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솔플의 제왕-117화 (117/192)

< 41화. 대격전의 서막 (1). >

1.

“안녕하십니까, 이번 주 랭킹쇼 진행을 맡은 아몽.”

“진행 보조를 맡은 켄입니다.”

뉴스에서나 볼법한 독특한 모양의 책상을 앞에 은빛 갑옷과 붉은색 로브 마지막으로 하얀색 사제복을 입고 있는 세 사내가 앉아있었다.

아몽켄 랭크쇼.

워로드와 관련된 것들에 순위를 매기는 프로그램으로 매주 방송이 될 때마다 3,4백만의 조회수는 거뜬히 나오는 인기 프로그램이었다.

“오늘의 게스트는 트리플윙 길드를 대표하는 최고의 사제 중 한 명, 키피 님을 모셨습니다.”

“트리플윙 길드의 메인 레이드 팀에서 최전방 힐러 역할을 맡고 있는 키피입니다. 랭킹쇼 시청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인기의 비결은 넓은 인맥을 이용한 섭외력. 30대 길드 소속으로 나름 인지도 있는 유저가 매주 게스트로 출연할 정도니, 섭외력을 의심할 여지는 없다.

반대로 그 섭외력을 제외한 방송 내용 자체는 특별할 게 없었다.

“자, 그럼 키피 님을 데리고 곧바로 랭킹쇼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첫 랭킹은 뭐입니까?”

“이번 주 유료 영상 수입 랭킹입니다.”

누구나 모을 수 있고, 자극적인 것을 소재 삼아 이야기를 하는 게 랭크쇼의 전부였다. 더불어 나누는 이야기는 어떤 의미에서 뒷담화에 가깝다.

물론 그게 인기 비결이기도 했다.

“가장 화끈한 주제가 나왔군요. 좋습니다. 화끈한 만큼, 1위부터 공개하죠?”

“1위는 레드불스 길드의 가시 거북 레이드 영상이 차지했습니다.”

“꽤 이례적인 경우지요?”

“이례적이지요. 보통 라이브 채널 방송권을 가지고 30대 길드의 레이드는 실시간 관람이 가능한 라이브 티켓이 많이 팔리고, 상대적으로 유료 영상 구매자수는 적은데 이번 경우는 다릅니다.”

“그렇죠. 라이브 티켓 판매량과 유료 영상 구매자수는 반비례하는 게 보통이죠.”

“레드불스의 가시 거북 레이드의 경우에는 라이브 티켓만 150만 장을 팔았는데, 유료 영상 구매자수도 93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이번 주에만 유료 영상 구매자가 20만 명이 늘어났네요. 대단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30대 길드에서 현역으로 활동하시는 키피 님이 보다 자세한 설명을 해주실 수 있을 것 같군요. 설명 부탁합니다.”

아몽의 질문에 키피는 곧바로 설명을 이어갔다.

“가시 거북은 본래 25인까지 레이드에 참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영상은 보신 분은 아시듯이 12인으로 레이드에 성공했습니다. 극단적으로 레이드 멤버를 줄였죠. 때문에 이번 레드불스의 가시 거북 레이드 영상은 분석할 가치가 있습니다.”

“분석할 가치가 있다?”

“분석을 하려면 여러 차례 영상을 봐야 하고, 그럼 영상을 구매하는 수밖에 없죠. 그리고 가시 거북 자체가 난이도 대비 주는 아이템이 꽤 괜찮고, 등장 지역도 현재까지 세 곳이 발견되면서, 사냥 대기 시간이 꽤 낮은 편입니다.”

“그럼 그 레드불스가 그 부분을 유도한 겁니까? 분석이란 새로운 트렌드를 노려서?”

“아뇨, 보통은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진 않습니다. 레드불스 사정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30대 길드는 레이드를 할 때 1순위로 퍼스트킬을, 2순위로 생존을 잡습니다. 레이드 팀의 머릿수를 줄이는 건, 이 두 가지를 전부 포기하는 일이죠.”

“오호, 현역에서 뛰시는 분이라서 그런지, 이야기의 설득력이 다르군요.”

“아마도 훈련일 가능성이 큽니다.”

“훈련? 그런 것도 합니까?”

“당연히 합니다. 특히 이렇게 인원을 줄인 채로 레이드를 하는 경우는 많지 않아서, 의도적으로 훈련을 해야만 대처 능력을 키울 수 있죠.”

“그런 게 있었군요. 역시 비싼 돈 들여서 모신 보람이 있습니다.”비싼 돈이란 말에 키피가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뭐, 너무 명쾌한 설명이라서 추가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자, 그럼 랭킹 2위를 확인해볼까요?”

“아몽, 이미 1위를 발표했는데, 2위부터 발표하는 건 좀 지루하지 않습니까? 다른 랭킹 1위를 살펴보죠?”

“좋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개인 유료 영상 랭킹 1위를 알아봅시다. 발표는 키피 님이 해주시요.”

헛기침을 하던 키피가 자신만이 볼 수 있는 홀로그램창의 대본을 보고 침착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번 주 개인 유료 영상 랭킹 1위는…… 퍼스트원 설우의 워로드 다이어리가 차지했습니다. 한주에만 구매자수가 101만 명, 대단한 기록입니다.”

“사실상 퍼스트원은 논외의 대상이죠. 2위와의 구매자수 차이가 현격하게 나죠.”

“혼자서 30대 길드와 경쟁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는 평가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죠. 물론 라이브 티켓을 주력으로 하는 30대 길드와 유료 영상을 주력으로 하는 퍼스트원을 단순비교할 수는 없습니다만.”

“키피 님, 동의하십니까?”

“퍼스트원의 팬분들이 워낙 열성적이라서, 여기선 동의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럼 속으로는 동의하지 않는다? 퍼스트원은 별거 아니다?”

“파격 선언이네요.”아몽과 켄의 말에 키피가 어색하게 웃으며서 손을 내저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키피의 눈이 대본을 훑었다. 이 모든 것은 대본이 그대로 적혀 있었다.

“동의합니다. 대단하신 분이죠. 이거 왠지 이상하게 편집될 거 같은데, 잘 좀 부탁합니다.”

“그러고 보니 30대 길드와 혼자서 자웅을 가릴 만한 인물이 하나 더 있지 않습니까?”

“랭킹에도 있습니다. 랭킹 11위, 하회탈의 첫 데뷔작, 크리스마스트리의 악몽이 이번 주에 4만 명의 구매자수를 추가하면서 누적 25만 구매자수를 기록했습니다.”

“데뷔작이 이 정도 성공을 거두기란 쉽지 않은데, 하회탈이라고 하니 오히려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키피 님, 하회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생각이라고 할 게 있겠습니까? 이렇게 게임을 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 이야기 말고, 소문 같은 거 없습니까? 30대 길드가 하회탈을 주목하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인데, 그렇다면 30대 길드 정도라면 하회탈의 비밀도 알고 있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건 하회탈의 외모에 대한 것인데, 일부에서는 굉장한 미남이다 혹은 여자다, 세계적인 재벌가의 자제다, 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아시는 게 있으시면 슬쩍, 하나 던져주시죠. 여기서 무슨 말을 하시느냐에 따라서 앞선 퍼스트원 부분의 편집이 달라질 겁니다.”

질문을 던지는 아몽과 켄의 솜씨는 드리블과 패스를 완벽하게 해내는 축구선수를 떠올리게 만들 정도였다.

“하회탈에 대해서는 들은 게 많지 않아서…… 아 빅스마일 길드와 사이가 안 좋다는 소문은 들었습니다.”

“아, 이거 그때의 복수입니까? 이런 식으로 하회탈하고 빅스마일 길드 사이를 갈라놓으시려는 겁니까?”

“소문을 말했을 뿐입니다. 소문.”

“그럼 소문은 그만 이야기하고, 하회탈의 인기비결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해봅시다. 하회탈, 왜 그는 이렇게 많은 인기를 누리는 걸까요?”

그 질문에 키피는 잠시 고민을 했다. 대본에는 이 질문까지만 적혀 있었다. 대답은 키피 스스로가 생각해 내야 했다.

“음…… 설우가 최고의 한 명이란 의미에서 퍼스트원이라면, 하회탈은 온니원입니다. 하회탈의 전투는 오직 하회탈만이 보여줄 수 있죠.”

2.

“달라붙어! 그냥 달라붙으라고!”

히르칸의 외침에 반응하듯, 해골 전사들이 적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들었다.

상대는 몸길이 30미터, 적갈색의 비늘을 가진 드래곤이었다.

워로드에서 드래곤 타입의 몬스터의 몸길이가 30미터면, 대개 중형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지금 녀석은 결코 중형으로 분류될 만한 놈이 아니었다. 녀석에게는 꼬리와 날개가 없었다. 때문에 30미터란 길이는 머리부터 꼬리가 아니라, 머리부터 몸통까지의 길이를 의미했다.

노테일 드래곤이다.

150레벨의 보스 몬스터로, 사냥 난이도는 드래곤 타입인 것에 비해 그다지 높지 않다.

동시에 드랍하는 재료 코인으로 제작 가능한 아이템 역시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했고, 이런 이유로 레이드를 주업으로 삼는 대형 길드들 사이에서는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하는 녀석이었다.

물론 난이도가 낮다는 건, 만반의 준비를 갖춘 실력 좋은 레이드 팀을 기준으로 했을 때 이야기다. 노테일 드래곤의 두 팔은 생각 이상으로 빠르고, 날렵했으며, 무엇보다 표적을 정확하게 쫓을 줄 알았다.

지금도 그랬다.

노테일 드래곤은 해골 전사들이 달려드는 순간 개중 한 마리를 제 손으로 쾅! 내리쳤다. 못을 망치로 단숨에 찍어 박은 듯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히르칸의 해골들이 보여주는 회피 능력이 쉽사리 통하지 않을 정도의 날렵함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물론 해골 전사는 그냥 죽지 않았다.

콰직!

해골 전사가 파괴되면서 토해낸 검은 수액이 노테일 드래곤의 오른손을 듬뿍 적셨다.

크르르!

노테일 드래곤의 입에서 서슬 퍼런 울음이 흘러나왔다.

그러는 사이 남은 해골 전사 세 마리가 노테일 드래곤의 등가죽 위를 향해 몸을 날렸다.

노테일 드래곤의 갑옷 같은 적갈색 가죽은 엉망이었다. 곳곳에 상처가 가득했다. 상처가 없는 영역보다 상처의 영역이 더 많아 보일 정도. 해골 전사들은 그 상처 부위에 쥐고 있는 칼을 꽂았다. 단단한 비늘이 사라지고, 살점만이 남은 노테일 드래곤의 몸뚱이는

해골 전사의 칼을 제대로 버텨내지 못했다.

푸욱!

칼이 깊숙하게 박혔다.

크오오!

그 순간 노테일 드래곤이 괴성을 내지르며 자리에서 번쩍 일어났다. 그리고는 곧바로 뒤로 자빠졌다. 등 뒤에 달라붙은 놈들을 그대로 짓눌러 뭉개려는 속셈이었다.

떨그럭떨그럭!

그 순간 해골 전사들은 도망치지 않은 채, 그대로 멈췄다. 노테일 드래곤의 몸에 박힌 칼을 쥔 채 자세를 낮추고, 주변을 경계했다. 그런 해골 전사들의 결말은 뻔했다.

쿠우웅!

지축이 흔들릴 정도로 강력한 충격이 주변을 휩쓸었다.

크오오오!

그리고 그 충격 뒤로 이제까지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울음을 토해내는 노테일 드래곤의 등가죽이 시커멓게 물들었다. 심지어 상처마저 검게 물들었다. 검은 수액이 이제는 노테일 드래곤의 분노를 넘어, 단말마마저 이끌어 낸 순간이었다.

‘이제 3페이즈인가?’

[노테일 드래곤의 분노가 절정에 다다릅니다.]

[노테일 드래곤의 단말마가 주변을 휩씁니다!]

노테일 드래곤의 마지막 발악이, 광범위 디버프 스킬이 발동됐다. 레이드에서 광범위 디버프 스킬은 악몽이지만, 히르칸에게는 그토록 기다리던 신호였다.

[정화의 서클렛이 노테일 드래곤의 단말마로부터 당신을 지켜줍니다.]

‘이제 마지막 페이즈.’

히르칸이 아반의 검을 뽑았다.

‘이 녀석만 잡으면 160레벨, 오늘부로 아반의 검도 졸업이네.’

120레벨 때부터 이제까지 히르칸에게 그 어떤 아이템보다 많은 도움을 줬던 아반의 검에 감사하며, 히르칸은 노테일 드래곤을 향해 달렸다. 그런 히르칸을 따라 해골 기사와 해골 전사들 역시 질주했다.

오직 히르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전투가 펼쳐지고 있었다.

3.

‘25만 명.’

노테일 드래곤의 시체가 녹아내리는 동안, 히르칸은 다시 한 번 자신이 올린 영상의 구매자수를 확인했다. 25만이란 구매자수를 확인한 히르칸이 혀를 내둘렀다.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구매자수를 확인한 히르칸은 솔직히 지금도 믿기지 않았다.

‘10만 정도를 예상했었는데…….’

하회탈 길드를 운영할 당시, 유료 영상 데뷔작 성적은 3만이었다. 그 성적표를 받았을 때 모두가 환호를 했다. 김동수와는 따로 만나서 술잔을 기울였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데뷔작 성적이 25만이다. 심지어 구매자수는 계속 늘어나는 중이었고, 구매자들의 평가 역시 호평일색이었다.

‘잘나가니까 오히려 찝찝할 지경이네.’

히르칸의 입가가 꿈틀거렸다. 미소를 지을 법한 상황인데, 쉽사리 미소가 지어지지 않았다.

지금 이 상황은 명백한 호재다. 하지만 이 호재 앞에서 히르칸은 기쁨보다는 이제 책임감을 느꼈다. 무료 영상을 올리고 후원금을 받는 것과 유료 영상을 올리고 판매 수익을 받는 건 분명 다른 이야기이니까.

‘다음 유료 영상이 기대만큼 안 나오면, 곧바로 사방팔방에서 날 물어뜯겠지.’

그 차이를 히르칸은 하회탈 길드를 운영하면서 뼈저리게 느꼈다. 안일한 판단과 결정이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 직접 경험했다. 때문에 히르칸은 자만하지 않았고, 동시에 더 높은 곳으로 오르기 위한 준비를 했다.

이번 노테일 드래곤 레이드도 그 준비의 과정이었다. 노테일 드래곤 레이드 영상은 무료로 올릴 생각이었다.

‘무료 영상을 계속 올려서 페이지 구독자수를 유지하면서, 유료 영상 수익을 창출해야 해. 그런데 다음 유료 영상으로는 어떤 몬스터를 잡아야…… 아니, 여기서 그저그런 무료 영상 한 편 올리고 바로 유료 영상 내놓는 건 속이 너무 뻔히 보이는 짓인가? 미끼상품

으로 하나 더 올려볼까? 아니면 나도 그냥 퍼스트원처럼 주간 다이어리 같은 걸 만드는 게 나으려나?’

“아, 짜증 나.”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히르칸의 입에서 결국 앓는 소리가 나왔다.

솔직히 최근 들어 유료 영상 성적 때문에 속앓이를 적잖게 했다. 성적이 나오기 전에는 성적에 대한 걱정 때문에, 성적이 잘 나온 후에는 책임감 때문에 그리고 이제는 다음 것도 잘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조금 전 노테일 드래곤 레이드 때도 그랬다. 전투를 하면서, 예전처럼 그냥 잡는 것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잡아야 멋진 영상이 나올지, 그런 고민을 했다.

레이드의 무서운 점은 도중에 마음에 안드는 장면이 나온다고 해서 커트! 를 외치고 다시 찍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게 제일 싫어.’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도 이 스트레스 때문에 꽤 고생했다. 개고생해서 몬스터를 잡았는데, 도중에 사고가 생기고, 비싼 돈 내고 제작한 영상이 기대 이하의 성적을 기록하기라도 하면, 며칠 동안 속쓰림으로 고생할 각오를 해야 했다.

‘사서 고생이지, 사서 고생이야.’

히르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실 이 모든 건 히르칸이 자처한 것이다. 앓는 소리를 내뱉는 건 상관없지만, 누굴 탓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런 상황의 해결책은 간단하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그걸 풀면 되는 거다.

‘메일이나 확인하자.’

히르칸이 곧장 이메일에 접속했다. 메일함에는 수백 통인 넘어가는 이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거래 요청 이메일이었다.

‘블랙 코볼트 왕의 검? 이 새끼 지금 나랑 장난하는 건가? 이딴 걸로 정화의 서클렛을 노려?’

히르칸, 그가 판매 의사를 밝힌 정화의 서클렛에 대한 거래 요청.

2주 전 히르칸은 정화의 서클렛 옵션을 공개했다. 동시에 판매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곧바로 소란이 일어났다.

정화의 서클렛 옵션의 가치를 모를 리 없는 대형 길드에서는 바로 트레이드 요청을 했다. 보기만 해도 입이 벌어질 만한 아이템 목록을 보내줬다. 그걸 보는 게 히르칸의 소소한 낙이었다.

더불어 히르칸은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은 채 아이템을 올렸다. 만약 히르칸에게 정화의 서클렛이 있다는 게 알려지면, 날파리들이 굉장히 많이 꼬일 게 뻔했으니까. 당연히 이번 노테일 드래곤 레이드 영상에서도 정화의 서클렛을 사용하는 장면을 적당히 편집

해야 한다.

‘그래도 너무 인기가 좋은데? 그보다 히드라 길드랑 레드불스, 우레사냥꾼 얘네들은 왜 이렇게 세게 지르는 거지?’

어쨌거나 정화의 서클렛은 히르칸의 쓰린 속을 달래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딜이 기대 이상으로 크게 들어오고 있었다.

특히 히르칸이 거론한 3대 길드의 베팅은 다른 30대 길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어중이떠중이들이 1백만 원을 외칠 때, 30대 길드는 5백만 원을 외치고, 이 세 길드는 1천만 원을 외치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심지어.

‘이 길드는 대체 누군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아이템으로 딜을 하는 거지?’

처음 들어보는 길드는 30대 길드를 뛰어넘는 베팅을 하고 있었다.

‘핸드 길드? 손 길드? 그냥 사기 치려고 이빨 까는 놈들인가?’

핸드 길드.

그들은 가장 큰 딜을 제안한 우레사냥꾼보다 훨씬 더 큰 베팅을 하고 있었다.

‘대어들이 초장부터 베팅을 크게 하네. 아무리 생각해도 베팅이 너무 세.’

사실 히르칸은 정화의 서클렛을 팔 생각이 없었다.

일단 정화의 서클렛은 히르칸이 단물과 쓴물을 다 빼먹은 후에 팔아도 충분히 제값을 받을 수 있다. 레벨과는 무관한 아이템이며, 워로드 내에서 정말 구하기 힘든 반면, 수요는 워로드 유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아이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템을 공개한 건, 일단 언제까지 히르칸이 정화의 서클렛에 대한 존재를 숨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히르칸은 자신의 존재를 수시로 세상에 공개해야 한다. 그런데 그때마다 정화의 서클렛을 사용하는 장면을 편집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결국 공개할 수밖에 없다면, 미리 수작을 부려서 시세를 조작해두는 게 이익!

‘당장 팔 생각은 없었는데, 이 정도면 팔아도…… 아니야, 참자, 참아.’

일반적으로 게임 내에 등장한 아주 희귀하고, 가치 있는 아이템의 시세는 첫 거래 시세가 정가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 점을 이용해서 히르칸은 정화의 서클렛 시세를 말도 안 되는 시세로 측정할 생각이었다.

방법은 간단하다.

현재 정체를 밝히지 않은 정화의 서클렛 소유자가 정화의 서클렛 옵션을 공개했는데, 얼마 뒤에 히르칸이 정화의 서클렛을 착용한 모습을 보인다면?

모두가 히르칸에게 질문할 것이다.

님, 그거 얼마 주고 사셨어요?

그럼 그때 히르칸이 내뱉는 말이 정화의 서클렛의 가격이 되는 셈이다.

모든 아이템이 희귀하단 이유로 이런 수법이 먹히는 건 아니지만, 정화의 서클렛처럼 효용가치가 높은 희귀 아이템은 이런 수법이 먹힌다. 실제로 히르칸이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도 이런 식으로 정화의 서클렛 초기 시세가 굉장히 비쌌었다.

‘그래, 다들 열심히 불러라. 기둥뿌리를 뽑으라고.’

그리고 현재 정화의 서클렛 시세는 히르칸의 예상 이상으로 이미 거품이 잔뜩 끼어 있었다.

그제야 히르칸이 미소를 지었다. 열심히 대출 받아서 산 집의 집값이 호재를 만나 뻥뻥! 오르는 집주인의 심정, 히르칸의 심정이 그 심정이었다.

‘그래.’

그때 히르칸이 무언가가 떠오른 듯, 잽싸게 워로드 관련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정화의 서클렛 옵션을 스크린샷으로 찍은 후에 올렸다.

‘옛다, 서비스다.’

염장샷이었다.

< 41화. 대격전의 서막 (1).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