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솔플의 제왕-67화 (67/192)

< 23화. 스킬 '무장' (3). >

5.

[무장]

- 숙련도 : F랭크

- 스킬 사용 방법 : 자신이 소유한 아이템의 권리를 해골 전사 및 해골 마법사에게 줄 수 있습니다. 숙련도가 상승할수록 보다 많은 종류의 아이템을 해골 전사 및 마법사에게 줄 수 있습니다.

-기타 : 해골 전사 및 마법사에게 준 무기는 해골과 한몸이 됩니다. 무기 권리를 회수하기 위해서는 해골 전사 및 마법사를 소환한 상태에서 가능합니다.

홀로그램 창에 표시된 무장 스킬의 스킬 설명을 보던 히르칸은 하회탈을 벗었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자세히 스킬 내용을 살피고, 스킬 사용 영상도 재생해봤다.

그 후에 히르칸은 감탄사를 꿀꺽, 삼켰다.

‘엄청난 놈이 나왔네.’

무장 스킬.

해골 전사 및 해골 마법사를 엄청나게 강하게, 그것도 단숨에 강력한 개체로 만들어줄 수 있는 스킬이다.

‘정말 엄청난 놈이…….’

동시에 그만한 대가를 요구하는 스킬이기도 했다.

‘내 통장 잔고에도 엄청난 데미지를 줄 놈이 등장했군.’

히르칸은 이 순간 순수하게 기쁜 마음보다는 진지하게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대체 얼마를 더 써야 하지?’

현재 70레벨짜리 레어 등급의 무기 중 제법 괜찮은 옵션을 가진 아이템들은 5백 골드에서 1천 골드 사이에 거래가 된다. 물론 오크 히어로의 검 같이 레어 등급 아이템 중에서도 유니크 등급에 가까운 무기들은 더더욱 비싸게 거래된다.

‘일단 내가 소환할 수 있는 해골 숫자가…….’

현재 히르칸의 해골 소환 관련 스킬 랭크, [해골 조각 B랭크], [해골학 D랭크], [해골 마법사 D랭크]다. 해골 조각 B랭크로 소환 가능한 해골 전사는 5마리, 해골학 D랭크의 효과로 3마리를 추가 소환할 수 있고, 해골 마법사 D랭크의 효과로 2마리를 추가 소환할 수

있다. 여기에 타락 추적자의 목걸이 효과로 1마리 더 추가 소환이 가능하다. 해골 전사만 소환할 경우 최대 11마리까지 소환할 수 있다.

여기서 이 두 가지 요소를 더하면?

“후우!”

히르칸의 입에서 복잡한 심경이 섞인 한숨이 나왔다.

전신 무장도 아니다. 그저 괜찮은 무기만 쥐여줄 뿐인데, 히르칸의 원룸 보증금보다 많은 돈이 필요했다. 하물며 앞으로 무장 스킬의 숙련도가 오르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흉갑, 하갑, 어깨, 부츠에 방패까지 생각하면…….

물론 이렇게 구매한 무기는 되파는 게 가능하다. 되파는 경우에는 살 때만큼 값을 받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해서 생기는 손해 폭은 적진 않지만, 히르칸의 인생에 영향을 줄 만큼 크진 않다.

중요한 건, 아이템을 되팔고, 다시 구매하는 과정에서 시간을 허비하기 싫다면, 항시 대량으로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을 만한 자금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이다.

히르칸은 여기서 생각을 멈췄다. 이 이상 생각하면 위장에 구멍이 뚫릴 것만 같았다.

‘……당분간도 단백질 파우더에, 싸구려 커피에, 포도당 사탕이군.’

히르칸이 쓴웃음을 지었다.

‘자기 자식, 마누라 먹여 살리려고 돈 아끼는 가장의 심정을 조금 알 것 같네.’

인생사에 결혼 경험은커녕 연애 경험조차 없었는데, 벌써 자식을 하나도 아니고, 대여섯 명 둔 기분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된 것 같은 자신의 처지가 우스웠다.

‘이럴 때가 아니지.’

그런 우스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일단 히르칸은 스킬부터 습득했다. 다시 스킬북에 손을 올리고, 스킬 습득을 요청하는 알림이 뜨는 순간 예, 항목을 선택했다.

[무장 스킬을 습득하셨습니다.]

스킬 습득을 마친 히르칸은 무장 스킬에 대한 생각은 뒤로 한 채, 다시 주변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던전부터 클리어하자.’

아직 던전 클리어를 알리는 알림이 뜨지 않았다. 던전 클리어에 따른 보너스 경험치도 받지 못했다. 그렇다는 건 히르칸이 던전 클리어를 위한 요소를 찾지 못했다는 의미. 지금 히르칸이 해야 하는 건 무장 스킬이 아니라, 그 부분이었다.

‘뭔가가 있을 텐데, 이 던전의 정체를 알려줄 만한 뭔가가…….’

그렇게 열심히 히르칸이 책장을 뒤진 후, 곧바로 책상의 서랍도 뒤지기 시작할 무렵.

덜컥덜컥! 책상의 서랍 하나가 열리지 않았다. 히르칸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그 자리에서 책상 서랍을 발로 찼다.

콰직!

거친 소리가 나면서 책상 서랍이 박살이 났다. 박살이 난 서랍 안에 보관되어 있던 건 서류 뭉치였다. 이 던전의 주인이 살라만다를 재료로 삼아, 정령기사를 만들면서 진행했던 연구의 결과물인 듯, 표지에는 꽤 거창하면서도, 묵직한 타이틀이 걸려 있었다.

[고대의 힘에 대한 연구 기록]

꽤 있어 보이는 제목, 그러나 히르칸은 이 제목을 보는 순간 훗, 코웃음을 한 번 쳤다. 히르칸에게 있어 ‘고대의 힘’이란 단어는 옆집이 키우는 강아지 이름만큼이나 친숙하다 못해 지겨운 단어였으니까.

‘폐허 왕국 떡밥이었네.’

고대의 힘.

워로드의 메인 시나리오를 관통하는 주제 중 하나다. 복잡한 건 아니다. 대부분의 판타지 소설 속에서 써먹을 법한 소재, 고대에 어떤 특별한 힘을 가진 왕국이 있었는데 그 힘을 잘못 쓰는 바람에 찬란했던 문명을 누리던 왕국은 멸망했고,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나

그 힘이 다시 등장해서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런 수준의 내용이다.

더불어 현재 타락 백작, 배덕의 왕자가 다루는 힘인 타락의 힘 역시 고대의 힘이다. 워로드에는 이런 사실을 유추할 수 있을 만한 단서나 떡밥을 던전과 같은 숨겨진 요소들에 감춰두고는 했다.

‘예전에는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우와, 우와! 그랬었지.’

의외로 돈이 되는 소재이기도 하다. 30대 길드의 경우에는 이런 워로드의 세계관,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를 비롯해 주요 퀘스트 등을 주제로 삼는 프로그램을 1개 이상 편성해두고 있다. 여기서 이런 게 발견됐으니, 아마도 이런 내용일 것이다! 어떤 작품 팬들이 모

여서 작품 내 세계관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마이너한 프로그램이지만, 의외로 인기는 높다. 그 마이너한 세계관을 즐기는 독자들이 수천만을 넘어 억이 넘으니까.

이 보고서는 큰돈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돈이 될 것이다. 30대 길드의 경우에는 고서를 수집하듯, 이런 것들을 수시로 구매하니까.

히르칸이 보고서를 잘 챙겼다. 어차피 챙기려고 했지만, 무장 스킬에 대한 고민 때문인지 지금은 이 보고서가 어느 때보다 소중하게 느껴졌다.

‘한 푼이라도 벌어야지.’

동시에 이제까지 사치를 부리며 사냥을 했던 스스로를 타박하기 시작했다.

‘젠장, 내가 왜 그랬지?’

그 순간.

[던전의 비밀에 닿았습니다.]

[던전을 클리어하셨습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알림과 히르칸의 짧지 않았던 던전 탐사가 끝이 났다.

6.

퐁당퐁당, 싸구려 커피 안에 포도당 사탕을 집어넣는 안재현의 다른 한 손은 열심히 태블릿PC의 계산기 앱을 이용해 계산을 하고 있었다.

‘해골 11마리에게 최소한 60레벨 이상의 레어 무기는 쥐여줘야 하니까 이걸로 2만 골드 이상은 여유 자금을 확보해둬야 해. 70레벨 세트 아이템인 그림자 사냥개 세트와 화이트맘바 이빨검은 구매해뒀으니 추가 지출은 없고, 해골뱀 세트랑 이번 던전 탐사에서 얻

은 아이템을 팔면 2만 골드 확보 가능. 하지만 앞으로 사냥을 하려면 여유 자금이 이 이상 필요할 테고, 그럼 오크 히어로의 검을…… 이걸 파는 건 너무 아쉽단 말이야. 해골한테 하나 쥐여주면 효과는 좋을 텐데.’

계산은 멈추지 않고, 게임에서 현실로 넘어오며 계속 이어졌다.

‘여기에 V기어도 상위 모델로 구매해야겠어. 1레벨짜리로는 한계가 있어. 당장 6레벨은 힘들더라도, 3레벨이나 4레벨 정도는 구매해야 하는데, 지금 할부금에 상위 모델로 바꾸면 할부금이 매월…….’

거듭된 돈 계산은 안재현의 미간에 주름을 쌓게 했고, 계산기 끝나는 순간, 안재현의 표정은 미간에 주름이 쌓인 채로 굳었다.

“어이쿠.”

사치를 부려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풍족했던 안재현의 자금력이 갑자기 헐벗은 꼴이 됐다.

‘갑자기 돈이 부족해지네, 빌어먹을.’

한숨을 삼키며, 태블릿PC로부터 손을 뗀 안재현이 커피를 홀짝이며 자신의 원룸을 바라봤다. 큼지막한 모니터와 V기어의 존재가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후질구레한 집안 모습에 안재현은 입꼬리를 축 늘어뜨렸다.

‘이제 좀 궤도에 오르나 싶었는데…….’

여유가 생기면 이사를 할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꿈을 나중으로 미뤄야 할 때다. 안재현은 커피가 쓴 듯, 쓴웃음을 지었다.

‘먹고 살려고 게임을 하는데, 지금은 먹고살 돈으로 게임을 하고 있군.’

사실 안재현은 지금이라도 얼마든지 타협을 할 수 있고, 타협을 하는 순간 적당한 삶을 살 수 있다. 30대 길드가 보내는 열렬한 러브콜 중 하나만 고르면, 3년 후 그는 번듯한 아파트에 나름 잘빠진 자동차를 끌고, 손목에 제법 값 좀 되는 시계를 차고 다니면서, 아

는 사람의 소개로 이루어진 미팅 장소에서 직업이 워로드 게이머입니다, 하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타협만 하면 된다. 그럼 굳이 지금처럼 배고픔을 참으면서까지 리스크를 짊어질 필요는 없다.

‘여하튼 참 비싼 자존심이라니까.’

하지만 그런 타협은 있을 수 없다. 그 사실을 알기에 안재현은 거듭 쓴커피를 마시고,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가득 넣은 포도당 사탕의 싸구려 달곰함이 쓴맛을 누그러뜨리며, 안재현의 입가를 달짝지근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이건 분명 호재지.’

무장 스킬의 등장은 분명 안재현의 자금 계획에 크나큰 데미지를 주었지만, 반대로 무장 스킬의 등장은 안재현의 가능성을 대폭 확장해주는 계기가 됐다.

무기를 써서 강해진다, 라는 것도 분명 대단하다. 하지만 게임이란 게 그냥 공격력만 높은 무기만 있는 게 아니다. 워로드도 마찬가지이다. 워로드에는 다양한 종류의 무기가 있다.

특히 유니크 등급으로 가고, 폐허 왕국 편으로 가면 고대의 힘을 담은 무기가 등장한다. 무기에서 나오는 오오라가 대상의 능력치를 감소시키거나 반대로 주변 아군의 능력치를 올려주는 아이템도 있으며, 절대적인 방어력을 자랑하는 방어구도 있다.

아주아주 비싼 무기들이다. 히르칸이 이제까지 모은 돈을 다 때려박아도 못 사는 무기들. 그런 무기로 군단을 구축한다면? 안재현이 지휘하게 될 해골 군단의 무서움은 상상을 초월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100레벨에 해골 기사를 배우고…….’

100레벨이 되는 순간 모든 직업은 자신의 가능성을 대폭 강화할 수 있는 핵심 스킬을 배운다. 소환 스킬 중에는 ‘해골 기사’ 스킬이 있다. 해골 기사는 해골 전사보다 곱절이나 강하며, 특수 능력을 통해 해골 전사들의 능력치를 올려준다.

더 나아가.

‘그 후에 데스나이트마저 배우면…….’

해골 기사 이후에는 네크로맨서의 꽃 중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데스나이트가 있다. 데스나이트는 이렇다 할 무장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강력한 존재다. 리치리치 솔플 레이드 영상에서 데스나이트는 어지간한 실력 좋은 랭커보다 뛰어난 전투 능력을 보여줬다. 여

기에 데스나이트의 특수능력 중 불사군단이란 능력이 발동되면, 데스나이트 주변의 해골 전사들은 무한에 가까운 생명력을 얻는다.

부르르!

안재현이 짧게 몸을 떨었다. 본인이 생각해도 정말 말도 안 되는 전투력을 가지게 될 것 같다.

돈만 있다면.

돈만 넘치도록 있다면, 안재현은 정말 본인이 원하는 대로 워로드가 될 수 있다.

‘그래, 빨리 돈 벌어서 우리 해골들 좋은 무기 챙겨줘야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그게 안재현을 움직이게 했다.

안재현이 커피를 마신 후 옷을 챙겨 입었다. 겨울이 끝나고 봄을 지나, 슬슬 여름을 바라보는 날씨에 어울리는 가벼운 옷차림이 앙상하게 마른 안재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안재현이 안경을 고쳐 쓰며 집을 나섰다.

7.

[마웅의 부탁]

- 퀘스트 등급 : 레어

- 퀘스트 수행 가능 레벨 : 없음

- 퀘스트 내용 : 파릉 숲에 있는 몬스터를 조사하라.

- 퀘스트 보상 : 마웅의 신뢰

시계를 조작해 퀘스트 내용을 확인한 히르칸이 고개를 돌려,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산을 바라봤다.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도 험난하다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드넓은 숲은 기괴했다. 녹음(

가득 찬 숲은 불길함을 품고 있었다.

파릉 숲.

90레벨이 넘는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며, 현재까지 빌리지조차 존재하지 않는 지역. 어지간한 일반 유저들의 접근을 거부하는 곳이었다. 제법 레벨 높은 유저들로 구성된 길드 혹은 파티만이 본격적인 전투를 위해 진입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런 파릉 숲 한 곳에서는 쾅쾅! 굉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고 있었고, 때때로 크오오! 듣기에도 소름이 끼칠 만큼 강렬하기 그지없는 괴물의 울음도 터져 나왔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히르칸이 입고 있는 날렵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이 나는 가죽 갑옷의 허리춤에 달린 하회탈을 쓴 뒤, 가죽 갑옷 안에 입은 후드티의 후드를 뒤집어썼다. 후드를 뒤집어쓰자, 히르칸의 얼굴 아래로 어둠이 내려왔다.

그리고 그 어둠과 함께.

[그림자 사냥개 세트의 특수 옵션 ‘그림자 사냥개’가 발동합니다.]

[그림자 사냥개 세트의 특수 효과로 이동속도가 증가합니다.]

[그림자 사냥개 세트의 특수 효과로 착용자의 존재감이 희미해집니다.]

[그림자 사냥개 세트의 특수 효과로 모든 방어력이 20퍼센트 감소합니다.]

새로운 힘이 히르칸을 감쌌다. 히르칸은 그 새로운 방어구 세트의 힘을 느끼며 각오를 나지막히 내뱉었다.

“내 돈벌이를 방해하는 새끼는 전부 다 죽여 버리겠어.”

통장 잔고 232,120원에 매달 수백만 원이 넘는 V기어 할부금을 내야 하는 자의 각오였다.

< 23화. 스킬 '무장'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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