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솔플의 제왕-115화 (115/192)

< 40화. 아낌없이 주는 원수 (2). >

5.

“멍청하게 그걸 놓쳐?”

“그 부분은 할 말이 없네.”

두 유저가 푸레 숲을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었다. 특별한 광경은 아니었다. 워로드에서 치타보다 빨리 달릴 수 있는 유저들은 부지기수. 근력 스탯에 적잖은 투자를 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개중 한 명은 그런 빠르고, 날렵한 움직임이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았다. 비대하기 그지없는 몸뚱이가 쏜살같이 날아가는 광경…… 굳이 예를 들자면 너무 살이 쪄서 제 몸도 가누지 못하는 거대한 돼지가 치타보다 빨리 달리는 광경은 분명 정상이 아니었으

니까.

“내 첫 임무라고! 망치면 전부 가만히 두지 않겠어!”

아폴로, 이제는 빅스마일 길드의 간부가 된 그는 자신을 도와주기 위해 붙은 빅스마일 길드의 실력자 중 한 명인 치로로에게 크게 쏘아붙였다.

이 역시 게임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전력으로 달리는 와중에 큰소리를 치는 건 불가능하다. 게임이 아니었다면, 아폴로는 이토록 빨리 달리기는커녕 집 밖으로 나오는 순간 땀으로 흠뻑 젖은 채 숨을 헐떡이느라, 말 한마디 제대로 뱉지 못했을 것이다.

때문에 치로로는 아폴로의 그런 모습에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는 비웃음을 있는 힘껏 지었다.

‘돼지 새끼가 욕심은 많아서. 용서를 안 해? 웃기지도 않는군. 네놈이 핏불 공격을 조금이라도 제대로 방어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핏불 씽.

파이터즈 길드의 일원인 그를 건드린 건, 아폴로의 개인 판단에 의한 결정이 아니었다. 빅스마일 길드의 판단이었다

그렇다면 왜 핏불을 건드렸을까? 싸움을 거는 이유는 대부분 비슷하다. 시비를 걸기 위해서다.

트리플윙과의 전쟁으로 큰 타격을 입었던 빅스마일 길드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안정을 되찾았을 뿐, 주변 상황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빅스마일 길드의 위치는 어느새 30대 길드 중 꼴찌가 되어버린 것이다.

가장 밑바닥으로 떨어지자, 발아래의 무리들, 언더풋 길드들이 빅스마일 길드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넘어야 할 벽이 아닌, 먹어치워야 할 사냥감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일벌백계가 필요했다. 누가 먹고, 누가 먹히는지 보여줘야 했다.

자신감은 충분했다. 아무리 빅스마일 길드가 말석에 앉았다고 하지만 30대 길드와 언더풋 길드 사이의 역량 차이는 크다.

문제는 명분.

그 명분을 위해 여러 가지 계획이 세워졌고, 개중 하나가 바로 핏불 씽을 잡는 것이었다.

씽은 파이터즈의 길드원이고, 레벨도 굉장히 높고, 실력도 매우 우수하지만 표면상은 일반 길드원이기에 문제가 생겨도 탈이 적다.

또한 본인 혼자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고, 성격 역시 매우 호전적이기에 오는 싸움을 마다치 않는다. 심지어 상대가 다수라고 해도 물러서는 일은 없다.

좋게 보면 굉장히 화끈하고, 멋진 성격이지만 반대로 사냥감으로는 이보다 잡기 쉬운 사냥감도 없다.

실제로 씽은 도발에 보기 좋게 넘어왔다. 포위를 당한 상황에서 그는 싸움을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먼저 선공을 날렸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씽의 갑작스러운 공격의 첫 타깃이 된 아폴로가 손쓸 틈도 없이 당했다.

‘뭐, 핏불이 대단하긴 했지.’

그때를 떠올린 치로로는 혀를 내둘렀다.

다시 생각해도 무시무시한 광경이었다.

돌진 스킬을 이용해 아폴로와의 거리를 단숨에 좁힌 씽은 그 상태로 몸통 박치기를 날렸다.

아폴로의 그 비대한 몸이 풍선처럼 날아갔고, 씽은 그렇게 날아가는 아폴로를 쫓아간 뒤 아폴로의 몸이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의 몸뚱이를 스킬 섞은 검격으로 두드렸다.

카앙, 카앙, 거듭된 씽의 검격 앞에 아폴로의 갑옷은 찌그러졌고, 종국에 씽은 아폴로의 왼팔과 오른 무릎을 잘라냈다.

갑작스러운 공격, 몸통 박치기로 상대를 날려서 1대1 상황을 만든 것, 그 짧은 순간 이어진 스킬과 검격의 향연, 틈이 나오는 순간 이루어진 신체 절단 수법.

‘그런데 거기서 설마 도망칠 줄은 몰랐는데.’

신기에 가까운 수법을 보인 씽은 그 순간 도망쳤다. 그게 가장 예상외의 일이었다.

씽은 죽으면 죽었지, 도망치는 성격은 결코 아니었다. 그가 핏불이라 불리는 건, 외모 때문만이 아니다.

어쨌거나 만약 그때 아폴로가 버티기만 했더라도 씽을 놓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한 방에 날아가다니.’

치로로가 다시 한 번 아폴로를 떠올리며 비웃음을 머금었다.

‘아이템이 아까운 놈.’

아폴로의 아이템은 140레벨대 최고의 아이템이다. 유니크 세트다. 치로로조차 구할 수 없는 수준의 아이템 세팅이다. 그런 아이템을 착용한 주제에 한 방에 당했다.

‘돈이 황제지, 돈이 황제야.’

아버지란 후광이 아니었다면, 그 돈으로 간부들을 매수하고, 운 좋게 다른 간부의 약점을 잡지 않았다면, 아폴로가 빅스마일 길드의 간부가 되는 일은 결단코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지금 빅스마일 길드의 간부들이나, 간부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빅스마일 길드원들 중 대부분은 아폴로의 등장을 반겼다. 어떤 식으로든 콩고물이 떨어지니까.

치로로 역시 마찬가지였다.

‘뭐, 나야 이 새끼 뒤나 닦아주면서 두둑한 용돈이나 챙기면 되겠지.’

치로로가 아폴로 옆에 달라붙은 것도, 콩고물을 가장 가까이서 받아먹기 위해서다.

그렇게 아폴로가 콧김을 연신 토해내며 화를 삭이고, 그런 아폴로를 보며 치로로가 속으로 비웃음을 삼킬 무렵, 보이스톡 프로그램을 통해 연락이 왔다.

- 핏불 찾았습니다!

6.

‘젠장.’

씽은 자신을 포위한 다섯 명의 유저들을 바라보며 이를 꽉 물었다. 그 다섯 명을 바라보는 씽의 시야는 매우 흐릿했다. 마치 폭우 속에서 우산 없이,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세찬 비바람 속의 시야와 비슷했다.

또한 씽은 자신의 팔다리에 아주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단 듯한 느낌을 받았고, 실제로 그의 움직임은 평소보다 매우 느릿했다.

디버프 마법, 아지랑이와 슬로우에 당한 결과물이었다.

‘재수가 없었어.’

씽은 잘 도망쳤다. 솔직히 푸레 숲이란 넓은 숲은 추격대보다는 도망자에게 매우 유리했다.

하물며 푸레 숲을 자기 집마냥 다녔던 씽이 길을 잃을 경우는 제로에 가까웠다. 여차하면 허락받은 이들만이 들어올 수 있는 테이키 부족 마을로 숨으면 됐다.

그런데 하필이면 추격대가 아니라, 그냥 사냥 중인 빅스마일 길드원들하고 마주쳤다.

솔직히 그들이 빅스마일 길드원이란 걸 씽은 몰랐고, 그냥 그들 근처로 스쳐 지나갔다.

더 재수가 없는 건, 마주한 빅스마일 길드원 파티가 꽤 괜찮은 짜임새와 실력을 가진 자들이란 점이었다.

“공격하지 마! 견제! 견제만 해!”

“시간만 끌면 돼, 발목만 잡으면 된다고.”

“소모품 아끼지 마. 사탕 입에 세 개는 넣어둬!”

“스킬 효과 얼마 안 남았어. 캐스팅 들어갔으니까, 마법 쓸 시간만 좀 벌어줘.”

“젠장, 다음에 태어나면 탱커 절대 안 해.”

상황을 이해하고, 최적의 판단을 내리는 그들의 모습에서 씽은 상황이 쉽지 않음을 느꼈다.

특히 디버프 마법에 걸린 게 치명적이었다. PK에서는 칼에 찔리는 것보다 디버프 마법에 걸린 게 더 치명적이다.

‘정화의 서클렛을 쓸 걸.’

이 모든 건, 어떻게 보면 히르칸 때문이었다.

씽은 정화의 서클렛을 주머니에 잘 보관했다.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회탈의 것으로 생각했으니까.

도망친 것 역시 하회탈 때문이었다. 죽는 건 두렵지 않지만, 거기서 게임오버를 당하면 하회탈에게 정화의 서클렛을 늦게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게임에 일찍 접속한 것도, 시간에 쫓기듯 움직인 것도 결국 하회탈에게 보다 빨리 정화의 서클렛을 주기 위해서인 셈.

물론 씽은 하회탈을 탓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살아남는다.’

오히려 살아날 방법을 강구했다.

하지만 그런 씽도 새로이 다섯이나 되는 유저가 등장했을 때, 절망감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7.

치로로와 아폴로가 도착했을 때, 씽의 처지는 그다지 좋지 못한 상황이었다.

격전은 없었다.

씽은 혼자였고, 상대는 열이었으며, 그 열 명 중에는 마법사가 둘이나 있었다.

격전 자체가 허용될 수 없는 전력 차이였고, 열 명은 수적 우위와 마법사란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스트라이커들이 씽을 포위했고, 마법사들이 마법을 던졌다.

“잘했어!”

일방적인 마법 폭력 앞에 엉망이 된 씽을 보고 가장 기뻐한 건, 아폴로였다.

더불어 이 광경은 아폴로가 명령한 광경이었다. 그는 이곳에 오면서, 자신이 직접 핏불을 끝장낼 테니까 절대 죽이지 말라고 명령을 내렸다.

반면 치로로는 이 광경을 보자마자 표정을 굳혔다.

‘빌어먹을 그냥 처리해야 했어.’

이번 일은 씽에 대한 처벌이나, 복수가 아니다. 전쟁의 서막을 위한 효시다. 효시는 깔끔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구차하다. 누가 보더라도 잡는 쪽이 구차하고 비열한 짓을 하고 있다. 결코 빅스마일에게 도움이 되는 광경이 아니다.

치로로는 아폴로를 슬쩍 바라봤다.

‘자기 이름 건 길드를 운영한 새끼가 머리가 이렇게까지 안 돌아가나?’

아폴로가 툭, 던진 말을 치로로가 다시 번복할 수는 없었다. 그 둘 관계는 대등한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만큼은 상하 관계였으니까.

또한 아폴로의 성격을 치로로도 이제는 잘 안다. 치졸하고, 이기적이고…… 여하튼 더럽기 그지없다. 쓴소리를 내뱉는 충신이 있다면 가장 먼저 제거할 타입의 심기를 괜히 건드릴 이유는 없다.

그런 치로로의 심중을 알 리 없는 아폴로는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감히 날 건드리다니.”

심지어 그는 자신의 이 표정을 씽에게 보여주고 싶은지, 투구마저 벗었다. 그런 주제에 거리는 꽤 뒀다. 씽을 포위한 포위망, 그 포위망보다 4,5미터 떨어진 곳에서 서 있었다.

때문에 그가 한 말은 막상 씽에게 닿지 못했다. 씽은 아폴로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그가 등장한 것도 모르고 있었다.

달리 보면 아폴로가 씽에게 무시를 당한 모양새.

아폴로가 굳은 표정으로 재차 소리쳤다.

“감히 날 무시하다니!”

이번에는 호통을 쳤고, 두 번이나 같은 말을 들은 빅스마일 길드원들은 풋,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잠깐 지었다.

이번 호통은 씽에게 닿았다. 씽은 고개를 들어 아폴로를 바라봤다. 비대한 몸뚱이 덕분에 금방 아폴로 찾을 수 있었다.

그 순간 씽의 표정이 굳고,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런 씽의 표정은 살벌했다. 가까이서 그 표정을 본 이들은 물론, 멀리서 그 표정을 본 아폴로마저 식겁할 정도.

아폴로가 저도 모르게 씽의 눈을 피했다.

‘응?’

그런 아폴로의 눈을 향해 무언가가 날아왔고.

푹!

동시에 아폴로의 세상이 시커멓게 변했다.

“어?”

아폴로의 입에서 영문 모를 소리가 나왔다.

“으어어!”

그와 동시에 아폴로의 비대한 몸뚱이가 갑자기 질질 누군가에게 끌려가기 시작했다.

“뭐야? 뭐야!”

아폴로는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상황을 가장 먼저 파악한 건 치로로였다.

‘뭐지?’

자기 옆에 있던 아폴로가 묘한 소리를 내뱉고, 고개를 돌렸을 때 이미 아폴로는 제법 떨어진 곳까지 끌려간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아폴로를 끌고 간 건, 다름 아닌…….

“하회탈?”

워로드에서 가장 확실한 심볼을 가진 자, 하회탈이었다.

‘이, 이건 또 뭐야?’

그래서 치로로는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갑자기 왜 하회탈이 여기서 등장하는 걸까? 대체 왜 그가 아폴로의 두 눈을 찌른 후에 그를 끌고 간 후, 얼굴과 목덜미를 제 칼로 쉴 새 없이 자르고, 찌르는 걸까?

“사, 살려…….”

치로로의 의구심이 끝난 건, 하회탈의 거듭된 공격에 아폴로가 게임오버를 당한 후였다. 의구심이 끝났다기보다는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정신이 들었다.

“하회탈!”

치로로가 소리를 내질렀고, 단숨에 아폴로를 끝장낸 하회탈, 히르칸은 죽은 아폴로의 장갑을 벗기고, 시계가 달린 손목을 제 검으로 내리치며 시계를 가져갈 준비를 했다.

명백한 무시였다.

이 순간 치로로의 귀가 시끄러워졌다.

- 하회탈 맞죠? 왜 하회탈이 여기서 등장하는 거죠?

- 어떻게 합니까? 하회탈도 잡아야 합니까?

- 핏불은 어떻게 할까요?

- 아폴로 님이 당한 건가요?

보이스톡 프로그램이 토해내는 소리들이 치로로의 머릿속을 뒤엉키게 만들었다.

치로로는 신경질적으로 크게 소리쳤다.

“닥쳐봐, 좀!”

험한 말이 나왔다. 그만큼 치로로의 머릿속 상황이 좋지 못하다는 이야기. 더불어 그 외침은 히르칸에게도 닿았다. 시계를 챙긴 히르칸은 그제야 치로로를 바라봤다.

“후우!”

많은 것이 섞인 한숨을 내뱉은 치로로가 머릿속을 정리한 뒤에 히르칸을 향해 말했다.

“하회탈, 맞나?”

“이거 보면 몰라?”

툭툭, 히르칸이 제 하회탈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왜 우리를 공격한 거지? 설마 파이터즈 길드와 손을 잡은 것인가?”

“파이터즈?”

하회탈이 고개를 갸웃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그 제스처의 호소력은 상당했다.

누가 보더라도 하회탈의 등장은 위기에 빠진 핏불을 구해주기 위한 등장이 맞았다.

그러나 하회탈의 반응이 치로로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의 해결법은 하나다.

“핏불 씽을 구하기 위해 빅스마일 길드를 공격한 건가?”

대화.

“핏불 씽? 저기 있는 사람을 말하는 건가?”

히르칸이 그런 치로로의 말에 손가락으로 포위망에 갇힌 핏불을 가리켰다. 동시에 히르칸이 외쳤다.

“어이, 거기 개같이 생기신 양반. 당신 나 알아?”

씽은 대답 대신 킁, 콧바람을 한 번 냈다. 모른다는 의미다. 치로로의 머리는 이제 터질 지경이었다.

“그럼 대체 왜 우리를 공격한 거지?”

“널 공격한 적 없어. 난 아폴로 길드에 대한 개인적인 복수를 행했을 뿐이지.”

이 대목에서 치로로의 머리는 그냥 터져버렸다. 정상적인 사고 자체가 불가능했다.

“아폴로는 지금 빅스마일 길드의 간부다! 지금 네 공격은 빅스마일에 대한 적대 의지라고 봐도 되겠나?”

결국 치로로가 무모한 승부수를 던졌다.

그 말에 히르칸은 대답 대신에 턱짓으로 주변을 가리켰다. 치로로가 곁눈질로 히르칸이 턱짓을 한 곳을 바라봤다.

‘쳇.’

그곳에는 방어 모드로 대기 중인 해골 전사들이 가득했다. 히르칸이 손가락을 튕기는 순간, 그들이 치로로를 비롯해 빅스마일 길드원들을 향해 가차 없이 달려들 것이다.

치로로가 침을 삼켰다.

‘저게 그 유명한 하회탈 해골들이군.’

히르칸의 전투 능력은 명불허전이다. 물론 치로로 쪽도 숫자가 적진 않으니, 승산이 없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피해는 무조건 감수해야 한다. 더욱이 하회탈은 도망칠 줄 아는 자다. 아니다 싶으면 해골을 미끼 삼아 도망칠 것이다. 그럼 더 골치가 아파진다.

그런 치로로의 심중을 꿰뚫을 기세로, 히르칸이 말을 던졌다.

“지금 나를 향한 그 협박, 빅스마일 길드의 선전포고로 받아들이지. 이 시간부로 빅스마일 길드와 전쟁을 하겠다.”

그 선포에 치로로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아.’

무모한 승부수가 기어코 패착이 됐다.

‘그건 안 돼!’

하회탈의 몸값은 절정이다. 그가 가입하고 싶다고 의견을 표시하면 30대 길드가 그를 간부 대우로 받아줄 것이다.

그런 그를 적으로 둔다는 건, 그가 불리할 경우 언제든 몸담을 수 있는 길드와도 적대관계가 된다는 의미다. 30대 길드 입장에서 빅스마일 길드랑 싸우는 건 그렇게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히르칸을 얻는 대가라면 한판 붙어볼 상대다.

어차피 전면전은 없다. 그런 상황이 나오면 빅스마일 길드가 나서서 하회탈에게 사죄할 가능성이 크다. 트리플윙과의 전투로 위기를 겪은 빅스마일이 30대 길드와 다시 전쟁을 치르는 건, 자멸행위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나오면 결국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할 터. 미래는 모르지만, 그때 책임자가 누가 될지는 명백하다.

“자, 잠깐!”

미래의 책임자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치로로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미안, 사과한다. 내가 착각을 했다. 협박을 할 의사는 없었다. 마음이 상했다면 미안하다.”

구차한 모습이었다. 조금 전 기세등등한 모습이 섞이면서 치로로는 구차함을 넘어서 불쌍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하회탈은 진지하게 대답했다.

“우리나라 워로드 유저들 사이에서는 잘못을 저지른 이가 사과를 할 때 자신의 손목을 직접 잘라 자신의 손목시계를 준다. 일명 와치맨 스타일, 사과를 한다면 그 정도 정성은 보여야지.”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던 치로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와치맨? 그건 또 뭐야?’

와치맨 스타일이 뭔지 치로로가 알 리가 없다.

하지만 히르칸의 이야기를 해석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시계를 줄 수 없다는 것. 여기 모인 빅스마일 길드원 중 상당수는 자기 돈으로 아이템을 맞춘 게 아니라, 길드가 지급한 아이템을 착용하고 있다.

그런데 시계를 건네준다고? 더욱이 PK를 당해서 시계를 빼앗기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자기 손목을 잘라 시계를 준다?

“……다른 방법은 없나?”

“사과하는 입장에서 방법을 가린다?”

“아이템은 힘들다. 다른 방법으로 보상을 하겠다.”

치로로의 말에 히르칸이 고개를 살짝 돌리며 콧방귀를 뀌었다. 치로로가 입을 다물었고, 좌중에 모인 이들 역시 저도 모르게 그 광경에 귀를 기울이고, 시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히르칸의 입이 열리길 기다렸고, 히르칸은 그들을 초조하게 만들려는 듯, 좀 더 시간이 흐르고, 침묵이 깔린 후에 입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열었다.

“1레벨에…… 1골드.”

그 대답이 나오는 순간 모두가 히르칸과 치로로의 대화에 정신이 팔리는 순간.

“으악!”

씽, 그가 움직였다.

상태 이상 마법의 효과가 사라지는 순간, 씽은 포위망을 구성하는 스트라이커 중 한 명을 몸통 박치기로 날려버린 후에 뚫린 포위망 사이를 뚫고 잽싸게 도주했다.

“뭐야?”

“튀었어?”

히르칸에 정신이 팔리는 바람에 나머지 일원들은 그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개중 일부는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씽을 쫓기 위해 움직이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도 결국 움직이지 못했다.

“레벨 구라치다 걸리면 손모가지 날아간다!”

히르칸의 외침이 모두의 발목을 잡았다.

< 40화. 아낌없이 주는 원수 (2).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