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올프의 심부름 (1). >
1.
우르갈 대산맥.
이런 지명이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유저가 대부분일 정도로 무명의 무대이자, 워로드에서 내로라하는 랭커들에게나 어울릴 만한 강력한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험지다.
그 험지를 유저 한 명이 외로이 달리고 있었다.
파앗, 팟!
길이라고는 그 비슷한 것조차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험지를 전력으로 질주하는 유저의 몸놀림은 굉장했다. 단순히 빠른 수준이 아니었다. 돌부리, 나무뿌리 같은 방해물들이 쉴 새 없이 등장하는 상황 속에서 그것들을 도리어 디딤돌 삼아 더 멀리 도약하
는 모습은 짐승보다 더 짐승에 가까웠다.
동시에 그 모습에는 필사적인 의지 같은 게 보였다.
그 의지의 이유는 그 유저의 바로 뒷편에 존재했다.
컹컹컹!
거친 울음을 토해내는 검은개 한 마리. 녀석의 생김새는 그레이하운드와 비슷했다. 날렵함이 느껴질 정도로 잘빠진 검은색 몸뚱이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감히 누구도 그것을 개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다. 몸길이는 꼬리를 제외해도 3미터를 훌쩍 넘길 정도로 기다랗고, 거대했으며, 두 눈은 비유가 아니라 활활, 진짜 큼지막한 불꽃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건 달릴 때마다 흩뿌려지는 침이었다. 헐떡이는 주둥이 사이로 사정없이 뛰쳐나온 개의 침은 주변의 초목, 심지어 돌멩이마저 녹일 정도로 섬뜩한 위력을 자랑했다. 저런 침이 가득 한 주둥이에 물린다면 그 결과가 어찌 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다.
그 끔찍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몬스터의 이름은 블랙 하운드. 무려 130레벨이 넘어가는 몬스터로, 사제 사냥꾼이란 듣기만 해도 워로드에서 파티 사냥을 즐기는 유저들의 등골이 싸늘해지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보통 몬스터들이 공격 마법에 반응을 해서, 마법사를 우선 공격 대상으로 삼는다면, 블랙 하운드는 특이하게 회복 및 버프 스킬에 반응을 해서 사제를 우선 공격 대상으로 삼는다. 그런 녀석에게 한 번이라도 물려서 독에 중독되면, 낮은 숙련도의 해독 스킬로는
결코 치료할 수 없을 정도로 녀석의 독은 극독이었다. 그게 사제 사냥꾼이란 별명이 붙은 배경이었다.
더불어 지금 보는 대로 놀라울 정도로 빠른 몸놀림을 가진 녀석은 그 어떤 몬스터보다 사냥, 추격이란 표현이 어울렸다. 녀석이 워로드에 최초로 공개됐을 때 녀석을 발견한 10인 파티가, 레벨 총합이 1100이 넘어가는 파티가 제대로 된 전투도 치르지 못한 채 20
분 만에 전멸했다.
‘젠장!’
그런 녀석을 추격자로 두게 된 히르칸은 그야말로 죽기도 전에 죽을 맛이었다.
‘아주 개 같이 따라오네! 내가 와이번 골렘만 있었어도 이런 개 같은 상황에서 개고생을 하지 않았을 텐데!’
달리던 히르칸의 머릿속으로 며칠 전 일이 스쳐 지나갔다.
이틀 전, 히르칸은 격전지 보상으로 찰흙놀이 스킬을 얻었고, 곧바로 스킬을 보다 자세히 파악하기 위한 실험에 들어갔다. 큰돈을 들여 다양한 종류의 재료 보석을 구매했고, 그 재료 보석을 제물 삼아 골렘을 다양한 종류의 몬스터로 변신시켰다.
일단 히르칸이 그토록 바랬던 날 수 있는 탈 것을 확보하는 건 실패했다. 대신 가능성을 찾았다. 핵심은 스킬의 숙련도였다. F랭크의 찰흙놀이 스킬로는 복제 대상이 되는 몬스터 능력치의 절반만 구현이 가능했다. 가진 스펙이 절반이 된 새가 하늘을 제대로 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달리 말하면, 능력치 구현이 백퍼센트에 가까워질 정도로 스킬 랭크가 오르면 충분히 와이번 골렘, 그리폰 골렘, 심지어 드래곤 골렘을 자가용 비행기 삼을 수 있었다.
어쨌거나 자가용 비행 몬스터를 끄는 건 나중의 일이 됐고, 히르칸은 자기 두 다리를 이용해 우르갈 대산맥에 들어왔다. 여기까지가 이틀 전의 일이다.
‘이틀 내내 도망만 치고…… 대체 비싼 돈 내고 하는 게임에서 내가 왜 이런 지랄을 해야 하는 거지, 가끔 의문이 든다니까.’
이틀 내내 히르칸이 한 건 대장장이 올프를 찾기 위해 우르갈 대산맥 초입을 돌아다니며, 몬스터가 등장하면 전투는커녕 곧장 도망치는 일이었다. 제대로 된 사냥을 해본 경험은 아득했다. 물론 잡고자 하면 잡을 수 있는 몬스터는 여러 번 봤다.
하지만 우르갈 대산맥에서 등장하는 몬스터 중에 히르칸이 쉽게 잡을 수 있는 몬스터는 단 한 마리도 없었다. 어떤 놈이든 적지 않은 시간과 소란을 필요로 하는 놈이었고, 그 한 놈을 잡기 위해 소란을 일으키면, 지금처럼 블랙 하운드 같이 도망치는 것조차 쉽지
않은 놈들의 타깃이 될 게 불보듯 뻔했으니까.
더불어 블랙 하운드 같은 괴물을 상대로는 도망치는 것조차 공짜가 아니었다.
“쳇.”
혀를 찬 히르칸이 해골 조각을 하나가 아니라 세 개를 꺼낸 후에 멀리 던졌다. 떨어진 해골 조각은 곧바로 해골 전사의 모습을 갖추었다. 2미터 신장을 가진 해골 전사들은 모두가 잘 벼려진 칼을 쥐고 있었다. 그 모습이 위풍당당, 그 자체였다. 침을 질질 흘리는
검은 누렁이 따위는 단칼에 벨 기세였다.
그러나 해골 전사들은 블랙 하운드를 상대로 제대로 된 공격조차 하지 못했다.
순식간이었다.
히르칸을 쫓던 블랙 하운드가 몸을 날리며, 모습을 갖춘 해골 전사의 두개골을 덥석 물었다.
물고.
콰직!
단숨에 씹어버렸다.
해골 전사의 두개골이 속이 텅 빈 알사탕처럼 단숨에 산산조각이 났다. 히르칸의 마력이 바로 줄어들었다.
그러는 사이 블랙 하운드가 나머지 해골 전사들의 두개골을 순식간에 물어뜯었다. 블랙 하운드의 몸놀림은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히르칸에게 여전히 훈련을 받는 해골 전사들조차 피할 수 없을 정도.
히르칸은 몇 초 만에 적잖게 소비된 자신의 마력 상황을 보며 이를 꽉 물었다.
‘진짜 개 같은 놈일세.’
간신히 해골 전사 세 마리를 희생해 도망친 히르칸이 이를 콱 물며 새로운 다짐을 했다.
‘내가 100레벨 찍고 승급하면, 우르갈 대산맥 초입에 있는 새끼들 씨를 말려버리겠어. 전부 가죽을 벗기고, 살점을 녹인 후에 뼈를 토막 내서 세계 곳곳에 뿌려주마.’
섬뜩하기 그지없지만, 자세히 생각하면 평소 하던 것과 다를 바 없는 각오를 곱씹은 히르칸이 그토록 바라던 대장장이 올프를 만난 건, 파릉 숲을 떠난 지 30시간째에 접어드는 순간이었다.
2.
대장장이 올프와의 만남은 강렬했다.
130센티미터, 히르칸이 제 무릎 높이의 의자에 앉아야 눈을 마주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신장을 가진 드워프, 올프를 히르칸은 처음에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했다. 작은 난쟁이가 잽싸게 자신 쪽으로 오는데 쉽사리 정체를 파악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을 터.
그렇게 거리가 좁혀지는 순간, 올프는 자신이 손에 쥐고 있던 거대한 해머로 히르칸의 뱃가죽을 후려쳤다.
“컥!”
그 한 번의 공격으로 히르칸은 테니스공처럼 날아가 나무에 꽂혔다. 85퍼센트나 됐던 HP는 단숨에 1퍼센트 아래로 떨어졌다.
‘살아야 해!’
간신히 목숨을 구한 히르칸은 그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자신의 방어구 곳곳에 숨겨둔 회복 아이템을 꺼내 입에 머금었다.
히르칸이 받은 인사 중 가장 강렬했던 인사.
그 사이 올프가 히르칸 앞에 섰다. 바닥에 주저앉아버린 히르칸을 올프는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는 누구냐?”
히르칸은 여기서 다시 한 번 본능적으로 행동했다. 자신의 오른손을 들었다. 비밀 결사대의 증표 반지를 끼고 있는 손이었다. 장갑을 끼고 있는 탓에 반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다행히도 올프는 자신이 만든 반지 정도는 금방 눈치챌 재주가 있었다.
여차하면 히르칸의 머리통을 마저 내리치려던 올프가 쥐고 있는 자신의 키만 한 해머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쿵!
해머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무척이나 비범했다. 히르칸이 저도 모르게 해머를 곁눈질로 살펴봤다. 그와 동시에 히르칸이 자신의 처지도 잊은 채 감상에 빠졌다.
‘저게 그 유명한 올프의 망치…… 유저를 상대로 타격시 HP를 퍼센티지로 깎는 괴물 같은 무기…….’
영상으로만 보던 아이템이 눈앞에 있었다. 하지만 히르칸에게 감상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마웅이 보낸 인간이군. 마웅이 사람을 보낸다고 연락을 한 게 꽤 오래 전 일인데, 이제야 오다니. 그동안 대체 뭘 하다가 이제야 이곳에 온 거지?”
퉁명스럽기 그지없는 올프의 말.
‘……역시 들은 이야기대로 유저 속을 가장 잘 긁도록 캐릭터가 설계됐군. 얼마 대화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속이 부글부글 끓네.’
히르칸의 기분도 퉁명스럽게 변하려고 했다.
그 순간.
[타이틀 ‘대장장이 올프와 만난 자’를 획득하셨습니다.]
[타이틀 ‘올프와 처음으로 만난 자’를 획득하셨습니다.]
타이틀 알림이 떴다.
‘어? 타이틀이 두 개나?’
히르칸의 부글부글 끓던 속이 갑자기 시원하게 변했다. 히르칸이 안색을 바꿨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 순간 히르칸이 내뱉은 말은 완벽한 진심이었다.
‘하나가 아니라 둘?’
타이틀 하나는 이미 예상한 바였다. 올프를 만나는 건 어렵다. 그냥 무작정 올프를 만나면, 올프는 대상을 가차 없이 죽이니까. 그런 올프와의 만남 난이도를 고려하면 타이틀을 주는 건 당연했다.
그 타이틀이 바로 ‘대장장이 올프와 만난 자’였다. 옵션은 직업 관련 능력치를 25포인트씩 올려준다. 굉장히 좋은 타이틀이다.
그런데 ‘올프와 처음으로 만난 자’ 타이틀은 히르칸도 처음 보는 타이틀이었다.
‘누군가 먹고 숨겼구나.’
이런 타이틀이 있을 줄이야?
더욱이 그 타이틀이 히르칸의 몫이 됐으니, 히르칸 입장에서는 올프의 지저분하다 못해 추레하기까지 한 수염 너머의 입술에 뽀뽀라도 해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히르칸의 심중을 알 리 없는 올프는 히르칸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봤다.
히르칸이 그런 올프의 눈동자를 지그시 바라봤다.
침묵이 깔렸다.
그 침묵 속에서 히르칸은 올프에 대한 정보를 다시 한 번 머릿속에서 정리했다.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될 줄이야.’
대장장이 올프, 워로드에서 유명세로는 열 손가락 안에 드는 NPC다. 워로드를 떠들썩하게 만들다 못해, 워로드를 뒤흔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옵션을 가진 에픽 아이템 중 적지 않은 숫자의 아이템이 올프의 손을 거쳐 워로드에 등장했다.
동시에 올프는 유저에게 굉장히 비호의적인 NPC이기도 했다. 조금 전 히르칸에게 보여준 모습처럼, 올프는 특별한 퀘스트, 조건 등을 충족하지 못한 이와 조우하는 순간, 적의를 가지고 그 자리에서 유저를 공격한다. 공격력도 엄청나다. 200레벨 유저들도 감히 덤
벼들지 못할 정도다.
그 때문에 몇몇 유저들이 손을 잡고 올프에게 복수를 시도했지만, 성공한 적은 없었다. 그만큼 올프는 워로드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강한 NPC이기도 했다.
개중에서도 올프가 가진 올프의 망치는 유저를 더 쉽게 박살 낼 수 있도록, 게임이 만들어준 사기 옵션을 가진 아이템으로 유명했다.
‘현상금 1억 달러짜리 망치.’
어느 대부호가 올프의 망치를 가져오면 현금으로 1억 달러를 주겠다고 말했을 정도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올프의 망치는 올프를 죽여도 얻을 수 없고, 올프가 죽는 순간 소멸하는…… 게임 내에서 올프가 죽어 퀘스트가 진행되지 않는 걸 막기 위해 마련된 아이템이었으니까.
‘그 현상금 얻어먹으려고 길드도 만들어졌었지?’
하지만 때때로 세상에는 말도 안 되는 일을 해보려는 미친놈들이 존재하는 법.
히르칸이 그때의 기억들을 추억하며 마음속으로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근데 언제까지 이렇게 있어야 하는 거야?’
히르칸의 머릿속 생각이 여기까지 정리됐을 무렵에도 올프는 히르칸을 여전히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썩 달가운 시선은 아니었다. 표정 자체가 아주 쓰레기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보는 사람 심기를 뒤틀리게 만들기에 조금의 부족함도 없을 정도. 어떻게 이런 NPC를 디자인했는지, 진심으로 그런 사실이 궁금해질 정도의 시선이었다.
결국 히르칸이 참다못해 입을 열었다.
“마웅 대장님께서 올프 님을 도와…….”
“네놈의 뭘 믿고 내가 일을 맡길 수 있지?”
올프가 칼같이 말을 잘랐다.
“제 능력을 시험해보십시오.”
“시험?”
이번에는 수염 사이로 있는 힘껏 비웃음을 짓는 것으로 히르칸의 기분을 잘랐다.
“예, 어떤 시험이든 통과해서 제 능력을 증명하겠습니다.”
“푸풉!”
과장된 웃음소리를 내뱉는 거로 올프는 히르칸의 불편해진 심기에 화룡점정을 찍었다.
히르칸이 욱, 터져 나오려던 분노를 삼켰다.
‘이 새끼, 내가 300레벨 찍으면 넌 뒈졌어. 아니, 300레벨로는 조금 힘들고, 350레벨…… 안전하게 400레벨 찍으면…… 그래, 400레벨 찍으면 넌 뒈졌다.’
히르칸에게 새로운 목표 하나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그런 히르칸에게 올프는 갑작스럽게 자신의 허리춤에 차고 있던 가죽 주머니를 던졌다.
“바헤임 숲의 허여멀건 놈들을 찾아가 그 주머니를 전달해라.”
[퀘스트 ‘올프의 심부름’이 시작됩니다.]
짧은 말.
그 말 한마디를 남긴 후에 올프는 해머를 챙기고 곧장 몸을 돌렸다.
“자, 잠깐!”
히르칸이 그를 붙잡을 여유조차 주지 않았다. 올프는 히르칸의 시선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 그림자 장화!’
그제야 히르칸은 올프에게 단숨에 유저들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옵션을 가진 그림자 장화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울프의 망치에 그림자 장화가 나한테 있었으면 우레사냥꾼 정도는 그냥 식전 운동하듯 처리했을 텐데. 아 가지고 싶다.’
히르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난 히르칸이 자신의 배를 바라봤다. 엉망이 된 방어구의 모습이 보였다. 수리를 하면 언제든 정상이 되겠지만, 그전까지는 파손된 상태로 놔둬야 할 터.
“젠장.”
‘사람을 쳤으면 깽값이라도 줘야지, 빌어먹을 NPC놈을 만나려고 내가 이 고생을 하다니.’
짧게 욕지거리를 내뱉은 히르칸이 후우우우! 굉장히 긴 한숨을 내뱉었다.
‘어쨌거나 이걸로 어려운 과제는 처리했다.’
우르갈 대산맥에서 죽지 않고 올프를 만나는 임무를 수행했다. 정말 큰일 하나를 해냈다. 워로드의 밸런스에 따르면 히르칸의 레벨로는 시도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을 해냈다.
동시에 새로운 과제가 생겼다.
“바헤임 숲이라…….”
바헤임 숲.
‘오랜만에 엘프 한 번 만나보겠군.’
또 다른 이름은 엘프들의 숲이다.
< 28화. 올프의 심부름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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