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금력(金 力 ) (2). >
4.
드높은 셰가 성의 위엄 넘치는 성벽이 타락한 군단의 좁디좁은 시야에 들어왔다.
공성 모드에 돌입한 지 100분째, 이제 이 속도대로라면 20분 후에 타락한 군단은 각자의 무기를 가지고 성문과 성벽을 향해 세상에서 가장 거칠기 그지없는 노크를 시작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성벽과의 거리는 여전히 멀어 보였다. 빠르지만, 달리지 않고 걸음을 내디디는 타락한 군단에게 20분이란 시간 동안 이동할 수 있는 거리는 길 수가 없었다.
때문에 타락한 군단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들의 발이 좀 더 빨라졌다. 열 발 내디디던 것을 이제는 열두 걸음, 열세 걸음으로 늘렸다.
쿵, 쿵, 쿵!
거침없던 그들의 진격에 보다 많은 힘이 붙었다. 지축을 흔드는 소리도 거세졌고, 밀어붙이는 기세도 심해졌다. 그들은 이제 살아 움직이는 불도저였다.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밀어버리고, 갈아엎은 후에 마무리로는 짓밟았다.
이 광경을 정면에서 본다면 섬뜩할 것이다. 예를 들자면 절벽과 절벽 사이를 잇는 철로 위에서 화통 소리와 함께 달려오는 열차를 바라보는 것과 비슷했다.
아찔함! 그것도 그저 평범한 아찔함이 아닌 머릿속에 떠오르려던 주마등마저 집어삼킬 듯한 아찔함이 머리를 가득 채운다.
하지만 때때로 가까이서 보이는 비극이 멀리서 보면 희극이 될 때가 있는 법.
가까이서 보면 참극의 상징인 타락한 군단을 멀리서 본다면, 누군가는 그것을 이렇게 비유할 것이다.
꼬랑지에 불이 붙어 미친 듯이 달리는 맹수!
그 비유 그대로, 타락한 군단의 꼬리는 불이 붙은 것처럼 처참했다.
가장 눈에 띄는 처참함은 너부러진 몬스터들의 사체였다. 사체들은 해체가 되지 않아, 녹아내리지도 못한 채 자신들이 당했던 처참한 과정을 역력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다음으로 눈에 띄는 건, 자신들과 비슷한 차림새를 한 무리들에게 유린당하는 타락한 군단의 일원들이었다. 무장을 한 괴물들, 드레스 코드와 컨셉은 비슷했지만 그 둘 사이에서는 역력한 전력 차가 존재했다. 그 전력 차가 참극의 무리를 희극의 요소로 바꾸었
다.
‘타락한 아머 오크, 뼈폭탄 여섯 개, 해골 전사 세 마리.’
희극의 연출자는 히르칸이었다.
그는 이제는 퍽 크기가 줄어든 뼈폭탄 꾸러미에서 뼈폭탄 세 개를 꺼낸 후에 타깃이 된 타락한 아머 오크를 향해 던졌다. 뼈폭탄은 오크의 갑옷을 뭉갰고, 자기 옷이 상한 오크가 성난 얼굴로 성난 표정을 지은 채 히르칸을 향해 몸을 돌렸다.
히르칸은 전투를 마치고 온 세 마리의 해골 전사들에게 신호를 줬다. 망가진 무릎과 갈비뼈, 어깨뼈 복구를 마친 해골 전사들이 주인의 명령을 따라 오크에 달라붙었다.
히르칸은 그 전투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히르칸은 이 짧지 않은 전투 동안 기억하는 전투 장면이 몇 없었다. 그가 기억하는 장면들은 그가 뼈폭탄을 던지는 장면들, 마치 비슷한 광경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있는 힘껏 꾸욱 누른 후의 결과물들과 비슷한
것들뿐이었다.
대신 히르칸은 숫자는 기억했다.
‘118마리.’
전투 시작 100분 동안 118마리의 타락한 몬스터를 사냥했다. 일천을 넘어, 이천에 다다르는 타락한 군단의 무리에 이제는 가시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숫자였다.
더불어 히르칸의 전투는 그런 수치적인 전공(戰功)에 대한 설명을 마치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강렬했다.
‘타락한 웨어울프, 뼈폭탄 6개, 해골 기사 배치.’
정밀 기계였다.
타깃을 잡고, 갑옷을 뭉개는 데에 필요한 정확한 양의 뼈폭탄만을 사용해서 어그로와 아머 브레이킹을 마친 후에 전투를 마친 여유 전력 중 필요한 전력만큼을 몬스터에게 배치했다.
그 과정은 이제껏 히르칸이 보여줬던 전투와는 조금 다른 느낌의 전투였다.
인텔리.
‘저주 쿨타임 리셋. 일단 대기하자.’
모든 스킬의 쿨타임까지 계산을 마치면서, 적재적소에 병력을 배분함으로써 전투를 조율하는 모습은, 분명 단순히 감이나 경험이 많다고 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히르칸은 지휘만 하지 않았다.
긴급한 상황, 자신의 부하가 큰 타격을 입어서 소멸하는 경우가 예상될 경우, 망설임 없이 나섰다.
지금처럼 코볼트가 휘두른 망치에 무릎이 파괴되며 자리에 자빠진 해골 전사의 머리 위로 코볼트의 망치가 벼락처럼 떨어지는 순간, 어느새 다가온 히르칸이 코볼트의 몸뚱이에 칼을 앞세운 몸통박치기를 날렸다.
콰직!
블랙 코볼트 왕의 검, 그 강력한 무기가, 히르칸이 이번 전투를 위해 두 눈 감고 결국 살짝 시세보다 비싼 값을 치르고 구매한 그 무기가 타락한 코볼트의 갑옷을 찢고, 피륙마저 뚫었다.
동시에 이루어진 몸통박치기에 코볼트의 몸이 깊은 상처를 입은 채 날아갔다.
그리고는 아직 부상을 회복하지 못한 해골 전사를 등졌다.
부상 입은 해골 전사가 복귀하는 건 마력만 있으면 문제없지만, 파괴된 해골 전사를 재소환하는 건 쿨타임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게 히르칸이 나선 이유였다.
전투에 직접 참가하면서 머리를 굴리는 건, 매우 어렵다.
더욱이 전투에 히르칸이 참가하는 순간 전장의 상황은 크게 바뀐 셈. 새로운 계산이 필요한 상황에서 히르칸은 그 계산을 빠르게 수행해냈다. 히르칸의 눈이 전장을 보고, 계산을 마쳤다.
대단한 일이었다.
그리고 신기한 일이었다.
대체 무엇이 히르칸을 평소와 다르게 만드는 걸까? 하물며 대체 그 무엇이 달라진 모습을 100퍼센트가 아닌, 120퍼센트를 발휘하게 해주는 것일까?
‘어떻게든 뽕을 뽑는다. 내가 어떻게든…….’
물론 답은 아주 간단했다.
5.
살아가면서 사람에게 목소리란 것은 그 무엇보다 소중하기 그지없는 도구이지만, 전쟁이란 참혹한 무대에서 목소리는 쉽사리 상대에게 닿지 못한 채 가치를 잃는다.
때문에 오래 전 전장에서는 다른 도구를 썼다. 뿔피리를 길게 불거나, 북소리로 벅차오르는 사람의 심박수를 연출했다.
하지만 워로드의 전장에서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많은 가치를 가진 도구였다.
“8팀하고 9팀 상황은?”
- 9팀 대기 중.
- 8팀 대기 중.
보이스톡.
워로드가 허락한 이 유용한 프로그램은 하염없이 드넓고, 가차 없이 소란스러우며, 등골이 싸늘해질 만큼 처절한 전장에서 목소리의 가치를 빛나게 해주었다.
“9팀과 8팀의 전투 판단은 임의로. 1번부터 5번 팀을 제외한 나머지 팀은 9팀과 8팀이 전투를 시작한 후에 움직인다.”
빅케이는 말과 함께 정면을 바라봤다.
‘오는군.’
이제는 멀찌감치라고 표현하기 힘든 거리에 진격 중인 타락한 군단의 모습이 보였다.
정면, 빅케이가 속한 팀이 지켜야 할 지역이었다.
당연히 가장 방어가 힘든 지역이었다. 모두가 마다하는 무대였고, 동시에 뛰어난 실력이 요구되는 지역이었다. 그리고 그런 무대이기에, 그 무대를 맡았기에 빅케이는 이번 무대의 최후 조율자가 될 수 있었다.
“후우.”
사실 빅케이는 이런 무대를 원치 않았다. 레드불스의 명령이 아니었다면, 빅케이는 굳이 어려운 무대보다는 이제는 하회탈 덕분에 모두가 알게 된 팁, 갉아먹기를 했을 것이다.
빅케이가 전장을 앞에 두고 한숨을 내뱉는 이유 중 하나였다.
‘나도 참, 게임이 뭐라고…….’
레드불스 길드는 길드원들을 길드를 대표하는 자격이 아닌 개인 자격으로 대격전에 참여시켰다.
큰 그림이었다. 당장 몇 가지 사건 때문에 대격전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는 게 힘들어졌지만, 대격전을 포기하는 30대 길드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자연히 언젠가 있을 대격전 무대에서의 본격적인 활약에 앞서 사전 작업을 해둘 수밖에.
준비란 두 가지였다.
인덕, 대격전에서 궂은일을 마다치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평판을 쌓았다.
경험, 궂은일을 열심히 하면, 당연히 쉬운 일만 하는 이들보다 경험이 더 쌓일 수밖에 없다.
더불어 이 두 가지는 평가의 잣대이기도 했다. 기업이 임원 후보를 고르기 위해, 입사한 직원 중 엘리트를 분류하고, 그들을 특별한 무대를 통해 성장시키고, 시험하듯이, 빅케이에게 이번 일은 그런 종류의 일이었다.
기분 나쁠 건 없었다. 결과가 좋다면, 이번 대격전을 끝으로 빅케이의 입지는 올라갈 것이다. 이미 레드불스 레이드 팀의 1.5군 위치에 있는 빅케이의 입지가 올라간다면, 그곳은 당연히 레드불스의 꽃이자, 얼굴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부담감은 있었다. 시험은 시험이다. 레드불스는 빅케이와 같은 이들 수십 명을 워로드란 드넓은 땅 곳곳에 흩뿌렸다. 씨를 넓게 흩뿌리고, 개중 잘 자라는 놈만 모아서 가장 빛이 잘 드는 곳으로 옮겨심을 속셈이었다.
대격전이란 무대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 무대와 함께 다시 바닥의 흙더미가 될 것이고, 발아를 해서 싹이 돋더라도 다른 것보다 뿌리가 얕고 줄기가 앙상하고, 잎이 메마르면 이 역시 뽑히지 못한 채 다음을 기약해야 할 것이다.
잘해야 했다.
그냥 잘하는 게 아니라 남들보다 잘해야 했다.
‘하회탈.’
때문에 빅케이는 하회탈을 쉽사리 잊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하회탈의 존재가 그에게 기회가 될 것 같았다.
물론 그런 빅케이의 심중 고뇌가 오는 전쟁을 늦추진 못했다. 전쟁은 가차 없이 시작됐다.
6.
“버텨!”
방패를 모아모아 만든 활등 모양의 선, 그 선 뒤에는 사제가 있었다. 사제 뒤에는 마법사가 있었고, 그 뒤에는 그 무리를 지휘하는 그룹의 리더, 백인장이 있었다.
그렇게 그들이 만들어놓은 호선(弧線)을 경계로, 그 호선을 뭉개려는 검은 눈동자를 가진 무장한 몬스터들이 개미떼처럼 모여 있었다.
콰앙, 콰앙, 쾅!
방패 위를 쉴 새 없이 두드리는 몬스터들의 무기는 위력이 굉장했다. 뭉툭한 것들은 방패를 뭉갰고, 날카로운 것들은 방패를 찢을 기세였다. 탱커들이 앞세운 방패들 대부분은 반질반질거림은 사라지고, 흉물스러운 처지가 변해있었다.
물론 개중에는 이 매몰찬 공세 속에서도 번쩍거리는 위용을 남기는 것도 있었다.
그 방패의 주인, 그의 양옆에 있는 탱커들은 방패의 주인을 향해 한 마디씩 던졌다.
“알비노 비틀 방패 죽이네.”
“유니크는 뭔가 다르긴 다르네.”
방패 주인이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이래서 돈 털어서 템을 지르는 거야. 어중간한 방패 세 개 세팅할 바에는 그냥 하나 좋은 걸 사.”
“살 때만 하더라도 괜히 샀다고 징징거리던 놈이 무슨…….”
숨 쉴 틈 없는 전장 속에서도 우스갯소리는 있다는 걸, 그 세 명이 증명했다.
- 캐스팅 완료!
그러는 사이 백인장의 귓속으로는 마법사들의 캐스팅 완료를 알리는 신호들이 연달아 들렸다.
하나둘셋…… 열이라는 숫자가 완성되는 순간 백인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마법 포격 준비!”
그 소리는 모두를 긴장케 하기 위한 소리였다.
특히 탱커들이 가장 크게 긴장했다. 이제 그들이 앞세운 방패 너머에서 폭탄이 터질 것이고, 상당한 위력을 가진 마법은 몬스터를 해치고, 그 여파를 주변에 흩뿌릴 것이다. 수류탄의 파편 따위를 말함이 아니다. 공격을 당한 몬스터들은 넘어지고, 자빠지고, 밀린
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힘은 상상 이상으로 강하다. 원래 모든 생명체가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하는 건 발버둥과 몸부림을 칠 때다.
‘내가 다시는 탱커를 키우나 봐.’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역시 게임은 힐러지.’
탱커들이 긴장을 마치는 사이, 사제들 역시 대비하는 사이.
“마법 발사!”
백인장의 신호에 맞추어, 마법사들 열 명이 손에 쥐고 있던 가지각색의 마법들을 탱커들이 만들어놓은 호선 너머, 몬스터들의 머리 위로 던졌다.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전격계 마법이었다. 두 개의 번개 구슬은 떨어지지 않은 채 몬스터의 머리 위에 머무른 채, 방전을 시작했다.
파지직, 파지직!
방전 앞에서 갑옷은 무용지물이었다. 오히려 일부 갑옷은 피뢰침이 되어 전격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크어어!
전격을 그대로 받아들인 몬스터의 입에서 괴성이 터졌다.
그러는 사이 불구슬 두 개가 바닥에 떨어지며, 화르르! 각각 100평 남짓한 공간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당장 데미지는 강력하지 않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 데미지가 어떤 마법보다 강한 지속형 마법이었다. 이렇게 대치 국면을 유지하고 있을 때 가장 유용한 마법
이다.
마법하면 대표적인 얼음도 빠지지 않았다. 떨어진 얼음 구슬 하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파직! 그리고 깨졌다. 깨지자마자 그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얼음 안개가 넓게 퍼졌다. 안개는 빠르게 퍼진 만큼 빠르게 사그라졌고, 안개가 사그라졌을 때는 꽁꽁 얼어붙은 몬
스터들, 얼음 동상만이 남았다.
그 얼음 동상을 부순 건, 근처 몬스터들이었다. 몬스터들은 얼어붙은 동료를 거침없이 뭉개고 지나갔다. 그 과정에서 얼어붙은 몬스터들의 신체가 유리처럼 깨졌다. 일부는 몸뚱이 전체가 깨졌다. 깨진 것들은 몬스터들의 육중한 발걸음에 짓밟히며 흔적조차 남기
지 못했다.
아수라장이 펼쳐졌고, 그 아수라장이 탱커들을 두드렸다. 방패를 앞세운 탱커들이 소리쳤다.
“버티자!”
“으럇차차!”
“누가 노래라도 불러줘!”
여기서도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우스갯소리가 나오지 않는 곳도 있었다.
7.
- 10번 팀 무너졌습니다!
빅케이를 향한 그 보고는 일방적인 통보였다. 도움을 요청하는 게 아니라, 우리는 이제 끝났고, 여기서 마무리 짓고 열심히 성으로 도망칠 테니까, 남은 분들 화이팅! 이런 의미의 통보 말이다.
빅케이는 그 말에 분노하지 않았다. 모두가 웃으면서 전투를 즐기면 좋겠지만, 제아무리 대단한 30대 길드도, 모든 전력을 투자한 레이드를 하면 누군가는 게임오버를 당하고, 48시간 동안 술잔을 기울이게 만든다. 세상 모든 일엔 비극이 있다.
더불어 그 통보에 분노고 자시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수고했습니다.”
- 10번 팀 수고했어요.
- 다음 전투 준비해주세요.
부족한 전력으로 지역 방어라는 방법을 택했다. 뚫린 지역은 그냥 그대로 놔두는 게 명석한 답이다. 뚫린 지역을 다시 막기 위한 시도를 하다가 이제껏 무수히 많은 이들이 참혹한 성적표와 48시간이라는 매우 긴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그걸 번복하는 게 미련한
짓이다.
빅케이는 이 순간 승산만을 가늠했다.
‘전투 시작 10분 만에 하나 뚫렸군.’
일단 좋은 페이스는 아니었다. 10분을 버티지 못한 게 중요한 게 아니다. 10분을 버티지 못했으니, 당연히 그만큼 많은 몬스터를 잡지 못했다는 게 중요했다.
이미 천여 명 정도만이 셰가 성에 모였을 때, 패배는 예정된 일이었고, 시가전까지 갈 건 자명했다. 달리 보면 장기전이다. 성 밖, 성문, 성안. 세 곳에서 세 단계의 전투를 치르게 된다. 당연히 몬스터가 하나라도 줄어든 쪽이 장기전을 치르는데 도움이 될 터.
‘역시 안 되겠지.’
그 숫자를 예상보다 더 줄이지 못했으니, 빅케이의 머릿속 승산도 줄어드는 수밖에.
그런 그에게.
- 여기 11번 팀.
11번 팀에게서 연락이 왔다.
‘응?’
11번과 12번 팀은 기존 팀과는 조금 다른 역할이었다. 이번 대격전 무대에서 제 역할을 하기 힘든 스타일의 유저들, 스트라이커들로 구성된 집단이었다. 치고받고, 그것보다는 치고 빠지기에 유능한 자들만을 모아 팀을 구성했다.
“11번 팀 무슨 일인가?”
그 팀이 바로 갉아먹기 팀이었다.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면 조금 전 10번 팀처럼 대형사고를 당하지 않는 팀이기도 했다. 치고 빠지는 과정에서 피해는 있어도, 전멸은 없다. 당연히 보이스톡을 통한 대화 속에서 가장 말수가 적은 팀이기도 했다. 말수 적은 이가 말을 꺼낼 땐 무게감이 달라지는 법
이다.
더욱이 그가 내뱉는 말은 그 자체만으로도 무게감이 달랐다.
- 하회탈이 후방에서 활약 중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11번 그룹 백인장의 말은 개구리가 잔뜩 모여 있는 우물 안에 돌무더기를 투척하는 것과 같았다.
- 하회탈이 후방에 진짜 있었어? 와!
- 그냥 뼈폭탄 몇 개 터뜨리고 떠난 거 아니었나? 설마 지금까지 후방에 있다고?
- 와, 하회탈 미친놈 맞구나. 그냥 꼬리에만 달라붙은 거 아니지? 설마 전투를 하나?
개굴개굴, 쉴 새 없는 그 목소리에 빅케이는 정신머리가 나갈 지경이었다. 다른 이들이야 그저 지껄이면 그만이지만, 빅케이는 지껄이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니까. 의미 없는 헛소리라고 해도 말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짜증 나는 작업이 헛소리에 귀를 기울이
는 일이다.
“조용.”
결국 빅케이가 한마디 했고.
- 하회탈이 몇 마리 잡았…… 아, 죄송합니다.
어디에서나 그렇듯 한 명이 고문관 역할을 소화해낸 후에야, 불이 소화되듯 분위기가 진정됐다.
잠잠해진 분위기 속에서 빅케이가 한마디 했다.
“그래서 하회탈이 얼마나 잡았지?”
그의 입에서 고문관 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나왔다.
- 풉.
웃음소리도 보이스톡을 통해 새어 나왔다. 그 이유를 모를 리 없는 빅케이의 표정도 썩 좋진 못했다. 표정을 보여주는 화상 통화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사실이 가슴속에 살짝 피어올랐다.
다행히 말수 적은 11번 팀의 백인장은 분위기에 휘말리지 않은 채, 담담히 대답했다.
- 당장 본 것만 일곱 마리입니다. 1분에 한 마리 이상 잡고 있습니다. 공성 모드가 시작된 지 이제 110분째에 돌입했으니, 이 페이스가 처음부터 유지됐다면, 최소 백 마리 이상입니다.
그 말에 더 이상 개구리들은 개굴거리지 못했다.
< 43화. 금력(金 力 )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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