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솔플의 제왕-72화 (72/192)

< 25화. 비밀 결사대 (2). >

4.

‘드디어 도착했다.’

불카스 레인저 빌리지에 도착한 히르칸은 자신이 게임을 한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하루 내내 달리기만 했네. 빌어먹을.’

만약 이게 게임이 아니었다면, 히르칸은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숨을 헐떡이며, 바닥에 너부러져 있었을 테니까.

‘왜 워로드는 워프 같은 게 없는 거야? 그런 거 좀 만들면 편리하고 좋잖아?’

짧은 푸념과 함께 히르칸은 마지막으로 자신이 입고 있는 세련된 가죽 갑옷에 감사했다.

‘그나마 그림자 사냥개 세트를 구매해서 다행이지, 이거 아니었으면 화병으로 게임 접었겠네.’

파릉 숲에서 헬름 오우거를 잡고, 재료 코인을 챙긴 히르칸은 곧바로 파릉 숲과 가장 가까운 성으로 이동했다. 가까운 성이 전력으로 달려도 반나절은 지나갈 정도로 먼 곳에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당장 확보한 헬름 오우거 및 기타 재료 코인들을 떨이로 팔 수는 없었고, 가지고 다니는 건 더더욱 불가능했으며, 이런 것들을 보관할 수 있는 보관소는 성에만 존재했으니까.

성을 방문한 후에 곧장 이곳, 불카스 레인저 빌리지로 달려왔다.

자신의 활약상이 퍼지기 전에 퀘스트를 끝내기 위해서.

‘이렇게 개고생을 했으면 슬슬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설마 또 시험이니 뭐니 주는 건 아니겠지?’

이제는 마웅을 찾아 퀘스트를 완료할 때.

마웅을 향해 떠나는 히르칸은 머릿속으로 다시 한 번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의 흐름을 떠올렸다.

‘슬슬 결사대가 나와야 하는데…….’

마웅을 통해 비밀결사대의 멤버가 되는 게 배덕의 왕자 편을 진행하는데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빨리 결사대 반지 한 번 껴보고 싶은데…….’

더불어 이 비밀결사대 멤버가 되면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정말 어마어마하다.

‘그래, 결사대 반지가 걸렸는데 참아야지. 아무렴. 참자. 참는 게 이기는 거다.’

스스로를 추스른 히르칸이 곧바로 마웅을 만났다. 마웅을 만나서 헬름 오우거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고, 이야기를 들은 마웅은 굉장히 심각한 표정으로 운을 띄었다.

“아무래도 내 예상이 맞은 모양이군. 안타깝게도.”

진지하고, 묵직한 분위기.

히르칸은 괜히 그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지 않았다. 분위기에 맞장구를 쳐줬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혹시 그 몬스터 무리들의 정체를 알고 계시는 겁니까?”

“음.”

히르칸의 물음에 마웅은 대답 대신 말을 꾹, 삼켰다.

1초, 2초, 3초…… 뜸을 들이는 마웅을 보며 히르칸이 속으로 욕을 곱씹었다.

이윽고 마웅이 입을 열었다.

“자네라면…… 믿을 수 있겠지.”

마웅의 신뢰.

이번 퀘스트 보상으로 얻은 그것이 마웅의 진심을 토로하게 해줬다.

“언제부터인가 세상에 몬스터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네. 토벌협회의 등장으로 그나마 숨통이 트였지만, 최근 그 균형을 무너뜨리는 힘이 등장했지.”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타락의 힘을 쫓은 적이 있습니다.”

히르칸이 빠른 대화 진행을 위해 수작을 부렸다.

“음, 어쨌거나 타락의 힘은 몬스터를 강인하게 만들어주는 한편, 또 다른 능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됐네.”

그런 히르칸의 수작에 마웅은 히르칸의 말을 무시했다. 마웅의 그런 모습에 히르칸이 속으로 비웃음을 머금었다. 더불어 히르칸은 마웅이 말하는 타락의 힘이 가지는 또 다른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몬스터를 조종하는 힘이라고 말할 생각이겠지.’

“바로 몬스터를 조종하는 힘일세.”

“아.”

히르칸이 놀란 척 연기를 했다. 그런 히르칸의 반응에 만족한 듯, 마웅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

“타락의 힘에 노출된 몬스터는 본능대로 행동하지 않고, 명령을 수행하듯 계획적인 움직임을 보이네. 그건 곧 누군가가 그 몬스터를 조종한다는 의미. 실제로 타락 백작 역시 타락의 힘으로 조종한 몬스터를 수하로 부렸었지.”

“하지만 타락 백작은 죽지 않았습니까?”

“그래, 타락 백작은 영웅들의 손에 죽었지.”

영웅!

그 말에 히르칸이 속으로 이죽거렸다.

‘영웅은 개뿔. 수틀리면 억지를 부리는 새끼들인데.’

히르칸이 터져 나오려는 불만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타락 백작만이 타락의 힘을 쓸 수 있는 유일한 자일까? 하물며 타락 백작이 죽었음에도 타락의 힘을 가진 몬스터들이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러는 사이 마웅의 말은 절정에 다다랐다. 히르칸의 눈빛도 차츰 변하기 시작했다.

‘어, 의외로 이야기가 빨리 진행되는 것 같은데?’

“다른 누군가가 또 있다는 의미이군요.”

히르칸이 바뀐 눈빛으로 다시금 마웅의 말에 제대로 맞장구를 쳐줬다.

“그자는 보통 인물이 아니네. 감히 그가 누구인지, 내 의심하는 바를 지금 이 자리에서 말할 순 없지만, 필시 권력을 가진 자, 영주 혹은 그에 준하는 귀족일 가능성이 크네. 어쩌면 타락 백작은 그자의 수하에 불과했을지도 모르지.”

“정말 무시무시한 일이군요. 타락 백작과 같은 자가 아직도 이 세상에 남아 있다니, 하물며 타락 백작마저 수하로 부리는 자라면…….”

“오히려 큰 문제이지. 타락 백작의 죽음은 그 무리에 경각심을 심어줬을 터. 그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면, 그때는 필시 그들이 세상을 상대로 전쟁을 치를 준비가 끝났을 때일 터.”

마웅은 말과 함께 서랍을 열었다.

‘나오나? 정말 여기서 나오나? 진짜?’

히르칸이 그 모습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내가 자네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건 자네에게도 나와 뜻을 같이할 용기와 능력 그리고 세상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도 바칠 수 있는 숭고한 정신을 보았기 때문일세.”

마웅은 히르칸을 칭찬했다. 극찬했다. 그러나 히르칸의 귀에 마웅의 말은 정말 한 글자도 들어오지 않았다.

‘아!’

서랍 안에서 마웅이 꺼낸 반지, 그 반지를 보는 순간 히르칸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드디어!’

그 아이템, 정말 가지고 싶었지만 결코 가질 수 없었던 아이템이 눈앞에 등장했다.

“나를 도와 타락의 힘을 쓰는 배덕한 자들로부터 세상을 구해주게.”

‘드디어 결사대의 반지가 내 손에 들어오는구나.’

히르칸은 고민하지 않았다. 기계처럼, 마웅을 향해 일말의 생각도 없이 대답했다.

“예! 무엇이든 시켜주십시오!”

그 순간 알림이 떴다.

[타이틀 ‘비밀 결사대’를 획득하셨습니다.]

타이틀이 나왔다.

‘그렇지! 결사대 타이틀!’

기다리던 것이 왔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무리한 제안을 받아줘서 고맙군. 그런 자네에게 소개해줄 이가 있네. 파릉 숲 너머, 좀 더 먼 곳으로 가면 우르갈 대산맥이 나오네. 그 대산맥 초입에 올프라는 이름을 가진 대장장이 한 명이 있네. 그를 찾아가게. 이 반지를 보여준다면, 적어도 자네를 죽이진 않

을 걸세.”

[ 퀘스트 ‘대장장이 올프’가 시작됩니다.]

퀘스트 등장.

퀘스트를 듣는 순간 히르칸의 표정이 살짝 구겨졌다. 대장장이 올프, 우르갈 대산맥, 모두 아는 단어였다.

우르갈 대산맥은 세상을 가르는 산맥으로, 이제까지 그 누구도 넘어가지 못했으며, 그 너머에는 폐허 왕국이 존재하고 있다.

‘거기 가는 길목에 나오는 몬스터들은 기본 100레벨인데?’

지금 상황에서는 워로드 그 누구도 사냥터로 삼을 수 없는 죽음의 땅인 셈이다.

최상위 랭커들만이 몬스터 사냥을 배제한 채, 생존을 최우선 과제로 염두에 두어야 닿을 수 있는 곳.

‘어휴, 생각만으로도 토가 나오네.’

가다가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곳이었다.

여기에 대장장이 올프는 유명한 NPC였다. 에픽 아이템을 만들어주는 몇 안 되는 NPC중 한 명이다. 아힘브리 급 NPC다.

여러모로 80레벨도 되지 않은 유저가 접할 만한 것들이 아니다.

‘가다 죽으면 진짜 개죽음인데.’

우려하는 히르칸.

하지만 그 우려는 마웅이 건네주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금반지 앞에 사르르 녹았다.

“이 반지는 증표일세. 우리와 뜻을 같이 하는 자들의 증표. 이름은 없네. 그저 비밀결사대, 종종 그리 칭할 뿐이네.”

비밀 결사대의 반지.

그것이 히르칸의 것이 됐다.

5.

불카스 산맥 중턱.

후드를 뒤집어쓴 유저 한 명이 잘려나간 나무기둥을 의자 삼아 앉은 채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비밀 결사대]

타이틀 효과 : 모든 능력치가 3퍼센트 증가합니다.

유저의 정체는 히르칸이었다.

마웅으로부터 세 가지 선물을 받은 히르칸은 곧장 레인저 빌리지를 나왔다. 추적자들 때문이었다. 예상대로 히르칸이 마웅의 집을 나오는 순간 몇몇 이들이 그런 그를 추적했고, 그들을 뿌리치기 위해 움직이다 보니 지금 있는 위치까지 오게 됐다.

정말 귀찮은 일이었지만, 워로드에서는 유명해질수록, 앞서갈수록 치러야 하는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한편으로는 좋은 점도 있었다. 추격을 뿌리치면서 히르칸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달구어진 머리를 식힐 수 있었다.

히르칸이 소득을 정리했다.

‘오케이, 이걸로 9퍼센트다.’

일단 이번에 얻은 비밀 결사대 타이틀은 퍼센티지 타이틀이었다. 앞서 획득한 아힘브리의 제자, 유망주 타이틀을 합치면 이제 기본적으로 모든 능력치가 9퍼센트 상승하게 됐다.

‘퀘스트 내용은 별거 없고.’

더불어 퀘스트 내용은 간단했다. 우르갈 대산맥 초입에 있는 올프를 만나라는 것. 퀘스트 보상도 없었다. 그냥 가서 만나라고 한다.

중요한 건 퀘스트가 아니라, 히르칸이 손에 착용한 금반지였다. 히르칸이 시계를 조작해 반지의 옵션을 홀로그램창으로 띄웠다.

[비밀 결사대의 증표]

*주요 속성

- 유니크 등급의 아이템

- 모든 능력치 +77

- 요구 레벨 : 70레벨 이상

- 요구 조건 : 타이틀 ‘비밀 결사대’

*보조 속성

- 체력과 마력의 회복속도가 20퍼센트 증가합니다.

- 타이틀 ‘타락 추적자’를 보유 시, 직업 관련 능력치 +22

- 이 아이템은 착용자에게 귀속됩니다.

*기타

- 타락의 힘을 쫓는 비밀 결사대의 증표다. 위대한 대장장이가 용이 먹고 토해낸 금을 재료로 심혈을 기울여 만든 반지이며, 매우 강력한 힘을 품고 있다.

옵션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알이 빠질 정도로 아주 끝내주는 옵션을 가진 반지였다.

‘이게 내 손에 들어오다니.’

히르칸이 히죽, 웃었다.

웃을 수밖에 없었다.

비밀결사대의 증표!

히르칸의 과거로 돌아오기 전 기억에 따르면 처음 이 아이템의 존재와 옵션을 공개한 건 히드라 길드였다. 타락 백작을 가장 먼저 처치한 히드라 길드는 배덕의 왕자 편에서도 놀라운 퀘스트 진행 페이스를 보였고, 그들이 가장 먼저 비밀결사대의 증표를 확보했

다.

더불어 그들이 처음 이 아이템 옵션을 공개했을 때 반응은 하나였다.

사기템이다!

밸런스 망치는 템이다!

히르칸도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기본적으로 이 아이템을 얻을 정도면, 타락 추적자 타이틀은 보유하고 있다. 직업 관련 능력치는 99포인트, 그외의 능력치는 77포인트, 오르는 능력치의 총합이 352포인트다. 어마어마한 수치다.

그러나 정말 사기 아이템 소리를 듣는 이유는 체력과 마력의 회복속도를 올려주는 옵션이었다. 회복속도를 증가시켜주는 버프는 있지만, 아이템은 매우 적다. 이런 아이템을 체력이 많은 탱커나, 마력이 높은 사제가 버프와 함께 쓰면, 소모되는 것보다 회복되는

양이 더 많아지고는 한다.

그들이 아니더라도 언제나 체력, 마력 부족에 허덕이는 스트라이커나 마법사들에게도 인기 만점의 아이템이었다.

그리고 선택받은 자들만이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기도 했다. 배덕의 왕자 편에서만 얻을 수 있는 반지로, 이 아이템은 배덕의 왕자 편이 끝났을 때 고작 179개밖에 풀리지 않았다. 많아 보이지만, 워로드 이용자 숫자를 고려하면 극히 드문 숫자였다.

히르칸이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것이었고, 이번에는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가지게 될 줄은 몰랐다.

히르칸이 다이아몬드 10캐럿짜리 반지를 결혼반지로 선물 받은 새색시처럼 반지 낀 손을 이리저리 살펴봤다.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지질 않았다.

‘이것만 봐도 배부르네.’

정말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를 정도. 물론 이걸 본다고 진짜 배가 부른 건 아니다.

히르칸이 시간을 가늠했다.

‘식사 시간이네.’

이제 진짜로 배를 채울 때다. 로그아웃을 하기 전 주변을 살핀 히르칸이 곧바로 로그아웃 단계에 진입했다.

[로그아웃 카운트다운을 시작합니다. 10, 9, 8…….]

그리고 시작된 카운트다운.

‘그래, 기분이다. 오늘은 배 터지게 먹어보자! 결사대 반지가 나왔는데, 소고기 스테이크 정도는 기념으로 썰어줘야지.’

히르칸이 미소를 지은 채 안심을 먹을지, 등심을 먹을지, 티본을 먹을지 행복한 고민을 시작했다.

6.

보글보글, 매콤한 향기를 풍기며 끓는 라면을 안재현이 시체 같은 표정으로 바라봤다.

“젠장.”

라면이 거의 다 끓자, 안재현의 입에서 쓴소리가 나왔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안재현은 오늘 정말 큰마음을 먹고 스테이크를 썰어볼 생각이었다. 그럴 만큼 돈도 벌었다. 헬름 오우거를 비롯해 사냥에서 얻은 재료 코인과 갱신된 후원금 및 유튜브 광고 수익을 합치면 최소한 두세 달 생활비, 워로드 이용 요금, 새로

구매한 4레벨 V기어 할부금을 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 문자 하나가 안재현의 식사 메뉴를 소고기에서 라면으로 바꾸어버렸다.

[3레벨 및 4레벨 V기어 구매자들을 위한 특별 프로모션! 5S모델, 최신 모델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찬스!]

지금 내는 돈보다 매달 1백만 원을 2년 동안 추가 납부하면, V기어 5S모델을 주겠다는 문자를 받는 순간 안재현의 머릿속에 고민이란 단어는 조금도 없었다.

‘이건 질러야 해.’

조만간 6레벨 모델 출시를 앞두고 재고 판매를 위한 프로모션이란 걸 알고 있다. 하지만 6레벨보다 5S모델이 워로드에는 훨씬 좋다. 지금은 그 누구도 모르지만, 안재현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물론 최고는 6S모델이지만, 지금 그 모델은 안재현이 구매할 수가 없

으니, 현재 상황에서 안재현이 가질 수 있는 최선은 5S모델인 셈. 그런 상황에서 매달 1백만 더 부담하면 최선의 장비를 얻을 수 있다는데, 안재현이 마다할 리 만무했다.

당연히 질렀다.

선착순이라는 단어는 안재현에게 판단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추가 지출이 생긴 안재현은 곧바로 자신의 메뉴를 소고기에서 소고기 라면으로 선회했다.

가스레인지의 불을 끈 안재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돈을 벌면 뭐해? 버는 족족 죄다 게임에 쳐들어가는데.’

푸념을 내뱉은 안재현이 젓가락을 들고, 라면을 휘저었다. 아기 손톱 크기의 자그마한 소고기처럼 보이는 덩어리가 보였다. 안재현이 그 덩어리를 살짝 집어 입에 넣었다.

간만에 소고기 맛을 보는 안재현이었다.

< 25화. 비밀 결사대 (2).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