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솔플의 제왕-76화 (76/192)

< 26화. 격전지 (3). >

9.

성벽을 넘자마자 보이는 건 정체를 알 수 없는 뼈의 잔해들이었다. 사람의 뼈처럼 보이는 것도 있었고, 거대한 몬스터의 뼈일 수밖에 없는 것들도 잔뜩 있었다. 온갖 종류의 뼈들이 황무지나 다름없는 땅덩어리 위를 장식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뼈의 들판, 그 들판 너머에는 나무가 빼곡히 채워진 숲이 펼쳐져 있었다. 지평선마저 보이는 드넓은 숲은 뼈의 들판보다 더더욱 섬뜩했다. 숲은 때때로 흔들렸고, 때때로…….

크오오오!

울음마저 내질렀다.

숲은 자신이 몬스터 소굴이란 것을, 자신의 몸뚱이에 들어오려는 자들이 오감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해줬다.

“격전지가 이런 곳이구나.”

“생각보다 힘들겠어.”

격전지 무대를 뛰는 것이 이번이 처음인 팅커벨 파티에게 성벽 너머에 펼쳐진 무대는 자신들의 상상 이상이었다.

당연히 그들은 이 무대에 바로 적응하지 못했다. 성문이 열리고, 그들은 가장 늦게 숲에 도달했다. 숲에 도달한 후에도 그들은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고, 가득 찬 긴장감은 그들의 여유를 갉아먹었다.

그렇게 그들이 숲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을 때, 그들은 곧바로 전투에 돌입했다.

“아! 당신들은?”

조금 전, 몇십 분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들과 함께 얼굴을 마주하고 있던 자들이 적이 되어 등장했다.

“뭐, 뭐야?”

“뭐긴, 신고식이지.”

그것도 하나의 파티가 아닌 다수의 파티가, 다섯 개의 파티가 등장해서 그들을 포위했고, 이렇다 할 이야기도 나누지 않은 채, 서로를 향한 저주와 변명을 지껄일 여유도 없이, 시작된 전투는 끝이 났다.

10.

‘이 새끼들 봐라?’

히르칸은 후드를 뒤집어쓴 채, 나뭇가지에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앉은 채, 팅커벨 파티가 당하는 모습을 하나부터 열까지 바라봤다.

‘문 박차고 나가는 순간부터 놀라는 꼬락서니를 보고 낌새가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는데…… 다섯 파티가 손을 잡았다?’

팅커벨 파티가 당하는 광경은 격전지 무대에서는 그렇게까지 특별한 광경은 아니었다. 원래 격전지에서 파티들이 서로 유혈 전쟁을 일으키는 경우는 초반부와 후반부에 몰려 있다. 본격적인 몬스터 사냥이 시작되기 전에 경쟁자를 처리하거나 혹은 아주 중요한

이벤트 몬스터를 앞에 두고 처리하거나. 중반부는 대부분 몬스터 사냥에만 주력하기로 암묵적인 합의를 한다. 격전지에 오는 이유 중 하나는 결국 많은 몬스터를 사냥해서 다른 사냥터에서보다 훨씬 더 빨리 레벨업을 하는 거니까.

이번 경우에는 팅커벨 파티가 타깃이 된 이유 역시 명확했다. 딱 봐도 격전지란 무대가 처음인 유저들. 격전지에 능숙한 자들은 격전지 무대를 보고 당황하기보다는 일단 격전지 속에,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에 숨긴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격전지 초입에 머무는 건

타깃을 자처하는 꼴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팅커벨 파티는 타깃을 자처하는 수준이 아니라, 우리를 잡아주세요! 유혹을 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다섯 개의 파티, 서른 명이 넘는 인원이 달려드는 건 히르칸의 예상외의 일이었다.

‘다섯이라…… 내 기억이 틀리지 않으면 저 다섯 파티를 다 합치면 그 숫자가 이십, 이십팔…… 서른여덟 명이지?’

다섯 파티가 손을 잡았다.

그런 그들이 손을 잡은 이유.

‘날 잡으려고 아주 작심을 했군.’

히르칸, 자신이 표적이기 때문이다.

격전지 무대는 참가자들의 수준이 고만고만하다. 레벨 제한이 있으니까. 그런 제한이 아니라면, 고레벨 유저들이 와서 깽판을 부릴 게 뻔하다. 그런 무대에 히르칸의 등장은 다른 이들 입장에서 비합리적으로 느껴졌을 터.

다섯 파티는 망설임 없이 손을 잡았을 것이다.

‘그보다 저기 있는 놈들은 인증샷 찍을 때는 살갑게 다가오던 주제에, 이렇게 나오다니, 아주 빌어먹을 놈이군.’

어쨌거나 히르칸 입장에서는 기분 좋을 것 하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네.’

동시에 의구심도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날 잡으려고 너무 본격적으로 나오는 것 같은데? 유니크 스킬북 때문이라고 보기는 좀 과한데?’

나름 충분히 상황은 이해가 됐지만, 그래도 과한 감이 없진 않았다.

히르칸의 눈매를 가늘게 떴다.

‘저 중에 나한테 시계를 털린 놈이 있나?’

물론 이런 상식적이고, 계산적인 이유가 아닌 사적인 이유가 섞여 있을 수 있다.

복수!

굉장히 감정적이고, 비생산적인 이유이지만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가장 분명한 이유이기도 하다.

솔직히 히르칸이 그동안 게임을 아주 깨끗하게 해온 건 아니다. 자신을 건드리는 족속들은 가차 없이 해치웠다. 잘못은 상대방이 먼저 했지만, 그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족속들은 애초에 잘못이란 걸 하지 않는 법. 복수를 운운해도 이상할 건 없다.

‘혹시 설마 그때 내가 엿 먹인 계집년들 기둥서방이라도 저 중에 있는 건가? 아니지. 걔들이 내가 하회탈인 걸 알긴 아나? 그럼 황금 해골 잡을 때 엿 먹은 애들 친구인가?’

어쨌거나 히르칸을 잡으려고 목이 타는 족속들은 히르칸조차 특정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물론 히르칸이 길게 할 필요가 없는 고민이다.

‘뭐, 아무렴 어때. 표적은 다섯 파티, 서른여덟 명.’

히르칸이 팅커벨 파티원들의 시계를 챙기는 다섯 파티를 보며 시답잖은 생각은 멈추고, 본격적인 계획을 세웠다.

‘마음 같아서는 144시간 동안 쏘우 영화에 나오는 조연 배우 심정을 라이브로 느끼게 해주고 싶지만, 사냥할 시간이 아까우니 24시간 안에 끝장을 내주지.’

계획은 금방 완성됐다.

이런 일, 히르칸에게는 일상이었으니까.

11.

“진짜 빌어먹을 상황이군.”

테르베 성벽의 성문이 열리고 2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제대로 된 몬스터 사냥조차 해보기도 전에 몽마르트 파티는 유저들에게 포위당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몽마르트 파티의 탱커인 보르도는 자신의 주변을 포위하고 있는 수십 명의 유저들을 보고 화가 나면서도, 어처구니가 없는 듯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아무리 격전지라지만, 이거 너무한 거 아니야? 다섯 개 파티가 손을 잡고 이렇게 나오는 건 뭐하자는 거야?”

그 외침에는 분노가 가득 차 있었다. 그의 분노에 동조하듯, 그의 뒤로 있는 사제 두 명과 마법사 세 명, 검사 한 명 역시 분노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반면 그들의 모습과 표정을 본 서른 명이 넘는 인원들은 딱히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담담했다.

“격전지 한두 번 뛰는 것도 아니고, 이 정도는 각오했었어야지.”

“빨리 끝내자고.”

애초에 이런 게 익숙한 유저들이니까 격전지 무대를 뛰는 거다. 격전지 무대에서 이런 상황은 매번 일어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광경이다. 이런 상황에 부끄러움을 느끼거나, 미안한 감정을 품거나, 자격지심이 든다면, 격전지 무대에 올

일은 결코 없다.

“아무리 격전지가 무규칙 무대라고 해도 이건 아니지!”

어쨌거나 당하는 입장에서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라고 하면, 24시간 내내 내뱉을 수도 있는 상황.

제대로 된 격전을 앞두고 이런저런 말이 오고 가는 광경을 말없이 지켜보던 초우룽이 슬그머니 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오래 끌 필요는 없지.’

어차피 이들, 몽마르트 파티는 주요 표적이 아니다.

‘하회탈이 괜히 눈치를 채고 몸을 빼면 오히려 곤란해.’

주요 표적은 하회탈이고, 하회탈이 이런 상황을 눈치채기 전에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하회탈이 자신을 잡기 위해 다른 무리들이 손을 잡았다는 걸 알게 되면, 그에 걸맞은 태도를 보일 테니까.

맞서 싸우진 않을 것이다. 분명 도망치면서 이익을 취할 것이다. 격전지 무대에서 홀몸으로 도망치는 상대를 쫓는 건 쉽지 않다.

더불어 초우룽에게는 하회탈을 잡아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놈을 꼭 잡아야 해.’

하회탈을 잡으면 곧바로 10만 위안을 받는다. 아폴로, 그가 이번 하회탈 사냥에 건 보너스였다.

‘10만 위안…….’

고작 유저 하나를 죽여서 얻는 돈이 1천만 원을 훌쩍 넘기는 상황. 초우룽은 이미 그 돈으로 해야 할 일들을 머릿속으로 계획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빨리 상황을 정리하려면 누군가가 먼저 궂은 일을 자처해야 한다.

이렇게 서른 명이 넘는 인원이 포위망을 형성했다고 해도, 상대는 격전지에서 좀 굴러본 자들이다. 레벨도 비슷하고, 아이템 세팅도 비슷하다.

그렇기에 이 정도 머릿수라면 결과는 뻔하지만, 내용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누군가가 저들의 발악에 희생이 될 가능성은 농후하다는 의미다. 그 누구도 그 희생자가 되고 싶어 하진 않는다.

그러니 누군가는 총대를 메고 나서서 판을 이끌어줘야 한다. 신속하게 끝내고 싶다면.

초우룽 그가 움직였고, 그가 움직이자, 탱커와 스트라이커 역할을 맡은 검사 클래스의 유저들도 천천히 움직였다.

마법사들이 그들 뒤에 선 채 마법 캐스팅을 시작했고, 애초부터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제들은 정면에서 일어날 전투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그렇게 모든 이들의 이목이 한 곳에 집중되는 순간.

“헉!”

좁혀지는 포위망 뒤에서 숨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뭐지?’

초우룽에게는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표적, 몽마르트 파티 너머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초우룽이 시선이 빠르게 움직였다.

‘응?’

그런 초우룽의 눈에 본인 건 해골 전사들이었다. 숫자는 셋. 그 해골 전사 셋이 사제 한 명에게 달려들어 검을 찔러 넣은 후에, 그 검을 뽑아 재차 검을 찔러 넣었다.

“으악, 젠장!”

사제가 비명을 내지르며 자신의 긴급 상황을 알렸을 때 해골 전사 세 마리는 사제의 몸뚱이에 열 번 이상의 칼질을 마친 상황이었다.

사제가 착용한 방어구의 방어력이 그리 강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레벨이 되는 방어구임에도 사제의 몸뚱이는 푸딩 꼴을 면치 못했다. 해골 전사의 공격력이 섬뜩한 수준이었다.

그렇게 사제 한 명이 제대로 된 힐링 계열 스킬을 쓰기도 전에 넝마가, 엉망이 됐다.

“젠장, 이건 또 뭐야?”

그 모습을 본 근처의 사제의 동료가 몽마르트 파티를 무시하고,몸을 돌려 해골 전사를 해치우기 위해 달려갔다. 이 순간 모든 이들의 머릿속엔 사제를 구해야 한다! 그 생각만 가득 찼다.

‘사제가 당하면 위험해.’

초우룽도 똑같은 생각을 했다. 파티에서 사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두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로 중요하다. 특히 격전지에서는 마법사보다 사제가 더 중요하다. 사제가 없으면 그냥 로그아웃을 하고,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는 게 속 편하다.

여기서 초우룽은 헤비빈의 기대주답게, 용케 다음 판단으로 넘어갔다.

‘가만.’

저 해골 전사들이 그냥 등장했을까?

초우룽이 고개를 돌렸다.

‘아!’

그러자 다른 한쪽에서 네 마리의 해골 전사들이 이 광경을 놀란 채 지켜만 보는 사제 한 명을 향해 덤벼드는 게 보였다.

초우룽의 생각은 자연스럽게 다음 생각으로 닿았다.

‘하회탈은?’

해골 전사들이 왔는데 하회탈, 그가 오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런 초우룽의 예상 그대로, 하회탈이 등장했다.

“으악!”

초우룽, 그의 뒤편에서, 초우룽이 속한 파티의 사제의 몸뚱이에 검을 찔러넣고, 곧바로 검을 뽑아낸 후에 뽑아낸 칼로 사제의 목을 치고, 이후 그 상태로 사제의 목을 톱질하듯 잘라내며, 단숨에 사제의 목을 절반 가까이 잘라낸 채로.

히르칸은 그렇게 등장과 함께 사제 한 명을 확실하게 끝장을 냈다.

“돌격!”

그리고 히르칸이 등장하는 순간 몽마르트 파티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움직였다.

아니, 히르칸을 기다린 게 맞았다. 몽마르트 파티는 그 어디도 아닌 히르칸이 온 것과는 반대 방향을 향해 이동했다.

전력분산.

이렇게 되면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무리가 둘로 나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지금 몽마르트 파티를 포위한 집단의 명령체계가 일방적이지 못하다는 것. 제안과 합의라는 과정이 필요하다.

상황 판단, 방법 강구, 방법 제안, 합의 그리고 행동. 듣기만 해도 짜증이 나는 이 과정이 지금처럼 1초 단위로 상황이 나누어지는 긴박한 상황에서 이루어질 리 만무.

‘빌어먹을!’

초우룽조차 당혹감에 자신의 파티에 속한 사제가 히르칸의 고문에 가까운 칼질 앞에 죽어가는 걸 그저 보기만 했다.

그사이 사제 한 명을 단숨에 해치운 히르칸의 눈과 초우룽의 눈빛이 마주쳤다.

찰나에 불과했다.

히르칸은 바로 고개를 돌렸고, 곧바로 다른 유저 한 명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살…….”

그 역시 사제였다.

푹!

히르칸은 살려달라고 말을 뱉으려던 사제의 눈두덩이 사이에 칼을 꽂은 후에, 그 상태로 사제를 어깨에 짐짝처럼 짊어진 채 멈추지 않고 달렸다.

도주였다

“쫓아!”

“어?”

“하회탈이잖아!”

그 순간 한 무리가 히르칸을 쫓아갔다. 표적이 도망치는데 가만히 있을 순 없지 않은가?

그 광경을 초우룽이 어떤 말도 내뱉지 못한 채 침을 꿀꺽 삼켰다.

‘다, 당했다.’

말문이 막힌 초우룽은 어떤 말도 뱉지 못했다.

12.

푹푹!

어깨에 사제 유저를 올려놓은 채, 사제의 몸뚱이를 마치 고깃덩이 찌르듯, 찌르며 달리던 히르칸은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에게 온갖 욕지거리를 지껄이던 사제가 시체처럼 늘어진 걸 보고는 실소를 지었다.

‘강제 로그아웃했군.’

유저의 어깨에 짐처럼 걸쳐진 채 계속해서 칼에 찔리는 걸 실시간으로 즐기는 취미를 가지진 못한 모양이다.

그제야 히르칸은 처음으로 고개를 돌려 자신을 쫓아오는 세 명을 바라봤다.

‘아주 개처럼 따라오네.’

그 셋은 용케 잘 쫓아오고 있었고, 그건 곧 그들이 히르칸에 준하는 능력치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였다.

스트라이커들.

근력 스탯을 주력으로 올린 검사 클래스 유저들이다.

히르칸은 그런 그들이 자신을 더 잘 쫓아올 수 있도록 속도를 적당히 조절했고, 거리를 조금씩 좁혀줬다.

이윽고 멈췄다.

‘여기 맞지?’

멈춘 후에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어딘가를 바라본 히르칸이 어깨에 짋어지고 있는 사제의 몸뚱이를 내려놓았다.

철퍼덕!

아직 죽진 않았으나, 유저가 캐릭터에 대한 모든 것을 포기해버린 사제의 몸뚱이는 시체나 다름없었다.

푹!

히르칸은 그런 사제의 등줄기에 검을 꽂아넣은 후에, 그 검 위에 두 손을 올려놓은 채 오는 무리들을 바라봤다.

그 모습에서는 섬뜩함과 위압감이 넘쳤다.

“머, 멈춰.”

“후우우!”

베테랑 유저들도 당장 히르칸을 공격하지 못하고, 멈추게 만들 정도의 위압감이었다.

그 위압감 앞에 멈춘 세 명은 그제야 정신이 든 듯, 머릿속에서 상황을 정리했다.

‘아, 젠장.’

‘우리만 왔구나…….’

그들의 전투력은 분명 우수하다. 근력 스탯을 주력으로 올린 검사 클래스의 전투력이 약하다면, 그 누구도 그런 직업을 키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하회탈 히르칸.

‘셋으로 하회탈을 잡을 수 있을까?’

‘해골은 없잖아?’

열 마리가 넘는 강력한 해골 전사를 부리며, 본인 혼자서 강력하기 그지없는 보스 몬스터마저 상대하는 말도 안 되는 실력의 유저다. 그런 그들을 검사 세 명이 처리한다?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쉬울 순 없다.

‘그냥 다시 도망쳐야 하나?’

‘사제도 없는데 어떻게 하지?’

모두가 긴장감 가득한 채 무기를 들고, 방패가 있는 자는 방패를 먼저 앞세웠다.

히르칸은 그들을 말없이 바라보며, 푹푹! 사제의 등에 박힌 검을 뽑았다, 찌르기를 거듭 반복했다. 어쨌거나 사제를 확실하게 죽일 생각.

‘미친 새끼!’

그 모습이 워낙 섬뜩해서 셋은 시간을 벌거나, 상황을 바꾸기 위한 대화조차 시도하지 못했다.

그 순간.

크어어!

무시무시한 울음과 함께 몬스터 네 마리가, 뿔을 가진 잿빛 피부를 가진 트롤들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스트라이커 세 명은 그 트롤들을 바라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고, 히르칸은 히죽, 미소를 지었다.

‘골렘 녀석, 행동은 느려도 타이밍 하나는 죽여준단 말이야.’

히르칸이 소환한 골렘을 해치우고, 그 골렘 주인을 잡으러 오는 몬스터들, 히르칸이 준비해둔 몬스터 폭탄들이었다.

13.

“몇 명 남았습니까?”

“우린 여섯.”

“우린 일곱.”

“우린…….”

서른여덟 명으로 시작된 숫자는 서른 명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순식간에 여덟 명이 게임오버를 당했다.

물론 전공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몽마르트 파티가 도망치는 과정에서 몽마르트 파티에 소속된 유저 세 명을 처치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 전공을 언급하는 것조차가 부끄러울 정도로 처참했다.

특히 가장 큰 문제는.

‘사제가 넷이나 당하다니…….’

게임오버를 당한 여덟 명 중 절반이 사제라는 사실이었다. 다섯 개의 파티에 속한 여덟 명의 사제 중 네 명이 사라졌다.

‘완벽하게 당했다.’

섬뜩한 일이었다.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초우룽은 자신의 등골이 싸늘하게 식는 느낌을 받았다.

더욱이 지금 이 커뮤니티는 다섯 개의 파티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사제가 넷이라면? 만약 다섯 파티가 헤어지면 파티 하나는 사제 없이 전투를 해야 한다. 싸우다 죽으란 소리다.

‘설마 몽마르트와 하회탈이 손을 잡을 줄이야.’

이런 치명적인 상황이 펼쳐진 이유는 몽마르트 파티와 하회탈이 손을 잡은 것, 오로지 그 때문이었다.

몽마르트 파티를 포위했을 때, 당연히 사제를 보호하기 위해 사제를 뒤로 빼놓았다. 전투개시를 위해서 스트라이커와 탱커들이 앞으로 나아갔다. 포위한 대상을 처리할 때 쓰는 아주 당연하고, 합리적이고, 마땅한 방법이었다.

그런데 설마 하회탈이 거기서 등장할 줄이야.

심지어 하회탈은 해골 부대를 둘로 나누어서 사제 둘을 한 번에 처치했다. 여기에 해골 전사는 무척 강했다. 그 후 히르칸 본인이 잽싸게 사제 하나를 처치한 이후, 사제 하나를 업고 자리를 피한 후에 마무리를 했다.

‘하회탈은 격전지를 뛴 적이 없었을 텐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한 거지?’

정말 영리한 플레이였다. 그 자리에서 처치하는 것보단 전투 능력이 없는 사제를 들고 다니면서 처치한다, 이 얼마나 영리한 방법이란 말인가? 짐승들이나 생각할 법한 영리함이다.

그렇게 히르칸 혼자 넷을 처치했다. 다섯 개의 파티가 연합을 했는데, 그중에서 사제만 정확히 넷을 골라 처치하는 솜씨, 소름이 돋는 솜씨다. 여기에 스트라이커를 일부러 유인해서, 몬스터를 이용해 차도살인을 한 건, 당한 쪽에서도 감탄이 나올 정도다.

어쨌거나 이걸로 분명해졌다. 히르칸이 초우룽과 그들의 의도를 완벽하게 읽었다.

그건 곧.

‘여기서 끝이 아니야.’

이제 시작이란 의미다.

무규칙을 앞세운 건 초우룽 무리가 먼저다. 상대방이 무규칙으로 나와도 할 말은 조금도 없다.

특히 격전지인 이곳에서는 언제든 몬스터와 전투를 치를 각오를 해야 한다. 격전지는 몬스터가 찾아올 정도로 몬스터가 많다. 그런 무대에서 스무 명이 넘는 인원을 사제 넷이서 커버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최악은 휴식 타임이다. 온종일 게임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 몇 시간 뒤면 모두가 휴식을 치르러 게임을 떠난다. 개중 몇 명은 차라리 144시간 동안 접속을 하지 말자! 같은 선택지를 고를 수 있다. 그냥 무작정 게임오버를 당하느니, 그냥 일주일 가까운 시간 동안

휴식을 취한 후에 게임오버는 피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숫자가 또 줄어드는 셈.

그러다 보면 결국 수적 우위도 없는 게 된다.

‘그건 안 돼.’

초우룽은 일단 이 상황을 정리할 필요성을 느꼈다. 초우룽이 다른 파티의 리더들을 모았다.

“지금은 힘을 합치는 게 좋을 겁니다. 무리를 나눠봤자 어차피 타깃이 될 뿐입니다.”

“이대로 뭉쳐서 같이 사냥을 하자고?”

“뭉쳐 있는 상황에서는 최소한 적도 우리를 대놓고 정면에서 공격할 순 없습니다. 머릿수는 아직 우리가 상대를 압도하고 있습니다. 일단 생존이 먼저 아닙니까?”

반발은 없었다.

‘젠장.’

하지만 초우룽은 저들의 표정을 보는 순간 그들이 자신을 탐탁지 않아한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내 탓으로 돌릴 생각이군.’

어쨌거나 초우룽이 먼저 그들에게 하회탈을 치자고 제안을 했으니까. 사람이란 상황이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없는 이유를 만들어서라도 남 탓을 하기 마련이다.

“뭐, 그렇게 합시다.”

답은 나왔지만, 결코 명쾌하지 못한 답이었다.

초우룽이 무언가 틀어졌음을 자각했다.

그런 그들의 앞에 히르칸이 등장한 건, 성문이 열리고 5시간이 지났을 때, 모두가 슬슬 로그아웃을 위한 안전지역을 찾을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주동자가 누구지?”

< 26화. 격전지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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