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타락한 엘프 (2). >
4.
히르칸은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붉은 호수를 바라봤다.
호수의 크기는 평으로 계산하면 30평 정도였다. 작진 않지만, 그렇다고 크다고 치부하기에도 무리가 있는 크기, 호수라기보다는 샘에 가까웠다.
호수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물은 붉은 호수란 명칭답게 붉었다. 불길한 느낌의 붉음은 아니었다. 오히려 머금으면 새콤한 과일 향이 날 것 같은 느낌이었다.
히르칸은 호수 바로 앞에 쭈그려 앉았다. 그리고는 손을 국자 삼아 호수의 물을 떠 홀짝였다. 덜 익은 과일과 비슷한 맛이, 옅은 새콤함과 풋풋한 씁쓸함이 입안을 맴돌았다.
‘이 맛, 오랜만이네.’
그 맛, 맛있을 리 없다.
굳이 찾아와서 맛볼 만한 녀석도 아니다.
히르칸에게는 소주 같은 맛이었다. 맛있진 않다. 단지 마시면, 무언가를 떠오르게 하는 맛이었다.
히르칸이 잠시 추억에 젖었다.
‘여기서 기본기를 다지면서, 가능성을 확인하고, 덕분에 꿈을 품을 수 있었는데.’
하회탈 길드 결성 초창기는 궁핍함의 극치였다. 모두가 돈이 없어서 자기 레벨보다 낮은 아이템 혹은 노멀 등급의 아이템을 착용했다. 아이템 스펙이 부족하니, 정말 힘들게 사냥했다.
혹여 근처에 누군가 도축이 귀찮거나 혹은 다른 이유로 버리고 간 몬스터 시체를 발견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을 때였다. 퀘스트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은 채, 타이틀 같은 건 꿈도 꾸지 않은 채 그저 레벨을 올리기 위한 사냥에만 집중했다.
그런 하회탈 길드가 적잖은 고생을 치르며, 100레벨을 달성하고, 승급을 한 이후에 본격적인 레이드에 앞서 기본기를 다진 곳이 바로 이곳, 붉은 호수였다.
여기서 기회를 봤다.
히르칸, 그가 가능성을 보여줬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최고는 아니더라도, 결과를 만들 수 있으리란 자신감, 히르칸이란 존재가 하회탈 길드에게 그런 자신감을 줬다. 히르칸 본인도 그런 자신감을 품을 수 있었다.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흥.’
이제는 그저 씁쓸할 뿐인 기억이다.
탈탈, 손에 남은 호숫물을 털어낸 히르칸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고개를 들었다.
그런 히르칸의 눈에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무언가 육중한 것이 움직이는 기미가 포착됐다.
‘벌써 오는군.’
히르칸이 서 있는 호수, 그 호수에서 목을 축이기 위해 오는 몬스터일 것이다.
붉은 호수에 사는 몬스터들은 전부 그런 습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이 호수 단위로 영역을 만든다. 붉은 호수에는 지금 히르칸이 보는 것과 같은 샘물 크기의 호수가 수십 개가 넘게 있었고, 이곳에서 사냥을 원하는 유저들은 그 호수를 무대로 삼는다.
지금 히르칸 앞에 있는 호수를 향해 오는 놈들은 전부 히르칸의 몬스터다.
당연히 히르칸은 녀석을 마중할 준비를 해야 할 때. 히르칸은 녀석을 마중해줄 수하를 골랐다.
‘역시 놈밖에 없지.’
이미 몬스터를 맞아줄 부하는 정해져 있었다.
스윽!
히르칸이 주머니 속에서 해골 조각상을 꺼냈다. 꺼낸 조각상은 히르칸이 흔히 가지고 다니는 뼈로 만든 조각상이 아니었다.
보석.
재료 보석을 깎아 만든 해골 조각의 외형은 본 아머를 두른 해골 전사와 모습이 비슷했다.
차이점도 있었다. 히르칸이 소환하는 본 아머와는 조금 디자인이 달랐으며, 부분 파츠만 입은 것이 아니라 완벽한 무장을 마친 상태였고, 결정적으로 방패를 가지고 있었다.
해골 기사 조각이다.
히르칸이 그 해골 기사 조각을 바닥에 던졌다. 던진 보석은 빠른 속도로 해골 기사의 모습을 갖추었다.
해골 기사를 바라보는 히르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언제 봐도 멋진 놈이야.’
2미터를 훌쩍 넘기는 신장을 가진 육중한 체격의 해골 기사는 해골 전사와 비교할 수 없는 강렬함과 아우라를 품고 있었다.
그저 덩치만 큰 게 아니었다. 보통의 해골 전사가 품고 있는 잔망스러움은 없었고, 두개골 사이에는 붉은빛이 청아하게, 단아하게 반짝이고 있었으며, 숨을 내쉬는 듯 이빨이 드러난 입 사이로는 검은 연기가 나왔다, 사그라지기를 반복했다.
[특수능력 ‘기사도’가 발동합니다.]
[특수능력 ‘지휘자’가 발동합니다.]
더불어 해골 기사는 등장과 함께 자신의 존재감을 시스템 알림을 통해 더더욱 명확하게 드러냈다.
해골 기사의 특수능력, 기사도와 지휘자가 발동했다.
기사도는 소환한 해골 전사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해골 기사의 능력치가 상승하는 옵션이다. 해골 전사 1마리가 추가될 때마다 해골 기사의 능력치는 5퍼센트 상승하며, 현재는 최대 25퍼센트까지 상승한다.
지휘자는 소환된 해골 전사들이 해골 기사 주변에서 전투를 할 경우, 능력치가 상승하는 특수 능력이다. 현재는 10퍼센트 능력치가 증가한다. 더불어 지휘자 스킬은 해골학은 물론 매드니스 헬름과도 중첩된다. 해골 기사가 등장하는 순간, 그 주변의 해골 전사와
해골 마법사의 공격력은 무시무시해진다.
더불어 해골 기사 스킬은 F랭크를 기준으로 해골 부하를 3마리 더 소환할 수 있게 해주는 패시브 옵션이 있다.
히르칸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히르칸이 해골 조각들을 흩뿌렸다. 해골 전사 여덟과 해골 마법사 둘이 등장했다.히르칸이 다시 똑같이 해골 조각을 흩뿌렸다. 아홉 개의 해골 조각을 흩뿌렸다.
해골 전사 일곱과 해골 마법사 둘이 등장했다.
총 열아홉!
해골 기사를 포함하면 스물!
이게 지금 히르칸이 소환할 수 있는 최대 전력이었다. 히르칸은 해골 무리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리치리치만큼은 아니지만, 이제야 좀 네크로맨서답네.’
그런 히르칸의 앞에…….
크르르!
붉은 호수 너머에 해골 무리들을 바라보자마자 경계태세를 갖추는 몸길이 20미터의 거대 도마뱀, 등에 창처럼 돋아난 다섯 개의 가시가 인상적인 가시 도마뱀이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히르칸, 그의 동영상 조회수를 위한 조연의 등장이었다.
5.
쿠웅!
방패를 앞세운 해골 기사와 대형 가시 도마뱀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츠츠츠!
해골 기사는 밀리긴 했지만, 뒤로 넘어가지 않은 채 버텼다.
쿵, 쿵!
가시 도마뱀이 그런 해골 기사를 넘어뜨리기 위해 제 머리로 방패를 거듭 두드리는 사이.
떨그럭, 떨그럭!
해골 전사들이 가시 도마뱀을 향해 쏜살같이 움직였다. 개중 몇몇은 가시 도마뱀의 몸 위로 올라가고, 몇몇은 가시 도마뱀의 몸 근처로 이동해 칼을 휘둘렀다.
쉭, 쉬익!
질긴 가시 도마뱀의 가죽은 깊은 상처를 허용하지 않았지만 해골 전사들이 들고 있는 값비싼 무기들은 어쨌거나 분명한 상처를 만들어냈다.
키이, 키이!
가시 도마뱀이 그 상처에 울음을 터뜨렸다. 울음과 함께 녀석이 해골 기사로부터 몸을 돌렸다.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쓸어버릴 기세로 거대한 몸뚱이를 시곗바늘처럼 움직였다.
20미터 몸길이의 거대한 몬스터가 전력을 다해 몸을 돌릴 때 생기는 파장은 강렬했다. 해골 전사 몇 마리가 그 몸부림에 날아가 버렸다.
하지만 해골 기사는 날아가지 않았다. 날아오는 꼬리를 도약으로 피해낸 녀석은 들고 있는 검을 내리치며 착지했다.
푸홧!
해골 기사의 검이 가시 도마뱀의 몸뚱이에 깊고, 길쭉한 상처를 만들어냈다.
키이!
가시 도마뱀이 몸부림을 멈추고 해골 기사를 노려봤다.
화르르!
그 사이 거대한 불덩이 네 개가 가시 도마뱀의 몸뚱이를 향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왔다. 해골 기사 반대편, 골렘을 성벽 삼은 채 그 너머에서 해골 마법사들이 던진 마법들이었다.
마법들은 가시 도마뱀의 등줄기에 떨어지는 순간, 번지기 시작했다.
화르르르!
그 불길이 마치 갈기털처럼 보일 정도였다.
마법을 던진 해골 마법사들이 두 번째 마법 캐스팅을 시작했다. 뼈밖에 없는 녀석들이 모은 두 손, 그 손바닥 사이에 작은 불덩이가 생성됐다. 해골 마법사들이 장난을 치듯 손을 계속 움직이자, 불덩이의 크기가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가시 도마뱀이 곧장 해골 마법사를 향해 몸을 날렸다.
쿠웅!
그러나 골렘이 그것을 허락할 리 없었다. 골렘이 제 몸으로 가시 도마뱀의 돌진을 막았다. 골렘 역시 뒤로 밀렸으나, 넘어가진 않았다.
키이이이!
가시 도마뱀의 입에서 분을 참지 못하는 듯한 울음이 나왔다.
그 사이 머리에 뿔이 달린 해골 전사 네 마리가 움직였다. 녀석들은 그 어떤 두려움도 품지 않은 채 제 몸뚱이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거대 도마뱀을 향해 몸을 던졌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유일한 관객, 히르칸은 주머니에서 꺼낸 사탕을 입에 넣었다.
빠드득!
곧바로 사탕을 씹어 삼켰다.
꿀꺽꿀꺽!
그리고는 바로 작은 병을 꺼내 안에 든 것을 단숨에 삼켰다.
쩝쩝!
마무리는 껌이었다. 히르칸은 최대한 빨리 껌에 있는 단물을 빨아내기 위해 열심히 껌을 씹었다.
쉴 새 없이 무언가를 먹는 히르칸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마력이 남아나질 않네.’
스무 마리의 해골들과 골렘이 전투를 치르는 광경은, 네크로맨서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무대였지만, 그 무대를 위해 필요한 마력은 히르칸의 능력 범주를 벗어나고 있었다.
당연한 결과물이었다. 히르칸이 모든 능력치를 마력에 집중한 게 아닌 이상, 이 정도 병력을 한 번에 부린다는 건 무리였다. 무리를 넘어서 낭비이기도 했다.
히르칸이 그 사실을 모를 리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을 벌이는 이유.
‘그래도 영상은 잘 나오겠네.’
두 마리 토끼 때문이다.
일단 100레벨을 찍은 기념으로 본격적인 네크로맨서 전투 영상을 찍을 필요가 있었다. 모든 직업이 그렇지만, 승급을 하는 순간 느낌이 직업 자체가 달라진다.
하물며 100레벨이 넘는 네크로맨서 영상은 극히 드물다. 히르칸에게 이번 영상 제작은 어느 정도 당첨금이 보장된 복권을 사는 것과 같았다.
존재감을 각인시킬 필요도 있었다. 하회탈이 단순히 특이한 네크로맨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네크로맨서의 강함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래야 다른 어중이떠중이들이 쉽사리 시비를 걸지 못할 것 아닌가?
‘숙련도도 잘 오르고.’
두 번째 이유는 스킬 숙련도였다. 스킬 랭크를 올리기 위해서는 단순히 전투를 많이 하는 것보다 다양한 종류의 전투를 많이 하는 게 유리한다. 특히 중대형 몬스터와의 전투는 랭크업에 큰 도움이 된다.
문제는 보통 필드에서는 중대형 몬스터를 사냥하고 싶어도 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대부분 보스 몬스터이니까. 스킬 랭크업에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에 가장 좋은 무대에서 스킬을 무모할 정도로 낭비하는 건, 자금력만 된다면 현명한 짓이었다.
지금 히르칸이 전투에서 뒷짐을 진 채 값비싼 회복 아이템을 수시로 먹는 이유다.
‘그래도 이번 사냥에서는 적자가 나겠지…… 당분간은 라면도 싼 걸로 먹어야겠네.’
물론 그래도 속이 썼다.
지금 자기 일주일 치 식비보다 비싼 걸 물 마시듯 먹고 있는데, 속이 편할 리 없다.
단지.
‘그래도 잘 싸우긴 잘 싸우네.’
자신이 없어도, 알아서 잘 싸우는 해골 부하들을 모습이 그나마 쓰린 속을 달래줄 뿐.
그런 와중에 히르칸에게 쪽지 하나가 왔다.
붉은 호수에서 사냥을 하는 유저라면 모두가 가입하는 커뮤니티에서 전체에게 보낸 쪽지였다.
히르칸은 전투를 한 번 살펴본 후에 쪽지를 열었다.
[타락한 그레이 코카트리스가 동쪽으로 이동 중.]
경고 메시지를 본 히르칸은 표정을 구겼다.
‘여전히 못 잡는 중이군.’
타락한 그레이 코카트리스.
추정레벨은 현재 130레벨에서 140레벨 사이. 결코 낮은 레벨이 아니다. 여기에 타락한 타이틀이 붙은 이상, 일반 몬스터가 아니라 보스 몬스터로 봐야 한다.
‘뭐, 못 잡는 게 당연하지만.’
현재 140레벨의 보스 몬스터를 잡으려면, 30대 길드 급의 길드의 1군 레이드 공대 멤버가 나서야 한다.
하지만 그 정도 되는 레이드 팀은 못해도 일주일 동안은 일정이 타이트하게 잡혀 있다. 그런 그들이 갑자기 붉은 호수에 등장한 몬스터를 잡기 위해 일정을 바꾸고 움직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여기 오는 게 부담스럽기도 하겠고.’
동시에 붉은 호수는 누군가가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무대다. 레이드 훈련소란 이름이 붙은 만큼, 이곳은 다양한 길드는 물론 길드에 가입하지 않는 유저들에게 소중한 장소다. 어느 한 곳이 소유권 따위를 주장한다면 엄청난 반발에 휩싸일 것이다.
주인이 없는 집에 문제가 생겼는데,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가 있을까?
‘이걸 잡으려고 나서는 놈들은 없겠지.’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여기 있는 유저들 몸값이 어마어마하다는 점이다.
이곳에서 100레벨 유저는 히르칸 뿐이다. 대부분 유저들이 120레벨이 넘어가는 유저들이고, 130레벨이 넘는 유저들도 제법 있다.
워로드에서 상위 1퍼센트 안에 드는 레벨이다. 순수한 실력만으로 여기까지 오긴 힘들다. 워로드 초창기부터 게임을 시작하고, 게임에 어마어마한 돈을 쓴 부류들. 워로드란 게임을 나름 인생 게임으로 생각하는 자들이다.
그런 그들은 계산도 빠르고, 판단도 빠르다. 그런 그들이 리스크 계산을 못 할 리 없다.
반대로 말하면.
‘페라또라고 했지?’
이런 상황에서 타락한 그레이 코카트리스를 잡겠다고 나선다면, 다른 꿍꿍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히르칸이 커뮤니티에 나온 공지 하나, 타락한 그레이 코카트리스 공격대 모집 공지를 봤다.
골든 브라더스 소속, 페라또. 그는 현재 이 타락한 몬스터를 잡으려고 공대를 모집하는 중이었다.
‘리스크를 감수하는 건, 메리트가 있다는 거겠지.’
무엇을 정확히 노리는지 알 수는 없지만, 히르칸은 페라또가 정말 이곳, 붉은 호수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히르칸이 그런 페라또의 모습을 떠올리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기다리면 알아서 베팅을 해주겠지.’
사실 히르칸도 급하긴 급하다. 녀석을 잡아야 타락한 엘프를 쫓을 단서가 나온다. 만약 30대 길드가 나서면, 히르칸이 그 과정에 개입할 여지는 아예 사라진다.
그렇다고 히르칸 혼자 잡기에는 부담이 너무 큰 것도 사실. 페라또와 손을 잡는 게 현명하다.
단지 먼저 손을 내밀 필요가 없을 뿐.
기다리면, 페라또가 나중에 충분히 매력적인 제안을 해줄 것이다.
특히 조만간 히르칸이 올릴 전투 영상을 본다면, 페라또는 히르칸 포섭을 위해 큰 베팅을 할 것이다.
히르칸이 미소를 지었다.
‘역시 이번에는 운이 따라준다니까.’
6.
페라또.
언더풋 길드인 골든 브라더스 길드 소속인 그는 여러모로 워로드 유저들 대부분이 부러워할 만한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134레벨, 충분히 최상위 레벨이었고 가지고 있는 아이템 세팅도 어디 가서 꿇리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그가 붉은 호수에 있다는 건, 골드 브라더스 내에서 그의 입지가 좋지 못하다는 가장 명확한 증거였다.
‘이번에 이걸 잡고, 내 능력을 증명해서 1군에 들어가야 해.’
정말 그가 실력이 뛰어났다면, 여기가 아니라 골든 브라더스가 진행하는 레이드의 일원이 됐을 테니까.
실력이 안 되니까, 실력을 쌓으라고 이곳 붉은 호수로 던져진 것이다.
속칭 2군 멤버.
그게 페라또의 처지였다.
페라또는 당연히 이 처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욱이 페라또는 1군 멤버에 비해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자리가 없어서 자신이 1군이 되지 못했다는 생각만 할 뿐.
‘어떻게든…….’
이제까지는 기다렸다.
하지만 최근 들리는 소문이 그를 다급하게 재촉했다.
‘어떻게든 길드 합병이 있기 전까지 1군에 올라가야 해.’
빅스마일 길드가 흔들리면서, 골든 브라더스를 비롯한 언더풋 길드 몇 곳이 합병을 통해 빅스마일 길드의 위치를 노린다는 소문이 알음알음 퍼지고 있었다.
소문일 뿐이지만, 가능성은 충분했다. 만약 그 소문이 사실이 된다면, 그때는 페라또의 경쟁 상대가 더 많아질 건 당연했다. 그전에 1군 멤버가 되어서 자리를 잡을 필요가 있었다.
이번 타락한 그레이 코카트리스를 노리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보스 몬스터나 다름없는 이 몬스터를 잡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면 재평가가 들어갈 터. 당장 1군이 되진 않더라도 이번 레이드는 경력으로 남을 것이다.
문제는 지원자가 없다는 점이었다.
‘어떻게든 잡아야하는데 지원자가 현재까지 3개 파티, 열여섯 명에 불과하니…… 못해도 서른 명은 모아야 하는데.’
붉은 호수에 오는 유저들 대부분이 몸을 사린다. 차라리 다른 사냥터에서 사냥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자들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지원자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은 하나였다.
리스크를 감수할 만한 메리트를 제공하는 것.
그러나 지금 페라또에게 그런 메리트를 제공할 만한 여력이 없었다. 길드가 그를 도와줄 리 없으니까.
‘어떻게 하지?’
그런 그의 고민을 풀어준 건.
- 페라또.
“푸? 오랜만이네.”
- 그래, 잘 지냈어?
“나야 언제나 그렇지.”
- 그보다 너 이번 타락한 그레이 코카트리스 레이드 공대 모집한다면서?
“소문이 거기까지 갔나?”
- 소문도 필요 없지. 검색 한 번이면 알 수 있는 건데. 다름 아니라 그것 때문에 너랑 이야기하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는데, 어떻게 할래? 이야기해 볼래?
“누군데?”
- 아폴로 길드라고, 자금력이 제법 되는 길드인데, 너랑 대화를 하고 싶다고 말하더군.
바로 아폴로 길드였다.
< 31화. 타락한 엘프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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