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솔플의 제왕-91화 (91/192)

< 32화. 엘프의 유품 (1). >

1.

- 하회탈! 대체 이게 뭐하는 짓이야?

귓가를 울리는 목소리를 히르칸은 신경 쓰지 않았다. 모든 신경은 오직 하나, 자신의 눈앞에서 날렵한 몸놀림으로 도망치는 귀가 쫑긋한 존재를 향해 집중시켰다.

- 하회탈!

그런 히르칸을 방해하려는 듯, 거듭된 페라또의 외침에 결국 히르칸이 나지막이 중얼거리듯 말을 뱉었다.

“이봐, 그쪽이 나한테 큰소리칠 처지가 아니잖아? 일단 알아서 상황 정리부터 하고 있으라고.”

- 뭐?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히르칸의 말은 분명 설명이 부족했다. 페라또의 반응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하지만 히르칸에게 자질구레한 설명을 할 여유는 없었다. 그럴 이유도 없었다. 심지어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게 싫으면, 그쪽이 아폴로 길드의 청부를 받아서, 날 엿 먹이려고 수작을 부렸다는 걸 밝히면 어떻게 될지 고민을 하고 있든가.”

그제야 페라또가 입을 다물었다. 히르칸은 고요해진 적막감 속에서 다시금 엘프를 쫓는데 전력을 다했다.

엘프는 생각보다 빠르지 않았다. 진짜 빠른 엘프는 숲에서 유저가 쫓는 게 거의 불가능할 정도다. 예전에 엘프를 쫓아본 경험이 있는 히르칸은 그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히르칸은 직감했다.

‘잡혀주려는 거구나.’

퀘스트의 원활한 진행을 위한 워로드의 배려. 보기 힘든 배려다. 워로드는 정말 불친절한 게임이니까.

당연히 히르칸은 이 배려를 마다할 생각이 없었다. 이런 배려를 받을 기회는 자주 오지 않을뿐더러, 여기서 만약 이 배려를 마다한다면, 다음 기회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잡는 게 쉬운 건 아니었다. 어지간한 유저들이라면 절대 못 잡는다. 속도가 문제가 아니라, 장소가 문제다. 숲에서 전력으로 달리는 건, 눈감고 장애물 경주를 하는 것과 같다.

‘오냐, 그럼 잡아줘야지.’

온갖 놈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도망쳐야 했던 히르칸에게는 문제 될 것 없는 일이었다.

시시각각 거리가 좁혀졌다.

그 낌새를 모를 리 없는 엘프가 어느 순간 고개를 돌렸다. 처음으로 히르칸이 엘프의 얼굴을 봤다.

‘역시.’

도망치는 엘프의 얼굴은 히르칸이 봤던 엘프의 얼굴과 달랐다. 얼굴 위로 검은 문신…… 아니, 문신이라기보다는 상처에 가까운 검은 무언가가 가득 있었다. 엘프의 아름다움 같은 건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개중에서도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시커멓게 물든 검은 눈동자는 본래 엘프가 가진 에메랄드빛 눈동자와 너무나도 대조적이었다. 덕분에 타락, 그 단어의 의미가 보다 선명하게 마음에 와 닿았다.

한편으로는 서로가 서로의 눈동자 색을 확인할 정도로 거리가 좁혀졌다는 의미.

이대로 가면 히르칸이 잡을 게 뻔하다. 그게 히르칸의 의도이며, 선택이기도 하다.

그럼 이제는 엘프의 선택만이 남아 있다.

이대로 잡힐 것인가? 아니면 싸울 것인가?

엘프는 바로 선택을 내렸다.

푸흡!

자결, 그게 타락한 엘프가 내린 선택이었다. 자신의 주인에 대한 그 어떤 비밀도 토해내지 않은 채, 진실을 죽음과 함께 가져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선택에 따른 결과는 금방 나왔다. 피를 토하며 넘어진 엘프의 몸뚱이는 실이 끊어진 인형의 처지가 되었고, 관성에 의해 바닥을 수십 차례 구르며 처참한 골을 당했다.

히르칸이 그 광경을 보며 입을 꽉 다물었다.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광경, 그 광경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넘어진 엘프에게 다가가면서 가슴 속에 보물처럼 품고 있던 주머니를 꺼내는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히르칸이 다가가자 엘프는 눈빛을 부라리며 히르칸을 노려봤다. 히르칸은 시체처럼 늘어진 엘프의 시선을 외면한 채, 주머니에 담긴 은빛 액체를 엘프의 머리 위로 흘렸다.

은빛 액체였던 녀석은 엘프의 머리에 닿는 순간, 엘프의 머리 모양에 맞게 자신의 형태를 갖추었다.

정화의 서클릿!

그것이 엘프의 이성과 본성을 지배하고 있던 타락의 힘을 정화하기 시작했다.

그 반동 탓인지, 시체처럼 늘어졌던 엘프의 몸이 지진이 난 것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쿨럭, 쿨럭!

엘프가 거듭 검은 액체를 토해냈다. 두 눈도 질끈 감았다. 끄으, 답답한 신음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엘프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엘프를 지배하던 타락의 힘이 사라지고, 온전한 정신을 되찾은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엘프는 그 눈동자로 히르칸을 바라봤다. 히르칸은 특별한 말을 걸지 않았다. 엘프의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엘프는 말을 뱉지 못했다. 입을 열었으나, 소리가 목을 넘지 못했다.

그 순간 엘프는 무언가를 떠올린 듯,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며 자신의 왼쪽 가슴 근처를 제 손으로 툭툭, 두드렸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 짧은 행동을 끝으로 두 눈을 감은 엘프는 축 늘어졌고, 그의 육신은 곧바로 고목처럼 메마르기 시작했다. 히르칸이 그 광경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참으로 낭만적인 게임이군. 정말 낭만적인 게임이야.’

쓴웃음과 함께 히르칸이 엘프의 품속에서 쪽지 한 장과 지도 한 장을 꺼냈다.

2.

‘젠장.’

페라또는 히르칸과의 대화가 끝나는 순간 주변을 돌아봤다. 주변 공대원들이 페라또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페라또에게 답을 요구하고 있었다.

페라또는 당장 그들에게 해줄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그 정도로 지금 상황은 뒤죽박죽이었다.

피날레만 남은 상황에서 갑자기 날아온 화살이 코카트리스를 죽였다. 그리고 화살이 날아오자마자 곧바로 히르칸이 화살을 날린 자를 추적했다.

이 상황에서 나머지 공대원들은 지붕 위만 바라보는 개 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이제까지 상황을 지휘하던 건 히르칸 아니었던가?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어쨌거나 공은 페라또에게 넘어왔다. 이번 레이드를 기획한 건 그다. 문제가 생기면 책임은 그가 진다.

더욱이 지금 그가 처한 처지는 좋지 못했다. 히르칸에게 약점이 잡혔다. 만약 그 일이 골든 브라더스에 알려진다면, 페라또는 무조건 길드에서 축출당한다.

축출만 당하면 다행이다. 구설수에 휘말려서 어느 길드에도 가입하지 못한 채 하염없이 뒤쳐지다가 게임을 접을 수도 있다. 대형 길드의 도움 없이는 결코 앞서갈 수 없는 세계, 그게 작금의 워로드다.

적어도 히르칸이 까라면, 까야 하고, 히르칸이 정리하라고 했으니, 상황을 정리해야 한다.

“경험치는 다들 들어왔지?”

페라또의 말에 모두가 바로 자신들의 경험치 습득 상황을 확인했다.

“잘 들어왔네.”

“생각보다 많은데? 아주 넉넉하게 들어왔어.”

경험치가 들어왔다. 그건 곧 몬스터들에 대한 소유권은 여기 있는 이들이 가졌다는 의미다.

“경험치는 들어왔고, 몬스터 사체도 우리 소유고.”

여기에 잡은 코카트리스의 사체에 대한 권리 역시 이번 레이드 공대가 가지고 있다.

경험치와 아이템, 둘 중 잃은 건 없다.

페라또는 그 부분을 강조했다. 어떤 문제가 생겼건, 원래 목표했던 두 가지를 얻었다.

“하회탈은?”

물론 히르칸이 갑자기 사라진 것에 대한 해답이 필요하다. 여기 모인 이들이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다. 히르칸이 바로 대응했다는 것, 그건 곧 히르칸은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는 의미다.

반대로 말하면 이런 일이 있을 줄 알면서도 공대원들에게 말해주지 않았다는 의미.

설명이 필요했다.

“퀘스트다.”

페라또가 짧은 고민 끝에 대답했다.

“애초에 하회탈이 이번 레이드에 참가한 건, 그 퀘스트 조건 때문이었다. 지금은 퀘스트 진행을 위한 과정이다.”

그 대답은 무난했다. 설명을 들은 유저들이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할 정도로.

‘하긴, 하회탈은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도 꽤 진행한 편이었으니까.’

‘가만, 그럼 이번 몬스터가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 관련 몬스터란 의미인가? 타락한 몬스터이니까 그럴 가능성이 높겠지?’

‘지금 하회탈을 쫓으면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를 같이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쫓아야 하나?’

공대원들이 바로 상황을 자기 깜냥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소란이 잦아들었다.

그런 공대원들을 바라보던 페라또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꼬였다.’

무난한 대답이었지만, 페라또에게 유리한 대답은 아니었다.

저질렀으니까. 페라또는 히르칸과 한 적도 없는 거래를 했다고 뱉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나중에 히르칸이 와서 아니라고 말한다면, 페라또는 거짓말쟁이가 된다.

‘이제 무조건 하회탈에게 읍소해야겠군.’

갑과 을.

그 관계가 명확해지는 순간이었다.

3.

히르칸이 돌아온 건, 도축을 마친 코카트리스의 몸이 전부 녹아 없어진 후였다.

히르칸은 곧바로 페라또와 외진 곳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아폴로 길드로부터 받은 소모템, 얼마나 남았지?”

“제법.”

“날 엿 먹이려고 했던 값으로 그걸 줘.”

그 말에 페라또는 속으로 한숨을 내뱉었다. 히르칸이 레이드를 지휘하면서, 소모 아이템은 꽤 남았다. 값으로 따지면 적잖은 값이었다. 그런데 그걸 전부 히르칸에게 준다?

아까웠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좋아. 그렇게 하지.”

지금 페라또 명줄을 손에 쥔 건 히르칸이었으니까. 페라또는 부디 히르칸이 더 큰 걸 요구하지 않기를 간절히 빌었다.

“그리고…….”

그러나 히르칸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페라또가 히르칸의 이야기를 전부 듣기도 전에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오늘 전공은 페라또, 당신이 가져도 좋아.”

“뭐?”

이 순간 페라또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러니까 오늘 레이드 성과를 내 성과로 인정해주겠다는 건가? 그런 의미인가?”

히르칸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 어째서?”

분명 자신에게 좋은 일임에도, 페라또는 고맙다는 이야기보다는 의문부터 제기했다.

매 맞을 걸 기대했는데, 입에 달콤한 초콜릿을 넣어줬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굳이 판을 망칠 이유가 없으니까. 정리하면, 네가 아폴로 길드의 사주를 받아 날 죽이려고 했다는 사실도, 레이드 도중에 내가 그걸 눈치챘다는 것도, 이후 레이드 과정에서 그쪽이 한 건 하나도 없다는 것도, 내가 레이드를 지휘했다는 것도, 지금 당신이 나한테

약점을 잡혔다는 것도, 굳이 떠벌리지 않겠다는 의미다.”

페라또 입장에서는 그다지 듣기 좋은 정리는 아니었지만, 페라또는 인상을 찌푸리지 않았다.

정말 그렇게 해준다면, 페라또에게는 고마운 일이었으니까.

히르칸은 설명을 덧붙였다.

“봐서 알겠지만 내가 적이 좀 많아. 그런 상황에서 골든 브라더스에 소속된 실력 좋은 유저를 상대로 굳이 얼굴 붉혀봤자, 내가 얻는 게 뭐가 있겠어?”

“그, 그렇지.”

“더욱이 내가 그쪽 망신 준다고 돈을 버는 것도 아니잖아? 오히려 문제가 생기면 골든 브라더스랑 사이만 틀어질 테고.”

페라또가 잽싸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좋아. 이번 레이드 영상, 그쪽이 가져.”

히르칸이 꽤 큰 선물을 줬다.

‘헉!’

페라또가 자기 처지도 잊은 채, 놀란 표정을 그대로 지었다. 보는 입장에서는 우스꽝스럽게 보일 정도.

하지만 그 정도로 히르칸의 선물은 컸다.

보스 몬스터 레이드 영상은 어떤 식으로든 돈이 된다. 대개는 푼돈이지만, 운이 좋으면, 큰돈도 된다. 하물며 붉은 호수에 등장한 타락한 그레이 코카트리스는 분명 매력적인 보스 몬스터다.

더욱이 이런 영상은 경력이 된다. 특히 이번 레이드는 거대 길드에 소속된 숙련된 레이드 팀이 아니라, 개인이 만든 공격대가 진행했다. 공격대를 조직하고, 이끈 공대장의 능력을 보여주는 훈장이 될 수 있다.

물론 이번 레이드는 초반부부터 히르칸이 주도했다. 때문에 히르칸이 이번 영상에 대한 권리를 요구할 경우, 페라또는 당연히 건네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영상의 권리를 그냥 준다?

“정말? 정말 이번 레이드 영상을 내 페이지에 올려도 좋아?”

“물론. 대신 공짜는 아니지.”

“그럼?”

“현명한 선택.”

애매모호한 히르칸의 대답. 그러나 페라또는 그 말의 의미를 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물론. 앞으로 내가 하회탈, 다시는 당신을 위협하는 일은 없을 거다. 내 캐릭터를 걸고 약속하지.”

히르칸이 그 대답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히르칸의 모습에 페라또도 만족감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아.”

그 순간 히르칸이 뭔가가 떠오른 듯, 곧바로 쪽지 하나를 꺼내 페라또에게 건네줬다.

“그쪽 마법사가 던진 것 때문에 내가 어쩔 수 없이 먹게 된 사탕 목록인데, 좀 많아.”

쪽지를 받은 페라또의 표정이 굳었다. 적힌 소모 아이템들은 어지간한 대형 길드 소속 레이드 팀도 쉽사리 쓰지 않는 효과도 좋고, 가격도 비싼 것들이었다.

“이 정도는 당연히 그쪽이 부담해야지. 안 그래?”

페라또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타락한 그레이 코카트리스 레이드가 끝났다.

4.

‘아폴로 이 새끼는 나한테 직접 칼침 맞고 뒈진 것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 지랄을 하는 거지?’

상접한 피골, 퀭한 눈, 눈가 아래 드리워진 다크 서클.

온몸으로 게임 폐인이란 사실을 내뿜는 안재현은 게임 폐인의 필수 아이템인 카페인 덩어리를 앞에 둔 채 고민에 빠져 있었다.

‘아폴로가 욕심 많고, 괴팍한 돼지 새끼인 건 맞지만, 날 잡으려고 이렇게 과하게 투자할 정도로 멍청한 놈은 아닌데 대체 왜?’

그 고민의 중심에는 아폴로가 있었다.

과거로 돌아오기 전 아폴로와는 인연이 깊었다. 그때 아폴로라면 안재현을 잡기 위해 입에 거품을 물어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과거로 돌아오기 전의 일. 지금은 아폴로 길드와 관계가 좋진 않지만, 그렇게까지 나쁜 것도 아니다.

분명 안재현이 아폴로 길드원들을 엿 먹인 건 맞다. 하지만 아폴로 입장에서 그건 정말 가소로운 수준의 상처다.

물론 아폴로의 더러운 성격을 고려하면 복수를 한답시고 지랄을 하는 건 이해가 되지만, 그 복수를 위해 한두 푼도 아니고 어지간한 신입사원 연봉에 근접하는 돈을 쓰는 건 이해가 안 된다.

‘대체 그 돼지 새끼가 어디서 그런 짱짱한 유니크 아이템을 구했을까?

특히 안재현을 골치 아프게 하는 부분은 유니크 아이템 대여였다.

처음에 페라또가 공대 참가자들에게 유니크 아이템을 대여해준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골든 브라더스나 혹은 골든 브라더스와 관련된 길드가 빌려줬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 세력은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아폴로가 직접 빌려줬다니, 있을 수 없어.’

아폴로 길드가 해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분명 아폴로 길드는 작은 길드는 아니다. 재력도 있다. 소속 유저들의 레벨도 워로드 전체를 놓고 보면 높은 편이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아이템 대여를 해줄 만큼의 물량을 가진 길드는 절대 아니다.

결국 아폴로 길드에 그 아이템을 대여해준 이가 따로 있다는 의미다.

‘골치 아픈 새끼.’

안재현의 고민은 여기까지였다.

솔직히 아폴로 길드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아폴로를 잡아다가 고문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다.

안재현이 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나, 대비뿐이다.

‘빅스마일 새끼들도 그렇고, 아직 제대로 한 것도 없는데 벌써 날 가지고 지랄이네. 내 몸에 꿀이라도 발라났나?’

슬슬 규모 있는 길드가 안재현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혼자서 그들을 상대하는 것, 그게 안재현의 목표다.

‘오냐, 조금만 더 기다려라. 나중에는 네놈들이 싫다고 해도 싸워줄 테니까.’

그러나 당장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힘을 키우기 전까지 도와줄 세력이 필요하다.

레드불스가 그랬고, 이번에는 페라또를 포섭했다. 골든 브라더스 정도라면 아폴로 길드가 어찌해볼 수준이 결코 아니다. 의외로 페라또는 괜찮은 방패막이가 되어줄 것이다.

물론 본질은 앞서 말했듯이 힘을 키우는 것.

안재현이 엘프의 유품을 떠올렸다.

지도 한 장 그리고 쪽지 한 장. 정체는 모른다. 아마도 아힘브리나, 드라 부족장, 마웅 대장 중 한 명에게 가야 정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체는 몰라도 대충 예상은 할 수 있다.

‘던전 지도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무언가가 있는 곳을 알려주는 지도라는 것. 물론 그 무언가가 몬스터인지, 보물인지는 모른다.

“이번에 하나 뻥 터졌으면…… 타락 파괴자의 목걸이 같은 거 나오면 명동 거리에서 팬티만 입고 춤도 출 텐데, 하나 안 터져주려나?”

단지 보물이길 바랄 뿐.

< 32화. 엘프의 유품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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