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솔플의 제왕-122화 (122/192)

< 42화. 배드 엔딩? (3). >

9.

비앤비 길드 외 8개 길드의 대격전 불참 선언은 워로드 곳곳에서 치러지는 대격전의 전황 자체에 큰 영향을 주진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일반 유저들에게 그들의 불참 선언은 체감되는 의미가 없었다. 마치 정치권에서 정치인들이 서로를 향해 굉장히 진지하게 무언가를 지껄이는 것과 비슷했다.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건 같은 30대 길드들이었다.

‘미친 새끼들, 왜 갑자기 이런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자기들은 못 먹는 떡이니까 우리도 못 먹게 하겠다, 이건가?’

적당한 때에 대격전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위해 방송 편성까지 준비해두었던 9개 길드 외 남은 30대 길드들은 세워둔 모든 계획을 잠정 보류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9개 길드의 불참 선언이 어마어마한 구속력과 영향력을 가져서 그런 건 아니었다.

‘여기서 먼저 나서는 쪽이 가장 크게 맞는다.’

‘당장 나서서 매를 자처할 필요는 없지.’

‘차라리 잘 됐어. 대격전 난이도가 생각보다 높아. 이 시간 동안 전력을 추스를 필요가 있겠어.’

계산기를 두드린 후 나온 선택이었다.

‘어차피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전장은 타락한 군대가 압도하고 있어. 결국 우리를 필요로 할 수밖에 없어.’

‘길드 이름만 내걸지 않으면, 개인 자격으로 활동하는 건 문제 없지. 일단 풀뿌리 활동이다. 차근차근 개인 단위로 신뢰도와 공적을 쌓아두자.’

그다음으로 영향을 받은 건 언더풋 길드였다.

30대 길드가 계산기를 두드리는 사이, 언더풋 길드들이 적극적으로 대격전에 참가했다.

물론 그들의 참가가 대격전의 전황 자체를 바꾸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제까지 연전연패를 거듭하던 대격전 속에서 승전보가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파이터즈 길드 그리고 핏불 씽의 활약은 눈부셨다.

- 파이터즈 길드, 또 수성에 성공했네?

- 해냈다, 해냈어! 핏불이 해냈어!

- 핏불이 목숨 걸고 돌파하니까, 확실히 그 오합지졸이던 유저들이 따라붙긴 따라붙네. 역시 누군가 총대를 메야 한다니까.

사실 파이터즈 길드의 대격전 첫 참전은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높았다. 앞선 실패 사례를 그대로 답습했다. 탱커 라인은 제구실을 못하는 와중에 명령 체계가 통솔되지 않은 상황에서 머리 위를 물들이는 마법들은 적군과 아군 구분 없이 평등한 데미지를 줬다.

결국 여기도 틀렸구나…… 생각을 하는 유저들이 잽싸게 도망치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마칠 무렵.

핏불 씽이 동료를 이끌고 돌진했다.

“뚫어! 무조건 파고 들어가! 뚫는 쪽이 이긴다!”

몬스터들에게 포위당하는 것에 일말의 두려움 없이, 무조건 돌진을 시작한 핏불 씽의 모습에 몇몇 유저들이 마음을 바꿨다.

“그래, 한 번 해보자. 언제까지 도망만 칠 수는 없잖아?”

“비싼 돈 내고 하는 게임에서 도망만 칠 바에는 그냥 팩맨을 하고 말지.”

“핏불 씽 따라서 들어가! 뭉치면 산다!”

도망치려던 유저들이 마음을 바꿔 전장에 달려들었고, 핏불 씽을 따라 삼각형 모양이 되어 타락한 군단을 뚫는 데 성공했다. 그 이후에는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반으로 나뉜 타락한 군단은 거듭 쪼개졌고, 쪼개진 후에는 각개격파를 당했다. 대부분의 유

저들에게 군단을 상대하는 재주는 없어도, 소수의 몬스터를 상대하는 경험은 넘쳐났으니까.

파이터즈 길드가 이제까지 패전을 거듭하던 유저들에게 나름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하지만 모두가 따라 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고 전황을 바꿀 해법은 되지 못했다.

필요한 건 방향성이 아닌 공략법이었다. 누구나 그대로 따라 하면 결과를 볼 수 있는 방법. 당장 확실한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

그 방법을 제시하는 자가 등장했다.

10.

“타락한 군단의 특징 중 하나는 공성 모드로 돌입하는 순간, 시계가 좁아집니다. 쉽게 말해서 옆에 있는 동료가 죽어도 이 녀석들의 돌진은 멈추지 않습니다. 때문에 녀석들이 이동하는 도중 혹은 전투 도중에 밖으로 나와 있는 녀석들을 타깃으로 삼으면 생각보

다 쉬운 사냥이 가능합니다. 이게 바로 아는 사람은 아는 갉아먹기입니다.”

영상 속에는 붉은색 하회탈을 뒤집어쓴 사내가 성을 앞에 둔 타락한 군단을 가리키며 열심히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또 다른 영상에서는 타락한 군단이 성문을 넘고, 그것으로도 부족했는데 성벽을 무너뜨린 후에 그 잔해를 넘는 광경이 펼쳐졌다.

“성문이 파괴되고, 성벽이 무너졌다고 해서 끝이 아닙니다.”

그 영상에서도 붉은색 하회탈을 쓴 사내는 설명을 거듭했다.

“이때가 오히려 기회입니다. 일단 성문이 뚫리거나, 성벽이 무너질 경우 거의 무조건! 무조건 체증 현상이 일어납니다. 소수의 탱커만으로도 잠시 동안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동시에 몬스터들이 몰려 있으니, 광역 마법의 효과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 라인

만 지켜도 충분히 수성이 가능합니다.”

영상은 이윽고 성내의 건물들을 거침없이 부수는 장면으로 바뀌었다.

“몬스터들에게 이 건물들은 굉장한 장애물입니다. 이 장애물을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시가전은 유저들이 타락한 군단을 상대할 수 있는 마지막 전투이자, 가장 유저들에게 유리한 전투입니다. 시가전이 오면 당황하지 말고, 즐기십시오. 가장 쉽게 사냥

할 수 있는 기회를 버리고 도망치지 마십시오.”

공략 영상이었다.

하회탈, 그가 타락한 군단의 공략 영상을 사정없이 공개하기 시작했다.

그 영상은 이제까지 하염없이 대격전이란 무대에서 패배를 곱씹고, 손해만 봤던 유저들에게 단물과도 같았다.

- 꿀팁 인정!

- 하회탈 말대로 타락한 군단하고 싸울 때 정면승부 말고 측면으로 접근하면 진짜 쉬워짐. 갉아먹기 개꿀!

- 영상이 아니라 꿀단지를 올리셨네. 잘 퍼먹고 갑니다.

물론 모두가 그런 호의를 가지는 건 아니었다.

- 왜 이런 거 공개함? 영상 내려라.

- 아, 진짜 꿀 좀 빨려면 꼭 이렇게 조회수에 환장한 인간들이 퍼뜨려서 일을 망친단 말이야. 영상 내려!

- 하회탈, PK당해서 질질 짜기 싫으면 영상 내려라.

히르칸의 노하우로 나름 쏠쏠하게 대격전에서 꿀을 빨고 있던 유저들 입장에서 히르칸의 노하우 공개는, 그들이 열심히 빨아먹던 꿀단지를 부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히르칸의 행보가 마음에 들 리 없다.

더불어 그런 히르칸 역시 마찬가지였다.

‘젠장, 누군 좋아서 이러는 줄 알아?’

히르칸이 공개한 꿀단지는 히르칸도 이제까지 정말 열심히, 잘 먹던 꿀단지였다. 대격전이 끝날 때까지 이 노하우를 이용해 대격전의 영웅 타이틀을 비롯한 알짜배기 보상을 다 받는 것이 히르칸의 계획이었다. 실제로 지금까지 그래 왔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변했다.

그 어느 때보다 승전보가 중요해진 히르칸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이 정도 떡밥은 뿌려야 유저들이 꺼진 관심의 불씨가 살아나겠지.’

이미 연패 속에서 대격전에 대한 실망감을 가진 유저들의 발걸음을 다시 대격전의 무대에 돌리기 위해서는 이 정도 사탕은 제공해야 했으니까.

더욱이 이게 끝이 아니다. 사탕으로 끌 수 있는 발길에는 한계가 있다. 사탕에 눈이 팔려 대격전 무대로 시선을 돌린 이들의 몸을 달아오르게 만들어야 했다. 대격전에 참가하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리도록 만들어야 했다.

이제 가장 어려운 일이 남아 있는 셈.

‘이렇게 개고생했는데도 폐허 왕국 퀘스트 루트가 내가 알던 것과 다르면…… 토봇 소프트 서버를 어떻게든 폭파하고 만다.’

11.

셰가 성.

미산드라 성으로부터 적당한 거리에 위치한 이곳은 미산드라 성과 비슷하게 80레벨에서 100레벨 유저들이 주로 머무는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 셰가 성은 1차 승급을 마친 유저들이 토벌협회와 그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숫자는 여러 직업을 합쳐서 1천여 명 남짓. 성 단위로 치러지는 대격전에 보통 2천에서 3천 안팎의 유저들이 참가하는 걸 고려하면 적은 수치였다. 당연히 셰가 성을 놓고 벌어질 대격전에서 승리에 대한 기대감도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들 앞에 히르칸이 등장했다.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붉은 하회탈을 쓰고 등장한 히르칸의 모습은 반향을 일으켰다.

“어? 하회탈이다!”

“영상 잘 봤어요!”

“팁 잘 유용하게 써먹겠습니다.”

동시에 히르칸의 등장에 적잖은 유저들이 호의를 보냈다. 히르칸은 그 반응을 뒤로한 채 토벌협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토벌협회 건물 안은 밖과 다르게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열두 명.

이번 대격전 무대에서 지휘권을 가진, 일명 백인장(百人長)이라 불리는 자들이었다.

거듭된 패전 속에서 유저들은 최소한의 통솔 체계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고, 백 명 단위로 그룹을 나눈 후에 그 그룹을 통솔할 리더를 선출했다. 물론 대단한 자리는 아니다. 말이 지휘권이지, 대학 조별과제의 조장 같은 역할이다.

그런 그들은 히르칸의 등장을 마냥 반기지 않았다.

‘왜 하회탈이 여기에?’

‘그동안 자기 혼자서 싸우던 녀석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여기에 올 리가 없을 텐데?’

히르칸의 등장이 불리한 전력에 도움이 되리란 건 모두가 인정하는 바였지만, 이제까지 히르칸은 단 한 번도 그룹에 섞여서 활동했던 적이 없었다. 그는 철저한 아웃사이더였다.

그런 그가 아무런 이유 없이 이곳에 왔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심지어 히르칸은 등장하자마자 곧바로 백인장이 모여 있는 곳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토벌협회 문으로부터 약 15미터, 열댓 번의 걸음 소리가 약간은 어수선했던 토벌협회의 분위기를 꾹, 꾹 눌렀다. 걸음이 멈췄을 때 주변은 적막했고, 모두가 히르칸의 입을 바라봤다.

그 입이 열렸다.

“이번 대격전, 내가 지휘하고 싶다. 작전권을 줄 수 있나?”

12.

“하회탈의 명성을 예전부터 흠모했습니다. 작전권을 달라면, 당연히 드려야지요.”

대답이 나왔다.

“같은 말을 설마 기대하고 그런 헛소리를 지껄인 건 아니겠지?”

명백한 거절.

동시에 히르칸의 제안에 대한 반응들은 꽤 격했다.

“갑자기 찾아와서는 작전권을 달라니, 우리가 왜?”

“누가 보면 우리가 그쪽 부하인 줄 알겠네. 일면식도 없는 사이 아닌가?”

당연한 일이었다.

하회탈의 명성은 대단하다. 당연히 그 명성을 바라보는 눈빛이 빛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명성에 취해 히르칸의 종복을 자처할 이유는 없다.

하물며 여기 모인 백인장들은 나름 레벨도 높고, 전투 경력 및 게임 경력도 적잖은 자들이다. 히르칸보다 게임을 못할 뿐, 게임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히르칸보다 못하다고 보긴 힘들다.

“못 주겠다?”

“당장 밖으로 나가서, 이번 대격전에 공식 참가 의사를 밝힌 이들 중 66퍼센트의 동의서를 받아오면 주지.”

그 말에 히르칸은 콧방귀를 뀌었다. 동의서를 받아오라니, 현실에서는 가능하지만, 워로드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깔끔하게 PVP로 결정하지.”

히르칸이 다른 제안을 했다. 제안이라기보다는 도발이었다.

“그런 미친 짓을 우리가 왜 해야 하지? 하회탈하고 싸우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유튜브에 넘쳐나는데?”

하지만 그 도발에 넘어오는 이는 없었다. 넘어오고 자시고, 원래 이게 정상이다. 애초에 워로드 대부분의 유저들은 문제를 대화로 해결하지, PVP나 PK로 해결하는 경우는 소수에 불과하다.

“이대로 싸우면 미산드라 성과 똑같은 꼴이 된다. 내게 괜찮은 작전이 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적당히 잡고 빠지는 거야. 이길 생각이었으면 여기 오지도 않았지.”

그때 누군가가 자리에서 일어나, 히르칸의 앞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그 사람의 등장에 좌중은 입을 다물었다. 이 백인장 무리 중에서도 가장 발언권이 센 사람인 모양.

히르칸 역시 상대의 얼굴과 정체를 확인하는 순간, 저도 모르게 휘파람을 불 듯, 입을 모았다.

‘빅케이? 잠수함이 여기 있었네?’

빅케이.

현재 레벨은 175레벨, 직업은 마법사의 1차 승급인 마도사다.

별명은 잠수함. 잠수함 투수의 약칭이다. 야구선수 출신인 그는 마법을 던질 때 언더핸드 투구폼으로 던진다.

그런 그의 방식은 의외로 효과가 좋았다. 상당수의 몬스터들이 정면이나, 위로 오는 공격에 대해서는 우수한 방어력을 가지지만, 아래에서 터지는 공격에는 취약한 면을 보이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야구 선수 출신인 그의 마법 명중률은 일반 유저와 비교를 거부한다.

더불어 소속 길드는 레드불스.

이 정도 커리어라면, 언더풋 길드도 없고, 이렇다 할 팀도 없는 오합지졸 무리에서 리더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괜히 길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으니, 본론만 말하지.”

빅케이는 히르칸 앞에 당당히 선 채로, 히르칸을 쏘아붙이듯 말을 내뱉었다.

“우리는 승리에 관심이 없다. 그럴 능력도 없고. 애초에 우리가 원하는 건, 대격전에서 적당히 타락한 군단 몬스터를 잡고 빠지는 거다. 셰가 성이 함락되든 말든 그런 건 우리랑 상관없는 일이야.”

빅케이의 말이 지금 이 무리의 목적성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지금 대격전에서 승리를 원하는 자들, 수성 성공을 원하는 자들은 이미 검증받은 언더풋 길드들과 함께 움직인다. 더불어 그런 곳은 대격전에 참가하는 유저 수가 3천 명을 훌쩍 넘어, 때때로 5천 명에 다다르는 경우도 있다. 전력이 넘쳐나니, 수성 확률도 높다.

동시에 몬스터 사냥 경쟁률도 높다. 승리에 대한 성취감은 있어도, 사냥에 따른 경험치는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반면 지금 셰가 성처럼, 이미 모인 유저 숫자에서부터 패배가 예정된 곳은 다른 건 몰라도 잡을 몬스터가 부족한 상황은 없다.

그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게 바로 히르칸이다. 이제까지 히르칸이 전황이 불리한 대격전 무대만을 뛴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히르칸은 그야말로 패배의 아이콘인 셈. 히르칸이 참가한 대격전 무대에서 승전보가 울린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래서 하이에나처럼 썩은 고기나 먹으려고 비싼 돈 내고 이 게임을 하는 건가?”

그 순간 히르칸이 재차 도발을 시도했다.

빅케이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솔직히 이것도 빅케이를 비롯한 백인장의 배려다. 애초에 히르칸이 이곳에 들어와 이렇게 행패를 부릴 권한은 없다. 다른 유저가 이런 짓을 했다면 당장 내쫓았을 것이다. 그나마 이렇게 설명이라도 해주는 건, 다른 그 누구도 아닌 하

회탈이니까 해주는 거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정도가 있는 법이다.

“그건 하회탈 너도 똑같…….”

“작전은 간단하다. 그쪽은 그냥 평소처럼 싸워. 그동안 내가 타락한 군단의 후방을 공격한다.”

“후방?”

“무슨 말이야, 저게?”

히르칸의 작전에 일부가 반사적으로 반문을 지껄였다. 히르칸은 그 반문에 대답해주지 않았다.

“도움을 요청할 생각이었지만…… 이제는 필요 없다. 꼴을 보니,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으니까.”

히르칸은 자기 할 말만 뱉고.

“방해나 하지 말고, 부디 내가 올린 공략 영상을 보고 조금이라도 더 버티도록.”

등을 돌렸다.

적막감이 깔렸고, 그 적막감 끄트머리에 누군가 소리쳤다.

“하회탈 설마 중2야?”

13.

“하회탈이 그런 소리를 했어?”

- 예.

“그래서?”

- 백인장들끼리는 일단 지켜보자고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애초에 할 수 있는 것도 없고요. 대신 하회탈을 쫓아가서 백인장들이 쓰는 보이스톡 채널 주소를 알려줬습니다.

체브는 빅케이의 보고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음성 통화 중에 그런 표정으로 빅케이에게 자신의 심중을 전달하는 건 불가능했다.

“솔직히 어이가 없군.”

체브가 제 말로 제 심정을 전달했다.

- 예.

“하지만 하회탈이 밖으로 나와서 싸우는 건 이번이 처음 아닌가? 그렇다면 분명 승산이 있다는 건데?”

어이가 없지만, 동시에 의문도 들었다. 하회탈이 이제까지와 다른 행보를 보인다는 건 주목할 만한 부분이었다.

- 꼬리먹기랍니다.

“꼬리먹기?”

- 타락한 군단의 후방에서 갉아먹기를 시도한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체브는 머릿속으로 바로 하회탈이 말하는 꼬리먹기의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그리는 순간, 체브의 표정이 다시 굳었다.

‘그런 수가 있었군.’

타락한 군단은 공성 모드에 돌입하면 시계가 좁혀진다. 아는 유저들은 알고, 히르칸이 그 사실을 유튜브 영상으로 공개하면서 이제 대격전을 뛰는 모든 유저가 아는 사실이 됐다.

그 점을 노리고 측면을 공격하는 갉아먹기가 유행하는 중이다.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면 측면이 아니라, 후방에 닿게 된다. 분명 유효한 방법이다.

더욱이 타락한 군단에게 후퇴는 없다. 후방을 공격할 경우의 리스크는 오히려 측면을 공격하는 것보다 낮을 수 있다.

물론 아직 검증된 건 아니다. 이번 하회탈의 전투 결과가 곧 검증의 과정인 셈이다.

‘왜?’

여기서 체브는 최근 하회탈의 행보를 다시 한 번 되짚었다.

이제까지 혼자서 아주 열심히, 맛있게 꿀을 빨고 있던 하회탈의 최근 행보는 크게 달라져 있었다. 이제까지 자신이 누리던 모든 사냥 노하우를 아낌없이 공개하고 있었고, 이제는 전황을 바꿀 만한 새로운 방법을 직접 혼자서 검증을 하려고 한다.

‘영웅이 될 생각인가?’

체브는 곧바로 하회탈이 셰가 성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을 경우를 상상했다.

누가 보더라도 승리가 예상된 전투에서는 이겨봤자 영웅이 될 수 없다.

영웅은 누가 보더라도 패배가 예상된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을 때 등장하는 법이다.

만약 하회탈이 영웅이 된다면, 이번 대격전 무대에서 그의 발언권은 매우 높아질 것이다.

“빅케이, 수고했어.”

- 아닙니다.

“그럼 이만 통화를 종료하지. 급하게 다른 사람과 통화할 일이 있어서 말이야.”

- 알겠습니다.

통화가 종료됐고, 체브는 곧바로 누군가에게 통화를 시도했다. 짧은 착신음 끝에 목소리가 나왔다.

- 말해.

“하회탈을 매수해야겠어.”

< 42화. 배드 엔딩?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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