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게릴라들 (3). >
7.
“어떻게 한 거야?”
충돌은 없었다. 비열한 꼼수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공정한 경쟁에서 졌을 뿐이다.
오히려 분노보다는 의문이 컸다. 히르칸을 중심으로 뭉친 하회탈 팀은 자화자찬이 아니라 정말 이블 아이를 완벽하게 잡았다. 그런데 그보다 더 빨리 잡는 파티가 있다니?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질문에 대한 명확한 대답은 없었다.
“뭐, 운이 좋았지.”
그게 전부였다. 자세한 설명은 그 누구도 해주지 않았다. 마치 사전에 입을 맞춘 듯이, 합의를 한 듯이. 대신에 대화 중간중간에 곁눈질로 한 유저를 바라볼 뿐.
하회탈 팀 소속 유저들이 누피 패밀리 팀 소속 유저들의 행동을 보고 대충 눈치를 챈 듯, 비슷한 곁눈질을 시작했다.
‘누구지?’
‘아이템도 보통 아이템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대체 저건 무슨 아이템이지?’
그런 곁눈질 무리에 히르칸은 없었다. 히르칸은 곁눈질이 아니라, 노골적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녹옥 이무기 세트라면…… 어쨌거나 150레벨인 이블 아이 사냥은 애들 장난으로 만들 수 있었겠지.’
상대의 아이템 가치와 옵션을 알기에, 히르칸은 머릿속으로 금방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녹옥 이무기 세트의 효과라면 이블 아이는 150레벨의 강력한 미들 보스 몬스터가 아니라, 130레밸대의 적당한 수준의 보스 몬스터로 느껴졌을 것이다.
하물며 여기 모인 전력이 어중이떠중이 유저들도 아니고, 그 정도 메리트를 얻었다면 히르칸 팀보다 빨리 잡는 게 맞다. 늦게 잡는다면, 그거야말로 웃기면서도 비참한 일이다.
‘저런 거 해골 하나 맞춰주면…….’
일단 히르칸은 녹옥 이무기 세트가 탐이 났다.
녹옥 이무기 세트의 특징은 치명적인 일격을 입었을 때 저주가 발동한다는 거다. 해골 전사와 궁합이 딱이다. 저주용으로 낮은 레벨의 몬스터 뼈재료를 제물 삼아 만든 해골에게 입혀주면, 효과는 최고다. 탐이 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히르칸의 생각은 딱 거기까지였다.
상대가 누군지 궁금하고, 저놈 때문에 엄청난 가치를 지녔으리라 예상됐던 사라보의 칼을 놓친 사실 때문에 배가 아파 죽을 지경이며, 저 녀석이 가진 녹옥 이무기 세트를 가지고 싶어 죽을 지경이지만, 히르칸이 개중에서 해결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도 없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더욱이 히르칸이 보기에 저자를 만난 건 처음이지만, 자신에게 우호적인 유저는 결코 아니었다.
만약 정말 저자가 히르칸에게 관심이 있었다면, 히르칸의 경쟁자가 아니라 도우미로 먼저 접근했을 것이다.
‘저 새끼, 날 엿 먹이려고 왔어.’
히르칸이 보는 핵심은 그거다.
정말로 저자가, 녹옥 이무기 세트를 입은 녀석이 히르칸과 교섭, 거래, 대화를 원하는 자였다면 히르칸에게 먼저 왔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행동은 반대였다. 누가 보더라도 히르칸 반대편에 몰래 선 건, 히르칸을 엿 먹일 속셈이거나 하다못해 히르칸과 친하게 지낼 생각이 없다는 의미다.
‘어차피 퀘스트도 끝났겠다, 여기 붙을 이유가 없지.’
괜한 소란이 일어나기 전에, 볼일이 사라진 무대를 떠나는 게 정답.
마치 그런 히르칸의 심중을 읽은 듯, 사라보가 등장했다.
“다들 대단하군. 수고했네.”
퀘스트 정산이 시작됐고, 곧바로 보상이 시작됐다. 사라보의 칼이 누피 패밀리의 손에 들어갔다.
“옵션 공개해줘!”
“와, 레어야? 유니크야?”
“렙제가 몇이야?”
유저들이 어수선해졌고, 아이템을 얻은 누피 패밀리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저주받은 성에 때아닌 화기애애하고, 어수선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그 분위기 속에 히르칸은 없었다.
더불어 녹옥 이무기의 검사, 싱글레 역시 없었다.
8.
저주받은 성을 떠난 히르칸은 전력으로 달렸다. 그런 히르칸의 뒤에 꼬리가 빠르게 붙었다. 성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붙은 꼬리를 히르칸은 뿌리칠 수 없었다. 히르칸이 무슨 짓을 해도, 꼬리는 불이 붙은 것처럼 히르칸과의 거리를 계속 좁혔다.
결국 히르칸은 어느 순간 멈췄다.
숲 한가운데, 이제는 조금 사그라진 푸른 안개 너머에서 등장한 건 히르칸이 예상하던 자였다.
녹옥 이무기 세트를 입고 있던 유저.
‘어쭈?’
……가 아니라.
‘박쥐 습격자 세트?’
검붉은색 가죽으로 만든 갑옷과 마치 배트맨을 떠올리게 만드는 헬멧을 쓰고 있는 자였다.
‘100레벨대에서는 이속 옵션 최고 수준의 아이템을…….’
박쥐 습격자 세트.
정식 명칭은 자이언트 블러드 배트 세트다. 140레벨 희귀 몬스터, 자이언트 블러드 배트를 잡아야 제작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이동속도 관련 옵션이 잔뜩 붙어 있다. 히르칸이 과거 착용했던 그림자 사냥개 세트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보면 된다.
물론 가격과 옵션과 평가는 그림자 사냥개와 비교조차 안 된다. 그림자 사냥개 세트가 소나타라면, 자이언트 블러드 배트 세트는 페라리 수준으로 봐야 한다.
더불어 디자인이 배트맨 슈트 비슷하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 박쥐 습격자 세트, 일명 배트맨 세트다.
‘녹옥 이무기에 박쥐 습격자. 나머지 슬롯 한 개에도 비슷한 급을 채워뒀을 테니…….’
워로드 유저가 채울 수 있는 슬롯은 총 3개. 개중 2개 슬롯을 어마어마한 아이템으로 채운 인간이 나머지 하나를 그저 그런 놈으로 채웠을 리 만무하다. 필시 140레벨대 이상, 유니크 아이템 세트로 채웠을 것이다.
‘쳇.’
이 순간 히르칸이 어떤 결심을 마쳤고, 입을 열었다.
“내게 볼 일이라도 있나?”
“하회탈 맞나?”
“아니라고 하면 믿어줄 생각인가?”
그 순간 상대가 손목시계를 조작했다. 아이템 슬롯을 바꿨다. 싱글레, 그게 세 번째 아이템 슬롯을 활성화했다. 이번에 모습을 드러낸 건, 검은색 철로 만든 날렵하기 그지없는 모양새의 갑옷으로, 쓰고 있는 투구는 마치 늑대의 머리를 본뜬 것과 비슷한 디자인을
하고 있었다.
‘검강늑 세트까지 나오는군.’
검은 강철 늑대 세트.
워로드에 현존하는 무수히 많은 세트 아이템 중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최고 수준의 아이템이다.
특히 높은 방어력으로 유명하다. 최고 레벨대 아이템 중에서 높은 방어력으로 유명하다는 건, 다른 것보다 유저를 상대로 가장 확실한 방어력을 자랑한다는 의미다. 검은 강철 늑대 세트를 상대로 우세한 무기 아이템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니까.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
상대의 말에 히르칸은 군말하지 않았다.
“좋아. 나 하회탈, 오는 싸움 마다하지 않는다.”
그 말에 히르칸을 잡으러 온 싱글레는 미소를 지었다.
‘예상과는 다르게 자존심이 강한 모양이군. 도망칠 가능성은 높지 않겠어.’
히르칸을 잡아라.
그게 싱글레가 속한 조직의 명령이었다. 현상금도 걸렸다.
‘하회탈의 현상금은 현재 5만 달러.’
히르칸의 지금 현상금은 5만 달러다.
현실도 아니고 게임에서, 그것도 압도적으로 우세한 스펙으로 자기보다 레벨이 30레벨 이상 낮은 유저 하나를 해치워서 받는 돈치고는 매우 큰 돈이다.
‘시계에서 나오는 아이템은 내 것.’
더불어 히르칸을 잡아서 나오는 수익, 손목시계에서 강탈 가능한 아이템은 싱글레의 개인 수입으로 인정된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히르칸은 대단한 부자로, 아이템 구매에 적지 않은 돈을 쓴다고 알려져 있다.
‘시간은 손해 봤지만, 여기서 득을 크게 보는군.’
싱글레가 행복한 상상을 시작했다.
그런 싱글레의 상상을 깨려는 듯, 히르칸이 매우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전투는 오프 더 레코드로 할까? 기록 없이, 영상 촬영 없이. 오늘 싸움은 우리 가슴에만 묻는 식으로?”
그 말에 싱글레가 상상의 나래를 멈췄다. 아무래도 히르칸이 좀 더 대화를 할 속셈인 모양.
“그러면 고맙겠군.”
일단 싱글레는 맞장구를 쳐줬다.
“기왕 싸우는 거, 서로 확실하게 목숨 걸고 하는 게 좋겠지.”
‘확실하게 목숨을 건다?’
싱글레가 그 말에 의구심을 가지는 순간, 히르칸이 자신의 장갑을 벗더니, 자신의 검으로 자신의 손목을 내려쳤다.
콱!
아반의 검의 위력이 히르칸의 손목을 금방 파고 들어갔다. 대여섯 번 더 세게 내리치면, 손목을 잘라낼 수 있을 듯했다.
그 광경을 본 싱글레의 표정이 굳었다.
“무슨 짓이지?”
“무슨 짓? 설마 와치맨 스타일도 모르나?”
“와치맨?”
콰직!
재차 자신의 손목을 제 검으로 내리치던 히르칸이 하회탈 아래로 히죽,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서로의 시계를 건네주는 전투, 피할 수 없는 숙명의 전투. 그쪽은 모르나?”
싱글레는 그 말에 잠시 동안 생각했다. 그가 아는 와치맨이란 그런 전투가 아니었다. 그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워로드는 전 세계적으로 서비스되는 게임인 만큼, 유저가 소속된 국가별로 나름의 스타일이나 유행이 존재했다.
싱글레가 모른다고, 없는 건 아니라는 의미다.
“자기 손목을 잘라, 시계를 적에게 주다니. 웃기지도 않는군.”
손목을 잘라서 시계를 빼내는 이유는 간단하다. 워로드에서 손목시계는 주인도 풀 수 없다. 방법은 오직 하나, 손목을 자른 후에 빼내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섬뜩하지만, 그럴싸했다.
자신의 시계를 적에게 건네주고 싸운다는 건, 어떤 식으로든 적을 죽이고 시계를 되찾아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을 테니까.
더욱이 스스로 손목을 자르다니!
‘작심을 한 모양이군.’
이제까지 그 누구에게도 손목을 잘린 적이 없다고 알려진 하회탈이 자신의 손목을 스스로 자르는 광경을 싱글레는 말없이 바라봤다.
그 사이 히르칸은 기어코 잘라낸 손목에서 시계를 꺼낸 후에, 신체 접착제를 이용해 다시 손목을 붙였다. 붙은 손목으로 빼낸 시계를 던졌다.
“와치맨 스타일을 모른다면 어쩔 수 없이. 그냥 가지고 있어. 어차피 몇 분 후에는 다시 내것이 될 테니까.”
시계를 받은 싱글레의 표정이 굳었다. 싱글레의 가슴속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빌어먹을.’
언제나, 워로드가 시작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싱글레는 최고였다. 단지 사정이 있어 최고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드러낼 수 없었을 뿐. 만약 지금 자신의 정체를 공개한다면, 그는 30대 길드의 길드 마스터들보다 유명해질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30대 길드를 상대로도 싱글레는 VVIP대접을 받았다. 30대 길드 마스터들이 직접 대화를 요청하고, 도움을 요청하고, 때때로 길드 가입을 제안받았다.
하지만 하회탈은 그런 그를 언제든 죽일 수 있는 가소로운 대상으로 대접하고 있었다.
“게임이라서 그런지 잘 붙는군.”
히르칸은 그런 싱글레에게 거듭 말했다.
“아! 여기까지 기세 좋게 쫓아왔는데 설마 내 시계를 들고 도망치는 건 아니겠지?”
도발이었다.
“거기 있는 아이템이라고 해봐야 푼돈밖에 안되는 것들뿐이지만, 수틀린다고 도망친다면…… 뭐, 좋아. 오프 더 레코드라고 약속을 했으니, 어디 가서 소문은 내지 않겠어. 도망치는 꽁무늬는 내 기억 속에만 남기도록 하지.”
그 도발과 함께 하회탈 아래로 히르칸은 있는 힘껏 비웃음을 머금었다. 정말 한 대 때려주고 싶은 미소였다.
싱글레는 그 도발을 듣는 순간, 저도 모르게 장갑을 벗었다. 그리고 검을 들었다.
손목을 잘라낼 속셈.
“와치맨 스타일, 재미있겠군.”
그 모습을 보던 히르칸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사그라졌다. 이번에는 싱글레가 피식, 웃었다.
이윽고 제 손목을 잘라내 시계를 빼낸 싱글레가 본인의 손목시계를 히르칸에게 던졌다.
히르칸은 발치에 떨어진 시계를 말없이 바라봤고, 그 사이 싱글레 역시 히르칸처럼 신체 접착제를 이용해 잘린 손목을 붙였다.
그런 그 둘의 표정은 바뀌어 있었다. 히르칸은 굳은 표정을, 싱글레는 비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와치맨 스타일, 기억해두지.”
싱글레의 그 말에 히르칸은 대답 대신 자신의 발치 근처에 떨어진 시계를 신경질적으로 발로 찼다.
화가 났다는 증거.
싱글레가 피식, 웃었다.
‘조사한 내용이 전부 틀렸군. 자존심이 강한 타입이야. 도발을 하면 금방 넘어오는 타입. 분명 이제까지 고생이란 건 모른 채, 자기 잘난 맛에 게임을 해왔겠지.’
그 사이 히르칸이 분노에 가득 찬 듯, 해골 조각을 잔뜩 꺼내 바닥에 흩뿌렸다.
동시에 골렘도 소환했다.
쿠쿠쿠!
골렘이 등장하고, 해골 조각들이 전사로 변하는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히르칸이 소리쳤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덤벼든 대가 톡톡히 치르게 해주겠다!”
분노 가득 찬 그 외침에 싱글레는 검을 들고, 자체 버프 스킬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싱글레의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졌다.
‘해골 부하는 무한정 소환할 수 없다. 어차피 직접 대결로 가면 내가 유리하고.’
싱글레, 그가 준비해온 하회탈 공략법은 간단했다.
히르칸의 소환물들을 전부 제거하고, 그 후에 히르칸 본인을 제거하는 것!
보통은 소환물들을 무시하고, 히르칸 본인을 잽싸게 제거하려고 덤벼들겠지만, 그건 오히려 위험한 방법이었다. 히르칸 본인의 개인 전투 능력은 어지간한 스트라이커보다 낫다. 단시간에 끝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런 히르칸과 접전 중에 히르칸의 부하들에
게 포위되는 상황이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다.
더욱이 해골 조각이나 골렘 소환은 마력도 많이 들고, 쿨타임도 분명 존재한다.
물론 싱글레가 택한 방법에는 버그라고까지 평가받는 무시무시한 해골 전사들과 해골 기사, 골렘을 처치해야 한다는 난관이 존재하지만, 그 부분에 있어서 싱글레는 조금의 위기감도 없었다.
‘아주 박살을 내주마.’
자체 버프를 마친 싱글레는 곧장 돌진 스킬을 사용했다. 돌진 스킬을 사용하면서, 부스터 스킬이 걸린 검을 휘둘렀다.
쉬익!
둘 다 A랭크인 돌진과 부스터 스킬의 조합, 그 조합에서 나오는 검의 궤적은 해골 전사들이 감히 피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더욱이 싱글레는 돌진 스킬로 폭주하는 자신의 몸을 제대로 컨트롤하고 있었다.
한 번의 돌진 스킬로 세 마리의 해골 전사를 스쳐 지나가며, 셋 모두에게 일격을 날렸다. 브레이크가 고장 나 속도를 주체할 수 없는 차량으로 연속해서 나오는 코너링을 깔끔하게 해낸 듯한 광경이었다.
위력은 더더욱 끔찍했다. 그쳐 스치듯 날아온 일격에 무장 스킬로 아이템을 착용한 해골 전사들이 파괴됐다.
그 사이 모습을 갖춘 골렘이 거대한 싱글레를 향해 자신의 거대한 팔을 내리쳤다.
거대한 돌덩이가 싱글레의 머리 위로 추락했다.
하지만 싱글레에게는 가소로울 정도로 느린 공격이었다. 찰흙놀이로 변화된 골렘도 아닌 보통 골렘의 공격에 싱글레가 맞을 확률은 벼락 맞을 확률과 다를 바 없었다.
쿠웅!
가뿐하게 공격을 피해낸 싱글레는 여유의 증거인 듯, 어느새 바닥을 내리찍은 골렘의 주먹 위에 올라섰다.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
쉬익!
휘두른 검에서 초승달 모양의 검기가 골렘의 어깻죽지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푸홧!
일격.
그 단 한 번의 공격에 골렘의 어깨가 잘려나갔고, 어깨에 달라붙은 팔이 떨어져 나갔다.
쿠웅!
떨어져 나간 팔이 어수선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그사이 해골 기사가 움직였다. 싱글레를 향해 몸을 날린 해골 기사가 검을 휘둘렀다.
카앙!
해골 기사와 싱글레, 둘이 이제는 주인을 잃은 골렘의 주먹 위에서 교차했다.
끼릭, 끼릭!
그리고 시작된 힘 대 힘의 대결.
당연히 승자는 싱글레였다. 싱글레의 검이 가뿐하게 해골 기사의 검을 밀어내고 있었다.
그 순간 싱글레가 발로 해골 기사를 밀어냈다. 힘에서 밀린 해골 기사가 뒷걸음질 쳤다.
동시에 해골 기사가 넘어졌다.
골렘의 주먹 위, 울퉁불퉁한 그 무대에서 뒷걸음질을 치면서 균형을 잡는 건 해골 기사가 갖춘 능력 밖의 일이었으니까.
넘어진 해골 기사를 향해 싱글레는 검을 높게 들었다.
“벼락!”
짧은 스킬 외침과 함께 싱글레의 검이 그대로 추락했다.
벼락처럼 떨어진 검은 곧바로.
꽈릉!
진짜 벼락을 불렀다. 검이 떨어진 지점 바로 위로 벼락 한 줄기가 떨어졌다.
뇌격!
160레벨 파이터 전용 레어 스킬, 위력은 현재 공개된 파이터 전용 스킬 중 최강!
특히 뇌격 스킬은 사용자의 레벨보다 낮은 상대로는 일정 수준의 방어력을 무시하는 옵션이 있었다. 싱글레보다 30레벨 이상 낮은 히르칸이 소환한 해골 기사를 기준으로는 방어력이 없는 셈이나 마찬가지.
그 결과는 섬뜩했다.
고작 한 번의 스킬에 해골 기사가 새카맣게 타버렸다. 복구조차 못할 정도로 치명적인 일격을 당한 것이다.
‘가뿐하군.’
싱글레는 기세등등한 표정을 지었다. 동시에 싱글레는 히르칸을 찾았다.
자신만만함을 넘어서 거만하기까지 했던 히르칸이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의 처참하게 뭉개진 표정을 꼭 기억 속에 두고 싶었다.
‘음?’
하지만 그 어디에도.
“어?”
정말 그 어디에도.
“서, 설마?”
하회탈의 존재는 없었다.
9.
‘우와…… 마력 다는 속도 봐. 데미지 끝장나네.’
달리던 히르칸은 쭉쭉, 놀라운 속도로 줄어드는 자신의 마력 상태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이 정도면 160레벨 이상이라고 봐야겠지? 분명 랭킹에 이름이 있겠지.’
그 순간 히르칸은 자신의 손에 쥐어진 시계를 바라보며 옅게 미소를 지었다.
‘녹옥 이무기, 박쥐 습격자, 강철 검은 늑대…… 뭐든 간에 한 부위만으로도 해골 기사한테 아이템 한 벌 맞춰주겠네.’
수작이었다.
와치맨이란 단어를 언급할 때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히르칸은 싱글레와 싸울 생각이 없었다.
싸우지 말아야 할 근거는 넘쳐났다.
상대는 자신을 알고, 나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온 실력자였다. 반면 히르칸은 상대에 대해 아는 정보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럼 싸울 필요가 없다. 애초에 히르칸은 승산 없는 싸움을 결코 하지 않는다.
‘그래도 이 수작에 넘어갈 줄은 몰랐는데…….’
와치맨이란 있지도 않은 걸 꺼내면서, 그럴싸한 연기를 하고, 심지어 제 손목을 잘라내면서까지 시계를 건네준 이유 역시 그 시계를 제물 삼아 도망치기 위해서였다.
굳이 상대로부터 시계를 받을 생각도 없었다. 그저 자신의 시계를 줄 정도로, 전투를 할 작정이라고 상대를 착각하게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 최소한 상대가 히르칸의 시계를 받는다면, 히르칸이 도망친다는 생각은 하기 힘들 것 아닌가?
물론 그렇게 수작을 부리고 도망칠 경우 적잖은 금전적 손해를 보겠지만, 그래도 그런 손해와 함께 48시간 페널티를 얻는 것보단 나았다. 특히 히르칸이 착용한 주요 아이템들, 결사대의 반지나 아반의 검, 타락 액세서리는 귀속 아이템으로 잃고 싶어도 잃을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수작은 대박인 셈.
하지만 기쁨은 거기까지였다.
시계를 다시 주머니 안에 넣은 히르칸은 이제 20퍼센트 남짓밖에 남지 않은 마력을 보며 이를 꽉 물었다.
‘붙었으면 끔찍했겠군.’
싱글레가 엄청난 속도로 히르칸의 소환물을 제거한다는 의미다. 만약 정면에서 붙었으면 결코 승리를 장담하지 못했을 것이다.
희소식은 아니다.
‘대체 왜 이런 새끼가 날 노리는 거지?’
적어도 지금 히르칸을 노리는 어마어마한 놈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으니까.
히르칸이 이를 다시 한 번 꽉, 물었다.
< 35화. 게릴라들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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