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골렘 업그레이드 (2). >
3.
“젠장!”
유저 한 명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순간.
크왕!
그 유저를 쫓던 거대한 늑대가 유저의 몸뚱이 절반을 덥석, 한입에 물었다.
‘당했군.’
‘폴리오, 미안.’
그 섬뜩하기 그지없는 광경을 잡아먹힌 유저의 동료들은 결코 보지 않았다. 심지어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도와주기는커녕 이렇게 벌린 시간을 이용해 더더욱 전력으로 도망쳤다.
동료를 희생양 삼아 더 이상 늑대의 숨소리도, 흔적도, 발소리도 들리지 않는 자리에 닿은 후에야 동료를 버렸던 세 명이 처음으로 뒤를 돌아봤다. 아무것도 없다는 걸 파악한 후에야 그들은 오랜만에 대화라는 것을 나누었다.
“젠장.”
몬스터에게 잡아먹힌 동료가 했던 것과 똑같은 말이 그들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도망치는 것도 쉽지 않네.”
“일이 꼬였다니까.”
“맞아. 거기서 하회탈에게 사제들이 대거 잡히는 순간부터 파티 사냥은 무의미했지.”
격전지 무대가 개방되고 88시간이 흘렀다.
적지 않은 그 시간 동안 격전지 무대는 실상 격전이란 명칭과는 조금도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몬스터와 유저들이 쉴 새 없이, 숨돌릴 틈도 없이 치고받는 격전은 없었다. 그저 한쪽의 일방적인 결과물이 대부분이었고, 그 일방적인 결과물의 희생양은 몬
스터가 아닌 유저들이었다.
그 이유, 당연히 히르칸 때문이었다.
하회탈 히르칸이 초우룽을 처리한 이후 떠나자마자 갑작스럽게 등장한 몬스터는 무려 일곱이었고, 그 몬스터들과의 전투에서 적지 않은 유저들이 다시 당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파티들이 서로 대화를 나눌 여유는 없었다. 그대로 뿔뿔이 흩어졌다. 당연히 손을 잡는 일도 없었다. 분명 누군가 총대를 메고 나선다면 얼마든지 뭉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총대를 멨던 초우룽이 어떤 꼴을 당했는지, 그 과정을 실시간으로 본 이들에게 총대를 멘다, 같은 선택지는 이미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그렇게 파티들은 각자 사냥을 시작했다. 파티별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각자의 영역을 확보한 채 사냥을 시작했다. 암묵적인 휴전 협정 아래 이루어지는, 격전지에서 지극히 일반적인 경우였다.
문제는 대부분의 파티가 평소 전력이 아니라는 점. 사제를 잃은 파티, 탱커를 잃은 파티, 스트라이커를 잃은 파티…… 입으로 따지면 누구는 앞니가 나가고, 누구는 어금니가 빠진 상황. 그렇게 이가 빠진 입으로 몬스터를 제대로 씹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몬스터가 찾아올 정도로 몬스터가 넘치는 격전지에서의 거듭된 전투에서 피해는 빠르게 누적됐고, 결국 모든 파티는 포기를 택했다.
“성문까지 얼마 안 남았어. 일단 성문에 가자. 거기 가서 로그아웃하고 시간 재서 다시 로그인하자고.”
“그래, 성문 근처에 가면 우리 같은 처지가 분명 있을 테니까. 오히려 그렇게 되면 공조를 할 수 있을지 몰라.”
“이런 식으로 시간이 날리게 될 줄이야.”
“이번에는 안 죽으면 다행이라고.”
몬스터 사냥을 무리해서 하다가는 전멸을 면치 못할 상황에서 그나마 온전한 전력이 있을 때, 성문 근처에서 성문이 열릴 때까지 대기를 하기로 한 것이다. 그마저도 여유가 있는 유저들이나 몸 무사히 성문 근처에서 로그아웃을 할 수 있을 뿐, 전력이 심하게 줄
어든 파티는 성문에도 도달하는 것조차도 쉽지 않았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단 한 명!
그 한 명은 처지가 전혀 달랐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좋아, 마력 꽉 찼다! 이 빌어먹을 늑대 새끼! 넌 내가 직접 손으로 잡아주겠어!”
그 한 명은 오히려 이 넘쳐나는 몬스터 무리 속에서 넘치는 에너지를 선보이며, 사냥을 잘하다 못해 즐기고 있었다.
그 한 명…… 당연히 히르칸이었다.
거대 늑대, 거대 곰, 거대 뱀…… 핏빛 얼룩무늬를 가진 짐승들이 히르칸의 정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히르칸은 그 무리들을 향해 뼈폭탄 세 개를 흩뿌리듯 던졌다.
콰과광!
히르칸이 한 달 동안 먹는 라면값보다 비싼 뼈폭탄들이 터지며 만들어내는 광경은 강렬했다.
그 굉음 사이로 뿔을 달고, 본 아머를 두른 해골 전사들이 거침없이 달려 나아갔다. 저마다 최소 1천 골드를 훌쩍 넘기는 무기를 들고 있는 해골 전사들의 전투 능력은 대단했다. 80레벨 몬스터의 가죽 따위는 그들의 도검에 종잇장이나 다름없었다.
푸욱, 서걱, 스윽!
찔리고, 잘리고, 베이는 소리들, 도륙이란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소리들이 뼈폭탄이 만들어낸 폭음 뒤를 채웠고.
크헝!
그 뒤로 터지는 몬스터의 울음은 험악함보다는 구슬픔에 가까울 정도로,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일방적이었고, 압도적이었다. 몬스터가 오히려 불쌍하게 보일 정도.
물론 가장 불쌍한 건 히르칸에게 걸린 놈이었다.
레벨업과 함께 모든 능력치를 회복한 히르칸은 앞서서 자신의 몸뚱이를 한 번 할퀸 늑대 한 마리를 향해 돌진했다.
‘박살을 내주지.’
거리를 좁히자마자 녀석의 눈알 속에 단검을 찔러 넣은 히르칸은 단숨에 붉은 점박이 늑대의 몸에 올라탔다. 올라타자마자 녀석의 몸뚱이에 이빨검을 찔러 박았다.
박은 검을 손잡이 삼은 채, 히르칸이 다른 단검 하나로 늑대의 몸뚱이에 상처를 냈다.
푹푹, 푹, 푹!
네 번의 찌르기가 끝나자 사각형 모양의 살덩이가 생겨났다. 살덩이가 빠져나가고 생긴 상처 속에 히르칸은 곧바로 약보다 더 화끈하기 그지없는 걸 넣어줬다.
뼈폭탄!
히르칸이 그 강력한 것을 억지로 쑤셔 넣었고, 곧바로 뼈폭탄은 전력을 다해 폭발했다.
꽝!
뼈폭탄이 터지는 소리는 이제까지 터진 소리들 중에서 가장 얌전했지만, 그 결과물은 가장 참혹했다.
후두두!
터진 살점들과 핏덩이들이 그로데스크한 흔적을 만들었다.
크르르…….
그러는 사이 늑대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화이트맘바의 독과 누적된 데미지가 늑대를 반항조차, 몸부림조차 치지 못하게 만들었다. 히르칸은 그런 늑대에게도 가차 없었다. 이미 끝이 난 녀석의 명줄을 더 빨리, 더 확실하게 끊을 생각만 했다.
푹푹!
섬뜩한 소리가 연거푸 터진 후에야 늑대는 죽었고, 히르칸은 곧바로 칼을 뽑은 후에 새로운 몬스터를 찾아 움직였다. 해골 전사들이 아직 해치우지 못한 녀석을 발견하자마자 곧바로 몸을 날렸다.
몸을 날리는 히르칸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여기 있는 몬스터가 다 내 것이라니!’
다른 파티들이 결코 제대로 된 전투를 치르지 못한 채 전멸하거나 혹은 전투를 포기하리란 사실을 히르칸은 파악하는 정도가 아니라, 진작에 예상하고 있었다.
예상한 시점은 히르칸이 몽마르트 파티와 손을 잡고 사제 제거를 위한 함정을 파는 순간부터였다.
사제가 없는 파티가 정상적인 사냥을 할 수 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그 이후 행동도 다 그런 이유에서였다. 굳이 자신에게 이빨을 드러낸 놈들을 그냥 놔둔 것도, 초우룽의 1대1을 받아준 것도 그렇고, 결국 히르칸이 아니더라도 그들은 이미 사제가 당한 시점에서 리타이어다.
그렇게 경쟁자가 사라진 격전지 무대는 히르칸 입장에서 최고의 사냥터였다. 넘치는 몬스터 중에 히르칸을 위협할 만한 몬스터는 없었으니까.
더불어 경쟁자가 없다는 건, 가장 가치 있는 몬스터 역시 이미 히르칸의 몫이 되었다는 의미였다.
‘이제 남은 건 블루 자이언트뿐이군’
“으하하!”
너무나도 기쁜 듯, 히르칸이 저도 모르게 내뱉는 웃음소리가 격전지 무대를 울렸다.
4.
쿠웅!
푸른 피부, 숲의 녹음과는 조금도 동화될 수 없는 피부를 가진 외눈박이 거인이 잘려나간 고목처럼 딱딱하게 굳은 채 바닥 위에 쓰러졌다. 쓰러지면서, 거인의 몸뚱이에 갈린 굵직한 나무 다섯 그루가 휴짓조각처럼 뭉개졌다.
바닥에 쓰러진 푸른 거인의 온몸에는 일곱 자루의 칼이 박혀 있었고, 녀석의 근처에는 신체의 절반이 뭉개진 골렘이 남은 어깨 한쪽을 힘없이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후우.”
블루 자이언트.
기어코 녀석을 쓰러뜨린 히르칸이 내뱉은 건 기쁨에 찬 환호성이 아닌 긴 한숨이었다.
‘간신히 잡았네. 자칫 잘못했으면 죽을 뻔했어.’
블루 자이언트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숲의 나무보다 큰 신장에 푸른색 피부를 가진 블루 자이언트는 어느 나무 위를 올라가도 금방 찾아낼 수 있을 정도로 존재감이 분명했다.
단지 잡는 게 힘들었다.
‘공격력이나, 방어력은 별거 없었는데 HP가…… 진짜 100레벨대 보스 수준이잖아?’
이벤트 몬스터답게 HP가 보통 수준이 아니었다. HP가 너무 많은 탓에 녀석을 잡는 데에만 히르칸이 쓴 시간이 28분이나 됐다. 히르칸의 데미지 딜링은 엄청나다. 해골 전사들과 해골 마법사, 골렘이 있으니까. 여기에 저주 마법이 섞일 경우, 5인 파티와 분당 데미
지 딜링을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 뼈폭탄을 아낌없이 쓰는 순간에는 5인 파티와의 비교 자체를 거부한다.
그런 히르칸이 30분 가까이 전투를 치렀다.
‘이걸 두고 전화위복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지금이기에 잡을 수 있는 놈이었다.
만약 경쟁자들이 넘치는 상황에서 잡아야 했다면, 결코 이렇게 쉽게 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는 만큼 몰래 잡는 것도 불가능할 테니까. 거듭된 방해 앞에서 치고 빠지는 작전을 선택하는 수밖에 없었을 테고, 어쩌면 몬스터를 스틸 당했을지
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초우룽이 히르칸을 잡기 위해 그렇게 본격적으로 수작을 부리지 않았다면, 무난하게 상황이 흘러갔다면, 결코 히르칸에게 이런 기회가 오진 않았을 터.
‘그보다 초우룽은 대체 왜 날 잡으려고 그 지랄을 한 거지? 내가 빅스마일을 건드렸었나?’
그 부분은 여전히 의구심으로 남았다.
단순히 히르칸의 명성이 탐나서 초우룽이 개인적인 의견으로 움직였을 것 같진 않다. 그럴 가능성이 매우 낮으니까. 빅스마일은 그 정도로 자기 길드원들 관리를 허투루 하는 집단이 아니다.
그렇다는 건 빅스마일의 누군가가 초우룽에게 히르칸을 제거하라고 명령을 내린 셈인데, 이 역시 쉽사리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히르칸은 빅스마일과 인연을 맺은 적이 없다. 적어도 지금 이 시점에서는.
‘아니, 그보다 빅스마일 애들 여유도 없을 텐데?’
더욱이 빅스마일은 지금 히르칸을 신경 쓸 여력이 없다. 당장 트리플윙과의 전쟁으로 골치가 아픈 자들이다. 그런 상황에서 히르칸을 건드리는 건, 고민거리를 늘리는 일이다.
‘여하튼 30대 길드 새끼들은 개새끼들밖에 없다니까.’
분명한 건 히르칸 입장에서는 갑자기 뜬금없이 공격을 당했다는 사실이다. 히르칸이 그 공격을 잽싸게 피하고, 카운터펀치에 시계까지 털면서 이익을 봤지만, 빅스마일을 용서해야 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
‘빅스마일, 어디 한 번 걸려봐. 아주 그냥 박살을 내줄 테니까.’
히르칸이 빅스마일을 우레사냥꾼 바로 아래 항목에 넣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히르칸의 기준에서 우레사냥꾼 바로 아래라는 건 그리 좋은 자리가 아니었다.
그렇게 히르칸이 복수를 곱씹는 순간.
[격전지 이벤트 몬스터 ‘블루 자이언트’가 쓰러졌습니다.]
격전지 무대에 접속한 모든 이들에게 알림이 떴다. 히르칸 역시 알림을 들었다.
히르칸이 알림을 듣는 순간 손목시계의 앱을 터치했다.
[138 : 33 : 22]
시간을 본 히르칸이 미소를 지었다.
‘한숨 자고 오면, 딱 맞겠군.’
격전지 무대를 이제 떠날 때가 왔다.
4.
- 죄송합니다.
초우룽의 대답을 듣는 순간, 헤비빈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내뱉는 대신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오늘 일은 두고두고 쓴 약이 될 것이다. 결코 오늘 일을 잊지 말고 반성하도록.”
- 명심하겠습니다.
“수고했다. 당분간 푹 쉬어라.”
- 죄송합니다.
통화가 끝이 났고, 헤비빈은 곧바로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만약 그가 손에 스마트폰 같은 걸 쥐고 있었으면, 벽에 던졌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게임 속이기에 그런 일은 없었다.
‘빌어먹을.’
초우룽을 아꼈기에 헤비빈은 담담하게 대답을 했다. 초우룽이 아닌 다른 이가 그랬다면, 헤비빈은 쌍욕까지는 아니더라도, 결코 이렇게 쉽게 넘어가진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이번 일로 헤비빈이 입은 타격은 적지 않았다. 당장 금전적인 피해는 그렇게 크지 않다.
‘아폴로, 놈이 이 일을 안다.’
문제는 아폴로, 야비하기 그지없는 그는 결코 이번 일을 그냥 웃음으로, 가볍게 넘어가지 않을 테니까.
‘이걸 빌미로 날 이용해먹으려 들겠지.’
아폴로에게 이번 일은 빅스마일의 간부인 헤비빈을 구워삶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더욱이 초우룽이 빅스마일이란 걸 하회탈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선 아폴로의 거래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었다. 아폴로가 몰래 초우룽의 정체를 하회탈에게 알려준다면, 상황은 골치 아픈 수준에서 끝나지 않는다.
최악은 빅스마일과 적대 관계인 트리플윙이 이번 일을 빌미로 하회탈과 어떠한 공조를 할 경우다. 그렇게 되면 그저 속이 쓰린 정도로 일이 끝나지 않는다.
빅스마일이 30대 길드 자리에서 쫓겨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젠장.’
그런 경우를 떠올린 헤비빈의 마음이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그런 헤비빈의 마음에 재차 불을 지르려는 듯.
“젠장.”
통화 한 통이 왔다. 발신자가 아폴로라는 걸 확인한 헤비빈은 당장 통화를 수락하기 전에 이를 꽉 물었다. 꽉 문 이 사이로 자신의 분노 어린 감정을 흘렸다.
‘하회탈, 이 대가는 확실하게 치르게 해주마.’
< 27화. 골렘 업그레이드 (2).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