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솔플의 제왕-132화 (132/192)

< 45화. 전야(前夜 ) (3). >

6.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업에 성공하는 순간, 히르칸은 허리춤에 매달린 작은 주머니 속에서 해골 조각 다섯 개를 꺼내 자신의 등 뒤편으로 휙! 던졌다. 도토리처럼 바닥을 구르던 해골 조각들은 곧바로 잿빛 로브를 뒤집어쓴 해골 마법사로 변신했다.

해골 마법사들은 모습을 갖추는 순간 양손을 모았다. 앙상한 그 손아귀 사이로 불덩이가 생성됐다. 해골 마법사들이 그 불덩이를 어루만지듯 손을 움직였고, 불덩이는 그에 보답하듯 제 몸을 부풀렸다. 아이 주먹 크기의 불덩이는 순식간에 성인 남자 머리 크기로

변했다. 그 순간 해골 마법사는 일말의 쉼 없이 곧바로 불덩이를 던졌다.

화르르!

다섯 개의 불덩이들이 포물선을 그렸다. 그 포물선의 끝에는 전장이 펼쳐져 있었다.

까앙, 카앙!

거친 쇳소리를 거듭하는 전장은 적아의 구분이 너무나도 쉬울 정도로 극명한 두 무리가 뒤섞여 있었다.

한쪽은 뿔을 매단 채 검은빛 나무 껍질로 만든 갑옷을 입은 해골 전사들이었고, 다른 한쪽은 검은 털을 가진 채 적당한 무장을 마친 도마뱀 인간, 블랙 그루밍 리자드 워리어였다.

해골 전사와 그루밍 리자드의 교전은 격전이었고 동시에 접전이었다. 그 둘은 저도 모르게 내뱉은 중얼거림만으로도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깝게 붙어 싸웠다.

그 접전의 무대 위에 떨어지는 다섯 개의 거대한 불덩이에 적아의 구분이 있을 리 없다.

퍼엉, 퍼엉!

쉴 새 없이 터지는 다섯 번의 폭음이 전장을 헤집었다. 그루밍 리자드의 새카만 털이 불꽃으로 타오르기 시작했고, 해골 전사들이 검은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블랙 그루밍 리자드 워리어가 검은 수액의 영향을 받습니다.]

블랙 트리 세트 효과가 발동했다.

그와 동시에 해골 전사들은 곧바로 제 모습을 갖추었다. 위풍당당하게 본래 모습을 갖춘 그들에게서 마법의 흔적 따윈 찾을 수 없었다.

반면 그루밍 리자드 워리어들의 몰골에는 마법의 흔적이 역력했다. 털은 불타오르고 있었고, 그들의 몸에 달라붙은 검은 수액은 그들의 HP를 빠른 속도로 갉아먹기 시작했다.

샤아! 샤아!

그루밍 리자드의 입에서 나오는 비릿한 음색은 위협을 위한 울음이 아닌 고통에 찬 음색이 분명했다. 그마저도 오래가지 않았다. 블랙 코볼트 왕의 검을 앞세운 해골 기사의 존재 앞에서 그루밍 리자드는 입을 꽉 다문 채, 털가죽에 달라붙은 불길을 끌 여유도 없

이 긴장해야 했다.

해골 기사는 음색을 토해내지 않았다. 그저 입을 크게 벌린 채, 검 끝으로 그루밍 워리어 무리를 한 번 겨누고, 곧바로 돌진을 했다. 해골 기사의 돌진이 해골 전사들을 이끌었다. 해골 전사들 역시 기사를 따라, 고요한 함성을 지르며 돌격했다.

마법의 폭발과 함께 소강상태에 빠진 전장을 해골 기사가 다시 한 번 난전의 무대로 바뀌었다.

이 순간 히르칸은 그 광경을 보지 않았다. 히르칸의 시선은 자신의 왼편,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유저 한 명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 장소는?”

히르칸의 질문에 그 유저는 곧바로 대답했다.

“준비해뒀습니다!”

이곳은 블랙 그루밍 리자드의 둥지, 레드불스 길드가 독점 중인 사냥터였다.

7.

워로드에는 레벨업 지원팀이란 게 있다.

우스꽝스럽기 그지없어 보이지만, 30대 길드는 물론 30대 길드의 자리를 노리는 언더풋 길드라면 규모가 크든, 작든 레벨업 지원팀을 두고 있다. 혹은 개인이 레벨업 지원팀을 두고 있는 경우도 있다. 워로드 레벨 랭킹 1위인 퍼스트원 설우가 대표적이다.

레벨업 지원팀의 역할은 당연히 레벨업을 도와주는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아이템 지원이 있다. 사실 이 정도는 어지간한 규모의 길드라면 전부 한다. 일정 지역을 주력 사냥터로 잡고, 그곳에서 사냥하는 길드원들에게 필요한 아이템을 지급해준다. 여기서 좀 더

나아가면, 버프와 회복 마법만 걸어주는 버프팀과 몬스터를 모아두는 몰이팀을 운영하게 된다.

“괴물인 건 알았지만, 이런 괴물일 줄은 몰랐군.”

바우어, 그는 레드불스 레벨업 지원팀의 팀장이었다. 레드불스 길드의 숨겨진 조력자인 셈이고, 경력도 꽤 됐다. 동시에 그는 체브와 현실에서도 꽤 친한 사이였다.

본래는 레드불스 길드에 소속된 유저였지만, 게임에 재능이 없다는 걸 깨닫고 시간이 날 때마다 레드불스 길드를 게임 외적으로 도와주다가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됐다.

그리고 현재 하회탈의 레벨업을 지원해주고 있었다.

- 사냥 속도가 엄청나네요. 3인 파티가 5분 걸려 잡을 걸, 혼자서 3분 안에 해치우네요. 단순 효율만 보면, 일반 파티보다 사냥 속도가 5배 정도 빠른 셈이군요.

물론 바우어 혼자 하회탈을 도와주는 건 아니었다.

바어우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는 음색 주인의 이름은 리키. 워로드를 좋아하는 20살의 젊은 친구로, 바우어와 함께 일을 한 지 이번으로 두 달째가 되는 초짜이기도 했다.

“정말 5배 정도 빠른 건 아니지만, 내가 보기에는 퍼스트원하고 비교해도 꿇리지 않겠어.”

더불어 레드불스의 간부 중 한 명의 사촌 동생 자격으로 레벨업 지원팀에서 용돈벌이겸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이었으며, 퍼스트원의 열렬한 팬이기도 했다.

- 퍼스트원하고 비교되는 정도인가요?

“내가 보기엔 퍼스트원보다 빨라.”

- 에이, 그건 아니죠.

대개 그러하듯, 배경을 통해 레벨업 지원팀에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그는 때때로 상사를 대할 때 거침이 없었다.

- 퍼스트원은 엊그제 220레벨을 돌파했어요. 랭킹 100위하고 레벨 차이를 15레벨 차이로 벌렸다고요! 그런 그하고 하회탈하고 비교하는 건 솔직히 퍼스트원에 대한 실례죠.

리키의 그런 반응에 바우어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누가 보면 저놈이 내 상사인 줄 알겠군.’

리키의 반응이 마음에 들 리 없다.

한편으로는 리키의 반응을 이해했다. 리키의 말은 일반적인 시선으로 본다면, 틀린 말이 아니었으니까.

퍼스트원의 레벨업 속도는 괴물, 그 이상이다. 그 증거는 레벨 랭킹을 보면 알 수 있다.

레벨 랭킹 100위 안에 들 정도의 랭커들은, 레벨업에 그야말로 사활을 건다. 그들 사이에서 1레벨 차이는 100미터 달리기에서 1초 차이와 비슷하다. 매우 큰 차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퍼스트원은 현재 꾸준히 랭킹 100위의 레벨과 차이를 벌리고 있었다.

바우어가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아니, 바우어는 누구보다 일찍 레드불스 길드의 레벨업 지원팀을 이끌었다. 그의 역할 중 하나는 보다 빠른 레벨업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다른 랭커들의 노하우를 염탐하는 것이다. 퍼스트원에 대해서는 리키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알고 있다.

“그래, 내가 실례를 했군.”

물론 굳이 여기서 리키와 말싸움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냥 넌지시 체브에게 말할 것이다. 리키란 놈이 싸가지가 없다고. 그럼 체브가 알아서 잘 처리해줄 것이다.

- 퍼스트원은 최고라고요.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리키가 재차 자신의 주장을 고집했다.

그런 그의 고집은 바우어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바우어는 다시 한 번 하회탈의 전투 영상을 바라봤다.

사실 그가 하회탈의 레벨업을 지원해줄 필요는 없었다. 그는 그저 단순히 고용된 입장이 아니라, 레드불스 길드의 1군 레이드 팀의 길드원들이 20∼30레벨 무렵 때부터 그들을 지원해준 키다리 아저씨 같은 사내였다. 레드불스 길드에서 경력이 제법 있는 이들에

게 바우어는 높은 선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번 일을 맡은 건, 하회탈의 노하우를 빼먹기 위해서였다. 하회탈의 말도 안 되는 사냥의 비결, 전투의 비결, 그가 가진 모든 특징을 실시간으로 빼먹는 게 그의 역할이었다.

‘퍼스트원보다 빨라.’

때문에 그는 이제는 자신할 수 있었다. 하회탈의 사냥 속도는 퍼스트원이 하회탈의 레벨이었을 때보다 훨씬 더 빠르다.

‘그런데 전투가 너무 긴박해. 여유가 없어.’

동시에 하회탈의 약점도 보였다. 그는 일단 전투에 돌입하면 여유가 없다. 전투를 최단 시간 내에 끝내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퍼스트원과의 분명한 차이점이었다.

퍼스트원은 전투 도중에 속도를 조절한다. 빨리 잡으면 5분 안에 잡을 수 있는 걸, 굳이 무리해서 5분 안에 잡기보다는 10분 동안 천천히 사냥을 한다. 전투에서 얻는 피로, 집중력의 소모 속도를 최대한 늦추기 위한 방법이었다. 이 방법을 통해 퍼스트원은 압도

적으로 높은 플레이타임을 기록하고 있다.

빨리 달리는 자보다 오래 달리는 자가 앞선다는 것을 그가 몸소 증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정답이었다. 레벨 랭킹 100위 안에 드는 이들은 전부 퍼스트원과 비슷한 방법을 쓴다.

즉, 하회탈은 돌연변이다.

‘위험해.’

그래서 위험했다. 하회탈의 방식은 기존의 방식을 부정하고 있다. 더욱이 하회탈은 그 방식으로 퍼스트원을 비롯한 상위 레벨 랭커들과의 격차를 줄이고 있다.

만약 하회탈이 레벨 랭킹에 이름을 올린다면 크든, 작든 기존 질서에 변화가 생길 것이고, 그 기존 질서에서 최고의 자리에 앉은 레드불스에게는 반갑지 못한 변수가 될 것이다.

고민하던 바우어의 얼굴이 점차 굳어졌다.

- 하회탈이 라스트 스퍼트를 요청했습니다. 몬스터가 가장 많은 지역을 알려주십시오.

그때 하회탈을 옆에서 돕는 매니저의 목소리가 바우어의 굳은 표정을 풀었다.

7.

[히르칸]

- 레벨 : 179

- 직업 : 네크로맨서

- 타이틀 : 144개

- 능력치 : 근력(2192)/체력(1132)/지력(1327)/마력(1601)

하회탈의 캐릭터 상태창을 확인하는 안재현의 입에는 반쯤 쪼그라든 젤리 음료의 포장 용기, 스파우트 파우치라는 어려운 이름을 가진 녀석이 물려 있었다.

쭈웁!

안재현이 재차 안에 있는 젤리를 빨아 먹자, 파우치는 완전하게 쪼그라들었다. 더 이상 빨아도 국물조차 나오지 않은 지경이 됐다. 안재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몇 번 빨지도 않았는데, 벌써 끝이야?’

안재현이 입에서 파우치를 뗀 후에 테이블 위에 대충 올려놓았다. 테이블 위에는 앙상한 모양을 한 파우치가 이미 세 팩이나 있었고, 좀 더 떨어진 곳에 있는 검은 봉투 안에는 잔뜩 쪼그라든 파우치가 셀 수 없을 만큼 쌓여 있었다.

소화 능력이 부족한 환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식사 대용 젤리였다. 현재 안재현의 주식이기도 했다.

‘비싸기는 겁나 비싸면서, 맛은 겁나 없고, 양은 턱도 없고…… 젠장. 내가 뭐하는 짓인지.’

아가르도 레이드 이후 탈이 난 안재현의 속은 여전히 상태가 좋지 못했다.

병원도 찾아가 위내시경 검사도 했다. 당장 큰 문제나 심각한 이상 소견은 없었지만 위의 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말과 함께, 의사는 처방전으로 당분간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고, 스트레스를 줄이고, 규칙적이고 건강한 활동을 할 것을 주문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안재현이 개중에 지킨 건 자극적인 음식을 피한 것, 그것 딱 하나뿐이었다.

오히려 그 이후 안재현은 평소보다 더 타이트한 게임 플레이를 했다.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제 한 타임만 더 뛰면 180레벨이다.’

레드불스와 협상을 했다. 정확히는 협박을 했다.

180레벨이 되기 전까지 배덕의 왕자 레이드에 참가할 생각이 없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했다. 하회탈의 이름을 팔아 생중계 광고를 완판한 레드불스 입장에서는 그냥 듣고 넘어갈 수 없는 통보였다.

결국 레드불스는 현재 대중에 공개조차 하지 않은 블랙 그루밍 리자드 둥지를 안재현에게 사냥터로 제공했다. 레벨업 지원팀도 붙여줬고, 덕분에 사냥을 제외한 모든 것을 제공 받았다. 소모 아이템마저 아낌없이 지원을 받았다.

두 번 다시 오기 힘든 기회, 속이 좋지 못하다고 해서 넘길 수 있는 기회가 아니었다.

‘레벨업 마치면, 곧바로 배덕의 왕자 레이드. 그 전까지 컨디션을 최대한 끌어 올려야 해.’

한편으로 이런 기회를 누린 만큼, 180레벨을 달성하는 순간 안재현은 배덕의 왕자 레이드에서 최고의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고려하면 속이 좋아지길 기대하는 게 도둑놈 심보로 보일 정도다.

‘돌아가는 상황은 나쁘지 않네.’

다행히도 배덕의 왕자 레이드는 아직까지 큰 소란이 없었다. 레이드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결전의 증표를 가진 일반 유저들이 결전의 증표에 뜬 단서를 조합해, 배덕의 왕자가 숨은 장소를 찾아냈고, 레이드는 두 차례 시도됐다.

그리고 그 두 번의 시도 모두 결과는 무척 참혹했다.

[배덕의 왕자, 난공불락! 승리 아니면 전멸!]

[역대 최강의 보스 몬스터 등장, 공략법은 대체 무엇인가?]

전멸!

결전의 증표를 얻을 정도면, 워로드에서 나름 내로라하는 실력자들이란 의미인데, 그들 중 배덕의 왕자를 상대로 제대로 된 활약은커녕, 제대로 된 전투를 펼친 이가 한 명도 없었다.

그 정도로 배덕의 왕자는 강했다. 배덕의 왕자와의 전투 영상이 공개된 이후 히드라, 우레사냥꾼, 레드불스 길드마저도 섣불리 레이드를 시도하지 못할 정도였으니,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그게 레드불스가 군말 없이 하회탈에 대한 레벨업 지원을 해준 이유이기도 했다. 배덕의 왕자를 상대로 하회탈의 활약이 이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안재현 입장에서도 마냥 기뻐할 순 없었다.

‘확실히 쉽진 않아.’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는 배덕의 왕자와 싸워본 경험은커녕 싸우는 상황 자체를 염두에 둔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배덕의 왕자 영상을 보고, 배덕의 왕자와의 전투를 염두에 둔 건 이번이 처음이었고, 그 첫 경험은 안재현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사실 공략법 자체는 매우 간단했다.

배덕의 왕자가 가진 강함은 타락의 힘을 비롯한 폐허 왕국이 남긴 고대의 힘에서 나온다. 그리고 고대의 힘을 내뿜는 유물이 배덕의 왕자 근처에 숨겨져 있다. 당연히 그 유물을 하나씩 파괴할 때마다 배덕의 왕자는 크게 힘을 잃는다.

결국 핵심은 배덕의 왕자가 유물 파괴팀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그를 막는 것이다.

내용은 단순하다. 하지만 실천은 쉽지 않다.

‘생각 이상으로 빨라.’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스피드.

스피드는 워로드에서 이제까지 유저의 무기였다. 하지만 배덕의 왕자가 보여주는 스피드는 워로드의 그 어떤 유저보다 빨랐다.

또한 배덕의 왕자가 사용하는 스킬 구성도 까다로웠다. 지혜, 무력 그리고 사명, 세 가지 의미를 가진 삼사를 심볼로 삼는 삼사의 왕자답게 배덕의 왕자는 검사 클래스와 마법사 클래스의 주요 스킬과 흡사한 스킬을 다수 사용했다.

심지어 그 스킬의 위력은 유저들이 쓰는 것보다 훨씬 위력적이었다.

‘폐허 왕국의 힘을 이용한 강화 스킬하고, 일반 스킬하고 상대가 될 리도 없고.’

배덕의 왕자가 쓰는 스킬이 바로 세 번째 메인 시나리오인 폐허 왕국 편에서 유저들이 마주하게 될 새로운 콘텐츠다.

어쨌거나 배덕의 왕자는 유저가 가지는 장점 전부를 가진 보스 몬스터인 셈이다. 레이드 상대가 아니라 PVP상대라고 생각하고 전투를 치러야 한다. 때문에 레이드의 성공을 위해선 배덕의 왕자를 상대로 최소 1분의 시간을 벌 수 있는 실력자가 여럿 필요하다.

‘결국 머릿수로 비벼야지.’

히드라 길드의 소행크, 레드불스의 체브, 우레사냥꾼의 시르 그리고 하회탈 히르칸까지.

이 네 명이 레이드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후우.”

그 광경을 떠올린 안재현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나왔다. 자신을 포함한 이 네 명의 실력은 확실하다. 하지만 반대로 이 개성 넘치는 네 명이 과연 제대로 호흡을 맞출 수 있을까?

‘미친년에 미친놈들이 붙어서 서로 싸움이나 안 나면 다행이지.’

상상만으로도 속이 쓰렸다. 안재현이 그런 쓰린 속을 달래려는 듯, 젤리 파우치 하나를 들고, 입에 물었다.

‘응?’

그 순간 안재현이 보던 태블릿PC 위에 이메일 도착을 알리는 아이콘이 활성화됐다. 안재현이 가볍게 손가락을 터치했다.

보낸 이는 체브.

‘뭐지?’

그리고 그 내용은…….

‘결국 그 미친년이 사고를 치는구나!’

우레사냥꾼 길드의 폭주에 대한 것이었다.

8.

‘아무리 봐도 이건 미친 짓이야.’

전투를 위한 소모 아이템을 온몸 구석구석 주머니에 챙겨 넣던 해치는 행동을 잠시 멈춘 후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우리끼리 배덕의 왕자 레이드라니…….’

배덕의 왕자 2차 레이드가 실패하는 순간, 배덕의 왕자는 다른 곳으로 사라졌다.

그 이후 다시 결전의 증표에 배덕의 왕자의 위치를 알려주는 단서가 등장했다. 우레사냥꾼 길드는 정보망을 이용해 그 단서가 가리키는 위치를 금방 파악했다. 여기까지는 이제까지 했던 것과 다를 바 없는 행보.

그런데 그 위치를 파악하는 순간, 대기 중이던 배덕의 왕자 레이드 팀에게 특명이 떨어졌다.

우레사냥꾼 전력만으로 배덕의 왕자 레이드를 시도한다!

‘여왕님 눈깔이 완전 돌아갔어.’

결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의 결과물이 아니었다.

달리 말하면 시르, 그녀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났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하긴, 그동안 완전 꿔다놓은 보릿자루 대접이었으니까. 여왕님 성격에 이제까지 참은 게 신기한 거지.’

항상 최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최고의 자리에만 있던 시르에게 최근 거듭 이어진 무관심은 견디기 힘든 굴욕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하회탈의 명성이 하늘을 찌르고, 레드불스가 은연중에 30대 길드 최강으로 평가받는 상황은 시르에게 있어서 참을 수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용납할 수 없는 일이나 다름없을 터.

이런 시르를 건드리는 건, 폭탄 폭발 버튼을 누르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다.

‘아닌 건 아닌 거야.’

하지만 이 순간 해치는 용기를 발휘했다.

해치에게 우레사냥꾼은 직장이고, 워로드는 생활의 일부가 됐다. 그렇기에 이번 레이드의 실패에서 치를 대가가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다. 피할 수 없는 대가라면 감수하겠지만, 리더의 무모한 결정에 따른 대가는 아래 부하 직원이 막아줘야 하는 법.

‘어차피 여왕님께 말해봤자 씨알도 안 먹힐 테니…… 히드라랑 레드불스에 알리는 수밖에 없겠군.’

해치가 총대를 멜 각오를 했다.

‘어휴, 내가 빨리 이 길드를 나가야지. 여기서 있다간 제 명에 못 살 거야. 병원에서도 최근 위에 출혈이 보인다고, 자극적인 음식은 피하고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했는데…….’

< 45화. 전야(前夜 )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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