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왈츠 (2). >
4.
해골 기사 한 마리와 블랙 하운드가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전투는 긴박하다기보다는 블랙 하운드에게 무척 유리해 보였다. 공방이 이루어질수록, 해골 기사의 몸에는 깊은 상처가 일어났다.
커헝, 커헝!
블랙 하운드가 거친 소리를 내며 해골 기사의 몸을 발톱으로 할퀴거나, 이빨로 물을 때마다 적잖은 상처가 생겼다. 만약 해골 기사가 유저들이 쓰는 방어구를 입지 않았다면, 그 위를 다시 본 아머로 덮지 않았다면, 진작에 개뼈다귀 신세가 됐을 것이다.
쉬익!
더욱이 해골 기사가 휘두른 검은 블랙 하운드의 몸에 상처를 내긴 했지만, 그 상처는 결코 깊지 않았다. 거대한 덩치, 질긴 가죽을 자랑하는 블랙 하운드에게는 생채기보다 좀 더 깊은 상처 수준.
이 정도면 분명 해골 기사의 열세로 보는 게 옳다.
그래서일까?
‘어휴.’
그 전투에 참가하지 않은 채, 그저 뒷짐을 지고 전투를 예의주시하던 히르칸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사실 한숨이 나올 만한 대목은 아니었다. 해골 기사의 전투력이 블랙 하운드에 미치지 못하는 건 사실이지만, 애초에 그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히르칸의 레벨은 114레벨, 그런 그가 소환하는 해골 기사의 레벨이 높을 리 없다.
반면 블랙 하운드는 130레벨의 몬스터로, 130레벨대의 중소형 몬스터 중에서도 굉장히 강한 편에 속하는 녀석이었다.
그런 블랙 하운드를 해골 기사가 맞상대할 수 있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터
히르칸 역시 해골 기사의 전투 능력 때문에 한숨을 뱉은 게 아니었다.
‘쟤 하나에 쓴 돈이…… 내 원룸 보증금보다는 비싸군.’
돈 때문이었다.
‘탈탈 털어서 쟤 하나만 꾸몄네.’
현재 해골 기사는 100레벨짜리 유니크 아이템을 착용 중이었다. C랭크 무장 스킬 덕분에 무기를 포함해 네 파츠를 착용할 수 있었고, 히르칸은 그 아이템 전부를 유니크 아이템으로 맞춰줬다.
물론 히르칸이 쓰고 있는 황금 사마귀 낫칼이나 방어구 세트아이템인 투명 거미 거미줄 세트만큼 비싸고, 좋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저렴한 녀석은 아니었다.
히르칸의 말대로 지금 히르칸이 사는 원룸의 보증금보다 비싼 걸 입고 있는 상황이었다.
히르칸이 한숨을 내뱉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었다.
‘라면도 다 떨어졌고, 커피도 떨어졌는데…….’
그런 히르칸이 반사적으로 홀로그램창을 띄운 후에 자신의 유튜브 페이지에 접속했다.
후원금 내역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히르칸은 자신의 후원금이, 곳간이 텅 비어있으리란 걸 보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후원금 내역을 확인해보는 건, 비어버린 밥그릇을 숟가락으로 한 번 긁어나 보는…… 참으로 딱하고, 처량하기 그지없는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히르칸도 자신의 처지가 딱한 처지에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내가 드디어 미쳤구나. 이런 거 본다고 돈이 늘어나는 것도 아닌…….’
이윽고 후원금 현황을 본 순간.
“어?”
히르칸은 제 눈을 의심했다.
5.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 일명 세컨드 왈츠.
참으로 아름다운 노래다.
서정적이면서도, 때때로는 발랄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우아함을 잃지 않는 노래는 분명 사람을 몸을 절로 움직이게 만드는 강력한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노래를 배경으로 삼은 채, 둘이 춤을 추고 있었다.
연인은 아니었다.
한쪽은 거대한 근육질을 가진 괴물이었고, 다른 한쪽은 하회탈을 뒤집어쓴 인간이었다.
또한 그들은 춤을 추는 자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흉측한 칼을 각자 쥐고 있었다.
결코 춤사위에 어울리는 자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기괴할 정도로 그들은 노래에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카앙, 카앙! 서로 칼을 부딪칠 때마다 나는 소리. 그 소리와 함께 제한된 무대 위를 서로가 서로를 이끌며 움직이는 모습.
절정은 퍼엉! 어디선가 날아온 마법이 터지는 소리였다. 노래 중간중간, 터지는 그 소리는 노래에 포인트를 주는 드럼 소리보다 더 강렬하기 그지없었다.
하이라이트는 곡 후반부였다.
다양한 악기들이 합주를 펼치던 앞선 상황과 달리, 전투가 후반부에 다다르자, 색소폰의 독주가 시작됐다. 색소폰 특유의 구슬픈 음색은 전투의 끝을 담담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3분 40초의 영상이 끝이 났을 때.
“끝내주지?”
레드불스의 길드 마스터, 체브는 자신과 영상을 함께 보던, 자신의 보좌관 옐에게 질문을 던졌다.
“뭐, 잘 하네요.”
체브가 하회탈을 높게 평가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는 그녀였지만, 이번 영상은 그녀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정도였다.
체브는 다시 영상을 재생하며, 감탄 어린 어조로 말했다.
“무엇이든지 경지에 다다르면 예술이 된다던데, 하회탈은 이미 그 경지에 다다른 모양이군.”
체브의 극찬은 멈추지 않았다. 그런 거듭된 극찬에 옐은 결국 뽀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와 비슷한 시각.
“난 놈은 난 놈이네.”
우레사냥꾼 길드 소속 1군 레이드 멤버들 역시 하회탈의 새로운 영상, 왈츠를 감상했다.
가장 먼저 감상을 내뱉은 건 해치였다.
“어디서 이런 놈이 나왔지?”
“흥, 이런 춤만 추는 놈 따위는 만나는 순간 박살을 낼 수 있어! 싸우면 내가 이겨!”
해치의 칭찬에 하희가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해치는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꽤 놀랐나보네.’
하희의 성격을 그와 가장 많이 티격태격한 해치가 모를 리 없었다. 하희가 이런 식으로 나온다는 건, 하회탈에 대한 자격지심을 느끼고 있다는 의미다.
“그래, 자랑이다, 자랑.”
“흥.”
그 무렵 해치를 비롯해 남은 인원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들의 우두머리, 시르를 향했다.
‘어떻게 나오시려나?’
‘확실히 우리 보스가 보는 눈은 있어.’
하회탈을 향한 시르의 관심이 대단하다는 걸, 우레사냥꾼 길드원들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이번 영상은 그녀가 가진 인재 수집욕에 불을 지르다 못해, 폭탄을 터뜨린 격이 될 것이다.
하지만 시르는 바로 반응하지 않았다. 어떤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침묵을 고수했다.
우레사냥꾼 길드원들 역시 그 침묵에 동조했다.
이윽고 그녀가 입을 열었다.
“해치.”
“예, 보스.”
“우리랑 우호적인 관계에 있는 30대 길드가 몇 곳이지?”
“열두 곳입니다.”
“그 열두 곳에 보내.”
뭘 보냅니까? 해치가 표정으로 질문하자, 시르가 단호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지은 채 대답했다.
“하회탈은 우레사냥꾼 거니까, 손대지 말라고.”
6.
커헝, 커헝!
히르칸이 쫓아오는 블랙 하운드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전력을 다해 달리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해골 기사와 1대1로 싸우던 녀석이었다. 해골 기사의 칼에 적잖은 상처를 입은 녀석은, 해골 기사의 두개골을 씹어 으깬 후에 곧장 히르칸을 노리고 움직였다.
‘미치겠네.’
사실 블랙 하운드 정도는 지금의 히르칸 실력이라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는 녀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르칸은 무언가에 홀린 듯, 도망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히르칸을 홀리게 만든 건 숫자였다.
조회수 77만.
히르칸이 올린 타락한 동지와의 전투 영상, 왈츠의 현재 조회수였다. 영상을 올린 지 하루가 채 되기도 전에 이미 1백만 조회수를 앞에 둔 채 가파르게 조회수가 오르고 있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왈츠 영상은 워로드와 관련된 거의 모든 사이트 메인에 걸릴 정도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중이었다. 워로드 역대 최고의 전투 영상! 전투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다! 당사자가 보면 낯간지러울 정도의 극찬도 뒤따랐고, 후원금 역시 폭발적
으로 들어오는 중이었다.
히르칸의 머릿속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커헝, 커헝!
그런 히르칸을 향해 블랙 하운드가 거칠게 소리를 내질렀다. 히르칸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좀 닥쳐!”
당연히 통할 리 없는 외침이었다. 그런데도 그런 소리를 지껄일 정도로, 히르칸의 머릿속은 뒤죽박죽 엉망진창이었다.
더욱이 히르칸은 하루 만에 조회수 1백만을 찍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다.
‘설마 여기서 1억이 터지나?’
1일 만에 1백만 조회수를 찍으면, 1억 조회수를 달성할 수 있다!
무조건은 아니지만, 대개는 그렇다.
그리고 1억 조회수를 달성한다면, 몸값이 달라진다. 단순 광고 수입도 엄청날뿐더러, 닉네임의 브랜드 가치가 상승한다. 적어도 히르칸이 당분간 라면 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돈을 벌 수 있다.
히르칸이 숨을 골랐다.
‘여기서 이렇게 빅히트가 나올 줄이야.’
일명 빅히트!
워로드로 밥을 벌어먹는 이들이 꿈꾸는 대박이다.
그제야 히르칸의 정신이 돌아왔다. 숫자로 뒤죽박죽이었던 머릿속이 정리됐다.
히르칸이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해골 조각들을 한 움큼 꺼낸 후에 흩뿌렸다.
동시에 히르칸이 멈췄다. 히르칸이 멈추는 순간, 블랙 하운드는 이미 히르칸의 코앞까지 도달했다.
커헝!
크게 입을 벌린 녀석은 단숨에 히르칸의 머리통을 깨물어 부술 작정이었다. 그런 녀석의 저돌적인 공격을, 히르칸은 쥐고 있는 검을 방패 삼아 막았다.
블랙 하운드가 히르칸의 검을 뼈다귀 씹듯 씹으며 계속 돌진했고, 히르칸의 몸이 질질 뒤로 밀렸다.
그러는 사이 모습을 드러낸 해골 전사들이 주인을 돕기 위해 블랙 하운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달려든 해골 전사들이 도약하며 블랙 하운드의 거대한 몸뚱이에 칼을 찔러 넣었고, 블랙 하운드는 곧바로 벌처럼 자신을 쏜 해골 전사들에게 관심을 돌렸다.
블랙 하운드로부터 자유로워진 히르칸이 검을 휙 휘둘러, 검에 뭍은 블랙 하운드의 침을 털어냈다.
이윽고 검을 고쳐 잡은 히르칸이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오예!”
기쁨 어린 감탄과 함께 히르칸의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7.
“끝났다!”
“우아! 잡았다! 레이드 성공이라고!”
몸길이 30미터를 자랑하는 거대 곰이 바닥에 쓰러지는 순간, 그 주변을 메우고 있는 서른 명이 넘는 유저들이 동시에 양손을 번쩍 들고, 승리의 세레모니를 펼쳤다.
160레벨 보스 몬스터, 이그니스 베어를 30대 길드 중 한 곳인 트리플윙 길드가 잡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이번 레이드를 이끈 공대장이자, 트리플윙의 간부 중 한 명인 수쿨은 한 유저를 찾았다. 모두가 레이드 성공의 기쁨을 나누는 와중에 고독하게 남아있는 유저였다.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수쿨의 말에 유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저 받은 만큼 일을 했을 뿐입니다. 제가 한 게 뭐 있겠습니까?”
“그럴 리가요. 미켈, 당신 덕분에 정말 큰 고비를 넘겼습니다. 더욱이 저번 빅스마일과의 전쟁 때도 그랬고…… 정말 당신에게는 연거푸 신세만 지는군요.”
수쿨의 말에 미켈이란 유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에게 수쿨이 조심스레 말했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저희 길드에 들어오시면 최고 대우로…….”
30대 길드의 간부가 직접 영입 제안을 한다는 것. 대단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하지만 미켈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옅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흔들었다.
수쿨이 마저 뱉으려던 말을 그냥 삼켰다.
“은인을 괜히 귀찮게 할 수는 없지요. 그래도 혹여 저희들의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부탁하십시오.”
“감사합니다.”
그 순간 미켈이 손을 들었다.
“죄송합니다, 급한 통화가 와서…….”
그 말과 함께 미켈이 등을 돌린 후 자리를 수쿨과의 거리를 적당히 둔 후에 통화를 시작했다.
통화 내용은 별거 없었다.
“레이드는 이제 막 끝났는데, 무슨 일입니까?”
- 리스트에 한 사람이 추가됐어.
리스트란 말에 미켈의 표정이 험악하게 굳었다.
“누굽니까?”
- 하회탈. 이제부터 만나는 즉시 제거하라는 명령이야.
통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 33화. 왈츠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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