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솔플의 제왕-102화 (102/192)

< 35화. 게릴라들 (2). >

4.

사라보를 중심으로 저주받은 영지 근처에 마련된 임시 마을에 모인 유저들은 대부분이 140레벨 이상이었다.

당연히 여기 모인 유저들 대부분은 워로드 서비스 시작과 동시에 워로드의 주민이 된 자들이었고, 그 이후 하루에 대여섯 시간…… 일부는 워로드란 게임 때문에 가족이나 친구에게 우려 섞인 손가락질이나, ‘쯧쯧! 게임이 밥 먹여주니? 밥 먹여줘?’ 같은 소리를 들

었을 정도로 게임을 많이 하는 부류였다.

때문에 워로드란 게임이 어떤 게임인지 모를 리 없다.

그런 그들에게 히르칸은 경외의 대상이기보다는 경계의 대상, 견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하회탈이 1위를 먹었군.’

‘말도 안 돼. 내가 알기로 하회탈은 130레벨대야. 레벨 차이가 10레벨 이상 차이 나는데, 심지어 하회탈은 혼자 사냥을 하는데 어떻게 4인 파티보다 더 많이 잡을 수 있는 거지?’

‘소문대로 어마어마한 재벌집 자식인가? 게임에 1억 달러를 썼다는 소문이 진짜인가? 확실히 가진 아이템들은 못해도 유니크 아이템, 해골들마저 유니크 아이템을 착용하고 있으니…… 빌어먹을 부자 새끼. 돈지랄은 다른 곳 가서 하라고!’

히르칸 역시 그런 주변의 시선을 모를 리 없었다.

‘여기까지 왔군.’

더불어 이런 주변의 시선은 히르칸에게 우려했지만 동시에 고대하던 시선이었다.

‘드디어 따라잡았다.’

이런 시선을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도 받아봤다. 그때는 2년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더욱이 당시는 혼자도 아니었고, 떼로 덤벼들어서 간신히 선두주자들에게 경계심을 심어줄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페이스는 히르칸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가진 모든 걸 지금 워로드란 세계에 투자하는 히르칸에게, 자신의 틀리지 않았다는 증거는 그 무엇보다 보고 싶었던 증거였다. 흔들거리던 히르칸을 위로해줄 수 있는 유일한 근거였다.

‘의외로 운이 좋았어.’

사실 이런 시선과 함께 오는 게 시비다. 시비를 떠나, 대대적인 공격도 당해본 히르칸은 이번에 분명 사고가 터질 가능성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마음의 각오는 단단히 해두었었다.

그런데 의외로 히르칸에게 불만 어린, 경계심 가득한 시선을 보내면서도 대놓고 시비를 거는 무리는 없었다.

정확한 이유를 히르칸은 모른다. 대신 어느 정도 짐작 가는 바는 충분히 있었다.

‘설마 여기서 레드불스 덕을 볼 줄이야.’

최근 레드불스의 길드 마스터 체브, 그가 공식적인 인터뷰에서 하회탈에 대해 언급을 했다.

인터뷰 도중에 체브가 최근 본 가장 인상적인 워로드 관련 영상으로 하회탈의 왈츠를 언급했고, 리포터가 곧장 하회탈과 친분이 있느냐, 라는 질문을 건네자, 체브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렇게 대답했다.

“공식적으로는 모른다, 그렇게 대답하겠습니다.”

그 대답이 나오는 순간, 온라인이 살짝 뜨거워졌다.

- 하회탈하고 레드불스하고 아는 사이였어?

- 하회탈이 레드불스의 숨겨진 에이스 카드였나?

- 우와 하회탈이 레드불스 들어가면 완전 끝판 아님? 지금 당장 레드불스 1군 레이드팀에 하회탈 들어가면, 워로드 최강이나 다름없잖아!

- 이건 소문이긴 한데, 둘이 사귄다는 소문이 있어.

- 둘 다 남자 아님?

- 그러니까 대박인 거지.

- 위에 미친놈들이 있네.

물론 뭔가 이상한 부분이 뜨거워진 경우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그때 일을 기점으로 하회탈을 건드리는 건, 레드불스의 심기를 살펴야 하는 일이 됐다.

‘내가 마음에 든 모양이야. 아니면 내가 준 퀘스트 단서 때문에 퀘스트 진행이 엄청나게 잘 되는 중이거나.’

물론 체브가 맨입으로 그냥 꺼낸 이야기는 아니었다. 체브가 자신의 말이 가지는 영향력을 모를 리 없다.

일종의 신호였다. 하회탈, 너와 보다 긴밀한 관계를 맺고 싶다는 의미의 신호.

히르칸 입장에서는 갑작스러운 일이었지만,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는 일이었다.

‘역시 가면을 쓴 게 정답이었어.’

하회탈.

결과적으로 하회탈 가면이 히르칸의 존재감을, 있지도 않은 배경의 존재감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덕분에 히르칸은 그 어떤 물리적인 견제 없이, 랭킹 1위로 부두 키메라 사냥을 마칠 수 있었고, 포인트 랭킹 1위 자격으로 사라보 앞에 당당히 설 수 있었다.

“수고했네.”

임시 마을에서 활동 중인 유저들, 부두 키메라 사냥 포인트 랭킹 1위부터 4위까지, 네 무리를 한곳에 모은 사라보는 그들에게 보석을 하나씩 줬다. 스스로 빛을 내는 붉은 보석이었다.

“자네들의 수고 덕분에 드디어 이블 아이의 저주를 막아낼 수 있는 방법을 만들었네. 자네들에게 준 이 보석이 이블 아이의 저주가 퍼지는 걸 막아줄 걸세.”

그걸 받는 순간 모두가 눈치를 챘다.

‘이런 내용이었군.’

‘4위까지만 티켓을 준다, 이건가? 재미있게 됐군.’

‘그렇다면 이 티켓 소유자만이 받을 수 있는 퀘스트가 있다는 의미인데?’

그동안 포인트 랭킹에 따른 보상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유니크 아이템을 준다, 스킬북을 준다. 보상으로 10만 골드가 넘는 골드를 준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이블 아이의 저주를 막을 수 있는 보석! 이게 보상이었다. 즉, 이 보상을 받은 이들만이 이블 아이 공략이 가능해진 것이다.

‘지금까지는 예선전.’

‘본선전은 우리끼리만.’

제법 가치가 있는 보상이었다. 현재 저주받은 영지를 배회하는 이블 아이는 공략 불가 대상이었다. 이블 아이의 눈을 보는 순간 발동하는 저주는 모든 능력치를 50퍼센트 감소시키고, 움직임 속도는 80퍼센트 감소시키는 무시무시한 저주였다. 레벨이 200레벨이

넘어가는 유저라면 모를까, 150레벨 유저들에게 이블 아이는 잡을 수 없는 존재였다.

물론 1위에게는 추가 보상이 있었다.

“자네 덕이 가장 컸네. 이건 자네에게만 주어지는 포상일세.”

그 포상.

“예?”

“잘 쓰게.”

“예?”

코인 하나였다.

1,000이란 숫자가 쓰인 코인 하나.

“이, 이게 전부입니까?”

히르칸이 진심으로 당황한 표정으로 되물었고, 사라보는 그런 히르칸의 어깨를 두드렸다.

“수고했네.”

그 말 한마디를 듣는 순간 히르칸은 부들부들 떨었다.

‘아니, 이런 거 말고 아이템 줘! 아이템!’

설마 1위 보상이 1천 골드일 줄이야? 물론 1천 골드는 적은 돈이 결코 아니다. 퀘스트 보상으로 1천 골드 이상 주는 경우는 드물다. 꽤 큰 보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이번 퀘스트에서 1위를 하기 위해서, 뼈폭탄을 비롯해 아낌없는 투자를 한 히르칸 입장에서는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었다.

‘진짜 씨팔!’

욕이 절로 나올 정도.

사라보는 그런 히르칸을 아주 가뿐하게 무시한 채, 나머지 이들을 보며 말했다.

“이제 남은 건, 이블 아이를 잡고 저주받은 성에 들어가는 일뿐. 가장 먼저 이블 아이를 잡고, 성에 도착하는 자에게 이 칼을.”

툭툭!

말하는 도중에 사라보가 자신의 왼쪽 허리춤에 차고 있는 칼의 칼집을 두드렸다.

“이 칼을 보상으로 주겠네.”

[퀘스트 ‘이블 아이 사냥꾼’이 시작됩니다.]

[이 퀘스트는 조건부 퀘스트입니다.]

진짜배기 퀘스트가 시작됐다.

5.

소문은 바로 퍼졌다.

포인트 랭킹 1위부터 4위까지, 그 넷만이 이블 아이를 잡을 수 있게 됐고, 그들이 이블 아이 사냥을 위해 팀을 구성한다는 내용의 소문.

그리고 퀘스트 보상으로 사라보가 가진 칼 중 하나가 걸렸다는 소문!

포인트 경쟁에서는 패배했지만, 그래도 저주받은 영지에서 사냥을 더 할 생각이 남은 유저들은 당연히 관심을 가졌고, 동시에 그들은 계산도 금방 마쳤다.

‘하회탈이야.’

‘하회탈하고 같은 팀이 되는 게 가장 유리해.’

여기 모인 이들은 대부분 고수들이다. 실력은 뛰어나다. 하지만 약점도 분명 있다. 일반 사냥에서는 우수하지만, 보스 몬스터 레이드에 대한 경험은 레벨만큼 많지 않다는 점.

이블 아이는 보스 몬스터는 아니지만, 보스 몬스터라고 판단해야 할 정도로 난이도가 높은 놈이었다.

그런 녀석을 잡는데 필요한 건 보스 몬스터 레이드 경험이 많은 유저고,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하회탈은 최고의 조각이나 마찬가지였다.

히르칸 역시 마찬가지였다.

‘혼자 못 먹어.’

이블 아이.

혼자 잡으라면 잡을 수 있다. 지금의 히르칸이라면, 혼자서 못 잡을 건 없다.

하지만 다른 경쟁자들보다 빨리 잡을 순 없다.

‘젠장, 설마 그게 예선전이었을 줄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4위만 노렸을 텐데!’

어쩔 수 없다. 히르칸에게도 약점은 분명 있다. 단시간 내에 강력한 데미지를 주는 게 불가능하다.

‘이번 보상은 무조건 받아야 해. 이제까지 쓴 돈이 얼만데, 사라보의 칼이라도 받아야지.’

아머 브레이킹, 표적의 방어구를 파괴하는 작업은 스킬보다는 유저의 실력이 중요하다. 몬스터의 몸에 달라붙은 채로 스킬을 섞어서 쓰는 건 쉽지 않고, 스킬 쿨타임의 존재도 거슬린다. 여기선 히르칸이나 검사 클래스 유저나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데미지 딜러 역할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140레벨의 검사 클래스, 그것도 파이터로 승급한 유저가 사제로부터 풀버프를 받고, 3개 이상의 스킬을 조합했을 때 순간적으로 나오는 데미지는 히르칸이 어떤 수를 써도 못 따라간다.

물론 반대로 히르칸의 경우에는 해골 전사와 해골 기사, 해골 마법사와 골렘을 이용해 데미지를 꾸준히 누적시킬 경우, 총 데미지 자체는 일반 검사 클래스와 비교를 거부할 정도로 많다.

‘무조건 가장 먼저 이블 아이를 잡고, 가장 먼저 성에 들어가야 해.’

어쨌거나 속도전에서는 치명적인 일격이 중요하다. 속도전의 경우에는 HP를 줄이기보다는 파괴라는 선택지가 유리하기 때문이다. 유저를 예로 들면, 꾸준히 데미지를 누적시켜 HP를 0으로 만들어 죽이는 것보다는 그냥 목을 단숨에 잘라서 게임오버 시키는 셈이

다.

‘나를 포함해서 5개 파티.’

더불어 이블 아이를 잡으려면, 대략 스무 명 정도의 전력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

5개 파티가 모이면 그 정도 숫자가 된다.

물론 이렇게 되면, 사라보의 칼을 보상으로 받았을 경우 분배가 조금 골치 아파진다.

만약 히르칸이 사라보의 칼을 가지고 싶다면, 그만한 대가를 남은 파티원에게 지불해야 한다.

반대로 다른 누군가가 대가를 지불하고 사라보의 칼을 가지고 싶다고 나올 수도 있다.

‘김칫국은 떡 먹은 후에 마셔도 늦지 않지.’

물론 중요한 건 가장 먼저 이블 아이를 잡고, 저주받은 영지의 성에 다다르는 것이다.

‘일단 잡고 보자. 잡고!’

히르칸, 그가 어느 때보다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6.

“갑옷 벗겼다!”

“페이즈 넘어가기 전에 아머 브레이킹에 성공하다니, 미친 새끼!”

이블 아이.

5미터나 거대한 덩치를 갑옷으로 가린 채, 거대한 눈 하나만 달린 뱀머리만을 오롯하게 드러내고 있던 녀석이 드디어 자신의 진면목을 세상에 공개했다.

정체를 모를 거대한 염소의 하체에 오우거의 상체를 가진 녀석의 피부는 마치 누더기들을 엮어 만든 옷처럼 곳곳에 재봉질의 흔적이 가득했다. 여기에 거대한 뱀머리에 달린 채 붉은 빛을 내뿜는 외눈의 존재는 누가 보더라도 이블 아이라는 이름이 잘 어울리는

괴물이었다.

그런 괴물의 갑옷을 혼자 힘으로 벗긴 히르칸이 잽싸게 바닥에 내려왔다. 이블 아이는 그런 히르칸을 외눈으로 힐끔 바라보았다. 쫓진 않았다. 탱커 세 명이 삼각형 꼭짓점 형태로 이블 아이를 포위한 채 이블 아이의 행동을 막고 있었다.

2미터도 채 되지 않는 유저들이 5미터 신장의 괴물을 막아서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지만, 그들에게는 이블 아이를 막아낼 만한 저력이 충분히 있었다.

“마법사들 대기 완료!”

“페이즈 무시하고, 무조건 데미지 딜링으로 가자!”

“HP보다는 데미지 집중해서, 신체 파괴를 유도해!”

그러는 사이 무대에서 이탈해 잠시 숨을 돌리는 히르칸에게 사제 한 명이 다가왔다.

“힐 필요해?”

히르칸이 손을 저었다. 사제가 그런 히르칸의 이곳저곳을 살펴봤다. 히르칸의 옷은 때가 탔을지언정, 찢어진 곳은 없었다. 히르칸이 아머 브레이킹 도중에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공격을 당하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전장에서 상처는 훈장이라고 하지만, 워로드에서 상처는 훈장이 될 수 없다.

반대로 히르칸과 같은 모습이 훈장이라고 할 수 있다.

“역시 대단해. 너만큼 갑옷을 잘 벗기는 실력자는 내가 본 적이 없었어.”

히르칸은 대답 대신 손가락을 튕겼다.

떨그럭 떨그럭!

그러자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해골 마법사들이 팔을 높게 들었다. 금빛 수가 이곳저곳, 멋지게 놓인 적색 로브를 뒤집어 쓴 채 한 손에는 검은 보석이 들린 지팡이를 든 해골 마법사 다섯 마리는 멋지다는 느낌보다는 비싸다는 느낌을 물씬 풍기

고 있었다.

히르칸을 바라보던 사제가 그 낌새를 눈치채고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이제는 말도 안 나올 지경이군.’

주인이 아머 브레이킹이란 복잡한 작업을 하고, 골렘과 해골들을 이용해 데미지 딜링을 하고, 상황에 따라서는 시선을 끄는 탱커 역할까지 소화해낸다는 것.

‘하지만 분명 한계는 있군.’

대단하다.

하지만 동시에 단점이 눈에 확실하게 보였다.

‘이건 분명 오버 페이스야.’

보스 몬스터 레이드를 할 때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게 바로 휴식이다.

보스 몬스터 레이드는 마라톤도, 단거리 경주도 아니다. 릴레이 경주라고 할 수 있다. 전력으로 뛴 사람은 바통을 넘기는 순간, 휴식을 취해야 한다. 그래야 다시 자기 차례가 됐을 때 전력으로 뛸 수 있다.

하지만 히르칸에게는 그게 없다.

분명 히르칸이 이대로 완주를 한다면,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신기록을 달성할 것이다. 하지만 워로드는 마라톤이 아니다. 골인 지점 없이, 그저 무수히 많은 이들이 순위경쟁만 하는 세계다.

‘내 알 바 아니지.’

물론 이런 히르칸의 사정을 지금 여기 있는 사제 유저가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럼 다음 공격 준비하라고.”

사제 유저는 히르칸이 오히려 달리다 제풀에 쓰러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었다.

그런 사제의 말에 히르칸은 대답 대신 대충 손만 흔들었다. 사제가 떠났고, 그제야 히르칸이 숨을 돌렸다.

7.

이블 아이를 잡은 하회탈 팀은 곧바로 저주받은 성을 향해 전력으로 질주했다.

“우리가 1위겠지?”

“이보다 더 빨리 잡을 순 없어. 30대 길드 레이드 팀이 와있지 않은 이상은.”

“우와! 이블 아이 사냥꾼 타이틀 효과가 직업 관련 능력치를 20포인트나 올려주잖아? 대박이네.”

“그래?”

달리는 이들은 모두 가슴이 기쁨으로 부풀어 있었다. 1위로 성에 다다르고, 사라보의 칼을 받는 순간, 모두가 적지 않은 돈을 만질 수 있을 테니까.

기쁜 마음 덕인지, 모두의 발걸음도 가벼웠다.

그렇게 모두가 허름하기 그지없는 저주받은 성의 성벽 근처에 닿았고, 모두가 해자를 단숨에 건너뛴 후에, 성벽을 그냥 타고 올라갔다. 성벽에 넘쳐나는 균열을 이용해 성벽을 오르는 건, 근력 스탯에 어느 정도 투자를 마친 워로드 유저들에게 그냥 평지나 다름없

었다.

그리고 성벽을 넘는 순간.

[타이틀 ‘저주받은 성 방문자’를 획득하셨습니다.]

모두가 동시에 타이틀을 획득했다.

[퀘스트 ‘저주받은 영지’를 완료하셨습니다.]

‘오케이.’

히르칸은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 하나를 완료했다.

[퀘스트 ‘이블 아이 사냥꾼’을 실패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두가 이블 아이 사냥꾼 실패 통보를 받았다.

“응?”

“뭐지?”

오페라 배우들이 동시에 표정 연기를 하듯, 성벽을 넘은 유저들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 구겨진 표정으로 그들은 먼저 온 저주받은 성의 손님들을 발견했다.

‘우리보다 빨리?’

이블 아이 사냥에 실수가 있었다면 모르겠다. 그러나 하회탈 팀의 이블 아이 사냥은 이보다 더 완벽한 장면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했다. 특히 히르칸과 스트라이커의 활약으로 이블 아이가 2페이즈에 돌입했을 때 이블 아이의 목을 잘라낸 건, 시간 단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런데 자신들보다 빠른 파티가 있다니?

히르칸 역시 당혹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1천 골드짜리 보상으로 화가 난 상황에서, 사라보의 칼마저 놓친다? 최소 일주일 동안 속이 쓰릴 사건이다.

‘이 새끼들은 또 뭐야?’

히르칸이 독기 가득한 표정으로 자신들보다 먼저 이블 아이를 잡은 무리들을 훑어봤다.

‘누피 패밀리?’

누피 패밀리였다.

히르칸과 같이 이블 아이의 저주를 막아낼 수 있는 보석을 받은 무리.

‘얘네들 실력으로는 나보다 빨리 못 잡는데?’

실력은 분명 히르칸도 인정할 만큼 뛰어난 파티였다. 그러나 절대 히르칸보다 빨리 이블 아이를 잡을 수 있을 만한 저력을 가진 파티는 아니었다. 히르칸의 눈이 다른 이들을 훑었다.

그런 히르칸의 눈에 초록빛이 감도는 은색 갑옷을 입은 유저가, 원통 모양의 그레이트 헬름을 쓴 채 주변 유저들과 대화를 나누는 유저가, 주변 유저들이 같은 동료가 아닌 윗사람처럼 대하는 유저가 들어왔다.

‘헉! 저거 설마 녹옥 이무기 세트? 진짜?’

녹옥 이무기.

150레벨의 보스 몬스터로, 매우 강하다. 현재까지 사냥에 성공한 150레벨 보스 몬스터들 중에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강하다.

더불어 현재까지 30대 길드 중 한 곳인 비앤비 레인저스 길드만이 레이드에 성공했다.

강한 만큼 가치 있는 놈이었다. 녹옥 이무기를 재료로 만들 수 있는 유니크 아이템을 5파츠 이상 착용할 경우 녹옥 이무기 세트 옵션이 발동하는데, 이게 정말 끝내준다.

‘맙소사 저게 왜 여기 있어?’

치명적인 공격을 한 적에게 ‘이무기의 저주’를 걸며, ‘이무기의 저주’는 대상의 능력치 및 방어력을 25퍼센트 감소시킨다. 심지어 이무기의 저주는 다른 저주와 중첩 적용이 됐다.

이무기의 저주는 몬스터의 레벨이 높아질수록 효과가 큰폭으로 감소하지만, 150레벨 이하 몬스터를 상대할 때는 최고의 방어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더불어 현재 녹옥 이무기가 등장하는 옥산(玉山) 사블리에는 비앤비 길드가 독점 중이다. 녹옥 이무기 관련 아이템은 비앤비 길드가 독점 유통하고 있다. 30대 길드에는 절대 판매 불가다. 비앤비 길드의 큰 후원자들, 비앤비 길드와 긴밀한 관계를 맺은 30대 길드

외 유저들 정도만이 입고 다닐 수 있다. 돈이 있어도 못 구하는 놈이다.

심지어 녹옥 이무기 세트의 옵션은 제대로 공개된 적도 없다. 히르칸이기에 알고 있을 뿐.

그런 녹옥 이무기 세트가 눈앞에 있다니?

히르칸은 긴장했고, 동시에 직감했다.

‘여기 올 새끼가 아닌데? 비앤비 길드원인가?’

고래는 호수가 아닌 바다에서 살아야 한다. 딱 그거다. 저주받은 영지가 아닌 더 큰물에서 놀아야 하는 놈이 여기 왔다. 달리 말하면, 작은 물에 온 분명한 목적이 있다는 의미다. 실수로 오진 않았을 거다.

‘뭐지?’

그 순간.

‘어?’

녹옥 이무기 세트를 입은 그 의문의 존재와 히르칸의 얼굴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치진 않았다. 녹옥 이무기 세트를 입은 유저는 통짜 투구, 그레이트 헬름을 쓰고 있었고 히르칸 역시 후드를 뒤집어 쓴 채 하회탈을 착용하고 있었으니까. 이 둘이 눈을 마주치는 일

은 결단코 일어날 수 없다.

‘느낌이 싸하네.’

하지만 이 순간 히르칸의 머릿속으로 과거로 돌아오기 전…….

‘아주 싸해.’

영광을 눈앞에 둔 채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추락을 해야 했던 나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 35화. 게릴라들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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