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카타콤 (3). >
8.
왈츠 영상을 찍을 당시 히르칸은 생각했다.
‘이건 돈이 안 되겠는데…….’
물론 그 예상은 처참하게 그리고 기분 좋게 부정당했다. 왈츠 영상은 히르칸을 일약 스타로 만들어줬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오늘 찍게 될 영상은 대실패를 할지도 모른다.
‘이거 돈 좀 되겠다.’
지금 이 순간 히르칸은 왈츠 영상을 찍을 당시와는 전혀 다른, 정반대의 직감을, 예감을, 느낌을 받았으니까.
‘진짜 이번 건 대박의 느낌이 나.’
히르칸이 자신을 그토록 괴롭히던 미로를 빠져나왔을 때 그의 앞에는 새로운 입구가 등장했다.
그 입구는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인스턴스 던전의 입구였고, 그건 곧 카타콤 무대의 보스 몬스터가 존재하는 장소라는 명백한 증거였다.
히르칸은 그 무대에 일말의 망설임 없이 몸을 던졌다. 고민은 없었다. 소모 아이템은 충분했고, 무엇보다 이 지겨운 카타콤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만으로도 이미 몸이 근질거렸으니까.
이윽고 다다른 곳은 거대한 공동이었다. 작은 돔구장을 떠올리게 할 정도의 크기를 가진 공동. 키메라 해골들과 주인 잃은 갑옷과 무기들로 가득 찬 공동.
카타콤이란 던전 이름에 어울리는 키메라들의 공동묘지였다.
[누가 이곳의 안식을 깨우는가!]
그곳에 오우거가 있었다.
그냥 오우거가 아니었다. 오우거의 뼈로 만들어진 스켈레톤이었고, 선명할 정도로 뚜렷한 문양…… 삼사의 문양, 딘 왕자의 문양이 가슴팍에 크게 새겨져 있는 검은 갑옷을 입는 오우거였다.
[다른 교도관들은 무엇을 했는가?]
험악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호통을 내지르는 오우거 스켈레톤의 오른손에는 보는 것만으로도 무시무시하기 그지없는 거대한 철퇴가, 왼손에는 보랏빛을 내뿜는 보석이 대롱대롱 매달린 기괴한 등(
여기까지만 해도 히르칸은 대박을 직감하진 않았다. 히르칸은 그저 눈앞에 등장한 카타콤의 보스 몬스터, 카타콤 교도관을 처치할 수 있는 방법을 머릿속으로 강구할 뿐이었다.
그런데.
[괘씸한 놈들! 일어나라! 일어나서 이곳의 안식을 방해하는 자를 처단하라!]
카타콤 교도관이 손에 든 보석등이 보다 강렬한 보랏빛을 내뿜는 순간, 그 보랏빛에서 나온 혼령 비슷한 것들이 사방에 너부러진 해골들 하나하나에 깃드는 순간.
그 순간 히르칸은 직감했다.
‘설마?’
이번 보스 몬스터의 특성은 명약관화했다.
해골 부하를 소환하는 타입. 일명 리치 스타일이라고 불리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놈이었다. 보기 드문 케이스이긴 하지만, 이상할 건 없었다. 때문에 특별할 것도 없었다.
그 상대가 히르칸이 아니었다면.
‘드디어 이 매치업이 성사되는구나.’
워로드 최고의 네크로맨서이자, 새로운 개념의 네크로맨서…… 하회탈 스타일을 창시한 하회탈 히르칸이 아니었다면.
‘이게 진짜 빅매치업이지.’
그런 요소들이 아니었다면 특별히 특별함을 부여할 이유는 결코 없는 상황이었다.
‘이건 못해도 천만이다.’
반대로 하회탈이기에, 이 매치업은 그 어떤 보스 레이드보다 인상적인 특별함을 가질 수 있었다.
리치 스타일의 보스 몬스터 대 하회탈 네크로맨서의 대결.
하회탈의 팬이라면 그리고 워로드를 즐겨보는 워로드의 팬이라면, 결코 지나칠 수 없는 매치업이다.
[네놈, 이곳의 안식을 깨운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다!]
그렇기에 히르칸은 호통을 내지르는 카타콤 교도관을 향해 소리를 내질렀다.
“대가를 치르게 해준다? 감히 네놈이, 나 하회탈 히르칸에게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다고?”
히르칸은 여기서 연기를 했다. 대사를 뱉었다.
이번 전투에 보다 많은 가치를, 멋을, 그럴싸함을 부여하기 위해서!
물론 뱉는 순간 후회했다.
‘이 대사는 좀 그런가? 낯간지럽네.’
물론 연기란 게 언제든 NG가 날 수 있는 법. 히르칸은 자신을 향해 분노를 토해내는 카타콤 교도관을 앞에 두고, 머릿속으로 진지하게 새로운 대사를 고민했다.
‘그래, 이걸로.’
이윽고 새로운 대사를 떠올린 히르칸이 자세를 잡은 후에 다시 한 번 소리쳤다.
“대가라…… 내가 누군지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지.”
이번 대사도 유치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히르칸은 자신의 대사가 퍽 마음에 든 듯,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뼈저리게! 명대사 하나 나왔군.’
로매니가 만약 지금 히르칸의 마음속을 들여 볼 수 있었다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히르칸은 제 말에 흠뻑 취했다. 물론 취하면서도 할 건 했다.
[안식을 방해하는 자를 해치워라!]
어느새 전투를 위한 모습을 갖춘 열 마리의 키메라 스켈레톤들을 바라보는 히르칸의 손아귀에는 어느새 보석 하나가 쥐여있었다. 히르칸은 그 보석을 쥐어짜내듯 꽉 움켜쥐었다.
뚝뚝!
보석에서 나온 영롱한 빛이 바닥을 적셨다.
쿠쿠쿠!
보석을 머금은 바닥이 거칠게 흔들리며 바닥이 솟구쳤고, 이내 카타콤 교도관만큼이나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는 골렘이 모습을 드러냈다.
심지어 그 골렘은 오우거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그냥 오우거가 아니라 머리가 두 개 달린 오우거.
트윈 헤드 오우거.
110레벨의 보스 몬스터로 유저들 사이에서는 현재까지 발견된 여러 종류의 오우거 중에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녀석으로 평가받을 정도로, 오우거 중에서도 나름 손에 꼽히는 강력함을 가진 놈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녀석을 잡아 얻을 수 있는 재료 보석의 가격은 굉장히 비쌌다. 잘 나오는 보석, 안 나오는 보석에 따라 가격 차가 있지만 가장 저렴한 녀석도 5백 골드는 했다.
‘한방에 한 달 식비가 하늘로 날아가는군.’
히르칸이 혹시 모를 상황에 써먹기 위해, 정말 아껴두고 있던 녀석이었다. 어지간하면 쓰는 일이 없기를 소원하며 금괴를 품듯, 소중히 가슴에 품고 있던 녀석이다.
‘뭐, 좋아. 까짓것.’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히르칸은 돈 생각은 머릿속에서 버렸다.
오직 그림만 그렸다.
트윈 헤드 오우거 골렘을 소환하고 곧바로 해골 조각 열 개를 바닥에 흩뿌렸다. 열 마리의 해골을 소환하는 이유 역시 그림을 위해서였다. 카타콤 교도관, 녀석이 소환한 키메라 스켈레톤의 숫자도 열 마리였으니까.
오우거를 사령관으로 둔 열 마리의 해골, 불사의 군단들이 서로를 마주 봤다.
그 장면은 마치 본격적인 연기를 앞둔 배우들의 모습 같았다. 그리고 히르칸이 제 손가락을 이용해 딱딱! 큐사인을 냈다.
왈츠의 뒤를 잇는 히트작, ‘뼈의 전쟁’이 시작됐다.
9.
첫 번째 격돌은 히르칸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해골 기사의 버프를 비롯해 해골학의 효과마저 받는 완벽 무장의 해골 전사들은 키메라 스켈레톤에게 악몽이나 다름없었다.
심지어 카타콤 교도관은 뒤에서 보석등만 든 채 전장을 지휘만 했을 뿐이었다. 그에 비해 트윈 헤드 오우거 골렘은 양손에 들고 있는 거대한 몽둥이로 키메라 스켈레톤을 가차 없이 두드렸다. 키메라 스켈레톤의 머리통이 야구공처럼 날아다녔다.
[네놈, 가소롭구나!]
첫 번째 격돌이 끝나는 순간, 카타콤 교도관은 다시 한 번 보석등을 흔들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스무 마리의 키메라 스켈레톤이 모습을 드러냈다.
히르칸은 이번에도 숫자를 맞춰줬다. 열 마리의 해골 부하들을 추가로 소환했다. 개중에 해골 마법사 세 마리를 섞었다.
여러 문양이 수놓아져 고급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기는 로브와 딱 봐도 비싸 보이는 보석이 박힌 지팡이를 든 해골 마법사들은 두 번째 격돌을 더더욱 압도적인 승리로 이끌었다.
해골 마법사 세 마리가 동시에 던진 거대한 불덩이가 전열을 갖추고 있는 키메라 스켈레톤을 가차 없이 뭉갰다. 뭉개진 전열 사이를 파고든 해골 전사들은 그야말로 미쳐 날뛰었다. 만약 이 게임이 RPG가 아니라 AOS게임이었다면, 해골 기사의 머리 위에 폭죽과
함께 펜타킬이란 단어가 떠올랐을 것이다.
[멍청한 놈들!]
카타콤 교도관은 곧바로 보석등을 휘둘렀다. 세 번째 군단을 소환했다. 이번에는 서른 마리의 키메라 스켈레톤이 소환됐다.
이제는 카타콤 교도관이 수적 우위를 점하게 됐고.
[내가 직접 나서겠다!]
이제까지 뒤에서 뒷짐만 지고 있던 카타콤 교도관이 거대한 철퇴를 가볍게 흔들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앞으로 나섰다.
그 모습을 본 히르칸이 아반의 검을 들었다.
세 번째 격돌은 앞선 격돌과는 다르게 접전이었다. 격돌의 효시는 오우거들이었다.
카타콤 교도관과 오우거 골렘, 둘이 서로가 가진 무시무시하기 그지없는 무기를 서로를 향해 망설임 없이 휘둘렀다.
콰앙!
카타콤 교도관이 휘두른 철퇴는 단 한 번에 트윈 헤드 오우거 골렘의 머리통 중 하나를 뭉개버렸고.
까앙!
오우거 골렘이 휘두른 둔기는 카타콤 교도관의 갑옷 옆구리를 흉측하게 찌그러뜨렸다.
카앙, 카앙!
그 격돌을 시작으로 해골들의 전투가 시작됐다. 서로의 병장기들이 부딪치며 나오는 쇳소리들이 주변을 가득 채웠다. 소음만으로도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그러나 히르칸은 이 소음의 소란 속에서 은밀하게, 신속하게 카타콤 교도관의 후방에 접근했다. 난전 속에서 보이는 정말 바늘구멍 같은 길을 히르칸은 정확하게 포착했고, 덕분에 히르칸은 너무나도 쉽게 카타콤 교도관의 후방에 닿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가소롭다!]
오우거 골렘과 치고받고, 물러서지 않는 임전무퇴의 전투를 치르던 카타콤 교도관의 음성이 그의 등 뒤, 지척까지 접근한 히르칸의 귀에 비수처럼 꽂혔다.
[카타콤의 보석등이 음산한 기운을 내뿜습니다.]
[카타콤 보석등의 저주가 엄습합니다.]
곧바로 알림이 들렸다.
유저가 근접할 경우 자동으로 저주를, 그것도 특정 타깃이 아닌 광역 범위에 저주를 내리는 카타콤 교도관의 특수능력이 발동했다.
‘가소롭군.’
하지만 히르칸은 놀라기보단, 당황하기보단, 오히려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비릿한 미소를 짓는 그의 입안에 맴돌던 사탕 세 개 중 하나가 잘게 부서져 있었다.
[‘백색 이무기 눈깔사탕’의 효과가 저주를 막아냅니다.]
저주와 같은 디버프 스킬을 막아주는 소모 아이템을 입 안에 넣고 다니는 건, 스트라이커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 기본을 히르칸이 모를 리 만무. 카타콤 교도관의 저주는 히르칸의 발목을 잡지 못했고, 히르칸은 가벼운 몸놀림으로 날렵하게 카타콤 교도관의 등에 달라붙었다.
트윈 헤드 오우거 골렘의 몽둥이질 덕분에 찌그러진 갑옷은, 비공식 V기어 클라이밍 세계 신기록 보유자인 히르칸에게 지하철이나 다름없었다. 잡을 곳투성이였다.
개중 하나를 잡은 히르칸이 곧바로 아반의 검을 찌그러진 갑옷 사이에 찔러 넣었다.
카앙!
의외로 갑옷은 단단했다. 이 갑옷을 뚫어야 저주를 걸 수 있으니, 귀찮아진 상황.
하지만 히르칸은 다시금 가볍게 아반의 검으로 자신이 찌른 부위를 다시 한 번 찔렀다.
치칙!
아니, 찔렀다기보다는 그었다. 카타콤 교도관의 갑옷 위에 X자 표시를 만들었다.
[카타콤 교도관이 마귀 저주에 걸립니다.]
[카타콤 교도관이 나태 저주에 걸립니다.]
[카타콤 교도관이 부식 귀신에 걸립니다.]
[카타콤 교도관이 암흑에 걸립니다.]
[카타콤 교도관이 무기력에 빠집니다.]
그러자 카타콤 교도관의 온몸을 저주가 휘감았다.
‘부두 문자, 역시 좋아. 괜찮은 스킬이야.’
대상의 몸에 상처를 내지 않아도, 지정된 문양을 그려 넣기만 해도 저주를 부여할 수 있는 ‘부두 문자’ 스킬의 효과 덕분이었다.
더불어 이 스킬은 퀘스트 보상으로 얻은 레어 등급의 스킬이었다.
[이럴 수가!]
저주에 걸린 카타콤 교도관의 육체는 빠르게 약해졌다.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히르칸의 마귀 저주와 나태 저주는 A랭크, 부식 귀신은 B랭크이며 무기력 역시 C랭크다.
여기에 C랭크에 다다른 저주학 스킬이 저주의 효과와 지속 시간을 12퍼센트나 상승시켜줬다.
마지막으로 히르칸이 들고 있는 아반의 검은 모든 대상의 방어력을 15퍼센트 무시한다.
콰직!
세 번째 칼질이 기어코 카타콤 교도관의 갑옷에 구멍을 냈다.
[감히!]
카타콤 교도관이 분노했다. 녀석이 거칠게 몸을 들썩이며 히르칸을 뿌리치고자 했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 들썩임에 나가떨어질 만큼 히르칸은 하수가 아니었다. 그리고 녀석의 상대는 히르칸이 아닌 트윈 헤드 오우거 골렘이었다. 머리 하나가 뭉개졌지만, 머리 하나가 남은 트윈 헤드 오우거 골렘은 더더욱 포악한 성정을 드러내며, 카타콤 교도관
을 몰아붙였다.
콰앙, 콰앙!
양손에 잡은 몽둥이로 드럼을 치듯 카타콤 교도관의 온몸을 두드렸다. 그로 인해 생기는 흔들림이 오히려 더 거셌다.
까앙, 까앙!
그 흔들림 속에서 히르칸은 거듭 구멍을 넓혔다. 거듭 흔들리는 시야 속, 멀미 때문에 정신이 나가도 이상할 것 없는 상황에서도 히르칸의 손놀림은 장인의 솜씨처럼 정확했다.
이윽고 적당한 구멍이 만들어졌다. 히르칸이 가진 뼈폭탄을 얼마든지 넣을 수 있을 크기의 구멍이.
‘지금 같은 날을 위해 아낀 전투법이다.’
그 구멍 안으로 히르칸이 뼈폭탄을 집어넣었다.
10.
- 콰앙!
폭발음이 태블릿PC와 연결된 블루투스 스피커를 통해 사방에서 터졌다. 그 폭발음의 한가운데 있는 채설연의 얼굴에는 액션 영화팬이 영화 다이하드의 폭발씬을 봤을 때나 지을 법한 묘한 표정이 걸렸다.
‘뼈폭탄을 여기서 이렇게 이용할 줄이야?’
하회탈이 카타콤 교도관의 갑옷에 구멍을 낸 후에 그 안을 뼈폭탄으로 가득 채워 폭발시키는 장면.
오직 워로드에서 하회탈, 그 한 명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이었기에, 채설연은 그 장면에서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물론 그 한방으로 카타콤 교도관은 죽지 않았다. 갑옷은 뼈폭탄의 폭발에 엉망이 됐지만, 그래도 카타콤 교도관은 버텼다.
아니, 오히려 갑작스러운 HP의 감소는 카타콤 교도관을 바로 다음 페이즈로 넘어가게 했다.
- 결코 살려 보내지 않겠다! 일어나라! 모두 일어나라!
새로운 페이즈에 돌입한 카타콤 교도관은 무려 오십 마리가 넘는 키메라 스켈레톤을 소환했고, 자신의 몸에 닿는 모든 대상의 HP를 갉아먹는 보랏빛 기운을 뿜어대기 시작했다.
전투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드는 순간. 그렇기에 더더욱 영상을 보던 이들은 눈을 뗄 수 없었다.
“마스터, 또 그 영상입니까?”
“지금 명장면이야.”
“끝내주는 건 알겠는데, 대체 몇 번을 보는 겁니까?”
“명장면은 두고두고 봐도 멋있으니까 명장면인 거야. 더군다나 이 폭발 다음이 진짜배기라고.”
마타로드 체브.
그 역시 하회탈과 카타콤 교도관의 전투 영상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무수히 많은 이들 중 한 명이었다.
‘지금 당장 하회탈의 이름으로 레이드 라이브 티켓을 팔면, 매치업에 따라서는 백만 장도 팔 수 있어. 1년 동안 천만 장도 하회탈이라면 불가능한 수치는 아니야.’
그 시각, 워로드에 내로라하는 둘과 똑같은 영상을 보는 인물은 한 명 더 있었다.
“싱글레 씨, 뭘 보시는 겁니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싱글레.
현재는 비앤비 길드의 엠블렘을 가슴에 달고 있는 그는 비앤비 길드 간부의 물음에 자세한 대답 대신 대충 상황을 얼버무렸다. 비앤비 길드 간부는 그런 그의 심기를 거스르기 싫은 듯, 거듭된 질문이 아닌 조심스러운 통보만 했다.
“30분 후 레이드 시작입니다. 이번에도 잘 부탁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굳이 찾아오시지 않고 간단하게 통보하셔도 됩니다. 저는 지금 비앤비 길드의 일반 길드원입니다.”
“하하, 미리 간부 대접을 해드리는 겁니다.”
“감사합니다.”
비앤비 길드 간부가 가볍게 목례를 한 뒤 자리를 피했다. 그런 비앤비 길드의 뒷모습이 보이는 순간, 싱글레는 곧바로 고개를 돌리고, 다시 영상에 집중했다.
영상을 보던 그는 이 순간 인정했다.
‘하회탈, 빌어먹을 놈이지만, 비범한 놈인 건 인정해야겠군.’
하회탈, 그가 보통 놈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통 유저가 아니라는 사실을.
‘사람을 이끄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이제는 모든 이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특별함도 가지고 있고.’
인정했기에, 우려했고, 경계했다.
‘어쩌면 30대 길드보다 이 녀석이 더 위험할지도 몰라. 예상대로 막강한 자금력을 가지고 있다면, 녀석에게 부족한 건 레벨뿐. 만약 레벨이 랭커 수준에 다다르면, 1대1로 이 녀석을 막을 수 있는 자는 워로드 전체를 통틀어도 결코 열을 넘지 못할 거야.’
그리고 그 시각, 그 영상을 보는 또 다른 네 번째 인물이 있었다.
“으하하! 대박이다, 대박! 역시 내 감은 안 죽었다니까. 조회수 오르는 거 봐! 캬! 그래, 이런 날에는 사치 좀 부려야지. 오늘 배 터지게 먹어보자, 배 터지게!”
통조림 참치와 두부를 듬뿍 넣은 김치찌개에 고슬고슬한 새하얀 쌀밥과 고소한 기름으로 반들거리는 김. 비좁은 원룸에 어울리지 않는 50인치 모니터 앞에서 어마어마하게 성대한 만찬을 즐기며 영상을 관람하는 이는 바로 영상 속의 주인공, 안재현이었다.
< 37화. 카타콤 (3).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