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카타콤 (2). >
4.
네크로맨서를 비롯해 유저들이 소환해서 부리는 소환물들의 전투 인공지능은 전투를 거듭할수록 발달한다.
특히 비슷한 종류의 몬스터와의 전투가 많으면 많을수록, 잦으면 잦을수록 그리고 패전이 아닌 보다 많은 승전을 거둘수록 그 몬스터에 대한 전투능력은 매우 높은 수준에 다다른다.
그렇기에 무수히 많은 워로드 유저들이 하회탈의 해골들을 보고 기존에 키우던 캐릭터를 봉인하고, 네크로맨서를 새로 키우는 유혹에 빠져드는 것이다.
지휘조차 필요 없었다.
널찍한 통로, 그 통로에 적이 등장할 경우 당연하다는 듯이 해골 기사가 가장 먼저 앞서서 적을 상대했다.
그렇게 해골 기사가 적의 정면을 붙잡는 사이, 히르칸이 할 일이라고는 해골 조각 한두 개를 해골 기사 너머, 등장한 적 너머로 던지는 게 전부였다. 그 아주 간단한 작업만으로 해골 부하들은 단숨에 적을 앞뒤로 포위하는 포메이션을 구축했다.
오직 한 종류의 몬스터를 수백 번 넘게 상대하며 이미 스페셜리스트가 되어버린 해골 전사들과 해골 기사가 수적 우위 그리고 유리한 포지션을 점한다는 건, 이미 승패가 정해진 것과 마찬가지였다.
전투는 일방적으로 이루어졌다. 히르칸이 무언가를 시도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오죽하면 그 시간 동안 히르칸은 전투에서 눈을 뗀 채 어느 길드의 레이드 공략 영상을 볼 정도였다.
여러모로 카타콤 던전은 히르칸에게 너무나도 잘 맞는 사냥터였다.
“진짜 좀!”
딱 하나만 뺀다면.
“왜 여기 또 막다른 길이 등장하는 건데! 왜? 대체 왜? 나는 그냥 가고 싶은 것뿐인데!”
카타콤의 형태가 미로 던전이란 것만 뺀다면.
“으아니, 진짜!”
그리고 히르칸이 미로 타입의 던전에서 길을 찾는 능력이 그다지 좋지 못하다는 것만 뺀다면.
이 한 가지 요소만 뺀다면, 히르칸에게 이번 카타콤 탐사는 노동이 아닌 휴양이 되었을 것이다.
반대로 그 한 가지 요소가 히르칸을 미치게 했다.
“뭘 봐? 너 입 다물어!”
기어코 히르칸이 옆에서 입을 적당히 벌린 채 자신을 멀뚱히 바라보던 해골 전사를 향해 히스테리를 부렸다.
그런 해골 전사의 눈빛이 갑자기 바뀌었다. 활활, 두개골 속 눈동자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동안 자신을 착취하고, 그것만으로도 만족하지 못해 시간이 날 때마다 자신을 때리려고 손찌검을 시도하는 악덕 주인에 대한 분노에 기어코 폭발한 것일까?
물론 아니었다.
눈빛을 바꾼 해골 전사가 곧바로 등을 돌려, 뒤를 바라봤다. 그런 해골 전사의 시야 속에, 해골 전사의 머리 위에 떠있는 불빛이 밝히는 영역 속에 키메라 스켈레톤이 등장했다.
해골 전사는 곧바로 전투에 돌입할 준비를 했다.
하지만 해골 전사보다 먼저 움직인 건 히르칸이었다. 아반의 검을 든 히르칸은 해골 전사보다 더 먼저 키메라 스켈레톤에게 달려들었고, 곧장 전투를 시작했다.
키메라 스켈레톤의 주변을 위성처럼 맴돌며, 쉴 새 없이 검을 휘둘러 스켈레톤의 갑옷을 뭉개고, 뼈를 부순 후에, 잘려나간 굵직한 뼛조각을 잽싸게 집어 들어 멀찌감치 던지는 히르칸을 상대로 키메라 스켈레톤은 불쌍함마저 느껴질 정도로 일방적으로 당했다.
절정은 히르칸이 키메라 스켈레톤의 두개골 탈취에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두개골을 탈취하자마자 해골 전사에게 전투를 맡긴 히르칸이 두개골을 신나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카타콤 입장 일주일째, 히르칸이 발견한 히스테리 해소법이었다.
5.
[벽을 찾는 자]
- 체력 +2
최근 새로이 습득한 타이틀을 바라보던 안재현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걸 또 받다니, 빌어먹을.’
벽을 찾는 자.
미로 타입과 같은 던전에서 벽, 즉 막다른 길에 일정 횟수 이상 다다를 경우 받을 수 있는 타이틀이다.
타이틀 옵션은 그렇게 높진 않지만, 막다른 길만 찾으면 습득할 수 있는 타이틀이기에 여유가 되는 유저들은 일부러 막다른 길만 찾아가며 타이틀을 습득하고는 했다.
반대로 의도하지 않았는데 받을 경우 기쁨보다는 분노를 일으키게 하는 타이틀이기도 했다.
‘도무지 퀘스트 진행이 안 돼.’
안재현이 화가 난 이유였다.
사실 카타콤 던전은 안재현에게 최적의 사냥터였다. 경험치가 짭짤한 덕분에 레벨업 페이스는 매우 준수했고, 사냥이 편한 덕분에 소모 아이템은 거의 쓰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사냥 속도에 비해 퀘스트 진행 속도는 지지부진, 그 자체였다.
카타콤 던전의 미로가 생각보다 크고, 복잡했다. 더욱이 가득 찬 어둠이 미로 공략의 난이도를 상승시켰다. 가뜩이나 미로 공략을 할 줄 모르는 안재현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
‘이런 거 잘하는 새끼들은 금방 뚫던데, 난 왜 이렇게 재수가 없지?’
물론 운이 없는 게 가장 컸다. 미로란 게 운이 좋으면, 잘만 풀리면 단숨에 통과할 수 있으니까.
그 사실은 안재현이 실시간으로 작성하는 카타콤 던전 지도가 증명해주고 있었다. 운이 좋은 유저들은 미로 지도가 단순하고, 단편적이다. 하지만 안재현의 지도는 너무나도 자세했다. 신나게 벽을 마주친 덕분에 막다른 길 대부분이 표시된 덕분이었다.
나중에 팔아먹어도 될 정도. 물론 안재현에게는 속만 쓰리게 만드는 놈이었다.
‘진짜 빌어먹을 게임이야.’
결국 안재현이 쓰린 속을 달래기 위해 긴급 조치를 취했다. 위장약 같은 걸 먹진 않았다. 그것보다 더 확실한 방법을 썼다. 자신의 예금 잔액 현황을 살펴보았다.
잔고를 보는 순간 안재현의 입에 헤픈 미소가 걸렸다.
‘진짜 이것만 보면 배가 부르단 말이야.’
왈츠 영상의 성공에 힘입어 꾸준히 광고 수익과 후원금이 들어왔다. 여기에 최근 스폰서 계약을 맺은 곳으로부터 활동 지원금이란 이름의 목돈을 받았다. 그 액수가 상당했다.
당장 원룸을 벗어나, 수도권 근처에 있는 20평에서 30평 사이, 중소형 규모의 아파트 전세 정도는 얻을 수 있을 정도였다. 혹은 자동차 정도는 당장 일시불로 사서 타고 다녀도 문제가 없을 정도.
물론 안재현의 기준은 남들과 달랐다.
‘좀 더 모아서 130레벨짜리 유니크 방어구 세트 하나 맞춰서 해골 기사 입혀줄까? 아니야, 해골 마법사 애들 무기 전부 유니크로 맞춰주는 게 나을 수도 있어. 스킬북을 구매할까? 해골 마법사용 스킬인 다크 플레임…… 스킬북 하나에 1만 골드는 좀 그렇긴 하지
만, 매물이 거의 올라오질 않으니까 그냥 지르는 게 나으려나?’
행복한 고민을 시작한 안재현이 목이 타는 듯,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우유가 등장했다. 심지어 안재현은 우유를 컵에 따르지도 않은 채 그대로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라면보다 비싼 우유를 단숨에 해치운 안재현이 우유 수염을 그린 채 미소를 지었다.
‘이제 좀 성공한 것 같네.’
우유 덕분인지, 속쓰림은 눈 녹듯 사라졌다.
안재현이 다시 태블릿PC에 나온 지도에 집중했다. 지도를 보던 안재현이 침착하게 머리를 굴렸다.
‘이 정도 발견했으면 거의 다 발견한 거야. 얼마 안 남았으니까 이대로 참고 계속 하면 돼. 그래, 초조해 할 필요 없어. 안재현, 넌 틀리지 않았어.’
진정을 되찾은 안재현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6.
히르칸이 분명한 변화를 눈치챈 건, 잡은 키메라 스켈레톤의 갑옷이 달라지는 순간이었다. 이제까지 봐왔던 키메라 스켈레톤들이 입고 있는 갑옷과는 비슷하지만 분명한 차이점을 히르칸은 놓치지 않았다.
‘드디어 이걸 보는구나.’
히르칸이 찾은 차이점은 바로 갑옷에 희미하게 새겨진 문양이었다.
세 마리의 뱀이 서로의 꼬리를 물며, 동그란 원을 만들고 있는 문양!
‘세 마리의 뱀, 딘 왕자의 상징을 이제야 보는구나.’
워로드 세계관에서 가장 넓은 영토와 강대한 세력을 가지고 있으며, 몬스터의 시대를 가장 최전선에서 맞서 싸우는 히반 왕국의 세 번째 왕자로 태어나는 순간 받은 왕가의 성, 바얀.
태어나기도 전, 위대한 대마법사 보칸이 세상에 찾아올 악몽을 몰아내는 순교자들과 함께하라는 의미로 지어준 이름, 딘.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이자, 히반 왕국을 다스리는 왕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명, 북쪽 땅의 수호자를 의미하는 언 노스랜드.
바얀 딘 언 노스랜드.
무예와 지혜 그리고 사명이란 이름을 가진 세 개의 뱀을 자신의 심볼로 삼은 삼사의 왕자.
‘이제 칠부능선은 온 셈이군.’
그리고 폐허 왕국이 남긴 타락의 힘을 이용해 왕위 찬탈 그리고 자신의 시대를 꿈꾸며, 무수히 많은 악행을 저지른 배덕의 왕자.
그 딘 왕자의 흔적이 이제야 등장했다.
히르칸, 그가 이번 배덕의 왕자 편을 정상적으로, 제대로 수행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물론 딘 왕자와 관련된 대서사시 같은 건 지금 히르칸에게 아무래도 좋았다.
중요한 건 이 카타콤에서 딘 왕자의 문양이 새겨진 갑옷을 입은 키메라 스켈레톤을 발견했다는 건, 헨젤과 그레텔이 남겨놓은 빵조각을 발견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사실.
‘드디어 이 카타콤을 벗어날 수 있겠군.’
이 빵조각을 따라가면, 마녀의 집이, 과자로 된 맛있는 집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히르칸이 고개를 들어 어둠을 바라봤다.
7.
자신의 스마트폰을 이용해 어느 누군가의 유튜브 페이지를 살펴보던 채설연의 차갑기 그지없는 표정에 살짝 주름이 생겼다. 주름이 생긴 곳은 그녀의 매혹적인 눈가였다.
‘왜 아무런 영상도 안 올라오지? 내가 일부러 디자이너에게 특별히 주문까지 한건데?’
마치 연인에게 직접 만든 목도리를 선물했는데, 다음 데이트에서 보답은커녕 그 목도리조차 두르지 않고 등장한 남자친구를 봤을 때의 심정.
물론 평생 그런 심정을 느껴본 적조차 없는 채설연은 자신의 심기를 열심히 비트는 그 감정의 정체를 제대로 알지 못했고, 그래서 더더욱 심기가 뒤틀렸다.
그런 그녀의 스마트폰 화면이 갑자기 바뀌었다. 전화가 왔다. 발신인은 우레 사냥꾼 길드에서 채설연에게 가장 많이 구박을 당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해치였다.
- 마스터.
“무슨 일이지?”
- 어…….
구박을 많이 당한 덕분인지, 해치는 채설연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직감했다. 자신이 부글부글 끓는 기름에 손을 집어넣었구나, 하는 사실을.
하지만 안타깝게도 해치는 계속 대화를 진행해야 했다.
- 한 분이 마스터와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합니다.
“중요한 사람인가?”
- 적어도 저보단 레벨도 높고, 유명한 사람입니다. 직급도 높다고 할 수 있고요.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직급이 좀 애매한 곳에 계신 분입니다.
그 표현에 채설연의 눈빛이 달라졌다. 해치가 사용한 표현에 적용되는 대상은 워로드에서 단 한 곳밖에 없었으니까.
“히드라 길드의 머리를 말하는 건가?”
- 예.
히드라 길드.
아홉 개의 머리를 가진 이곳은 나름의 서열은 있지만, 공식적으로 아홉 머리 전부 머리다. 다 같은 대우를 받는다. 보스와 간부와 부하가 확실한 집단과는 조금 다르다. 직급이 애매하다는 표현을 쓴 이유다.
물론 당장 짚고 넘어갈 부분은 따로 있었다.
“그럼 그냥 히드라 길드라고 말하지, 꼭 그렇게 말을 돌려서 표현해야 하는 건가?”
- 그쪽이 꼭 그렇게 표현해달라고 해서.
“지금 옆에 있나?”
- 예.
“나 몰래 히드라 길드의 머리와 약속을 잡은 건가?”
- 절대 아닙니다! 우레사냥꾼에 2050년까지 계약된 몸인 제가 감히 그런 꿍꿍이를 품겠습니까? 먼저 접근했습니다. 퀘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비슷한 직급의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합니다.
히드라 길드의 머리와 비슷한 직급이라면 우레사냥꾼 길드에는 마스터, 채설연 밖에 없다.
해치가 이번 통화를 거듭 진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단지 문제는 지금 채설연의 심기가 그다지 좋지 못하다는 점.
채설연, 그녀는 곧바로 대답했다.
“내 간을 보려고 수작을 부리고 있는 모양인데, 대화를 하고 싶으면 정식으로 요청하라고 전달하도록. 아쉬우면 아쉬운 놈들이 알아서 기어야지.”
- 예?
해치가 무어라 반문을 하기도 전에 통화가 종료됐다.
곧바로 화면이 조금 전 채설연이 보던 유튜브 페이지로 바뀌었다. 그런데 채설연이 보던 것과 화면이 조금 달라져 있었다.
“응?”
새로운 영상이 올라와 있었고, 채설연은 눈빛을 바꾸며 곧바로 새로운 영상을 재생했다.
영상 속에는 붉은 해골 갑옷을 입은 유저가 등장했다. 그 모습을 본 채설연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고, 영상을 종료한 채설연이 곧바로 해치에게 전화를 했다.
- 아, 마스터! 이번 일은 중요합니다. 분명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에 대한 거래를…….
“바로 대화를 할 테니까 자리 마련해.”
- 예?
“옆에 있다면서? 바꿔.”
그로부터 몇 초 후 해치의 목소리가 아닌 다른 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 다섯 번째 머리입니다. 이번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의 결정적인 단서를 확보했습니다. 이번 퀘스트 진행을 같이 하고 싶습니다.
< 37화. 카타콤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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