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배덕의 왕자 (3). >
9.
- 하회탈 떴다!
첩첩산중에서 내지른 외침일 리 없고, 그저 온라인이란 세계에서 등장한, 기껏해야 타자를 두드리는 소리가 전부였을 그 한 마디는 마치 메아리처럼 퍼져 나가며 삽시간에 전장 모든 이들에게 닿았다.
당연히 그 전장에 난입한 뒤 유물 수호자와 전투를 막 시작한 히드라 길드에게도 닿았다.
그리고 그들은 의구심을…… 아니, 의심을 품었다.
“하회탈이 왜 이 시점에 등장하는 거지? 그리고 대체 왜 우레사냥꾼을 돕는 거야?”
레드불스 길드와 히드라 길드가 세운 계획에 하회탈의 난입이란 건 결코 없었다. 계획대로라면 우레사냥꾼 길드가 배덕의 왕자에 의해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다른 누군가가 시간벌이를 위해 배덕의 왕자를 맞상대하는 순간, 그 순간 하회탈은 난입이 아니라 등장
을 했었어야 했다.
그런데 그 계획이 어긋났다. 히드라 길드 입장에서는 하회탈이 아닌 레드불스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마타도르! 계획된 일입니까?”
레드불스 길드는 의문을 품었다. 이번 전투에 참여한 레드불스 길드원의 일원들 중에 지금과 같은 상황을 언질 받은 이 역시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답을 내놓을 수 있는 건 오직 한 명, 현재 얼음으로 된 갑옷을 입은 채 자신의 주변을 새하얗게 얼려버리는 혹한의 기사를 상대하고 있는 체브, 그밖에 없었다.
‘하회탈, 네 녀석은…….’
그 체브마저 당장 답을 내놓을 수 없는 처지였다.
“킴스!”
결국 체브가 답을 내놓기 위해, 생각할 시간을 위해 부하에게 자신의 임무를 떠넘겼다.
체브의 외침이 터지자마자 대기 중인 킴스는 혹한의 기사를 향해 몸을 날리며, 들고 있는 해머로 혹한의 기사를 후려쳤다.
콰직!
해머는 얼음 갑옷에 그대로 박혔고.
쩌저적!
박힌 채로 얼었다.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번지기 시작한 얼음은 해머를 쥐고 있는 킴스의 손아귀마저도 덮쳤다. 유물 수호자와 킴스, 둘 사이에 차가운 이음새가 등장했다.
“잡았습니다!”
그게 킴스에게는 상대를 잡는 방법이었다.
체브는 곧장 전장을 이탈했다. 그가 혹한의 기사와 거리를 벌리고, 그가 있던 공간을 다른 스트라이커가 채우는 순간, 곧바로 사제 한 명이 체브에게 다가왔다.
사제는 녹색빛을 내뿜는 두 손바닥으로 체브의 등을 만졌다. 녹색빛이 체브의 몸 구석구석에 닿으며, 그의 몸에 생겨난 상처들, 얼어붙어 죽어 버린 피부에 생기를 피어나게 했다.
힐링 스킬을 받는 동안, 그 짧은 시간 동안 체브는 고민을 시작했다.
‘하회탈의 의도는 뭐지?’
레드불스 그리고 히드라 길드를 위해 체브는 하회탈의 행동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그의 대답에 따라 두 길드의 행보가 결정될 테니까. 굉장히 중요한 대답이었고, 때문에 섣불리, 대충, 얼버무리는 듯한 답을 내놓아서는 안 된다.
‘하회탈의 심중을 파악할 순 없어.’
분명한 건,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다는 것. 사제의 힐링 스킬이 끝나고, 곧바로 버프 스킬을 시전하고, 그마저도 끝나는 순간이 체브의 고민이 끝나는 순간이다.
때문에 체브는 하회탈의 의중이 아닌, 지금 이 순간 자신 그리고 레드불스 길드와 히드라 길드가 해야 하는 것, 얻을 수 있는 최소한의 이익을 얻기 위해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것을 고민했다.
그 고민 속에 시간이 흘러갔다.
“버프 끝났습니다.”
사제가 입을 여는 순간, 체브도 입을 열었다.
“전투 집중. 하회탈과 우레사냥꾼이 배덕의 왕자를 막는 사이, 유물 수호자를 전부 처치한다.”
그 대답과 함께 체브가 마이크 설정을 바꾸었다. 그는 곧바로 방송 중계팀에게 명령을 내렸다.
“하회탈이 있는 곳으로 누구든 보내. 라이브 방송 시작하고, 자막으로 하회탈 등장 속보로 올려. 광고 삽입 잊지 말고.”
- 예!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체브는 곧바로 히드라 길드와 연결된 핫라인을 통해 말했다.
“이대로 유물 수호자 사냥에 집중한다.”
- ……알겠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나탈이 즉답 대신 짧은 여운을 가진 후에 대답을 내뱉었다.
그렇기에 대화가 끝나는 순간 체브는 이를 꽉 물었다.
‘하회탈에게 한 방 먹었군.’
10.
자신보다 레벨이 높고, 능력치도 높으며, 더 좋은 아이템을 가진 상대와 전투 경험을 쌓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일단 굳이 그런 경험을 쌓으려는 경우가 적다. 굳이 강한 상대와 싸울 이유는 없다. 싸우기보다는 지나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히르칸에게는 그것이 일상이던 때가 있었다. 자기보다 레벨이 50레벨 이상 높고, 유니크 아이템을 슬롯에 도배하다시피 한 놈…… 아니, 놈들과 치고받고 싸우는 게 일상이던 때가.
그때의 경험이 지금 이 순간, 배덕의 왕자를 상대로 값진 경험이 되어주었다.
쉬익!
배덕의 왕자가 휘두른 검을 피해내며 왕자에게 접근하는 히르칸은 뱀처럼 바닥을 기듯 움직였다. 레슬링의 태클이 떠오르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덥석!
히르칸은 그 낮은 움직임의 묘를 살려, 잽싸게 왕자의 다리를 잡았다. 그 상태로 왕자를 들어 올렸고, 후웅! 전력을 다해 던졌다. 허공에 뜬 왕자는 생각보다 멀리 날아가지 않았고, 잽싸게 자세를 잡고 바닥에 착지했다.
착지한 왕자의 모습 어디에도 틈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투구 사이로 보이는 검은 안광이 왠지 모르게 보다 서슬 퍼렇게 빛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 눈빛이 히르칸의 하회탈 너머의 눈빛과 교차하는 일은 없었다.
툭툭…….
어느새 히르칸이 던진 두 개의 뼈폭탄이 배덕의 왕자 발치까지 굴러갔고, 곧바로 터졌다.
콰광!
작은 뼈폭탄이 만들어냈다고 보기 힘든 강력한 폭발에 모래먼지가 피어올랐다.
어수선해진 시야.
딱!
그 순간 히르칸이 손가락을 튕겼고, 대기하고 있던 네 마리의 해골 전사가 왕자를 향해 돌진했다. 배덕의 왕자는 다가오는 해골 전사들을 빠르게 제거했다. 해골 전사들 중에 배덕의 왕자가 휘두르는 검을 세 번 이상 피하거나, 막아내는 경우는 없었다.
네 마리의 해골 전사들이 벌 수 있는 짧은 시간, 그 시간 동안 히르칸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불의 영혼.”
나지막한 중얼거림과 동시에 움켜쥔 주먹에서 불길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히르칸은 손아귀에 잡힌 불길을 곧바로 바닥에 흩뿌렸다. 흩뿌려진 불길이 거대하게 솟구치며 이내 거인의 형태를 갖추었다.
[파이어 골렘을 소환했습니다.]
180레벨 소환 스킬, 파이어 골렘의 첫 등장, 워로드 역사상 최초의 등장이었다.
크기는 히르칸이 이제껏 소환하던 거대한 흙골렘에 비할 바가 못 됐다. 신장은 3미터 남짓. 하지만 활활 타오르는 몸뚱이가 내뿜는 위용은 흙골렘과의 비교를 거부했다.
그 파이어 골렘이 배덕의 왕자를 향해 다가갔다. 파이어 골렘이 달리는 소리는 굉장히 적막했다. 흙골렘이 발을 내디딜 때마다 지축이 흔들리는 것과 너무나도 대조적이었다. 대신에 족적은 흙골렘보다 훨씬 더 뚜렷했다.
화르르!
파이어 골렘이 지나간 자리에 불길이 솟아올랐다.
그사이 해골 전사들을 전부 해치운 배덕의 왕자는 파이어 골렘을 보자마자 곧바로 검을 크게, 수평으로 휘둘렀다.
스윽!
가벼운 바람 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적월검기는 소리 없이 파이어 골렘을 단숨에 반으로 잘랐다. 잘린 파이어 골렘의 몸뚱이는 힘없이 앞으로, 배덕의 왕자를 덮치듯 고꾸라졌다.
파이어 골렘의 소멸 과정은 너무나도 조촐했다.
대신 죽음의 결과물만큼은 강렬했다.
퍼엉!
잘린 파이어 골렘의 몸뚱이는 바닥에 닿는 순간, 폭발했다. 폭발의 위력은 상당했다. 거대한 폭풍과 함께 불덩이들이 사방에 흩뿌려졌다. 삽시간에 주변이 불바다가 됐다.
그 불바다 속을 히르칸이 질주하고 있었다. 불길은 히르칸의 존재감을 교묘하게 감춰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 농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쿠쿠쿠!
배덕의 왕자가 손바닥을 펼치는 순간, 손바닥에서 등장한 회오리바람이 삽시간에 제 몸을 부풀리며 주변의 모든 불길을 빨아들였고, 곧바로 사라졌다.
불길이 사라지자 히르칸의 모습이 명명백백 드러났고, 히르칸은 기습 대신 첫인사와 같은 인사를 해야 했다.
카앙!
쇳소리가 가득한 거친 인사.
츠릉, 츠릉!
그 인사 소리에 응답하듯, 크라잉 소드가 울음을 토해냈다. 그 울음은 주인을 향한 걱정 어린 울음이었다. 왕자의 힘을 견뎌내지 못한 히르칸의 검을 쥔 팔이 튕겨 나가며 자세가 무너진 것에 대한 걱정 어린 울음.
배덕의 왕자는 히르칸의 자세가 무너진 틈을 놓치지 않았다. 검이 튕겨지며 훤히 드러난 히르칸의 가슴, 그 가슴을 향해 검을 내찔렀다. 그 무렵 히르칸은 버티려는 생각 없이, 그대로 뒤로 자빠지고 있었다.
쿵!
낙법 없이, 그냥 통나무가 쓰러지듯 바닥에 쓰러진 히르칸의 위로 왕자의 검이 지나갔고, 히르칸은 드러눕자마자 그 상태에서 다리를 들어 올렸다. 발바닥으로 배덕의 왕자의 고간 부분을 밀었다.
그런 히르칸의 시도에 왕자의 발바닥이 바닥에서 떴다. 히르칸이 그 상태로 로켓을 발사하듯 왕자의 몸뚱이를 멀리 밀어버렸다.
이거다.
자기보다 압도적인 스펙을 가진 유저를 상대할 때 부딪치는 공격을 하면 필패다.
밀어내거나, 당겨서 균형을 잃게 해야 한다.
일명 밀당, PK나 PVP에 이골이 난 자들, 그것도 자기보다 약한 놈을 잡는 고약한 취향을 가진 이들이 아니라, 자기보다 센 놈과 상대하는 것에 이골이 난 자들만이 얻을 수 있는 기술이다.
히르칸이 우레사냥꾼과의 기나긴 혈전, 워로드의 모든 것들과 전쟁을 치르면서 얻은 몇 안 되는 보상이었다.
그런 히르칸의 기술 앞에서 배덕의 왕자는 큰 데미지는 조금도 입지 않았지만, 쉽사리 히르칸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5분 지났어.”
기어코 히르칸은 시르가 배덕의 왕자를 상대로 세운 5분이란 기록을 가뿐하게 갱신했다.
그 광경을 배덕의 왕자를 붙잡기 위해 나선 우레사냥꾼의 길드원들이 넋을 잃은 채 바라봤다.
“대단해.”
개중에는 하회탈이라면 이를 가는 하희도 있었다. 그녀가 감탄을 할 정도이니, 그 누구도 히르칸의 전투를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시르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시르는 하희처럼 입을 크게 벌린 채 얼빠진 표정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다.
“재생까지 얼마나 남았지?”
“아? 네?”
시르의 잘린 팔을 붙여주기 위해 재생 스킬을 사용하면서, 하회탈의 전투를 곁눈질로 살피던 사제가 시르의 말에 황급히 대답을 했다.
“아! 30초 남았습니다.”
“버프 상태는?”
“여기서 풀버프 한 번 돌리려면…… 싸우실 겁니까?”
사제가 제 할 말을 마치기 전에 기겁하며 내뱉은 반문에 시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에 그 반문을 들어줄 공간은 없었으니까.
‘하회탈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줄 순 없어.’
하회탈과 같이 싸우는 날을 기대했다.
그런데 지금 이 기회를 앞두고 하회탈에게 나약한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다. 시르가 원하는 것은 하회탈과 함께 싸우는 거지, 그에게 도움을 받는 게 아니니까.
그녀가 이미 한계를 드러낸 집중력을 억지로 가다듬었다.
그러는 사이 속보가 들렸다.
- 부쉈습니다! 유물 수호자를 잡았습니다!
[유물이 파괴되었습니다. 배덕의 왕자의 마법 스킬 위력이 크게 감소합니다.]
해치가 임무를 완수했다는 내용의 속보였다.
11.
소행크를 중심으로 히드라 길드원들이 유물 수호자와 전투를 치르는 사이, 나탈만이 유일하게 전투로부터 관심을 끊은 채 다른 이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요?”
- 속행.
대화의 상대는 퍼스트 헤드였다.
“그럼 계획과 다른데요? 이대로 가다가는 우레사냥꾼을 미끼로 쓰는 건 실패로…….”
- 그렇다고 여기서 우리가 나서서 판을 망칠 순 없잖아? 지금 이 라이브를 보는 관객이 3개 라이브 채널 다 합쳐서 4백만 명이 넘어. 여기서 악당이 될 순 없다.
그 말의 끝에 퍼스트 헤드는 혼잣말 비슷한 말을 덧붙였다.
- 악당보단 들러리가 낫겠지.
누가 보더라도 후회 그리고 자조와 한숨이 섞인 말이었다. 나탈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이를 꽉 물었다.
‘변수는 고작 두 가지였어.’
우레사냥꾼을 미끼로 쓰고, 남은 이익을 레드불스 길드와 나눠 먹고자 했다. 아니, 정확히는 이 무대에서 레드불스와 히드라, 두 길드가 영웅이 되고 우레사냥꾼은 희생을 감수한 조연이 돼야 했었다. 계획대로 상황이 진행됐다면, 얼마든지 실현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변수, 단 두 가지의 변수가 마땅히 주연이 돼야 했을 두 길드를 조연으로 만들었다.
시르 그리고 하회탈, 그 둘이 두 길드의 시나리오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두 가지 변수는 지금 두 길드의 시나리오를 망친 수준을 넘어서, 놀라운 수준의 시너지 효과를, 섬뜩한 앙상블을 보여주고 있었다.
힐끔, 홀로그램 모니터를 통해 시르와 하회탈의 전투 상황을 지켜본 나탈의 꽉 문 이가 빠드득! 갈렸다.
‘하회탈과 우레사냥꾼, 이 두 조합은 무조건 막아야 해. 아니, 하회탈은 그 어떤 길드에도 줘서는 안 돼.’
12.
PVP를 할 때 자신보다 강한 유저를 상대하는 방법은 몇 가지 있다. 개중에서 가장 널리 쓰이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
대가리 수 앞에 장사 없다!
한 명을 상대할 때 두 명이 나서는 것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다. 하물며 그 둘이 워로드를 대표하는 최고의 스트라이커라면?
굳이 상상을 할 필요는 없다. 지금 그 결과가 눈앞에서 실시간 중계를 통해 방송되고 있었으니까.
카앙!
히르칸이 검을 가로로 세워 벼락처럼 떨어지는 왕자의 검을 막아냈다. 쇳소리와 함께 히르칸의 발이 못처럼 땅바닥에 푹! 박혔다.
끼익, 끼익!
배덕의 왕자는 그 상태로 검으로 히르칸을 눌렀다. 츠릉츠릉, 크라잉 소드가 울음을 토해냈고, 그 울음에 맞추어 히르칸의 몸이 점차 땅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 사이 시르가 배덕의 왕자 뒤편으로 접근해서 왕자의 다리를 껴안았다. 그 상태로 들어 올렸다. 이제는 배덕의 왕자도 이런 식의 공격에 익숙해진 듯, 다른 한 발에 힘을 주며 버텼지만, 그의 몸이 조금 기울어지는 것까지는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왕자가 균형을
잃는 순간 히르칸을 짓누르던 압박감이 사라졌다.
히르칸은 그 상황에서 괜히 몸을 빼기보다는 오히려 주저앉듯 몸을 낮췄다. 배덕의 왕자는 재차 균형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시르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배덕의 왕자의 다리를 들어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던졌다.
데굴데굴, 왕자는 바닥을 몇 바퀴 구른 후에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왕자에게 그 둘을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히르칸이 손가락을 튕기자, 대기하고 있던 세 마리의 해골 전사들이 왕자를 향해 돌격했다.
해골 전사가 벌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10초 남짓.
짧은 시간이지만 누군가에게 10초는 100미터를 완주할 수도 있는 기록이다. 두 스트라이커에게 그 10초는 머릿속에 난립했던 수를 정리하고 새로운 수를 세우고, 그 수를 실행하기 위해 몸을 던지는데 부족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이번에는 시르가 달렸다. 꼴이 엉망이 된 그녀, 이미 집중력도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지만 그녀는 여전히 망설임이 없었다. 죽음의 대가가 그 누구보다 클 수밖에 없는 지위와 레벨임에도 말이다. 그것이 시르가 가진 장점 중 하나였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것에 대
해 자부심을 가질지언정 아깝다는 생각을 가지진 않는다.
히르칸은 시르의 수를 읽었다. 그녀가 배덕의 왕자 뒤편으로 이동하고, 공격을 시도해서 왕자로부터 반격을 유도하고자 한다는 것을. 히르칸에게 기회를 주려고 한다는 것을.
아마 지금 이 세상에서 그리고 앞으로도, 시르의 전투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건 히르칸일 것이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아이러니의 결과물이다.
어쨌거나 히르칸은 시르의 수에 자신의 호흡을 맞췄다. 그녀와 전혀 반대의 동선을 그리며 움직였고, 그녀보다 속도를 늦췄다. 그녀가 먼저 닿을 수 있도록, 그녀가 의도한 바를 방해하지 않도록.
히르칸의 보일 리 없는 배려 속에, 시르는 가차 없이 부서지는 해골 전사들 사이로 검을 내찔렀다.
배덕의 왕자가 그 사실을 바로 눈치 채고 방어를 위해 몸을 돌렸다. 내찌르는 시르의 검과 휘두르는 왕자의 검이 부딪쳤다.
카앙!
그 순간 쇳소리를 틈타 히르칸이 배덕의 왕자 뒤편에서 등장했다. 그 존재감을 파악한 시르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완벽해.’
처음 맞추는 호흡,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회탈은 시르의 호흡을 완벽하게 맞춰주고 있었다.
‘어떻게든 손에 넣겠어.’
시르는 다시 한 번 하회탈에 대한 소유욕을 불태웠다.
그렇게 그 둘이 배덕의 왕자로부터 번 시간을 공유하는 사이.
- 레드불스, 유물 파괴 완료!
- 히드라, 유물 수호자 처치 완료!
그들이 번 시간을 남은 두 길드는 적절하게 이용했다.
[유물이 파괴되었습니다. 배덕의 왕자의 물리 스킬 위력이 크게 감소합니다.]
[유물이 파괴되었습니다. 배덕의 왕자의 타락한 힘이 크게 감소합니다.]
세 개의 유물이 파괴됐고, 배덕의 왕자를 채우고 있던 세 가지 힘이 빠르게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내 숙원을 방해한 대가, 목숨으로도 부족할 것이다.”
그제야 배덕의 왕자가 처음으로 말을 뱉었다.
두 번째 메인 시나리오, 배덕의 왕자 편이 최종장에 진입하는 순간이었다.
< 46화. 배덕의 왕자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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