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솔플의 제왕-116화 (116/192)

< 40화. 아낌없이 주는 원수 (3). >

8.

“총 얼마지?”

“2천 골드 정도…….”

“애매한 수치 말고 정확한 수치를 말해.”

“2,355골드입니다.”

“내가 예상한 수치보다 백 골드 넘는 금액이 더 나온 것 같은데, 계산 제대로 한 거 맞아?”

“그게, 아폴로 님 것까지 달라고 하는 바람에…….”

이야기를 듣던 치로로는 터져 나오려는 욕지거리를 참기 위해 온 힘을 다했고, 그 결과 그의 얼굴은 부들부들 떨렸다. 빅스마일 길드원들은 그런 치로로와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눈동자와 고개를 열심히 돌리고, 굴렸다.

‘젠장.’

여기서 길드원들을 구박하는 게 답이 아님을 아는 치로로는 결국 속에서 분노를 터뜨렸다.

‘제대로 망했군.’

와치맨 스타일인지 뭔지, 어쨌거나 치로로는 하회탈에게 대가를 제공했다. 골드를 탈탈 털었다. 그렇게 털린 골드가 2,355골드. 손목시계를 주는 것보단 훨씬 저렴한 금액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적은 돈은 결코 아니었다.

사실 그 정도 골드를 가지고 다니는 경우가 없는데, 하필이면 파티 사냥을 하던 길드원 중 한 명이 1천 골드짜리 골드 코인을 2개 가지고 있었다. 아이템 거래를 위해 인출한 골드라고 했다.

‘돈을 줘도,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똑같이 돈을 지불한다고 해도, 지금 당장 돈이 없으니 나중에 입금을 해주는 것과 그 자리에서 주머니를 최대한 탈탈 털어 돈을 주는 건, 구질구질함의 차원이 다른 법이다.

‘그냥 싸웠어야 했나?’

치로로는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에 자신이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한 것 같아 후회했다.

물론 그 후회는 오래가지 않았다.

“어떻게 할까요? 다시 핏불을 추적…….”

“됐어. 지금 추적해봤자 못 잡아.”

핏불을 놓쳤다는 사실이 치로로를 더더욱 짜증 나게 만들었으니까. 핏불이 도망치는 순간, 이제껏 해왔던 모든 게 물거품이 됐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돈은 돈대로 털린 것이다.

‘차라리 아폴로, 그놈이 씽에게 죽게 놔뒀어야 했어.’

오히려 아폴로가 씽에게 당해서 게임오버를 당했다면, 명분은 확실하게 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폴로는 하회탈에게 당했다. 이걸 가지고 파이터즈 길드와의 전쟁을 치를 명분으로 삼을 순 없다.

물론 파이터즈 길드가 핏불의 복수를 하려고 나설 수도 있지만, 파이터즈 길드가 바보도 아니고, 전력에서 자신들이 약세인 상황에서, 어쨌거나 죽지 않은 핏불의 복수를 위해 먼저 싸움을 걸 이유는 없다.

게임오버의 유무는 중요하다. 거기서 핏불이 게임오버를 당했다면 파이터즈 길드는 무조건 보복에 나서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길드에 대한 일반 길드원들의 믿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길드원이 당했는데 길드가 아무런 조치도 해주지 않는다면, 그 누가 길드에

대해 믿음과 신뢰를 보내겠는가?

더욱이 씽은 파이터즈 길드 내에서 독특한 위치에 있다. 일반 길드원이지만, 몸값은 간부보다 비싸다. 그런 그의 복수마저 못해준다면, 그냥 평범한 길드원들은 30대 길드에게 당하면, 찍소리도 못한다는 의미다.

여러모로 최악.

그런 치로로의 기분을 더 더럽게 만든 건, 곧바로 온 전화 한 통이었다.

- 어떻게 된 거야? 무슨 일이야?

아폴로,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치로로는 잠시 숨을 돌렸다. 그러지 않으면, 저도 모르게 험한 말이 나올 것 같았다. 그렇게 숨을 돌린 후 치로로는 상황을 설명했다. 설명을 마친 후에 곧바로 질문을 했다.

“하회탈하고 무슨 관계인 겁니까?”

하회탈은 아폴로를 해치우면서 개인적인 복수라고 말했다. 일단 그것부터 확인해야 한다. 만약 하회탈이 거짓말을 한 거라면, 상황은 조금 치로로에게 유리하게 변할지도 모른다.

- 빌어먹을, 지금 그게 중요해? 내가 그 자식에게 당했다고! 하회탈, 그 새끼가 빅스마일 길드에 먹칠을 했다고!

분에 가득 찬 아폴로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치로로는 바로 직감할 수 있었다.

‘개인적인 원한 맞군.’

아폴로의 성격이라면, 개인적인 원한이 없을 경우 무조건 부정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길드를 운운한다는 건, 분명 하회탈과 어떤 사정이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더 문제다. 차라리 아폴로가 사실을 밝혀줬더라면, 대화가 통했을 터. 그러나 지금 아폴로는 이 부분에 대해서 대화를 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그냥 대충 넘어가려고 할 뿐.

때문에 치로로는 확신했다.

‘이 인간 때문에 일이 꼬이면 꼬였지, 풀릴 리는 없겠군.’

이번 일이 더더욱 최악으로 가리란 사실을 말이다.

9.

“여!”

우거진 나무 사이로 히르칸이 손을 흔들자, 굵직한 나무 뒤에서 씽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윽고 그 둘의 거리가 좁혀졌다.

“개같이 생겼다고?”

씽은 인사 대신 조금 전 있었던 일을 언급했다. 히르칸은 그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다고 거기서 널 보고, 거기 잘 생기신 분 저 아세요?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잖아?”

“못할 건 없었지.”

“그건 너무 노골적인 거짓말이잖아? 빅스마일 애들이 퍽이나 믿겠네.”

“그러니까 내가 개 같이 생겼다, 이거군.”

“어.”

히르칸이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여기서 내가 못 이기는 척, 너보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닮았다고 말하리라 생각한 건 아니겠지?”

그 말에 씽이 굳은 표정을 풀고, 옅게 웃었다. 물론 그래도 여전히 험악한 분위기가 나왔지만, 이제는 나름 그 얼굴에 익숙해진 히르칸도 미소를 지었다. 애초에 정말로 히르칸이 한 그 말이 마음에 걸려서, 그것을 언급한 게 아니다.

“고맙다.”

그저 이 낯간지러운 말을 내뱉기 전에 적당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그뿐이었다.

“고마울 건 없지. 그보다 나한테 연락을 하지. 연락했으면 그렇게 상황이 꼬이는 일은 없었을 텐데?”

“연락은 좋은 일 있을 때 하는 거지.”

히르칸이 피식, 웃었다.

“그보다 왜 갑자기 빅스마일 애들이 널 노린 거지? 파이터즈 길드랑 전쟁이라도 할 생각인가?”

히르칸이 곧바로 화두를 바꿨다.

이번 일은 보통 일이 아니다. 씽은 그동안 푸레 숲에서 잘 활동했다. 그런데 갑자기 빅스마일 길드가 씽을 잡으려고 작심하고 나섰다. 만약 거기서 씽이 죽었다면, 파이터즈 길드와 빅스마일 길드 사이에서 충돌이 일어났을 것이다.

“말 그대로 시비를 거는 거겠지.”

씽도 나름 상황은 이해하고 있었다.

“그보다 날 도와줬는데 괜찮은 건가?”

때문에 씽은 히르칸을 걱정했다. 씽은 아폴로와 히르칸 사이의 악연을 몰랐고, 당연히 히르칸이 자신을 돕기 위해, 빅스마일을 건드렸다고 생각하는 중이었으니까.

“나 때문에 빅스마일 길드와 안 좋은 관계가 될 텐데?”

그 말에 히르칸은 콧방귀를 뀌었다.

“빅스마일하고는 원래 관계가 안 좋았어.”

“그래도 이런 식으로 나오면, 빅스마일 길드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그 순간.

“하회탈, 길드에 들어가라.”

히르칸이 씽의 말에 무어라 대답을 하기도 전에 씽이 곧장 제안을 뱉었다. 히르칸이 뚱한 표정을 지었다.

“파이터즈 길드에?”

“아니, 그런 길드가 아닌 최고의 길드에 들어가라. 예를 들면 레드불스나 우레사냥꾼 같은 곳.”

이 갑작스러운 제안이 히르칸의 표정을 굳게 했다. 물론 씽이 히르칸의 사정을 알 리 없겠지만, 그래도 히르칸에게 우레사냥꾼 길드에 들어가란 제안은 히르칸에게 있어…….

‘우습지도 않군.’

정말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였다.

“대체 왜 그런 제안을 하는 거지?”

“하회탈, 네 목적은 워로드의 최고가 되는 것이겠지?”

히르칸은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침을 조금 삼켰다. 히르칸은 굳이 그 사실을 숨길 생각은 없었지만, 씽이 자신의 마음을 읽은 듯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최고가 되려면, 최고의 길드에 들어가는 게 답이다.”

씽의 말은 제안이라기보다는 조언이었다.

물론 주제넘은 소리이기도 했다.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고, 때문에 정말 무례하기 그지없는 말이지만…….”

그 사실을 씽도 잘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그는 했다.

“하회탈, 넌 최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넌 혼자서 모든 걸 하느라, 숨조차 돌리지 못하고 있어.”

씽은 히르칸이 언젠가는 워로드를 대표하는 최강 그리고 최고의 유저가 되리란 사실에 조금의 의심도 없었다. 이번 블랙 트리 레이드에서 씽은 확신마저 하게 됐다. 장담한다. 불가피한 경우가 아닌 이상, 히르칸이 정말 부득이하게 트럭에라도 치이는 사고를 당

하지 않는 이상, 히르칸은 최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히르칸은 모든 걸 혼자 하고 있었다. 이건 명백한 혹사였다. 최고가 될 수 있는 이가, 혹사 때문에 최고가 되기도 전에 망가질지도 몰랐다.

이 사실을 예전부터 짐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씽이 히르칸을 예전보다 더 염려한다는 의미.

히르칸은 그런 씽의 조언에 짧게 대답했다.

“정화의 서클렛, 기대할게.”

10.

‘생각보다 잠잠하네.’

커피를 홀짝이며 태블릿PC를 열심히 문지르던 안재현은 태블릿PC를 종료했다.

빅스마일 길드가 씽을 공격한 지 나흘이 지났다.

안재현은 어떤 식으로든 한바탕 충돌이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충돌은 없었다.

‘대충 합의한 건가?’

물밑 협상이 있었을 가능성이 컸다. 당연히 안재현은 그 물밑 협상 내용을 모른다.

‘빅스마일 새끼들이 힘이 남아돈다, 이거지?’

단지 파이터즈 길드와 한판 붙으려고 모아둔 힘이 그대로라는 걸 추측할 수 있을 뿐. 힘이 모여 있으면 몸이 근질거리는 법이다.

‘아폴로 새끼가 빅스마일 간부가 된 것도 그렇고, 날 가만 놔둘 리는 없겠군.’

안재현은 빅스마일의 다음 타깃이 자신이 될 가능성도 충분히 염두에 두었다.

안재현은 이런 상황이 반갑진 않았다.

‘지금 빅스마일 길드랑 싸우는 건 좀 그렇지…….’

빅스마일 길드가 안재현을 잡기 위해 전력을 다할 가능성은 없다. 그건 빅스마일 길드가 시궁창에 떨어지기 직전에나 가능한 일이다. 막말로 하회탈 하나를 길드 전체가 달려들어 잡아봤자 받는 건 세상으로부터의 지탄, 그것밖에 없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안재현에 대한 견제는 있을 것이다.

문제는 안재현이 그 견제를 가만 놔둘 생각이 없다는 것. 안재현은 물러나기는커녕 맞불을 지를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나중에는 결국 빅스마일 길드와 제대로 한판 붙게 될 터.

때문에 이번에 로매니 필름에 의뢰한 영상이 중요했다.

‘총알만 빵빵하면, 못 싸울 것도 없지.’

안재현은 이번 블랙 트리 레이드 영상을 유료로 판매할 생각이었다. 무료로 공개해서 얻을 수 있는 수입에는 한계가 있다. 물론 그 수입도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안재현이 이제부터 전쟁을 치르려는 무대는 그 정도 수입조차 가소롭게 여겨지는 곳이다.

‘유료 영상 판매 수입이 궤도에 오르면, 그때부터는 전쟁이다.’

유료 영상 판매가 기대만큼의 성과를 올린다면, 그때는 안재현도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생각이었다.

적극적으로 올라갈 것이다. 언더풋 길드를 넘고, 30대 길드의 말석부터 차근차근 무너뜨린 후에, 종국에는 30대 길드의 상석을 차지하는 이들마저 고꾸라뜨릴 것이다.

그날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안재현의 입가에는 정말 행복 가득한 미소가 걸렸다.

‘기다려라. 다들 손모가지를 잘라줄 테니까.’

그런 안재현의 상상은 그다음으로 이어졌다. 30대 길드마저 짓밟고 그 위에 선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워로드 최강이 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최강의 아이템으로 무장한 채, 막강한 불사의 군단을 이끄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 순간 안재현의 입가에 지어진 미소가 점차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최고가 되면…….’

최고가 된 자신을 상상하는 건 쉬웠다.

하지만.

‘뭐하지?’

최고가 된 자신이 해야 하는 것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상상을 거듭하던 안재현의 입가에는 어느새 미소가 사라지고 없었다.

11.

우레여왕, 마타도르, 퍼스트 헤드.

그야말로 워로드를 대표하는 세 명의 유저들. 동시에 너무나도 바빠서 따로 시간을 내기 힘든 이들이기도 했다. 그런 세 명이 한 장소에 만나서 대화를 나눈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게 이유였다.

(채설연 님이 입장하셨습니다)

채설연 : 빨리 본론만 말해.

(최강 레드불스 님이 입장하셨습니다)

최강 레드불스 : 안녕?

채설연 : 너 지금 시비 거는 거냐?

최강 레드불스 : 인사만 했는데?

채설연 : 닉네임 바꿔.

(최강 레드불스 님이 닉네임을 무적 레드불스로 변경하셨습니다)

무적 레드불스 : ^0^

채설연 : 뒈질래?

그 세 명이 구닥다리 채팅프로그램에 접속한 이유.

어쨌거나 채팅방을 개설한 채 두 명이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던 히드라 길드의 퍼스트 헤드의 첫 일은 갑자기 시작된 우레여왕과 마타도르의 키보드 배틀을 막는 것이었다.

퍼스트 헤드 : 장난은 그만합시다.

(방장 님이 채설연 님의 닉네임을 우레여왕으로 변경하였습니다)

(방장 님이 무적 레드불스 님의 닉네임을 마타도르로 변경하였습니다)

단숨에 상황을 정리한 퍼스트 헤드가 곧바로 다음 글을 이어갔다.

퍼스트 헤드 : 일단 접속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레여왕 : 본론.

퍼스트 헤드 : 배덕의 왕자, 그의 정체가 딘 왕자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했습니다.

마타도르 : 역시 히드라 길드, 결국 우리보다 퀘스트 진행이 더 빨랐군. 대단해.

퍼스트 헤드 : 칭찬 감사합니다. 어쨌거나 지금 새로이 시작된 퀘스트는 완료까지 열흘에서 보름 정도 걸릴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리고 이 퀘스트를 완료하는 순간, 딘 왕자의 정체가 공개되고, 곧바로 딘 왕자와의 대격전이 시작될 겁니다.

우레여왕 : D-15?

퍼스트 헤드 : 아닙니다. 카운트다운은 30일입니다. 한 달 후에 퀘스트를 완료할 것입니다.

마타도르 : 전쟁을 준비하라, 이거군.

우레여왕 : 끝?

퍼스트 헤드 : 변동 사항이 있으면 그때 알리겠습니다.

(우레여왕 님이 방을 나가셨습니다)

마타도르 : 대단하군. 우리 둘이 수작을 부릴지도 모르는데, 바로 나가버리다니.

퍼스트 헤드 : 의미심장한 말이군요. 혹시 하실 제안이라도 있으십니까?

마타도르 : 제안은 없고, 그냥 질문 하나 하려고. 뭘 어떻게 해야지 그렇게 퀘스트를 빠르게 진행할 수 있는 거지?

퍼스트 헤드 : 영업비밀입니다.

마타도르 : 그럼 다음 질문인데.

퍼스트 헤드 : 질문이 또 있습니까?

마타도르 : 헬퍼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나?

퍼스트 헤드 : 레이드를 할 때는 종종 도움을 받지만,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 진행시에는 보안 유지를 위해 그 어떤 이들의 도움도 받지 않습니다.

마타도르 : 답변 고맙군.

(마타도르 님이 방을 나가셨습니다)

< 40화. 아낌없이 주는 원수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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