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솔플의 제왕-66화 (66/192)

< 23화. 스킬 '무장' (2). >

3.

“예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질문해도 될까?”

“하세요.”

“넌 대체 몬스터랑 싸울 때 무슨 생각을 하기에 그리 무식하게 달려드는 거냐?”

워로드를 시작하고 100레벨이 됐을 무렵이었다. 김동수 그리고 하회탈 길드원들과 함께 게임을 하면서 경력도 쌓이고, 레벨도 쌓이고, 명성과 업적도 쌓이면서, 게임으로 번 돈으로 먹고사는 게 가능해졌을 무렵, 그 무렵에 하회탈 길드의 에이스인 히르칸이 전투

도중에 게임오버를 당했다.

무리 그리고 무모한 전투의 결과물이었다. 결국 히르칸이 48시간짜리 페널티를 당하면서, 하회탈 길드는 개장휴업 상태가 됐고, 그 사이 김동수가 직접 안재현을 찾아와 술 한 잔 마시는 자리를 마련해줬다.

앞선 질문은 그 자리에서 받은 질문이었다. 그 질문에 대해 안재현은 대답했다.

“음…… 이 녀석을 잡지 못하면 오늘 내 밥은 없다, 뭐 이런 종류의 생각을 합니다.”

“허허…….”

김동수는 그 대답을 들었을 때 헛웃음을 지으며 비어 있는 안재현의 술잔에 술을 채워줬다. 아무런 반문을 하지 않은 건, 김동수가 안재현의 대답이 대충 상황을 얼버무리고, 떠넘기기 위한 대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 안재현은 결코 그런 이유로

그런 대답을 한 게 아니었다.

정말 진심이었다.

안재현, 아니 히르칸은 솔직히 전투에서 이렇다 할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할 수도 없다. 전투란 게 큰 틀에서는 머릿속에서 그려진 그림대로 진행되더라도, 디테일한 부분은 결국 순간순간의 판단에 따라 대응할 수밖에 없으니까.

결국 전투를 앞두고, 그리고 전투 도중에 하는 생각은 품은 각오를 되새김질하는 것뿐이다.

히르칸이 말한 대답은 바로 그 각오였다.

눈앞에 있는 놈을 못 잡으면 밥은 없다!

우스꽝스럽고, 장난스럽고, 단순하고, 무식하고, 무지하지만 의외로 효과는 좋았다. 그 각오는 때때로 히르칸을 위기에 몰아넣으며 히르칸에게 48시간짜리 강제 휴가를 주고는 했지만, 대부분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줬다.

그 좋은 결과물 중 하나가 바로 영웅도살자란 칭호였다.

‘그래, 해골은 보조일 뿐이지. 내가 그동안 꿀을 빨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어.’

지금 히르칸이 다시 한 번 그 각오를 품었다. 히르칸이 오크 히어로의 검을 쥐었다.

‘뒤에서 꿀만 빠는 건 히르칸이 아니지.’

그리고 자신이 소환한 골렘을 넝마로 만든 정령기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정령기사는 곧장 히르칸의 등장에 반응했다. 정령기사가 접근하는 히르칸을 향해 곧바로 사선으로 검을 내리쳤다.

이제까지 히르칸은 이 공격에 맞대응을 했다. 맞부딪쳤다. 그럼 해골 전사가 대신 공격을 해줄 테니까. 히르칸은 공격을 피하기보다는 공격을 잡아두는 역할을 자처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피했다.

아슬아슬하게.

몸을 옆으로 비틀고, 눕히면서 휘두르는 칼의 바람이 선명하게 느껴질 정도로 피했다.

이게 본래 히르칸의 전투 스타일이었다. 잠시 동안 해골 전사들과 골렘들이 만들어주는 편리함에 잊고 있었을 뿐이다. 망각…… 달리 말하면 방심이나 다름없던 그것을 정령기사가 깨닫게 해줬다.

정령기사가 히르칸을 하회탈 히르칸이 아닌, 영웅도살자 히르칸으로 깨워준 것이다.

공격을 피한 히르칸은 정령기사 왼편을 검으로 후려쳤다.

카앙!

쇳소리가 터지며 정령기사의 갑옷에 선명한 칼자국이 났다.

갑옷이 잘려나가진 않았다. 정령기사의 방어력이 보통이 아님을 보여주는 대목.

그렇게 한 번 베기에 성공한 히르칸이 정령기사를 스쳐 지나간 후에 몸을 돌렸다.

휙, 정령기사 역시 몸을 돌려 히르칸을 바라봤다.

“후우!”

짧은 숨소리를 신호탄 삼아 히르칸이 다시 정령기사를 향해 달렸고, 정령기사는 다가오는 히르칸을 향해 검을 휘둘렀으며, 히르칸은 그 검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내며 정령기사의 몸에 다시 한 번 칼자국을 만들고 지나갔다.

일수공방(一手攻防).

서로가 한 번에 한 번씩의 공격을 나누는 방식.

이제부터 히르칸은 이런 교전을 수십 혹은 백 넘게 나눌 생각이었다.

그 수십 번의 공방 중에 히르칸은 서너 수만 맞아도 게임오버. 반대로 히르칸이 승리를 위해선 오륙십의 수를 맞춰야 한다. 히르칸의 실수는 곧 치명상, 정령기사의 묘수 역시 히르칸에게는 치명타가 되며, 혹여 정령기사에게 요행수가 따라 히르칸이 당하면 오늘

하루는 히르칸에게 두고두고 잊지 못할 악몽이 될 것이다.

아득한 전투다.

그러나 히르칸은 이 순간 어려운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저 새끼 못 죽이면 밥은 없어!’

영웅도살자에게 어려운 생각은 어울리지 않으니까.

4.

[타이틀 ‘기사도’를 획득하셨습니다.]

타이틀 알림이 들리는 순간 히르칸은 담담한 기색으로 치료 점토를 꺼내 덜렁거리다 못해 당장에라도 떨어져 나갈 듯한 자신의 왼팔을 치료했다. 치료 점토를 절단면 두 곳에 바른 후 붙였다. 히르칸이 곧바로 왼손을 움직이자, 왼손이 잘 움직였다.

게임다운 장면이었다.

히르칸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에 모든 것이 꺼진 갑옷들이 보였다. 처절한 전투의 흔적이 곳곳에 역력한, 걸레처럼 변한 갑옷 파츠들이 너부러져 있었다.

그 광경을 본 히르칸이 씨익, 웃었다.

“캬!”

저렴하기 그지없는 웃음이 히르칸의 입가를 비집고 나오며 소리를 냈다.

‘역시 내 실력은 끝내준다니까.’

이거다.

누가 보더라도 히르칸에게 불리하지만, 전투가 끝나고 꼿꼿하게 두 다리에서 서 있는 자신을 보는 게, 히르칸은 그 어느 때보다 기분이 좋았다.

물론 이번 전투를 통해서 불만도 하나 생겼다.

‘그보다 확실히 V기어 레벨이 낮아서 그런지 조금 둔하네.’

작심하고 과거처럼 싸우다 보니, 그동안 잘 느끼지 못했던 것을 느끼게 됐다.

바로 V기어 레벨.

‘6레벨은 힘들지만 3레벨이라도 살까?’

히르칸의 V기어는 1레벨짜리, 기본형이다. 그리고 현재 V기어는 6레벨 출시를 앞두고 있다. 1레벨짜리와 6레벨짜리는 아주 큰 차이는 아니지만, 실력 좋은 유저라면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차이가 존재한다.

물론 그 차이를 느끼는 건, 실력 좋은 유저가 자신의 능력치를 한계까지 발휘했을 때다.

달리 말하면.

‘그래도 내가 이 차이를 느끼는 걸 보면, 내 감이 전성기 수준에 도달했다는 의미이겠군.’

히르칸이 전성기 수준의 감을 되찾았다는 의미. 클라이밍을 비롯해 그렇게 노력을 해도 확실히 찾지 못했던 감을 정령기사 덕분에 찾게 된 것이다. 히르칸이 정령기사의 시체, 덩그러니 놓인 갑옷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정령기사 자

체가 흐뭇해서 지은 미소는 아니었다. 히르칸은 몬스터를 보고 흐뭇해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얘도 팔면 돈 좀 나오는데.’

몬스터가 흐뭇한 게 아니라 몬스터가 주는 아이템이 흐뭇한 법이다.

정령기사는 정령기사 갑옷파편이란 재료 코인을 토해내며, 이 재료는 정령의 힘을 담을 수 있기 때문에 매우 높은 속성저항력을 가진 방어구 제작에 사용된다.

하물며 90레벨 몬스터니, 아이템 레벨은 못해도 70레벨 이상. 적어도 이번 전투에서 히르칸이 소모한 소모 아이템값 이상은 나올 것이다. 본전 이상이란 의미.

히르칸이 곧바로 갑옷을 코인 재료로 바꾸었다. 그 코인을 잘 챙긴 후에 히르칸이 고개를 돌렸다.

‘이제 끝낼 때가 왔군.’

정령기사가 이곳을 지키는 가디언이었고, 그 가디언을 해치웠으니 이제는 도둑놈이 마음껏 도둑질을 해도 된다는 의미!

히르칸이 자신의 시선으로 보이는 새로운 길을 지그시 바라봤다.

5.

허름한 방이었다. 10평 남짓한 방 안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책상 두 개와 책장들 세 개가 전부였다. 책장 안에는 수십 권의 책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책들은 시답잖은 내용밖에 없었다. 워로드 설정을 배경 삼아 만들어진 별거 없는 소설들이었다. 만약 워로드의 세

계관을 학문적으로 연구하고자 하는 유저들에게는 워로드의 설정을 자세히 알 수 있는 연구소재가 되겠지만, 히르칸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였다.

애초에 히르칸은 지금 이 시점에서 그 누구보다 워로드 세계관을 잘 알고 있으니까.

배덕의 왕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배덕의 왕자를 잡는 순간 밝혀지는 폐허 왕국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알고 있다.

‘뭐 이딴 것들만 있어?’

히르칸은 책을 대충 훑어봤다.

“우와!”

그때 히르칸이 기어코 원하던 바를 찾았다. 손바닥 자국이 보이는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책이 등장했다.

히르칸의 눈빛이 반짝였다.

‘스킬북 나왔다!’

스킬북이다.

더불어 히르칸이 현재 습득한 스킬북은 아무것도 표시되지 않은 노네임 스킬북이었다. 스킬북의 겉표지에 있는 손바닥 표시에 왼손 손바닥을 놓으면 손바닥을 놓은 유저의 직업과 관련된 스킬이 랜덤으로 활성화된다.

이렇게 얻은 스킬북을 습득할 수도 있고, 스킬북을 팔 수도 있다. 시중에 나오는 스킬북 중 상당수는 이런 식으로 나온 것들이다. 네크로맨서 관련 스킬북이 희귀한 이유이기도 하다. 네크로맨서 스킬북을 만든다고 해서 비싼 값에 팔 수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거

래도 잘되지 않으니까. 무엇보다 네크로맨서 유저 자체가 적기 때문에 나오는 수량도 많지 않다.

물론 노네임 상태로도 팔 수는 있지만, 의미가 없다. 만약 스킬북이 레어 혹은 유니크 등급의 스킬북이라면? 스킬북은 노멀 등급이라도 충분히 비싸게 팔 수 있다. 못해도 본전인 보물상자를 까보지 않을 인간이 있을 리 없다. 혹은 노네임 스킬북 자체를 아주 비

싸게 파는 경우가 있지만, 그건 그냥 복권 같은 거다.

히르칸은 여기서 고민 없이 손바닥 자국에 자신의 왼손 손바닥을 올려놓았다. 돈은 충분히 있는데, 굳이 이걸 팔기 위해 이런저런 어려운 고민을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스킬북이 정체를 드러냅니다.]

곧바로 알림이 떴고, 곧바로 새로운 알림이 떴다.

[무장 스킬을 습득하시겠습니까?]

‘응?’

그 순간 히르칸이 놀라며 스킬 북에서 손에서 뗐다. 손을 뗀 히르칸이 자신의 손에 들린 스킬북을 말없이 바라봤다.

‘설마?’

그리고 히르칸이 다시 손바닥을 댔다. 똑같은 알림이 떴고, 히르칸이 다시 손바닥을 때며 저도 모르게 자기 마음을 혼잣말로 지껄였다.

“무장이라면…….”

‘이게 그 스킬인가?’

히르칸은 네크로맨서의 스킬트리에 대해서 아주 잘 알지는 못한다. 네크로맨서 관련 스킬이 얼마나 있는지, 스킬 습득 조건이 정확히 어떻게 되는지, 스킬 내용이 정확히 어떤 내용인지, 정보가 많지 않다. 게임 초반에는 당시 레벨이 꽤 됐던 네크로맨서 헬겐을 통

해서 정보를 구매했지만, 이제는 헬겐이 아는 것보다 히르칸이 아는 게 더 많다.

때문에 지금의 히르칸은 자신이 과거 보았던 리치리치의 레이드 영상을 통해 그가 사용한 스킬을 유추할 수밖에 없었다. 개중에서 히르칸의 의구심을 가지는 건, 리치리치가 부리는 해골들의 무장 상태였다.

처음에는 본 아머 같은 갑옷을 입은 것으로 추측했다. 그러나 히르칸은 직접 본 아머를 써보면서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그럼 혹시 파츠가 다른 걸까? 하지만 이 역시 히르칸이 다양한 뼈 재료를 제물 삼아 해골 전사를 조각하면서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즉, 리치리치가 이 스킬 외에 또 다른 스킬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무기! 리치리치의 해골들은 모두가 아주 좋은 무기를 들고 있었다.

하지만 히르칸이 시도해본 결과 해골 전사는 유저가 사용하던 무기를 들지 못한다. 몬스터로부터 빼앗은 무기 역시 들지 못한다. 이런 점을 본다면 필시 해골 전사들이 유저들이 쓰는 무기를 들 수 있게 해주는 스킬이 있을 터.

꿀꺽!

히르칸이 침을 삼켰다.

‘진짜 가능한가?’

이 순간 히르칸의 머릿속에는 오크 히어로의 검을 든 해골 전사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강력하기 그지없는 무기로, 단숨에 강해지는 해골 전사들의 위력을 느꼈다.

히르칸이 다시 한 번 숨을 돌리며 자세한 스킬 내용을 홀로그램 창으로 띄었다.

5.

스라 협곡 빌리지에서 레드불스 길드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스라 협곡 빌리지에서 레드불스 길드에게 찍힌다는 건, 스라 협곡 빌리지에 발을 들여놓을 생각조차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다.

하물며 스라 협곡 빌리지에서 유저들 상대로 장사를 하는 상인 유저들이라면,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다. 더군다나 상인 유저들은 레드불스 길드에 수수료를 지불하고, 신분증명도 한다. 신분증명이란 게, 주민등록등본 같은 걸 떼다가 레드불스 길드에 보내주거

나, 그러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아무나 할 수는 없다. 비매너 유저로 유명한 유저는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스라 협곡 빌리지에서 장사를 하는 유저, 코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레드불스 길드의 공지, 최근 많은 양의 소비 아이템을 혼자서 구매해간 유저를 알려달라는 내용의 공지를 보는 순간, 두말할 것도 없이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제보했다.

“한 번에 4천 골드를 구매했다고요?”

“예.”

“정확한 인상착의는 말씀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게…… 잘은 기억이 안 납니다. 제가 사람 얼굴 기억하는 재주가 별로라서요. 분명한 건 동양인이었습니다.”

“그 외의 특징은 없습니까?”

“음, 이런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는데, 호구 같다고 해야 할까?”

“호구?”

“그런 사람 있잖습니까? 딱 보면, 내가 사기꾼은 아니지만 말발 좀 되면 이 인간 정도는 얼마든지 속일 수 있겠다, 하는 사람. 그런 느낌이 드는 상대였습니다. 물론 직접 거래를 해보면 호구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등쳐 먹을 생각도 없었고요. 비싼 물품을

한 번에 구매해주는 고객인데, 굳이 나중에 거래를 무를 만한 여지를 둘 필요는 없지요.”

그런 코튼의 제보를 들은 레드불스 길드 소속, 피요르세는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한 가지 실체를 잡을 수 있었다.

‘하회탈 히르칸이 동양인, 그것도 한국인일 가능성은 이미 짐작되던 바였고…… 생김새가 호구 같다, 이건가?’

“미치겠군. 이걸 어떻게 보고하지?”

참 도움이 되는 정보를 얻게 된 레드불스 길드였다.

< 23화. 스킬 '무장'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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