히르칸과 같은 꼴을 하고 있는 이가 있었다.
우레여왕 시르, 그녀 역시 시체처럼 보였다.
물론 진짜 시체는 아니었다. 단지 한계에 다다른 그들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가수면 상태, 일단 억지로 정신만 붙잡고 있는 상황이다. 정말 수면 상태에 빠지면, 자동 로그아웃이 되니까.
당연히 한계에 다다른 그들의 머릿속에 더 이상 싸울 의지 같은 건 존재치 않았다. 더 나아가 새로운 생각, 생산적인 사고를 하는 것 역시 그 둘에게는 버거웠다.
그렇다고 머리를 비워두면 잠들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그 둘이 할 수 있는 건, 생각 중에 가장 단순하고, 가장 적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 얼마 지나지 않은, 조금 전의 기억을 반복 재생하듯, 거듭 머릿속으로 회상하는 것뿐이었다.
그 둘은 잠들지 않기 위해 자신들의 전투를, 이제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앙상블을 떠올렸다.
그런 그 둘의 앙상블을 떠올리는 건, 그들만이 아니었다. 또 다른 둘 역시 같은 장면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런 괴물을 상대로 둘 모두 5분을 넘게 버텼다고? 그것도 혼자서?’
소행크, 유물 수호자를 처치하고 곧바로 배덕의 왕자와의 전투에 참가하고, 현재 전투 중인 그는 전투 돌입 3분째에 히르칸과 시르의 전투를 떠올렸다. 지금 치르는 전투에는 쓸모없는 허튼 생각이었고, 그건 곧 집중하지 못한다는 의미였으며, 더 나아가 배덕의
왕자를 상대로 보여주는 소행크의 활약이 이제 끝날 때가 됐다는 징조였다.
‘이제는 누가 괴물인지 모르겠군.’
이미 배덕의 왕자를 상대로 3분 44초라는 시간을 벌어낸 체브 역시 전투 후 휴식을 취하면서, 히르칸과 시르의 전투를 떠올렸다. 떠올리면서 혀를 내둘렀다.
이윽고 그 둘이 동시에 비슷한 감정을 품었다.
‘빌어먹을, 아주 빌어먹을 상황이야.’
‘이토록 비참한 꼴이 될 줄이야.’
떠올리고, 후회하고, 낙심했다.
마땅히 자신들이 영웅이 되리라 생각, 아니 확신했던 무대 위에서 오히려 자격지심을 느끼게 된 상황,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비참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배덕의 왕자에게 마지막을 고한 건, 그 둘이 아니었다.
“딘 왕자!”
마웅, 그가 배덕의 왕자의 반란에 마침표를 찍기 위해 등장했다.
14.
불카스 레인저의 대장, 마웅.
비밀 결사대를 조직하여 타락한 힘을 악용한 타락한 무리들과 맞서 싸우며, 기어코 딘 왕자의 가면 너머의 민낯을 알아내고 그와 맞서 싸우기 위해 무수히 많은 노력과 자신의 목숨까지 바쳤던 그가 배덕의 왕자의 앞에 갑작스레 등장했을 때, 놀랄지언정 그의 등
장에 의구심을 가지는 자는 없었다.
“이대로 상황을 지켜본다.”
“라이브 방송 그대로 내. 잡음 넣지 말고, 둘의 대화만 방송에 나오도록 해. 중계도 오프하고.”
소행크와 체브 역시 마웅의 등장을 방관했다.
그 둘이 클라이맥스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건 속이 쓰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백만 명의 이목이 모인 무대에서 괜한 잡음을 넣어 존재감을 드러내는 건 속이 쓰린 수준에서 끝날 일이 아니었으니까.
“마웅, 기어코 네가 내 발목을 잡는구나.”
“마땅히 잡았어야 할 발목이었소!”
모두의 방관 속에 마웅과 딘, 그 둘이 서로를 향해 감정을 토해냈다.
“처음부터 그랬지. 네놈은 나에 대해 일말의 믿음을 품지 않은 채 내 모든 걸 의심했지.”
“그 역시 마땅히 했었어야 하는 의심이었소.”
NPC들이다.
그들이 살아온 인생이란 것은 결국 설정에 불과하다. 그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그 둘의 이야기 앞에서 감정이 흔들렸다.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순간 그 둘이 NPC라는 사실을 머릿속에 둔 채 그들의 대화를 가소롭게 보는 이는 없었다.
- 그래, 마웅이 딘 왕자가 어렸을 때부터 그를 의심했구나.
- 딘 왕자가 어릴 적에 개차반이었던 모양이네.
감정을 이입하는 자도 있었다.
“종국에 네놈은 아버님께 내게 왕의 재목이 없다는 실언마저 내뱉었지.”
“그 말을 내뱉은 대가로 불카스 산맥에서 평생을 보내게 됐소이다. 불카스산맥에서 보낸 적지 않은 세월 동안 후회도 했소. 허나, 이제는 후회하지 않소. 내가 맞았소. 딘 왕자, 당신에게 왕의 재목은 없소. 그대는 히반 왕국의 왕위를 이을 수 없소.”
쿵!
대화 도중 딘 왕자가 자신의 발로 대지를 두드렸다. 마치 거대한 골렘이 발을 내디딘 것처럼, 지축이 적잖게 흔들렸다. 대지가 짧게 울음을 토해냈다. 대화를 주목하던 모든 이들이 깜짝 놀랐다.
“왕위는 잇지 않는다! 내 힘으로 왕좌에 오를 것이다!”
그 후 이어진 딘 왕자의 외침은 깜짝 놀란 이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딘 왕자의 목소리와 외침은 그만큼 섬뜩했다.
그 목소리 앞에서 마웅은 물러서지 않았다.
“딘 왕자, 지금도 꿈을 꾸고 계신 것이오? 이제 당신이 꾸는 꿈은 악몽일 뿐이오. 깨어나시오. 꿈에서 깨어나, 대마법사 보칸, 그분께서 지어준 딘이란 이름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달으시오!”
딘.
세상에 찾아온 악몽을 순교자와 함께 몰아내라는 사명감을 뜻하는 이름.
그 이름을 가진 딘 왕자에게 마웅의 그 말은 이제까지 그를 향한 그 어떤 무기보다 치명적이었다.
“나를 능멸하지 마라!”
딘 왕자의 눈빛이 소름 끼칠 정도로 활활, 불처럼 타오르기 시작했고 종국에 딘 왕자의 온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화르르르!
딘 왕자의 피부가 녹아내렸다. 그러자 피부 아래 흐르고 있던 거대한 힘이, 딘 왕자를 초월자로 만들어준 그 힘이 불길처럼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힘의 폭주였다. 딘 왕자가 갑옷 사이로 검은 불길을 쉴 새 없이 토해내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의 갑옷이 불길에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라스트 씬이 시작됐다.
붕괴하는 딘 왕자, 이제는 시간이 그의 가장 큰 적이 됐다. 그런 상황 속에서 딘 왕자가 검으로 마웅을 겨누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마웅을 위해 쓸 생각이었다.
마웅은 그런 딘 왕자의 행동을 피하지 않았다. 마웅 역시 검을 들었고, 검으로 딘 왕자를 겨누었다. 그 둘이 상대를 노리는 자세는 거울을 보듯 똑같았다.
그렇게 검을 들고, 서로를 겨눈 그 둘에게 더 이상의 말은 의미가 없을 터.
둘의 격전이 시작됐고, 그 격전은 콰앙, 카앙, 캉! 세 번의 쇳소리만 낸 채 끝이 났다.
뚝뚝!
검을 쥐고 있던 딘 왕자의 팔이 전부 녹아내린 채, 바닥에 떨어졌다. 이윽고 딘 왕자의 무릎이 녹아내린 듯 딘 왕자가 무릎을 꿇었다. 그의 갑옷 틈 사이로 검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딘 왕자는 그렇게 사라져 가고 있었다.
마웅은 그런 딘 왕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당신께 검을 가르친 것은 이런 것을 위해서가 아니었소. 대체 어찌하여 배덕을 택한 것이오?”
“나는 그 누구에도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 내게 후회를 바라지 마라.”
말을 뱉는 딘 왕자의 음색은 이제까지와는 전혀 달랐다. 목소리가 빠르게 가늘어지고 있었다.
아마 이제 딘 왕자가 뱉을 수 있는 말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로, 몇 마디에 불과할 터. 그마저도 이제 음색이 가늘어져, 귀를 기울여도 지척에 있는 자가 아니면 들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더불어 마웅이 딘 왕자에게 할 수 있는 말 역시 많지 않을 터.
“사람은 죽을 때 이름만을 남기는 법이오. 딘, 당신의 이름에 걸맞은 것을 남기시오.”
그 말에 대답은 없었다. 적막감이 흘렀다. 길게 흘렀다. 너무 긴 듯, 누군가는 생각했다. 배덕의 왕자가 아무 말 없이 죽음을 맞이하겠구나. 그것처럼 딘 왕자는 더 이상 어떤 말도 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품은 이들이 긴장을 푸는 순간.
“모든 것의 시작은 폐허가 된 왕국으로부터 시작됐다. 모든 것의 끝 역시 그곳에 있을 것이다.”
딘 왕자가 마지막 말을 남긴 채 무너졌다.
[배덕의 왕자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타락한 군단이 소멸합니다.]
또 하나의 시대가 저물었다. 하지만 좌중에 있는 이들은 아직 긴장을 풀지 않았다.
배덕의 왕자는 죽었다. 하지만 오늘 전투에 대한 마침표는 아직 찍히지 않았다.
그 마침표는 마웅이 찍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워로드의 주인공은 NPC가 아닌 유저이니까. 마웅, 그는 이 무대에 마침표를 찍어줄 인물을 찾아갔다.
마웅이 나무기둥에 힘없이 등을 대고 있는 유저, 히르칸 앞에 섰다.
히르칸, 그가 기어코 해냈다.
배덕의 왕자, 그의 배덕을 막아내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웠고, 하나의 시대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을 그 누구도 아닌 워로드란 세계가 인정했다.
“수고했네. 처음 봤을 때는 그토록 가당찮았던 자네가 결국 세상의 몰락을 조금 더 늦췄네.”
이제 남은 건 대답 하나.
마침표가 될 그 대답을 뱉어낼 히르칸의 입에 모두가 주목했다. 히르칸은 과연 여기서 무슨 말을 할까? 낭만 넘치는 대사로 분위기를 살릴 것인가, 아니면 담담한 말로 여운을 만들 것인가, 그도 아니면 장난기 섞인 대답으로 모두가 마지막에 옅은 미소를 짓게 만
들 것인가?
그 주목 속에 히르칸이 입을 열었다.
“응? 끝났어? 다 잡았어? 응? 마웅? 뭐야?”
역사에 여러모로 길이 남을 마침표였다.
15.
밝은 사무실이었다. 대체적으로 사무실이라는 공간이 전기 절약을 위해 설치해둔 등도 절반은 꺼두는 게 보통인데, 이 사무실은 그러지 않았다.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백퍼센트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듯, 사무실 안의 모든 전등이 빛을 품고 있었다.
그 사무실의 주인은 열심히 통화 중이었다.
“피치 스토어에 워로드 전용 V기어를 입점해달라고 내가 직접 요청한 게 2주 전이었는데 왜 아무런 소식도 없는 거야? 뭐? 피치 쪽에서 거절을 했다고? 그 거절을 한 인간 이름, 직위 알아내서 나한테 보고해. 내가 직접 그 인간하고 담판을 지을 테니까.”
사무실의 주인은 젊었다. 나이를 많이 잡아도, 서른 중반 이상은 결코 잡을 수 없는 나이, 금발 머리칼을 짧게, 바짝 자른 헤어스타일 그리고 마치 오랜 세월 격투기를 한 격투기선수처럼 눈 윗부분이 툭 튀어나온 게 인상적인 사내였다. 물론 좋게 말하면 인상적이
었고, 보이는 그대로를 말하면 험악했다.
이 험악한 사내의 이름은 토비 그윈.
워로드를 제작한 토봇 소프트의 창립자이자, 워로드의 대성공과 함께 토봇 소프트을 상장해 일약 세계적인 대부호에 이름을 올린 사내였다.
“다시 말하지만 여기서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더 공격적으로 나가! 다른 게임업체들은 물론 모든 콘텐츠 업체들이 숨조차 쉬지 못하게 만들라고! 피치 스토어를 워로드를 즐기기 위해 가는 곳으로 만들어버려!”
그런 토비 그윈의 별명은 헝그리맨. 언제나 배가 고파야 한다는 지론을 가진 이유였다.
당연히 그는 매우 바빴다. 일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하는 게 그의 성격이었고, 때문에 그의 하루 일정은 모든 것이 사무실에서 처리됐다. 그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이동하는 시간조차 아까워했다.
그리고 사무실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기도 했다. 필요하면 V기어를 쓰고 가상현실에서 대화를 해도 좋고, 그마저도 귀찮으면 사무실 안에 증강현실을 구현해서 대화를 할 수도 있었으니까.
심지어 그는 식사시간마저 아까운 듯, 책장 한구석을 식사대용으로 먹는 간편식으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이 사무실을 보면, 간편식 생산업체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이런 토비 그윈의 얼굴을 보기란, 토봇 소프트의 임원은 물론 대주주들조차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직접 면담을 통해서만 이야기를 나누는 상대가 있다.
똑똑!
노크 소리에 토비는 통화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그대로 통화를 끊었다.
“들어와.”
대답과 함께 문이 열리고, 키가 크고 깡마른 흑발의 동양인이 등장했다.
“조금 전 배덕의 왕자 레이드가 끝났습니다.”
토봇 소프트 운영기획팀장 첸.
흔하지 않은 직책의 소유자였다. 일반적으로 규모가 되는 기업들은 기획팀을 두지만, 그 명칭은 대개 전략기획팀, 경영기획팀, 그냥 기획팀이란 명칭을 쓰고는 한다. 여기에 굳이 운영기획팀이란 걸 하나 더 운영하는 기업은 없진 않겠지만, 흔하진 않을 터.
흔하지 않은 직책, 유일하게 토비와 면담으로만 대화를 나누는 점, 여러모로 특이한 자였다.
“몇 분 걸렸어?”
“49분 35초 걸렸습니다.”
“기가 막히는군. 아무리 빨라도 70분 이상 걸린다고 보고를 받았던 거 같은데, 어디 보자…… 예상치보다 30퍼센트나 더 빨리 잡았군. 보통 30퍼센트 오차는 오차가 아니라 착오…… 아니, 착오도 아니지. 그런 건 헛소리라고 해야겠지.”
첸은 대답 대신 꽤 두꺼운 보고서를 토비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요즘 시대에 종이 보고서라니? 더욱이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 토봇 소프트 내에서는 더더욱 보기 힘든 놈이었다.
“이번 배덕의 왕자 레이드 관련 데이터를 정리했습니다.”
토비는 그 보고서를 보지 않았다.
“할 일을 못했다, 보고서 평가는 그 정도면 충분하겠군. 좀 더 간추리면 무능했다, 이 정도? 내 평가에 불만이 있나?”
첸은 대답 대신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키가 큰 그가 고개를 숙이는 건 꽤 호소력이 강했다. 좀 더 진심으로 사과를 하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첸이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얼굴 어디에도 미안한 감정, 송구한 심정을 느끼게 해주는 기색은 없었다.
오히려 그는 곧바로 새로운 보고서를 토비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토비가 곁눈질로 새로운 보고서를 봤다. 보고서는 앞선 것보다는 얇았다. 페이지 수로 따지면 15페이지 남짓. 토비가 첸을 향해 눈동자를 돌렸다.
“새로운 프로젝트 기획안입니다.”
“새로운 프로젝트?”
“예. 이제까지 썼던 방법이 통하지 않는 이상, 기존 방법은 과감히 폐기,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고 사료됩니다.”
토비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기획, 난 그 단어가 좋아. 배고픈 놈들이나 쓸 수 있는 단어잖아? 안 그래?”
토비가 곧바로 보고서 내용을 읽었다. 아니, 토비는 보고서를 읽기보다는 그냥 눈으로 보고 단숨에 머릿속에 저장했다. 15페이지를 전부 머릿속에 저장한 후에 그는 두 눈을 감고, 보고서를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보고서 내용을 다 읽은 토비가 입을 열었다.
“예상 기간보다 2개월을 더 잃었어.”
“정확히 61일, 알고 있습니다.”
“해.”
대답이 나오는 순간 첸이 자신이 토비에게 건넸던 모든 보고서를 다시 집어 들고 사무실을 나섰다.
그가 사라지는 순간 토비는 제 손으로 이마를 두드렸다. 이마를 두드리는 그의 표정은 사무실의 밝은 분위기에 썩 어울리지 못했다.
< 46화. 배덕의 왕자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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