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저주받은 영지(3). >
5.
웨폰 웨어 울프 한 마리의 시체가 세 토막이 난 채 바닥에 너부러져 있었다.
그 시체를 바라보던 유저 한 명이 휙, 고개를 돌려 자신의 후방에 있던 동료 마법사를 향해 말했다.
“다음에도 그따위로 마법 던지면, 그때는 PK선언으로 간주할 거야.”
“미, 미안.”
동료라고 하기에 그 둘이 서로 나누는 대화는 험악했고, 일방적이었다. 충고를 넘어 협박이나 다름없는 통보였다. 그 통보에 지트는 발끈하기보다는 곧장 사과부터 했다.
‘진짜 생긴 것하고 다르게 성깔 끝내주네.’
사실 그건 지트의 성정에 어울리는 반응이 아니었다. 지트의 성격이 괴팍하거나, 더럽거나, 그런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조용한 면보다는 괄괄한 면에 더 많았다.
스윙 길드와 충돌한 것도 그 성격 때문이었다. 작은 충돌, 감정적인 충돌이 있었을 때 지트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참았다면, ‘너 이 새끼, 앞으로 사냥할 때 조심해!’ 이런 소리를 들을 일은 없었을 테니까.
그런 지트가 자신의 성격을 죽이고, 새로운 파트너 앞에서 자세를 낮추는 이유는 간단했다.
‘……실력도 끝내주고.’
이번 파트너의 실력이 굉장했으니까.
솔직히 지트는 지금 상황이 아직도 잘 믿기지 않았다.
보통 정상적인 유저라면, 자신의 제안에 ‘미안합니다’ 라는 사과조차 하지 않은 채 고개를 돌리기 마련인데, 이번 파트너는 오히려 진지하게 관심을 가져줬다.
그때 솔직히 지트는 자신의 파트너가 실력이 부족한 부류라고 생각했다. 실력이 좋은 유저들이 그런 관심을 가지는 경우는 없었으니까. 혼자 활동하는 걸 보면, 자신처럼 떠돌이 부평초 신세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설마 이렇게 실력이 끝내줄 줄이야?
“한 마리 더 오는군. 내가 막을 테니까, 놈이 등을 보이는 순간 곧바로 마법을 써.”
“알았어.”
실력 좋은 파트너 덕분에 지트는 생각보다 빠르게 이동을 하면서, 검은 유골 탐색을 할 수 있었다.
“던질 땐 확실하게 던져. 어영부영 뜸 들이다가 조금 전처럼 괜히 이상한 타이밍에 던지지 말고.”
“알고 있어. 미안해, 그건 실수였어.”
물론 실력 좋은 파트너는 요구하는 것도 많긴 했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만했다.
“만약 그 퀘스트를 완료했는데 블럭 필드가 해제되지 않으면 네놈 목숨은…….”
“뭐? 지금 뭐라고?”
“아, 이건 혼잣말. 혼잣말한 거야.”
“혼잣말치고는 굉장히 또박또박했던 거 같은데?”
“그래서 불만 있어?”
“아, 아니. 아! 웨어 울프다! 캐스팅 시작할게!”
더 나아가 실력 좋은 파트너는 때때로 농담도 했다. 섬뜩하긴 하지만, 분명 농담이었다. 적어도 지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농담이겠지. 저게 농담이 아니면…….’
지트는 웨폰 웨어 울프를 막기 위해 달려드는 파트너를 바라보며 짧게 몸서리를 쳤다. 그 정도로 이번 파트너의 실력은 우수했다. 얼마나 대단했으면, 지트는 자신의 파트너가 스킬을 쓰는 걸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을 정도였다.
스킬조차 쓰지 않아도, 지금 상대하는 웨폰 웨어 울프 정도 되는 몬스터를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고수라는 의미였다. 물론 상대가 150레벨이 넘어가고, 유니크 아이템을 도배한다면 실력이 없어도 스펙으로 웨폰 웨어 울프를 짓누를 수 있겠지만.
어쨌거나 개인적으로 함께 하는 파티도, 길드도 없는 지트는 여러 종류의 유저들과 파티를 맺어봤기에, 이번 파트너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쯤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진짜 이게 마지막 기회야.’
그리고 그런 실력 좋은 파트너와 함께 행동할 수 있는 기회가 쉽게 오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때문에 지트는 검은 유골 탐색 퀘스트를 진행한 지 3일째가 되던 날, 그동안 감추고 있던 정보를 공개했다.
“검은 유골 퀘스트에 대해 말해줄까?”
“그동안 입 다물고 있다가, 이제 와서 말해주는 이유가 뭐지?”
“그 정도로 가치 있는 정보였거든. 초면에 말해주긴 아까울 정도로.”
“좋아, 말해 봐.”
그건 곧 지트가 진심으로 이번 파트너를 믿으며 동시에 이번에는 확실하게 검은 유골 퀘스트를 완료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검은 유골 퀘스트는 검색만 해봐도 나올 정도로, 미산드라 성에서 받을 수 있는 퀘스트의 종착역 같은 퀘스트야. 그런데 그 누구도 못 깼지. 왜 그럴까? 물론 가장 큰 이유는 간단해. 그 퀘스트를 깰 시간에 승급을 위한 레벨업을 하는 게 훨씬 더 현명하고 이익이
니까.”
지트.
그는 미산드라 성이 공개되자마자 미산드라 성에 왔다. 무언가를 노리고 온 건 아니었다. 애초에 같이 게임을 하는 친구나, 동료, 길드가 없는 그는 자기 기분 따라 부평초처럼 이곳저곳을 모험하는 유저였고, 그러다가 미산드라 성에 우연히 도착했을 뿐.
그런 그가 미산드라 성에 머문 것 역시 무언가를 노려서 그런 게 아니었다. 그저 그의 레벨이 우연히 미산드라 성에서 활동하기에 나쁘지 않았다는 것, 그게 머물렀던 이유의 전부였다.
재미난 점은 지트와 같이 같이 활동하는 그룹이 없는 유저들은 이 그룹, 저 그룹을 오고 가면서, 다양한 정보와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레벨업이나, 스펙업에는 비효율적이지만, 정보 습득에는 굉장히 효율적인 방법이다.
덕분에 지트는 미산드라 성을 중심으로 시나리오를 쓸 만큼 정보를 모을 수 있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미산드라 성 너머에는 단순한 지역보다는 아마도 이벤트 장소가 있을 수도 있어.”
그 말에 지트의 파트너가 제대로 된 관심을 보였다.
“근거는?”
“미산드라 성의 NPC들 중에서는 도망자나, 피난민이란 타이틀을 가진 이들이 몇 명 있거든.”
“그리고?”
“더욱이 토벌협회 관련 퀘스트를 진행해서 토벌협회 NPC들과 친밀도를 쌓으면, 그때부터 몇 가지 특별한 표현을 듣게 돼. 대표적인 표현으로, 저 너머…… 그러니까 블럭 필드로 정해진 저 산 너머에 불길한 게 있다, 라는 표현을 쓰지.”
“몬스터가 불길한가 보지.”
“토벌협회는 존재 의의 자체가 몬스터 토벌이야. 몬스터가 있다고 하면 이 몬스터를 어떻게 잡을까, 그런 고민을 하지, 불길하다고 피할 방법을 고민을 하지 않는다고.”
“게임을 꽤 잘 아는군.”
“이것 봐, 난 워로드 오픈 당일부터 매일 8시간 이상 게임을 한 인간이라고.”
“그런데 레벨이 그것밖에 안 돼?”
“이 게임은 진짜 불공평한 게임이니까. 그리고 솔직히 내가 정상이지. 워로드에는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 말고도 시나리오 퀘스트가 넘쳐나고, 성 하나마다 그 성에 있는 NPC들을 중심으로 시나리오가 하나씩 있어. 그런데 무조건 사냥터에서 사냥터로, 경험치를
조금이러도 더 처먹으려고 메뚜기처럼 날뛰는 게 이상한 거지. 그게 무슨 게임이냐? 광산에서 광부들도 그렇겐 작업 안 해.”
“이야기 계속해 봐.”
“좋아. 본론으로 돌아오면, 미산드라 성의 NPC들이 하는 대화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내가 봤을 때 이 블럭 필드는 블럭 필드라기보다는 결계 같은 게 있을 가능성이 커. 이 너머에 무언가가 있고, 그로부터 미산드라 성을 차단하기 위한 결계.”
“그럼 그 결계랑 검은 유골이 무슨 관계지?”
“검은 유골 퀘스트에서 언급되는 검은 유골은 어쩌면 상징적인 표현일지도 몰라. 뭐 이건, 사실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생각보다 많은 유저들이 이 퀘스트를 클리어하려고 했다는 점이지. 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하다가 안 되니까 약이 오른 경우도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퀘스트를 깨지 못했지. 왜일까?”
“승급하러 가는 게 이익이니까.”
파트너의 말에 지트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잘 생각해보라고. 나름 적지 않은 유저들이 작심하고 수색을 했단 말이야. 그런데 그들은 말한 것처럼 사냥을 하면서 수색을 했어. 쉽게 말해서 사냥도 하는 김에 수색도 할까? 이런 식으로.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90레벨 이상의 몬스터가 있는 지역에서 수색
빈도가 높았어. 반대로 말하면…….”
“레벨이 낮은 사냥터는 수색빈도가 낮았군.”
“그래, 그게 맹점이었지. 이 주변에도 레벨이 낮은 몬스터가 등장하는 사냥터가 있지만, 실상 그 사냥터를 주력으로 삼는 경우는 없으니까. 저레벨 유저들이 미쳤다고 현재는 종착역이나 다름없는 이곳에 오겠어?”
지트는 말과 함께 눈빛을 빛냈다.
이게 바로 지트가 이번 퀘스트에 미련을 가지는 배경이자 동시에 검은 유골 퀘스트 클리어에 확신을 가지는 근거였다.
동시에 이 사실을 이제까지 그동안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솔직히 이 사실을 말해줬다면, 이미 진작에 다른 이들이 퀘스트를 클리어했을 것이다. 혹여 온라인에 올렸다면, 좋아요 같은 걸 아주 배부르게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하면, 거기서 끝일 뿐. 지트는 이번 이야기의 주역이 될 수 없다.
지트는 솔직히 이번 퀘스트만큼은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파트너의 말대로 그렇게 게임을 많이 했는데, 무언가 자신만이 해낸 결과물을 남기고 싶었다. 그래야 비싼 돈을 내고, 자신의 시간을 투자한 보람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솔직히 이런 진심을 꺼내게 만들 만큼, 진심으로 도와줬던 파트너가 없기도 했다.
그동안 그의 제안을 제대로 귀 기울여서 들어준 유저조차 손에 꼽을 정도였고, 개중에서 3일 동안 이런저런 투정을 부리면서도 지트의 말을 따라주는 유저는 지금 파트너가 처음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역으로 저레벨 몬스터가 있는 지역으로 이동하면 거기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로군.”
“그렇지!”
때문에 지트는 간만에 좋은 파트너를 만난 것에 감사했다. 물론 성격이 좋아 보이진 않았지만.
“기뻐하라고. 이 정보를 누군가에게 공개한 건 그쪽이 처음이니까.”
그 말에 지트의 파트너는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어디선가, 영상에서 본 듯한 미소였다.
6.
60레벨 남짓한 몬스터, 병에 걸린 웨어 울프가 등장하는 사냥터.
미산드라 성에서 좀 먼 곳에 위치한 이 사냥터는 인기가 없었다. 일단 가장 큰 문제는 이 사냥터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80레벨 이상의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사냥터들을 지나쳐 와야 한다는 점이었다.
또한 주변에 80레벨 이상의 몬스터들이 등장하는 사냥터가 있다는 건, 도처에 지뢰밭이 깔린 곳에서 사냥을 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마음 편히 사냥할 수 있을 리 없다.
반대로 그것만 아니라면, 경쟁자 없이 쾌적한 사냥이 가능한 지역이 되는 셈이다.
다양한 레벨대의 유저들을 길드원으로 보유하고 있는 스윙 길드의 길드원들이 낮은 레벨의 길드원을 돕기 위해 병에 걸린 웨어 울프 사냥터에 있는 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지트, 네가 여기 무슨 일이지?”
적어도 지트, 그가 새로운 파트너와 그 사냥터에 등장하지만 않았다면 문제는 조금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지나가는 거야, 지나가는 거.”
지트는 여섯 명의 스윙 길드원들, 여자 둘과 남자 넷으로 구성된 그 무리를 보는 순간, 게임 속에서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왜 여기 유저가 있어? 하고 의문을 가졌는데, 설마 스윙 길드일 줄이야?
반면 스윙 길드 입장에서는 나름 괜찮은 기회였다.
지트가 검은 유골 퀘스트 진행을 위해 적잖은 노력을 한다는 건, 미산드라 성에서 제법 오래 활동한 유저들이라면 다 아는 일이었다. 스윙 길드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여기 검은 유골이?’
지트가 당황한 이유였다. 솔직히 이런 경우가 발생할 게 두려워 그동안 쉽사리 이곳을 의심하면서도, 오지 못했다.
‘젠장, 다른 애들도 아니고 하필이면 스윙 길드를 여기서…….’
만약 스윙 길드가 만약 눈치를 챘다면, 지트를 여기서 순순히 보낼 일은 없을 것이다.
“지나간다고? 누구 마음대로 지나가는 거야? 여긴 우리 길드 소관이라고.”
그 말 한마디를 듣는 순간, 지트는 이미 스윙 길드의 심중을 눈치챌 수 있었다.
‘이 새끼들 대충 눈치 깠구나? 하긴 내 행동 하나하나에 관심을 가진 놈들이니까.’
물론 순순히 예, 하고 상황을 받아들이진 않았다.
“무슨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어? 그 어떤 길드도 필드를 지나가는 걸 막을 순 없다고. 30대 길드도 그런 짓은 안 해!”
“보통 사람이라면 지나가도 상관없지. 하지만 지트, 넌 우리 길드랑 계산이 필요하잖아?”
“무슨 계산?”
“네놈 때문에 우리 길드원이 게임오버를 당했는데, 당연히 그 값을 치러야지.”
그동안 스윙 길드가 지트를 보고 이를 갈면서도 그를 건드리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였다.
일단 성 내에서는 PK를 할 수 없다. PK자체는 가능해도, 그런 짓을 하면 욕먹기 십상이다.
필드 밖에서는 가능하지만, 지트는 필드 밖에서 대개 처음 보는 파티와 같이 움직였다. 그는 정식으로 소속된 집단이 없으니까. 그런 그를 공격하는 건, 지트와 파티를 맺은 이들에 대한 공격 행위나 다름없으니 그동안 스윙 길드는 지트에 대한 보복을 자제했다.
“지금 날 죽이겠다, 이거야?”
“그럴 리가.”
아니, 사실 솔직히 말해서 지트를 정말 죽일 생각은 없었다. 죽이는 게 속은 편하겠지만, 그게 무조건 정답이 되는 건 아니니까.
“우린 PK길드가 아니라고.”
더욱이 스윙 길드는 비매너 길드도 아니었고, PK길드는 더더욱 아니었다.
“우리는 단지 진심 어린 사과와 약소하더라도 보상을 해달라, 이 정도를 원하는 것뿐이지.”
“그때 내가 죽인 것도 아니잖아! 몬스터에게 당한 거라고!”
물론 당하는 지트 입장에서는 어처구니가 없을 뿐. 분명 그가 그 당시에 잘한 건 없지만, 악의를 가졌던 적은 없다. 그때의 일은 사고였고, 사고는 사고로 끝나야 한다. 그 사고 때문에 보복을 해서는 안 된다.
지트의 언성이 높아지자, 곧바로 스윙 길드원들의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지금 무슨 일이죠?”
“저 사람 뭐에요? 왜 싸우시는 거죠?”
개중에서도 두 명의 여성이 묘한 반응을 보였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반응 그리고 이런 상황이 귀찮다는 반응.
사실 그 두 여성의 레벨업을 도와주기 남은 넷이 같이 움직였다. 레벨이 낮은 두 여성만을 위한 사냥터! 게임에서는 나름 로맨틱하다면 로맨틱한 광경이다. 물론 제삼자가 보기엔 가상현실에서라도 연애를 하기 위한 몸부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만.
어쨌거나 두 여성에게 잘 보이고 싶은 남은 네 유저에게 지금 상황은 그냥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하물며 본인들은 넷, 상대는 둘이다.
‘싸울까?’
‘지트 녀석은 별거 아니고, 남은 한 놈도…… 보기엔 별거 아니고.’
‘싸우면 무조건 우리가 이기겠네. 사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2인 파티잖아?’
싸우면 결과는 자명하다. 적어도 지트나, 스윙 길드원들이 보기엔 그랬다.
지트가 이를 꽉 물었다.
“대체 얼마를 원하는데?”
지트 입장에서 최악은 이대로 게임오버를 당하고, 그러는 사이 스윙 길드가 자기 행동을 단서로 검은 유골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경우다. 일단은 살아남는 게 중요하다.
“천 골드 정도면 적당하겠지.”
“미친놈들.”
그 순간 곧장 대답이 나왔다. 지트의 입이 아니라, 지트의 파트너 입에서 나온 대답이었다.
‘응?’
지트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
“뭐?”
스윙 길드원들도 고개를 갸웃했다.
모두가 지트의 파트너를 바라봤다. 미친놈들, 이란 말을 뱉을 만한 외모는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 험악하게 야! 소리치면 곧바로 어깨를 움츠리며 벌벌 떨 듯한 호구 같은 외모였다.
그래서 모두가 잠시 멍하니 있었다.
그러는 사이 지트의 파트너가 목소리를 높였다.
“미산드라 성을 그쪽이 발견한 것도 아닌데, 사냥터 소유권을 주장해? 미친놈들. 어지간하면 넘어가겠는데, 지랄도 한 번으로 족해야지, 지랄을 계속하면 그건 병이야, 병.”
“넌 뭐야?”
“나? 말해주면 알아? 내 캐릭터 네임이나, 현실 이름 말해주고, 집 주소에 태어난 국적에 생년월일 말해주면 내가 누군지 떠올릴 수 있어?”
“……지금 시비를 거는 건가?”
“시비? 조금 전 했던 거 그대로 미산드라 성에 가서 해볼까? 누가 먼저 시비를 건 것인지, 즉석에서 투표도 해보고? 10만 골드빵 해볼래?”
스윙 길드원들이 입을 꽉 다물었다.
지트의 파트너가 하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은원 관계를 떠나서, 스윙 길드가 자기들 머릿수를 믿고 강짜를 부린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단지 힘이 곧 법인 바닥이라서 그게 통했을 뿐. 현실에서는 이렇게 일이 벌어지기 전에 경찰서에 이미 신고가 갔을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스윙 길드 입장에서는 여전히 힘이 있는데, 여기서 굳이 입을 꾹 다물고 화만 삭일 이유가 없다는 것.
‘이 새끼가.’
‘지금 에리하고, 요즈가 보고 있는데 쪽 팔리게…….’
결국 가장 레벨이 높은 유저, 비올이 움직였다. 무려 102레벨이나 되는 그가 나선 것이다.
“지트와 우리 길드 간의 일에 제삼자가 개입한다…… 재미있군.”
사실 그는 여기 있을 만한 유저가 아니었다. 단지 승급을 기념해서 저레벨 유저들을 도와주기 위해, 물론 정확히는 승급을 해서 얻은 스킬을 뽐내고, 자랑하려고 왔을 뿐. 좀 더 솔직한 심정을 말하면, 에리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 유저에게 나름 호감이 있었다.
“시비를 걸 거면 확실하게 걸어야지. 검 들어. 1대1로 승부를 보자.”
“승부 조건은?”
“손목을 걸지.”
기세등등한 그 모습에 지트는 굳은 표정을 지었다.
‘안 돼. 비올, 저 새끼 승급자라고!’
반면 지트의 파트너는 미소를 지었다.
“좋아. 승부 받아주고, 내가 널 3분 안에 못 잡으면, 내가 평생 스윙 길드 밑에서 개처럼 일해주지.”
그 도발에 비올은 여전히 분위기를 유지한 채, 평소 잘 뱉지도 않는 있어 보이는 말을 뱉었다.
“너 같은 놈이 들어올 만큼 허접한 길드가 아니다.”
확실히 평범한 아이템 세팅을 한 지트의 파트너와 다르게 승급자답게 제법 듬직한 아이템 세팅을 하고 점잖게 말을 내뱉는 비올은 있어 보였다. 심지어 투구를 벗은 채 자신의 얼굴을 자신 있게 드러낸 모습은 넘치는 자신감의 증거였다.
그런 자신감 넘치는 비올의 모습에 지트의 파트너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 이야기를 어떤 미친년이 들었으면 널 죽이려 들 거야.”
“뭐라고?”
“잠깐.”
말과 함께 갑자기 허리를 숙인 후 바닥에서 무언가를 주운 지트의 파트너, 그런 지트의 파트너가 허리를 세우는 순간, 곧바로 비올을 향해 달려들었다.
카앙!
곧바로 둘의 검이 충돌하며 쇳소리를 냈다. 다급한 소리를 내뱉을 틈도 없었다.
푸홧!
그와 동시에 지트의 파트너가 손에 쥐고 있던 모래를 비올의 눈을 향해 던졌다.
투구를 쓰지 않고 있는 탓에, 모래는 그대로 비올의 눈을 덮쳤다.
“뭐, 뭐야?”
당황하는 비올.
그런 비올의 두 눈에 지트의 파트너가 내찌른 검이 꽂혔다.
“꺄악!”
당하는 이보다는 보던 이가 오히려 섬뜩한 광경.
그것으로 비올과의 전투는 끝이었다. 지트의 파트너는 블라인드에 걸린 채 허둥지둥대는 비올에게 발을 걸어 자빠뜨린 후에 그의 가슴팍을 발로 지그시 눌렀다. 정확한 상황은 몰라도 자신이 제압된 걸 알게 된 비올이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자 1대1은 이걸로 끝. 확인사살은 안 할 테니까 시계를 풀고 가도록. 남은 다섯은 어떻게 할래? 아, 그냥 지나가도 돼. 대신에 통행료는 1백 골드다. 어디 누구하고는 다르게 굉장히 양심적인 가격이지.”
물론 상황이 끝난 건 아니었다.
나머지 셋이 무기를 들었다. 그냥 돈을 내고 지나갈 생각을 가진 이는 없어 보였다.
지트의 파트너가 그들의 모습을 보며 지트에게 말했다.
“나중에 얘네들이 지트, 너한테 복수한다고 해도 내 책임 아니다. 인정하지?”
< 34화. 저주받은 영지(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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