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게릴라들 (1). >
1.
거대하면서도 괴상망측한 모양…… 마치 나무 귀신이 양팔을 벌린 채 비명을 내지르는 듯한 모양을 한 나무들이 우거진 숲은 그 자체만으로도 불길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숲 사이사이를 자욱하게 채우고 있는 푸른 안개는 숲을 보다 으스스하게, 보다 불길하게 만들었다.
이토록 스산한 숲에서 전투를 치른다는 건 썩 달갑지 못한 일이다. 하물며 그 상대가 사자의 하체와 오크의 상체 그리고 염소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 괴물이라면, 더더욱 달가울 일은 없을 것이다.
심지어 그 괴물이 들고 있는 녹이 잔뜩 슨 날을 머금은 핼버드, 도끼창은 담이 약한 자들의 고개를 절로 돌아가게 만들 터.
하지만 그 괴물을 상대하는 이들에게, 앞서서 거론한 요소들은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후웅!
저주받은 괴물, 부두 키메라란 이름을 가진 몬스터의 공격은 거셌다. 괴상망측한 몸에서 뿜어지는 강력한 힘, 그 힘을 이용해 휘두르는 핼버드는 바람을 가르는 게 아니라 찢을 기세였고.
콰앙, 콰앙!
그 무시무시한 공격이 방패를 내리찍을 때마다 생기는 충격음은 스산함을 풍기는 푸르스름한 안개들조차 파르르! 겁에 질려 떨게 만들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크어! 크어!
더욱이 일격을 휘두를 때마다 부두 키메라의 입에서 나오는 괴상망측한 기합소리는 상대를 향해 저주를 읊조리는 것처럼 들렸다. 들리는 소리만 본다면 부두 키메라의 압도적인 우세로 보였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결과물은 살짝 달랐다.
“힘이 넘치네, 넘쳐.”
조금은 과할 정도로 듬직한 검은색의 갑옷 그리고 자기 몸 크기에 버금가는 거대한 검은색 방패를 앞세운 채 부두 키메라의 공격을 받아내는 탱커는 단 한 발자국도 밀리지 않았다. 거침없는 공격을 담담하게 방패로 받아내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공격을 막아내면서, 스텝을 밟아 천천히 부두 키메라를 유인해 원하는 포지션을 유도하는 솜씨는 놀라웠다. 춤의 고수가 하수를 데리고 가르치는 듯한 광경이었다.
매우 괜찮은 솜씨였다.
그보다 더 괜찮은 건 마법사의 솜씨였다.
“좀만 더 버텨.”
탱커가 시선을 끄는 사이, 마법사는 캐스팅을 마치고 불덩어리 하나를 던졌다.
사람 몸통 크기의 불덩이는 마치 풍선처럼 두둥실, 떠올랐다. 마법사가 손바닥을 가볍게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이자 그 움직임에 맞추어 불덩이 풍선이 부두 키메라의 머리 위에 착지했다. 불덩이 풍선이 꿈틀꿈틀, 무언가를 토해낼 준비를 했다.
그와 동시에 마법사의 다른 한 손이 새로운 마법을 하나 더 꺼냈다. 이번 마법은 앞선 마법과 다르게 직관적이었다.
불꽃창!
길이는 5미터, 디자인은 보통의 창을 떠올리게 만들 정도로 심플했다.
마법사는 그 불꽃창을 투창하듯 던졌다. 표적을 잡는 건 어려울 것 없었다. 탱커의 노련한 솜씨 덕분에 부두 키메라는 마법사를 완벽하게 등지고 있었으니까. 다트판을 던지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마법사가 고려해야 하는 건 몇 점을 맞추느냐, 그것뿐이었다.
슈웅!
불꽃창이 부두 키메라의 등줄기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그리고 그 불꽃창이 닿기 직전, 마법사가 찰나의 타이밍을 가늠하고 조금 전 불덩이 풍선을 조작했던 손바닥을 움켜쥐었다. 꿈틀꿈틀거리던 불덩이가 드디어 진면목을 드러냈다.
푸홧!
불덩이에서 거대한 몸을 가진 불뱀이 등장했다. 등장한 불뱀은 입을 크게 벌리며 부두 키메라의 머리를 물어뜯을 기세로 낙하했다.
덥석!
불뱀이 먼저 부두 키메라의 머리를 물었고.
푸홧!
곧바로 불꽃창이 부두 키메라의 등판에 꽂혔다. 마법사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거의 즉시 시전이 가능한 불화살 마법을 양손으로 시전해 동시에 날렸다.
한 번의 공격에 무려 세 가지 마법을 동시에 맞추는 솜씨.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동시에 실력 좋은 마법사라면 마땅히 가져야 하는 솜씨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몬스터는 마법에 맞는 순간, 마법사를 공격 우선 대상으로 삼는다. 어그로가 끌린다. 그건 어떻게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반대로 한 번에 보다 많은 마법을 명중시키는 수밖에!
마법에 당한 부두 키메라는 화르르! 살아있는 횃불이 된 채 곧바로 마법사를 향해 돌진했다.
“오우!”
마법사가 달려드는 괴물을 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겁에 질린 표정은 없었다.
겁에 질릴 필요가 없었으니까.
부두 키메라가 마법사와의 거리를 10미터 남짓, 그 짧은 거리로 좁히는 순간 곧바로 대기하고 있던 스트라이커가 나섰으니까.
푸욱!
숨죽이고 있던 스트라이커는 여성 유저였다. 여성 유저들답게 맵시를 살린 캐쥬얼한 느낌 그리고 은색과 검은색이 적절히 조합된 갑옷을 입고 있었다. 여기에 투구를 벗고 있었다. 적색의 긴 생머리를 자랑하기 위해 일부러 벗은 듯했다.
워로드에서는 이런 부류를 겉멋만 든 부류라고 평가한다. 가장 중요한 머리를 보호하지 않고, 멋에 취한 바보들.
하지만 이번 여성 유저는 그저 바보라고 치부하기에는 솜씨가 너무나도 정확했다.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 속도로 달려드는 부두 키메라를 측면에서 덮쳐서 정확하게 찌른다는 것, 쉽지 않다. 과장하면 날아가는 화살을 맞춰 떨어뜨리는 수준이다. 심지어 지금 여성 유저는 돌진 스킬을 사용해 가속력을 높이고 있었다. 빠른 차가 제어가 더
힘들다는 건 상식이다.
여기에 번개 찌르기 스킬이 조합됐을 때, 스트라이커가 내찌른 검은 부두 키메라의 두꺼운 가죽을 가뿐하게 뚫은 건 물론, 찌른 부위의 상처를 마치 드릴로 뚫은 듯한 상처로 만들었다.
크어어!
부두 키메라가 괴성을 내지르며 날아갔다.
마법사가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진 교통사고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만약 동료의 실수 혹은 능력 부족으로 부두 키메라를 놓쳤다면 마법사가 부두 키메라 꼴이 됐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법사는 당황하기보다는 여유 넘치는 자세로, 부두 키메라를 날린 스트라이커를 향해 말했다.
“릴리, 너 투구 안 쓰냐?”
“남이사.”
“저러다 머리 터져 죽는 거지. 너 머리 터져 죽는 영상을 한 번 찍어야 하는데.”
“죽을래?”
“야, 부두 키메라 일어났다.”
140레벨의 몬스터, 부두 키메라를 앞에 두고 넘치는 여유를 보여주는 이들.
누피 패밀리다.
평균 레벨 155레벨, 100위 랭킹에는 모자라지만 반대로 100위 랭커와 10레벨 차이를 유지하는 준랭커들로 구성된 4인 파티로 워로드 초창기부터 활약한 역전의 용사들이었다
특히 레이드 대신 일반 사냥을 주력으로 삼는 누피 패밀리는, 레이드 능력은 부족하지만 반대로 중소형 몬스터는 30대 길드를 대표하는 멤버들과 비교해도 밀리기는커녕, 오히려 낫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뛰어났다. 30대 길드들 대부분이 레이드 위주로 전투의
숙련도를 높였다면, 그들은 일반 몬스터 전투로 숙련도를 높였으니까.
그때 사제 한 명이 말했다.
“이쪽으로 이블 아이가 오고 있어. 빨리 정리해.”
그 말에 나머지 멤버들이 바로 표정을 바꾸었다. 탱커가 다시금 부두 키메라와 붙으며 시간을 벌었고, 마법사가 마법 캐스팅을, 스트라이커는 다시 적당한 위치로 이동했다.
그사이 짧은 대화가 오고 갔다.
“이블 아이, 그 새끼 때문에 포인트가 안 쌓이네. 뭔가 기세를 타고 잡을 만하면, 놈이 나타나니…….”
“대체 언제 놈을 잡을 수 있는 퀘스트가 나오는 거지? 벌써 여기서만 일주일째 보내는 중이라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누구 한 명이든 좋으니 정해진 포인트를 획득해야 퀘스트가 나올 것 같던데?”
“그래? 우리 지금 포인트 랭킹이 몇 위지?”
“4위.”
“그럼 우리는 안 되겠네.”
“안 되겠지.”
그 순간 대화를 나누던 네 명의 머릿속에는 동시에 한 명의 유저가 떠올랐다.
“하회탈이 있으니까.”
“하회탈이 포인트를 달성해주기를 기도하자고. 어차피 압도적인 1위는 그 녀석이니까.”
“1위가 아닌 2위를 노리자고. 분명 포인트 랭킹에 따라 보상이 차등 지급될 테니까.”
말과 함께 그들이 다시 전투에 집중했다.
2.
저주받은 영지가 열리는 순간, 여러 소문들이 퍼져 나갔다.
그 소문의 근원지에는 NPC가 있었다.
“오늘도 수고했군. 자네가 오늘 사냥한 놈들을 합치면, 150포인트를 주겠네.”
NPC, 사라보의 말에 유저가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큰놈 하나 잡았는데, 175포인트 아닙니까?”
“큰놈이 아니라 크게 보이는 놈이었겠지.”
붉은 수염의 사라보.
말 그대로 덥수룩한 붉은 수염을 가진 190센티미터의 건장한 체격, 언제나 허리 양쪽에 칼을 차고 다니며, 별 시답잖은 이유로 덤벼드는 유저들을 가뿐하게 해치울 정도로 실력 좋은 NPC다.
더불어 워로드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NPC 중에 인지도만으로 따지면 열 손가락은 힘들어도, 열 손가락에 열 발가락을 더하면 그 안에는 들 수 있을 정도로 인지도가 있는 NPC였다.
일찍이 사라보는 블럭 필드가 해제된 장소에 등장해, 임시 마을을 만들었고, 임시 마을에서 유저들에게 퀘스트를 주는 역할을 했다.
속칭 이벤트 NPC!
이쯤 되면 당연히 유저들은 눈치챈다. 사라보가 등장했다는 건 저주받은 영지가 이벤트 무대라는 의미! 근거 없는 소문이 나올 만했다.
사라보가 주는 퀘스트 내용은 간단했다.
“이곳은 저주받은 영지일세. 그동안 결계로 막아두었는데, 결계의 힘이 결국 다해 공개됐군. 해서 토벌협회는 이번 기회에 저주받은 영지를 정화할 예정이네. 현재 저주받은 영지는 부두 키메라들이 점령하고 있네. 놈들도 강하지만, 변종인 이블 아이가 가진 특수
한 능력은 토벌협회에서도 대응법을 알지 못하네. 그러니 부두 키메라를 잡아오면, 놈을 분석해서 이블 아이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겠네. 당연한 말이지만, 보다 많은 부두 키메라를 잡아오는 자에게 그에 걸맞은 포상을 하겠네.”
굳이 뛰어난 이해력이 없어도, 워로드를 즐기는 유저라면 단숨에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한 내용이었다.
이때부터 저주받은 영지에 모인 고레벨 유저들의 포인트 획득 전쟁이 시작됐다.
이블 아이와의 교전을 피한 채, 최대한 많은 부두 키메라를 잡기 위한 경쟁이 시작됐다.
더불어 이름난 파티들이 모였다. 레이드가 아닌 일반 파티 사냥으로 레벨을 올린 140레벨 이상의 명성 있는 파티들이 상당수 몰렸고, 언더풋 소속, 심지어 30대 길드에 소속됐으나 1군에 포함되지 못해 스케줄 여유가 있는 이들에, 랭킹에 이름을 올린 랭커까지 왔
다.
별들의 전쟁이었다.
그 별들의 전쟁 속에서 가장 빛나는 이름의 주인공이 있었다.
콰앙!
거대한 돌도끼로 단숨에 부두 키메라의 몸뚱이를 반으로 토막내는 미노타우로스 골렘을 조종하고.
푸욱!
값비싼 유니크 방어구와 황금사마귀 낫칼이란 어마어마하게 비싼 검을 들고 토막 난 부두 키메라의 몸뚱이를 사정없이 찌르는 해골 기사를 부리며.
푹, 푹!
다양한 레어, 유니크 등급의 아이템에 본 아머를 두른 머리에 뿔 난 해골 전사들을 지휘하며 본인 역시 전투에 참가해.
푸홧!
심플하기 그지없는 디자인, 워로드에 단 한 자루밖에 없는 크로니클 유니크 아이템인 아반의 검을 휘둘러 부두 키메라의 몸뚱이를 재차 토막 내는 자.
하회탈 히르칸.
그가 이번 저주받은 영지의 가장 빛나는 별이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해골학의 스킬 랭크가 A랭크로 상승했습니다.]
[골렘 소환의 스킬 랭크가 A랭크로 상승했습니다.]
[해골 기사의 스킬 랭크가 D랭크로 상승했습니다.]
[타이틀 ‘부두 키메라 도살자’를 획득하셨습니다.]
‘꿀이네, 꿀!’
레벨업, 스킬 랭크업, 타이틀 획득!
워로드의 유저들을 춤추게 만드는 알림 3연발에 히르칸은 싱글벙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여기 진짜 좋아.’
저주받은 영지에서 사냥을 시작한 지 열흘째. 히르칸에게 저주받은 영지는 어느 곳보다 유리한 사냥터였다.
저주받은 영지 사냥의 핵심은 기동력이었다. 변종 부두 키메라, 이블 아이를 피해 최대한 많은 부두 키메라를 제거하는 것! 그걸 위해서는 기동력이 중요했다.
히르칸, 그가 가진 최대 장기 중 하나가 바로 기동력이었다. 필요하다면, 모든 전력을 단숨에 소멸시킬 수도 있으니까.
반면 일반 파티는 스트라이커는 몰라도, 마법사나 사제, 탱커의 기동력은 빠를 수가 없었다. 근력 스탯이 낮으니까. 문제가 생기기 전에 먼저 대응을 해야 한다.
하지만 히르칸은 문제가 생긴 직후라도 움직일 수 있었다. 이 차이는 매우 컸다. 문제란 건, 생길 수도 있고 안 생길 수도 있으니까.
여기에 부두 키메라와 히르칸의 궁합은 퍽 좋았다. 부두 키메라는 강하지만, 방어력은 약한 편이었다. 제대로 탱킹 역할을 해줄 수 있다면, 생각보다 공략은 쉬웠다.
마지막으로 경험치가 매우 짭짤했다. 140레벨이지만, 경험치 수준은 150레벨짜리 몬스터에 근접했다. 120레벨대의 히르칸에게는 어마어마한 경험치였다.
‘이러니 숨겨서 몰래 진행했지.’
한편으로는 왜 저주받은 영지를 몰래 숨긴 채 진행했는지 이해가 됐다.
포인트 경쟁 퀘스트다. 굳이 알려서, 경쟁자를 모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더욱이 저주받은 영지에서의 포인트 경쟁은 레이드를 잘하는 유저보다는 일반 파티 사냥을 주로 하는 유저들에게 유리하다.
‘이제 슬슬 때가 왔는데.’
그리고 이제 이 포인트 사냥도 끝날 때가 왔다. 이제 슬슬 이블 아이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을 사라보가 알려줄 것이고, 그때 분명한 보상을 해줄 것이다.
‘뭐가 나오려나?’
당연히 그 보상 중 가장 큰 보상은 사냥 포인트 랭킹 1위인 히르칸의 것이 될 터!
‘스킬북 같은 거 나와라. 스킬북!’
그리고 그 날이 왔다.
3.
“저주받은 영지에 도착했다.”
- 벌써?
은은한 녹색빛이 흐르는 갑옷을 입은 유저는 귀로 들리는 반문에 잠시 말을 멈춘 채, 자신의 눈앞의 광경을 바라봤다.
불길함 가득한 숲.
그 숲을 잠시 바라본 후에 유저가 입을 열었다.
“일단 메인 임무인 퀘스트부터 조사하고, 상황이 괜찮으면 하회탈을 제거하겠다.”
그 말에 대한 대답은 짤막했다.
- 그래, 수고하도록.
“수고.”
짧은 대화와 함께 녹색빛이 흐르는 갑옷을 입은 유저가 푸른 안갯속으로 사라졌다.
< 35화. 게릴라들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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